맨체스터 시티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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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시티 FC
Manchester City FC
정식 명칭
Manchester City Football Club
별칭
시티즌 (The Cityzens)[1]
블루스 (Blues)[2]
블루문 (Blue Moon)
약칭
MCI
창단
1894년 4월 16일 (130주년)[3][4][5]
소속 리그
프리미어 리그 (Premier League)
연고지
노스웨스트 잉글랜드 그레이터맨체스터 주 맨체스터 (Manchester)
홈 구장
에티하드 스타디움 (Etihad Stadium)
(53,400명 수용)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맨체스터 더비
리버풀 FC[6]
모기업
파일:cfg-logo.png 시티 풋볼 그룹 (City Football Group)
구단주
[[아랍에미리트|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
아랍에미리트
]][[틀:국기|
]][[틀:국기|
]]
만수르 빈 자이드 알나얀 (Mansour bin Zayed Al Nahyan)
회장
[[아랍에미리트|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
아랍에미리트
]][[틀:국기|
]][[틀:국기|
]]
칼둔 알 무바라크 (Khaldoon Al Mubarak)
사장
[[스페인|
파일:스페인 국기.svg
스페인
]][[틀:국기|
]][[틀:국기|
]]
페란 소리아노 (Ferran Soriano)
단장
[[스페인|
파일:스페인 국기.svg
스페인
]][[틀:국기|
]][[틀:국기|
]]
치키 베히리스타인 (Txiki Begiristain)
감독
[[스페인|
파일:스페인 국기.svg
스페인
]][[틀:국기|
]][[틀:국기|
]]
펩 과르디올라 (Josep Guardiola)
수석코치
[[스페인|
파일:스페인 국기.svg
스페인
]][[틀:국기|
]][[틀:국기|
]]
로돌포 보렐 (Rodolfo Borrell)
주장
[[독일|
파일:독일 국기.svg
독일
]][[틀:국기|
]][[틀:국기|
]]
일카이 귄도안 (İlkay Gündoğan)
부주장
[[벨기에|
파일:벨기에 국기.svg
벨기에
]][[틀:국기|
]][[틀:국기|
]]
케빈 더 브라위너 (Kevin De Bruyne)[7]
UEFA 랭킹
2위 출처
영구결번
23}}} 마르크비비앙 푀 (Marc-Vivien Foé)[8]
클럽 앰버서더
[[잉글랜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마이크 서머비 (Mike Summerbee)
[[스코틀랜드|
파일:스코틀랜드 국기.svg
스코틀랜드
]][[틀:국기|
]][[틀:국기|
]]
폴 디코프 (Paul Dickov)
[[잉글랜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마이카 리차즈 (Micah Richards)
[[아르헨티나|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아르헨티나
]][[틀:국기|
]][[틀:국기|
]]
파블로 사발레타 (Pablo Zabaleta)
[[잉글랜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졸리온 레스콧 (Joleon Lescott)
[[잉글랜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숀 라이트필립스 (Shaun Wright-Phillips)
[[중국|
파일:중국 국기.svg
중국
]][[틀:국기|
]][[틀:국기|
]]
쑨지하이 (Sūn Jìhǎi)
공식 웹사이트
파일:맨체스터 시티 FC 로고.svg 파일:트위터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틱톡 아이콘.svg 파일:네이버 포스트 아이콘.svg 파일:네이버TV 아이콘.svg 파일:LinkedIn 아이콘.svg
한국 팬 커뮤니티
파일:디시인사이드 아이콘.svg 파일:네이버 카페 아이콘.svg
우승 기록
프리미어 리그 (1부)
(8회)
1936-37, 1967-68, 2011-12, 2013-14, 2017-18, 2018-19, 2020-21, 2021-22
EFL 챔피언십 (2부)
(7회 / 최다 우승)[9]
1898-99, 1902-03, 1909-10, 1927-28, 1946-47, 1965-66, 2001-02
FA컵
(6회)
1903-04, 1933-34, 1955-56, 1968-69, 2010-11, 2018-19
EFL컵
(8회)
1969-70, 1975-76, 2013-14, 2015-16, 2017-18, 2018-19, 2019-20, 2020-21
FA 커뮤니티 실드
(6회)
1937, 1968, 1972, 2012, 2018, 2019
UEFA 컵위너스컵
(1회)
1969-70
클럽 기록
최고 이적료 영입
[[잉글랜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잭 그릴리시 (Jack Grealish)
(2021년, From 아스톤 빌라, £ 1억)[10]
최고 이적료 방출
리로이 자네 (Leroy Sané)
(2020년, To FC 바이에른 뮌헨, £ 5,194만)[11]
최근 영입
막시모 페로네 (Maximo Perrone)
(2023년, From CA 벨레스 사르스필드, £ 800만)[12]
최다 출장
앨런 오크스 (Alan Oakes) - 680경기 (1958~1976)
최다 득점
세르히오 아구에로 (Sergio Agüero) - 260골 (2011~2021)
최다 도움
케빈 더 브라위너 (Kevin De Bruyne) - 134도움 (2015~ )
리그 득점왕
(4회)

프랭크 로버츠 (1924-25)
프란시스 리 (1971-72)
카를로스 테베스 (2010-11)
세르히오 아구에로 (2014-15)
최다 관중 기록
84,569명[13][14][15]



1. 개요
2. 스쿼드
2.1. 맨체스터 시티 1군 스쿼드
2.2. 맨체스터 시티 EDS 스쿼드
2.3. 임대 선수
2.4. 맨체스터 시티 보드진 & 코칭 스태프 명단
3. 맨체스터 시티 역대 감독
3.1. 주요 감독
4. 맨체스터 시티 역대 주장
5. 맨체스터 시티 역대 시즌
5.1. 시즌별 일람
5.2. 역대 리그 순위
6. 맨체스터 시티의 역사
6.1. 맨체스터 시티의 창단과 짧은 리즈 시절
6.2. 제 1의 영광스러운 전성기 시대와 침체기
6.3. 프리미어 리그 이후, 탁신의 인수
6.4. 만수르의 인수, 현재
7. 맨체스터 시티 엠블럼
7.1. 검독수리
7.2. 새 엠블럼 (2016~)
8. 홈 구장
10. 맨체스터 시티 레전드
11. 라이벌
12. 맨체스터 시티의 위상과 인기
12.1. 맨시티를 응원하는 해외 유명 인물들
12.2. 맨시티를 응원하는 국내 유명 인물들
13. 맨체스터 시티 응원가
14. 맨체스터 시티 공식 스폰서
14.1. 글로벌 파트너 (Global Partners)
14.2. 지역 파트너 (Regional Partners)
15. 맨체스터 시티 e스포츠팀
16. 이야깃거리
16.1. 만수르가 맨시티를 택한 이유
16.2. 대한민국과의 관계
16.3. 기타
17. 맨체스터 시티 FC 논란 및 사건 사고
18. 둘러보기




1. 개요[편집]


파일:맨체스터 시티이.jpg
영국 잉글랜드프리미어 리그 소속 프로 축구 클럽. 연고지는 그레이터 맨체스터주의 맨체스터. 홈 구장은 에티하드 스타디움.

1880년 세인트 마크스 웨스트 고튼으로 최초 창단되어 1894년 현재의 맨체스터 시티 FC로 정착했다. 잉글랜드 클럽 올타임 자국 트로피 개수 4위[16]와 역대 잉글랜드 1부리그 누적 승점 6위[17]의 기록을 지닌 오랜 역사를 가진 클럽이다.

130여년이 넘는 기간동안 잉글랜드 1부 리그의 중상위권에 위치해 있었고, 만수르의 구단 인수 이전에도 역대 잉글랜드 1부리그 누적 승점 6위[18]에 위치할 정도로 역사가 오래된 구단이다.

1992년, 잉글랜드 프로 축구 리그가 프리미어 리그로 개편되자 강등을 당하기도 했던 구단 최고 암흑기를 보냈지만, 2008년 아랍에미리트 부총리 만수르 빈 자이드 알나얀의 인수 이후 2011-12 시즌 44년 만의 1부 리그 우승을 거머쥐며 잉글랜드의 막강한 강호로 급부상했고, 펩 과르디올라 감독 선임 이후 프리미어 리그 단일 시즌 역대 최다 승점 100점 우승, 잉글랜드 프로 축구 역사상 유일무이한 최초의 도메스틱 쿼드러플[19] 등의 성과를 연달아 달성하며 2010년대 초 이래 구단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2. 스쿼드[편집]



2.1. 맨체스터 시티 1군 스쿼드[편집]




2.2. 맨체스터 시티 EDS 스쿼드[편집]




2.3. 임대 선수[편집]




2.4. 맨체스터 시티 보드진 & 코칭 스태프 명단[편집]





3. 맨체스터 시티 역대 감독[편집]




3.1. 주요 감독[편집]



파일:Joe Mercer.jpg


파일:Roberto Mancini Man city.jpg


파일:3000Pep.jpg

조 머서
Joe Mercer (1965~1971)

로베르토 만치니
Roberto Mancini (2009~2013)

펩 과르디올라
Pep Guardiola (2016~)

프리미어 리그 1회 우승
EFL 챔피언십 1회 우승
FA컵 1회 우승
EFL컵 1회 우승
FA 커뮤니티 실드 1회 우승
UEFA 컵 위너스 컵 1회 우승
프리미어 리그 1회 우승
FA컵 1회 우승
FA 커뮤니티 실드 1회 우승
프리미어 리그 4회 우승
FA컵 1회 우승
EFL컵 4회 우승
FA 커뮤니티 실드 2회 우승

4. 맨체스터 시티 역대 주장[편집]





5. 맨체스터 시티 역대 시즌[편집]





5.1. 시즌별 일람[편집]



