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크스/대한민국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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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한민국 대통령 관련[편집]


  •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 1987년 대한민국 제6공화국 출범 이후, 안경을 끼고 출마한 대통령 후보가 직선제로 당선된 사례가 2017년에서야 겨우 나왔다. 외국에서도 그러한 경우가 매우 드물다. 또한 1,2위 기준 안경을 쓴 후보 vs 안경을 안 쓴 후보의 대결에서는 항상 안경을 안 쓴 후보가 승리하는데, 문재인의 경우 2위 후보도 안경을 쓴 홍준표였기 때문. 또한 20대 대선에서 윤석열이재명에게 승리하면서 이 징크스가 유지되었다.
    • 1987년 대한민국 제6공화국 출범 이후, 모든 대선에서 포스터에 약력을 적지 않은 후보가 당선되었다.
    • 민주화 이후 수요일에 치러진 대선에서 당선된 대통령은 모두 퇴임 후 감옥에 갔다. 13대 대선, 17대 대선, 18대 대선 모두 수요일에 치러졌으며, 해당 대선에서 수요일에 당선된 노태우, 이명박은 퇴임 후 구속당하여 감옥에 갔고, 박근혜는 한술 더 떠 임기도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한 후 구속되어 감옥에 갔다.[1]
    • 21세기 대한민국 대통령 취임 직전 대형 방화사건 징크스: 21세기 와서 새로 생긴 징크스.
    • 지금까지 모든 대통령 선거에서 과반의 득표로 당선된 적 있는 대통령은 모두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 올림픽 징크스: 올림픽을 유치한 대통령과 그 다음 대통령이 모두 구속되었다는 징크스다. 1988 서울 올림픽을 유치한 전두환과 그 다음 대통령인 노태우사이좋게 구속되었고,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한 이명박과 그 다음 대통령인 박근혜 또한 1년의 시간차를 두고 둘 다 구속되었다. 만약 박근혜 탄핵이 이루어지지 않고 퇴임 후 구속되었다면 평창 올림픽 개최 당시까지 박근혜가 대통령직을 유지한 것이 되므로, 88올림픽 당시 대통령직을 역임했던 노태우와 엮여 '올림픽 개막식에 참여한 대통령은 모두 구속된다'는 징크스가 생겼을 것이다.
    • KS(경기고-서울대)라인의 대권 실패 징크스: 이 두가지 다 걸리는 사람이 바로 이회창손학규, 그리고 최재형이다. 다만 이쪽은 고건이 권한대행으로나마 잠깐 대통령을 맛봤다. 설명이 불가능하지는 않은데, 투표로 선출되는 대통령의 특성상 지나친 엘리트 이미지는 손해라는 것이다.
    • 대한민국 국무총리의 대권 실패 징크스: 건국 이래로 대한민국 국무총리가 직접선거를 통해서 대통령이 된 사례가 단 한 번도 없었다. 최규하의 경우 박정희의 사망으로 승계, 이후 체육관 선거로 당선됐다. 국무총리들 중 이회창은 3회 연속 대선에서 낙선했고,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했던 2인들인 고건과 황교안은 출마조차 하지 못했다. 주요 도전자들까지 합치면 김종필, 이한동, 이수성, 한명숙, 이해찬, 정세균, 이낙연 등도 포함된다.
    • 충청도(충청북도, 옥천군, 금산군): 13대부터 20대까지는 대통령 선거에서 충청북도에서 승리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특히, 2대부터 20대까지 모든 선거에서 옥천과 금산에서 승리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3] 19대까지는 제주특별자치도 역시 적중률 100%를 자랑했으나 20대 대선에서 어긋났다.[4] 또한 14대부터 20대까지 충청도에서 승리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 20세기에는 19X0년생마다 두 명씩 대통령이 배출된다.
    • 같은 성씨의 대통령이 3번 이상 나오지 않는다.[5] 그리고 부녀관계인 박정희박근혜를 빼면 같은 성씨의 대통령끼리는 본관이 중복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김이박으로 대표되는 특정 성씨가 많은 국가임을 감안하면 우연히도 김이박이 아닌 성씨가 많은 편이다. 김씨, 이씨, 박씨는 합치면 전체 인구 비중에서 2015년을 기준으로 44.6%로 거의 절반이다.
