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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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역임 직책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필립 람
(2010~2014)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2014~2016)


마누엘 노이어
(2016~2022)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수상 이력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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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 · 2012-13
파일: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로고.svg

파일:Kicker 로고.svg

파일:ESM.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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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3 ESM 올해의 팀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기타 정보







독일의 前 축구 선수


파일:슈바인슈타이거 월드컵 우승.jpg

이름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Bastian Schweinsteiger

출생
1984년 8월 1일 (39세)
독일 바이에른주 오버바이에른현 콜버모어
국적
[[독일|

독일
display: none; display: 독일"
행정구
]]

신체
183cm / 체중 83kg
주발
오른발
직업
축구 선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 은퇴)
소속
유스
FV 오베라우도르프 (1990~1992)
TSV 1860 로젠하임 (1992~1998)
FC 바이에른 뮌헨 JT (1998~2002)
프로
FC 바이에른 뮌헨 II (2001~2005)
FC 바이에른 뮌헨 (2002~2015)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15~2017)
시카고 파이어 SC (2017~2019)
국가대표
121경기[1] 24골 (독일 / 2004~2016)
정보 더 보기 [ 펼치기 · 접기 ]
가족
토비아스 슈바인슈타이거

아내 아나 이바노비치

아들 슬하 2남
SNS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1. 개요
2. 선수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4. 주요 기록들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5.3. 수훈
5.4. 출전 기록[2]
6. 슈바인슈타이거에 대한 말, 말, 말
7. 여담
7.1. 흑역사
7.1.1. 파이터 기질
7.2. 소녀감성
7.3. 동료와의 관계
7.4. 축구 이외의 능력
7.5. 외모



1. 개요[편집]


독일 국적의 前 축구 선수. 선수 시절 포지션은 미드필더[3]였다.

2003년 프로 무대에 데뷔하여 바이에른 뮌헨에서 14년 동안 활약하며 2012-13 시즌 트레블을 비롯해 UCL 1회 우승과 분데스리가 8회 우승을 이끌었다. 또한 독일 대표팀에서도 2014 월드컵 우승에 기여하였다.


2. 선수 경력[편집]



2.1. 클럽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클럽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2. 국가대표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국가대표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플레이 스타일[편집]



바이에른 뮌헨과 독일 국가대표팀의 공격 방향, 템포 조절, 공수 밸런스를 책임졌던 중앙 미드필더수비형 미드필더다. 팀이 수비진영에서 공격을 만들어갈때는 최종수비라인까지 내려와 롱패스를 쏴주고, 상대 압박 밀도를 보고 공격 활로가 될 선수에게 볼배급을 해주며, 필요에 따라 자신이 상대 박스까지 침투해 골과 어시스트까지 쏟아냈다. 여기에 최정상급의 압박 능력까지 보유했다. 탈압박 능력은 모드리치나 이니에스타 급[4]까진 아니지만 한두명 정도 압박은 간단한 탈압박 스킬로 벗겨내 볼을 잘 간수했다.[5] 말 그대로 팀의 공수 밸런스를 책임지는 중원의 살림꾼으로, 특히 2010년대 초반 슈바인슈타이거의 전성기때는 슈바이니가 있고 없고의 차이로 인해 팀 클래스가 확연하게 차이나는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1984년생으로 같은 해에 태어난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아르연 로번 등과 함께 뛰어난 실력과 노안(...)을 적절히 겸비한 선수로 평가받는다. 창조성 넘치는 플레이와 뛰어난 드리블, 패스 능력을 갖춘 것으로 유명하다.

본래 왼쪽 윙어로 자주 뛰었지만 경기 중 기복이 심하고 스탯이나 쌓는 플레이를 일관하며 점점 계륵화되어갔으나 루이 판할이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으로 부임한 2009-10 시즌에 중앙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하면서 이때부터 바이에른과 독일 중원의 핵심이 되었다. 특히 윙어로 오래 뛴 게 좋은 영향을 끼쳐서 안 그래도 많은 활동량으로 경기장의 중앙을 앞뒤로 뛰어다니는 건 물론 활동범위도 심히 넓어 공격, 수비시 중앙 측면 가리지 않고 단단하게 아우른다. 말 그대로 종횡을 가리지않고, 무진 뛰어다니며 많은 영향력을 끼친다. 윙어일 때는 결코 빠르지는 않은 스피드의 한계 탓에 돌파를 잘 못했지만 그 대신 몸은 단단했는데, 중앙으로 오고 나서는 볼을 돌리는 와중에 상대의 위치나 바디밸런스 상태에 따라 한두 명 정도는 손쉽게 돌파 해내기도 한다.[6] 특히 강력한 중거리 슈팅 외에도 숨겨진 장점을 꼽자면 반대쪽 윙에서 올라오는 볼을 순식간에 돌아들어가며 잘라먹는 솜씨 하나는 월드클래스였다. 정말 경기를 보면 반대편에서 어느새 돌아들어온건지 어딘가에서 '번쩍' 나타나 (받아먹기로) 골을 넣으며 팀을 구해내는게 일상 다반사였다. 물론 그 정도의 판단력이나 결정력, 활동량도 뒷받침되었다는 얘기.

정확한 볼배급과 패스 센스, 수비력, 활동량, 대포알같은 중거리슛 모두 최상급이다. 허나 플레이에 기복이 있는데 다른 말로 하면 큰 경기에 약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애매하다. 슈바이니의 합류 이후 바이에른이나 독일 대표팀이 공식 대회에서 중요한 순간 패배할 때는 항상 슈바이니가 제 기능을 못했고 그로 인한 균열이 경기력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7] 그렇다고 슈바이니가 결장하면 팀 벨런스가 아예 나락으로 치닫는데, 2011-12 시즌 슈바이니가 장기부상으로 이탈하자 토니 크로스아나톨리 티모슈크, 루이스 구스타보, 토마스 뮐러등은 모두 슈바이니의 공백을 메우는데 실패했고, 선두자리를 도르트문트에게 빼앗겼다. 이래저래 아쉬운 면이 있긴 하면서도 대체 불가능한 선수. 바이에른의 챔피언스리그 우승 시즌도 4강쯤 올라가면 슈바이니가 중심잡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곧 바이에른의 경기력이 회복되는데 걸리는 시간인 경우도 있었다. 도르트문트와의 결승전에서는 전반에 슈바이니가 압박에 시달리며 지워지자 바이에른의 경기력이 그야말로 시망이었는데, 점점 위치를 잡으며 압박을 벗겨내자 경기력이 서서히 살아났다.[8]

이런 큰 경기에서의 기복은 2012-13 시즌에 접어들면서 챔스 유벤투스 FCFC 바르셀로나전에서 맹활약하면서 거의 해소되었고, 최근에는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수비형 미드필더로 맹활약하며 큰 경기에서 팀의 중심을 잡아줄, 감독이 꼭 필요로 하는 선수 중 한 명이 되었다.

