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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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은의 수상 및 감독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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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SK 나이츠 영구결번
No.10



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반지
2001
(선수)

2018
(감독)


























문경은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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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삼성 썬더스 등번호 14번
김희선
(1997)

문경은
(1997~2001)


이정래
(2001~2002)
부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 등번호 10번
우지원
(1997~2001)

문경은
(2001~2006)


백주익
(2007~2008)
서울 SK 나이츠 등번호 10번
이정래
(2005~2006)

문경은
(2006~2010)


영구결번




한국농구연맹 기술위원장

서울 SK 나이츠 기술자문
서울 SK 나이츠 No.10
SEOUL SK KNIGHTS

파일:문경은2020-21.png

문경은
文景垠

출생
1971년 8월 27일 (52세)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신체
190cm[1]체중 92kg
학력
전동초등학교 (졸업)
전동중학교 (졸업)
파일:광신방송예술고 (400x400).jpg 광신상업고등학교[2] (졸업)
파일:연세대학교 문장.svg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 / 석사)
직업
농구선수(스몰 포워드 / 은퇴)
프로입단
1994년 삼성전자 농구단
현역시절 등번호
14[3]
10[4] (서울 SK 나이츠 / 영구결번)
소속
선수
파일:삼성 로고.svg 삼성전자 농구단 (1994~1997)
파일:수원 삼성 썬더스 로고.png 수원 삼성 썬더스 (1997~2001)
파일: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jpg 인천 SK빅스-전자랜드 (2001~2006)
파일:서울 SK 나이츠 엠블럼.svg 서울 SK 나이츠 (2006~2010)
감독
파일:서울 SK 나이츠 엠블럼.svg 서울 SK 나이츠 (2011~2012 / 대행)
파일:서울 SK 나이츠 엠블럼.svg 서울 SK 나이츠 (2012~2021)
코치
파일:서울 SK 나이츠 엠블럼.svg 서울 SK 나이츠 D리그 (2010~2011)
프런트
파일:서울 SK 나이츠 엠블럼.svg 서울 SK 나이츠 (2021~ / 기술자문)
행정
파일:대한민국농구협회 엠블럼.svg KBA (2021~ / 경기력향상위원회 기술위원)
파일:한국농구연맹 로고.svg KBL (2021~ / 기술위원장)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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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불교
배우자
김혜림(1971년 - 현재)
자녀
딸 문진원(1999년)[1][2]


1. 개요
2. 농구인 생애
4. 플레이 스타일
6. 감독 퇴임 이후
7. 감독 스타일
8. 흑역사
9. 기타
10.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농구인.

현역 시절에는 수원 삼성 썬더스[5] -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 서울 SK 나이츠에서 뛰었고, 현재는 서울 SK 나이츠에서 기술 자문으로 일하고 있다. 등번호는 14번(삼성) - 10번(SK 빅스 - 전자랜드 - SK 나이츠)

수원 삼성 썬더스의 레전드지만, 서울 SK 나이츠의 레전드 출신의 최고 슈터.


2. 농구인 생애[편집]


파일:광신상고 시절 문경은.jpg
광신상고 시절 하루 2백~3백 개의 슈팅연습을 하는 연습벌레였다. 광신상고의 한춘택 감독은 "문경은이 학교 선배인 삼성전자 김현준의 고교시절보다 슛 감각이 훨씬 뛰어나다"고 하였으며 1년학 때 청소년 대표로 발탁돼 장래성을 인정받았었다. 3학년 때 출전했던 쌍용기 대회에서 큰 활약을 보이며 고교농구 스타로 떠올랐다.

파일:moon kyung eun yonsei.png
연세대학교 재학 시절부터 '람보 슈터'라는 별명과 함께 수려한 용모로 많은 인기를 끌었던 스타였으며, 연세대학교 농구부가 인기를 끄는데에 한몫을 한 선수다. 연세대학교 졸업 후에는 삼성전자에 입단해서 데뷔한다.

13 시즌 동안 프로무대에서 활약해 프로 통산 610경기에 나서 9347점을 기록해 1위 서장훈, 2위 애런 헤인즈 , 3위 김주성, 4위 추승균에 이어서 통산 득점 5위에 올랐다. 하지만 서장훈이 13,000점대라는 넘사벽 기록과 추승균도 10,000점을 넘어간 것과는 달리 문경은은 끝내 10,000점을 넘어가지 못했다. 전공인 3점슛은 1669개로 프로통산 최다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통산 3점슛 성공률은 39.5%.

2011-12 시즌에는 은퇴팀이었던 SK 나이츠의 감독 대행을 맡았으며 해당 시즌 종료 이후 SK 나이츠의 7대 감독직과 함께 정식 사령탑으로 승진했다. 계약기간은 총 3년. 12-13 시즌에는 팀의 창단 16년만에 첫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14-15 시즌까지 팀을 3년 연속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시키면서 2015년 3년 재계약에 성공했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지도자 문경은의 리즈 시절이었고, 15-16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좋지 않은 지도력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비난을 받게 되었다. 그래도 2017-18 시즌에 그 동안의 성적부진 뒤에 얻은 유망주 둘과 돌아온 애런 그리고 제임스 메이스와 함께 결국에는 챔피언결정전에서 팀의 18년만에 플레이오프 우승을 이끌면서 4년 재계약을 하면서 SK 역대 사령탑 중 최장수 감독으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또 다시 3년간 성적부진으로 인해 불명예로 영욕의 SK 10년 사령탑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본인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한국 스포츠계 감독을 통틀어서도 특정 선수에게 지나치게 의존적인 커리어를 보낸 감독이다. 이른바 애런 빨(버프) 감독으로, 오죽하면 대표적인 별명도 '문애런'일 정도다. 본인도 쑥쓰러워 하고 있다. 심지어 SK 팬 포함 KBL 팬은 현역 시절 얻었던 람보라는 원조 별명 대신 KBL의 NO.1 호구라는 굴욕스런 별명까지 안기기도 하면서 문호구라는 굴욕적인 별명도 얻고 말았다. [6] 아무래도 D 리그 코치 1년 이외에 지도자 수업이 전무해서 그런 듯 하다. 19-20 시즌까지는 정규리그 1위로 인해 어느 정도 평가가 오락가락했으나, 20-21 시즌에 헤인즈가 나가자마자 1위에서 8위로 DTD를 한 채 시즌을 마감하면서 이젠 더 이상의 변명의 여지가 없어졌다. 결정적으로 10년 동안 애런 헤인즈가 없는 시즌에 문경은은 단 한 번도 플레이오프에 가지 못하면서 빼박 확인사살 확정.


3. 선수 생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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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문경은/선수 시절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이충희김현준의 뒤를 잇는 한국농구 슈터 계보를 잇는 존재로 불리며, 같은 편의 스크린을 이용해 수비수를 제친 후 노마크에서 확률 높은 슛을 쏘는 슈터의 기본기에 매우 충실했다. 특히 한번 "터졌다"고 한다면 엄청난 슛 정확도를 보여주는 일도 있었다. 독특하게 자유투 시 백보드를 맞춰 넣는 방식을 구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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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경기 중에 백덩크를 구사할 정도의 운동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런 운동 능력을 이용한 돌파도 주요 무기 중 하나였던 때가 있었다. 센터 출신이라 포스트업 기술도 있었고, 상당히 괜찮은 패싱 센스도 있었다.