    • 민주화 이후 거대 양당은 10년 넘게 정권을 유지한 적이 없다. 소위 정권교체 10년 주기설로 알려진 징크스로, 이는 고사성어 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日紅 權不十年)에 비유된다. 한술 더 떠서 20대 대선에서는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5년만에 정권이 교체되기도 하였다. 또 민주화 이후 모든 정당들은 같은 당명으로 2회 이상 대통령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6]
    • 1993년 이후로 대부분 대한민국 대통령보수정권일땐 미국 대통령민주당 소속이고 대한민국 대통령이 민주당계 정권일땐 미국 대통령이 보수당 소속인 징크스가 있다. 아래의 표는 1990년대 이후 현재까지의 한미 집권 여당을 나태낸 표이다.[7]
공화당/보수정당[*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 국민의힘 등.(굵은 글씨는 여당으로 존재했던 당.) 거의 대부분이 굵은 글씨인데, 사실상 이 결과가 나온 이유는 보수정당이 김영삼 정부 말기에 한나라당으로 바꾸고 나서 김대중-노무현 때의 야당이였던 시절에 이름을 단 한번도 바꾼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유한국당은 형식상 여당으로서의 의미가 전혀 없었다. 또한 국민신당, 바른정당 등의 분당된 당도 이곳에 포함된다.]
민주당/민주당계 정당[* 민주당(1991년), 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 민주당(2005년), 중도통합민주당, 대통합민주신당, 통합민주당, 민주당(2008년), 민주통합당, 민주당(2013년), 새정치민주연합, 더불어민주당 등.(굵은 글씨는 여당으로 존재했던 당.) 또한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분당된 국민의당(정확히는 중도)과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 정의당 등의 진보정당도 이곳에 포함된다.]


미국
대한민국
1993년
빌 클린턴
김영삼
1994년
빌 클린턴
김영삼
1995년
빌 클린턴
김영삼
1996년
빌 클린턴
김영삼
1997년
빌 클린턴(재선)
김영삼
1998년
빌 클린턴
김대중
1999년
빌 클린턴
김대중
2000년
빌 클린턴
김대중
2001년
조지 W. 부시
김대중
2002년
조지 W. 부시
김대중
2003년
조지 W. 부시
노무현
2004년
조지 W. 부시
노무현
2005년
조지 W. 부시(재선)
노무현
2006년
조지 W. 부시
노무현
2007년
조지 W. 부시
노무현
2008년
조지 W. 부시
이명박
2009년
버락 오바마
이명박
2010년
버락 오바마
이명박
2011년
버락 오바마
이명박
2012년
버락 오바마
이명박
2013년
버락 오바마(재선)
박근혜
2014년
버락 오바마
박근혜
2015년
버락 오바마
박근혜
2016년
버락 오바마
박근혜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문재인[8]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문재인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문재인
2020년
도널드 트럼프
문재인
2021년
조 바이든
문재인
2022년
조 바이든
윤석열
2023년
조 바이든
윤석열
위 표에 나온 바와 같이, 같은 계열의 정권이 집권하고 있었던 적은 1998년 2월 25일부터 2001년 1월 20일과, 2008년 2월 25일부터 2009년 1월 20일까지 당시 딱 모두 합쳐 4년 정도 뿐이었으나 2021년 1월 20일 조 바이든의 취임으로 1998년 2월 25일부터 2001년 1월 20일까지의 김대중 - 클린턴 이후 20년 만에 우리나라와 미국에서 나란히 민주당계 정권이 수립되었다. 그리고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여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된 뒤 딱 1년뒤 대한민국 에서 치뤄진 제20대 대통령 선거 또한 국민의힘의 윤석열이 당선되어 승리함으로 역시 또 바로 전 미국 대선과는 반대의 결과가 다시 나옴에 따라 미국이 민주당 정권일때 대한민국은 반대로 보수 여당이 되었던 징크스가 반복되어 계속해서 이어지게 되었다. 도널드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고 문재인도 5년만에 정권연장에 실패하면서 한 쪽에서 정권이 바뀌어 성향이 겹치면 다른 쪽에서 반대 성향으로 정권이 바뀌는 징크스가 여전히 이어진 것이다.
