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기(농구)

덤프버전 :

}}} ||

[ 펼치기 · 접기 ]
감독
김승기
코치
수석 코치
손규완 ·
코치
손창환 · >

트레이닝 코치
윤유량
스태프
의무 트레이너
조승연 · 김규태 ·
전력 분석원 임기웅 ·

매니저
박건호 ·

통역
신성환 ·

유소년 담당
김수겸

가드
2 김세창 · 5 한호빈 · 6 이정현 · 7 조석호 · 16 박재현 · 21 김강선

C
· 31 조승원 · 55 김진유
포워드
8 최현민 · 12 문시윤 · 23 전성현 · 35 안정욱 · # 함준후
센터
4 김진용 · 14 조재우 · # 김민욱
군 입대
2021년 입대
전성환 ·
2023년 입대
박진철 파일:국군체육부대 부대마크.svg · 조한진 파일:국군체육부대 부대마크.svg >
타 한국프로농구 구단 명단




김승기 관련 틀
[ 펼치기 · 접기 ]


김승기의 수상 이력 및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 펼치기 · 접기 ]

KBL 챔피언 결정전 우승 반지
2003
(선수)

2008
(코치)

2017
(감독)

2021
(감독)












{{{#ffcc33 [[서울 삼성 썬더스|수원 삼성 썬더스]] 등번호 12번}}}
케빈 비어드
(1997)

김승기
(1997~1998)


장기명
(1998~2000)
원주 TG 엑써스 등번호 12번
김영래
(1997~1998)

김승기
(1998~2003)


처드니 그레이
(2004~2005)
울산 모비스 오토몬스 등번호 12번
구병두
(2002~2003)

김승기
(2003~2004)


황문용
(2004~2005)
울산 모비스 피버스 등번호 5번
R.F. 바셋
(2003~2004)

김승기
(2004~2005)


하상윤
(2005~2011)
원주 동부 프로미 등번호 12번
처드니 그레이
(2004~2005)

김승기
(2005~2006)


김봉수
(2010~2013)



고양 소노 스카이거너스 감독
GOYANG SONO SKYGUNNERS

김승기
金承基

출생
1972년 2월 26일 (52세)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신체
신장 182cm|체중 86kg
직업
농구 선수 (포인트 가드, 슈팅 가드 / 은퇴)
농구 감독
종교
불교
학력
서울대방초등학교 (졸업)
용산중학교 (졸업)
용산고등학교 (졸업)
중앙대학교 (학사)
실업 입단
1994년 삼성전자 농구단
현역 시절 등번호
12[1], 5[2]
병역
상무 농구단 (1995~1997)
소속
선수
삼성전자 농구단 (1994~1995)
수원 삼성 썬더스 (1997~1998)
원주 나래-TG 엑써스 (1998~2003)
울산 모비스 피버스 (2003~2005)
원주 동부 프로미 (2005~2006)
코치
원주 동부 프로미 (2006~2009)
부산 kt 소닉붐 (2009~2015 / 수석 코치)
안양 KGC인삼공사 (2015 / 수석 코치)
감독
안양 KGC인삼공사 (2015 / 감독 대행)
안양 KGC인삼공사 (2016~2022)
고양 캐롯-데이원-소노 스카이거너스 (2022~ )
가족
배우자 김지혜(1973년생)
장남 김진모(1998년생)[3]
차남 김동현(2002년생)[4]

1. 개요
2. 선수 경력
2.1. 고등학교 시절
2.2. 대학교 시절
2.3. 실업-프로 시절
2.4. 시즌별 성적
4. 논란 및 사건 사고
4.1. 2015-16 시즌 중 경기 종료 후 항의
4.2. 2016-17 시즌 챔피언 결정전 당시 논란
4.3. 2020년 1월 11일 연장전 경기 포기 논란
4.4. 2021년 1월 12일 작전 시간 중 발언 논란
4.5. 안양 KGC인삼공사 비하 발언 논란
4.6. 2022년 12월 27일 경기 진행 방해 및 항의 논란
5. 여담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농구 선수 출신 감독. 현역 시절의 별명은 '터보 가드'. 고양 소노 스카이거너스 창단 감독이다.

