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 안첼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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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1959년 출생
- 1976년 데뷔
- 1992년 은퇴
- 에밀리아로마냐 주 출신 인물
- 미드필더
- 이탈리아의 남자 축구 선수
- 이탈리아의 축구감독
- 이탈리아의 가톨릭 신자
- 파르마 칼초 1913/은퇴, 이적
- AS 로마/은퇴, 이적
- AC 밀란/은퇴, 이적
- AC 레지아나 1919/역대 감독
- 파르마 칼초 1913/역대 감독
- 유벤투스 FC/역대 감독
- AC 밀란/역대 감독
- 첼시 FC/역대 감독
- 파리 생제르맹 FC/역대 감독
- 레알 마드리드 CF/역대 감독
- FC 바이에른 뮌헨/역대 감독
- SSC 나폴리/역대 감독
- 에버튼 FC/역대 감독
- 이탈리아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참가 선수
-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참가 선수
- 이탈리아의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참가 선수
- UEFA 유로 1988 참가 선수
- FIFA 클럽 월드컵 다회 우승 감독
- UEFA 챔피언스 리그 다회 우승 선수
- UEFA 챔피언스 리그 다회 우승 감독
- UEFA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감독
- 중앙 미드필더
- 공격형 미드필더
- 수비형 미드필더
- 레프트윙
1. 개요[편집]
이탈리아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현 레알 마드리드 CF 감독을 맡고 있다.
1992년 지도자로 데뷔한 후 1999년에 유벤투스의 감독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AC 밀란, 첼시, 파리 생제르맹, 레알 마드리드, 바이에른 뮌헨 등 다양한 클럽들을 지도하며 UCL 4회 우승과 유럽 5대 리그[4] 우승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2. 선수 경력[편집]
현역 시절 포지션은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등 미드필더 모든 위치에서 뛸 수 있었고 왼쪽 윙어도 소화할 수 있었다. 현역 시절에는 스타 플레이어로서 상당히 화려한 경력을 자랑했다. 지금은 성격 좋은 덕장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선수 시절엔 꽤 터프한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레졸로와 파르마 유스 팀을 거쳐 1976년 당시 세리에 C에 머물렀던 AC 파르마에서 선수 데뷔를 한 카를로 안첼로티는 비록 하부 리그에서였지만 뛰어난 활약을 선보였고, 3년 뒤인 1979년부터 명문 AS 로마로 이적한다.
승부의 신이라는 책에서 AC 밀란에서 선수로 뛸 당시 파비오 카펠로 감독이 팀에서 제외시킨다고 반감을 가진 적이 있어서 이유를 들을 생각도 없었고, 훈련에도 참가하지 않은 적이 있다고 인터뷰한다. 안첼로티가 감독이 되면 이해가 될 거라는 카펠로 감독의 말에 지금은 누구보다도 그 말을 잘 이해한다고 한다.
3. 플레이 스타일[편집]
오늘날의 푸근한 명감독 이미지에 다소 묻힌 감이 없지않아 있지만, 선수 안첼로티 또한 '패스가 뛰어난 육각형 미드필더'로 이름을 떨친 엄청난 월드클래스 선수였다. 이탈리아 축구가 세계를 평정하던 시절에도, 안첼로티는 같은 이탈리아 국적 선수들 중에서도 발군으로 꼽혔다. 안드레아 피를로같이 넓은 시야, 기민한 볼 컨트롤, 정확한 패스능력으로 정평이 난 선수였지만 피를로와는 달리 굉장히 적극적으로 필드 전체를 뛰어다녔기 때문에 수비와 공격 모두 곧잘 했다. 어쩌면 본인 스스로가 이렇게 미드필더로서의 덕목을 고루 가진 월드클래스였기 때문에 먼 훗날 자신의 장점 절반씩을 극대화해놓은 피를로와 젠나로 가투소 조합의 가능성을 꿰뚫어보고, 완성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엄청난 활동량을 가진 패스마스터로 유명했던 선수로, 패스 공급자로서 뛰어난 개인기, 볼 컨트롤과 창의력을 갖고 있었지만 꽤나 조심스러운 면모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그 창의성을 시도 때도 없이 남발하지 않고 적재적소에, 꼭 필요한 순간에만 활용하는 선수였다. 