또 한 가지는 2011-12 시즌 막판과 UEFA 유로 2012에서의 부진에서 알 수 있듯 부상당해서 돌아오면 폼을 회복하는데 시간이 오래걸린다는게 큰 단점이다. 이 점 때문에 클래스에 비해 전성기 기량이 하락하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희한할 정도로 2년 주기 부상에 시달리는데, 격년 주기로 한창 폼이 오르다가 시즌 중반에 부상 당해서 침체되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2013-14 시즌도 2011-12 시즌만큼이나 장기부상으로 떨어진 폼을 회복하는데 꽤나 애먹고 있는 실정. 게다가 펩 과르디올라 체제에서는 거의 세르히오 부스케츠같은 롤을 수행하다보니 이전 같이 본인이 빌드업 대부분을 책임지던 시절에 비해 양질의 패스 솜씨와 중거리슛도 보기 어려워졌다.

단점이 하나 더 있는데, 패널티킥이 약하다는 점이다. UEFA 챔피언스 리그/2011-12 시즌/결승전에서 승부차기 5번 주자로 나왔으나 실축해 이로인해 FC 바이에른 뮌헨은 챔스리그 우승을 했으며, 유로 2016 8강 역시 이탈리아 상대로 승부차기 실축을 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독일이 탈락할뻔한 아찔한 순간을 맞이한 끝에 6-5로 겨우 이겼을 정도로 골키퍼와 1:1 상황에서 슈팅 능력이 부족하다.

2014년 이전에는 전천후 미드필더로서 공격지원과 볼배급, 중거리슈터 역할을 했다면 나이가 든 현재는 포백 바로 앞에 위치해 공격에 이따금씩 관여하긴 하지만 상대 공격을 차단하는 역할을 중점적으로 맡고 있다. 일단 팀이 짧은 패스 위주로 바뀌다보니 슈바이니의 롱패스가 크게 빛을 발할 일이 없어 필립 람토니 크로스가 대부분 볼배급을 담당하고 슈바이니는 가끔씩 롱패스나 중거리를 때릴 뿐 주로 포백 바로앞에서 진공청소기같은 역할을 하거나 순간적인 박스 침투로 마무리를 짓는 롤을 담당하고 있다. 뭔가 이전엔 중거리 잘때리는 전천후 미드필더였다가 2013-14시즌에 와서 공격->수비 위주로 역할변화를 한 이력은 뭔가 스티븐 제라드와 흡사하다. 특히 8강 프랑스전과 4강 브라질전은 이런 슈바이니의 수비형 미드필더로써의 능력을 유감없이 잘 보여줬다.

아래는 슈바인슈타이거의 플레이 스타일을 보여주는 스페셜 영상. 공-수 양면에서 거의 만능형이다. #

4. 주요 기록들[편집]


역대 스텟은 바이에른 뮌헨에서의 통산 기록은 500경기 출전 68골 101어시스트[9]를 올리고 있어 바이에른의 전설 프란츠 베켄바워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수비형 미드필더 치고는 꽤 스텟이 좋은 편인데, 물론 2009년 이전까지는 윙어로 뛰었다보니 어시스트가 많을 수 밖에 없다.

독일 국가대표 통산 기록은 (2016년 7월 기준) 120경기 출전 (A매치 최다 출전 4위 & 역대 5번째 센츄리 클럽) 24골 40어시스트이며, 그보다 많은 출전을 기록한 선수는 마테우스, 클로제, 포돌스키밖에 없다. 월드컵에서는 20경기에 출장했고 국가대표 메이저 대회 총합 38경기에 출장하는 기록을 남겼다.

  • 역대 최다 포칼 우승 - 7회 우승(역대 포칼 47경기 9골 10어시스트, 필립 람과 더불어 최다 우승 기록)

  • 역대 독일 선수 中 공동 최다 메이저 대회 우승 기록 - (리가, 포칼, 챔스 합산) 16회 우승 기록 중. 2위는 15회의 올리버 칸.

  • 현역 유럽 빅리그 선수들 중 최다 클럽 메이저 대회 우승 기록 보유 - 19회의 라이언 긱스, 17회의 폴 스콜스, 16회의 하비에르 사네티가 차례로 은퇴하며 30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슈바인슈타이거가 1위로 올라섰다.


  • UEFA 챔피언스 리그 역사상 단일 경기 가장 많은 볼터치를 달성한 선수로 기록 - 156회, 2014-2015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6차전 CSKA 모스크바와의 홈경기에서 달성. 경기는 바이에른이 3대0 승리했으며 슈바인슈타이거는 1도움을 기록했다.

  • 독일 국가대표 주전으로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4강 이상 진출 - 대한민국에게는 신화로 남아있는 월드컵 4강 무대를 밥먹듯이 밟았다. 주전으로 도약한 첫 대회인 06 독일 월드컵에서 3위, 08 유로 준우승, 10 남아공 월드컵 3위, 12 유로 4강, 14 브라질 월드컵 우승, 16 유로 4강. 독일 국가대표의 암흑기를 끝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열기까지 했다. 월드컵에서는 2골 6어시스트, 유로에서는 3골 5어시스트 기록했다. [10]


5. 기록[편집]



5.1. 대회 기록[편집]



  • FC 바이에른 뮌헨 (2002~2015)
    • 분데스리가: 2002-03, 2004-05, 2005-06, 2007-08, 2009-10, 2012-13, 2013-14, 2014-15
    • DFB-포칼[11]: 2002-03, 2004-05, 2005-06, 2007-08, 2009-10, 2012-13, 2013-14
    • DFL-슈퍼컵: 2010, 2012
    • DFL-리가포칼: 2007
    • UEFA 챔피언스 리그: 2012-13
    • UEFA 슈퍼컵: 2013
    • FIFA 클럽 월드컵: 2013




5.2. 개인 수상[편집]




5.3. 수훈[편집]


  • 은월계잎 훈장[12]: 2006, 2010, 2014
  • 바이에른 공로장: 2018

5.4. 출전 기록[13][편집]


시즌
소속팀
리그

대륙
기타
총계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2002/03
FC 바이에른 뮌헨
14
0
2
1
2
1
1
0
0
-
-
-
16
2
2
2003/04
26
4
5
4
0
0
3
0
0
-
-
-
33
4
5
2004/05
26
3
6
5
0
2
7
1
1
-
-
-
38
4
9
2005/06
30
3
3
5
0
2
7
0
3
-
-
-
42
3
8
2006/07
27
4
6
5
0
1
8
2
1
-
-
-
40
6
8
2007/08
30
1
9
6
1
0
12
0
3
-
-
-
48
2
12
2008/09
31
5
13
4
2
0
9
2
2
-
-
-
44
9
15
2009/10
33
2
2
4
1
1
12
0
0
-
-
-
49
3
3
2010/11
32
4
7
5
2
1
7
2
2
1
0
0
45
8
10
2011/12
22
3
3
3
1
0
11
1
2
-
-
-
36
5
5
2012/13
28
7
5
5
0
2
12
2
4
-
-
-
45
9
11
2013/14
23
4
5
4
1
0
8
3
0
1
0
0
36
8
5
2014/15
20
5
4
2
0
0
6
0
4
-
-
-
28
5
8
누적
342
45
69
55
10
9
103
13
22
2
0
0
500
68
100
시즌
소속팀
리그

대륙
기타
총계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2015/16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8
1
1
3
0
0
10
0
1
-
-
-
31
1
2
2016/17
-
-
-
3
1
1
1
0
0
-
-
-
4
1
1
누적
18
1
1
6
1
1
11
0
1
-
-
-
35
2
3


6. 슈바인슈타이거에 대한 말, 말, 말[편집]


파일:fcbhippine_v=1535485562148.webp

슈바인슈타이거는 경이로운 선수다. 가장 효과적인 축구를 하고 있으며, 대표팀 내 최고의 선수라고 할 수 있다.

