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광역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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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구광역시 휘장_White.svg
대구광역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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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정채진
제2대
이상희
제3대
이상연
제4대
박배근
제5대
박성달
제6대
이해봉
제7대
한명환
제8대
이의익
제9대
조해녕
제10대
이종주

제11-12대
문희갑
제13대
조해녕

제14-15대
김범일

제16-17대
권영진


파일:컬러풀대구로고1.png





파일:대구광역시 휘장_White.svg
대구광역시장
大邱廣域市長
Mayor of Daegu Metropolitan City


파일:_홍준표_대구시장.jpg

현직
홍준표 / 제35대 (민선 8기)
취임일
2022년 7월 1일
정당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관사
대구광역시 남구 봉덕동 래미안웰리스트
1. 개요
1.1. 대구광역시장 선거 100% 적중 지역
2. 목록
2.1. 대구현령
2.2. 지대구군사(23부제 시행 이전)
2.3. 대구도호부사
2.4. 대구부윤
2.5. 대구군수(23부제 시행 이후)
2.6. 역대 경상북도 대구부윤
2.7. 역대 경상북도 대구시장
2.8. 역대 대구직할시장
2.9. 역대 대구광역시장
3. 역대 선거 결과
4. 역대 정당별 전적
5. 역대 후보별 순위
6. 시정 구호
7. 여담
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구광역시장대구광역시를 대표하고, 그 사무를 총괄하는 광역자치단체장이다. 1995년 1월 1일 이전까지는 직할시장이라 불렸고, 1981년 7월 1일 이전까지는 경상북도 대구시장이라 불렸으며, 1949년 8월 15일 이전까지는 경상북도 대구부윤이라 불렸다. 지역 특성상 대부분의 민선 대구광역시장이 보수 정당 소속이며, 대구광역시장은 대구 FC 구단주를 당연직으로 겸직한다.

이전까지는 경상북도지사와 비슷하게 중앙 정계의 거물이나 대권 주자급 인물은 없고 주로 관료 출신들이 대구광역시장을 맡았지만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홍준표가 당선되면서 이 경향이 깨졌다.

경상북도지사가 3연임하는 기조가 강하다면 대구광역시장은 재선이 사실상 한계인 기조가 강하다. 대구광역시 지하철 참사로 인해 초선 임기만에 불출마를 택한 조해녕 전 시장과 차기 정치적 행보를 위해 재선에 도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홍준표 시장 외에는 모두 재선에서 대구광역시장 커리어가 마무리 되었다.

경상북도지사가 TK 원로에 가까운 공무원 출신 정치인들이 도전한다면 대구광역시장은 경상북도지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짬이 낮고 지역 맹주라고 불리기는 부족한 공무원 및 정치인 출신들이 도전[1]하는 경우가 많아 3연임에 강한 견제를 받기 때문에 재선으로 마무리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할 수 있다.[2]

1.1. 대구광역시장 선거 100% 적중 지역[편집]


  • 남구를 제외한 전 지역
    • 중구 - 역대 모든 서울특별시장, 부산광역시장, 인천광역시장, 울산광역시장 선거 모두 중구 승자가 곧 당선되었다.
    • 서구
    • 동구
    • 북구
    • 수성구[3]
    • 달서구[4]
    • 달성군
대구광역시장 선거는 사실 원사이드하게 흘러가는 지역이긴 한데,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딱 한 곳이 적중 지역에서 탈락했다. 무소속으로 재선 남구청장을 지낸 이재용 후보가 무소속으로 나와서 다른 지역에서는 다 졌지만 남구에서 이겼기 때문에 적중 지역에서 빠지게 된 것이다.

2. 목록[편집]



2.1. 대구현령[편집]


고려 인종 21년인 1143년 현령이 파견된 이래 조선 세종 1년인 1419년까지 현령들이 거쳐갔다.

2.2. 지대구군사(23부제 시행 이전)[편집]


조선 세종 1년인 1419년 군으로 승격된 이래 세조 12년인 1466년까지 지군사#들이 거쳐갔다.