우월한 축구 지능을 사용해 필드 전역에 패스를 찔러주는 한편 수비력도 좋고 결정적인 한방을 근거리와 중거리에서 모두 넣어줄 수 있는 득점력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아리고 사키의 AC밀란 드림팀에서 척추와 같은 역할을 담당했다. 사키의 밀란에서는 주로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AS로마에서는 우월한 활동량을 앞세워 윙어로 주로 출전했다. 다만 그 외에도 유스시절에는 세컨드 스트라이커, 커리어 한창 도중에는 공수 전역을 뛰어다니는 박스-투-박스 미드필더, AC밀란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나오지 않을때에는 포백을 보호하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올 정도니 바로 옆의 루드 굴리트까지 불세출의 올라운드 플레이어를 2명이나 보유한 AC밀란은 그야말로 행복한 비명을 지르지 않을수가 없었다. 특히 수비형 미드필더 시절에는 특유의 창의력을 이용해서 단순한 포백보호에 치중하지 않고 전방 볼 배급을 하며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로서의 플레이를 정립했는데, 레알 마드리드 시절의 사비 알론소를 생각하면 어떤 플레이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4. 지도자 경력[편집]
자세한 내용은 카를로 안첼로티/지도자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1. 전술 스타일[편집]
4.1.1. 선수 기용 성향[편집]
무난한 성품의 덕장으로 적을 만들지 않는 부드러운 리더십과 탁월한 전술 역량을 가진 유능한 감독이지만 검증된 선수만 주야장천 굴려먹는 걸 매 시즌 반복해 주전들의 혹사가 누적되고 준주전급은 경기 감각이 쇠퇴하며 유망주들은 성장할 기회를 박탈하는 바람에 시간이 흐를수록 팀이 약화된다는 비판을 받는다.[5]
이에 대한 반론으로 AC 밀란 부임 둘째 해인 02-03 챔피언스 리그 우승, 03-04 세리에 A우승, 챔스 8강, 04-05 챔스 준우승, 05-06 챔스 4강, 06-07 챔스 우승, 즉 5년간은 유럽 최정상권의 팀을 유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장기적인 팀 운영이 나쁜 감독이라고 보기만은 어렵다. 02-03 챔피언스 리그의 결승 스쿼드와, 06-07 챔피언스 리그의 결승 스쿼드를 비교해보면, 4명의 선수가 은퇴나 이적 등의 이유로 다르며, 이는 그 기간 동안은 세대 교체가 어느 정도는 이뤄졌음을 나타낸다. 다만 세대 교체라는 말에 어느 정도 어폐가 있는 것이 자체 유망주 생산은 거의 전무하며 영입된 유망주가 터진 사례도 카카뿐이다. 어린 선수를 영입하는 예 자체가 매우 드물었기 때문에 밀란에서 적극적인 세대 교체는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볼수 있다. 파투를 영입했으나 밑에 문단에도 서술되듯이 안첼로티의 뜻이 아니다. 게다가 항상 부상을 달고 살아서 성공한 사례라고 보기조차 애매하다.
노인정 스쿼드 구축의 경우 장기 집권한 밀란 시절 가장 두드러졌는데 팀의 주전 선수들이 30대 초반을 넘어서기 시작한 07/08 시즌부터 심각해졌다. 07/08 시즌 당시 주전 선수들 중에 30줄에 근접하지 않은 선수가 카카, 알렉산드르 파투, 다니엘레 보네라, 알베르토 질라르디노뿐이었으니 말 다 했다. 이미 30대 중반에 접어든 팀 레전드 파올로 말디니[6] , 필리포 인자기는 기량 쇠퇴가 완연했지만 계속 중용되었고 대체자를 키우려는 시도는 부족했다.
주전 혹사도 심해서 당시 팀의 실질적인 에이스였던 카카를 주야장천 기용했다. 반면 카카와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선수였던 요앙 구르퀴프는 제대로 된 육성없이 벤치에서 썩히다 그냥 떠나 보냈다. 그렇다고 새로운 선수의 영입으로 카카의 부담을 덜지 않아 07/08 시즌에는 결국 챔피언스 리그 진출마저 실패했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 요앙 구르퀴프는 팀원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멘탈리티 적으로 밀란과는 맞지 않았다. 또한 구르퀴프는 로테이션 멤버로 적지 않은 경기에 출장했으므로 벤치에만 썩혔다는 말은 어폐가 있다.