고교시절 센터였으나 연세대학교 진학후 190cm라는 작은 신장의 약점이 드러나고, 최희암 감독의 분업화 경향으로 인해 골밑 공간은 당시 연대의 센터라인인 구본근, 김재훈, 서장훈에게 주고 페이스업보다는 스트레치 4 플레이나 스팟업 등으로 공격 역할이 제한되어 버리면서 연세대 이후부터는 사실상 스트레치 4 전문 롤플레이어로 전환하였다. 여기에 팀내에는 이상민이라는 당대 최고의 포인트가드가 입학하면서 점차 문경은이 직접 볼터치를 주도하는 상황도 줄어들면서 좀 더 슈터성향이 강해졌다.

문경은이 이규섭과 같이 서장훈 때문에 하나 위의 포지션으로 옮기고 포제션을 뺏기면서 어정쩡한 기능성 플레이어가 되어버린 서장훈 시대의 피해자라고 평가되기도 하는데, 이건 잘못된 주장이다. 문경은은 서장훈보다 3년 선배고 둘이 같이 뛴 건 문경은의 4학년 시즌 단 1년이다. 문경은은 대학 이후로 내내 스몰 포워드로 슈터로 활약했으니 서장훈과는 무관하게 슈터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오히려 그나마도 일찍부터 신장에 맞는 3번으로 전환했기 때문에 연세대학교에서도 부동의 주전으로 제 역할을 할 수 있던 것.[7]

게다가 문경은이 키가 190cm인데, 한 세대 선배인 허재는 키 186에 1번 2번을 주로 맡았고, 동시대인 김영만, 양경민은 193cm의 키에 고교까지는 센터를 보다가 대학 이후 스몰 포워드로 전향했고 문경은과 같은 포지션이다. 또 동 포지션의 추승균은 190cm, 우지원도 191cm로 대학부터 스몰 포워드로 포지션 변경을 시도했다. 즉 문경은의 키는 당대의 대학 농구에서 딱 스몰 포워드 신장이고, 그래서 자연스레 스몰 포워드로 슈터로 활약한 것이다.

최희암 감독의 분업농구 하에서 슛만 던지는 슈터로 역할을 한 셈이지만, 그래도 실업과 프로 초창기에는 팀을 이끄는 에이스로 다양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실업농구 삼성시절에도 김현준과 쌍포로 내외곽 공격을 주도했고, 프로 신인시절 팀에서 득점을 이끄는 외국인 선수가 있음에도 여전히 발군의 득점력을 발휘하면서 평균 득점 25점 정도로 국내 선수 중에서 단연 탑에 이르는 득점력으로 외국인 선수급의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1999-2000 시즌 무렵 김동광 감독 부임 이후로 2명의 외국인 선수가 중심이 되는 전술로 완전히 바꾸면서 나머지 국내 선수는 보조 역할만 하는 한국프로농구의 분업 시스템을 더욱 문경은에게 강요하게 되면서, 문경은은 팀 득점 에이스에서 블루워커 스타일로 변신을 강요당했고, 외국인 선수 득점을 보조하는 외곽 슈터로 제한한 이후로 플레이가 단조로워졌다.

게다가 자기 관리 문제인지 뭔지 급격히 몸이 가로로(...) 넓어지면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운동 능력도 많이 상실했다. 김동광 감독의 역할 제한 이후로 출전 시간까지 줄면서 급격히 고전을 하게 되었다. 결국 팀 우승 이후 신세기 빅스로 자진 트레이드 되게 된다. 이후 신세기 빅스에서 주득점원인 외국인 선수에 뒤를 이은 주축 슈터로 나름 중심역할을 하면서 선수생활 전성기 후반을 이어가게 된다.

자신보다 좀 더 큰 사이즈를 가지고 있으면서 비슷한 스피드를 가진 수비수와 매치업되면 고전하는 일이 많았다. 대표적인 예가 대학 시절부터 라이벌이었던 김영만양경민. 그리고 추승균 등 수비 좋은 선수와 매치업에서 밀리는 경우가 있었다.

제 2의 허재가 될 만한 재목이 그냥 슈터로 끝났다, 라고 말하는 농구팬들도 일부 있다. 사이즈와 운동 능력, 거기다 농구 센스를 겸비한 덕에 슛만이 아니라 다재다능한 득점 능력과 패스 능력을 가진 선수가 될 수 있었는데, 연세대 시절 간혹 그런 모습을 보여주나 싶다가 최희암 감독의 분업농구론에 의해 골밑이 아닌 3점 라인 밖으로 나와서 패스를 받아 슛 던지는 역할로만 계속 뛰었기 때문이다.

문경은이 제2의 허재, 이충희가 되지 못한 것에는, 농구대잔치 시절과는 다른 한국 프로농구의 변화가 큰 이유가 되었다는 분석도 많다. 프로농구 이후 외국인 선수 2명이 에이스 역할을 하게 되고, 그 결과로 한국 센터의 몰락, 한국 슈터의 역할 제한, 그리고 유일하게 국내 선수가 살아남은 포지션이 포인트 가드였던 것이 프로 초창기의 한국프로농구의 모습이다. 그 결과 농구대잔치 시절 센터 중 톱급으로 남은 빅맨은 사실상 서장훈 외엔 없으며, KBL 1~3회 MVP가 모두 포인트가드 포지션에서 나오게 된다.[8] 서장훈 이외에 팀의 득점 에이스가 몰락한 현실로.. 결국 한국 슈터의 역할 변화는 한국 대표 슈터였던 문경은의 역할까지도 제한시키게 되었다. 즉, 프로농구 이후 2명의 외국인 선수가 주득점원이 되면서, 그 전까지 에이스 역할을 하던 슈터들이 더 이상 에이스가 아닌 블루워커 스타일로 변신이 강요되었고, 조공격수인 한국 선수는 수비 + 캐치 앤 슈팅으로 플레이가 제한되었고, 우지원 등 슈터들이 그런 스타일로 굳어졌다. 즉, 궂은일 잘하는 선수가 좋은 선수로 인식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애초에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던 문경은 스타일의 선수보다 보조 공격수로 적당하면서 블루워커로써 궂은일도 꽤 잘하는 김영만, 추승균 스타일이 외국인 선수와 조화가 좋았다. 외국인 선수가 주득점원에 해결사 역할을 할 때 수비 + 캐치 앤 슈팅(보조공격수)로 외국인 선수 보조를 잘 해내는 선수가 쓰임새가 많았고, 그런 이유로 문경은은 트레이드를 요청하게 된다. 문경은마저 이럴 정도이니 우지원, 김훈 등 정통 슈터들도 수비 열심히 하고 간간히 3점 던져주는 마당쇠로 변신해서 겨우 살아남았다. 하다 못해 전희철, 이규섭, 김동우 등 2m 정도 센터 출신들도 수비 + 캐치 앤 슈팅 스타일로 다들 변신할 정도이니 말할 나위가 없다.