한국프로농구 역사상 선수, 코치, 감독으로 모두 우승한 최초의 농구인이다.[5]


2. 선수 경력[편집]



2.1. 고등학교 시절[편집]


세탁소를 운영하는 집안에서 삼형제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 시기에 농구를 시작했다. #

용산고등학교 진학 이후 동기 김재훈, 후배 김병철, 양경민 등과 함께 양문의 감독 밑에서 배우며 농구부를 고교 최강으로 이끌면서 2학년때 2관왕(춘계연맹전, 대통령기), 3학년때 4관왕(춘계연맹전, 대통령기, 쌍용기, 전국체전)에 오르는 등 그야말로 고교농구를 석권하다시피 했다. 이때의 활약을 바탕으로 1990 FIBA ASIA U-18 대표팀 주장을 맡기도 했으나, 사상 최강이라던 당시 대표팀[6]이 조별 예선에서 사우디와 시리아에 연패하며 탈락하는 바람에 체면을 한껏 구기게 된다.


2.2. 대학교 시절[편집]


중앙대학교 입학 첫해부터 정봉섭 및 강정수 감독에게 배우며 주전 자리를 꿰찬 김승기는 기존의 표필상, 정경호라는 장신 더블포스트 위주였던 팀에 스피드와 파워를 가미하며, 중앙대가 1990년대 초반 대학농구연맹전을 연세대와 양분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당시 빼빼 말랐던 다른 가드들과는 달리 탄탄한 근육을 바탕으로한 지칠 줄 모르는 파워를 가지고 있었고, 여기에 스피드도 최상급이라 "터프가이", "터보가드" 등의 별명으로 불렸다. "장신군단"이라는 팀컬러로 매번 대학팀끼리의 대회에선 최강을 자처하다가도 농구대잔치에서 실업팀들만 만나면 작아졌던 중앙대는, 김승기가 3학년이 되는 시점부터 수비와 속공의 팀으로 변모하면서[7] 실업팀들을 꺾고 오랜만에 농구대잔치 6강에 오른 것은 물론, 졸업을 앞둔 1993-94 농구대잔치에서는 8강에서 농구대잔치 6연속 우승을 노리던 최강 기아자동차를 꺾고 4강에 진출하는 대이변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때의 활약 덕분에, 김승기는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대표팀 가드 한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2.3. 실업-프로 시절[편집]


졸업시즌을 농대 4강이란 성적으로 화려하게 마무리한 김승기는, 90학번 최대어를 놓고 다투던 국가대표 슈터 문경은과 함께 삼성전자 농구단에 입단했다. 김현준, 김진 등 슈터는 많았지만 믿음직한 포인트 가드가 없어 고민하던 삼성전자에서 김승기는 입단하자마자 주전을 꿰찼고, 젊은 슈터 문경은에 상무에서 제대한 센터 이창수까지 합류한 삼성전자는 단번에 1994-95 농구대잔치의 우승 후보로 주목받았다. 농구대잔치 정규리그에서는 손발이 맞지 않으면서 부진, 8위의 성적으로 간신히 플레이오프에 올랐으나, 8강에서 정규리그 전승 우승의 연세대를 구타농구접전끝에 물리쳤고, 4강에서 정재근의 SBS마저 격파하고 파죽지세로 결승까지 진출했다. 결승전에서는 다들 알다시피 최강 기아자동차의 6번째 우승의 제물이 되었고, 김승기는 강동희허재에게 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모습을 보였다.

농대를 마치고 문경은과 함께 상무에 입대한 김승기는 이상민, 조성원, 김재훈, 조동기, 홍사붕 등 당시 사상 최강이라던 멤버들과 함께 상무를 1995-96 농구대잔치1996-97 농구대잔치에 2연속 결승에 진출시킨다. 비록 상무는 95-96 때는 기아에, 96-97 때는 서장훈이 복귀한 연세대에 패하며 2연속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김승기는 오랜만에 대학 때의 패기를 다시보여주며 맹활약, 1996-97 농구대잔치 베스트 5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상무 시절엔 특이했던 부분으로, 당시 로스터에 넘치던 가드, 포워드 자원에 비해서 인사이더진이 빈약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강한 하드웨어를 가진 그를 상당시간 인사이더 슬롯에 사용했다. 1997 리야드 ABC에도 출전하여 28년만의 ABC 우승컵을 가져오는데 일조한다.