  • 탄핵 관련
    • 탄핵소추를 당하면 그 다음 대선에서는 야당으로 정권이 교체된다. 대통령이 탄핵을 당했다는 것 자체가 여러모로 그 대통령의 자질이 심하게 의심받았다는 증거인 만큼 레임덕을 피하기 어려워지기에 정권교체는 당연한 수순일수도.
      • 열린우리당 소속이던 노무현탄핵 소추를 당한 후[9]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 후보 이명박이 당선됨.
      • 새누리당 소속이던 박근혜탄핵 소추를 당한 후 탄핵이 되었고, 당시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 후보 문재인이 당선됨.
  • 대한민국 대통령의 비극: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불미스러운 일로 임기를 마치지 못하거나, 퇴임 후에 본인 또는 친인척의 범죄 혐의 등으로 인하여 곤욕을 치렀다.
  • 21세기에 사망한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은 2자리 연도가 3의 배수인 해에 사망했다. 그리고 한 해에 사망한 대통령은 1명과 2명이 번갈아 나왔다. 또한 2009년 이후로는 6년마다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이 사망했다. 그리고 21세기에 당선된 대통령의 임기마다 적어도 한번은 전직 대통령이 사망했다.
  • 민주화 이후 13대 대통령 선거와 13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같은 숫자마다 적어도 한번은 보수정당이 승리했다.[13] 이 징크스대로 라면 21대 총선더불어민주당이 승리했으므로, 21대 대선보수정당이 승리하게 된다.[14]
    • 제13대 대통령 노태우 - 제13대 국회 민주정의당 승리
    • 제14대 대통령 김영삼 - 제14대 국회 민주자유당 승리
    • 제15대 대통령 김대중 - 제15대 국회 신한국당 승리
    •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 제16대 국회 한나라당 승리
    • 제17대 대통령 이명박 - 제17대 국회 열린우리당 승리[10]
    • 제18대 대통령 박근혜 - 제18대 국회 한나라당 승리
    • 제19대 대통령 문재인 - 제19대 국회 새누리당 승리
    • 제20대 대통령 윤석열 - 제20대 국회 더불어민주당 승리[11][12]
  • 보수정당 후보는 대선에서 한번 낙선하면 이후에도 대통령이 되지 못한다.

2. 대한민국 국회[편집]


  •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 쥐띠 해에 치러진 총선에서 선거 당시 집권 여당이던 보수정당이 서울에서 승리한다는 징크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신한국당이,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신한국당의 후신 한나라당이 서울에서 승리했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는 민주당계 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여당인 상태로 치러지는 선거이므로 이 징크스 둘 중 하나는 반드시 깨지게 된다. 더불어민주당이 이기면 보수정당 징크스가, 미래통합당이 이기면 집권여당 징크스가 깨지게 된다. 그 뒤 더불어민주당이 자당 역사상 최대의 성과를 올림으로서 쥐띠 해 서울 보수정당 승리 징크스가 깨졌다.
  • 광주 북구 을의 저주
  •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 1년 전에 있는 재보궐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은 다음해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절대로 못먹고 패배한다. 사실 이건 재보궐선거에서 이긴 쪽은 방심 하고 오만해지면서 비주류 계파에게 공천 학살을 벌여서 무당층의 반감을 사고, 진 쪽은 비주류 계파가 이대로는 다음 총선에서 진다며 주류 계파를 청산 하고 개혁 공천이라는 이름 하에 새 인물로 물갈이 하는데 무당층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2019년 보궐선거는 사실상 무승부(자유한국당 1석, 정의당 1석)에 가까웠으나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이번 징크스를 피해가지 못했다. 다만 이건 좀 애매한데 2007년 재보궐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이 승리[15], 여세를 몰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과반을 훌쩍 넘는 압승을 거뒀다. 제15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던 1996년의 1년 전인 1995년에는 재보궐선거가 실시되지 않았으며, 제16대 국회의원 선거가 열리기 1년 전인 1999년 재보선에서는 한나라당이 이겼는데, 이듬해 열린 총선에서도 한나라당이 과반을 얻지 못했지만 열세 전망을 딛고 승리했다.