2.3. 대구도호부사[편집]


세조 12년인 1466년 대구군이 대구도호부로 승격된 이래 조선 고종 32년인 1895년까지 도호부사들이 거쳐갔다. 1601년 경상감영이 대구로 이전한 이후로 대구도호부사는 경상감사가 겸직하는 직위가 되어 1895년까지 이어졌다.[5]

2.4. 대구부윤[편집]


조선 고종 32년인 1895년 지방행정이 23부제로 개편된 이래 그 다음해인 1896년 다시 13도제로 개편될 때까지 부윤들이 거쳐갔다.

2.5. 대구군수(23부제 시행 이후)[편집]


1896년 23부제가 폐지되고 13도제로 환원됨에 따라 부에서 군으로 격하되고 경술국치때까지 군수들이 거쳐갔다.

2.6. 역대 경상북도 대구부윤[편집]


파일:대구광역시 휘장(일제강점기~1996)_White.svg
역대 경상북도 대구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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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부윤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다케자키 로쿠지로
나가노 타이사로
마쓰이 노부시케
미야다테 테이이치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우에우치 히코사쿠
야마자키 마사오
구와하라 이치로
이타가키 신지
제9대
제10대
제11대
제12대
다가 히데토시
카도와키 마코오이치
후루이치 스스무
스기야마 무이치
제13대
제14대

야마모토 미노루
우에노 히코하치
미군정~남조선과도정부~대한민국 경상북도 대구부윤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이경희
존 P. 콘치
조지 마이어스
이경희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권영세
한보용
조용해
허 억
대한민국 대구광역시장





대수
이름
임기
당적[6]
비고
일제치하 조선 경상북도 대구부윤
초대
다케자키 로쿠지로
1910/9/30~1918/2/26 최장수 부윤
조선총독부

2대
나가노 타이사로
1918/2/26~1919/8/20
3대
마쓰이 신스케
1919/8/20~1924/11/24
4대
미야다테 데이이치
1924/11/24~1926/5/24
5대
가미우치 히코사쿠
1926/5/24~1928/3/30
6대
야마자키 마사오
1928/3/30~1929/11/28
7대
구와하라 이치로
1929/11/28~1931/9/23
8대
이타가키 타다지
1931/9/23~1932/2/13
9대
다가 히데토시
1932/2/13~1934/5/1
10대
가도와키 모쿠이치
1934/5/1~1936
11대
후루이치 스스무
1937/4/1~1939/6/21
12대
스기야마 무이치
1939/7/1~1941/5/16
13대
야마모토 미노루
1941/5/17~1943
14대
우에노 히코하치
1943~1945/8/16 근무이탈
미군정 조선 경상북도 대구부윤 관선
초대
이경희
1945년 8월 16일 ~ 1945년 10월 10일
조선총독부
재조선미국육군사령부군정청
[7]
2대
존 P. 콘치
1945년 10월 10일 ~ 1945년 11월 18일
재조선미국육군사령부군정청
[8]
3대
조지 마이어스
1945년 11월 18일 ~ 1946년 1월 18일
[9]
4대
이경희
1946년 1월 18일 ~ 1946년 9월 5일

5대
권영세 (權寧世)
1946년 9월 5일 ~ 1947년 5월 1일
[10]
6대
한보용 (韓普容)
1947년 5월 1일 ~ 1948년 8월 14일
재조선미국육군사령부군정청
남조선과도정부

대한민국 경상북도 대구부윤 관선
7대
조용해 (趙龍海)
1948년 8월 15일 ~ 1949년 1월 8일
이승만 정부

8대
허억 (許億)
1949년 1월 8일 ~ 1949년 8월 14일

2.7. 역대 경상북도 대구시장[편집]


대수
이름
임기
당적[11]
비고
경상북도 대구시장 관선
초대
허억 (許億)
1949년 8월 15일 ~ 1951년 9월 10일
이승만 정부

2대
이호석 (李浩錫)
1951년 9월 19일 ~ 1952년 5월 5일
1952년 5월 5일 ~ 1952년 10월 24일
3대
김종환 (金鍾煥)
1952년 11월 1일 ~ 1954년 8월 31일
4대
허흡 (許洽)
1954년 10월 5일 ~ 1958년 10월 5일
경상북도 대구시장 민선
5대
조준영 (趙俊泳)
1958년 10월 5일 ~ 1959년 5월 29일