파일:external/pbs.twimg.com/DA-b_sLUMAAoVR_.jpg

군 제대 후 문경은과 함께 원 소속 구단 수원 삼성 썬더스로 복귀해 1997-98 시즌이 KBL 데뷔 시즌이 된다. 문경은과 김승기가 제대했고 외국인 드래프트 1위 존 스트릭랜드(200cm)까지 가세하면서, -- 트리오가 건재한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 트리오가 처음 구성된 대전 현대 다이넷과 함께 3강구도를 이룰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이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센터 스트릭랜드는 피딩 따윈 배운 적 없다는 듯 블랙홀 마냥 모든 공격을 독식했고, 문경은, 김희선 등 멤버간의 호흡도 맞지 않으면서 리그 9위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게 되었다.[8] 특히 김승기는 대표팀 가드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팀을 전혀 제어하지 못했고, 당시 고려대 1학년 중퇴 후 데뷔했던 원주 나래의 신인 주희정에게도 탈탈 털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로 인해 팀 내에서도 경희대 출신 신인가드 박성배와 함께 출전 시간을 나눠야할 정도로 신뢰를 잃었고, 시즌 종료 후 그 주희정과 트레이드되어 원주 나래로 이적하게 된다.[9]

파일:원주 삼보 시절의 김승기.jpg

1998-99 시즌을 앞두고 허재, 신기성, 양경민 등을 받아들이면서 새로워진 원주 삼보[10]에서 김승기는 신기성의 백업가드로 뛰게 되었다. 신기성이 입대한 2001-02 시즌엔 오랜만에 풀타임 주전으로 뛰게 되었으나 이때가 전설의 식물용병 패트릭 은공바를 비롯한 원주 삼보의 외국인 선수 대란 시절이라 시즌 9위의 참담한 성적표를 받는다.[11]

파일:external/pbs.twimg.com/DBCRhygV0AAykyf.jpg

2002-03 시즌을 앞두고 신인 드래프트 1순위 김주성이 합류하면서, 원주 TG는 단신의 슈팅 가드 데이비드 잭슨(192cm)을 뽑았고 허재가 오랜만에 포인트 가드 자리를 맡게 된다. 김승기는 백업가드로서 37세의 노장 허재의 체력 보전은 물론 전 시즌 KBL 우수수비상 수상자답게 강력한 디펜스를 펼치며 원주 TG의 정규리그 3위 및 프랜차이즈 사상 최초의 챔피언결정전 우승 타이틀을 얻는 데 이바지 한다. 특히 챔피언결정전 5차전에서 갈비뼈를 다친 허재를 대신해 출전한 6차전 대구 원정경기에서 오랜만에 리딩가드로서 믿음직한 활약을 펼치며 대역전극을 주도하였다.

파일:external/mobis.e-soom.co.kr:9000/IMG_6699.jpg

2002-03 시즌 우승 이후, 원주 TG 전창진 감독은 울산 모비스에서 자리를 못잡고 있던 장신 유망주 정훈(F, 198cm)을 얻기 위해 김승기와 2:1 트레이드(TG삼보 get: 정훈, 박정완 ↔ 모비스 get: 김승기)를 단행한다. 어차피 신기성이 제대하면서 후보로 밀릴 김승기를 보내고 한때 김주성과 함께 한국농구의 희망이라 불렸던 정훈을 데려다 키워보자는 게 전창진 감독의 복안이었으나, 결과는 폭망....덕분에 김승기는 모비스에서 반짝 주전을 차지하지만, 여기도 우지원, 노쇠한 조니 맥도웰과 함께 폭망하면서 리그 꼴찌가 된다. 주전만 하면 팀이 바닥으로 추락하는 신비한 능력.[12]

파일:external/img.hani.co.kr/02787726_20051027.jpg

파일:external/imgnews.naver.com/0002962724_001_20170502205711914.jpg

2005-06 시즌을 앞두고 FA가 된 김승기는 시장에서 인기가 없었고, 은퇴 위기 끝에 친정팀이라 할 수 있는 원주 동부 프로미에 재합류했다. 당시 신기성을 FA 시장에서 잃고[13] 확실한 포인트 가드가 없어 고민하던 원주 동부는 김승기를 강기중, 한상민 등과 플래툰 시스템으로 돌려가며 썼고 리그 3위로 시즌을 마무리하지만, 6강 플레이오프에서 김승현이 맹활약한 대구 오리온스에 1:2로 허무하게 탈락하고 만다. 김승기는 이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했다.