- 프란츠 베켄바워


그는 나에게 로이 킨을 연상시킨다.

- 파트리크 비에라


내게 있어서 아주 위대한 선수다. 나는 그의 플레이를 좋아한다.

- 지네딘 지단


슈바인슈타이거는 존중받을 자격이 있는 선수다. 그는 큰 경기에서 이기는 법을 알고 있다.

- 올리버 칸


사비 에르난데스? 필요없다. 바이에른엔 슈바인슈타이거가 있지 않은가.

- 유프 하인케스


독일의 중심은 단연 슈바인슈타이거다. 그는 경기의 속도를 조율할 줄 아는 선수다. 그의 출장은 경기에 큰 영향을 미친다.

- 토마스 헬머


독일은 슈바인슈타이거가 허리에 있을 때 최고의 안정성을 자랑한다.

- 주제 무리뉴


그는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이다. 그러나 골프는 영 꽝이다.

- 토마스 뮐러


모든 사람들이 아는 바대로 슈바인슈타이거는 환상적인 선수다. 우리 팀에 합류한 후 그는 환상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팀의 모든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그처럼 경험이 많고 성공한 선수를 보유하는 것은 팀에 큰 도움이 된다.

- 웨인 루니


슈바인슈타이거는 세계 최고다. 그에게서 많은 점들은 배울 수 있다고 확신하다. 그는 항상 볼을 안전하게 소유하고 그의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미리 파악하고 있다.

- 안데르 에레라


슈바인슈타이거는 특별한 무언가를 보유하고 있는 선수다. 그는 팀에 경험과 자신감을 가져다준다. 타이틀을 따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아는 선수다.

- 알렉스 퍼거슨


그가 여자였었다면, 내가 그를 가졌을 것이다.[14]

- 루카스 포돌스키



7. 여담[편집]




  • 바스티, 슈바이니, 푸스발고트[15][16], 슈슈[17][18]의 별명을 가지고 있다.

  • 클럽과 국가대표팀에서 부주장을 역임했었다. 주장은 절친인 필립 람. 브라질 월드컵 우승 이후 필립 람이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해 이제는 슈바인슈타이거가 주장이다. 등번호는 국대에서는 7번을 달고 나오지만, 클럽에서는 바이에른 데뷔 시절부터 지금까지 등번호 31번을 달았다.[19]

  • 2009년을 기점으로 유럽 정상급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중이지만 유난히 FIFA FIFPro 월드 XI, UEFA 올해의 팀과 인연이 없다.[20] 2010년 FC 바이에른 뮌헨의 더블 우승과 챔스 준우승을 이끈 동시에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도 맹활약해 3위를 이끌고 최다 어시스트를 기록했으나 하필 차비 에르난데스안드레스 이니에스타가 챔스에선 죽쒀도 월드컵을 우승하고, 베슬리 스네이더르는 아예 트레블과 월드컵 준우승에 일등공신이 되면서 밀려버렸다.[21] 2013년에는 바이에른의 독일클럽 최초의 트레블을 이끄는데 핵심적인 활약을 펼쳤으나 그 시즌 바이에른에게 7:0으로 대파당했고 라리가 하나만 우승한데 그친 사비에게 또다시 월드베스트 중미 자리를 뺏겨 독일 축구팬들의 엄청난 원성을 샀다.[22] 2014년 또한 팀의 더블과 독일의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우승의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나 대회동안 대부분의 스포트라이트를 대표팀 내에서는 토니 크로스, 대표팀 외부에서는 챔스 우승과 월드컵 준우승을 기록한 앙헬 디마리아에게 내줬기도 했지만, 무관에 그치고 월드컵도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안드레스 이니에스타가 그대로 선정되어 또 한번 원성을 샀다.

  • 헤더 슛으로 골대를 맞추는 경우가 정말 많다. 특히 10-11시즌에는 헤더로만 골대를 7번 강타했다.

  • 그의 형 토비아스 슈바인슈타이거는 30살이 되어서 뒤늦게 축구를 시작했다.(축구선수가 되기 전에 독일 국가대표 스키선수였다고한다.)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형이 축구선수라는 사실을 알아내자 팀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토비아스 슈바인슈타이거를 2012년 3월 부로 바이에른 뮌헨의 2부리그 팀으로 영입했다. 이로써 형제가 같은 팀에서 뛰게 되었는데 형은 3부리그에서, 동생은 1부리그에서 뛰게 된다. 근데 2015년 동생이 바이에른을 떠났다. 하지만 형은 원래 맨유 골수팬이어서 오히려 이적을 환영했다. 그리고 토비아스는 바이에른 뮌헨 U-17 코치직을 맡았었는데, 그 기간동안 2016/17 U-17 분데스리가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현재는 함부르크 SV의 수석코치로 일하고 있다.

  • 대부분 그의 팬덤은 슈바이니의 원맨쇼나 다름없는 2006 독일 월드컵 3,4위전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중거리 슛으로만 3골을 만들어 낸 장면을 보고나서 반한 축구 팬들일것이다. 실제로 슈바이니는 미하엘 발락, 스티븐 제라드, 프랭크 램파드, 안드레아 피를로, 샤비 알론소 등 한 중거리 때린다는 선수들에게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중거리슛 능력을 지니고있고, 롱패스 능력이 지금처럼 일취월장하기 이전에는 중거리슛이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23] 안타깝게도 중거리슛팅을 지양하는 유프 하인케스펩 과르디올라 감독 체제하에서는[24] 확실한 상황이 아닐땐 최대한 슈팅을 자제하고 볼 배급에만 집중하고있어서 다소 아쉬워하는 팬들도 있다.

  • 슈바인슈타이거라는 그의 성은 독일어에서 한국어로 직역하면 '돼지 들어올리는 사람'이란 뜻이 되어 의미불명이 되지만(das Schwein = 돼지, steigen = 들어올리다) 실은 바이에른 지방의 방언에 Steige는 '우리'라는 뜻이 있다. 즉, '돼지우리'에 -er이 붙은, 즉 '돼지농장 소유주'를 뜻한다. 이 이름은 조상이 '돼지를 사육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25] 바이에른 지방은 현대에도 돼지를 많이 기른다고 한다.

