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 헤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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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지금 여기에 있다
어느 길을 택해도
항상 누군가를 따라잡지 못하고
다른 누군가에게 추월당한다
그래도 낙담을 억누르고
초조함은 숨기면서
한결같이 나아갔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 있다
열망하던 장소에서
가로막는 것 없이
동경하던 경치를 바라보고 있다
JRA 명마의 초상
2000년, 타카마츠노미야 기념.
그 말은, 10번의 패배를 넘어 혈통을 증명했다.
패배해도, 패배해도, 패배해도.
절대로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초록색의 멘코.
불굴의 화신.
그 말의 이름은...
킹 헤일로.
다음 전설을 보아라.
2012년 타카마츠노미야 기념 CM
일본의 경주마. 스페셜 위크, 엘 콘도르 파사, 그래스 원더, 세이운 스카이와 함께 뛰어난 성적을 거뒀던 95년생 경주마들을 일컫는 일명 '황금 세대'의 일원중 하나로 유명했다. 이름의 유래는 왕(王)을 의미하는 킹(キング)과 어머니와 외조부의 이름을 딴 헤일로.
2. 혈통[편집]
아버지는 1986년 개선문상에서 호화로운 멤버들 사이에서도 압도적인 1번 인기(odd 1.3배)[3] 로 큰 차이로 승리하며 2011년까지 국제 레이팅 역대 1위(2012년 이후로 2위)를 사수한 명마 댄싱 브레이브(Dancing Brave), 어머니는 미국에서 24전 11승(그 중 G1 레이스 7승)을 기록한 굿바이 헤일로(Goodbye halo:グッバイヘイロー)였다. 굿바이 헤일로의 아버지, 즉 킹 헤일로의 외조부는 다름아닌 선데이 사일런스의 아버지 헤일로(Halo).
특히 유럽 경마 역사상에 남는 명마인 댄싱 브레이브가 일본에 헐값에 팔려온 이유는 병[4] 으로 짝짓기를 하기 어렵고 첫 자마들의 성적이 부진한 상태였기 때문이었지만, 일본에 팔린 후 유럽에 남아있던 몇 안되는 자마들이 성적을 내기 시작하고, 일본에서도 치료를 병행하며 적은 수의 교배를 한 것 치곤 나쁘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
3. 생애[편집]
3.1. 1995년 (출생) ~ 1997년 (2세)[편집]
1990년 은퇴 후 일본으로 수입된 굿바이 헤일로는 홋카이도 니캇푸 쿄와목장(協和牧場)의 번식 암말이 되었고, 1991년에 일본으로 수입된 댄싱 브레이브와의 교배로 1995년에 자식을 낳는다. 출생하자마자 유럽과 미국의 우수한 혈통을 타고 난 것으로 주목 받았는데 정식 경주마의 이름을 정하기 전까지는 '모마(어머니)의 이름 + 태어난 연도'를 붙여서 임시 이름을 부여하기에 이 말은 '굿바이 헤일로 1995'라는 임시 명칭을 부여받았다. 이후 마주의 관명[5] 과 어미인 굿바이 헤일로의 이름을 따와서 '아사카 헤일로(アサカヘイロー)'라는 정식 이름이 정해진다.
그런데 당시 쿄와목장의 대표이자 마주인 아사카와 요시오(浅川吉男)는 굿바이 헤일로의 4번째 자마였던 이 아사카 헤일로에 큰 기대를 걸고 있어서 마주의 관명인 아사카를 떼어내고 '헤일로 혈통의 자식들 중에서 최고가 되라'는 의미로 왕(王)의 이름을 주어 킹 헤일로(キングヘイロー)로 이름을 변경한다. 원칙적으로는 경주마의 이름 변경은 불가능하지만 미출주인 말에 한해 1회 이름 변경이 가능하다는 JRA의 규정이 있으며, JRA에 등록된 경주마 이력정보에서도 옛 이름(旧馬名)인 아사카 헤일로(アサカヘイロー)가 남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데뷔를 앞두고 천재 기수라고 불렸던 타케 유타카가 기승할 예정이었으나, 당시에도 워낙 인기가 있었던 타케 유타카였고 1997년 마이니치 왕관(G2)에 출전하는 제뉴인[6] 의 기승 의뢰를 받았기에 킹 헤일로의 조교사였던 사카구치 마사히로(坂口正大)[7] 에게 기승을 거절하는 전화를 한다. 마침 그 자리에는 천재 기수 후쿠나가 요이치의 아들로 주목을 받고 있던 막 2년차 풋내기 기수인 후쿠나가 유이치(福永祐一)가 사카구치 조교사의 마굿간에 놀러와 있었는데, "타케 유타카가 탈 수 없게 된거 같다"는 사카구치 조교사의 말과 함께 "너, 타 볼래?"라는 한 마디로 킹 헤일로의 기승이 결정되었다고 한다. #
1997년 10월에 데뷔하여 2세마 시절은 킹 헤일로의 마생에서 최전성기에 속한다. 데뷔 후 2연승을 거두고 첫 중상 출전이었던 도쿄스포츠배 3세 스테이크스(당시 G3)에서 1착과 함께 레코드를 기록, 무패 3연승을 거두며 기대주로 부각된다. 특히 이 자리는 경주마인 킹 헤일로는 물론이고 기수인 후쿠나가 유이치도 인생 첫 JRA 중상급 승리를 거둔 자리였다. 경기 영상
이렇게 무패 3승 가도를 달렸으나 경마에 '절대'라는 것이 없는 것처럼, 한 달 뒤 라디오탄파배 3세 스테이크스(당시 G3)에서 모리 서바이벌(モーリサバイバル)[8] 때문에 진로가 막혀 아쉽게 2착을 기록. 첫 패배를 경험하기도 했다.
