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97 농구대잔치

덤프버전 :


1995-96 농구대잔치
우승팀: 기아자동차
MVP: 김유택

1996-97 농구대잔치
우승팀: 연세대학교
MVP: 서장훈

1997-98 농구대잔치
우승팀: 연세대학교
MVP: 서장훈

1. 개요
2. 참가팀
3. 운영방식
4. 대회결과
4.1. 조별 리그
4.2. 6강 플레이오프
4.3. 대회 결산



1. 개요[편집]


1996년 11월 30일부터 1997년 1월 6일까지 펼쳐진 당시 대한민국 농구대회 중 최정상 레벨의 대회. 이 대회가 끝나자마자 KBL 원년시즌이 개막하였고, 이후 농구대잔치는 규모나 권위가 급격하게 축소되었다. 그런고로 스폰서가 없었다.

우승팀
준우승팀
MVP
신인상
연세대학교
상무
서장훈(연세대)
임재현(중앙대)
전희철(동양제과)

2. 참가팀[편집]


  • 실업팀 (8팀)[1]

선수
나이
Pos.

출신교
선수
나이
Pos.

출신교
조성원
25
F
180
홍대부고-명지대
문경은[2]
25
F
190
광신정산-연세대
이영주
30
G
183
군산고-홍익대
김광은
26
F
192
송도고-중앙대
박재현
26
F
189
계성고-동국대
송인호
20
F
188
강원사대부고[3]
삼성전자[4]
윤호영
25
G
180
휘문고-고려대
정성조
23
G
182
마산고-동국대
SBS
문필호
26
G
182
송도고-홍익대
전경배
26
G
180
광신정산-경희대
이상범
27
G
184
대전고-연세대
박수호
27
G
183
명지고-중앙대
정재근
27
F/C
192
마산고-연세대
김재열
26
F
191
용산고-한양대
표필상
28
C
200
동아고-중앙대
안병익
24
C
195
송도고-중앙대
대우증권
조성훈
23
G
185
상산전자고-명지대
김성헌
24
G
180
경복고-연세대
김훈
23
G/F
190
대전고-연세대
이원혁
24
G
178
광신정산-동국대
구장환
23
F/C
191
계성고-경희대
주영준
24
F
190
송도고-고려대
이승학
30
F
188
양정고-국민대
최호
24
F
193
송도고-한양대
동양제과
김광운
23
G
181
삼일상고-경희대
김승민
23
G
182
부산중앙고-고려대
김병철[5]
23
G
185
용산고-고려대
전병준
23
G/F
182
명지고-국민대
이현주
23
F
185
대전고-한양대
정재훈
23
G/F
184
송도고-한양대
기아자동차[6]
강동희
30
G
180
송도고-중앙대
장석환
23
G
180
대경상고-건국대
김영만
24
F
193
마산고-중앙대
정회조
26
G
185
경복고-중앙대
이훈재
29
F
193
양정고-성균관대
심상문
26
F
183
송도고-중앙대
전수훈
25
F
194
광신정산-고려대
허기영
28
F
183
계성고-건국대
김유택
33
C
197
명지고-중앙대
권종오
22
F
192
군산고[7]