시즌
EPL
FA
EFL
FACS
UCL
UEL
USC
FCC
감독
2002-03
9위
(승격)
64강
32강
-
-
-
-
-
케빈 키건
2003-04
16위
( 7)
16강
16강
-
-
2라운드[20]
-
-
2004-05
8위
( 8)
64강
32강
-
-
-
-
-
케빈 키건

스튜어트 피어스
2005-06
15위
( 7)
8강
48강
-
-
-
-
-
스튜어트 피어스
2006-07
14위
( 1)
8강
48강
-
-
-
-
-
2007-08
9위
( 5)
32강
8강
-
-
-
-
-
스벤예란 에릭손
2008-09
10위
( 1)
64강
32강
-
-
8강[21]
-
-
마크 휴즈
2009-10
5위
( 5)
16강
4강
-
-
-
-
-
마크 휴즈

로베르토 만치니
2010-11
3위
( 2)
우승
(5회)
32강
-
-
16강
-
-
로베르토 만치니
2011-12
1위
( 2)
(3회)
64강
4강
준우승
조별리그
16강[22]
-
-
2012-13
2위
( 1)
준우승
32강
우승
(4회)
조별리그
-
-
-
2013-14
1위
( 1)
(4회)
8강
우승
(3회)
-
16강
-
-
-
마누엘 페예그리니
2014-15
2위
( 1)
32강
16강
준우승
16강
-
-
-
2015-16
4위
( 2)
16강
우승
(4회)
-
4강
-
-
-
2016-17
(리그)
3위
( 1)
4강
16강
-
16강
-
-
-
펩 과르디올라
2017-18
(리그)
1위
( 2)
(5회)
16강

우승
(5회)
-
8강
-
-
-
2018-19
(리그)
1위
(-)
(6회)
우승
(6회)
우승
(6회)
우승
(5회)
8강
-
-
-
2019-20
(리그)
2위
( 1)
4강
우승
(7회)
우승
(6회)
8강
-
-
-
2020-21
(리그)
1위
( 1)
(7회)
4강
우승
(8회)
-
준우승
-
-
-
2021-22
(리그)
1위
(-)
(8회)
4강
16강
준우승
4강
-
-
-
2022-23
(리그)
-
-
8강
준우승
-
-
-
-


5.2. 역대 리그 순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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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리그 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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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리그
순위
1891-92
-
풋볼 얼라이언스
8
1892-93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5
1893-94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13
1894-95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9
1895-96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2
1896-97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6
1897-98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3
1898-99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1
1899-00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7
1900-01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1
1901-02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8
1902-03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1
1903-04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2
1904-05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3
1905-06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5
1906-07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7
1907-08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3
1908-09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9
1909-10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1
1910-11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7
1911-12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5
1912-13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6
1913-14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3
1914-15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5
1915-16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중단
1916-17
1917-18
1918-19
1919-20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7
1920-21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2
1921-22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0
1922-23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8
1923-24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1
1924-25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0
1925-26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21
1926-27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3
1927-28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1
1928-29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8
1929-30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3
1930-31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8
1931-32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4
1932-33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6
1933-34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5
1934-35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4
1935-36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9
1936-37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
1937-38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21
1938-39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5
1939-40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중단
1940-41
1941-42
1942-43
1943-44
1944-45
1945-46
1946-47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1
1947-48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0
1948-49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7
1949-50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21
1950-51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2
1951-52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5
1952-53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20
1953-54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7
1954-55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7
1955-56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4
1956-57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8
1957-58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5
1958-59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20
1959-60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6
1960-61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3
1961-62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2
1962-63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21
1963-64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6
1964-65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11
1965-66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1
1966-67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5
1967-68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
1968-69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3
1969-70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0
1970-71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1
1971-72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4
1972-73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1
1973-74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4
1974-75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8
1975-76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8
1976-77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2
1977-78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4
1978-79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5
1979-80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7
1980-81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2
1981-82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0
1982-83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20
1983-84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4
1984-85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3
1985-86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5
1986-87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21
1987-88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9
1988-89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2
1989-90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4
1990-91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5
1991-92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5
1992-93
1
FA 프리미어 리그
9
1993-94
1
FA 프리미어 리그
16
1994-95
1
FA 프리미어 리그
17
1995-96
1
FA 프리미어 리그
18
1996-97
2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4
1997-98
2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22
1998-99
3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3
1999-00
2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2
2000-01
1
FA 프리미어 리그
18
2001-02
2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
2002-03
1
FA 프리미어 리그
9
2003-04
1
FA 프리미어 리그
16
2004-05
1
FA 프리미어 리그
8
2005-06
1
FA 프리미어 리그
15
2006-07
1
FA 프리미어 리그
14
2007-08
1
프리미어 리그
9
2008-09
1
프리미어 리그
10
2009-10
1
프리미어 리그
5
2010-11
1
프리미어 리그
3
2011-12
1
프리미어 리그
1
2012-13
1
프리미어 리그
2
2013-14
1
프리미어 리그
1
2014-15
1
프리미어 리그
2
2015-16
1
프리미어 리그
4
2016-17
1
프리미어 리그
3
2017-18
1
프리미어 리그
1
2018-19
1
프리미어 리그
1
2019-20
1
프리미어 리그
2
2020-21
1
프리미어 리그
1
2021-22
1
프리미어 리그
1



6. 맨체스터 시티의 역사[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0px-ManchesterCityFC_League_Performance.svg.png
맨체스터 시티 FC의 역대 순위 변화 출처


6.1. 맨체스터 시티의 창단과 짧은 리즈 시절[편집]


1880년, 잉글랜드 맨체스터의 고튼 서부에 위치한 세인트 마크스 교회 (St. Mark's Church)의 교인들이 다분히 인도적인 목적으로 훗날 맨체스터 시티로 알려질 축구 클럽을 창단했다. 당시 많은 실업자와 범죄자들이 맨체스터 동부, 특히 고튼에 만연해있었는데 현지인들을 위한 새로운 활동을 도입함으로써 이것을 개선하고 사회적 병폐를 줄이라는 아서 코넬 (Arthur Connell) 목사의 독려에 따라 교회 관리인인 윌리엄 비스토우 (William Beastow)와 토마스 굿비히어 (Thomas Goodbehere), 그리고 아서 코넬 목사의 딸인 안나 코넬 (Anna Connell)이 세인트 마크스 웨스트 고튼 (St. Mark's West Gorton) 라는 교회 축구 팀을 창단한 것이다. 특히 안나 코넬은 19세기에 창단된 프로 축구팀 가운데, 창단 멤버 중에 유일한 여성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게다가 안나 코넬이 창단에 큰 기여를 했는데 원래는 크리켓이나 럭비 팀을 만들려고 했는데 당시 지방 음주 노숙자라든지 여러 사회 문제가 된 알코올 중독자를 위한 스포츠로 두 종목은 맞지 않는다며[23] 축구팀을 만들자고 건의한 게 그녀였다고 한다.[24]

1884년, 세인트 마크스는 고튼의 또 다른 축구 클럽인 고튼 애슬레틱과 합병되지만 불과 한 시즌 뒤에 세인트 마크스는 고튼 AFC로, 고튼 애슬레틱은 웨스트 고튼 애슬레틱으로 분리되었다. 1887년에 연고지를 맨체스터 시 동부에 위치한 아드윅이란 동네로 옮겨 클럽 이름을 아드윅 AFC로 바꾸고, 홈 구장도 하이드 로드로 옮기게 된다. 1889년에는 하이드 로드 근처의 탄광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 23명의 광부가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고, 아드윅 AFC와 뉴턴 히스(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가 지역 주민들을 돕기 위한 기금 마련 자선 경기를 치르기도 하였다.

1892년 잉글랜드 축구 2부 리그가 설립되어 아드윅 AFC가 창립 멤버로 참가했다. 1894년에는 팀 이름을 맨체스터 시티 FC로 바꾸고, 1898-99 시즌에서야 드디어 1부 리그로 올라왔으나 다시 2시즌도 안 가 강등당했다. 그러다가 1시즌 만에 승격함과 동시에 다음 해인 1903-04 시즌 볼턴 원더러스를 꺾고 FA컵 우승과 리그 2위의 성적을 거두며 이름을 알리는가 했지만 오래가지 않아 또다시 강등과 승격을 거치며 중소 구단으로서 지내야 했다. 그 와중에 1923년 홈구장 하이드 로드가 불에 타버려서 메인 로드로 경기장을 옮기기도 했다.

1925-26 시즌에는 감독 없이 FA컵 우승을 하기도 하고, 맨유 원정에서 6-1로 이기기도 했지만 강등당한다. 1928년에는 최고의 서포터즈를 가진 클럽으로 선정되기도 했고 1934년 FA컵 우승, 라이벌인 맨유가 첫 리그 우승(1907-08 시즌)을 거둔 지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서인 1936-37 시즌에서야 맨시티도 첫 리그 우승의 감격을 누린다. 하지만 1937-38 시즌, 리그 42경기에서 80골이나 넣는 공격력을 보유하고도 77실점이나 허용하는 수비진 탓에 강등당했다. 결국 맨시티는 지금까지 다음 시즌에 강등된 유일한 디펜딩 챔피언이자 실점보다 높은 득점(+3)을 기록하고도 강등된 유일한 팀으로 남는다. 그래서 1951년에 전쟁포로 독일인 골키퍼 베르트 트라우트만을 전격 영입하고, 타 팀의 어그로와 수비를 강화하면서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승격과 강등을 거치면서 1955년에 FA컵 결승전에서 뉴캐슬에게 패해 우승컵을 내주지만, 1년 후 다시 결승에 진출해 우승한다. 1958년 뮌헨 참사에서 맨시티의 골키퍼였으며 기자로 활동하였던 프랭크 스위프트[25]가 목숨을 잃기도 했다.


6.2. 제 1의 영광스러운 전성기 시대와 침체기[편집]


1965년에 조 머서가 감독으로, '빅 말(Big Mal)'이라는 닉네임을 막 달았던 말콤 앨리슨이 코치로 맨체스터 시티에 부임했다.