즉, 더 이상 한국인 팀 에이스가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문경은이 이충희, 허재가 되지 못한 이유도 많다는 것이다. 사실상 프로 이후로 팀 주득점원으로 한두 시즌이라도 계속 활약한 선수는 문경은, 조성원, 방성윤 정도이며, 꾸준히 팀의 에이스였던 선수는 서장훈밖에 없다. 그 서장훈마저도 블루워커 노릇을 안 한다고 해서 선수 생활 내내 욕을 먹던 것이 프로이후 한국의 득점 에이스들의 현실이다.[9]

프로 초창기 이후로 한국 선수가 다양한 득점 루트로 팀 득점을 주도하는 건 비효율적이고 이기적이라고 욕먹던 시절이다.[10]

물론 프로 이전부터 문경은은 한국 농구를 대표하는 슈터로 불리면서도 반쪽짜리 슈터 소리를 듣는 일도 많았다. 앞선 세대인 이충희나 김현준이 자신보다 큰 수비수를 앞에 두고도 일대일 상태에서 드리블 등으로 수비수를 제치고 풀업 점퍼를 정확하게 쏘는데 능했는데 비해 문경은은 슈터로서 풀업 점퍼가 안 되는 받아먹기 전문이었기 때문에 상대의 밀착수비에 약점을 보였다.

그러나 역할 제한을 받지 않고 에이스로 활약하던, 실업이나 프로 초창기에는 내외곽에서 자기 하고 싶은 플레이를 맘껏 하던 시절에는 내외곽에서 다양한 득점력을 구사하고 풀업점퍼 등의 다양한 플레이가 가능했다. 연세대시절이나 프로 이후 차차 역할 제한이 들어가면서 캐치 앤 슈팅이라는 단조로운 스타일 외에는 버릴 수밖에 없었다. 즉, 시대가 제 2의 이충희, 허재가 나올수 없던 시절이다.

그럼에도, 문경은은 국내선수로는 최고 수준의 3점 공격력을 가졌고, 다른 수비 약점을 포함해도 역대급 공격력을 가졌던 선수였다.

이후 문경은만큼 노마크 슛이라도 확률 높게 넣어주면서 슈터의 기본에 충실한 선수는 거의 없다. 국내리그에서 비슷한 급이었던 김영만 등에 비해 문경은은 확실한 3점 슛이라는 무기 덕분에 좋은 커리어를 이어갔고 국제용으로 중용받을 수 있었던 것. 이런 공격력의 장점 때문에 수비상의 약점 포함해도, 김영만, 추승균, 양경민을 제치고 국가대표 선수로 선호받았다.

그리고 2015년 스테판 커리의 MVP 이후 세계 농구 트렌드가 꽤 크게 바뀐 시점에서 되돌아본다면, 서장훈, 문경은 등은 한국 농구의 또 하나의 편견에 시달린 선수이다. 바로 외곽 공격은 영양가가 없다는 식의 시각이다.

용병 이전 전통적 한국 농구는 양궁농구라는 양날의 검을 가진 농구 스타일이었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외국에 비해서 장신 센터가 골밑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오랜 컴플렉스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중국과의 국제경기에서 한국이 외곽이 밀려서 지는 경우는 적었고, 높이의 차이 골밑파워 차이로 밀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장신인 서장훈이 골밑을 버리고 중거리슛을 던진다는 이유로 겉멋 들었다며 욕을 엄청 먹었고, 3점 중심의 슈터들은 한편으론 인기도 많았지만 한편으론 영양가 없다는 비아냥에 시달렸다. 그런 이유로 장신센터인 김주성, 하승진의 경우 중거리 슛 센스가 생각보다 좋았음에도 감독들이 의도적으로 중거리슛, 외곽슛을 멀리하게 교육했고, 그 결과로 김주성은 충분히 성공한 선수가 되긴했지만 수비와 팀플레이 중심의 선수로의 한계를 가지게 된다. 김주성이 초창기 골밑 플레이가 막히면 공격에서 막힐 수밖에 없지만, 어차피 공격은 2명이나 되는 용병에게 맡기면 되니까 그게 한계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김주성이 슛팅 능력이 없는 선수가 아닌 것이, 선수생활 후반에 3점슛을 개발한 이후로 선수 생활 연장이 가능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만약 김주성이 더 일찍 전성기 시절 미들슛과 3점을 장착한 선수였다면 더욱 무서운 선수가 되었을 수도 있다. 사실 김주성이 한국 역대 최고의 선수 중의 하나이지만 역대 No. 1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선수는 아니고, 또 중국 등 국제 경기에서 훌륭하게 활약했지만 그렇다고 압도한 것은 아니기에 스스로 골밑이라는 영역 제한을 두고 자신의 선수 능력치를 제한하지 않았으면 더 뛰어난 선수가 되었을 수 있다는 아쉬움인 것이다.[11] 이런 의미로 서장훈이 정확한 슛이 없었으면 서장훈의 가치는 훨씬 낮아졌을 것이다. 슛이 좋다는 이유로 평가절하받는 게 억울한 셈이다.

센터의 중거리 슛과, 슈터의 3점 공격이 영양가 없다며 평가절하당하던 시절이라 서장훈과 문경은의 가치가 더욱 낮아진 것도 있다는 시각이 있는 것이다.

문경은의 은퇴 이후 꽤 세월이 흘렀지만 문경은급의 슈터가 한 명도 나타나지 않으면서 최근 재평가를 받고 있다. 문경은의 말년기 때의 평균 득점을 따라가는 슈터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거기에 지도자 생활을 한지 어언 10년이 넘고 3점슛 거리, 공인구까지 바뀐 상황에서 아직도 선수 시절 슛감을 고스란히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 농구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하는 등 한국농구 역사를 통틀어 손꼽히는 슈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역대최고의 슈터가 누구냐는 질문에는 신동파, 이충희, 김현준, 허재 등 이견들이 많지만 역대최고의 3점슈터가 누구냐는 질문에는 누구나 문경은이라고 할만큼 국내무대 국제무대 가릴것없는 꾸준하고 폭발적인 3점슛을 보여주었다.


5. 지도자 생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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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문경은/지도자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감독 퇴임 이후[편집]


서울 SK 나이츠의 기술 자문을 맡게 되었다. 물론 말만 자문위원일 뿐이고 기술고문직이자 그냥 명예직일 뿐이다.[12] 이 외 농구행정으로 KBL 한국프로농구 기술위원장과 대한민국농구협회 경기력향상위원 또한 맡게 되면서 한국농구의 유망주들과 대표팀 선수선발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감독 퇴임 10년만에 야인이 되면서 골프를 하고 있다. 추가로 예능도 마찬가지다. 자세한 건 지도자 경력에 스토리가 추가되어 있다.

2021-22 KBL 챔피언 결정전 4차전에서 KBS1 해설을 맡았었다. 해설에 함께 투입된 캐스터가 배구전문이었던 탓인지 SK와 많은 추억을 가진 문경은 감독의 만담을 잘 받아주지 않아서 재미는 없었다는 평가가 많다. SK는 이 날 경기에서 승리했다.

5차전에서는 하하 부부가 시투를 왔는데 별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문경은 자문위원에게 지도를 받은 인연으로 학생체육관을 방문했다고 한다.[13] SK는 5차전도 승리하면서 통합우승에 성공했다.