[12]
경상북도 대구시장 관선
직무대리
이종왕 (李鍾王)
1959년 5월 29일 ~ 1959년 6월 12일
이승만 정부

6대
1959년 6월 12일 ~ 1960년 5월 6일
7대
박기서 (朴基西)
1960년 5월 16일 ~ 1960년 10월 31일
허정 내각

직무대리
이백희 (李白熙)
1960년 10월 31일 ~ 1960년 12월 28일
장면 내각

경상북도 대구시장 민선
8대
김종환 (金鍾煥)
1960년 12월 28일 ~ 1961년 5월 25일

[[무소속|
무소속
]]


경상북도 대구시장 관선
9대
강원채 (姜元採)
1961년 5월 25일 ~ 1963년 12월 11일
국가재건최고회의

10대
강계원 (姜啓元)
1964년 1월 11일 ~ 1966년 5월 25일
박정희 정부

11대
태종학 (太鍾鶴)
1966년 5월 25일 ~ 1969년 10월 2일
12대
김수학 (金壽鶴)
1969년 10월 2일 ~ 1972년 6월 30일
13대
이규이 (李圭利)
1972년 6월 30일 ~ 1974년 7월 18일
14대
김무연 (金武然)
1974년 7월 18일 ~ 1976년 10월 11일
15대
정채진 (鄭埰鎭)
1976년 10월 22일 ~ 1979년 1월 15일
16대
박창규 (朴昌圭)
1979년 1월 15일 ~ 1980년 7월 8일
17대
장병구 (蔣炳九)
1980년 8월 1일 ~ 1981년 6월 30일
최규하 정부


2.8. 역대 대구직할시장[편집]


대수
이름
임기
당적[13]
비고
관선 (임명직)
18대
정채진 (鄭埰鎭)
1981년 7월 1일 ~ 1982년 5월 2일
전두환 정부

19대
이상희 (李相熙)
1982년 5월 3일 ~ 1985년 2월 20일
20대
이상연 (李相淵)
1985년 2월 21일 ~ 1987년 5월 29일
21대
박배근 (朴培根)
1987년 5월 30일 ~ 1988년 12월 12일
22대
박성달 (朴成達)
1988년 12월 13일 ~ 1990년 12월 27일
노태우 정부

23대
이해봉 (李海鳳)
1990년 12월 28일 ~ 1992년 4월 20일
24대
한명환 (韓明煥)
1992년 4월 21일 ~ 1993년 3월 3일
25대
이의익 (李義翊)
1993년 3월 4일 ~ 1993년 12월 27일
김영삼 정부

26대
조해녕 (曺海寧)
1993년 12월 28일 ~ 1995년 3월 31일

2.9. 역대 대구광역시장[편집]


대수
이름
임기
당적[14]
출신지
비고
관선 (임명직)
27대
이종주 (李鍾宙)
1995년 4월 1일 ~ 1995년 6월 30일
김영삼 정부
경북 안동

민선 (선출직)
28대
문희갑 (文熹甲)
1995년 7월 1일 ~ 1998년 6월 30일

[[무소속|
무소속
]]

대구 달성
[15]
29대
1998년 7월 1일 ~ 2002년 6월 30일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1997~2004).svg


30대
조해녕 (曺海寧)
2002년 7월 1일 ~ 2006년 6월 30일
경북 경산

31대
김범일 (金範鎰)
2006년 7월 1일 ~ 2010년 6월 30일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svg

경북 예천

32대
2010년 7월 1일 ~ 2014년 6월 30일
[16]
33대
권영진 (權泳臻)
2014년 7월 1일 ~ 2018년 6월 30일

[[새누리당|
파일:새누리당 흰색 로고타입.svg
]]

경북 안동
[17]
34대
2018년 7월 1일 ~ 2022년 6월 30일

[[자유한국당|
파일:자유한국당 흰색 로고타입.svg
]]

[18]
35대
홍준표 (洪準杓)
2022년 7월 1일 ~ 현재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경남 창녕
[19][20]