2.4. 시즌별 성적[편집]


역대 성적
시즌
소속 구단
경기 수
2점 슛
3점 슛
자유투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 슛
1997-98
삼성
37
53/117
(45.30%)
15/57
(26.32%)
47/63
(74.60%)
198
78
126
46
0
시즌
소속 구단
경기 수
2점 슛
3점 슛
자유투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 슛
1998-99
나래/삼보/TG 삼보
37
41/74
(55.41%)
12/40
(30.00%)
16/21
(76.19%)
134
42
51
28
0
1999-00
38
47/89
(52.81%)
21/65
(32.31%)
21/27
(77.78%)
178
34
43
33
0
2000-01
44
70/141
(49.65%)
36/107
(33.64%)
27/35
(77.14%)
275
66
75
35
1
2001-02
54
116/264
(43.94%)
88/258
(34.11%)
42/53
(79.25%)
538
252
73
64
3
2002-03
49
36/82
(43.90%)
49/153
(32.03%)
17/23
(73.91%)
236
91
166
46
1
시즌
소속 구단
경기 수
2점 슛
3점 슛
자유투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 슛
2003-04
모비스
54
36/81
(44.44%)
62/171
(36.26%)
17/18
(94.44%)
275
90
157
46
0
2004-05
19
5/10
(50.00%)
7/46
(15.22%)

31
16
30
9
0
시즌
소속 구단
경기 수
2점 슛
3점 슛
자유투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 슛
2005-06
동부
49
14/32
(43.75%)
40/112
(35.71%)
21/25
(84.00%)
169
65
109
35
1
KBL 통산
(9시즌)
381
418/890
(46.97%)
330/1009
(32.71%)
208/265
(78.49%)
2,034
626
1,009
342
6


3. 지도자 경력[편집]


파일:김승기 감독 지시.jpg}}}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승기(농구)/지도자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논란 및 사건 사고[편집]



4.1. 2015-16 시즌 중 경기 종료 후 항의[편집]


2016년 1월 13일 전주 KCC 이지스와의 경기 종료 후 심판에게 KBL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발언을 하며 벤치 교체석 의자를 발로 차는 등 불손한 행동을 했다. 결국 KBL은 김승기 감독에게 견책 및 300만 원의 제재금을 부과했다.


4.2. 2016-17 시즌 챔피언 결정전 당시 논란[편집]


16-17 시즌 챔피언결정전 2차전때 일어난 이관희와 이정현의 충돌을 두고 "후배가 선배에게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며 "나도 다른 선수를 시켜서 그렇게 할 수 있지만 하지 않았다"라는 인터뷰를 했다. 일단 80-90년대에 규율과 체벌, 선배 공경이 엄격했던 학원농구를 배웠던 사람이라 첫번째 발언은 어찌어찌 넘어간다쳐도 자신도 아무나 시켜서 그렇게 할수 있다는 발언은 전례가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 봤을 때 굉장히 적절하지 못한 발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사실 이관희의 행동도 팀원들의 불만을 총대매고 한 행동이라기 보다는 상대가 엘보우로 목을 치는 비신사적인 플레이에 순간적으로 화가 났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많은 만큼 사건의 본질을 구단의 감독이라는 사람이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 와중에 작전타임 때 선수들에게 대놓고 플라핑을 지시[14]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방송 화면에 잡히자 동업자 정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감독이라면서 안티를 줄이기는커녕 더욱 폭발적으로 양산하는 중이다.

그리고 4차전 삼성에게 82-78로 패배하자 경기 후 삼성의 코칭스태프와의 악수타임에서 옆으로 빠져나가며 손만 슬쩍 뻗어 이상민 감독의 악수를 받아 또다시 비난을 샀다.[15] 한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무리를 지은 것과는 다르게 김승기 감독에게 경기 외적으로 마이너스 요소가 많았던 시리즈로 평가받고 있다. 좋게 말하면 팀 성적과 선수단의 사기를 위해서는 비난을 개의치 않는 무브도 과감하게 실행에 옮기지만, 나쁘게 말하면 내로남불의 성향이 강하다는 점.[16]


4.3. 2020년 1월 11일 연장전 경기 포기 논란[편집]