머서와 앨리슨의 부임 이후 맨시티는 큰 변혁을 맞았다. 조 머서 감독의 지휘 아래 말콤 앨리슨은 프랜시스 리, 콜린 벨, 마이크 서머비 삼총사를 중심으로 활력 넘치는 공격진을 만들었다. 간단하지 않은 전술과 투지 넘치고 정교한 축구를 3년 연속 이어가면서 1부 리그로 다시 승격, 1967-68 시즌 팀의 2번째이자 31년 만의 리그 우승, 1968-69 시즌 FA컵 우승, 그리고 1969-70 시즌 풋볼 리그 컵 우승과 함께 지금까지 맨시티의 유일한 유럽 클럽 대항전 우승인 UEFA 컵위너스컵까지 들어올렸다. 이 모든 것은 단 4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1972년 구단 엠블럼을 변경하였다. 그러나 짧은 영광도 잠시, 1971년 피터 스웨일스 회장 취임 후 조 머서가 맨시티를 떠났고, 1973년 맨시티 성공의 주역이었던 앨리슨 역시 팀을 떠났다. 이후 1975-76 시즌 풋볼 리그 컵 우승을 하지만, 1981년 FA컵 준우승 이후로 거둔 우승은 고작해야 2부 리그 우승뿐이었다.

다만 1900년대 후반의 맨시티를 이전의 명맥을 유지하기도 불안했던 하위 팀으로 평가하는 것은 부당하다. 맨시티는 당시에도 잉글랜드에서 가장 큰 구장 중 하나를 가진 인기 클럽으로서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한 1980년대에도 꾸준히 관중 순위 3~4위를 찍었으며, 프리미어 리그 개편 전 1부 리그 통산 테이블에서도 7위를 기록했다. 우승을 밥 먹듯 하던 전 세계구 명문은 아니었으나 리그에서 가장 입지가 탄탄한 터줏대감 클럽 중 하나로 90년대에 방만한 운영으로 강등되기 전까지는 꾸준히 중상위권 정도의 성적은 냈었던 팀이다.


6.3. 프리미어 리그 이후, 탁신의 인수[편집]


1992-93 시즌부터 1부 리그가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로 새롭게 개편되면서 맨유가 프리미어 리그 최다 우승을 거두며 세계적인 강호이자 인기 팀이 될 때, 맨시티는 쇠락을 거듭했다. 그 사이 팀을 방만하게 운영해 온 피터 스웨일스는 1994년에 사임했고, 팀 레전드인 프랜시스 리가 회장으로 부임했다.

그럼에도 팀의 경영은 갈수록 더 악화되어 1995-96 시즌 챔피언십 리그(2부), 더 나아가 1997-98 시즌 리그 1, 즉 3부 리그까지 강등되는 굴욕을 맛봐야 했다. 리그 강호는 아니지만, 이것은 역대 유럽 클럽 국제 대회 우승팀 역사상 처음(UEFA 컵 위너스 컵 우승)으로 3부 리그 강등 기록[26]이란 불명예였다. 그나마 1시즌 만인 1998-99 시즌 도중에 데이비드 번스타인 회장과 조 로일 감독이 각각 취임하여 버뮤다 출신의 무명 공격수 숀 고터의 활약에 힘입어 1999년에 다시 2부 리그로 승격했고[27] 1999-00 시즌에 2부 리그 플레이오프에서 블랙번 로버스를 꺾고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하였으나, 한 시즌 만에 18위로 아쉽게 강등당했다.

그 사이 덴마크 같은 유럽 축구 변방과 제3세계 등지에서 젊은 선수들을 영입해 전력 보강에 주력한 후, 2001-02 시즌에 새로 부임한 케빈 키건의 지휘 하에 리그 1위를 차지해 프리미어 리그로 단숨에 올라왔다. 승격 첫 시즌인 2002-03 시즌에 상대 팀에 따라 기복이 심하고 수비가 약해 54점 실점을 기록했으나, 9위로 마감하여 다크 호스 노릇을 했다. 해당 시즌 우승팀이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매치업에서 1승 1무로 우위를 점하기도 했다. 2003년에는 정든 메인 로드를 떠나 새 구장인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으로 둥지를 틀었다.

구장 이전 후 수비를 보강하기 위해 아스날의 명수문장 데이비드 시먼을 영입하고, 공격수로는 니콜라 아넬카, 풋볼 리그 디비전 1으로 막 강등당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로부터 미드필더 트레버 싱클레어를 사들여 전력 안정을 꾀하고자 했으나, 뜻대로 안 되어 리그 성적은 연이어 2004-05 시즌 빼고 16위, 15위, 14위를 각각 기록했고, 하위 팀으로서 강등을 겨우 모면하는 신세인 팀이었다. 2006-07 시즌에는 리그 컵에서 3부 리그 팀 체스터필드에게 패하고, 리그 내내 홈에서 10골만을 넣고, 리그 후반기인 2007년 1월 1일 에버튼전에서 골 넣고 나선 홈에서 단 한 골도 못 넣는 미친 대활약을 벌이면서[28] 강등을 겨우 모면하고, 이때 감독 스튜어트 피어스는 맨시티의 흑역사가 되어 쫓겨난다.[29]

그러다가 2007년에는 1년 전 쿠데타로 태국에서 쫓겨난 전 타이 총리 탁신 친나왓이 자신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구단을 매입한다. 사실 맨시티 서포터들이나 영국 반응은 무덤덤했다. 탁신은 2004년에 리버풀 FC를 인수하려다 실패했었고 이 와중에 자신이 리버풀 팬이란 언론 홍보를 하는 바람에 맨시티 팬들에게 "리버풀에서 거절하자 꿩 대신 닭이라고 맨시티를 샀다"라며 별로 기뻐하지 않았다. 그래도 돈 좀 들여서 과거 잉글랜드 국대를 지휘한 바 있는 스벤예란 에릭손 감독과 프리미어 리그에서 통할 만한 몇몇 선수들을 영입했다. 일라누마르틴 페트로프가 대표적이다. 그 외의 영입으로는 롤란도 비앙키, 발레리 보지노프, 베드란 촐루카, 지오반니, 젤손 페르난지스, 하비에르 가리도가 있다. 2007-08 시즌 맨시티는 초반 프리미어 리그 3연승을 거두며 선두에 오르기도 했고, 맨유에 홈, 어웨이 모두 승리를 거두는 등[30] 좋은 성적을 내며 리그 2/3 정도 치른 시점까지 챔피언스 리그를 사정권에 두었다. 첼시 원정 0:6 패배, 마지막 경기인 미들즈브러 원정에서 1:8 대패라는 옥에 티도 있었지만 리처드 던마이카 리차즈의 센터백 라인은 맨시티의 호성적에 큰 뒷받침이 되었다. 그리고 이적생인 엘라누와 마르틴 페트로프도 적응기 없이 맹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대부분의 돌풍 팀들이 그렇듯이 맨유 원정 승리 후 리그 12경기에서 3승 2무 7패에 그치며 최종 성적 9위로 리그를 마쳤다. 9위로 리그를 마쳤지만 그해 페어 플레이 팀으로 선정되며 1차 예선부터 UEFA 컵에 출전할 수 있는 진출권을 따내는 성과를 올렸다. 영국 언론 포포투에서는 중위권 성적인 9위도 잘한 것이라고 평을 내렸다.

하지만 탁신은 하위 팀을 중위권 성적까지 올려주고 5년 만에 UEFA 컵에 진출시킨 감독을 경질하고[31][32], 호나우지뉴를 영입하겠다고 떠들면서 정작 팀의 주전 수비수 리처드 던의 주급을 올려주지 못해 잃을 뻔할정도로 한심하고 답이 없는 운용을 거듭하다가 태국에 있던 그의 자금이 법으로 막혀버리자 구단을 냅다 알 파힘을 통해 만수르에게 팔아 버렸다. 탁신은 덕분에 2배 이상 이득을 보았고 탁신의 후광을 입고 맨시티에 입단했던 태국 선수 3명은 2008년 10월에 전원 방출되었다.

이 당시의 맨체스터 시티에 대해 한국에서는 쑨지하이가 활약한 것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쑨지하이는 팀이 2부 소속이었던 2001-02 시즌 겨울 이적시장에 이적했고, 다음 시즌 팀이 1부로 승격한 뒤 탁신이 구단주로 취임했던 2007-08 시즌 이전까지 계속 주전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탁신이 구단주가 된 이후 선수 보강이 이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잃어 결국 2008년 셰필드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또한 프리미어 리그 역사상 최고의 악동 중 한 명인 조이 바튼이 여러 가지 사건 사고를 일으키면서 한국 언론에서 종종 이름이 언급되기도 했고,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한 마르크비비앙 푀의 소속 팀으로 알려져 있었다.[33]페테르 슈마이켈데이비드 시먼 등 특급 수문장들도 이곳에서 선수 말년을 보냈다.


6.4. 만수르의 인수, 현재[편집]


만수르의 인수 이후 맨시티의 역사는 개별 문서를 참조 바람.



7. 맨체스터 시티 엠블럼[편집]


파일:external/content.mcfc.co.uk/LogoNew.jpg
맨체스터 시티 FC의 엠블럼 변천사

파일:맨체스터 시 문장.svg
맨체스터 시의회의 문장
방패를 포함해서 역대 엠블럼에 공통적으로 (또는 몇 군데에서만) 들어가는 상징들은 모두 본래 맨체스터 시의 상징들에서 따온 것이다. 각각을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방패는 맨체스터라는 도시의 발생 계기가 고대 로마 시절 요새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도시가 지형적으로 방어 능력이 뛰어났던 것을 의미한다.