  • 축구 외에도 농구를 매우 좋아한다. 자주 바이에른 농구클럽 경기를 보러다니거나 친구들, 팬들과 농구하는 사진을 자주 올린다. 득점 후 농구슛을 쏘는 셀레브레이션도 종종 보여준다.

  • 페널티 킥 트라우마가 있다. 이전까지는 강력한 킥력으로 바이에른과 독일의 주요 페널티킥 전담 키커였고 11-12 챔스 4강 레알 마드리드전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키커로 나와 바이에른의 승리를 확정지었지만, 결승전 첼시와의 경기에서 승부차기의 마지막 키커로 나와 골대를 맞추며 팀의 홈에서의 패배를 가져온 장본인이기에 많이 낙담했기 때문.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는 차원에서 2012 프리시즌중 리가토탈컵에서도 유프 하인케스가 승부차기에서 일부러 키커를 시켰는데, 여기서도 제바스티안 밀리츠의 슈퍼 세이브에 막히며 결국 본인이 페널티킥을 안찬다고 한다. 하지만 UEFA 유로 2016 8강전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1~5번 키커가 해결하지 못하자 주장인 슈바인슈타이거가 차게 됐는데 표정에서부터 상당히 부담스러워 하더니 그대로 홈런을 날렸다.[26]

  •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2009-2010 UEFA 챔피언스리그 이전까지는 국내에서 가장 과소평가된 독일선수 중 한 명이었다. 본래 포지션이 중앙미드필더가 아닌 왼쪽 공격형 미드필더및 왼쪽 날개였는데, 이 때의 활약상은 이름값에 비해 매우 실망스러운 정도이며, 맹활약을 했다고 평해진 2006 FIFA 월드컵 독일, UEFA 유로 2008을 제외하면, FC 바이에른 뮌헨에서의 활약은 기대이하의 활약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대 이하라기보다는 기복이 무지 심했다. 이후 바이에른에 루이 판할 감독이 부임한후, 중앙 미드필더로 보직이 변경된 이후 바이에른의 더블우승과 챔스 준우승, 월드컵에서 미하엘 발락의 공백을 완벽히 메워버리며 3위를 이끄는 등 대표팀, 소속팀에서 대체 불가능한 자원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 자타공인 포르투갈 킬러다. 첫 만남이었던 2006 FIFA 월드컵 독일 3,4위전에서 슈바이니는 중거리로만 2골을 뿜어내는 등 혼자 3골을 만든 원맨쇼를 펼치며 포르투갈을 3:1로 격파했고, UEFA 유로 2008 8강에서 독일과 포르투갈이 다시 맞붙었을때에도 슈바이니는 빠른 침투로 루카스 포돌스키의 패스를 멋진 골로 연결하는 등 홀로 1골2도움 맹활약을 펼치며 우승후보 포르투갈을 침몰시켰다. UEFA 유로 2012에서도 슈바이니는 안정적인 포백보호와 호날두에 대한 철저한 마크로 독일의 1:0 승리에 공헌했다.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독일이 4:0으로 대승을 거뒀지만, 슈바이니는 부상여파로 결장했다.

  • 리오넬 메시와의 맞대결에서 대부분 승리했다! 물론 예외도 있다.[27] 2006 FIFA 월드컵 독일 8강에서 독일은 1-1 무승부에서 승부차기 끝에 승리를 거두었지만 메시는 출전하지 않았고, MoM으로 선정되었던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8강 리턴 매치에서 슈바이니의 활약에 메시의 드리블과 슛이 번번이 끊기는 등 힘을 못쓰며 독일은 아르헨티나를 4-0으로 관광보냈고, 2012-13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 1차전에서도 하비와 함께 바르샤 공격진을 원천봉쇄하며, 메시에게 단 한 개의 유효슈팅도 허용하지 않았다.[28] 역시 이 경기도 바이에른이 4;0으로 승리했다. 친선경기지만 2013년 프리시즌 경기 맞대결에서도 2:0으로 승리했다. 그리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에서도 중원에서 상대의 거친 육탄전에도 굴하지 않고 초인적인 활동량과 수비력을 보여주며 메시의 아르헨티나를 누르고 마침내 월드컵을 들어올렸다.

  • 슈바인슈타이거가 있는 독일과 없는 독일은 차이가 매우 크다.[29]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공격에만 급급한 나머지 뒷공간이 뚫리는 상황이 전후반 내내 발생했는데, '이럴 때 수비와 볼 배급을 할 수 있는 수비형 미드필더가 있었더라면..'라고 독일 팬들은 생각했었다. 선수층이 두터운 독일에서도 그 정도로 귀중한 자원이었다고 볼 수 있다.[30] 그리고 그 차이는 결국 3차전 카잔의 치욕이라는 대형 사고의 원인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 은퇴 이후에는 해설자로 방송에서 활약하고 있다. 독일 내에서 평가가 좋은지 분데스리가의 주요 경기나 챔피언스 리그 경기, 그리고 독일대표팀 경기를 해설하고 있고 경기 전후로는 선수들이나 감독과 인터뷰를 진행한다.[31]

  • 맨유에 대한 애정도가 높다. 맨유를 떠난 이후에도 맨유를 응원하거나 맨유 경기 시청을 인증하는 트윗을 상당히 많이 올린다. 맨유에서 활약이 좋지 못했고, 태도 문제로 지적을 받기도 하다가 결국 주제 무리뉴 부임 이후에는 완전히 전력 외 취급을 받으며 마무리까지 그다지 좋지는 못했음을 생각하면 꽤나 의외의 일이다.


7.1. 흑역사[편집]



7.1.1. 파이터 기질[편집]


  • 데뷔 초기에는 다혈질적인 면이 있어서 필드 위에서 문제를 일으킨 적이 몇번 있다.

  • UEFA 유로 2008 당시에는 크로아티아와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 종료직전에 상대 선수를 마치 레슬링하듯이 밀쳐버려서 다이렉트로 퇴장당했다. 뒤지고 있는 상황인데다 상대가 불필요하게 위험한 백태클을 해서 화날만한 상황이었기에 심정이 어땠을지 공감은 가지만 어쨌든 그 순간 자제를 하지 못하고 일을 저질러서 독일의 조별리그 탈락 위기를 불러왔다. 다행히 8강전에서 돌아와 포르투갈을 상대로 1골 2도움을 올리며 사죄했다.