2023년 상반기 재보궐선거도 이 징크스에 해당하나, 양당이 서로의 텃밭에 무공천을 하였고 국회의원 재보궐이 전주시 을 한곳이라 양당의 승패를 가리기 힘들었다. 다만 내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의 결과에 따라서 이 징크스가 들어맞을지 아니면 빗나갈지 결정될 것이다.[16]
  • 2021년에는 정반대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압승한 더불어민주당이 1년 뒤인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대참패를 겪었다. 이 역시 상술한 이유 그대로 민주당이 압승 이후 180석을 믿고 끝없는 타락을 보여주는 바람에 정권 심판론이 거세게 일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20대 대선에서 재결집한 민주당과 이재명이 정권재창출에 도전 했으나, 결국 국민의힘과 윤석열이 초접전승으로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 시흥시 갑 국회의원의 3선 도전 실패: 2004년 총선에서 이 선거구가 신설된 이후 국회의원을 역임한 후보는 재선까지는 성공했으나 3선 도전에 실패한 징크스. 17~18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통합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된 백원우 전 의원은 19대 총선에서 함진규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고 19~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소속으로 백원우 후보를 두 번이나 누르고 당선된 함진규 전 의원도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정복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
  • 성남시 국회의원 관련: 성남시가 4개 선거구로 분할된 이후(수정, 중원, 분당갑, 분당을) 어느 한 정당이 4개 선거구를 모두 독식한 적이 없다.[17]
  • 하남시 국회의원의 3선 도전 실패: 시흥시 갑보다 더한 지역이 있다면 하남시 선거구를 예로 들 수 있는데 하남시·광주군 선거구 시절 14~15대 총선에서 연속으로 당선됐던 정영훈 전 의원을 시작으로 17~18대 총선에서 연속으로 당선됐던 문세표문학진 전 의원, 19~20대 총선에서 연속으로 당선됐던 이현재 전 의원까지 모두 재선까지는 성공했으나 3선 도전에 실패하였다.[18]
  • 안성시 국회의원 관련: 안성군이 시로 승격된 이후 0으로 끝나는 해에 치러졌던 총선에서 당선됐던 민주당계 정당 소속 국회의원들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도중에 낙마했다. 16대 총선에서 당선됐던 심규섭 전 의원은 2002년 1월 27일 작고했고 그의 보좌관 출신으로 21대 총선에서 당선됐던 이규민 전 의원은 2021년 9월 30일 대법원에서 당선무효형이 확정되어 의원직을 잃었다. 그리고 심 전 의원이 작고한 뒤 치러진 재보선에서 2년 전 총선에서 패했던 한나라당 이해구 전 의원이 당선되어 4선에 성공했는데 2022년 3월 재보선에서 국민의힘 김학용 후보가 당선되면서 20년 전과 똑같이 2년 전 총선에서 패했던 보수정당 소속 후보가 지역구를 탈환하고 4선에 성공하는 일이 재현되었다.

3. 지방자치단체[편집]


  • 광역자치단체장
    • 여성 후보 낙선 징크스: 1995년 전국동시지방선거 시행 이후 재보궐선거를 포함한 모든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여성 후보는 전부 낙선했다.[19] 이 징크스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왔던 김은혜가 선거전 여론조사에서도 박빙, 출구조사와 개표 시점에서도 오차범위 내에서 앞서가면서 이 징크스가 깨지나 했는데 선거 다음날인 2일 오전 5시 32분, 개표 96.6% 시점에서 김동연 후보가 대역전극을 벌이고 이후 김은혜 후보가 재역전을 하지 못하면서 이 징크스는 유지되었다. 주요 정당 기준으로는 강금실, 한명숙, 나경원, 박영선이 대표적인 예.[20][21]
    • 1995년 전국동시지방선거 시행 이후 민선 광역자치단체장을 지내고 대통령에 당선된 사례는 민선 3기 서울특별시장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 서울특별시장
    • 인천광역시장: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부터 현직 인천시장들은 전부 본선에서 낙선하였다.[22]
    • 광주광역시장: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후로 당선된 시장 가운데 민선 3~4기 박광태 시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초선에서 끝났다.