2019-20 시즌 2020년 1월 11일 창원 LG와의 경기에서 연장에 들어가서 마지막까지 득점 한 번 못해보고 무기력하게 패했는데, 김승기 감독이 오히려 선수들에게 득점을 주문하지 않고 경기를 일찍 포기해버리는 모습을 보이면서 논란이 커졌다. # ## ### 팬들은 이 또한 전창진의 모습을 그대로 배웠다며 비판하고 있는 상황. 결국 논란에 대해 해명을 했으나 팬들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결국 KBL에서 재정위원회가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KBL은 1월 14일 재정위원회를 통해 김승기 감독에게 정규리그 한 경기 출장 정지와 1,000만원의 제재금을 부과했다. 경기 중 최선을 다하지 않은 태도는 물론, 경기 종료 후에도 당일 심판에게 부적절한 언행으로 과격한 항의를 한 부분까지 감안해 선례에 비해 더 큰 처벌이 내려지게 된 것이다. 김 감독의 소속팀인 안양 KGC인삼공사에게도 경고 조치가 내려졌다.

결국 KGC는 올스타전 이후 첫 홈 경기인 2020년 1월 23일. 원주 DB와의 경기에서 김승기 감독을 비롯한 코치 및 선수단 전원, 전삼식 단장까지 나와 팬들에게 고개숙여 사과했다. 김승기 감독은 1경기 출전 경기 징계를 받아 이 경기에 감독으로 나서지 못하고 손규완 코치가 지휘했으나, 68:84로 대패했다.


4.4. 2021년 1월 12일 작전 시간 중 발언 논란[편집]


이 기사 참조


4.5. 안양 KGC인삼공사 비하 발언 논란[편집]


7년간 감독 대행을 포함해서 감독으로 4강 2회 챔프전 3번 진출 2회 우승 1회 준우승으로 왕조를 이끌었던 KGC 인삼공사에 이적 후 감독으로 첫 방문 때 서운함을 토해냈다. 농담조의 발언이긴 했으나 홍삼 하나 주지 않는다며 친정에 거지라는 발언을 했다. 인삼공사 팬은 물론이고 캐롯 팬들의 반응도 딱히 좋지는 않았다. 심지어 제3자의 팬도 아무리 해당 구단에 쌓인게 있다고 하더라도 옛 제자들과 후임 감독마저 무시하는 태도라며 비판을 쏟아냈다.

#
#

2023년 2월에는 구단의 재정난과 관련된 질문에 인삼공사 구단을 언급하며 빈정거리는 발언을 했다. 해당 구단과는 아무 상관없는 질문에 나온 발언이기 때문에 좀 지나친 발언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인삼공사 구단도 참기 힘들었는지 KBL에 심의 요청을 했다. #

이렇게 KGC를 향해 날선 발언을 연이어 하는 이유는 KGC 시절 당시 받은 대우에 대해 불만이 쌓일대로 쌓였기 때문이다. 재임 당시 단장이었던 전삼식 단장의 "감독 계약은 3년이상 하지 않는다" 해괴한 방침 때문에 상당한 성과를 거뒀는데도 2년 계약만 계속 했는데 2020-2021 시즌 우승 후 재계약 기간 역시 2년짜리였고 이마저도 벌금 500만 원 이상 징계를 받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자동 연장되는 1+1 계약이었다.[17] 그래서 2022년 여름에 다시 연장 계약 협상을 했고 김승기 본인은 3년 이상 보장을 원했지만 입장 차가 여전히 커서 허재가 제안을 해온 캐롯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홍삼 운운 역시 선수단 복지를 대폭 줄였던 것에 대한 지적이었다. # 실제로, 2023년 1월 23일 KGC와의 경기 후 인터뷰에서 전삼식 전 단장에 대한 서운함과 서정일 현 단장 체제의 개선된 KGC를 보고 허탈감과 서운함을 느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