  • 2010-11 시즌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와의 16강전에서 마르코 마테라치와 주먹다툼 직전까지 갔다. 발단은 슈바이니의 언론과의 인터뷰가 과장/와전되어[32] 그걸 핑계로 물고 늘어진 마테라치가 안그래도 후반 막판 통한의 역전골을 먹혀 심기가 불편한 바이에른 벤치와 슈바이니를 향해 비웃는 말을 연거푸 날렸기 때문이라고. 결국 멱살을 잡고 맞짱뜨기 직전에 양팀 선수들의 제지로 무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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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그래도 분위기 안좋은데 거기에 기름을 붓는 마테라치. 삿대질하며 면전에 대놓고 욕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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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드는거 뿌리치고 최대한 자제하고 가려는데 3~4차례 연거푸 몸싸움을 거는 마테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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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예전에 한솥밥먹던 동료인 루시우가 와서 달래는 중이다. 해당 경기 VOD를 보면 경기 종료 직후 두 선수의 충돌이 나오는데, 확실히 슈바이니가 먼저 가만히 있는 마테라치에게 주먹을 휘두르기 위해 접근한 것이다. 둘 다 다행히도 직접적인 가격으로 징계를 먹진 않았지만 거의 폭발직전의 몸싸움까지 간 일촉즉발의 상황이었고, 옆에있던 필립 람과 라노키아가 재빨리 달려들어 갈라놓지 않았다면 진짜 싸웠을 가능성이 높다. 다행히 인터밀란 선수들이 하나가 되어 마테라치를 끌어냈고, 옆에있던 사무엘 에투와 전 바이에른 뮌헨 동료였던 루시우가 등을 감싸면서 슈바인슈타이거를 끌어냈다. 슈바이니는 곧바로 "(2006 월드컵 결승전에서 마르코 마테라치에게 박치기를 날린) 지네딘 지단의 심정이 어땠을지 완전히 이해했다"라며 맞받아쳤다. 반면 마테라치는 이에 대해 슈바인슈타이거가 먼저 시비를 걸었다며, 그가 "바이에른 뮌헨이 레알 마드리드에게 패한 것에 대한 화풀이를 인터밀란에게 해야 한다."[33]라든지, "AC 밀란에서 뛰는 선수들이라면 좀 알지만, 인터밀란 선수들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등의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 그런데 바이에른과 레알 마드리드 CF는 챔스 결승에서는 단 1회도 만난 적 없다. 당시 기준으로 가장 최근에 맞붙은게 06/07 시즌으로, 바이에른 뮌헨이 이겼다. 최근에 레알에게 패해 탈락한 것도 03/04시즌 합계 1:2로 패한, 무려 7시즌이나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8강전을 남겨두고 아무런 근거없이 아르헨티나라는 나라 자체를 싸잡아 비난해서 물의를 일으켰다. 아르헨티나 국민성이 개판이라 매 경기마다 무임관람을 하려고 발악한다느니 아르헨티나 팀이 존경하면 안된다느니 하는 식으로 온갖 시비를 걸었다.# 이 발언이 원인이 되어 독일이 4강에 진출하자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싸가지없는 슈바인슈타이거가 월드컵 우승을 하면 안된다며 스페인에게 제발 독일의 우승만은 막아달라며 부탁했다. 그리고 그 월드컵은 스페인이 우승했다. 이토록 슈바인슈타이거는 타고난 어그로꾼이며 이 분야에서 매우 악명높다. 그래서 2006년 월드컵에서는 오해를 사기 딱 좋은 상황에까지 몰렸다. 이걸로 슈바인슈타이거는 독일 선수들 중 가장 이미지가 떨어지는 선수가 되었다.[35]

  • 브라질 월드컵이 끝나고 얼마 후 뮌헨의 Frauen26이라는 펍에서 팬들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욕하는 내용[36]이 들어있는 응원가를 부르는 영상이 유투브에 올라 멘탈문제에 많은 지목을 받으며 안그래도 개판인 이미지가 많이 훼손되었다. 왜냐하면 슈바인슈타이거가 그냥 일개 선수였다면 원클럽맨으로써 라이벌 도르트문트를 디스하는 노래를 부르는건 그냥 도발쯤에 지나지 않고,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필립 람이 은퇴했기에 차기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1순위로 지목되고있는 상황이라 라이벌 클럽들의 화합을 주도해야하는 입장이다. 그리고 월드컵 우승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아직 경기를 치르지도 않았는데 별다른 이유 없이 이렇게 라이벌 의식을 조장하는것은 전혀 신중하지 못했다고 많이들 까고있다. 물론 슈바인슈타이거는 자신의 공식 페이스북에 재빨리 사과글을 올리고, 직접 사과를 하는 영상까지 페북에 업로드해서 도르트문트 팬들과 선수들에게 사죄했고, 이런 발빠른 대처와 진심어린 사과에 독일 내에서는 그렇게 크게 불거지는 분위기까지는 아니다.

  • 그러나 실제로 슈바이니는 월드컵 기간 내내 부주장으로써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선수들을 매우 친근하게 대해주며 라이벌 관계속의 긴장감을 허물고 팀이 하나로 화합될 수 있게 힘썼으며,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로만 바이덴펠러, 케빈 그로스크로이츠 등 벤치멤버들까지 일일이 다독여주고 옆에서 도와줬다고 한다.[37] 태어났을때부터 진성 보루센빠로 유명한 "사냥개" 그로스크로이츠도 사건 이후 인터뷰에서 슈바인슈타이거가 월드컵 내내 바이덴펠러, 그로스크로이츠, 후멜스, 에릭 두름 등 라이벌 클럽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선수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줬으며 벤치 멤버들까지 일일이 챙겨주는 등 아직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고,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고 슈바이니를 옹호했다. 아무래도 사건 장소가 팬펍이었다보니 분위기에 휩쓸렸거나 술에 취했거나 했을 듯 하다. 역시 술이 웬수다. 그나마 평소에 잘해서 쉴드를 받을 수 있었다.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독일을 3-1로 누른 전설의 경기에 당시 독일 대표팀의 해운대의 굴욕 당시 스무살짜리 슈바이니가 모 횟집에서 수족관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사진이 굴러다닌다. 일명 슈바인슈타이거 꽃게탕 사건이다. ###


7.2. 소녀감성[편집]


전형적인 게르만 상남자의 포스를 뿜어내는, 군복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얼굴에다가 심지어 데뷔 초에는 은근히 다혈질인 것으로도 이름이 있덨던 슈바이니였다. 하지만 알고보면 원래 성격은 소녀감성인데 그 중 흑역사로 남은 일화는 아래와 같다.

  • 갓 데뷔했을 적에 당시 동료였던 올리버 칸이 샤워할 때 자기 수건까지 써버렸는데, 칸에게 차마 자기 수건까지 쓰지 마라는 말을 못했다고 한다.

  • 2011-12 시즌, 홈구장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열린 첼시 FC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슈바이니는 연장전 아르연 로번이 페널티 킥을 찰 때 차마 뒤돌아보지 못하고 혼자 하프라인을 넘어 본인 골대 앞에 뒤돌아서서 앉아있었고, 결국 로번은 실축했다. 그리고 그 경기에 승부차기 5번째 키커로 나섰는데, 순간 멈칫거리며 찬 슛은 체흐의 손끝에 스친 후 골대에 맞고 튕겨나왔다.