또한 그 당시 30줄이 넘어가는 멤버들이 많았음에도 영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이는 베를루스코니가 이탈리아 총리가 되고 축구단 운영에서 그 의지를 줄이고 비틀면서 일어난 일이다. 실제로 안첼로티는 윙 포지션의 노화로 프랑크 리베리 영입을 요청했었으나, 보드진이 이를 거절하고 공격수인 파투를 영입한 예도 있다. 안첼로티에게 전권이 없었으므로 세대 교체 실패가 감독만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리베리 영입이 자금 사정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영입을 시도했으나 리베리가 밀란을 선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리베리 영입에 실패했을 때의 대안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안첼로티의 문제이며, 이를 보드진만의 책임이라고 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결론은 영입 관련해서 감독과 보드진의 책임이 공존하나, 세대 교체 실패에 있어서 감독이 면책을 부여받을 수 없다.[7]
첼시 감독 시절에도 베스트 11만 꾸준히 돌렸다. 첫 시즌에는 그럭저럭 버텨냈지만[8] 예의 두 번째 시즌에 들어서자 부작용이 발생했다. 프랭크 램파드의 부상과 맞물려 팀의 공격 라인업의 무게가 현저하게 떨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그 결과 리버풀전 패배를 시작으로 팀이 순식간에 무너졌고 간신히 준우승을 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성적만 봤을 때 사실 자를 만한 상황은 아니었으나, 맨유의 알렉스 퍼거슨이 미드필더진은 철저하게 로테이션 돌리고 어린 선수들을 지속적으로 기용해 키우려고 한 반면 안첼로티는 전술로 퍼거슨에 우위를 점할순 있어도 장기적인 팀 운영에선 상대적으로 서투른 모습을 많이 보여줬고[9] 여기에 여러 번의 병맛 선수 교체 등이 맞물려 2년 만의 조기 하차라는 최악의 결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첼시 시절 부진은 예의 혹사 때문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경질되던 해 첼시의 미드필더 자원의 출장 순서를 보면 플로랑 말루다, 미카엘 에시앙, 하미레스, 존 오비 미켈, 프랭크 램파드, 조쉬 매키크런, 가엘 카쿠타, 요시 베나윤 순이다. 이 때의 하미레스, 존 오비 미켈은 둘다 25세도 되지 않은 유망주들이었다. 밀란 시절과는 달리 있는 자원을 가지고는 어떻게든 로테이션은 잘 돌렸다. 첼시에서 2년차 실패의 이유는 선수 영입과 기용에 문제를 드러낸 부분이라고 볼수 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벌어졌는데 첫해는 탁월한 전술적 역량으로 우승을 거두고 그 다음 시즌에도 22연승을 기록하는 등 엄청난 모습을 보이며 트레블 후보로 꼽혔으나 그간 주전만 주야장천 기용한 부작용으로 하나둘 부상신이 강림하고 체력적으로 열세를 드러내며 우승구도에서 밀려났다. 특히 루카 모드리치는 14-15 시즌에 부상이 끊임없이 발생했고, 이 시즌 때문에 모드리치는 유리몸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플로렌티노 페레스 탓도 할 수 없는 게 이미 젊은 선수들, 다른 팀 가면 주전인 준주전급이 쌓여 있던 레알 마드리드였고 월드컵 이후에도 토니 크로스와 하메스 로드리게스, 케일러 나바스를 영입해 스쿼드를 더 두텁게 해줬다. 결국 레알 마드리드는 안첼로티를 경질하고 철저한 로테이션 운용으로 유명한 라파 베니테스에게 손을 뻗었다.
반론으로는 그 해 레알은 하메스 로드리게스, 토니 크로스, 케일러 나바스를 영입했으나, 케일러 나바스는 골키퍼 포지션이라 혹사를 분석하는데 있어 별 도움이 안 되고, 하메스 로드리게스는 안첼로키의 후임인 라파 베니테스와 지네딘 지단도 잘 기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위 3명 중에 하메스를 가장 많이 기용한 것이 안첼로티다.[10] 애초에 BBC라는 축이 존재하는 레알의 경우, BBC가 모두 존재하는 가운데에서 3미들에서 필요한 선수 유형은 홀딩과 빌드업 능력을 가진 미드필더이다. 그 해에 그러한 능력을 가진 사비 알론소는 팔아버리고, 토니 크로스가 들어왔으니, 당연히 크로스는 사비 알론소만큼 중용될 수밖에 없었다. 모드리치 역시 마찬가지. 카세미루는 이 시즌에 포르투로 임대를 가있었고, 결국에 스쿼드에 공격적인 재능은 넘치나, 주전으로 기용할 미드필더는 모드리치, 크로스밖에 없었던 것. 이는 카세미루가 복귀한 현재도 그렇다. 크로스나 모드리치, 카세미루는 부상이 없는 한 선발이 거의 확실한 멤버이다.