방패 안에서 윗부분에 있는 것은 배(船)로 맨체스터가 교역 도시임을 상징하며 배 아래에 물결치는 것은 맨체스터에 있는 운하를 의미한다. 지역 라이벌 클럽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로고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물 위에 떠다니는 배를 찾을 수 있다.

그 아래의 세 개의 직선은 맨체스터의 세 개의 강을 뜻하는 것으로 각각 어웰(Irwell), 어크(Irk), 메들록(Medlock) 강이라고 한다.

그리고 장미는 맨체스터가 지금은 분리되어 있지만 본래 랭커셔 주의 일부였기 때문에 랭커셔 주와 랭커스터 왕조의 상징인 장미가 들어간 것이다.



7.1. 검독수리[편집]



파일:맨체스터 시티 FC 로고(1997~2016).svg

1997년~2016년까지 쓰인 엠블럼

1997 City unveil a new club badge. This new design features the Latin motto “Superbia in proelio” meaning ‘Pride in battle’.

1997년 시티가 새로운 클럽 뱃지를 발표한다. 이 새로운 디자인은 '전장에서의 자긍심' (Pride in battle)이라는 뜻의 라틴어 모토 “Superbia in proelio”가 특징이다.

- 공식 웹 사이트의 클럽 히스토리


1997년부터 2016년까지 쓰인 엠블럼이다.

중앙의 독수리는 검독수리(Golden Eagle)이며 아래에 적혀 있는 문구는 Pride in Battle(전장에서의 자긍심)을 뜻하는 라틴어 표어인 Superbia in proelio이다. 엠블럼에는 필기체로 적혀 있기 때문에 o가 a와 헷갈려 proelio, proelia, praelio, praelia 등 논쟁이 있었지만 분명히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proelio가 맞다.

독수리 위에 있는 세 개의 별은 세리에 A유벤투스 FC인테르처럼 리그 우승 횟수 같은 걸 상징하는 게 아니라 맨시티 전체 우승 횟수를 상징한다.[34]

사실 이 엠블럼의 문양은 화려해 보이지만 이것이 만들어진 역사는 참혹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엠블럼이 만들어진 해가 1997년인데 맨시티는 해당 시즌인 1997-98 시즌 챔피언십 18위를 차지하며, 팀 역사상 최초로 3부 리그로 강등당하기 때문이다. 강등당하기 바로 직전인 당시 1997-98 시즌엔 2부 리그 14위를 차지하며 불안해하고 있었다. 이렇게 팀 성적이 떨어지는 와중에, 구단은 뜬금없이 100년간 쓰던 역사적인 엠블럼을 버리고, 단순히 멋있어 보인다고 검독수리로 엠블럼을 교체했다. 당시 팬들은 강하게 반발했고 주변 여론은 이 사실을 비꼬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만수르 부임부터 엠블럼에 대한 얘기가 오가다가 교체 20년 뒤인 2016년에 전통의 엠블럼으로 회귀하게 된다.

구단 현지 직원의 설명에 의하면 독수리는 맨체스터 인근의 땅을 처음 발견했던 고대 로마를 상징한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35]



7.2. 새 엠블럼 (2016~)[편집]


파일:external/4.bp.blogspot.com/Man-City-New-Crest%2B%25281%2529.jpg
새 엠블럼 발표
2015-16 시즌, 예전 엠블럼으로 회귀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다가 영국 특허청의 유출로 인해 이것이 사실로 드러났다. 클럽의 공식적인 소개에 따르면, 현지 팬들과 30일 동안 엠블럼의 교체 여부와 엠블럼의 문양에 대해 협의했는데 이전의 독수리 엠블럼을 유지하자고 하는 입장은 약 1/3(34%)밖에 되지 않았으며 엠블럼을 교체하기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차기 엠블럼에 들어갈, 맨시티와 맨체스터를 대표할 수 있는 색상과 상징물들을 투표했는데 색상은 하늘색(94%)과 흰색(68%)이 채택되었고, 상징물은 이전의 엠블럼에도 있었던 맨체스터의 배(85%), 세 개의 강(67%), 그리고 예전에 있었다가 사라진 붉은 장미(60%)가 채택되어 새 엠블럼에 조합되었다.

그 외 기타 팬들의 피드백과 기존 엠블럼 등을 포함하여 새 엠블럼을 만들었는데, 팀 이름의 배치를 위아래로 각각 Manchester, City로 나눈 것은 독수리 엠블럼에 있던 이니셜 (M.C.F.C)보다 더욱 맨시티를 대표하는 이름을 넣기 위해, 창단 연도인 1894를 넣은 것[36][37]은 맨시티의 긴 역사와 불변성을 강조하기 위해, 방패를 넣되 그 모양이 예전과는 다르게 바깥 원을 넘도록 만든 것은 방패 안의 문양을 돋보이게 하며 현대적인 감각을 더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8. 홈 구장[편집]



8.1. 에티하드 스타디움[편집]





9. 유니폼[편집]





10. 맨체스터 시티 레전드[편집]


파일:CityDressingRoomofDreams.jpg



11. 라이벌[편집]



11.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편집]




11.2. 리버풀[편집]


2010년대 중반부터는 리버풀과 많이 엮이고 있는데 이 두 팀은 2013-14 시즌 PL 우승을 위해 치열하게 다툰 팀들이다. 실제로 만날 때 마다 엄청난 명승부들을 연출 중인데, 이 두 팀이 우승 경쟁을 했던 2013-14 시즌에도 두 번의 명승부를 연출했고, 리버풀이 우승 경쟁에서 멀어져 있던 2014-15 시즌과 2015-16 시즌에도 맨시티만 만났다 하면 엄청난 경기력을 발휘하며 맨시티의 발목을 잡곤 했다. 2015-16 시즌에는 리그 컵 결승전에서 만나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치열한 혈투를 펼친 끝에 맨시티가 우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2017-18 시즌에는 리그 순위는 맨시티가 1위, 리버풀이 4위였다. 하지만 파죽지세의 기세였던 맨시티의 무패 우승을 저지한 팀이 리버풀이었고, 두 팀은 챔스 8강에서도 만나는데 참사나 다름없는 수준으로 맨시티가 리버풀에게 2패를 기록하며 챔스의 꿈도 좌절시켜버렸다. 2018-19 시즌엔 스톤스의 역대급 클리어링으로 맞대결 승리를 가져가며 무려 두 번째 맞대결 직전 승점 7점 차를 뒤집었고, 결국 맨시티가 끝끝내 1위를 지켜내며 98점 우승, 리버풀이 97점 준우승을 달성하는 역대급 우승 레이스가 펼쳐졌다. 2019-20 시즌에는 리버풀이 30년 만의 우승 숙원을 푸는 와중에 102득점, 득실차 67이라는 압도적인 공격력을 자랑한 맨시티였지만 수비진의 줄부상과, 폼 저하로 승점을 제때 확보하지 못하면서 준우승에 그치게 됐다. 하지만 맨시티 또한 리버풀의 승점 100점 우승 경신을 저지하며 자존심을 지켰다. 그리고 2020-21 시즌에는 리버풀이 전례 없는 센터백 줄부상 사태로 무너지면서 맨시티가 독주하며 편하게 우승을 차지했고 18년 동안 이겨내지 못했던 안필드에서 4대1로 승리를 챙기며 안필스 무승 징크스를 깨버렸다. 또한 2021-22 시즌에도 마지막까지 치열한 우승 경쟁을 하다 맨시티가 승점 93점 우승, 리버풀이 92점 준우승으로 또다시 1점 차로 우승이 갈렸다. 이렇게 프리미어 리그에서 양강 체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22-23 시즌 리그 개막 전 펼쳐진 FA 커뮤니티 실드에서 리버풀이 맨시티를 상대로 16년만에 우승을 들어 올렸고, 최근 부진한 리버풀이 홈에서 맨시티를 잡아내고, 카라바오 컵 16강 에서 맨시티가 승리를 거두며 두 팀의 상반된 분위기와 다르게 치열하게 맞붙고 있다.

11.3. 해외클럽[편집]





12. 맨체스터 시티의 위상과 인기[편집]


영국현지와 국내에선 아직은 맨유, 리버풀, 아스날, 첼시보다는 인기가 적은 편이지만 그러나 맨시티가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두고 국내에서 팬덤이 많이 증가하고 있다.

12.1. 맨시티를 응원하는 해외 유명 인물들[편집]


  • 노아 신더가드 - 미국 출신의 야구선수. LA 다저스 소속.
  • 노엘 갤러거, 리암 갤러거 - 영국 출신의 가수. 오아시스의 멤버.[38][39]
  • 리키 해튼 - 영국 출신의 복싱선수.[40]
  • 마르코 피에르 화이트 - 영국 출신의 요리사.
  • 마이클 오리어리 - 아일랜드 출신의 기업인. 라이언에어의 CEO.
  • 마크 E. 스미스 - 영국 출신의 가수. 더 폴의 멤버.
  • 성룡 - 홍콩 출신의 배우.
  • 알란 릭맨 - 영국 출신의 배우.
  • 오카다 카즈치카 - 일본 출신의 프로레슬러.
  • 이안 커티스 - 영국 출신의 가수. 조이 디비전의 멤버.[41]
  • 조니 마 - 영국 출신의 기타리스트. 더 스미스의 멤버.
  • 티머시 돌턴 - 영국 출신의 배우.


12.2. 맨시티를 응원하는 국내 유명 인물들[편집]


  • 강은비 - 배우. 인터넷 방송인.
  • 곽튜브 - 유튜버.
  • 권창훈 - 김천 상무 FC 소속 축구선수.[42]
  • 김된모 - 인터넷 방송인.[43]
  • 김형책 - 캐스터.
  • 뚜밥 - 인터넷 방송인.
  • 랍온어비트 - 래퍼
  • 류민석 - T1 소속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 마빡 - 인터넷 방송인.
  • 박삐삐
  • 박준효 - 피파 온라인 4 前 프로게이머.[44]
  • 선미 - 가수.
  • 송소희 - 국악인.
  • 울산큰고래 박성주 - 인터넷 방송인.
  • 원창연 - 피파 온라인 4 프로게이머.
  • 원필 - DAY6 소속 가수. [45][46]
  • 이찬원 - 가수.
  • 저드 - 래퍼.
  • 정유미 - 배우.
  • 정지우 - 뮤지컬 배우.
  • JOOSUC - 래퍼.