7. 감독 스타일[편집]


10년 감독생활 애런없이 PO진출 없음
문애런 전설

시즌
순위
애런의 유무
PO결과
애런의 유무(PO)
비고
2011-12
9위
X
진출실패
[14]
2012-13
1위
O
준우승
O

2013-14
3위
O
4강
O

2014-15
3위
O
6강
X
[15]
2015-16
9위
X
진출실패
[16]
2016-17
7위
X
진출실패
[17]
2017-18
2위
O
우승
X
[18]
2018-19
9위
O
진출실패
[19]
2019-20
1위
O
PO 취소
[20]
2020-21
8위
X
진출실패

애런 헤인즈 없을 시 = 플레이오프 탈락

감독대행이었던 2011-12 시즌을 제외하면 4번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고 4번의 시즌은 그야말로 멸망했다.

서울 SK 나이츠 역사상 최장 기간 재임 감독이지만 득과 실이 엄청 컸던 감독. 18년만의 우승을 가져와주기도 했지만 3번의 대멸망 시즌을 만들어내는 등 아직도 지도자로서의 역량에는 의문부호가 달려있다.

농구 스타일은 부임 당시 SK에 풍부했던 포워드 자원들을 활용하는 공격적인 포워드 농구와 김선형, 애런 헤인즈를 축으로 하는 속공 농구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그 덕에 SK의 팀 평균 득점은 리그 내에서도 상위권이었던 적이 많았다. 본인이 슈터 출신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공격 전술에는 나름 일가견이 있는 편이다.

그러나 자신이 선수 시절 KBL 최고의 슈터 중 하나로 평가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선수들에게 외곽슛을 못 가르치는 편이다. 실제로 경기에서 선수들이 3점을 쏘면 운수 좋은날 아니면 죄다 팅팅팅인지라 보는 팬들 입장에서는 혈압이 오를 지경이다. 그러다 보니 과거 슈팅 가드였던 변기훈의 심각한 기량 저하와 포워드가 주류인 팀 특성상 2번에 배치할 만한 마땅한 전문 외곽슈터가 없고, 그 결과 클러치 상황에서의 득점력이 떨어지며 김선형 고나 애런 고만 시전하다가 어이없는 역전패를 당하는 점은 옥의 티였다.

수비 전술에 대해서는 약점이 많다. 이 수비 전술 또한 전희철 수석코치가 감독이 된 이후로는 전희철의 작품이라는 게 거의 기정사실일 정도로 소문이 자자하다. 빅 포워드 라인이 즐비했는지 초창기에는 김민수최부경 그리고 김효범박상오, 마지막으로 애런과 함께 빅 라인업을 내세운 3-2 드랍존으로 리바운드와 속공에 의지를 많이 했다. 우승 시즌에는 최준용안영준 그리고 제임스 메이스로 이어지면서 SK만의 스피드를 극대화했다. 하지만, 이걸 오버로 쓴게 최대 문제다.

감독 초창기 시절 애런 헤인즈를 이용하여 3-2 드롭존을 즐겨 사용하다 못해 과도하게 사용하는 편으로, 드롭존이 파훼되었을 때 다른 수비 전술을 따로 준비해놓지 못하다 보니 멸망 시즌엔 공격이 잘 풀려도 외곽수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 상대팀에게 3점슛을 주구장창 얻어 맞고 경기를 날려먹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를 의식했는지 현재에도 드롭존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예전만큼 즐겨 쓰지는 않고 2-3를 혼용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해도 외곽슛을 맞는 문제가 고쳐지지는 않았다.

감독 초창기 전략의 부재와 더불어 작전 능력이 떨어지고 작전타임 때 하도 애런 헤인즈만 찾아서 '문애런'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의 좋은 예시가 되기도 했지만, 2017-18 시즌 우승 이후에는 그러한 비판은 많이 사그라들었으며,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2018-19 시즌엔 시즌 자체는 망했지만 예전과는 달리 작전 능력, 선수 운영 쪽으로 상당히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며 감독으로서의 평가는 초창기에 비하면 상당히 높아졌다.

무엇보다 2011년까지 SK는 감독들의 무덤으로 불렸을 정도로 모래알팀의 대명사였고, 이런 경향이 있는 팀은 아무리 사람을 바꾸고 바꿔도 개선시키기가 힘들기 때문에[21] 10년 가까이 장기 집권하며 팀 체질 개선에 나름대로 성공한 문경은 감독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김민수, 김선형, 최부경, 최원혁, 이현석, 최준용, 안영준, 변기훈 등등 지금 SK 주전 멤버들 거의 전원이 문경은 체제 하에서 함께 성장해온터라 더욱 그렇다.

잘 하는 시즌에는 그냥 쭉 잘하고, 못하는 시즌에는 그냥 쭉 못해서 팬들을 생업에 종사하게 해주는 스타일이다. 한마디로 시즌 중에 갑작스러운 DTD를 하거나 UTU를 하진 않는다. 구단 자체가 비시즌에 선수 영입이나 팀 구성을 정말 못하는 팀인데다가 문경은 감독도 페르소나인 애런 헤인즈 없이는 정규시즌을 잘 보낸 적이 드물기 때문에 1~2라운드 쯤되면 어느 정도 시즌의 가닥이 잡힌다. 후반 라운드 들어서 몇 번 이기거나 승수를 회복하며 주가를 올리기는 하지만 보통 그 쯤되면 이미 늦어버린 상황이 되기 때문에 6위 막차 경쟁도 거의 한 적이 없다.

헤인즈가 뛴 시즌(2012~2015)에 정규리그 1위/3위/3위, 헤인즈 없었던 시즌(2015~2017)에 정규리그 9위/7위, 헤인즈 다시 데려온 시즌에 정규리그 2위, 헤인즈 부상 시즌에 정규리그 9위, 헤인즈의 마지막 시즌 정규리그 1위로 문경은 감독의 지도자 커리어는 헤인즈 하나로 설명이 가능할 정도. 특정 외국인 선수 1명이 있고 없고에 따라 팀 성적의 편차가 극과 극으로 나뉘고 평균적인 성적이 없었다.

SK에서 감독 생활을 굉장히 오래하였지만 20-21 시즌 기준으로 수비 전술은 여전히 아쉬운 편이고 특정 외국인 선수 1명에 의해 크게 좌우됐던 팀 성적은 또다시 곤두박질치고 있다. 불안한 것은 이런 단점들이 개선되지 않고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22]

여러가지 장점과 단점에 대해 연구가 되어왔으나 결론적으로 애런 헤인즈 없이는 아무 결과가 없는 감독이기 때문에 과연 그 장점이 온전히 본인의 것이었는지조차 확신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도 쭉 암흑기가 이어지던 팀을 부진이 오래가게 만들지 않았느냐는 반론도 있지만, 당연할 수 밖에 없다. 헤인즈 3년 쓰면서 성적이 좋다가, 헤인즈가 떠나자마자 꼬라박고, 그럼 다시 헤인즈가 와서 몇 년 잘하고, 또 헤인즈가 나가면 다시 바닥으로 추락하는 패턴이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기 때문. 문경은만큼 SK의 두꺼운 뎁스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감독도 없다.[23] 일단 한 번 시즌이 망가지면 아무것도 못한다.