혹사로 대표되는 감독이라는 평은 좋게 말하면 있는 선수들을 어떻게든 잘 조립해보려는 성향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실제로 안드리 셰브첸코, 후이 코스타, 히바우두, 클라렌스 셰도르프, 안드레아 피를로라는, 수비 밸런스가 형편없는 스쿼드를 가지고 팀을 조립해 내기도 했다. 이 중 셰도르프 정도가 그나마 수비 밸런스에 기여하는 선수인데 이들을 균형을 넘어 유럽 무대에서도 먹히는 단단한 팀을 만들어냈다. 특히 밀레니엄 밀란의 핵심인 피를로, 셰도르프의 경우 미완의 대기에서 클럽을 넘어 유럽 축구사에 남을 선수로 환골탈태한 건 안첼로티의 역량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결국 혹사와 위에 대한 논란은, 전통적으로 분데스리가의 재능들을 거의 싹쓸이해 가는 바이에른 뮌헨에서의 족적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바이에른에서는 중요 경기마다 4-3-3을 고집함으로써 경험이 부족한 킹슬리 코망이나 순수한 윙어로는 아쉬운 토마스 뮐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아르연 로번/프랭크 리베리와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실망을 남겼다. 게다가 두 번째 시즌에는 그 리베리와도 잡음을 일으키며 결국 단순 성적 문제가 아니라 선수단과 심각한 수준의 불화로 중도 경질되면서 유벤투스 이상의 실패로 남게 되었다.[11]
위르겐 클롭 감독에게 상당히 강한 모습을 보이는데, 첫 대결이었던 13-14 시즌 챔피언스 리그 8강에서 합산 스코어 3 대 2로 승리해[12] 4강에 진출했고, 나폴리 감독 시절에는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클롭의 리버풀을 만나 18-19 시즌 1승 1패를 기록했으며[13] 19-20 시즌에는 나폴리에서 다시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만나 나폴리의 홈에서 2:0 승리를 거뒀으며 원정에서는 1:1 무승부를 기록한 뒤 얼마 뒤 리그에서의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었다. 상대적으로 약체였던 에버튼 감독 시절에도 19-20 시즌 리버풀을 상대로 홈에서 0:0, 그 다음 시즌 2:2로 무승부를 거둔 뒤[14] , 안필드 원정에서 2 대 0으로 승리하는 이변을 보였다. 21-22 시즌에서는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도 만나 1:0으로 승리해 우승을 차지했고, 다음 시즌 22-23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도 만난 리버풀을 안필드 원정에서 5:2, 베르나베우 홈에서 1:0의 스코어로 잡아내며 클롭 상대로 강한 그의 기록을 이어나갔다.
현 팀의 베스트 11 조합을 짜는 데는 유능하지만, 장기 레이스에서 다양한 재능들을 시험하며 팀의 양적 스쿼드를 꾸리는 데는 아쉽다는 평가를 듣는다.
4.1.2. 덕장[편집]
인터뷰를 해도 다른 빅클럽의 감독들과는 달리[15] 상당히 온화하고 부드러운 어투를 사용한다. 첼시 감독 부임 시절에는 무리뉴 감독의 날카로운 독설을 들어왔던 팬들이 안첼로티는 좀 심심하다는 평이 많았다. 덕분에 언론이나 선수단과 트러블을 일으키지 않는 편이다. 레알 시절에 일화로 안첼로티의 딸이 디에고 로페스를 두둔하며 사람들이 카시야스만 신경쓰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는데 논란이 커지기 전에 빠르게 카시야스에게 사과를 전했다. 위 사실은 카시야스가 직접 밝혔다."안첼로티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브라질에서 선발로 뛸 수 있도록 많은 조언을 해줬다. 그는 나에게 많은 자신감을 주었다. 그는 필요할 때면 항상 나에게 강경했다. 그는 나의 아버지와 같다."