13. 맨체스터 시티 응원가[편집]



13.1. Blue Moon[편집]



Blue moon,
You saw me standing alone
Without a dream in my heart
Without a love of my own
Blue moon,
You knew just what I was there for
You heard me saying a prayer for
Someone I really could care for
And then there suddenly appeared before me
The only one my arms will ever hold
I heard somebody whisper 'Please adore me'
And when I looked, the moon had turned to gold
Blue moon,
Now I'm no longer alone
Without a dream in my heart
Without a love of my own
블루 문,
넌 내가 혼자 서 있는 것을 봤어
내 가슴 속의 꿈 없이
내 자신에 대한 사랑 없이
블루 문,
넌 내가 무엇을 위해 여기 있는지 알았지
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들었어
그러자 갑자기 내가 평생 안을 단 한 명이 내 앞에 나타났어
나는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 주세요' 라고 속삭이는 것을 들었어
그리고 내가 보았을 때, 달은 금으로 변했어
블루 문,
난 더 이상 혼자가 아니야
내 가슴 속의 꿈 없이
내 자신에 대한 사랑 없이


13.2. Hey Jude[편집]



2015-16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 VS 레알 마드리드 CF

맨시티는 비틀즈의 유명곡인 Hey Jude 또한 응원가로 사용한다. 맨체스터의 팀이 리버풀 출신 밴드의 곡을 응원가로 쓰는 이유는 바로 맨시티가 두 번째로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프리미어 리그의 전신)에서 우승했던 1968년 당시 이 노래가 나왔기 때문이다.[47]


13.3. Wonderwall[편집]



2013-14 프리미어 리그 우승 후

맨시티는 오아시스Wonderwall도 응원가로 사용한다. 그 이유가 갤러거 형제가 굉장한 맨체스터 시티의 팬이기 때문. 2018-19 시즌 우승 후에도 라커룸에서 이 노래와 함께 춤을 췄었던 적도 있었다.[48]


14. 맨체스터 시티 공식 스폰서[편집]



14.1. 글로벌 파트너 (Global Partners)[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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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하드 항공
EA 스포츠
에티살랏
아부다비 관광문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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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르
닛산
SAP
넥센타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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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ys
Wix
Betsafe
Q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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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ga
DSQARED2
칠리즈
(주)신창중공업: 프리미어 리그 2017년 11월 6일 아스날전에서 경기 직전 국민의례 행사 중 한 관객이 '신창중공업'이라는 한글이 적힌 점퍼를 입은 장면이 목격되었다. 이게 어찌나 화제가 되었는지 SNS에서 이 장면을 담은 사진이 대유행했고, 신창중공업 홈페이지에 방문객들이 몰려서 접속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결국 신창중공업 측에서 '홈페이지가 마비가 될 정도로 관심을 가져 줘서 감사를 드린다'라는 글을 올리기까지 했다. 회사 측의 설명에 따르면 해당 관객은 신창중공업 측과 협력하는 영국 기업의 직원이며 2년 전 회사를 방문했을 때 점퍼를 선물한 것이라고.


14.2. 지역 파트너 (Regional Partners)[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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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티은행
LG전자
Vitality
Wolf Bl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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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네켄
PZ Cussons
Whaley
PAK Light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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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lthpoint
Soccerworld
Jiwasraya
Astra Otop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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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ate
Digicel
DJI 홀딩스
MTN 카메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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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vaTrade_MCFC_Joint_Logo.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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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B Bank
First Gulf Bank
AvaTrade
Barclays


15. 맨체스터 시티 e스포츠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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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PORTS
맨체스터 시티 E스포츠 스쿼드


[ 펼치기 · 접기 ]
맨체스터 시티 E스포츠 스쿼드
국적
이름
ID
생년월일
계약년도
기종
기타
Manchester City Esports

숀 스프링겟
Shellzz

2018
PS4


리안 페소아
Ryan
1998년 2월 13일 (26)
2019
XB1

Manchester City Esports China

장샤오지에
jichang

2021
FO4


야오야쉰
tp

2019
FO4


판저우화
Marspy

2021
FO4


후앙린양
Daybreak

2021
FO4



현지에서 FIFA 시리즈 팀을 운영하고 중국에 FIFA 온라인 시리즈 팀을 운영하고 있다. 중국은 2018년 창단, 한국 팀은 2019년에 선발 대회를 크게 열고 한승엽을 감독으로 선임하여 창단했으나 1년만 운영하고 해체했다.


16. 이야깃거리[편집]



16.1. 만수르가 맨시티를 택한 이유[편집]


사실 '만수르는 왜 굳이 맨시티를 구매했는가?'라는 의문은 맨시티가 만수르에게 인수되면서 돈방석에 앉지 못한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그리고 에버튼 FC 등의 팀의 팬들, 그리고 맨시티 팬들 사이에서도 여러 번 제기된 의문이다. 겉으로 보면 사실 그당시의 맨시티는 선덜랜드나 풀럼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이고, 특히 대부분의 팬들이 빅 클럽의 팬이고 중위권 이하의 팀과 리그에 관해선 관심이 없는 한국에서는 더더욱 그렇게 보이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만수르가 맨시티를 선택한 이유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 두터운 팬층 - 맨시티는 성적에 비해서도 팬이 특히 많은 편인 팀이었다. 3부 리그에서도 평균 관중이 3만 명에 육박했다는 건 맨시티 팬들이 구호로도 쓸 만큼 자랑스러워 하는 사실이고, 탁신 인수 전에도 맨시티 홈구장의 평균 관중은 사실 우승 이후의 평균 관중과도 큰 차이가 없었다. 이 조건은 사실 기본 조건으로 몇 년 전 만수르가 아스날 FC를 사려다 실패한 이후로 만수르와 칼둔은 빅 클럽보다는 잠재력을 지닌 팬층이 두터운 클럽으로 선회하게 되었다는 기정사실 수준의 설이 있다. 당시와 현재 거론되던 클럽인 뉴캐슬, 에버턴, 토트넘 등(이 셋이 가장 가까웠던 팀이다)이 모두 만족하는 조건이다. 아스톤 빌라 FC도 팬층이 두터운 편이나 당시 이미 러너에게 인수된 이후였다.

  • 새로 증축된 크고 확장 가능한 홈 구장 - 당시 맨시티는 2002년에 맨체스터가 영연방 경기 대회를 개최하며 지은 4만 5천 석 규모의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을 홈 구장으로 가지고 있었고, 낡은 구장을 가진 에버튼, 확장이나 이전이 어려워 지금도 허덕이고 있는 토트넘에 비해 맨시티가 확실한 강점으로 쓸 수 있었던 조건이다.[49] 구단주가 올드 트래포드를 뺨치는 8만 석 이상 경기장으로 확장될 예정이란 말도 있지만, 우선은 55,097석 규모로 증축했다. 올드 트래포드, 에미레이트 스타디움, 토트넘 핫스퍼 스타디움, 런던 스타디움 다음으로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5번째 규모 경기장이다.

  • 맨체스터의 규모, 발전 가능성 - 맨체스터는 잉글랜드 제2/3의 도시/광역권으로 버밍엄과 경쟁하는 관계이고 기반시설 또한 좋다. 또한, 경기장 근처에 개발할 만한 땅이 많은 조건이었고 맨체스터 동북쪽에 개발로 자본이 들어온다는 말 역시 많았다. 뉴캐슬과 비교하면 확실한 강점이고, 쇠퇴한 지 오래된 도시인 리버풀에 연고지를 둔 에버튼에 비해서도 강점으로 작용한다. 토트넘은 런던팀이지만 주변 환경이 좋단 평가는 못 받고, 또한 런던에 팀이 워낙 많아 팬층이 갈리기도 쉽다.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존재 - 전 세계에 수많은 팬이 있는 맨유의 존재는 팀 입장에서는 강력한 라이벌이자 우승 경쟁에 있어서 방해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케팅 차원에서 강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라이벌리를 이용한 기삿거리나 관심거리로도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고, 맨유는 리그 내에 적이 가장 많은 팀이기도 하므로 맨시티의 지지층을 더 불러모을 수 있는 조건도 된다. 실제로 맨체스터라는 도시 이름이 맨유의 활약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맨유의 성적이 떨어지자 맨시티로 갈아타겠다는 라이트 팬들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라이벌리로서 맨유의 가치는 맨시티에게 큰 도움이 된다. 물론 이는 만수르가 인수를 검토했던 다른 구단들도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사항이긴 하다.[50]

  • 하늘색의 사용 - 하늘색을 클럽의 주색으로 사용하는 팀은 드물며, 이는 쉽게 인지도를 올릴 수 있는 좋은 조건으로 작용한다. 에버튼의 파란색은 첼시 FC가, 토트넘의 흰색은 레알 마드리드 CF가, 뉴캐슬의 흰색/검은색은 유벤투스 FC가 이미 국제적인 이미지를 구축한 뒤였다. 반면 하늘색은 그나마 인지도가 높은 클럽이 세리에 ASS 라치오, SSC 나폴리 정도뿐이며, 그나마 SSC 나폴리가 구단 레전드 디에고 마라도나의 힘 덕에 국제적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기는 했으나, 세계적으로 하늘색을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었다.