2020-21시즌에는 그나마 외국인 선수와 트러블이 적다는 요소조차 자밀 워니로 인해서 박살났다. 체중 조절도 못했으면서 본인을 4쿼터에 안 쓰면 (지니까!) 삐져서 라커룸에 틀어박히는 등 대놓고 항명하는 선수에게 쩔쩔매면서 시즌 내내 호구취급을 받았다. 9위 추락이 확정되는 경기에서 최부경이 다른 선수와의 충돌로 쓰러져있는데도 코트 건너편 의자에 앉아서 낄낄대면서 비웃는 등 인성바닥인 면모를 여실히 보이는데도 한 마디도 못하고 호구마냥 끌려다녔다. 보통 10년차쯤 되는 감독들은 외국인 선수가 이런 태도를 취하면 화라도 낸다.

종합하자면 본인 특유의 형님 리더십과 자유로운 팀 분위기 조성, 적절한 드래프트 픽과 육성 능력을 통해 빠르게 SK의 암흑기를 극복해내고 18년만의 우승까지 이룬 감독이라는 점에서 여기에 대해서는 부인할 수 없는 업적을 이루어낸 것은 사실이나, 상술한 대로 애런 헤인즈라는 선수에 너무 의존하면서 생기는 연도별 성적 차와 감독 본인의 전략 문제, 거기에 형님 리더십이라는 것이 카리스마가 없다는 맹점으로 돌아와 역으로 선수단의 방종을 유발하게 되어 감독 말년에는 최준용, 자밀 워니 등 좋은 팀 분위기를 악용하는 문제아들까지 생겨났고 이를 제어하지 못하면서 성적까지 추락해 감독 커리어의 말로는 좋지 못했던 감독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부분은 이상범과 김승기와 비교될 정도로 심각했고 심지어 추승균과 현주엽과 동급이었다.

이렇듯 오르내림이 심한 감독 커리어였으나 소소하게 재평가를 받을 사항도 있는데 문경은의 SK가 망한 시즌에는 반드시 드래프트에서 훌륭한 재원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김형빈과 선상혁의 경우에는 아직 미지수이나 최부경, 최준용, 안영준은 팀의 대들보가 되었다. 성적이 유일하게 좋았던 2012~2015, 2018등에도 최원혁을 뽑는 등 드래프트에서 매우 훌륭한 모습을 보여준 감독이다. 문태종 거르고 박승리, 이대헌과 함준후 트레이드라는 2개의 실수를 제외하고는 선수들을 보는 눈이 괜찮았다.

7.1. 지도자로서의 단점[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문경은/지도자로서의 단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017-18시즌 우승 이후 개선된 줄 알았으나... 2018-19시즌 다시 문제점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 떨어지는 임기응변과 속공 및 3점을 극대화하는 경기력
문경은 감독은 모래알 조직력이라는 SK 나이츠의 문화를 SK 출신 레전드로 극복한 평이 있다. 선수단의 의견을 다양하게 듣고 팀과 구단을 위해 다양함 속에 하나로 만드는 모습은 SK 그룹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최고 명장인 유재학 감독과 전창진 감독을 시작으로 김진 감독과 추일승 감독 및 서동철 감독 그리고 이상범 감독은 경험이 있으니 둘째쳐도 그것도 모잘라 사령탑을 오래 보지 못했던 김영만 감독과 동세대의 명장인 김승기 감독을 맞이해서는 전술과 전략보다 임기응변이 떨어지는데 바로 속공과 3점을 적극적이면서도 절정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점이다. 전임 신선우 감독에게도 혹독한 수업을 받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오죽했으면 부임 초기에 모비스와 동부에도 우승전력이 되는데도 계속 패하고 심지어 LG와 오리온한테도 당하더니 KGC마저 극복을 못하는 등 KBL의 NO.1 호구라며 문호구라는 굴욕스런 별명이 있었는데 17-18 PO 우승 이후 극복하는 듯 하지만 18-19 시즌 또 봄농구에서 탈락하는 등 여전한 고질병이다. 이상한 공식 하나는 바로 추승균 감독의 KCC 이지스다. 추승균은 감독이 된 이후 잠학에서 한번도 이기지 못했다. 게임을 보면 운이 상당히 좋은 듯 하다. 팀에 전문슈터를 육성하거나 아니면 런앤건 및 템포 바스켓을 살려야 하는데 냉정히 보면 문경은호의 SK는 성적을 내고 있으나 팀컬러가 확고하지 못하며 역시 김선형 아니면 문애런이니 역시 문호구라는 비판은 여전하다. 사실 김승기 감독이 16-17 시즌 KBL 통합우승을 했는데 본인도 야망을 드러내고 있지만 현재 KBL 통합우승을 못하면서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 헤인즈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선수빨
2012-13시즌 정규시즌 우승 때부터 끊임없이 제기되던 의혹이며 결국 2020-21시즌에 헤인즈가 나가자마자 1위에서 8위로 DTD해버리면서 입증되어버린 가설이다. 감독 자체가 헤인즈, 최부경 이 두 선수 없이는 시즌을 풀어나가는 능력이 없으며 외국인 선수에게 휘둘리는 성격이라 헤인즈같이 영리한 선수없이는 스크린 하나도 못 거는 수준이다.

  • 버려야 하는 선수에 대한 미련
윗 문단과 비슷한 맥락으로, 대표적인 것이 변기훈이다. 군 제대 시점에서 이미 KBL에서도 안 통하는 선수가 되어버린 변기훈이지만 굳이 연봉까지 2억으로 올려주면서 끌고 가고 있다. SK의 외곽슛 분야가 완전히 전멸해버렸는데도 계속 변기훈을 주전으로 밀어넣으면서 SK는 앞서가다가도 외곽슛 폭격으로 역전패. 한 번 점수가 멀어지면 따라잡기 힘든 팀이 되고 말았다. 2018 플레이오프에서 선수들이 3점을 잘 넣었던 것을 감안하면 변기훈을 버리고 다른 선수를 육성하면 승부를 볼 만하건만 심성이 착한 건지 집착이 심한 건지 D 리그라도 보냈으면 그나마 말을 안할 텐데 아직도 변기훈은 로스터에 있다. D 리그에도 보내고 있지만 쓸 생각을 못했다. 감독 퇴진 이후 전희철 감독은 강단있게 슼무원 하나를 처리했다. 오리온에서 허일영을 데리고 온 뒤 보란듯이 팀에 수비형 가드들이 즐비했는지 LG에서 슈터 원툴이 있는 이원대를 데리고 왔다. 실제로 변기훈은 LG에서 고전중이지만 조성원 감독이 살릴려는 모습이 나오면서 또 하나의 비교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 외국인 선수 제어 실패
  • 스크린을 비롯한 기본적인 작전의 부재
  • 선수단 장악 실패


8. 흑역사[편집]


2004년 3월 7일. 전자랜드TG삼보의 시즌 마지막 경기. 이 당시 문경은은 우지원과 시즌 3점슛 타이틀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었고, 마지막 경기 때까지도 3점슛 타이틀을 누가 차지할지는 안개 속에 있었다. 사실 문경은이 타이틀 경쟁에서 앞서있는데 우지원 밀어주기가 먼저 시작되었다.