이 모든 원인은 구단 운영 경비를 지나치게 아끼려고 선수 계약에 옵션을 과도하게 집어넣고 감독 계약도 미적지근하게 해주는건 물론 FA도 안 붙잡고 선수단 복지도 확 줄인 전삼식 전 단장이 원흉으로 꼽힌다.[18] 결국, 김승기 감독과 전성현 등을 놓치자 모기업 측은 2022-2023 시즌을 앞두고 전삼식을 수도권본부장으로 보내버리고 서정일 상무를 새 단장으로 임명했다. 실제로 서정일 체제 이후 위 사항이 전부 개선됐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김승기의 22-23 시즌 내내 KGC를 향한 비난이 정당화될 순 없다. 시즌 내내 KGC를 향해 저격발언을 하면서 아무 연관도, 잘못도 없는 선수단과 전삼식 단장이 사퇴해서 이제 아무 문제도 없는 프런트를 괴롭혔고 그 결과 거지 발언으로 KGC 측이 폭발해 제소한 것이다. 그리고 캐롯의 임금체불에 대한 질문에 KGC 시절에 더한 것도 겪었다면서 선수단 복지 대폭 축소를 언급했는데, 상식적으로 복지혜택 축소와 임금 미지급 중 무엇이 더 심각한건지 감안하면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


4.6. 2022년 12월 27일 경기 진행 방해 및 항의 논란[편집]


안양에서 열린 KGC 인삼공사전에서 경기 종료 직전 박지훈의 중거리 슛이 림을 통과해 버저비터 패를 당했는데, 박지훈이 리바운드를 잡을 때 엔드라인을 밟았다고 항의하며 분을 참지 못한 나머지 경기 후에도 옷을 벗어 집어던지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28일 캐롯 구단 관계자들이 KBL 본사를 방문했지만 심판진의 판정이 옳았음을 연맹측이 밝히며 재정위원회에 넘어갔다. 그리고 30일 벌금 150만원 징계가 내려졌다.


5. 여담[편집]


파일:코재하우스를 방문한 신기성, 김상준, 김승기, 정경호.png

  • 용산고 선배이자 옛 스승으로 원주 TG삼보에서 선수와 감독, 부산 kt에서 코치와 감독으로 한솥밥을 먹었던 전창진 감독에게는 전술을 깨알같이 잘 알고 있어서일지 몰라도 상대 전적에서 3승 2패로 앞서고 있다. 19-20 시즌 KCC를 상대로 홈에서는 1승 2패로 밀렸으나 전주 원정에서는 2번 모두 이겨서 전승을 했다. 20-21시즌에는 1,2라운드를 모두 져서 3승 4패로 다시 열세가 되었다가 3라운드에서 이겨서 4승 4패로 백중세가 되었다가 3번 더 붙어서 1승 2패 열세 전적의 5승 6패 기록이 되었다. 이후 펼쳐진 챔피언결정전에서 두 감독이 서로 맞붙었는데, 김승기 감독의 KGC가 KCC를 4승으로 스윕하며 정규시즌 열세를 설욕하였다. [20]

  • 출생연도는 1년 빠르지만 김승기 감독이 생일이 빨라 학교를 조기 입학해 90학번 동갑내기로 지내는 문경은 前 SK 나이츠 감독한테 승률이 높다. 현재 상대전적은 22승 12패 0.647이다. 정규리그에서만 맞붙었는데 2015~2016시즌부터 5시즌 연속 SK 상대 열세인 적이 없었다.[21] 이 두팀은 김승기 부임 이후 플레이오프에서 맞붙어본적이 없는데, 2015-2016시즌 KGC 4위(4강) SK 9위(탈락), 2016-2017시즌 KGC 1위(우승) SK 7위(탈락), 2017-2018시즌 KGC 5위(4강) SK 2위(우승), 2018-2019시즌 KGC 7위(탈락) SK 9위(탈락),2019-2020시즌은 KGC 3위 SK 공동 1위였으나 플레이오프 없이 시즌을 마쳤기에 5년간 플레이오프에서 동반 진출을 못하거나 동반 진출을 해도 마주칠 수 없었다. 역대 시즌을 통틀어 양팀이 챔피언결정전에서 맞붙어 본적은 없고 2007-08시즌 6강 플레이오프에서 만나 주희정이 4쿼터 종료 직전 손지창슛으로 불리는 3점 버저비터로 연장으로 끌고 가 1차전을 잡아 기선제압을 한 뒤 2차전에서 마퀸 챈들러의 41득점 12리바운드 10어시스트 트리플더블 활약을 바탕으로 2승을 만들어 4강에 올라간 것[22]과 12-13 시즌 4강 플레이오프에서 맞붙어 SK가 3승 1패로 챔프전에 진출한 것이 맞대결 결과의 전부이다. 이후 두 팀이 포스트시즌에서 대결할 때 승률이 어떻게 될지 기대를 모은다. 한편 문경은 감독의 기술 고문직 이동으로 삼성 출신 90학번 감독 맞대결은 볼 수 없게 되었다.