    • 대전광역시장: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후로 당선된 시장 가운데 민선 1~2기 홍선기 시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연임에 실패했다. 3/5기 염홍철 시장도 재선이긴 한데 연임은 하지 못했다.[23]
    • 경기도지사의 저주: 대권 잠룡의 무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전에 도지사로 재임했던 김문수는 총선에서, 그것도 대구에서김부겸에게 더블스코어 차이로 패배하여 사실상 정치생명이 끝났다.[24] 이인제, 손학규의 경우도 마찬가지. 이재명은 그래도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승리하면서 그나마 징크스가 깨지는 듯 했으나, 20대 대선 본선에서 윤석열에 밀려 낙선하면서 징크스가 유지되었다. 다만 이재명 본인은 패한 뒤에도 차기 대권 주자로서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고, 2023년 기준 현 경기도지사인 김동연도 당내 위상이 낮지 않아 깨질 가능성이 꽤 있는 징크스이기도 하다.
    • 경상남도지사의 저주: 김태호 이후 역대 경남도지사(김태호, 김두관, 홍준표, 김경수)는 대권 잠룡이 되면서도 결국 대권에 실패하는 징크스가 있다. 김경수는 아예 정치 생명이 끊겼고, 김두관은 20대 대선 경선에서 극히 저조한 득표율을 얻으며 사퇴했다. 국민의힘 경선에서는 홍준표가 무야홍 돌풍을 일으켜 윤석열과 접전을 벌이며 야권 유력 주자로 주목받았으나, 경남지사 징크스를 깨지 못하고 결국 대권 도전에 실패했다. 이후 대구광역시장에 당선된 홍준표가 21대 대선에 재도전하여 당선된다면 이 징크스를 처음 깰 수 있다. 또한 이쪽은 김태호를 제외하고는 임기를 제대로 마치지 못했다.[25]
    • 제주특별자치도지사: 민선 이후로 나온 역대 제주지사 5명 모두 법정에 선 적이 있다.
  • 기초자치단체장
    • 경상북도 영천시장: 1995년 전국동시지방선거 실시 이후 민선 1, 2기 정재균 시장이 민선 2기 임기 중 선거법 위반으로 직을 상실한 후 재보궐 선거로 당선된 박진규(민선 2, 3기), 손이목(민선 3, 4기) 전 시장 역시 재선 후 선거법 위반으로 직을 상실하였다. 2007년 재보궐선거로 당선된 김영석 전 시장은 3선에 성공하여 임기는 무사히 마쳤으나 퇴임 후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며 징크스를 피하지 못했다. 그리고 최기문 현 시장은 한화그룹 고문으로 있던 2007년에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에 대한 수사를 무마하려다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이력이 있다.