3.2. 1998년 (3세)[편집]
1998년, 본격적인 클래식 전선에 돌입하며 스페셜 위크, 세이운 스카이와 함께 "98년 클래식 3강"으로 불렸다.
사츠키상의 전초전으로 불리는 야요이상(G2)을 맞이하여 1번 인기를 기록한다. 전년도 라디오탄파배 3세 스테이크스에서 2착으로 무패 3연승의 기록은 깨졌지만, 유럽과 미국에서 맹활약한 부모를 가진 혈통빨 쩌는 말 + 천재 기수 후쿠나가 요이치의 아들이 타고 3연승이라는 엘리트 이미지 때문에 도련님(坊ちゃん)이라는 별명이 붙으며 큰 기대를 받았던 것. 그러나 이 경기에서 킹 헤일로는 스페셜 위크와 세이운 스카이에 이은 3착을 기록한다.
사츠키상에서는 스페셜 위크를 꺾었으나 세이운 스카이에게 밀려 2착을 기록한다.[9] 후쿠나가 기수의 회상에 따르면 사츠키상 첫 출주에서 2착을 한 자신의 경기에 내심 만족하고 있었는데, 막 은퇴하고 조교사 경험을 쌓고 있던 풍운아 타바라 세이키(田原成貴)[10][11] 에게 형편 없었다는 평가와 함께 "이 경기는 네가 이길 수 있었다"고 크게 혼이 났었다고 한다.#
그리고 운명의 일본 더비. 사츠키상에서 보여준 활약으로 사카구치 조교사는 '킹 헤일로가 어딘가 바깥으로 빠져나오게 된다면 도쿄의 긴 직선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했고, 당시의 경마 분석지에서는 더비 유력마로 스페셜 위크에게 ◎, 킹 헤일로에게 ◯, 세이운 스카이에게는 ▲를 주며 킹 헤일로의 혈통에 대한 기대와 함께 이번에야말로 전력투구를 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런 기대감으로 2번 인기를 기록한 킹 헤일로였으나 문제는 경험이 부족했던 풋내기 기수 후쿠나가 유이치였다. 당시를 회상한 사카구치 조교사의 말에 따르면 혈통이 대단한 킹 헤일로는 물론이고 천재 기수 후쿠나가 요이치의 아들인 후쿠나가 유이치가 더비에서 이기면 'JRA 최연소 더비 승리'라는 기록이 세워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기에 당일 후쿠나가를 밀착 취재하려는 방송 카메라들이 많았었다고 한다. 가뜩이나 첫 더비 출주인데 아버지의 명성과 말의 혈통으로 주목을 받고 있던 상황이라 사카구치 조교사가 본 후쿠나가 유이치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어서 긴장한 모습이 보였다는데 정작 후쿠나가 본인은 감기 때문이라고 얼버무렸다고 한다. # 이렇게 초긴장한 상태로 첫 더비에 출전한 후쿠나가는 결국 경기 초반에 스퍼트를 해버리는 사고를 냈고, 경기를 초 하이페이스로 끌고 가면서 자신이 타고 있던 킹 헤일로와 근처의 세이운 스카이의 페이스[12] 를 완전히 망쳐버리고 만다. 결국 스페셜 위크[13] 가 5마신 차로 압승을 기록하며 더비마가 되었고, 세이운 스카이는 4착[14] 을 기록했으며, 킹 헤일로와 후쿠나가 유이치는 14착으로 대패했다. 타바라 세이키는 경마 신문 칼럼을 통해 맹비난을 했고, 경기가 끝난 후쿠나가는 "머리가 새하얗게 되었다(頭が真っ白になった)"는 소감을 남겼으며 자신의 기수 인생에서도 두고 두고 곱씹는 최악의 실수로 기록하게 된다.최악의 실패를 경험한 첫 더비 출주를 회상하는 후쿠나가 유이치
일본 더비의 대실패 이후 킹 헤일로와 기수 후쿠나가 유이치는 서로 비슷한 고난의 길을 걷게 된다. 멘붕에 빠진 후쿠나가를 대신해서 심볼리 루돌프의 기승으로 유명한 베테랑 오카베 유키오가 기승하여 고베신문배(G2)에 출주하지만 3착에 그치고[15] 킹 헤일로의 안장엔 다시 후쿠나가가 앉는다. 킹 헤일로와 후쿠나가 유이치 콤비는 교토신문배(G2)에 출주했으나 또다시 스페셜 위크에게 목차로 패배하며 2착을 하고 만다. 당시 킹 헤일로를 담당했던 구무원인 토키오카 카즈유키(時岡和幸) 조교조수는 킹 헤일로는 더위에 약한 말이기도 했고, 오카베 기수가 기승한 고베신문배가 끝나고 잠시 쉬었다가 곧장 교토신문배에 출주하는 바람에 제대로 방목하지도 못해서 아마도 힘들었을 것이라고 개인적으로도 속이 아팠다고 회상했다. #