  • 팀명 '시티' - 당시에도 맨시티는 전 세계에서 이름에 시티가 붙은 축구팀 중 가장 유명하고 명성이 높은 팀이었고, 또한 이름에 시티가 들어가는 팀으로서 그나마 가장 역대 성적이 좋은 팀이기도 하다. 버밍엄 시티, 스토크 시티, 헐 시티 같은 다른 팀들은 죄다 하위 리그 팀이거나 늘 강등권에 시달리고 있으며, 역대 우승 성적을 봐도 맨시티보다 떨어진다. 맨시티는 유로파 리그 전신인 위너스컵을 우승한 전적이 있으며, 시티라는 단어가 들어간 팀으로서 유일무이한 유러피언 클럽 대회 우승팀이다.[51] 더불어 리그에서도 2015-16 시즌에 레스터 시티 FC가 우승하기 전까지 시티 이름이 들어간 클럽으로서는 유일한 우승 경력팀이었다. 이러다보니 당시든 지금이든 영국 내에서 관련된 내용에서 시티라 부르면 맨시티를 맨 처음 연상하게 된다. 이 시티라는 이름은 역시 브랜드를 만들기 쉬운 조건이었고, 이 조건상의 유리함은 이후 맨시티가 해외로 확장할 때 뉴욕 시티 FC, 멜버른 시티 FC의 사례에서 드러나게 된다.

  • 전 소유자 - 전 소유자 탁신 친나왓은 위에도 서술되어 있듯 돈에 쫄려 빨리 팀을 팔아치워야 할 상황이었고, 이는 맨시티 매각가격 하락으로 나타났다. 에버튼과 뉴캐슬의 소유자인 켄라이트와 애슐리는 까다로운 사람으로 팬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며, 둘 다 만수르에게 값을 너무 높이 불렀다는 소문이 있었다. 물론 가격이 하락했다해도 탁신은 맨시티를 팔면서 2배가 넘는 이득을 보았다만, 에버튼과 뉴캐슬에 비하면 비교적 구단을 인수하기는 쉬웠을 것이다.

상술된 이유로 인해 만수르는 다른 팀이 아닌 맨시티를 인수한 것으로 보인다.

16.2. 대한민국과의 관계[편집]


대표적인 친한파 구단이다. 국내의 경우 예전에만 해도 지역 라이벌 맨유에게 인지도나 팀 전력에서나 밀리고, 특히나 한국에서는 박지성의 존재로 인해 맨유의 인기가 넘사벽인지라 맨시티는 만수르 인수 이후 우승권으로 발돋움하고도 한국 팬덤이 프리미어 리그 내 다른 빅 클럽에 비해 비교적 얕다고 평가받았다. 그러나 현재는 꾸준한 뉴비 유입으로 팬층이 전에 비해 꽤 두터워진 편이며, 그 이유로 펩 과르디올라 부임 이후 리그 우승이나 우승 경쟁을 놓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점도 있지만, 의외로 프리미어 리그 모든 팀들 가운데서도 매우 왕성한 축에 속하는 구단의 對 한국 마케팅 역시 큰 역할을 했다. 심지어 박지성이 앰배서더로 활동했던 맨유, 손흥민이 주축으로 활동하는 토트넘, 삼성과 스폰서 관계였던 첼시와 비교해도 앞섰으면 앞섰지 결코 밀리지 않는 수준.[52] 직원 중 아예 한국 마케팅 담당자가 따로 있다고 한다.

한국인 선수와는 따로 인연이 없었으나, 2019년 이금민맨체스터 시티 FC 위민에 입단하면서 맨시티 소속 첫 한국인 축구선수가 되었다. 다만 남자 축구 선수는 아직 없다.

한국 축구 커뮤니티에서는 수상할 정도로 한국인 선수가 뛰는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국에 대가나 뚜렷한 이유도 없이 한국에 진심인 클럽으로 통하며, 돈지랄 및 챔스에서의 약세로 인한 나쁜 여론을 상쇄시키는 주요한 요인으로 작옹하고 있다.


  • 2016년부터는 수능 응원 영상이 올라오고 있다. 2016년 첫 출연자는 니콜라스 오타멘디알레시 가르시아. 2017년에는 리로이 자네, 가브리에우 제주스가 출연했고[53] 2018년에는 베르나르두 실바, 카일 워커, 뱅자맹 멘디가 출연했다. 2019년에는 리로이 자네와 함께 그 해 맨시티 위민에 입단한 이금민, 클럽 레전드이자 10월에 내한했던 숀 라이트 필립스가 등장했고, 2020년에는 에므리크 라포르트가 응원 영상을 찍었다.

  • 팬이나 언론이나 잘 모르는 사실인데, 1976년에 방한한 적이 있다. 6월에 입국해 동대문운동장, 구덕운동장, 대구시민운동장에서 세 경기를 치르고 갔는데,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1진 화랑과 두 경기, 2진 충무와 한 경기를 가졌고 2승 1패의 성적을 거두고 돌아갔다. 동대문에서 열린 충무와의 경기는 행정 절차상 문제로 급하게 치러지다 보니 홍보가 미진해서 불과 4천여 명의 관중들만이 입장했고, 경기를 관전한 주한 영국대사가 관중이 너무 적다며 디스하기도 했다.


  • 2017년 10월, 추석에는 맨체스터 시티 한국 공식 홈페이지에서 맨체스터 시티에 관한 퀴즈 이벤트를 열었다. 당첨 상품은 퀴즈별로 각각 2017-18 시즌 홈, 어웨이, 서드 유니폼.

  • 2017년 9월 15일 리버풀전, 맨체스터 시티에서 공식적으로 한국의 팬들을 위해 서울의 MUV홀에서 '서울: Our Kind of City' 이벤트를 열었다. 진행은 "드러가쒀요! 쎄르히오 아구에로오!"로 유명한 김동완 해설위원이 맡았으며, 맨시티 팬으로 유명한 힙합 뮤지션 주석이 축하 공연을 겸해 참가한 가운데 500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서 대형 스크린으로 리버풀전을 관람하였다. 이날 시티는 5:0으로 리버풀을 격파하면서 각종 이벤트와 더불어 한국의 시티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 피파온라인4의 2주년 기념 영상을 찍기도 했다.


  • 2020년 9월 17일, ‘Road Trip Challange’의 일환으로 한국의 지명들을 읽는 영상이 공개되었다. 해당 영상

  • 2021년 4월 16일에는 유스팀 선수인 카를루스 보르즈스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글을 올리기도 했다. #[54]

  • 2021년 어린이날에는 선수들의 어린 시절 사진을 공개하며 어린이날을 축하하기도 했다.#

  • 2021년 11월 10일 맨시티 공식 한국 SNS에서 골키퍼 잭 스테픈이 올해 서울의 첫눈을 축하하는 영상이 올라왔다.

  • 2021년 11월 17일에 디아스와 로드리가 찍은 수능 응원 영상이 공개되었다.

  • 2021년 크리스마스 기념 축하 영상이 올라왔다.

  • 2022년 설날에 "음력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내용의 영상이 올라왔다.

  •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극적으로 16강 진출에 성공하자, 한국인 선수가 한 명도 없음에도 대한민국과 포르투갈의 16강 진출을 축하한다는 트윗을 올렸다.


16.3. 기타[편집]


  • 만수르에게 인수되기 이전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명성에 비해 다소 묻혀있던 감도 있지만, 영국 현지에서는 예전부터 팬층이 두꺼운 팀이다. 특히 1934년 스토크 시티 FC와의 FA컵 경기에서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홈 관중 수 로는 최고 기록인 84,569명이라는 수치를 달성하기도 했으며, 3부 리그로 떨어졌을 때 리그의 평균 관중 수가 8,000여 명일 때 약 30,000명 정도의 관중 수를 기록한 적도 있는데, 이는 맨시티 팬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점이다.

  • 오아시스의 맨시티 사랑은 축구계에서도 유명한 편. 노엘 갤러거는 만수르 인수 이전에는 언젠가 벌어둔 돈으로 자신이 구단주가 되겠다고 호언장담을 했고, 현재는 구단 사장이랑 같이 식사하는 사이이다. 2019년 내한 당시 맨시티의 레전드 수비수 뱅상 콤파니가 팀을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오아시스의 히트곡인 Wonderwall을 콤파니에게 헌정한다며 스크린에 콤파니 사진을 띄우고 노래를 불렀다. 보컬이자 프런트맨인 그의 동생 리암 갤러거 역시 2014년 비디아이로 지산밸리 록페스티벌에 참여했을 당시 맨체스터 시티 저지를 입고 공연했다. 또 세르히오 아구에로가 팀을 떠날 때 두 사람 모두 작별영상에 등장했다. 참고로 한국에 대한 애정이 크기로 알려진 노엘은 방한했을 때 인터뷰에서 에릭 남에게 "한국에서 많이 듣게 될 질문을 예습하겠다."라면서 인터뷰에서 박지성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 사람을 아느냐"라고 묻자 "저런 사람 모른다"라고 대답. 에릭 남이 웃으며 "정말 모르냐"라고 되풀이해서 물었지만, 갤러거는 "몰라 몰라"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고,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냈다. 맨시티가 트레블을 달성하면 재결합한다는 소문이 있다.