그리고 펼쳐진 경기에서 문경은이 공을 잡자 삼보의 선수들은 슛을 쏘거나 말거나 멀뚱멀뚱 쳐다보는 모습만 보여주고, 그에 보답하듯 전자랜드의 다른 선수들은 삼보의 김주성이 블록슛 적립하게 좋게 슛을 가져다 바쳐주는 훈훈한 상부상조가 이어졌다. 코트 위의 훈훈한 온기가 팬들에게 스팀을 돌게 만들든 어쨌든 이런 훈훈한 배려 속에 문경은은 3점슛 타이틀 확보하기 좋게 3점만 22개를 넣었고, 덤으로 66점으로 KBL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을 갱신한다.[24]

그러나 같은 날 다른 경기에서 비슷한 협조 속에 우지원이 3점슛 21개를 포함, 70점을 몰아넣어, 결국 3점슛 타이틀은 우지원의 몫이 된다. 문경은은 이 경기 이후 인터뷰에서 "내 한경기 최다 3점슛 기록은 1998년에 기록한 12개로 기억하겠다."라는 말로 이 날을 흑역사로 인정했다.

이런 또라이짓을 본 팬들의 분노 때문에 문경은이 사실상 승부조작을 하게 만든 그 시즌 3점슛 타이틀은 해당자 없음이 되었지만, KBL 홈페이지의 기록에는 아무 설명 없이 저 날의 문경은의 총 득점과 3점슛 기록이 공식 기록으로 등재되어 있다. 이뭐병. 궁금한 팬들을 위해 적어놓는데, 이 날 경기는 전자랜드가 승리를 거뒀으며 스코어가 무려 130[25] - 118이다. 이는 2009년 5차 연장 접전 끝에 동부삼성에게 135 - 132로 승리한 경기에 이어 단일팀 최다득점(130점)과 양팀 합산점수(248점) 2위이며 당연히 순수 40분 경기로만 따지면 1위다. [26][27]

한편, 2020년대가 된 지금은 절망적으로 실력이 하향된 현역 농구선수들의 3점슛 실력을 바라보면서 "지금은 문경은이나 우지원처럼 저렇게 대놓고 밀어주기를 해도 3점슛 최다기록은 절대로 갱신하지 못할거다" 같은 자조섞인 이야기까지 나온다.



9. 기타[편집]


  • 선수 시절 비 오는 날에 유독 슛이 잘 들어가는 징크스가 있었다. 손끝이 촉촉하다나..

  • 할리우드에 능했다. 주로 써먹던 레퍼토리는 스크린을 타는 몸싸움 과정에서 팔을 상대 선수와 엮은 다음 목을 꺾고 비명소리와 동시에 만세를 부르며 넘어지는 것이었다.

  • 2010년 성탄절을 맞아 SK 나이츠 홈경기 하프타임 때 왕년의 라이벌 우지원과 3점슛 대결 이벤트를 가졌다.

  • 용인시 수지구에서 치킨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저녁에는 직접 주문도 받고 서빙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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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 존슨 잃은 문경은 감독 사실은 2011-12 시즌 부상으로 2월에 복귀할 때까지 장기간 아웃된 알렉산더 존슨과 관련된 내용인데 사진과 기사 제목이 뭔가 절묘하다. 한때 몇년간 자동완성에 등록된 적도 있었다.

  • 2012-13 시즌 도중 오리온스와의 경기에서 경기 전에는 김종범이종범이라 부르더니 심지어 작전타임 때 김승원한국에 키 큰 애라고 말하는 개그를 선보였다. 심지어 김승원은 연세대학교 후배였다.

  • TV 광고에도 몇 번 출연한 바 있다. 삼성 시절 세탁기 광고를 찍기도 하고, 듀스와 오디오 모델도 했다. 2002 월드컵 공인구였던 피버노바를 가지고 농구하는 장면으로 아디다스 광고에 나왔고, 전자랜드 시절 전자랜드 기업 홍보광고에서 김디에나와 같이 농구하는 장면에 나오기도 했다.

  • 2015년 프로농구 승부조작 사건과 관련, SBS 8시 뉴스의 단독보도 중 사용된 자료화면이 잠실학생체육관 경기라는 이유로 승부조작과 관련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불거진 바 있다. 하지만 당사자인 A감독이 언론과 연락이 되지 않고 잠적했다는 보도와는 다르게, 문경은 본인과는 무관하다는 인터뷰 기사가 신속하게 보도되면서 의혹에서 벗어났다. 해당 사건과 관련해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대상은 SBS 뉴스 자료화면 경기의 상대 팀 감독인 것으로 알려졌고, 추측에 의해 마음고생을 한 억울한 피해자가 되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하지만 전창진은 무혐의로 풀려나게 되었고, 문경은이 16~17 시즌 들어서 저조한 성적과 대승을 거둔 상태에서 역전패가 자주 나오자 팬들은 또 다시 조작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28]

  • 의외로 온라인 게임을 즐겨 한다. 현역 말년 때에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즐겨했었고 캐릭터 2개가 만렙을 찍기도 했다.

  • 응답하라 1994 1화에 우지원, 김훈과 함께 본인 역으로 까메오 출연한 적이 있다. 성나정과 얽혀서 연세대 재학 시절의 모습으로 잠깐 등장했다. 그런데 여기서 성나정이 문경은을 보고

"근데 저 오빠 와 저리 살이 쪘노?"

고아라

라고 말하며 디스당한다. 0화에서 밝혀지길, 저 대사는 고아라의 애드립이었다. 이 말을 들은 문경은은 발끈하였고,

"누가 대본 썼어? 나 저때 살 안 쪘었어!"

문경은

덤으로 이런 말을 하며 토라진다. 우지원이 대본에 없던 애드립이라고 말해도 분명 마이크 대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며 삐쳤다.

  • 우승청부사 : 헤인즈빨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겠다라고 말하며 내보냈던 헤인즈가 오리온에서 문태종[29]과 함께 15-16시즌 우승한 후, 16-17시즌에는 사이먼으로는 우승을 할 수 없다라고 말하며 내보냈던 사이먼이 인삼공사에서 통합우승을 하면서, '문경은이 버리는 외국인 선수를 잡으면 그 다음 시즌 우승한다'라는 뜻에서 붙은 매우 굴욕적인 별명이었다. 사이먼은 해당 시즌 우승 후 인터뷰에서 '사이먼으로는 우승할 수 없다'라는 발언을 담은 기사를 본 이후 자극을 받아 더욱 연습에 매진했다고 말하면서 "'그 사람'에게 틀렸다고 말해주고 싶었다"라고 발언했다.(점프볼 기사) 챔피언 된 사이먼 "당신이 틀렸다" 그런데 2017-18시즌에 우승을 하면서 진짜로 우승청부사가 되어서 이젠 더 이상 쓰이지 않는 별명이 되었다.

파일:김선형,문경은.jpg
  • 2018년 6월 3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kt wiz vs SK 와이번스 경기에 프로농구 우승팀 감독으로 같은 회사 야구단이 초청해 김선형 선수가 시투를 그리고 문경은 감독은 시타를 했다. 영상 프로필상 문경은은 190cm 김선형은 187cm 인데 김선형이 더 크다는 것이 드러났다. 하지만 SK가 kt에게 지고 말았다. 한국 스포츠 구단들은 같은 지역 연고팀보다는 같은 기업 산하 구단에 시구/시타를 가는 일이 많은데, 이상하게도 이런 경기에서는 상당히 높은 확률로 진다. KIA 타이거즈는 같은 현대차그룹의 수원 현대건설황연주의 시구 이후로 멸망해 '타어강'을 찍었고 창원 LG현주엽이 시구를 온 날 LG 트윈스는 졌지만 오히려 형제구단간의 협력이 잘된다. 뭐 그래도 이 때 기운을 받기는 받은건지 이 시즌 와이번스는 코시 우승을 하기는 했다.