가을 킷카상에서는 레이스의 흐름을 쥐락펴락하며 세이운 스카이가 우승, 당시 3000m 월드 레코드까지 기록할 정도로 세이운 스카이의 대표 레이스가 되었고, 스페셜 위크가 2착, 킹 헤일로는 거리의 한계였는지 5착에 그치며 스페셜 위크, 세이운 스카이, 킹 헤일로의 3강 구도는 이렇게 무너지고 스페셜 위크와 세이운 스카이 2강 구도가 되었다는 견해가 다수의 의견이 되었다.
이런 평가를 반영한 듯 1998년 아리마 기념에서 킹 헤일로는 10번 인기로 급추락하였고, 6착이라는 기록을 남긴다.[16] 이렇게 라이벌들에게 밀려서 매번 아쉬운 성적에 그쳤던 킹 헤일로는 결국 클래식 3세 시즌을 무승으로 마친다.
한편 후쿠나가 유이치 기수 역시 이듬해 아그네스 디지털의 주전 기수를 맡았지만 신마전을 막 통과하고 처음으로 출전한 오픈 경주에서 8착으로 참패하는 바람에 주전 기수에서 강판되어 마토바 히토시로 교체되는 등 고난의 길을 걷는다.
3.3. 1999년 (4세)[편집]
4세 시즌에선 마일로 적성을 변경하고, 기수 또한 후쿠나가 유이치에서 오프사이드 트랩의 기수였던 시바타 요시토미(柴田善臣)로 변경하여 도쿄신문배(G3)와 나카야마 기념(G2)에서 연달아 1착을 거머쥔다. 거리 적성을 변경하자마자 2연승을 거머쥔 상황에서 사카구치 조교사와 킹 헤일로의 진영은 마일왕 후보가 탄생했다며 이대로 야스다 기념으로 가자고 한껏 고무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기세를 타고 G1 우승을 노리지만 클래식 시즌의 라이벌이었던 스페셜 위크와 세이운 스카이에 더해 그래스 원더, 아그네스 월드, 에어 지하드[17] 등의 새로운 동세대 라이벌들에게 밀려버렸다.
마일 챔피언십에서는 다시 후쿠나가 기수가 올랐지만 에어 지하드에게 밀려서 2착을 기록, 마일에서 단거리로 노선을 한번 더 바꾸며 스프린터즈 스테이크스에서는 3착을 기록한다.
3.4. 2000년 (5세)[편집]
스페셜 위크는 은퇴, 세이운 스카이는 굴건염으로 장기 휴양에 들어가 클래식의 라이벌들이 잔디를 떠난 2000년. 5세 시즌에는 아예 더트 경기 페브러리 스테이크스에도 출전한다.
혈통빨 + 98년 클래식 3강이었던 평가에 어미인 굿바이 헤일로가 더트에서 활약했던 선례도 있었기에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이어지고, 경기 당일 1번 인기를 기록하여 큰 기대감을 모았다. 하지만 잔디 위를 달리던 도련님이었던 킹 헤일로는 더트판의 모래를 뒤집어 쓰고 전의를 상실했는지 힘을 발휘하지 못하며 13착으로 대패하는 등, 엘리트라고 불렸던 데뷔 초의 평가는 온데간데 없이 떨어지고 진흙탕을 구르는 신세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음 경기로 2000년 상반기의 초단거리 G1 레이스인 타카마츠노미야 기념에 출주한다. 프랑스에서 아베이 드 롱샹 상(G1)을 거머쥐고 돌아온 아그네스 월드와 스프린터즈 스테이크스에서 아그네스 월드를 꺾은 블랙 호크(ブラックホーク)[A] 등 국내외 단거리 G1을 우승한 강자들이 모이고, 중계에 킹 헤일로의 이름은 얼마 불리지도 않는 상황에서 외곽에서 호쾌한 추입[18] 으로 1착을 기록, G1 도전 11전 만에 드디어 G1 우승의 영광을 거머쥔다. 킹 헤일로의 담당 사카구치 조교사는 우승을 확인하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으며 이 장면이 중계 카메라에 담기기도 했다.