후덕한 외모와 인자한 성격으로 선수들이 잘 따르는 감독이다. 선수 개개인을 존중하고 그들과 속깊은 대화를 나누며 깊은 신뢰를 쌓는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선수와의 불화는 거의 없다. 선수들도 안첼로티를 큰형님처럼 생각해서 미스터 혹은 코치로 부르지 않고 카를로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적지 않게 장난질의 희생양이 되는 감독이다. 특히 레알 선수진은 선수들과의 친화력을 뽐내며 화목하게 지내는 안첼로티에 비해 무뚝뚝하고 단절된 모습을 보이기로 유명한 베니테스가 감독이 되자 하나같이 입을 모아 안첼로티가 너무 그립다고 말했고 특히 크로스와 모드리치는 이적까지 고민했다고 밝혔다. 그 호날두가 직접 "안첼로티 감독은 화를 잘 내지 않는다"라며 친화력에 엄지를 치켜들었을 정도이다. 이에 안첼로티는 "그렇다, 나는 크고 순한 곰이라서 화를 잘 못 낸다."라고 말했다.
첼시 FC에서도 선수단과 굉장히 원만한 사이였다. 존 테리가 말하기를,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은 무리뉴지만, 안첼로티도 크게 차이나지 않는 2등이다. 그리고 선수 관리 측면에서는 안첼로티가 내가 본 사람 중 1등이다. 그렇게 탑 레벨에서 오랫동안 감독하면서 요즘 선수들까지도 잘 다루는 모습을 보면 그의 능력을 알 수 있다." 라고 할 정도로 그의 선수단 관리 능력을 상당히 고평가했다.
SSC 나폴리에서도 선수단과는 사이가 좋았다. 나폴리에서 함께 했던 알랑 마르케스가 방출 명단에 오른 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제의를 거절하고 안첼로티 하나만 보고 에버튼 FC로 이적할 정도였다.
다만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선수단과의 불화로 경질당했고, PSG 감독 부임 이후부터는 가끔 인터뷰에서 독설을 하는 경우가 생기면서 덕장, 보살 이미지가 조금씩 깨지고 있고 이에 따라 안티도 조금씩 생기고 있다. 에버튼에서는 아쉬운 성적에도 구단이 안첼로티를 장기적으로 구단을 이끌 적임자로 보고 플랜을 짰는데 레알 마드리드에서 제의가 왔다는 이유로 바로 구단을 떠나버리면서 덕장 이미지에 흠을 남겼다.
4.1.3. 비판[편집]
안첼로티는 웬만하면 비판받지 않던 위대한 감독이었다. 리그 우승이 유럽 대항전 우승보다 상대적으로 적다 쳐도, 어쨌든 밀란으로 리그 우승,[16] 첼시로 더블을 달성한 뛰어난 감독이다.
문제는 친인척 관리다. 사실 안첼로티는 원래부터 자기의 사위를 자신의 직장에 고용해 왔었을 정도로 이 부분에 있어서 모든 이가 그러려니하는 입장이었다. 실제로, 레알 1기, 2기 모두 사위 베니아미노 풀코가 영양사로 재직할 정도였다.[17]
다만, 문제가 불거진 것은 자격이 없는 자신의 아들 다비데 안첼로티를 폴 클레멘트의 후임 수석 코치로 임명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아무리 자신의 아들이 능력이 좋아도 자격이 있는 이가 하는 게 맞는데 그게 아니다 보니 팀의 분란과 반목이 생기면서 제대로 무너지게 된게 뮌헨 시절 안첼로티이다. 어찌 보면 덕장과 라커룸을 잘 관리한다는 안첼로티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드러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한 것. 이는 나폴리에서도 그대로 반복하여 그 시즌 나폴리는 전 시즌만도 못 한 성적을 거두고 온갖 잡음 끝에 안첼로티는 다시 경질되었다. 그러나 에버튼에서도 아들과 사위를 그대로 데려온다고 하니 이 가족주의는 절대 못 고칠 듯하다. 그나마 다비데는 레알 마드리드 수석 코치 부임 이후에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인사 문제 외에 축구장 내에서 그의 강점은 선수단을 잘 다스리고 조화를 시키는 것과 전술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 단점은 상술한 대로 로테이션 부재와 플랜 A만 고집한다는 것이다.