  • 이런 아픔을 겪어봐서인지 경기 승리 이후 상대팀 선수들을 가장 진심으로 위로해주는 장면이 카메라에 많이 잡히는 선수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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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고 UEFA 유로 2016에서 소녀감성이 승부차기에서 다시 폭발하고 말았다. 독일의 5번째 키커로 나왔는데, 자신이 넣으면 4강 진출이 확정되는 상황에서 슛이 골대 위로 나간 것. 참고로 이때까지 10명의 키커 중 외질은 골대, 토마스 뮐러는 부폰에, 레오나르도 보누치는 노이어에 막히고 시모네 자자, 슈바이니는 하늘로 공을 날렸다. 즉 10명 중 6명 실축했다. 결국 양팀의 9번째 키커까지 차고 나서야 독일이 승리하면서 그나마 한숨을 돌리게 됐다.


7.3. 동료와의 관계[편집]


  • 같은 독일 국가대표고 같은 클럽에서 뛰었던 루카스 포돌스키와 매우 절친인걸로 유명하다. 유망주 시절부터 독국의 주전으로 활약해왔던지라 트레이닝이나 이벤트 사진을 보면 둘이 항상 붙어있다. 둘이서 생산해낸 온갖 개그짤과 영상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 밖에도 라이벌 팀이든 어느 팀이건 가리지 않고 두루 친한 인맥을 가지고 있어서, 그 덕에 UEFA 유로 2008 즈음을 기점으로 해서 종종 대표팀의 주장완장을 차기도 했고, 2010년부터는 클럽팀과 국대에서 부주장을 맡고 있다.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이 끝나고서는 둘이 키스를 하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둘이 키스하는 짤은 독일 대표팀 트위터 계정에 발렌타인 데이를 기념하는 트윗에 업로드되었다.#

  • 국대 데뷔 후부터 포돌스키 외에 미하엘 발락과도 매우 친했는데, 발락이 바이에른 선배인 동시에 국대 선배로서 잘 챙겨줬다고 한다. 특히 2006 월드컵이나 유로 2008 유럽 예선을 보면 프리킥도 번갈아가면서 찼고 중거리슛도 한명이 어시해주면 번갈아가면서 넣었다.[38]

  • 브라질 월드컵을 기점으로는 우승 경쟁팀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골키퍼이자 부주장 로만 바이덴펠러와 절친이 된듯하다. 독일국대 전훈이나 브라질 월드컵 내내 사진찍히는걸 보면 둘이 붙어있다. 독국팬들은 폴디가 외질과 바람피우자 슈바이니도 맞바람 피우는거라며 우스갯소리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밖에 2000년대 말 리그와 컵에서 피터지게 싸웠던 FC 샬케 04 선수들과도 친분이 두텁다.

  • 인맥관계 따지려면 항목을 하나 더 만들어야할 정도로 넓다. 전설의 골키퍼 올리버 칸과도 친했고, 이전 바이에른의 전설들인 사무엘 쿠포르, 로이 마카이 등과도 친했다. FM에서 친밀도 항목에서도 07까지는 여전히 올리버 칸이 존재했을 정도다. 나이가 들면서 감독들과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며 필드 위의 리더 역할을 착실히 수행하고 있다. 하비 마르티네즈도 스패니쉬 선수의 쉽지 않은 독일 진출이었는데 슈바인슈타이거의 도움을 많이 받아 팀에 잘 적응할 수 있었다고 한다.

  • 독일 내에서의 원만한 인간관계와는 달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서는 동료들과 소원한 관계였다는 설이 많다. 잦은 부상으로 경기 및 훈련을 소화하지 못하는 가운데, 부상 치료를 위해 뮌헨의 주치의를 자주 찾아가게 되었고 이러다보니 정작 맨유 경기 관람에도 불참하는 등 선수들과 인간관계를 쌓을 충분한 기회를 만들지 못한 듯 하다.[39] 게다가 감독이었던 루이 반 할이 이러한 부분에서 편의를 봐준 것이 다른 선수들에게 특혜로 비치는 등의 문제가 겹쳐서, 뮌헨의 레전드이자 독일국대의 심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맨유 내에서 팀내 위상은 따라주지 못한다는 평이다. 그래도 은퇴 이후에 맨유 경기가 있을때마다 응원하는 트위터를 올리는걸 보면 맨유에서의 기억이 나름 좋았던 듯 하다.


7.4. 축구 이외의 능력[편집]


  • 슈바인슈타이거는 영어를 영국인 수준으로 매우 잘한다. 영어로 의사소통이 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할 때 기자회견을 오직 영어로만 이끌어낼 정도였다. 거기서 슈바인슈타이거는 모국어인 독일어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40]


7.5. 외모[편집]


상당히 노안으로 유명하다. 위의 항목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알겠지만 유망주 시절부터 노안이었다. 그리고 "독일 사람" 이미지에 딱 맞는 선 굵고 무뚝뚝해보이는 외모가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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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독일 국방군 병사 피규어에 슈바인슈타이거의 얼굴을 박아서 시판한 업체가 생겨서 이 업체와 소송이 붙었다.# 저 피규어의 이름조차 슈바인슈타이거의 이름을 본딴 바스틴이다.