당시 후지 테레비의 SUPER KEIBA 경마 중계 방송에서 토카이 TV의 우에키 헤이이치(植木圭一) 아나운서가 말한 "킹 헤일로가 모조리 쓸어버렸다(キングヘイローが撫で切った)"는 표현은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에서 킹 헤일로의 고유 아나운스로 구현되었다.
운명의 장난인지 킹 헤일로가 마침내 G1의 영광을 거머쥐었던 이 경기에서 킹 헤일로의 기수로는 시바타 요시토미가 기승하고 있었고, 원래 킹 헤일로의 주전 기수였던 후쿠나가 유이치는 디바인 라이트(ディヴァインライト)[B] 에 기승하여 2착을 하고 말았다. 후쿠나가 기수는 "하필이면 가장 있지 말았으면 했던 말이 앞에 있었다(よりによって一番いて欲しくない馬が前にいた)"고 뼈아픈 패배의 소감을 남겼다.
타카마츠노미야 기념 우승 후에 다시 큰 활약을 보이지는 못했다. 야스다 기념에서 후쿠나가 유이치가 기승하여 외산마 2마리를 상대로 건투하여 3착을 기록[19] 했으며 이후 시바타 요시토미가 다시 기승하여 은퇴전까지 함께 한다.
킹 헤일로의 은퇴경기는 2000년 아리마 기념(2500m)으로 결정이 되면서 마일~스프린트 노선으로 전향했었던 킹의 마지막은 왕도로 돌아온 모양새가 되었다. 티엠 오페라 오를 포위한 마군과는 상관없이 최후미 외곽에서 자신만의 레이스를 하다가 마지막에 무서운 속도로 추입[20] , 4착으로 입착하여 전 거리분류 입착이라는 진기록[21] 을 남기며 27전 6승(GI 1승)으로 현역 생활의 마침표를 찍는다. 킹 헤일로의 은퇴 레이스
4. 종마 생활[편집]
은퇴 후 2001년 1월에 유슌 스탤리언 스테이션(優駿スタリオンステーション)으로 옮겨져서 종마생활에 들어간다. 은퇴를 했어도 혈통의 기대는 어디가지 않아서 씨수말로서는 천 마리 이상의 자식을 볼 정도로 굉장한 인기를 끌었다. 혈통은 굉장해도 단거리에서나 겨우 빛을 본 현역 시절의 성적을 고려한건지 교배비가 낮게 책정된 것이 원인. 어차피 교배비가 저렴하니 터지면 좋고 아님 말고 식으로 문전성시를 이뤘고 카와카미 프린세스의 성공 이후 교배비도 상승했다고 한다.
다른 동세대 라이벌들이 죽거나 씨수말을 은퇴한 2018년까지도 그래스 원더와 함께 현역 씨수말로서 활동, 2019년 3월 19일 노환으로 죽었다.
한국에도 킹 헤일로의 산구 2마리가 수입된 적이 있다. #
아들 중에 2009년 일본중앙경마회(JRA) 최우수 단거리마로 선정된 로렐 게레이로와 2018년 일본 지방경마전국협회(NAR)의 연도대표마로 선정된 키타산 미카즈키(キタサンミカヅキ)[22]#가 종마로 활약했으나 로렐 게레이로는 2022년에 종마에서 은퇴, 현재는 종마로 키타산 미카즈키가 남아 직계 혈통을 이어나가고 있다.
킹 헤일로의 사후, 직계 후손에서 그리 두드러지는 말은 없지만 모부계(BMS)로 존재감이 드러나고 있다. 2021년에는 킹 헤일로의 외손자인 딥 본드(父 키즈나)가 크로노 제네시스와 함께 개선문상에 참가했는데, 전초전인 푸아상(G2)에서 우승하며 모두의 기대를 모았으나 정작 개선문상에선 14착을 기록했다. 하지만 같은 날, 또 다른 외손자 픽시 나이트(父 모리스)에 후쿠나가 유이치가 기승하여 스프린터즈 스테이크스(G1)을 우승하는 경사도 있었다.
2022년에는 워터 나빌레라[C] 와 이퀴녹스가 오카상과 사츠키상에서 각각 2등[23] 을 하였으며, 천황상 가을에서는 대도주하는 판탈라사를 외곽에서 날아온 이퀴녹스가 무서운 라스트 스퍼트로 제쳐 1착을 탈취하는 모습에서 역시 킹의 외손주답다는 반응들이 더러 나왔다. 이후 이퀴녹스는 아리마 기념과 2023년 두바이 시마 클래식(G1)을 연달아 우승하며 세계 최강마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23년 4월 22일, 교토경마장 10R 시오리 스테이크스(栞ステークス)에서 이케조에 켄이치가 탄 비전 오브 러브(ヴィジョンオブラヴ)가 1착을 하면서 킹 헤일로의 산구들이 2004년 이래 20년 연속 JRA 특별경주에서 우승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
4.1. 주요 산구[편집]
※ 굵게 표시된 것은 GI/JpnI 경주.