  • 팀에 이상할 정도로 대머리 또는 빡빡이 선수가 많다. 탈모에 걸린 레전드가 많은 라이벌 팀과 달리 이쪽은 아예 빡빡이가 팀 컬러냐는 소릴 들을 정도로 빡빡이가 많은 편. 리버풀의 예전 애칭인 빡빡풀의 뒤를 잇는 수준이다. 당장 감독인 펩 과르디올라, 2018-19 시즌 주장이었던 뱅상 콤파니, 2019-20 시즌 주장인 다비드 실바, 골키퍼인 윌리 카바예로부터 시작해서 야야 투레, 라힘 스털링, 가브리에우 제주스, 엘리아킴 망갈라, 페르난지뉴, 파블로 사발레타, 페르난두 헤제스, 파비안 델프, 바카리 사냐, 애런 무이 등등 최소 맨시티에 있는 동안 한 번 이상 빡빡이였다. 오죽하면 머리를 밀어버린 선수를 근본 컷이라고 추켜세울 정도로 빡빡이가 많은데, 감독으로 펩 과르디올라가 부임한 이후에 이런 경향이 더욱 짙어졌으며 특히 2017-18 시즌 풍성한 머리카락을 지닌 다비드 실바가 머리를 밀어버린 이후에는 펩이 빡빡이를 강요한게 아니냐는 루머가 돌았을 정도였다. 큰 관계는 없겠지만, 실제로 맨시티의 장발이나 금발 선수는 상당히 드문 편이다.[55] 19-20 시즌에는 에데르송까지 안 그래도 길지는 않던 머리를 밀었다.
  • 2017-18 시즌 프리미어 리그에서 맨시티와 웨스트햄의 경기가 끝나고 SBS에서 하이라이트 영상을 기획하며 역대급 선곡을 했다. 맨시티가 이때 EPL에서 무패 행진을 하고 있을 당시였는데 웨스트햄의 경기에서 전반 44분에 빡빡이 선수인 안젤로 오그본나가 골을 넣고 경기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후반 11분만에 니콜라스 오타멘디가 동점골을 넣고, 후반 37분 쯤에서 빡빡이 다비드 실바가 역전골을 넣어 맨시티가 승리한다. 결과적으로 맨시티의 빡빡이 선수진들의 하드캐리로 인하여 무패 행진을 계속하게 된 스토리다.
  • 2019-20 시즌에도 이런 기믹은 이어졌는데, 머리가 빠지기 시작한 카일 워커가 머리를 밀고 나오더니 맹활약을 하기 시작했고, 새로 합류한 신성 로드리를 본 과르디올라는 “그는 귀고리도 하지 않고 문신 하나 없다. 헤어스타일 또한 짧고 단정하다. 축구를 위한 바람직한 자세가 되어 있다”라고 극찬했다.

  • 펩 과르디올라 감독으로 들어온 이후 대부분의 영입한 선수들이 첫시즌은 부진, 그 다음 시즌은 활약하는 패턴을 보이고 있다. 가브리에우 제주스리로이 자네, 베르나르두 실바가 영입 첫 시즌에는 경기에서 이렇다할 활약을 보이지 않다가 두 번째 시즌에는 주전 자리를 확보하거나, 많은 공격포인트를 올리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다. 이 때문인지 2018-19 시즌 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리야드 마레즈가 팬들의 기대를 받고 있는 상황인데 마레즈 역시 2번째 시즌부터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다. 물론 에므리크 라포르트처럼 첫 시즌부터 활약을 보이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뱅자맹 멘디와 같이 꾸준히 부진한 경우도 존재한다.

  • 공식적인 라이벌은 맨유 하나지만, 2010년대 후반부터 시티즌들이 느끼는 맨시티의 최대 라이벌은 리버풀 FC이다. 2013-14 시즌 리그 우승 경쟁을 통해 처음 대립 구도가 생겼고 2015-16 시즌엔 리그컵에서도 라이벌리가 생기긴 했지만, 이 경쟁 구도에 본격적으로 불이 붙기 시작한 것은 리버풀의 전력이 상승해 리그 우승을 놓고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한 2016-17시즌부터다.[56] 물론 맨유에 대한 라이벌리가 크게 약해진 건 아니라서 후벵 디아스 영입 후 디아스에 챈트에서 깨알같이 맨유를 디스하는 가사를 넣기도 했다.

  • 놀랍게도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의 승리가 아직 없다. 공식전에서 5전 전패를 기록 중인 데다가 5경기 동안 단 하나의 득점도 기록하지 못하였다. 이때문에 펩 과르디올라는 토트넘만 상대하면 뇌가 리셋된다고 조롱받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맨시티는 당연히 토트넘보다 강팀이고, 실제 경기에서도 점유율을 주도하는데 번번이 토트넘의 역습에 털려 실점하고 경기를 내주기 때문이다. 단순히 한 경기만 그러면 몰라도 이런 패턴이 매 시즌마다 반복되니 시티 팬들 입장에서는 뒷목을 잡을 지경.

  • 2010년대 이후부터 급격하게 올라온 위상과 대폭적인 투자에 비해 유럽 대항전에선 매번 죽을 쑤고 있는 팀 중 하나이다. 특히 2011-12 시즌부터 꾸준히 진출하고 있는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선 언제나 우승 후보로 불리고 있지만 2020-21 시즌 준우승이 최고 성적일 정도로 매 시즌 체면을 구기고 있다. 본래 이러한 부진에는 챔피언스 리그 경험 부족, 그리고 16강에서 유난히 FC 바르셀로나를 자주 만나는 대진 불운이 한 몫 했는데, 펩 과르디올라 부임 이후로는 잘 가다가 토너먼트에서 소위 '명장병'이라고 불리는 이상한 전술을 썼다가 경기를 그르치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과르디올라는 현재까지 맨시티를 총 6시즌 동안 지휘하고 있는데 16강-8강-8강-8강-준우승-4강에 머물렀으며, 맨시티를 꺾은 상대들도 순서대로 모나코, 리버풀, 토트넘, 리옹, 첼시, 레알 마드리드로, 리버풀이나 레알 정도를 제외하면 다들 맨시티보다는 한 수 아래로 평가받았다.[57] 여러모로 맨시티와 시티즌들에게는 마음의 짐이 되고 있는 상황. 특히나 2010년대 구단 레전드인 뱅상 콩파니, 다비드 실바, 세르히오 아궤로, 페르난지뉴가 끝내 빅 이어를 들지 못하고 팀을 떠났기에[58] 이는 더욱 시티즌들의 아픔으로 남아 있다.



17. 맨체스터 시티 FC 논란 및 사건 사고[편집]





18. 둘러보기[편집]