안첼로티는 실제로 전술의 큰 틀을 잡고 세부 전술은 팀 내의 플레이메이커 선수들에게 맡기는 경향이 크며, 선수들 체력 관리 실패와 선수 선발에 대한 고집이 리그 우승 경력이 적은 이유에 한몫한다. 레알 시절에서도 시즌 초에는 괜찮았을지 모르나 시즌이 지날수록 레알 선수들이 지치고 상대 팀들이 파악을 끝내자 상대방이 마음먹고 공격수들까지 토니 크로스와 루카 모드리치에게 몸싸움을 걸면서 중앙 패스 길을 막으니 팀이 제대로 돌아가지도 못했고, 너무 간격이 넓어서 미드-풀백 간 연계도 불가능한 수준까지 갔음에도 불구하고 시즌이 바뀔 때까지 전술이 변경되지 않았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 시즌의 세르히오 라모스와 페페는 수비 부담을 말 그대로 둘이서 다 떠안다시피 하였다.[18]
주제 무리뉴와 알렉스 퍼거슨 같은 경우는 선수들의 상황에 따라서 계속 간격을 조정하고 라인을 올렸다 내렸다 같은 유동적인 전술 변화를 보이나 안첼로티는 자기가 한 번 그린 그림을 절대 바꾸지 않는다는 점. 완성된 선수진으로 토너먼트에서 단기 승부를 내는 데는 그만 한 감독이 없으나 로테이션이 적고 전술적 유동성이 극히 희박해 리그에서 성적은 나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장기적으로 팀을 이끌기에도 문제가 많은 점이 그가 챔스 우승 타이 기록을 이뤘음에도 상기 감독들과 같이 묶일 수 없는 이유다. 2022년까지 20여 년 코칭 커리어에서 안첼로티의 리그 우승 기록은 커리어 초기를 제외하면 항상 빅클럽들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5번이다. 더구나 그중 2번은 해당 시즌 압도적인 전력을 구축해 범장이 맡았어도 우승이 가능했던 뮌헨과 PSG에서 이뤘다는 것을 보면 리그에서의 부진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19]
특이한 것은 SSC 나폴리 재임 시절에는 주전들의 체력 관리를 위해 로테이션을 적극적으로 가용했고, 나폴리가 주전과 비주전의 격차가 큰 팀임에도 많은 선수들에게 출전 기회를 제공했다. 알렉스 메렛과 다비드 오스피나가 좋은 폼을 보여주며 멀쩡히 있을 때 세 번째 골키퍼인 오레스티스 카르네지스를 인터 밀란과의 리그 경기에 기용할 정도였다. 그런데 두 번째 시즌에 접어들면서 플랫형 4-4-2 전술을 쓰면서도 전방 압박을 포기치 않다가 리그 9경기 연속 무승(7무 2패)을 기록하며 근 4년 동안 3번의 준우승을 기록하던 팀을 하위권에 처박고는 경질당했고, 후임은 밀란 시절 자신의 제자였던 젠나로 가투소였다. 이 기간 동안 세부적인 부분을 전혀 안 건드리고 선수들에게 맡기는 경향이 경기에 고스란히 드러나, 나폴리 팬들에게 포메이션하고 라인업만 짜고 경기 준비를 해오기는 하는 거냐고 질타를 받았다. 4-4-2로 전방 압박을 하니 역습 때 저지해 줄 미드필더도 없었고 공수 간격은 태평양이었으며, 공격 전개 때는 선수들이 패스를 줄 수 있는 곳으로 이리저리 돌리기만 하다 끝났다. U자로 왔다갔다만 하는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로테이션 문제는 개선되었으나, 전술적인 약점은 그대로 드러난 나폴리 시절이었다.
마지막으로 단점이 있다면 자신의 기준에 못 미치는 선수는 기용을 배제해서 다른 주전 선수가 혹사당하는 경향이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안첼로티가 유스를 잘 키워내지 못하고 클럽 내 장기적인 블루 프린트를 완성시키지 못한다는 궁극적인 비판을 받게 된다.
5. 평가[편집]
선수 시절에도 AS 로마와 AC 밀란을 거쳐 수많은 우승컵을 들어올려 뚜렷한 족적을 남겼고, 감독으로서도 유럽 5대 리그를 오가며 수많은 우승컵을 쌓아 올려 역대 최고 수준의 감독 반열에 올랐다.
UCL 결승에 팀을 올린 것만 총 5회로 역대 감독들 중 최다이며, 그중 AC 밀란과 레알 마드리드의 사령탑으로서 통산 UCL 4회 우승을 이끌어 UCL 역대 최다 우승 감독이다.[20][21] 또한, 그는 유럽 5대 축구 리그(세리에 A, 프리미어 리그, 리그 1, 분데스리가, 라리가)에서 모두 우승을 경험한 최초의 감독이기도 하다.[22]
2022년 6월, 축구 전문 통계 매체 '트랜스퍼마크트'의 통계 조사에 따르면, 안첼로티는 21세기 들어 올린 승수만 611승으로 21세기 들어 가장 많은 승리를 맛본 감독[23] 이다. 기사 링크 단순한 승수뿐만 아니라 같은 기간 동안 앞서 언급한 5대 리그 우승 및 UCL 최다 결승 진출 & 최다 우승 & 최다 승리의 금자탑을 쌓아 올린 만큼, 21세기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인 셈이다.