    • 경상북도 경주시장의 3선 도전 실패: 1995년 전국동시지방선거 실시 이후 당선된 경주시장은 모두 재선까지는 성공했으나 3선 도전에서 소속 정당의 공천결과에 불복 후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26] 낙선했다.[27]
    • 경기도 성남시장: 비리 관련 사건사고가 많았다. 2대 김병량, 3/4대이대엽 시장은 실형을 선고받았으며 민선 초대 오성수 시장도 부동산 비리 논란이 있다. 또한 5/6대 이재명 시장은 현재 대장동 게이트로 수사를 받고 있으며, 7대 은수미 전 시장 역시 국제마피아파와의 관계 및 비리로 인해 퇴임 후 구속되었다. 역대 모든 민선 시장이 부동산 비리에 연루되어 이재명 외에는 다 구속되었고 이재명도 구속 위기라는 평이 나왔는데, 정가에서는 성남 지역의 특수성, 즉, 분당, 판교 등 대규모 신도시가 개발되는 과정에서 인·허가권을 가진 현직 시장들이 복마전에 얽혀 들어갔다는 평이 많다. 또한 전반적으로 민선 시장들에 대한 시민들의 평이 좋지 않았는데, 이재명 전 시장을 제외한 김병량, 이대엽, 은수미 전 시장은 자당 지지자들에게도 무능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일례로 2010년 지선에서 한나라당을 탈당해 무소속 출마를 감행한 이대엽 전 시장은 현역 시장이라는 메리트에도 불구하고 5.6%(...)를 득표하면서 낙선했다.
    • 경기도 용인시장: 3대 예강환 시장부터 8대 백군기 시장까지 6명의 시장이 모두 재선에 실패하였으며, 초대 및 2대 윤병희 시장부터 7대 정찬민 시장까지 모두 시장 시절의 비리혐의로 구속된 이력이 있다.
    • 경기도 양주시장: 1995년 전국동시지방선거 시행 이후 당선된 시장들은 모두 재선에서 끝났다. 양주시 승격 전의 윤명노 양주군수는 1995년과 1998년의 1, 2회 지방선거에서 당선되어 재선에는 성공했지만 한나라당에서 새천년민주당으로 당적을 바꾼 뒤 2002년 3회 지방선거에서 3선에 도전했으나 한나라당 임충빈 후보에게 낙선했으며, 양주시 승격 이후 임충빈 시장 역시 2006년 4회 지방선거에서 재선에는 성공했지만 2010년 5회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한나라당 현삼식 후보에게 낙선했으며, 현삼식 시장 역시 2014년 6회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지만 1년 후 선거법 위반으로 시장직을 상실하였으며, 2016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이성호 시장 역시 2018년 7회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임기만료 3개월을 앞두고 사퇴하였다.
    • 충청북도 괴산군수, 전라북도 임실군수, 전라남도 해남군수, 경상북도 청송군수, 경상남도 함양군수: 이 지역들의 군수들은 민선 이후 역대 거의 모든 군수들이 구속되는 이력이 있어 군수의 무덤이라는 부정적 별명이 있다.

4. 기타[편집]


  • "통합" 징크스: 이름에 통합이 들어가는 정당은 패배한다.
    • 제15대 국회의원 선거통합민주당[28](15석)
    • 제17대 대통령 선거대통합민주신당(정동영)
    • 제18대 국회의원 선거통합민주당(81석)
    •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제18대 대통령 선거민주통합(각각 127석[29], 문재인)
    •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미래통합미래한국당[30][31][32](103석)
이는 개연성이 존재하는데, 당명에 굳이 '통합'이라는 키워드를 왜 붙이는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이름에 통합이 들어가는 정당은 대부분 이전까지 여러 갈래로 나눠서 다툼을 벌였던 당 내의 여러 계파를 억지로 하나로 합친 형태이다. 따라서 선거 과정에서 흔히 내부총질이라 칭하기도 하는 당 내의 크고 작은 계파 갈등이 벌어지기 쉬우며, 이 과정에서 지지자들은 피로감이 심화되어 결국 지지율 하락이란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 침몰하는 배를 버리고 각자도생을 시도하다 선거 날짜는 코 앞에 닥치니 다른 대안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뭉친 선거 캠프가 제대로 돌아가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일이다.
  • 대한민국은 30년 주기로 국가장을 치르고 그 후 대규모 유혈사태가 발생한다: 이른바 30년 주기 국가장설, 다만 일본식 장례식, 국장, 국민장 다 다르게 장례식을 치뤘기 때문에 정확히 말하자면 30년 주기로 나라의 지도자나 그에 준하는 인물을 잃고 대규모 유혈사태가 발생한다가 정확할 것이다.