3. 역대 선거 결과[편집]


파일:대구광역시 휘장_White.svg 역대 민선 대구광역시장
1995
1998
2002
2006
2010
무소속

한나라당

한나라당

문희갑
조해녕
김범일
2014
2018
2022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국민의힘



권영진
홍준표



[ 펼치기 · 접기 ]
구분
주요 후보 득표율
1995년
1위: 문희갑 36.79%
2위: 이의익 22.14%
3위: 이해봉 21.35%
4위: 조해녕 16.87%
1998년
1위: 문희갑 71.98%
2위: 이의익 20.66%
2002년
1위: 조해녕 61.18%
2위: 이재용 38.81%
2006년
1위: 김범일 70.15%
2위: 이재용 21.08%
2010년
1위: 김범일 72.92%
2위: 이승천 16.86%
3위: 조명래 10.20%
2014년
1위: 권영진 55.95%
2위: 김부겸 40.33%
2018년
1위: 권영진 53.73%
2위: 임대윤 39.75%
2022년
1위: 홍준표 78.75%
2위: 서재헌 17.97%


3.1. 1995년[편집]


{+1 [[파일:대구광역시 휘장(일제강점기~1996)_White.svg}}} 대구광역시장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조해녕(曺海寧)
175,749
4위

[[민주자유당|
파일:민주자유당 글자.svg
]]

16.87%
낙선
2
이의익(李義翊)
230,668
2위

[[자유민주연합|
파일:자유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svg
]]

22.14%
낙선
3
문희갑(文熹甲)
383,272
1위

[[무소속|
무소속
]]

36.79%
당선
4
안유호(安有鎬)
29,617
5위

2.84%
낙선
5
이해봉(李海鳳)
222,409
3위

21.35%
낙선

선거인 수
1,663,614
투표율
63.97%
투표 수
1,064,253
무효표 수
22,538

당시 집권 여당인 보수 정당이 4위로, 그것도 보수의 심장이라 불리는 대구광역시에서 낙선한 유일한 사례이다. 문희갑도 물론 보수 성향 쪽 인물이긴 하지만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사고에 따른 김영삼의 대구광역시 홀대론으로 인해 반 민주자유당 구도가 형성되며 무소속 문희갑 후보에게 몰표가 나온 것.

3.2. 1998년[편집]


{+1 [[파일:대구광역시 휘장_White.svg}}} 대구광역시장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문희갑(文熹甲)
570,167
1위

71.98%
당선
3
이의익(李義翊)
163,653
2위

20.66%
낙선
4
유성환(兪成煥)
58,243
3위

7.35%
낙선

선거인 수
1,716,312
투표율
46.81%
투표 수
803,363
무효표 수
11,300

3년 전 무소속으로 당선된 문희갑 후보는 이후 한나라당에 입당해 재선에 도전했고, 직전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 후보가 전국 최고 득표율을 기록한 지역인 만큼 무난하게 재선에 성공했다. 반면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구광역시 13석 중 8석을 쓸어담았던 자유민주연합은 이번에는 대구광역시에서 별 힘을 쓰지 못했다.

3.3. 2002년[편집]


{+1 [[파일:대구광역시 휘장_White.svg}}} 대구광역시장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조해녕(曺海寧)
452,943
1위

61.18%
당선
3
이재용(李在庸)
287,396
2위

38.81%
낙선

선거인 수
1,814,278
투표율
41.45%
투표 수
751,994
무효표 수
11,655

범여권 무소속 이재용 후보는 비록 낙선했지만 보수의 심장 대구광역시에서 민주당계 후보로 40%에 육박하는 득표율을 얻으며 대단히 선전했다. 게다가 자신이 재선 남구청장을 지냈던 남구에서는 51.26%의 득표율로 조해녕 후보를 꺾었는데, 이는 현재까지 대구광역시장 선거에서 비보수 정당 후보가 기초자치단체 단위로나마 승리한 유일한 기록이다.