6. 기록[편집]
6.1. 선수[편집]
6.1.1. 대회 기록[편집]
- AC 밀란 (1987~1992)
- 세리에 A: 1987-88, 1991-92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1988
- 유러피언컵: 1988-89, 1989-90
- 유러피언 슈퍼컵: 1990
- 인터컨티넨탈컵: 1989
6.2. 감독[편집]
6.2.1. 대회 기록[편집]
- 유벤투스 FC (1999~2001)
- UEFA 인터토토컵: 1999
- AC 밀란 (2001~2009)
- 세리에 A: 2003-04
- 코파 이탈리아: 2002-03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2004
- UEFA 챔피언스 리그: 2002-03, 2006-07
- UEFA 슈퍼컵: 2003, 2007
- FIFA 클럽 월드컵: 2007
- 첼시 FC (2009~2011)
- 프리미어 리그: 2009-10
- FA컵: 2009-10
- FA 커뮤니티 실드: 2009
- 파리 생제르맹 FC (2011~2013)
- 리그 1: 2012-13
- 레알 마드리드 CF (2013~2015, 2021~)
- 라리가: 2021-22
- 코파 델 레이: 2013-14, 2022-23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2021-22
- UEFA 챔피언스 리그: 2013-14, 2021-22
- UEFA 슈퍼컵: 2014, 2022
- FIFA 클럽 월드컵: 2014, 2022
- FC 바이에른 뮌헨 (2016~2017)
6.2.2. 개인 수상[편집]
- FIFA 올해의 감독 2위: 2014, 2022
- UEFA 올해의 감독: 2002-03[24] , 2021-22
- 세리에 A 올해의 감독: 2000-01, 2003-04
- 판키나도로: 2002-03, 2003-04
-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감독: 2009년 11월, 2010년 8월, 2011년 3월 · 4월, 2020년 9월
- 리그 1 올해의 감독: 2012-13
- 라리가 이달의 감독: 2014년 10월, 2015년 4월, 2023년 8월
- 트로페오 미겔 무뇨스: 2014-15
- 유럽 올해의 축구 감독[25] : 2003
- 유럽 시즌의 축구 감독: 2002-03, 2006-07
- 월드 사커 올해의 감독: 2003
- IFFHS 세계 최우수 클럽 감독: 2007, 2014, 2022
- 엔초 베아르초트상: 2014
- 글로브 사커 어워드 올해의 감독: 2014, 2022
- 글로브 사커 어워드 최고 언론 주목 축구인: 2014
- 옹즈도르 감독상: 2021-22
-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 2015
- AS 로마 명예의 전당: 2014
- AC 밀란 명예의 전당
6.3. 수훈[편집]
-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장 5등급: 1991
-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장 4등급: 2014
7. 여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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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 볼드윈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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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을 즐기는 식도락이다. 은퇴하고 나서 좋았던 점 중 하나가 토르텔리니를 많이 먹는다고 뭐라 할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 축구사에 길이 남을 기적을 안 좋은 쪽으로 두 번(리아소르의 기적, 이스탄불의 기적), 좋은 쪽으로 두 번(2013-14 챔피언스 리그 결승, 2021-22 챔피언스 리그 4강[26] 경험한 감독으로 유명하다. 좋은 쪽이든 안 좋은 쪽이든 기적 제조기, 명경기 제조기로 불리는 중. 안첼로티에게 호재인 점은, 안 좋은 기적들은 커리어 전반기에 겪고, 좋은 기적들은 후반기에 경험했다는 점에서 안첼로티의 경험이 강점으로 꼽힐 수 있다는 점이다.
-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 안첼로티를 이겨본 감독은 라파엘 베니테스 한 명뿐이다. 비슷하게 알렉스 퍼거슨을 상대로 결승에서 이긴 감독은 펩 과르디올라 한 명뿐이다. 그리고 그 펩 과르디올라를 상대로 결승에서 이겨본 감독은 토마스 투헬 한 명뿐이다. 안첼로티는 5번의 챔스 결승에서 마르첼로 리피, 라파엘 베니테스를 두 번, 디에고 시메오네, 그리고 위르겐 클롭을 만났다.