  • KBL 출범을 앞두고 금융 3팀(기업은행, 산업은행, 한국은행)이 농구팀 해체를 선언했다.[8] 이중 산업은행 농구단은 나래이동통신에 매각되어 팀을 이어나가게 되었고, 한국은행 출신 선수 3명(김영래, 김상준, 이승학)도 나래이동통신으로 합류하게 되었다.[9] 한국은행의 나머지 선수들(김재득, 황상하, 신창남, 김도완 등)은 모두 선수생활을 접고 한국은행의 일반 행원으로 남았다. 나래이동통신에 공식 인수된 산업은행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기존 산업은행 선수단 중 10명만 나래이동통신으로 이적했고 안세환, 김동현 등은 은퇴 후 일반 행원으로 남았다. 뭐 국책은행은 그냥 취업하기도 어려운 곳들이니 언제 은퇴할지 모르는 농구선수보다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판단이긴 했다. 실제로 나래이동통신 소속으로 KBL에 진출한 선수 중 정인교, 이인규, 강병수, 최호를 제외하곤 3년 이내에 모두 은퇴했다.
  • 신생 실업팀인 동양제과대우증권이 새로 참가하였다. 동양제과는 고려대와 한양대, 대우증권은 연세대와 명지대 출신 졸업생들을 주축으로 창단되었다.
  • 기업은행은 마지막 농구대잔치가 끝나면 나산그룹에 농구팀을 매각하여 팀을 존속시키려고 했으나, 내심 상무를 KBL에 참가시키고자 했던 프로농구연맹 측에서 기업은행 농구단의 인수를 불허하였다. 기업은행은 이에 반발하여 1996-97 농구대잔치에 참가하지 않았다. 이후 상무의 KBL 참가 불가 통보를 받은 프로농구연맹은 부랴부랴 기업은행과 나산그룹을 달래었고, KBL 개막직전 광주나산 플라망스를 겨우 참가시켜 8개 팀으로 프로 원년시즌을 시작했다.[10]

  • 대학팀 (9팀)[11][12]


선수
학년
Pos.

출신교
선수
학년
Pos.

출신교
연세대
황성인
2
G
180
대전고
김승관
4
G
178
대경상고
서장훈
3[13]
C
207
휘문고
구본근
3
C
195
대전고
현주엽
3
F/C
195
휘문고
박재헌
4
C
200
Artesia H.S
강혁
2
G
187
삼일상고
임성준




손규완
4
F
186
전주고
송영환
1
F
192
낙생고
김성철
2
F
195
삼일상고
황인덕
3
C
198
명지고
김상우
2
G
182
송도고
홍성원




변청운
3
F/C
192
대경상고
신현식
4
C
196
대경상고
중앙대[14]
임재현
1
G
182
배재고
임성인



경복고
박준석
2
F
187
경복고
정훈종
1
C
205
마산고[15]
이은호
3
C
196
상산전자고
박도경
3
C
202
부산중앙고
이상영
4
F
188
대경상고
김지용
1


용산고
추승균
4
F
192
부산중앙고
김영준




최성우
3
F/C
191
단대부고
민병희
2
C
197
송도고
명지대[16]
김태진
4
G
174
배재고
김현수
4
G

상산전자고
표명일
3
G
182
양정고
최훈석
2
F
180
휘문고
박재일
3
F
190
상산전자고
윤제한
4
F
192
휘문고
길도익
2
F/C
191
대전고
박종덕
1
C
198
상산전자고
단국대
김지윤
1
G

대경상고
정윤식

G

배재고
김동환
1
G
187
마산고





김정인
4
F
190
동아고
문광일




유상욱



배재고
양준호
4
C
197
단대부고
남진우
3
C
195
단대부고
곽기완
4
C
200
계성고
성균관대
이흥배
1
G
180
용산고
김두훈




김종흥
1
G
185
홍대부고
전병철




허훈
4
F
186
용산고
장해진




박주현
3


명지고
이지현




전재경
4
C
195
용산고
민경보





3. 운영방식[편집]


  • 조별리그: 대학 9팀, 일반부 8팀씩 2조로 나뉘어 조별 풀리그를 통해 각 조 3위까지 6강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부여했다.
  • 6강 플레이오프: 각조 상위 3팀 씩 총 6팀이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했다. (6강, 4강전, 결승전 모두 3전 2선승)

4. 대회결과[편집]



4.1. 조별 리그[편집]


순위
대학부
일반부
1위
연세대
8 - 0
상무
7 - 0
2위
고려대
7 - 1
현대전자
6 - 1
3위
경희대
6 - 2
SBS
4 - 3
4위
건국대
5 - 3
삼성전자※
4 - 3
5위
중앙대
4 - 4
대우증권※
4 - 3
6위
한양대
3 - 5
동양제과
2 - 5
7위
명지대
2 - 6
나래이동통신
1 - 6
8위
단국대
1 - 7
기아자동차
0 - 7
9위
성균관대
0 - 8

※ 승패 동률 시 골득실차로 순위 결정.