- 2002년산
- 킹스 존 - 서머 챔피언(2007)
- 2003년산
- 2004년산
- 로렐 게레이로 - 스프린터즈 스테이크스(2009), 타카마츠노미야 기념(2009), 도쿄신문배(2008), 한큐배(2008)
- 2008년산
- 메데이아 - JBC 레이디스 클래식(2013), 레이디스 프렐류드(2013), TCK 여왕배(2013, 2014), 마린 컵(2013), 스파킹 레이디 컵(2013)
- 2009년산
- 쿠리르 카이저 - 아메리칸 자키 클럽 컵(2015)
- 2010년산
- 키타산 미카즈키 - 도쿄배(2017, 2018), 도쿄 스프린트(2019)
- 샤토 블랑슈[24] - 머메이드 스테이크스(2015)
- 2013년산
- 다이애나 헤일로 - 키타큐슈 기념(2017), 한큐배(2018), 한신 컵(2018)
- 다이메이 프린세스 - 아이비스 서머 대시(2018), 키타큐슈 기념(2019)
4.2. Broodmare Sire(BMS) 산구[편집]
※ 굵게 표시된 것은 GI/JpnI 경주.
- 2011년산
- 킹스 가드[25] (아버지 시니스터 미니스터) - 프로키온 스테이크스(2017)
- 2014년산
- 2017년산
- 2018년산
- 픽시 나이트(아버지 모리스) - 신잔 기념(2021), 스프린터즈 스테이크스(2021)
- 바이스 메테오르[27] (아버지 킹 카메하메하) - 라디오NIKKEI상(2021)
- 메이쇼 무라쿠모(아버지 네오 유니버스) - 레퍼드 스테이크스(2021)
- 아사마노 이타즈라(아버지 빅투아르 피사) - 세인트 라이트 기념(2021)
- 딕테온[28] (아버지 킹 카메하메하) - 우라와 기념(2023)
- 2019년산
- 2020년산
- 두라 (아버지 두라멘테) - 삿포로 2세 스테이크스(2022), 퀸 스테이크스(2023)
5. 이야깃거리[편집]
5.1. 까탈스러운 성격[편집]
킹 헤일로는 많은 기대를 받은 좋은 혈통의 말이었으나, 이 기대가 꺾이는 데는 기성난이 한몫 했다. 정작 아비인 댄싱 브레이브는 온순한 말이었고, 이 까다로운 기성은 어미인 굿바이 헤일로로부터 물려받았다.[29]
굉장히 까탈스러운 성격으로, 기성(氣性)에 상당히 문제가 있는 경주마였다. 외조부 헤일로처럼 아예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나 싶을 정도의 난폭한 말은 아니었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쉽게 짜증을 냈다. 경기에서는 인코스로 파고들었다가 외곽에서 추월당하면 전의를 상실하기 일쑤였으며 반대로 아웃코스를 공략하면 성급하게 폭주하다 자멸했다고 한다. 게다가 더위도 싫어하고, 마군도 싫어하고[30] , 마장 상태가 나쁜 것도 싫어하고, 모래가 얼굴에 튀는 것도 질색하는 등 경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변수를 전부 싫어했다(…) 상술했듯이 킹 헤일로를 타 본 베테랑 오카베 유키오는 제대로 조교를 하고 있는지 우려[31] 하였으며, G1의 영광을 닿게 한 시바타 요시토미 기수 역시 킹 헤일로를 회상하며 "기성이 어려운 말이었다는게 가장 큰 인상이다(気性の難しい馬というのが一番の印象です)"이라는 소감을 남겼다. 당시 킹 헤일로의 구무원이었던 토키오카 조교조수의 회상에 따르면 도쿄신문배(G3) 당시 킹 헤일로를 처음 타 본 시바타 요시토미 기수가 우승을 거머쥐었음에도 "마군의 선두에 섰을 때 귀를 뒤로 젖혔고, 레이스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우려했었다고 한다.#
오죽 까탈스러웠으면 똑같은 단거리(1200m)임에도 2000년 타카마츠노미야 기념에서는 1착, 2000년 스프린터즈 스테이크스에서는 7착을 할 정도로 기성이 불안정했으며, 단거리로 전환하여 성과를 낸 말이 은퇴전으로 아리마 기념(2500m)을 뛰고 4착으로 상금을 받아가는 바람에 "킹 헤일로의 거리적성은 끝까지 알 수 없었다"는 평가로 남았다.[32] 그렇기에 "육체적으로는 단거리에서 장거리까지 다 달릴 수 있는 포텐셜이 있으나[33] , 그나마 문제가 일어날 시간 자체가 짧은 단거리가 실질적 적성"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한창 종마 생활을 하던 2015년 당시의 영상을 보면 나이를 먹고도 그 까다로운 성격은 어디로 안 갔으며,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는지 자신을 통제하는 인솔자에게 계속 반항하며 짜증을 부린다. #2015년 #2016년
5.2. 주전기수 후쿠나가 유이치[편집]
1997년 도쿄스포츠배 3세 스테이크스(G3) 우승 당시 킹 헤일로와 2년차 풋내기 기수였던 후쿠나가 유이치