    • 1919년 고종 황제[33] 승하 후 일어난 3.1 운동으로 당시 일제가 민간인을 상대로 대규모 학살을 자행
    • 1949년 백범 김구 선생 서거[34] 후 일어난 6.25 전쟁
    •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전두환이 군사반란으로 집권하는 과정에서 일으킨 12.12 쿠데타와 이에 맞선 5.18 민주화운동
    • 2009년 노무현 대통령[35]김대중 대통령[36] 서거 후 발생한 천안함 피격 사건연평도 포격전이다.
정치외교 측면에서 보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지도자라 불릴 만큼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군주, 대통령, 정치인이 사망할 경우 그가 가졌던 힘의 균형이 깨졌기 때문에 추종세력과 반대세력이 충돌하게 되면서 대규모 유혈사태를 겪게 된다는 분석이 있다. 이는 카다피사담 후세인이 사망한 후 평화로워질 것 같던 리비아이라크가 내전의 구렁텅이에 빠져들어 날이면 날마다 사상자가 쏟아져 나오는 상황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이런 상황이 하필 30년이라는 특정한 간격을 두고 나타났기 때문에... 만약 2039년에도 이러한 일이 생긴다면 괴담으로 굳혀져 갈 우려가 있다. 비슷한 예시로는 미국의 테쿰세의 저주가 있다. 이쪽은 "20년마다 0년해에 당선되는 미국 대통령은 모두 저주를 받아 임기 중 목숨을 잃을 것이다."라는 내용의 저주이다. 그런데 이쪽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저주가 약해져 가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1] 14대 대선은 금요일에, 15대 대선과 16대 대선은 목요일에 치러졌고, 해당 대선에서 당선된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은 퇴임 후 감옥에 가지 않았다. 화요일에 치러진 19대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은 어떻게 될지 아직까지는 불명.[2] 당시 개헌안은 7년 단임제였으며, 1987년 6.29 선언 이후 현재의 5년 단임제로 개헌되었다.[3] 심지어 금산군은 충청남도지사 선거도 적중률 100%이다. 반면 옥천군은 충청북도지사 선거에서 처음부터 빗나갔다.[4] 제주도는 20대 대선에서 이재명이 승리했다.[5] 20대 대선에서 이재명이 승리했다면 최초로 같은 성씨 대통령이 3명이 되는 사례, 또한 가족관계 외의 본관이 중복되는 사례(이명박이재명 둘다 경주 이씨이다.)가 발생할 뻔했으나 윤석열이 당선되면서 다음 대선까지 기다리게 되었다. 다만 언젠가는 이 징크스가 깨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6]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었다면 이 법칙이 깨졌을 것이나 이재명 후보가 낙선하여 이 법칙을 깨지 못하였다. 또한 현 여당인 국민의힘이 2027년 대선까지 당명을 바꾸지 않고 승리한다면 이 법칙이 깨지게 된다.[7] 미국 대통령 쪽의 취임이 빠른데, 미국 대통령은 1월 20일에 취임을 하고 한국 대통령은 2월 25일에 취임을 하다가 문재인부터 5월 10일에 취임한다.[8] 5월 10일(정확히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당선자로 선포한 시각)부터[9] 참고로 박근혜와는 달리 노무현은 탄핵당하지 않았다.[10] 중간에 한나라당이 제1당을 잠시 차지했다.[11] 중간에 새누리당이 제1당을 잠시 차지했다.[12] 다만 의석 수를 보면 새누리당 122석, 더불어민주당 123석으로 거의 무승부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선거 전 새정치민주연합 분당으로 국민의당이 창당하였고, 총선에서 호남에서 선전하면서 사실상 민주당계 정당의 승리가 되었다.[13] 이중 13대, 14대, 18대는 둘다 보수정당이 승리하였다.[14] 국회의원 선거가 4년마다 열려 대통령 선거 기간인 5년보다 1년 빨라 대통령 임기가 빨리 끝나지 않는 하에 현재 같은 숫자면 국회의원 선거를 먼저 한다.[15] 상반기 재보선에서 대전 서구 을 패배의 임팩트가 커서 한나라당의 패배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거기 제외하고 전체적으로는 한나라가 싹쓸이했다.[16] 다만 2023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의 경우 국민의힘이 텃밭인 울산 남구 기초의원 선거에서 패배하여 엄밀히 말하면 국민의힘의 부진 및 패배라고도 볼수 있다.