7.6. WAGs[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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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AGs가 이쁜 선수중 한명으로 평가받는다. 사라 브란트너(Sarah Brandner)와는 2007년부터 2014년 월드컵까지 사귀었다. 브란트너가 슈바인슈타이거와 사귀기 시작했을 때 나이는 18세이다. 실제로 WAGs 인기투표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인기가 많다. 이전 여자친구였던 다니엘라 아우마이어가 보기 드문 행적으로 뒤끝 찝찝하게 끝났기에 그런 슈바인슈타이거를 잘 보듬어주는 스타일의 사라는 안 그래도 미녀 모델인데 마음까지 착한 진정한 훈녀라는 평. 사라는 고참의 여자친구로서 남친과 함께 바이에른 선수들을 잘 챙기고 다니는 넓은 도량으로 사라에 대한 바이에른 팬들의 지지도도 높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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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월드컵 우승 후 한 달 만에 세르비아의 테니스 선수 아나 이바노비치와 열애설이 터졌다. 뉴욕 근교에서 슈바이니-이바노비치 커플의 비밀 데이트가 포착됐다. 슈바인슈타이거는 2014년 8월, 이비자 섬에서 열린 자신의 생일 파티에 여자친구인 모델 사라 브란트너를 초대하지 않았다. 이 날 생일 파티는 네이마르와 패리스 힐튼이 참석해 더욱 유명해졌지만, 그의 애인 브란트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또 슈바인슈타이거는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하고 다음 참가자로 이바노비치를 지명하면서 떡밥을 던지더니 결국 그 떡밥이 풀린 셈이다. 이미 브란트너와 결별하고 이바노비치와 사랑을 키워나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녀가 출전하는 윔블던 대회에 응원을 가기도 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정직하게 기사로 쓴 기자들은 제목에 낚인 수많은 팬들의 지탄을 받아야했으며 2016년 7월 12일에 결혼식을 올렸고 12월 28일 아나 이바노비치는 은퇴를 선언했다. 2018년 3월 시카고에서 아들을 출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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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출전 공동 4위[2] DFL-리가포칼은 2007년에 폐지, 2팀은 참여불가[3] 커리어 초창기에는 윙어세컨드 스트라이커를 오가며 뛰었지만, 루이 판할의 포지션 변경으로 인해 이후부터는 아예 미드필더로 전향했다. 특히 중앙 미드필더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에서 매우 뛰어난 활약을 펼쳤는데 유프 하인케스 체제의 4-2-3-1 포메이션에서 하비 마르티네스수비형 미드필더(딥라잉 플레이메이커)로 자주 출전했으며, 과르디올라 체제에서는 원볼란테 중앙 미드필더로도 뛰었었다. 이 포지션 변경이 신의 한 수라는 평가를 받았고 결국 월드클래스로 성장했다.[4] 사실 이 둘은 역대급 탈압박 능력을 보여주었다고 평가받는 선수들이기 때문에 이 둘과 비교하는건 조금 가혹할 수도 있다.[5] 흔히들 슈바이니를 과거 전형적인 독일스러운 투박한 스타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의외로 부드러움을 겸비했다.[6] 윙어 시절에는 닌자짓에 능했던 만큼 낮은 지점에서의 돌파나 간단한 탈압박 정도로 살짝 새겨들어야 한다.[7] 대표적인 예로 유로 2012 4강 이탈리아전 패배나 남아공 월드컵 4강 스페인전의 패배가 있다. 슈바이니가 상대의 집중견제에 시달려 경기장에서 지워지면 팀은 거의 패배의 길을 걸었다. - 그런데 스페인전 볼터치를 보면 그나마 슈바이니가 중원에서 볼키핑과 패스로 홀로 고분군투를 하며 독일을 하드캐리하는 입장이었고, 당시 점유율축구에 대한 대처법도 확실하지 않아 수비적으로 나온 뢰브의 전술의 패착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탈리아전 패배도 당시 슈바이니가 부상 복귀에서 얼마 되지 않아 폼이 떨어져있다보니 패배 책임을 슈바이니에게 전가하기도 애매하다. 사실 스페인전 패배의 원인은 독일 2선이 위축된 플레이로 슈바이니에 대한 압박이 자연스레 강해진 까닭이 크다. 독일 2선이 컨디션이 좋았으면, 그만큼 슈바이니에 가해지는 압박도 덜해졌을 것이다.[8] 물론 유념해야 할 점은 이 경기에서 도르트문트의 압박도 거셌지만 슈바인슈타이거는 경기 직전 트레이닝에서 마리오 만주키치와의 충돌로 아킬레스건에 부상을 입은채로 풀타임을 뛰었다.[9] 주요 3개 대회 외에도 슈퍼컵과 UEFA컵(현 UEFA 유로파 리그)까지 합산한 기록[10] 유로 2004에서도 3경기에 전부 출장했으나,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선 후반 23분경 교체 투입되었고 라트비아와의 경기에서도 후반전 시작하자마자 바로 투입되었기에 주전으로 보기엔 쬐끔 무리가 있다.[11] 2013-14 시즌 7번째 포칼을 우승하며 개인통산 역대 최다 포칼 우승자라는 기록을 세웠다. 2016년 필립 람 역시 7회 우승을 기록하며 공동 1위. 참고로 슈바인슈타이거는 분데스리가를 우승한 시즌에 모두 포칼을 우승했다. 슈바이니의 독일 내 대회 우승은 모두 더블이었으나, 2014-15 시즌 4강에서 도르트문트를 만나 포칼에서 탈락하면서 이 기록은 깨졌다.[12] 독일 정부에서 주요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선수들에게 수여하는 가장 명예로운 훈장이다.[13] DFL-리가포칼은 2007년에 폐지, 2팀은 참여불가[14] 커플 드립이 많이 나오는 슈바이니답게 포돌스키가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다[15] 독일어로 "축구의 신(Fussballgott)"이라는 뜻으로 바이에른 선수들 입장하기 전 이름을 외쳐줄 때와(Mannschaftsaufstellung), 골넣고 이름 외쳐줄 때(Toransage) 바이에른 팬들이 슈바인슈타이거에게 오랫동안 뒤에 붙여주던 별명이다. 장내 아나운서의 선창에 팬들은 다른선수들의 경우 이름만 답해주는데, 슈바인슈타이거는 BASTIAN 외치면 관중들은 SCHWEINSTEIGER FUSSBALLGOTT! 하고 외쳐준다. 다른 선수는 없고 슈바인슈타이거만 저렇게 해준다. 그 정도로 뮌헨 팬들의 슈바인슈타이거를 향한 애정이 각별했다.[16] 2018년 8월 28일, 슈바인슈타이거가 바이에른 뮌헨 명예의전당에 등록되었는데, 그의 칭호가 바로 이것이다.[17] 언론이나 팬들은 슈바이니(Schweini)라고 많이 칭하지만 본인은 뭔가 돼지 같다며 별로라고 한다.(Das Schwein: 돼지) 그냥 돼지라는 의미만 가지고 있어도 어감이 별로이겠지만 독일어에서 schwein이라는 단어는 한국어에서 '개'와 같이 안좋은 의미의 접두사 및 욕설로 애용되는 단어이다. 그래서 자기 애칭을 바스티(Basti)로 불러주길 바란다고. 하지만 워낙 오랜시간 듣다보니 그냥 슈바이니로 굳어져 버렸다. 대한민국 팬들 한정으로는 바인타이거의 뭔가 독일스러운 슈를 두개 따서 슈슈라고들 많이 부른다.[18] 한국에서는 특유의 어감 때문인지 멋있는 이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으나 독일인들은 슈바인슈타이거를 들을 때 Schweinbesteiger(pig f***er라는 뜻)가 연상된다면서 별로 고상한 이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19] 독일 선수들은 원래 어린시절 데뷔할 때 달던 등번호를 끝까지 다는걸 선호하기도 한다.