경마팬들이나 경마 평론가들에게서 '킹 헤일로는 후쿠나가 유이치의 원점(原点)이나 다름없는 말'이라는 평가를 받는 만큼, 킹 헤일로와 후쿠나가 유이치 기수의 인연은 세간에 많이 알려져 있다. 태생부터 핏줄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있던 킹 헤일로처럼 후쿠나가 유이치 기수 또한 천재 기수 후쿠나가 요이치의 아들로 주목을 받았던 공통점이 있다. 말과 기수 둘 다 첫 JRA 중상 우승의 영광을 함께 했으며, 상술하였듯이 일본 더비에도 첫 출주하였으나 대실패를 겪었다. 일본 더비 이후 후쿠나가는 아버지의 인맥빨이라는 비아냥을 받으며 한동안 슬럼프를 겪었고, 킹 헤일로 또한 클래식과 마일, 단거리, 더트 등 온갖 경기에 출주하나 잘 풀리지 않았던 고난의 길을 걸은 것도 비슷하다.
비록 후쿠나가 유이치와 킹 헤일로 콤비가 G1 우승의 영광을 함께 달성하는 일은 없었지만, 킹 헤일로가 늦게나마 G1 우승에 닿았고 씨수말로도 좋은 결과를 낸 것처럼 후쿠나가 역시 40대의 중년이 된 2018년에 와그네리안을 타고 20년만에 일본 더비를 우승[34] 했으며 2020년에는 콘트레일을 타고 클래식 3관을 제패하며 명기수의 반열에 오르는 대기만성을 보여주었다. 굴욕의 더비로부터 23년, 후쿠나가 기수와 마찬가지로 최고 평가까지 오른 킹 헤일로
후쿠나가 유이치 기수 역시 킹 헤일로를 각별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2000년 아리마 기념에 나가지 못하는 기수들을 상대로 '아리마에서 어떤 말을 타고 싶습니까?'라는 질문을 했을 때, 대다수의 기수들은 티엠 오페라 오나 메이쇼 도토를 지목했으나, 후쿠나가 만큼은 킹 헤일로를 타고 싶다고 답했다고 한다.#
2000년 아리마 기념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킹 헤일로는 2001년 1월 11일에 씨수마 생활을 위해 릿토 트레이닝 센터를 떠나게 되었는데 이 자리에 후쿠나가 기수가 찾아와서 사카구치 조교사와 함께 릿토 트레센을 떠나는 킹 헤일로를 배웅했다. #[35] 사카구치 마사히로 조교사는 이 때의 기억이 인상깊었는지 2018년 후쿠나가 기수가 더비를 제패했을 당시 간사이TV의 경마 프로그램인 KEIBA BEAT에 출연하여 "(후쿠나가) 유이치 군이 바쁜 훈련 일정을 미뤄두고 은퇴하는 킹 헤일로를 배웅하러 나왔던 일이 가장 인상 깊은 기억"이라고 이야기했다. #
킹 헤일로와 함께한 일본 더비 첫 도전과 대실패는 후쿠나가 기수의 커리어에서 반드시 언급되는 대사건이기 때문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후쿠나가 본인도 당시의 상황과 심정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2023년 2월 은퇴 직전에 이루어진 인터뷰에서도 그렇게 긴장해 본 적은 처음이며 당시의 경험은 기수로서는 물론이고 한 명의 인간으로서도 큰 경험이었다고 회상했다. 다만 경주마에게 더비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번 뿐이고, 마주나 조교사 등의 관계자 입장에서도 자주 도전할 수 있는 경기가 아니기 때문에, 당시 자신의 대실패에 대해 (은퇴를 앞둔 시점에서도) 여전히 후회하고 있다며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2011년 후쿠나가 기수의 인터뷰에서는 킹 헤일로에 대해 '자신의 은인이나 다름없는 말'이라고 답했으며, 2000년 타카마츠노미야 기념 당시 디바인 라이트에 올라 킹 헤일로의 우승을 지켜봤을 때를 회고하며 '지금까지 내가 탔던 말인데 어째서 킹 헤일로를 타고 G1 우승을 할 수 없었나'라고 분한 마음과 동시에 '드디어 G1 우승마 타이틀을 따게 되어서 잘 됐구나'는 감정이 섞여서 복잡한 기분이었다고 밝혔다. #
후쿠나가 기수가 염원의 일본 더비를 제패(2018년)하고 이듬해(2019년)에 킹 헤일로가 세상을 떠나자 후쿠나가 기수는 "일본 더비를 포함해, 여러가지 경험을 함께 했기에 감사한 마음만 있다. 결과로 은혜를 갚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서 안타깝다"며 킹 헤일로의 명복을 빌었다.# 우연히도 킹 헤일로가 죽은 그 주에는 킹 헤일로가 G1의 영광에 닿았던 타카마츠노미야 기념(2019년 3월 24일)이 예정되어 있었고, 킹 헤일로의 전담 기수였던 후쿠나가 유이치가 미스터 멜로디를 타고 우승한다. 후쿠나가 기수는 인터뷰에서 "킹 헤일로가 뒤에서 밀어준 것 같다(キングヘイローが後押ししてくれたような感じでした)"는 소감으로 옛 파트너였던 킹 헤일로에게 우승을 바쳤다. # 이 경기의 착순 3-4-7-13-5의 고로아와세가 '안녕, 킹 헤일로[36] 호[37] '가 된다는 해석도 있다.