[1] 맨시티에 멤버십 가입을 한 전 세계의 공식적인 팬들을 일컬을 때는 시티(City)라는 브랜드를 살리고 싶어서인지 일반적으로 쓰는 스펠링인 Citizen이 아니라 독특하게 Cityzen이라고 쓴다. 다만 이건 구단에서 팬들에 대해 쓰는 브랜드 이름이다.[2] 현지 팬덤이 맨시티를 별칭으로 부를 때는 보통 시티즌스 같은 별칭들을 쓰지 않으며, 단순히 블루스라고 지칭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한번 시티 팬이면 죽을 때까지 시티 팬(One a Blue always a Blue), RIP Blue, Come on you Blues 이런 식으로 쓴다. 다만 첼시 FC와 같이 언급할 때는 시티를 스카이 블루스 혹은 단순히 시티라고 부르며 구별한다. 정확히는 시티 팬덤 사이에서 통용되는 별칭이라 첼시와 구분할 필요가 없는 것에 가깝다(시티 팬덤이 남의 팀인 첼시를 애칭으로 부를 이유가 없기 때문)[3] 1880년 (세인트 마크스 웨스트 고튼)으로 창단되어 1887년 (아드윅 AFC)등 재편성되는 경우가 많았다. 명확하게 문서화된게 없어 구단의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지만 최종적으로 1894년에 맨체스터 시티로 구단명을 변경하고 공식적으로 등록한 이때를 맨시티의 창단일로 보고있다.[4] 2016년 새로운 엠블럼에는 창단년도를 1894년으로 인정했다.[5] #[6] 펩 과르디올라위르겐 클롭의 라이벌리로서 우승 경쟁을 하면서 리버풀과의 라이벌리가 꽤 격렬해졌다. 과르디올라 감독 역시 CBC 스포트와의 인터뷰에서 리버풀을 치질로 빗대어 표현해 자신들의 최대 라이벌이 리버풀임을 인정했다.[7] 3주장 카일 워커, 4주장 후벵 디아스, 5주장 로드리[8] 2003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준결승전 도중 엄청난 더위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한 카메룬의 미드필더 마르크비비앙 푀의 등번호 23번이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어 있다. 본래 당시 푀는 올랭피크 리옹 소속으로 맨체스터 시티에 임대되어 있었지만 임대기간 동안 좋은 활약을 펼쳐서 완전이적이 유력한 상황이었다.[9] 잉글랜드 2부 리그 공동 최다 우승. 다른 팀은 레스터 시티 FC.[10] 한화 약 1,590억 원[11] 한화 약 780억 원[12] 한화 약 122억 원[13] 1934년 5월 3일 vs 스토크 시티 FC[14]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단일 경기 최다 관중 동원 기록.[15] 에티하드 스타디움 이전 이전 메인 로드에서 세워진 기록. 메인 로드의 수용인원은 약 35,000석이지만 입석이 허용되던 시절에 기록되었다.[16] 1위-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위-리버풀 FC, 3위-아스날 FC[17] 1위-리버풀 FC, 2위-아스날 FC, 3위-에버튼 FC, 4위-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5위-아스톤 빌라 FC, 7위-첼시 FC, 8위-토트넘 홋스퍼 FC[18] 1위-리버풀 FC, 2위-아스날 FC, 3위-에버튼 FC, 4위-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5위-아스톤 빌라 FC, 7위-첼시 FC, 8위-토트넘 홋스퍼 FC, 9위-뉴캐슬 유나이티드 FC[19] 잉글랜드 국내 4개 대회 전관왕. 프리미어 리그, FA컵, EFL컵, FA 커뮤니티 실드 동시 석권.[20] 48강, 이 당시에는 UEFA 유로파 리그가 아니라 UEFA컵 시절이어서 조별 예선의 개념이 없었다.[21] 전 시즌이었던 2007~08 시즌에 '유럽 최고의 페어플레이 팀'으로 선정되어 출전했다.[22]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예선 3위 팀 중 상위권을 차지함에 따라 16강부터 참가하게 됨.[23] 아닌 게 아니라 이전에 있던 다른 교회 크리켓 팀에서 크리켓 배트로 상대방을 두들겨 패고 패싸움이 벌어졌었고, 럭비팀에서도 공은 내팽개치고 사람을 들이받아 싸우기 일쑤였다고...[24] 2016년 9월호 베스트 일레븐 지 출처.[25] 맨시티 역대 키퍼 중 베르트 트라우트만 다음 두 번째로 뛰어났다고 꼽히는 레전드 키퍼이다.[26] 2004-05 시즌에 챔피언스 리그 우승 경력을 가진 노팅엄 포레스트가 리그 1로 강등하기 전까지 유일한 기록이었다. 2019년에는 UEFA컵 우승경력의 입스위치 타운이 3부 리그로 떨어지며 또 하나의 사례가 추가되었다.[27] 과정이 굉장히 드라마틱했다. 3부 리그 3위로 승격 플레이오프를 치렀는데, 맨시티는 6위였던 위건 애슬레틱을 제압하고 결승에서 프레스턴 노스 엔드를 제압한 질링엄 FC와 상대해야 했다. 당시 질링엄 감독은 토니 퓰리스. 맨시티는 질링엄을 상대로 후반 36분과 후반 41분에 실점하며 승격은 물건너가는 듯했는데, 추가 시간에만 2골을 득점하며 승부를 극적으로 연장으로 끌고 갔고, 결국 승부차기에서 3-1 승리를 거두며 2부 리그 승격에 성공했다.[28] 마지막 홈경기 2경기에서 모두 PK를 얻고도 득점에 실패했다. 홈 최종전이 라이벌 맨유전이었는데 여기서 0-1로 패하면서 맨유는 리그 우승 초읽기에 들어갔고 다음날 첼시의 무승부로 우승에 성공했다.[29] 참고로 이 당시 피어스는 잉글랜드 청소년 대표팀 감독을 겸임하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소속 팀에 집중하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이 더욱 거셌다. 물론 맨시티에서 경질된 이후에도 청소년 대표팀 자리는 유지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몇년간 키워온 선수들을 이끌고 2012 런던 올림픽에 나섰지만 8강에서 한국에게 져 탈락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었다.[30] 2008년 2월 10일에 올드 트래포드에서 뮌헨 참사 50주년을 추모하는 기념식이 있었는데 맨시티가 맨유를 2:1로 꺾으며 맨유 팬들을 더더욱 슬픔에 잠기게 만들었다.[31] 이때 맨시티 팬들은 에릭손을 지킨다며 Save Our Sven, 줄여서 SOS 캠페인을 벌이지만 실패한다.[32] 에릭손 감독의 후임으로 마크 휴즈가 맨시티의 감독이 되었다. 맨유 레전드가 맨시티의 감독이 되어 논란이 있었다.[33] 임대 신분으로 맨체스터 시티에 합류했었다.[34] 1997년 기준 1부리그 2회 + 2부리그 6회 + FA컵 4회 + 리그컵 2회 + 커뮤니티 실드 3회 + 위너스컵 1회 = 총 우승 18회이니 18 ÷ 5 = 3(나머지 3)또는 18 ÷ 6 = 3으로 계산하면 우승 5번 또는 6번마다 별 1개가 된다. 보통 10번마다 1개 다는 것에 비해 기준이 반토막나서 '아무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도 돌아다닌다.[35] 검독수리 문단을 보면 알겠지만 대부분 서양 독수리 문양의 기원들은 대부분이 로마 제국이다.[36] 정확히는 아드윅 AFC가 현재의 맨체스터 시티 FC로 이름을 바꾼 연도이다.[37] 한국에서는 연도를 저렇게 두 자씩 끊어놓은 것이 부자연스러워 보일 수도 있지만 영어권에서는 본래 연도를 읽을 때부터 두 자씩 끊어서 읽기 때문에 크게 문제되지는 않는다.[38] 맨시티 광팬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3집 Be Here Now의 성공으로 떼돈을 벌게 되자 가장 먼저 할 일로 맨시티를 인수하는 것을 진지하게 의논했을 정도이다. 물론 만수르가 팀을 인수하며 이들의 덕업일치는 물건너 갔지만, 이후 맨시티가 리그를 씹어먹는 모습을 보여주자 어찌됐든 좋은 듯 하다. 최근에는 노엘이 축구 해설이나 프로그램에 맨시티 측 패널로 개근 중이다.[39] 참고로, 오아시스의 1~2기 멤버였던 폴 본헤드 아서스는 맨유 팬. 그 덕분에 1995년 당시 맨체스터 시티와 싸우는 다른 팀의 경기에서 갤러거 형제가 맨시티를 응원하고 있을 때 본헤드 혼자만 다른 팀을 응원했는데 맨시티가 우승을 거두자 갤러거 형제에게 물폭탄을 맞으며 놀림당하는 모습이 슈퍼 소닉 다큐를 통해 얼핏 나왔다.[40] 유니폼 색깔도 맨시티를 상징하는 하늘색인 경우가 많다.[41] 반대로 버나드 섬너맨유 팬이다.[42] 출처 이수날의 영상에서 밝혀졌다.[43] 참고로 옛날이다.[44] 이 쪽은 실질적으로 을 좋아해서 맨시티 팬이 된 계기. 펩이 과거 FC 바르셀로나, FC 바이에른 뮌헨 시절엔 그 팀들을 좋아했다고 한다.[45] https://twitter.com/bestdancesinger/status/1528428256315449344?s=46&t=WBFV6KrATHxnBce893MCKQ [46] https://twitter.com/soxophia/status/1306899929328041984?s=46&t=K--_aV98ZU_GECgqnflufQ 팬사인회에서 맨시티 팬이라 말했다는 썰(?)이 있었는데 We Kpop friends라는 프로그램에서 공식적으로 맨시티 팬임을 밝혔다.[47] 출처[48] 출처[49] 결국 토트넘은 뒤늦게 새 구장인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으로 홈 구장을 옮긴다.[50] 에버튼과 토트넘의 라이벌인 리버풀과 아스날 역시 세계적인 명문 클럽이다. 뉴캐슬의 라이벌은 비교적 약해 보이는 선덜랜드긴 하나, 선덜랜드도 1부 리그에서 뛴 역사가 깊고 우승 기록도 상당하며, 팬층도 두꺼워 홈구장이 5만 석에 육박하는 인기 클럽으로 관점에 따라 잉글랜드 내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기도 하는 가장 큰 클럽 중 하나이다. 2부 리그 시절, 선덜랜드 팬인 서형욱이 2000년 초에 직접 2부 리그 경기를 보러 갈때도, 2부 리그로 강등당하던 시절에도 선덜랜드 서포터들은 2~3만 명 수준 관중을 유지할 정도로 팬층이 두껍다.[51] 버밍엄 시티가 1960~61 시즌 인터시티 페어스컵(유로파 리그 전신) 준우승(우승은 AS 로마)을 한 게 있긴 하다. 이게 이름에 시티가 들어간 팀으로선 유이하게 맨시티랑 같이 유러피언 클럽 대회 결승 진출 기록.[52] 토트넘은 2021년이 되어서야 한국 공식 트위터 계정을 만들었다.[53] 이때 수능 응원인데 제수스가 나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54] 한국 네티즌이 올려줄 수 있냐고 부탁하였고, 선수가 올려주었다.[55] 타 팀에선 그렇게 많이 보이는 스포츠 헤어 컷이지만, 시티에선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그 수가 적다. 그나마 최근 장발 스타일로 시티에서 뛴 선수라면 데미첼리스인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단발로 잘랐다.[56] 다만, 그에 비해 콥들은 제일 싫어하고 라이벌로 느끼는 팀은 단연 맨유다. 이는 당연한 것이고, 콥은 시티를 그저 우승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팀인 그 정도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로 여기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맨유가 우승권에서는 약간은 멀어지게 되면서, 콥들도 맨시티를 최대 라이벌로 느낀다고 해야하는 것이 맞다. 같은 논리로 우승 경쟁을 하고 있고, 리버풀이 리그에서 우승을 많이 뺏긴 편이다. 리버풀이 최대 라이벌이 아님을 이와 같이 상술한 것이다. 시티즌들 역시 2010년대 이후로는 비슷해진 지역 더비의 맨유를 더 큰 라이벌로 생각한다.[57] 물론 변호는 가능한 것이 2017-18 시즌에는 리버풀이 맨시티를 상대로 워낙 상성이 좋아서 리버풀과의 대진이 결정되자 우려하는 시티즌들이 많았으며, 2018-19 시즌 토트넘전 역시 맨시티 킬러 손흥민의 존재와 2차전 오심 논란 등으로 변호의 여지가 있다. 모나코에게 패한 2016-17 시즌도 당시 모나코가 좋은 라인업을 구축하고 압도적인 공격력을 퍼부은 반면, 맨시티는 수비불안이 해소되지 않아 리그에서도 고전하던 시기라서 모나코가 마냥 언더독이었다고 하기도 어려웠다. 2021-22 시즌 레알은 리버풀까지 꺾고 챔스 우승을 거머쥔 구단이니 설명할 필요도 없고. 하지만 2019-20 시즌 리옹전과 2020-21 시즌 첼시와의 결승전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58] 그 가운데 콩파니와 아궤로는 얼마 안 가 은퇴를 선언했기에 빅 이어 없이 선수 커리어를 마쳤고, 실바와 페르난지뉴는 현역 생활을 유지하고 있지만 실바는 챔스 우승은 커녕 챔스권 진입 여부도 불투명한 레알 소시에다드, 페르난지뉴는 한술 더 떠 고향 브라질의 아틀레치쿠 파라나엔시 소속이라 챔스 우승을 거두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나 아궤로는 자신의 맨시티에서의 마지막 시즌인 2020-21 시즌에 결승까지 진출했건만 준우승에 그치면서 눈앞에서 빅 이어를 놓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