- 안첼로티의 진짜 트레이드마크는 바로 눈썹. 웃거나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을 때마다 왼쪽 눈썹만 유난히 올라간다. 오죽하면 나폴리가 눈썹 그림을 오피셜로 띄우고, 영어로 "Ancelotti e"까지만 쳐도 "eyebrow"가 맨 상단에 있을 정도였다.
- 밀란에서 선수 생활과 감독 생활을 했지만 어렸을 때는 인테르 팬이었다고 한다. 계기는 밀라노에서 일하는 사촌이 사다 준 인테르 유니폼. 그로부터 몇 년 후 인테르가 자신의 동네에 원정 경기를 와 아버지와 함께 보러갔지만 표가 매진되었다. 그렇지만 이미 여기 왔으니 갈 수 없다고 울며불며 난리를 쳤고, 결국 경기장 관리인의 재량으로 후반전부터 들어가서 봤다고 한다. 결과는 인테르의 6:1 대승이었는데, 모든 득점이 후반전에 나온 점수였다.
- 트랜스퍼마크트의 자료에 의하면 21세기 리그에서 가장 많은 승점을 얻은 감독 순위에서 706경기 1,434점으로 1위를 차지했다. 그 뒤를 이어 702경기 1,381점의 아르센 벵거 감독, 561경기의 1,194점의 주제 무리뉴 감독 등이 순위권을 이루고 있다.
- 2007년도에 대한민국 어느 기자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에 관심있다고 했었다. 립 서비스였을 가능성이 높지만 당시 한국 축구에 대해서 흥미롭다고 했었으며 어느 국가든간에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맡을 수도 있다고 했다. 참고로 이때 대한민국 레플리카를 선물받았다.
- 2022년 라리가 우승으로 유럽 5대 리그 우승컵을 모두 들어본 직후에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있어달라는 대로 있고 나서 감독직 은퇴를 선언하겠다는 말도 했다. 그러나 대표팀 감독도 해보고 싶다고 말했는데 캐나다 대표팀 감독직에 관심을 드러냈다.
- 2022년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더블로 감독으로써 전성기가 훌쩍 지났음에도 우승을 쉽게한다고 이스타TV를 중심으로 안첼로티가 운장이라는 비하에 가까운 이야기가 많이 돌았었다. 하지만 위의 지도자 경력과 전술 스타일만 읽어봐도 이 사람이 운으로만 감독 생활을 이어간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저 우승하는 법을 알 뿐.
- 이탈리아에서 군 복무를 했던 경험이 있다.
8. 안첼로티에 대한 말, 말, 말[편집]
"라커룸과 팀 미팅에서 봤던 감독 안첼로티는 늘 한결같은 모습이었다. 심지어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도 농담을 생각하곤 했다. 그리고 우리는 경기에 나서서 승리를 거뒀다."
"감독으로서 그를 만난 적은 없지만, 내가 그를 최고라 하는 이유는 간단해. 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키와 카펠로의 장점을 모두 가진 감독이야."
"내 커리어 중 최고의 감독이다."
"안첼로티는 내가 지금까지 겪은 감독 중 최고다. 그는 유럽 최고의 클럽만을 이끌어 온 명장이다. 안첼로티 감독은 선수가 가진 힘을 최대한 끄집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친애하는 안첼로티 감독님. 나는 승리를 원합니다. 모든 대회에서 우승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안첼로티, 당신이 필요합니다."
"카를로, 감독님은 제 아버지입니다."
"이미 동료들과 안첼로티 감독의 뛰어남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그는 최고의 감독이다. AC 밀란과 레알 마드리드를 지휘하며 챔피언스 리그에 큰 족적을 남겼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분명 세계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이지만, '''단연 최고는 따로 있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는 바로 카를로 안첼로티다."
"안첼로티 감독은 많은 걸 가르쳐주셨다. 그는 매우 따뜻한 사람이다. 나를 비롯해 PSG 선수들은 그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다. 언젠가 다시 안첼로티 감독의 밑에서 축구를 하고 싶다."
"아르센 벵거 감독과 안첼로티 감독은 비슷하다. 선수들에게 최선을 끌어내려고 하며, 각각의 모든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려 한다. 컵 대회에서는 어린 선수들을 내보내고, 스쿼드의 모든 선수들을 활용한다. 두 감독을 만난 것은 나에게 행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