  • 이것 말고도 농구 SK 팬들에게 이번 시구가 미묘한 평가를 받는 것은 전자랜드팬들이 비시즌마다 김선형이 고향(인천)팀인 전자랜드로 올 것이라고 계속해서 루머를 퍼뜨리고 있기 때문인 것도 있다. 전자랜드 팬들은 대부분이 인천 연고이다 보니 와이번스 팬이기도 하다.

  • SK 팬들에게는 여러 별명으로 불리는데, 가장 잘할때는 문명장, 문띵(장)으로 불리고 가장 못할 때는 삼전드(삼성전자 레전드),에 이어 또는 문호구삼성으로 돌아가라는 소리를 듣는다.

  • S-더비 이벤트 때 삼성의 이상민과의 3점슛 대결에서 현역 시절 못지않은 날카로운 슛감을 선보였는데 2019 NBA 올스타전에서 델 커리, 레이 알렌 등 왕년의 3점 레전드들이 슛감이 다 없어진 모습을 보이면서 (레이 알렌은 성공 0개) 은퇴 이후에도 3점 슛감을 유지하고 있는 문경은이 갑자기 칭송받는 일도 있었다. 은퇴한지 10년이 다되어가는 데도 저런 감각을 유지하는 걸 보면 현역 시절 슛에 대해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이 보인다. 2019-20시즌 올스타전에서 10개 팀 감독들이 슈팅 대결을 벌였는데도 깔끔한 폼으로 전부 성공시키면서 클래스를 보여주었다. 뒤이어 이어진 현역 선수들의 3점슛 콘테스트가 성공률이 엉망이었기에[30] 몸 만들어서 당장 복귀하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후 SK 나이츠 유튜브에서 커리 챌린지에 도전하여 로고 샷 빼고 모든 슛을 성공시켰다.#

  • 최준용의 증언에 따르면, 문경은은 현재도 가끔씩 선수들과 3점슛 내기를 하는데, 선수들이 문경은을 거의 이기지 못해 선수들이 진 빚만 자그마치 48억은 될 것이라 말했다. 문경은의 타고난 슈팅 재능이 어느정도인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 출생연도는 1년 빠르지만 김승기 감독이 생일이 빨라 학교를 조기 입학해 90학번 동갑내기로 지내는 김승기 감독한테 승률이 낮다. 상대전적은 11승 22패 0.333이다. 정규리그에서만 맞붙었는데 2015~2016시즌부터 5시즌 연속 KGC 상대 우세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우승한 시즌에서도 우세를 가져가지 못했다. 19-20 시즌 코로나 19로 조기 종료되어 4번 맞붙었는데 2승 2패로 동률이었고 홈과 원정에서 1승1패씩 나눠 가져갔다.[31]이 두팀은 플레이오프에서 맞붙어본적이 없는데 특히 2017~2018시즌 SK 2위 KGC 5위 2018~2019시즌 KGC 7위 SK 9위 시즌을 마쳤기에 플레이오프에서 동반 진출과 탈락을 같이 했어도 마주칠 수 없었다. 대결할 때 승률이 어떻게 될지 기대를 모은다. 연세대 2년 선배인 이상범 감독한테는 정규시즌에는 밀릴지언정 플레이오프에서는 12-13 4강 PO에서 3승 1패로 승리하고 17-18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는 4승 2패로 이겨 우승을 차지해 주는 등 우위를 보이지만 삼성에서 같이 뛰어서인지 몰라도 KGC 김승기 감독한테는 약한 면을 보이고 있다. 역대 시즌을 통틀어 양팀이 챔피언결정전에서 맞붙어 본적은 없고 2007-08시즌 6강 플레이오프에서 만나 주희정이 4쿼터 종료 직전 손지창슛으로 불리는 3점 버저비터로 연장으로 끌고 가 1차전을 잡아 기선제압을 한 뒤 2차전에서 마퀸 챈들러의 41득점 12리바운드 10어시스트 트리플더블 활약을 바탕으로 2승을 만들어 4강에 올라간 것[32]과 12-13 시즌 4강 플레이오프에서 맞붙어 SK가 3승 1패로 챔프전에 진출한 것이 맞대결 결과의 전부이다. 이후 두 팀이 포스트시즌에서 대결할 때 승률이 어떻게 될지 기대를 모은다.

  • 유도훈신명호 문서에 명시되어 있는 '신명호는 놔두라고' 라는 유도훈의 한마디가 농구계의 나름 명대사인데 우연인지 아님 그를 따라한건지, 문경은 또한 유도훈이 외친 것 처럼 팀원들에게 '신명호는 외각포를 쏘지 못하니까 마크하지 말고 그냥 놔두라는' 지시를 정확히 완전 똑같이 내리는 영상이 있어서 더더욱 유명한 명대사가 되게끔 했다.#

  • 고교-대학 직속 선배인 김현준을 자신의 롤 모델이자 가장 존경하는 선배라고 밝혔다. 연세대 졸업 후 삼성으로 진로를 결정한 것도 김현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을 정도로 김현준의 팬. 실제로 김현준도 생전 문경은을 아껴줬다고 하며, 김현준의 장례식 때 가장 슬퍼하던 사람 역시 문경은이었다.

  • 골프가 취미이며 농구인 골프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 굉장히 깔끔한 성격으로 MBC 예능 프로그램인 안싸우면 다행이야에 나와서 식기류 닦는 모습만 보이기도 하였다.


  • 2021-22시즌 전부터 KBL 주관 방송사 SPOTV에서 해설 제의가 왔으나 고사를 했다고 한다. 대신 한 경기 정도는 해설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KBS에서 챔피언결정전 해설 제의가 와서 4차전때 해설을 했는데 앞으로 제의 온다면 긍정적으로 해보겠다는 생각이라고 한다.


10. 관련 문서[편집]