[20] UEFA 올해의 팀이야 전세계적인 팬 투표의 특성상 중앙 미드필더나 수비형 미드필더가 선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미드필더 4명이 공격형미드필더나 윙어로 채워지지만, 포지션별로 각 팀 주장/감독들의 투표로 선정되는 FIFA FIFPro 월드 XI의 경우는 얘기가 다르다. 뭐 각팀 주장/감독이 선정한다 해도 객관성이 떨어지고 인맥이 많이 작용하는건 마찬가지다.[21] 단 2010년은 저 세 선수가 가장 먼저 미드필더진에 거론되었고, 슈바인슈타이거가 선정되지 않은 것에 대해 논란은 거의 없었다. 차비와 이니에스타는 클럽 커리어는 FC 바르셀로나라리가 우승만 있었지만 대신 국가대표 커리어에서는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스페인의 첫 월드컵 우승에 엄청난 기량과 퍼포먼스로 크게 일조하였고, 스네이더르는 클럽 커리어로서는 두 말할 필요없이 인터 밀란세리에 A 클럽 최초 트레블의 최대 공신 중 한 명이었고,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엄청난 맹활약을 펼치며 네덜란드전승준 및 스네이더르 개인은 실버볼과 브론즈슈를 수상하였다. 이 세 선수가 2010년 매우 뛰어난 활약을 펼치면서 슈바인슈타이거로서는 선정되기 더욱 어려웠을 것이고 이는 같은 해 UEFA 올해의 팀 선정에도 해당되는 부분이다.[22] 단 이는 슈바인슈타이거가 2013년 후반기에 부상으로 결장이 잦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뽑히기 어려웠다는 의견들도 있다.[23] 스티븐 제라드미하엘 발락처럼 맞고뒈져라슛을 구사하는건 아니지만 상당히 묵직하고 코스가 좋다.[24] 중거리슛은 답답한 상황을 풀어갈 열쇠가 될 수도 있지만 라인을 끌어올린 상황에서 한순간에 역습을 허용할 수 있고, 볼 소유권을 상대에게 넘겨줄 확률이 높아 볼점유율을 중심으로 경기를 풀어가는 감독들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25] 이전에 번역기를 돌리면 '돼지 교배시키는 사람'이라고 나온 적이 있었는데 이 뜻으로 알고있는 축구팬들도 많다. 이는 영어권도 마찬가지이다.[26] 다행히 이 경기는 마누엘 노이어의 선방으로 독일이 이겼다.[27] 2008-09 챔스 8강에서 메시의 대활약에 바이에른이 털린 경기가 있지만 당시 슈바이니는 부상으로 인해 후반 교체출장했으며, 2014-15 챔스 4강에서도 MSN의 바르셀로나에게 완패했다.[28] 다만, 당시 메시는 햄스트링 부상 중이었다. PSG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8강 2차전에서도 팀을 구원하기 위해 교체로 투입되는 등, 이전부터 부상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기용되는 중이었으며,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바이에른 뮌헨에 의해 탈락한 후 이어진 빌바오와의 프리메라 리가에서, 또 다시 교체 투입되었다.[29] 하지만 불행히도 슈바인슈타이거는 카잔의 치욕이 일어나기 전 오히려 박한 평가를 받고 있었는데, 이유는 바로 필립 람의 존재와 2014년 월드컵 우승 이 후 유로 2016까지 당시 독일의 기대이하 행보 때문이다. 알다시피 필립 람은 2014년 월드컵 직후 국대에 은퇴 했는데 이 후 독일은 그리 좋은 모습을 보여주질 못했고 유로 2016에서 4강에 그치자 많은 팬들은 필립 람만 있었어도 우승했다. 라며 슈슈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했지만 카잔의 치욕 이후엔 슈슈 덕분에 그래도 유로 2016에 4강까지 갈 수 있었다. 라며 재평가를 한 것.[30] 다만 이 부분은 17-18 시즌 분데스리가 평점 1위 라스 벤더를 안 뽑은 뢰프 감독의 실책이 크다.[31] 21/22 시즌 바이에른 뮌헨이 홈에서 도르트문트와의 경기에서 승리하고 리그 우승을 확정짓는 현장에도 있었다. ESPN과 인터뷰를 진행하다가 토마스 뮐러뱅자맹 파바르에게 맥주 세례를 당했다. 슈바인슈타이거는 이후 뮐러를 붙잡고 “내가 그거 하지 말라고 했지! 두번이나!” 라고 말했다. 이후 같이 맥주를 맞은 인터뷰어가 옷을 갈아입어야 할 것 같다고 하자 그럴줄 알고 여벌 옷을 챙겨왔다고 대답했다. 이후 트위터에 “뮐러가 뮐러했다.” 라고 올렸다.[32] 마테라치는 슈바이니가 경기전에 "레알에게 패한 것을 인터밀란을 박살냄으로써 분풀이해야 한다."라고 언플로 먼저 시비를 건 것이라고 하는데, 참고로 슈바이니의 데뷔시즌인 02/03시즌 레알에게 원정다득점으로 8강에서 탈락했지만 그건 10년 전 얘기인데다 슈바이니는 출장도 안했고, 06-07시즌 16강에서는 로이 마카이의 10.5초골을 앞세운 원정다득점으로 바이에른 뮌헨이 이겼다. 2010년 프리시즌 베켄바워컵에서는 0대0 무승부 끝에 승부차기로 레알이 이겼지만, 역시 이 경기는 자선경기여서 경기 분위기도 라이벌 매치가 아닌 친선경기 분위기였고, 바이에른은 1.5군이 나왔으며 슈바이니는 출장도 안했다. 즉 되도않는 핑계로 시비를 건것이다.[33] 왜 하필 레알 마드리드에 대한 복수가 생뚱맞게 인터밀란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겠지만, 슈바인슈타이거는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이 이탈리아인들처럼 축구를 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다고 한다. 물론 이건 마테라치의 주장이다.[34] 그리고 실제 발락의 최전성기인 2000년대 독일은 스페인과의 A매치에서 4:1로 스페인을 바른 적이 있다. 이 경기에서 발락과 메멧 숄의 활약이 대단했다.[35] 또 이것 때문에 슈슈에 대한 선수의 평가도 떨어지게 된 원인이었다. 대표적으로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 4강에서 독일은 스페인에게 무기력하게 패했는데 사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스페인전에서 제일 잘한 선수가 슈슈였다. 문제는 이 짓거리 때문에 당시 국내 독일팬덤에선 저 놈 대신 발락이 있었으면 독일이 스페인 꺾었음 이라며 대차게 슈슈를 까버렸다.[34] 또 11-12 UCL 에서의 충격의 준우승을 당하자 그렇게 이빨 까더니 쌤통이다 라며 오히려 뮌헨 팬덤에서도 슈슈를 까기에 바빴고, 또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2010년대 초 독일 축구의 황금기는 Only 필립 람 존재 덕분 이라며 슈슈에 대해선 아오안 취급을 하는 등 그동안 밉보인 행동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가혹한 평가를 받은 것이다. 그나마 11-12 시즌 이 후 이러한 어그로를 자제한 덕분에 이 후에 슈슈의 이미지는 좋아졌지만, 슈슈의 어그로를 기억하는 올드팬들은 아직도 슈슈를 곱지 않는 시선으로 바라본다.[36] 보루센 개xx쯤 되는 욕이 포함됨[37] 근데 이 항목과 관계없는 얘기이긴 하지만 그로스크로이츠는 월드컵 데뷔전 기회가 슈바인스타이거때문에 무산된 바가 있다. 연장 후반 슈바이니가 아게로와의 충돌로 출혈이 있었고, 요아힘 뢰프가 그로스크로이츠와 교체하려했으나 본인이 끝끝내 뛰겠다고 요청해 마취도 없이 즉석으로 찢어진 안면 부위를 꿰메고 복귀하는 투혼을 보여줬기 때문이다.[38] 그러나 슈바이니의 국대 데뷔 이후 발락의 간접프리킥 롤은 슈바이니가 가로챘다. 이유는 발락의 헤더 능력이 워낙 좋기 때문이다.[39] 이 와중에 여자친구의 테니스 경기를 보러가는 등의 구설수도 있었다.[40] 독일인들은 전반적으로 영어를 잘하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