[17] 다만 18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이 4개 선거구를 독식했으나 3년 후 재보궐선거에서는 민주당에게 분당을을 빼앗긴다.[18] 정영훈 전 의원은 15대 임기 도중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한 후 16대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3선에 도전했으나 한나라당 유성근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고(유성근은 이후 2002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한다), 문학진 전 의원은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소속으로 3선에 도전했으나 새누리당 이현재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으며, 19~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소속으로 문학진 후보를 두 번이나 누르고 당선된 이현재 전 의원은 21대 총선 미래통합당 공천 과정에서 컷오프되어 무소속으로 3선에 도전했으나 더불어민주당 최종윤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19] 다만 기초자치단체장의 경우에는 뽑힌 사례가 많다. 대표적으로 은수미조은희.[20] 이 4명 중 나경원을 제외한 3명은 민주당계 정당 후보였고, 이 3명 모두 오세훈에게 털렸다. 게다가 강금실박영선은 25개 모든 구에서 털렸다.[21] 김은혜를 제외하고 조배숙,임미애 후보도 2022년 지방선거에서 출마하였으나 이들은 각자 자기 당의 열세지역에 출마하였기에 애초에 당선 가능성이 매우 낮았다.[22] 다만 유정복의 경우는 7회 지방선거에서 낙마했다가 8회 지방선거에서 다시 탈환했다.[23] 3기 임기를 마치고 4회 지방선거에서 무난히 연임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막판에 이 말 한마디 때문에 판세가 뒤집히는 바람에 아깝게 연임에 실패했다.[24] 다만 주69시간 노동과 노동조합 탄압으로 윤석열의 사랑(?)을 받으면서 윤핵관으로 다시 정치생명이 살아나고 있다.[25] 다만 김경수를 빼면 모두 총선 및 대선 출마로 사퇴한 것이다.[26] 국회의원 지역구도 마찬가지로, 공천 경쟁이 가장 치열하여 표가 분산되는 경향이 있다.[27] 민선 1, 2기 이원식 전 시장의 경우 3회 지방선거 때 공천결과에 불복하여 한나라당 탈당 후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한나라당 백상승 후보에게 낙선, 백상승 전 시장 역시 민선 3, 4기 재선 후 5회 지방선거 때 공천결과 불복 후 한나라당 탈당 후 무소속 출마했으나 한나라당 최양식 후보에게 낙선. 최양식 전 시장 역시 민선 5, 6기 재선 후 2017년 9월경 7회 지방선거 불출마 선언을 하였지만 다시 출마하겠다고 입장을 번복했는데 역시 자유한국당 공천결과에 불복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자유한국당 주낙영 후보에게 낙선했다.[28] 대외적으로는 민주당이라는 명칭을 많이 썼다.[29] 의석 수 자체는 적지 않은 편이었지만, 새누리당에 과반을 허용하여 사실상 참패였다.[30] 2020년 총선에서 원외정당으로 추락한 민생당 역시 민주통합당이라는 가명을 사용했으나 사용 불가 판정을 받았다.[31] 반면 미래통합당이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바꾸고 통합을 뗀 이후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는 압승을 거뒀다.[32] 다만 미래한국당은 비래대표 선거인데, 정작 비례대표는 미래한국당이 2석 차이로 근소하게 이겼다.[33] 다만 고종 황제의 장례식은 일제의 강요로 전통식이 아닌 일본식 장례식으로 치러졌다.[34] 장례 자체는 국민장으로 치러졌으나 당시 이승만 정부에서는 국장을 제안했었다.[35]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장이었다. 이후 국장과 국민장이 통합되어 국가장이 되었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국민장을 치룬 고인이 되었다.[36] 김대중 대통령은 국장이었다. 이후 국장과 국민장이 통합되어 국가장이 되었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국장을 치룬 고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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