  • 과거 작전타임 때 선수들을 지나치게 갈구는 모습으로 안티들에게 비난을 받은적이 있지만 최근엔 많이 부드러워진 모습이다. 경기 포기 논란 이후 카메라를 의식한다는 말도 있지만 이 부분 또한 칭찬을 받고 있다.

  • 2020 KBL 컵 대회 미디어데이에서 2020년 5월 부임한 같은 90학번 창원 LG 세이커스 조성원 감독에게 직전시즌에 우리가 더 공격 횟수를 많이 가져가서 이겼는데 직접 보는 앞에서 한 수 가르쳐 주겠다 했는데 그대로 스틸을 통해 속공을 바탕으로 승리를 해 감독 선배의 능력을 보였다.[23]
앞으로 맞붙을 정규 리그에서 빠르고 쉴 틈 없이 공격농구를 표방한 조성원 감독과의 맞대결이 주목된다. 정규시즌에 들어서도 LG에게 1~3라운드를 모두 승리했다. 3경기 모두 60점대의 실점으로 막아낸 것은 덤이다.

  • 선수 때 슈팅가드로 활약해서 그럴지 모르겠지만 슈터를 키워내는데 탁월함이 있다. LG에서 뛰던 배병준을 데려와 슈터로 키웠고 SK에서 뛰었던 우동현을 데리고 와서 3점슛 잘 넣는 선수로 키웠다.[24]

  • 아들 두 명 모두 농구 선수로 큰아들 김진모는 2라운드 3순위 대구 한국가스공사에, 작은 아들 김동현은 1라운드 9순위로 전주 KCC에 지명되었다.[25]

  • 2021년 9월 30일 열린 미디어데이에서 예전과는 달리 9개 감독으로 부터 우승 후보로 평가 받지 못했다. 제러드 설린저와 재계약을 못했고 FA 이재도창원 LG로 이적해서 양희종, 오세근의 몸 상태가 좋지 못한 것이라면서 전력이 약해졌다 평가 받아 그렇다 했다.
다만 두 아들 김진모, 김동현이 프로 구단에 지명되어 10개 구단 중 우리 가족이 우승할 확률이 30%라면서 웃어보였다. 우승 반지가 네 개 있는데 한 개 더 따면 다섯 개가 되니까 우승하고 싶은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 성균관대학교 김상준 감독과 절친한 만큼 드래프트에서 성균관대 선수들을 자주 뽑는 것으로 유명하다.인맥픽 2019년 3라운드, 2020년 3라운드, 2021년 1라운드, 2022년 2라운드, 2023년 1,2라운드. 최근 5년동안 항상 성균관대 선수들을 뽑았다.