2021년 10월 3일, 후쿠나가 기수는 킹 헤일로의 외손자 픽시 나이트를 타고 스프린터즈 스테이크스(G1)를 우승한다. 후쿠나가 기수는 "킹 헤일로의 피가 흐르는 말로 G1을 우승할 수 있어서 정말로 기쁘다"며 "마침내 킹 헤일로에게 은혜를 갚게 되었다(キングヘイローにようやく恩返しできた)"는 소감을 남겼다. [38]
이렇다보니 정작 킹 헤일로의 G1 우승을 달성하고 은퇴전까지 함께 했던 시바타 요시토미 기수는 킹 헤일로를 가리켜 "이 말은 (후쿠나가) 유이치 군의 말이고, 나는 부록이다"라고 겸손한 코멘트를 남기기도 했다.
2022년 12월 8일. 후쿠나가 유이치 기수가 조교사 시험에 최종 합격하여 2023년 2월을 끝으로 기수에서 은퇴하고 조교사로 전업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킹 헤일로를 배출한 쿄와 목장측에서는 후쿠나가 유이치 기수의 조교사 합격을 축하하며 "킹 헤일로의 딸이 콘트레일의 자식을 수태했는데 태어나면 후쿠나가 유이치의 마방에 맡기고 싶다"는 축하 트윗을 올려서 경마팬들에게서 큰 화제가 되었으며,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의 팬들 사이에서는 트레이너가 된 킹 헤일로의 팬아트가 등장하기까지 했다.
2023년 2월 19일. 후쿠나가 기수의 JRA 마지막 기승이 끝나고 도쿄 경마장에서 열린 환송식 인터뷰 중에서 "후쿠나가 기수가 첫 JRA 중상 경기 승리를 한 곳도 이곳 도쿄 경마장이었다"는 사회자의 코멘트에 후쿠나가는 "그렇다. 킹 헤일로였고 도쿄스포츠배 3세 스테이크스였다.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라고 대답하였다. JRA 공식영상[39]
2023년 3월 4일 한신 경마장에서 진행된 후쿠나가 유이치 기수의 은퇴식에서 그동안 후쿠나가 기수가 탔던 주요 경주마들의 승부복을 모티브로 한 꽃다발이 전해졌다. 그의 대표 커리어인 무패 삼관마 콘트레일, 비원의 더비 우승을 안겨주었던 와그네리안, 해외 G1 무대에서도 대활약한 세자리오나 에이신 프레스턴 등의 명마들을 의미하는 꽃다발이 전달되는 가운데 동기 와다 류지가 건넨 꽃다발에는 킹 헤일로의 승부복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 경마의 승패로만 따지자면 후쿠나가 유이치와 킹 헤일로는 도쿄스포츠배 3세 스테이크스(G3) 중상경기 한 번만 우승했을 뿐이고 후쿠나가 자신의 커리어에 있어서는 영광보다 흑역사에 가깝지만, 일본 더비를 비롯하여 여러가지 경험과 드라마가 얽혀 그가 평소 킹 헤일로를 얼마나 각별하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자신의 은퇴식에서 스크린으로 몸을 돌려 킹 헤일로와의 우승 순간을 바라보는 후쿠나가 유이치 기수
이 날 한신 경마장에서 배포된 후쿠나가 유이치 기수의 은퇴 기념 메모리얼 북에는 킹 헤일로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JRA 중상경기 첫 승리 - 킹 헤일로 (도쿄스포츠배 3세 스테이크스)
데뷔 2년째에도 순조롭게 승리를 거듭하는 가운데 만난 명마가 킹 헤일로이다.