4.2. 6강 플레이오프[편집]


6강전
4강전
결승전
-
연세대학교 (대학 1위)
76 : 72
71 : 59
경희대학교
연세대학교
93 : 87
93 : 75
상무
현대전자 (실업 2위)
65 : 68
68 : 65
52 : 68
경희대학교 (대학 3위)
-
상무 (실업 1위)
62 : 60
97 : 89
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 (대학 2위)
81 : 77
93 : 70
SBS (실업 3위)

4.3. 대회 결산[편집]


순위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1
정인교(나래이동통신)
29.57
서장훈(연세대)
12.75
강동희(기아)

김상우(건국대)
3.50
2
전희철(동양제과)
29.28
이은호(중앙대)
11.62
이상민(상무)

이상민(상무)

3


김유택(기아자동차)
10.7




[1] 굵은 글씨로 표기된 선수들은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대표팀(12개팀 중 최하위) 멤버이다.[2] 96-97 농구대잔치 당시 상무 김홍배 감독은 스피드와 수비력 강화를 위해 김승기, 양경민을 중용했다. 대회기간 중 경기후 인터뷰에서 문경은은 "팀이 원한다면 4번(파워포워드)라도 뛰겠다"라면서 은연중에 출장시간에 대한 불만을 내비치기도 했다.[3] 수능점수 미달로 대입에 실패한 후 현대전자에 입단, 이후 KBL 초장기까지 토종 4번으로 쏠쏠한 활약을 했고, 원년시즌 전희철, 정재근 등을 제치고 KBL 토종 덩크슛 1호의 주인공이 되었다.[4] 센터 이창수가 간염(!!)으로 인해 선수생명이 위태로울 때였다. KBL 원년시즌을 통으로 날리고 1997-98 시즌 후반에 겨우 복귀하였다.[5] 발목부상으로 1997 KBL 원년시즌 초반까지 뛰지 못했다.[6] 에이스 허재가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음주파문에 이어, 음주운전 & 뺑소니 사건까지 터뜨리며 구속된 상태였다. 곧 훈방되긴 했지만, 당연히 선수자격정지 먹고 농구대잔치에 참가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디까지나 "대한농구협회"에서 내린 징계라 "아마추어"선수 자격만 정지된 상태여서, 뒤이어 열린 1997 KBL 원년시즌에는 무리없이 출전했다는게 함정..[7] 당시 흔치않았던 고졸 출신 실업선수로, 94년에 기아자동차에 입단했다.[8] 모두 국책은행이라, 은행업무 외의 영리 사업을 할수 없었다.[9] 원래는 김동철도 합류할 예정이었으나 군 입대로 불발되었다.[10] 팀 인수 및 창단절차가 늦었던 광주나산은 1996년 11월에 열렸던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에도 참가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드래프트 탈락 선수들을 대상으로 부랴부랴 외인 2명을 찾아 선발했다. 근데 여기서 찾은게 빌라노바대 출신 득점기계 에릭 이버츠였다.[11] 대학농구연맹 소속 10개팀 중 동국대만 불참했다.[12] 굵은 글씨로 표기된 선수는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최종명단에 뽑혔던 멤버이다.[13] 미국 유학 중 학적이 인정되지 않아, 3학년으로 복학.[14] 구병두, 신종석 불참[15] 본래 95학번으로 입학할려고 했으나, 수능점수 미달로 재수를 했다.[16] 청소년대표출신 2학년 센터 장영재(197cm)가 부상으로 빠졌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0-15 22:33:35에 나무위키 1996-97 농구대잔치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