6. 관련 문서[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16 12:03:09에 나무위키 김승기(농구)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삼성 썬더스, 원주 나래-TG-동부, 2003-04 시즌 모비스 오토몬스 시절[2] 2004-05 시즌 모비스 피버스 시절[3] 1998년 11월 24일생으로 포지션은 포워드로 신장이 196cm라고 한다. 2021년 드래프트 신청했고 2라운드 3순위로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에 지명됐다.[4] 2002년 2월 15일생으로 190cm의 신장이다. 용산중, 용산고, 연세대 출신으로 2021년 신인 드래프트를 신청했고 부산 KCC 이지스에 지명됐다. 슈팅 가드를 맡고 있다.[5] 2002-03 TG 선수 시절, 2007-08 동부 코치 시절, 2016-17 인삼공사 감독 시절 우승했다. 허재의 경우 선수(1997 기아)와 감독(2008-09 KCC)으로 모두 김승기보다 먼저 우승했다. 허재코치 경력 없이 감독으로 직행했기 때문에 선수와 감독 기준으로만 한정할 때는 허재가 최초다.[6] G: 김승기, 이상민, 홍사붕, F: 문경은, 조성원, C: 김재훈, 전희철, 서장훈 등... 네임밸류만으로는 다시 볼 수도 없는 멤버들이었다.[7] 이때 베스트 5는 PG 김승기 - SG 홍사붕 - SF 김영만 - PF 양경민 - C 조동기, 키 식스 맨 김희선으로 구성되었었다.[8] 원래 성적은 7위 정도였는데,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가 확정되고 나서 1998 드래프트에서 현주엽을 뽑기 위해 탱킹을 시도했던 탓이 컸다. 당시 10위는 40%, 9위 30%, 8위 20%, 7위 10%의 차등확률 추첨제였기 때문이었는데, 결국 정의는 승리하여 수원 삼성은 드래프트 3순위로 김택훈(F, 193cm)을 뽑는데 그쳤다.[9] 삼성 get: 주희정, 강병수 ↔ 나래 get: 김승기, 양경민(상무 제대)[10] 팀명도 원주 나래 블루버드에서 원주 삼보 엑서스로 바꿨다.[11] 이로 인해 당시 김동욱 감독이 경질되고 전창진 코치가 감독대행의 자리에 오른다. 대충 이 시기에 김승기와 전창진의 인연이 시작되었다고 보면 될 듯도 하나 실질적으로 둘의 인연은 실업농구 삼성전자 시절 전창진이 구단 매니저로 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는 주장도 있다.[12] 97-98 삼성: 9위, 01-02 TG: 9위, 03-04 모비스: 10위.[13] 부산 KTF 매직윙스로 이적.[14] 해당 장면은 19분 20초에 있다.[15] 사실 13-14 시즌 kt 코치 시절 4-4 트레이드 이후 패하자 추일승 감독의 악수를 대놓고 무시한 적이 있어 이런 인성논란에 한몫했다.[16] 이것 역시 전창진의 내공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고 봐도 무방하다.[17] 이는 위에도 설명되어 있는 2020년 1월 경기 포기 논란으로 인해 1000만원 징계를 받은 걸 감안한 안전 장치였다.[18] 2022년 6월엔 이런 팀 운영에 불만을 품은 팬들이 KT&G 서울 본사에서 트럭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덧붙여, 시위 자체가 전삼식 전 단장을 겨냥한 것이었는데 준비 도중에 단장이 교체돼서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고 한다. #[19] 사실 이 때 5승 중 3승은 5점차 이내 승부였고 1번은 연장 승부였다. 승패마진에서만 압도했지 경기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다지 압도적이진 않았다.[20] 참고로 전창진 감독이 부임전에는 김승기 감독의 KCC 상대전적이 8승 16패 승률 0.333 이었다. 그 속을 들어다 보면 2015-16시즌에는 김승기 감독이 2015년 12월 31일까지 대행신분으로 1승 3패 감독이 되어 2016년 2패(도합 1승 5패), 2016-17 시즌에 5승 1패 먹이 먹듯 물리치며 압살해 통합우승을 기록한 것을 빼고[19] 2017-18시즌 6패, 2018-19 시즌 2승 4패로 (특히 18-19시즌에는 상대전적 열세가 6위와의 승차가 2경기차의 아쉬운 플레이오프 탈락으로 이어졌다.) 밀렸다. KCC에게 상대전적에서 밀리며 압살당해 순위가 더 낮았다. 2019-20 시즌에는 우위를 보이며 KCC보다 순위가 더 높았는데, 앞으로의 시즌에서 KCC를 상대로 우위를 가져가면서 순위가 더 높을지 아니면 그 반대가 될지 주목이 갔는데 20-21 정규시즌에 2승 4패로 열세였고 정규리그 순위는 KCC가 1위 KGC가 3위였다. 21-22 시즌에는 직전시즌 챔피언 결정전에서 만나는 팀들이 개막전에서 만나는 원칙에 따라 만났는데 85:76로 KGC가 승리를 거두었고 KCC와 순위가 같다.[21] 2015-16시즌 4승 2패, 2016-17시즌 5승 1패, 2017-18시즌 3승 3패, 2018-19시즌 5승 1패 2019-20시즌 2승 2패[22] 이 두경기 마저도 역대급에 5점차 이내 박빙 승부였다. 1차전 94-90, 2차전 90-87[23] LG가 3점슛 14개로 KGC보다 3개의 3점슛을 더 꽂았지만 수비를 바탕으로 승리를 한 것이다.[24] 잠재력이 있는 선수라고 생각이들면 슛이 좋은 선수로 만들겠다는 신념이 있다.[25] 참고로 아들 두 명 모두 KBL에서 뛰고 있는 자녀로 허재 전 국가대표팀 감독의 두 아들 허웅, 허훈에 이어 두번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