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도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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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농구인

길도익
吉鍍翼

출생
1976년 5월 7일 (47세)
대전광역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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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본관
해평 길씨
종교
불교
신체
190cm|체중 88kg
포지션
농구선수(포워드 / 은퇴)
학력
대전동명중학교 (졸업)
대전고등학교 (졸업)
명지대학교 (체육학 / 학사)
프로 입단
1999년 드래프트 (1라운드 10순위, 대전 현대)
병역
국군체육부대 농구단 (2001~2003)
소속
대전 현대 걸리버스 (1999~2000)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2000~2001)
울산 모비스 오토몬스 (2003)
창원 LG 세이커스 (2003~2004)
창원 LG 세이커스 (2004~2005)

1. 개요
2. 선수 이전
3. 선수 시절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직 농구 선수였다. 과감한 3점슛이 주무기였지만 스피드가 부족했고 높은 자세 때문에 안정감이 떨어졌다.


2. 선수 이전[편집]


중학교 때 육상선수로 전국대회에 출전한 경력도 있었지만, 대전고등학교로 진학하자마자 농구를 늦게 시작했다. 제18회 협회장기에서 조상현, 조동현, 황성인, 구본근 등과 함께 5년만에 정상에 올렸다.

그 후, 진성호 감독의 부름을 받고 명지대학교로 진학해 육상 경험을 살려 다진 체력과 강도 높은 훈련을 하며 유망주로 주목받았다.[1] 특히 4학년 때 1998 MBC배 전국대학농구대회 패자 준결승전에서 동기 장영재, 1년 후배 이병석 등과 함께 맹활약하며 한양대를 꺾고 팀 최초로 결승진출을 이끌었다.


3. 선수 시절[편집]


1999년 드래프트에서 고향팀인 대전 현대 걸리버스에 지명되었지만, 같은 포지션 층이 두터워 출전할 기회가 많지 않았고, 권종오와 빅딜 트레이드된 부산 기아에서도 마찬가지로 별다른 활약 없이 시즌 종료 후 2년간 군에 전념했다.

제대 후, 울산 모비스로 이적한 뒤에도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다가 시즌 도중 정종선과 트레이드로 온 창원 LG에서도 1경기도 뛰지 못했고, 2004-2005 시즌 정진영과 1:1 트레이드로 다시 친정팀 창원 LG 세이커스에 복귀 후에도 벤치에서만 지켜보다가 시즌이 끝난 후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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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담으로 진성호 감독은 강한 훈련 그리고 체벌로도 유명한 감독이었다. 조성원이 농구부를 이탈했다가 겨우 설득시켜서 돌아왔는데 얼마 후에 매타작이 다시 시작됐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