아버지는 유럽의 최강마 댄싱 브레이브, 어머니는 미국 G1 7승의 굿바이 헤일로인 세계적인 양혈마(良血馬)의 고삐를 잡았고, 1997년 10월 5일 신마전, 10월 25일의 키기쿠상 승리로 2연승을, 이어진 도쿄스포츠배 3세 스테이크스에서는 나중에 G1 우승마가 되는 마이네르 러브 등을 꺾으며 우승, 말과 사람 둘 다 첫 중상경기 승리를 거두었다.
이듬해 후쿠나가 기수는 이 킹 헤일로와 콤비를 짜고 클래식에 도전. 사츠키상 2착을 한 뒤 전후(戦後) 최연소의 더비 승리가 걸려있던 첫 일본 더비에서 14착으로 참패를 기록. 가을 킷카상도 5착으로 결과를 남기지 못했지만 킹 헤일로와의 경험은 훗날 커다란 재산이 되었다.
2019년 타카마츠노미야 기념 - 미스터 멜로디
인연이 깊은 후지와라 히데아키 마방의 관리마 가운데 G1 첫 승리.
레이스가 끝난 뒤, 후쿠나가 기수는 "킹 헤일로가 뒤에서 밀어주었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하는 등, 5일 전 세상을 떠난 옛 파트너에게 바치는 승리가 되었다.
말과 기수의 드라마틱한 스토리 때문인지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의 킹 헤일로에는 기수 후쿠나가 유이치와 관련된 설정이 반영 되어 있다.
5.3. 기타[편집]
- 어미인 굿바이 헤일로는 일본에 수입된 후 2007년까지 번식마 생활을 했으나 킹 헤일로 이외에 눈에 띄는 자식을 남기지는 못했다. 번식마 생활이 끝난 이후에는 쿄와목장의 공로마로 예우받으며 지내다가 2014년에 사망했다.
- 27전 6승(GI 1승)이라는 성적에 비해 생각보다 상금을 많이 벌었는데 경주 성적을 보면 알겠지만 상금을 지급하는 입착 순위(5착)에 자주 들어왔고, 말 자체도 튼튼해서 큰 부상 없이 27전을 소화할 수 있었기 때문. 사카구치 조교사의 회고에 따르면 현역 시절에 한번도 병치레를 한 적이 없었을 정도로 정말로 튼튼한 말이었다고 한다.
- 킹 헤일로의 사후 종마생활을 했던 유슌 메모리얼 파크(오구리 캡 기념관) 구내에 오구리 캡, 마야노 탑건, 나리타 브라이언 등과 함께 묘가 조성되어 있다.
- 킹 헤일로의 타카마츠노미야 기념 우승을 확인하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사카구치 마사히로 조교사는 2년 뒤인 2002년에 자신의 마방에 있던 암말인 피스 오브 월드(ピースオブワールド)의 안장을 후쿠나가 유이치에게 맡긴다. 후쿠나가 기수는 '킹 헤일로의 건으로 사카구치 조교사에게 큰 신세와 폐를 끼쳤었기에 이번엔 반드시 은혜를 갚고 싶다'고 밝혔고 결국 한신 쥬브나일 필리즈(G1)를 우승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경기가 끝나고 웃음짓는 후쿠나가 기수와 사카구치 조교사(2분부터) 이후에도 사카구치 조교사의 마방에서 듀랜달 등의 G1 우승마를 배출하였고 2011년 정년으로 조교사에서 은퇴한 뒤에는 경마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2022년 12월까지 간사이 테레비의 경마 프로그램 KEIBA BEAT의 고정 패널로 등장했는데, 출주마들 중에 킹 헤일로의 혈통이 있으면 눈여겨 보기도 했다.
- 타카마츠노미야 기념 50주년을 기념하여 역대 우승마 중 인기투표를 하여 상위 5마리를 피규어로 제작했는데, 킹 헤일로는 4번 인기[40] 로 피규어화가 되었다.
- 2021년 1월, 노지에서 방치되어 죽기 직전에 구사일생으로 구조된 걸로 화제가 되었던 경주마 레이즈 어 스피릿(レイズアスピリット)[41] 도 킹 헤일로의 아들이다. 구조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는 닛테레 뉴스 보도영상[42]
- 2023년 주쿄 경마장 70주년을 맞이하여 3월 24일부터 3월 30일까지 주쿄 경마장에서 활약했던 경주마 중 마음에 남는 BEST HORSE를 투표했는데, 3번 인기[43] 에 랭크되었다. #
- 2023년 7월 14일, 주쿄 경마장 70주년을 기념하여 아이돌 호스 봉제인형 시리즈에 킹 헤일로가 추가되었다. 일본 내 JRA 공식 기념품샵에서 구입할 수 있다. 가격은 1200엔. #
6. 경주 성적[편집]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