[1] 프로필 상 기재된 것으로 착화 신장이다. 실제 키는 이보다 작은 듯 보인다. 프로필 188cm인 허재나 187cm의 김선형 보다 확실히 더 작다. 대략 맨발 185cm.[2] 현재 광신방송예술고등학교.[3] 삼성 썬더스 시절[4] SK 빅스/전자랜드, SK 나이츠 시절[5] 수원 삼성 썬더스의 전신인 삼성전자에 입단하였다.[6] 실제로 감독이 되면 돌로 시작되는 별명을 넘어 이런저런 오명을 받는다. 동세대 슈터 라이벌이었던 조성원의 경우 알려진 건 아니지만 이관희로 인해 관성원 이라는 별명이 있다.[7] 키가 2m나 되는 이규섭의 경우는 고려대학 시절까지 센터였다가 삼성 썬더스 입단 이후 서장훈과 겹치면서 슈터로 변신한건 사실이지만, 어차피 당시에는 이규섭 말고도 2미터 내외의 대학시절 빅맨이었던 선수들 다수가 외국인선수들과의 매치업 문제로 3번으로 전향하는 하는게 흔했다. 그런 선수들 중에서 이규섭은 이 중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 중 하나로 꼽힌다. 당시는 자유계약으로 고액의 외국인 선수 2명이 동시 기용되었고 대부분 빅맨이었기에 한국인 빅맨들이 프로 와서 살아남기기 거의 불가능이었다. 이후 프로농구에서 외국인 선수를 한경기에 2명을 동시 기용하는 것에 여러 가지 제한을 두게 하거나 단신 용병을 두거나 하는 식으로 토종 빅맨을 보호 정책을 편 이후로는 토종 빅맨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다.[8] 전체적으로도 KBL의 MVP 비중은, 농구에서 포인트가드가 갖는 중요성을 감안해도 1번 포지션의 수상비율이 기형적으로 높은 편이다. 97년부터 2021년까지 25년간 26번 시상되었는데(06년에 공동 MVP가 탄생) 이 중 포인트가드에게 상이 간 적이 무려 12번이다. (두경민김선형은 슈팅가드로도 뛰지만 수상 시즌엔 PG로 뛰었다) 반면 센터 포지션에서 뛰는 선수에게 간 적은 서장훈 2번, 포지션이 애매한 오세근까지 포함해도 총 3번이다. (김주성은 주 포지션이 파워포워드이므로).[9] 물론 이건 농알못들의 헛소리에 불과했다. 전성기 시절 서장훈은 에이스로서 역할을 충분히 할 정도로 뛰어난 선수였고, 실제로 전자랜드 시절까지 그를 보유한 팀들은 좋은 성적을 거뒀기 때문. 당시 트렌드에서 외국인선수를 맨투맨으로 막을 수 있던 서장훈이 차지하는 수비 비중이나 리바운드 개수를 보면 '궂은 일을 안 한다'는 것 자체도 무의미한 태클이다.[10] 주 득점원이 용병 2명으로 바뀐 상황에서 이충희가 프로에 왔다면 외국인 선수 2명이 설치는 프로 초창기에 팀 득점을 주도해나갈 수 있었을까?? 이충희 역시 프로에 왔으면 수비 +캐치 앤 슈팅으로 역할을 제한받는 처지가 됐을 수도 있다.[11] 사실 2015년 이후 트렌드로 보면 미국식 키로 210에 이르는 김주성이 달릴 수 있고 수비와 전술 이해력도 좋은 데다가, 3점이 가능했다면 NBA에서도 백업이라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이야기도 있다.[12] 당장 KBO에서도 장기간 재임하다 퇴임한 감독들한테 자문직을 맡겼던 전례가 있다. 대표적으로 삼성 라이온즈 시절의 선동열류중일, 그리고 NC 다이노스 시절 김경문.[13] 하하는 허일영과 친분이 있다고 한다.[14] 감독대행 및 당시 애런 소속은 김진 감독이 있는 LG 세이커스였으며 시즌 대처였다.[15] 헤인즈가 정규시즌 막판에 부상을 당하자 PO에서 6위 전자랜드에게 스윕패[16] 당시 애런 소속은 오리온 오리온스로 오리온스는 14년만에 PO 우승[17] 당시 애런 소속은 오리온 오리온스[18] PO에서는 부상을 당했으나 파이널 MVP였던 테리코 화이트와 급구한 제임스 메이스 덕에 팀은 18년만에 플레이오프 우승[19] 헤인즈가 시즌 초반 부상으로 자리를 비웠고, 단신 대체외국인 영입 대실패 [20] 원주 DB 프로미와 공동 1위이며, 코로나19로 시즌이 조기 종료되면서 플레이오프가 치뤄지지 않았다.[21] 평행이론 LG 트윈스와 형제 야구팀인 SK 와이번스가 각각 30년과 10년을 가까이 증명 중이다.[22] 다만 특정 외국인 선수 한 명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 팀 성적의 경우, KBL의 모든 구단들이 공통적으로 해당되었던 사항이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는 있다. 대표적으로 추승균 감독 시절 KCC는 모든 전술이 에밋 고로 통용된 적이 있었고, 이상민 감독의 삼성에 대한 평가는 라건아빨이었다는 것이 중론. 물론 외국인 선수가 자유계약제가 된 이후에는 감독이나 스카우트 팀의 외국인 선수 판별 능력이 그만큼 중요해졌기 때문에 아예 책임이 없다고 보기엔 어렵지만. 실제로 농구는 에이스 한 명이 팀의 성적을 좌지우지하기 상당히 쉬운 종목이기 때문이다.[23] 헤인즈빨이라는 인식 때문에 팀 뎁스까지 얇다고 인식할 수 있으나, SK의 뎁스는 매우 두터운 편이며 그 중에는 본인이 키운 선수도 많을 뿐더러 SK를 까는 타 팀 팬들이나 여러 전문가들조차 SK의 전력 자체는 입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여전히 KBL 최고의 가드 중 하나인 김선형을 보유하고 있고 최성원, 최원혁, 배병준 등 백업 가드들도 탄탄하며 오재현이라는 신인왕 가드와 더불어 양우섭이라는 베테랑 포인트가드도 있다. 포워드진은 사실상 넘쳐나는 수준인데, 팀내 2옵션인 안영준과 포텐 자체는 좋은 최준용, 백업으로 김건우도 있다. 빅맨 중에서는 궂은 일을 책임지는 최부경과 송창무, 김승원 등도 있다. 경질 이후지만 오리온에서 허일영까지 데려왔다. 괜히 전문가들 사이에서 매년 우승 후보 소리 듣는 게 아닌 것. 하지만 이들을 전략에 맞춰 적절히 활용할 줄 모르는 게 문경은이기 때문에 이런 뎁스로도 7위나 8위를 하는 것이었다.[24] 사실 문경은은 우지원의 밀어주기 경기를 보며 씁쓸해 했었고 자신은 이런 밀어주기 경기를 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이 밀어주기의 근본적 뿌리는 모비스에서 바셋을 편법 임대해왔던 KCC 신선우 감독이 모비스 유재학 감독에게 보은의 의미로 모비스 우지원에게 3점슛 몰아주기를 해준데에서 비롯되었고 이에 열받은 TG삼보 전창진 감독이 문경은에게도 밀어주기 경기를 제의하게 된 것이다.[25] KBL 웬만한 경기의 6쿼터에 해당되는 점수이다.[26] 요즘 젊은 선수들의 환장할 슛 성공률을 본다면 몰아줘도 그렇게 넣기 힘들거라는 은근한 재조명이 가끔 나오기도 한다.[27] 놀랍게도 양 팀 합산점수는 타이기록 경기가 있다! 2000년 11월 26일에 펼쳐진 LGSBS의 경기에서 128-120으로 LG가 승리한 경기로 합이 248점이다. 이 해 LG는 전무후무한 시즌 평균 100득점 이상을 기록한 닥공농구로, 이 날 외에도 129득점을 기록한 경기도 있다.[28] 그 과정에서 파생된 별명이 '문토토'. 못할 때 댓글창에서 아주 많이 보이는 단어다.[29] 상기했다시피 문태종 또한 문경은 감독이 거른 선수 중 한 명이다. 그리고 문태종은 13-14 시즌 LG의 정규리그 우승을 함께 했다.[30] 심지어 거기에는 본인 제자인 최준용도 있었다.[31] 특히 이 시즌에 두 팀의 득실차는 SK가 딱 1점 앞섰을 정도로 치열했다.[32] 이 두경기 마저도 역대급에 5점차 이내 박빙 승부였다. 1차전 94-90, 2차전 9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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