3.4. 2006년[편집]


{+1 [[파일:대구광역시 휘장_White.svg}}} 대구광역시장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이재용(李在庸)
191,131
2위

21.08%
낙선
2
김범일(金範鎰)
636,057
1위

70.15%
당선
4
이연재(李演宰)
35,497
3위

3.91%
낙선
5
박승국(朴承國)
8,764
5위

0.96%
낙선
6
백승홍(白承弘)
35,232
4위

3.88%
낙선

선거인 수
1,885,043
투표율
48.54%
투표 수
915,060
무효표 수
8,379

3.5. 2010년[편집]


{+1 [[파일:대구광역시 휘장_White.svg}}} 대구광역시장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김범일(金範鎰)
633,118
1위

72.92%
당선
2
이승천(李承天)
146,458
2위

16.86%
낙선
7
조명래(趙明來)
88,599
3위

10.20%
낙선

선거인 수
1,928,835
투표율
45.94%
투표 수
886,035
무효표 수
17,860

김범일 전 시장이 얻은 득표율은 역대 대구광역시장 중 가장 높은 득표율이고, 한동안 깨지지 않다가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홍준표 후보가 78.75%를 받으면서 12년 만에 깨지게 된다.

3.6. 2014년[편집]


{+1 [[파일:대구광역시 휘장_White.svg}}} 대구광역시장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권영진(權泳臻)
581,175
1위

55.95%
당선
2
김부겸(金富謙)
418,891
2위

40.33%
낙선
3
송영우(宋映雨)
10,857
5위

1.04%
낙선
4
이원준(李源晙)
12,922
4위

1.24%
낙선
5
이정숙(李定淑)
14,774
3위

1.42%
낙선

선거인 수
2,012,579
투표율
52.30%
투표 수
1,052,638
무효표 수
14,019

예상대로 새누리당 권영진 후보가 55.95%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새정치민주연합 김부겸 후보는 비록 패배하였지만, 40.33%의 득표율을 얻으면서 비새누리당 후보 중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며 선전했다. 수성구수성구 갑 대부분 지역, 달서구 월성1동에선 권영진 후보를 이겼다.

3.7. 2018년[편집]


{+1 [[파일:대구광역시 휘장_White.svg}}} 대구광역시장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임대윤(林大潤)
458,112
2위

39.75%
낙선
2
권영진(權泳臻)
619,165
1위

53.73%
당선
3
김형기(金炯基)
74,955
3위

6.50%
낙선

선거인 수
2,047,286
투표율
57.26%
투표 수
1,172,279
무효표 수
20,047

권영진이 53.73%의 득표율을 얻으며 당선됐지만, 임대윤 후보도 39.75%로 꽤 선전했다.

사실 지난 선거에서 김부겸40.33%를 얻으며 선전했던 건 당시 박근혜와 찍은 사진으로 어필을 했기 때문도 있었다. 동시에, 당시 김부겸 후보는 비노, 비문 계열이라 대구광역시·경상북도에 크게 비토 정서도 없었다는 점도 있었다. 반면 임대윤은 아랫동네와 달리 거부감이 좀 컸고, 게다가 상대는 인지도가 시정 평가에서 40% 후반을 기록하는 권영진이였다. 그런데 이런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특히 2010년대 들어 신도시가 만들어지고 있는 달성군에서는 42%의 득표율을 받아 권영진 후보와 불과 9% 차이의 접전을 벌였다. 이를 제외하고도 달서구의 41%, 수성구의 40%도 주목을 받았으며, 읍면동 단위에서는 달성군 유가읍, 동구 안심3·4동 등 일부 지역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3.8. 2022년[편집]


{+1 [[파일:대구광역시 휘장_White.svg}}} 대구광역시장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서재헌(徐載憲)
156,429
2위

17.97%
낙선
2
홍준표(洪準杓)
685,159
1위

78.75%
당선
3
한민정(韓玟晶)
20,904
3위

2.40%
낙선
4
신원호(申原昈)
7,542
4위

0.86%
낙선

선거인 수
2,044,579
투표율
43.19%
투표 수
883,141
무효표 수
13,107

홍준표 후보가 당내 경선 과정에서부터 현역의원 출마 페널티 및 경선 직전까지 국민의힘 최고위원이었던 김재원, 박근혜 전 대통령을 후원회장으로 앞세웠던 유영하 등 구 친박계의 견제에도 과반 이상의 득표율[21]로 경선을 통과하더니 본선에서도 역대 대구광역시장 최다 득표율(78.75%)을 기록하며 당선된 동시에[22] 총 12곳 당선된 국민의힘 광역자치단체장 중 1위로 제일 높은 득표율이었다. 홍준표 후보는 과거 경상남도지사에 이어서 대구광역시장에도 당선되며 민선 이래 두 곳의 광역자치단체장을 역임하 기록을 최초로 갖게 되었다.[23]

한편 더불어민주당에선 서재헌을 출마시켰지만, 문제는 서재헌 후보는 이전에 내보낸 김부겸, 임대윤에 비해 중량감이 떨어졌기에[24] TK의 반민주당 정서 + 윤석열 정부 허니문 효과 + 홍준표 후보의 인지도와 중량감 격차로 인해 승패는 이미 결정이 났었다. 결국 서재헌 후보는 역대 민주당계 후보 중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이승천(16.86%) 후보 다음으로 낮은 득표율인 17.97%에 그쳤는데, 이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광역자치단체장에 출마한 낙선자 후보 중 유일하게 10%대 득표율을 기록하며 선거비 전액 보전(15%)을 겨우 넘기는 것에 만족해야했다.

지역별로 보면 모든 지역에서 홍준표 후보가 기본적으로 70%를 가뿐히 넘었으며, 특히 노년층 인구가 많은 서구와 남구에선 무려 80%를 넘는 기염을 토했다.

같은 TK 광역자치단체장으로 출마한 임미애 경북지사 후보는 20%대를 받는데 그쳐서 낙선했지만 경상북도 읍면동 중 그나마도 유일하게 예천군 호명면에서라도 62표 차로 신승해서 유종의 미라도 거뒀지 서재헌은 아예 대구광역시 8개구군 전 행정동에서 패배함로써 송영길, 변성완과 함께 더불어민주당 후보 중 모든 행정동에서 전패한 후보가 되었다.

더군다나 홍준표 후보 자체가 워낙 넘사벽급의 득표율을 보이고 있던 터라 17개 시도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첫 번째로 가장 주목도가 떨어진 건 사실이다.

4. 역대 정당별 전적[편집]



민주당계 정당
보수 정당
제3후보[25]
1회
-
조해녕
문희갑[26]


낙선 16.87%
당선 36.79%
2회
이의익[27]
문희갑
유성환[28]



낙선 20.66%
당선 71.98%
낙선 7.35%
3회
-
조해녕
이재용[29]


당선 61.18%
낙선 38.81%
4회
이재용
김범일
이연재[30]



낙선 21.08%
당선 70.15%
낙선 3.91%
5회
이승천
김범일
조명래[31]



낙선 16.86%
당선 72.92%
낙선 10.20%
6회
김부겸
권영진
-


낙선 40.33%
당선 55.95%
7회
임대윤
권영진
김형기[32]



낙선 39.75%
당선 53.73%
낙선 6.50%
8회
서재헌
홍준표
-


낙선 17.97%
당선 78.75%

5. 역대 후보별 순위[편집]


  • 사퇴, 사망, 등록 무효 후보 제외.

1위
2위
3위
4위
5위
1회
문희갑
이의익
이해봉
조해녕
안유호
2회
문희갑
이의익
유성환
3회
조해녕
이재용
4회
김범일
이재용
이연재
백승홍
박승국
5회
김범일
이승천
조명래
6회
권영진
김부겸
이정숙
이원준
송영우
7회
권영진
임대윤
김형기
8회
홍준표
서재헌
한민정
신원호

6. 시정 구호[편집]


시장
시정 구호
김수학
뭉치자 백만 가꾸자 새 대구
김무연
창의로 개발 총화로 전진
정채진
밝고 푸르고 활기찬 도시
박창규
발전시정의 구현
장병구
밝은 새 대구 복지 대구 건설
정채진
활기찬 새대구 긍지높은 시민
이상희
밝은거리 푸른도시 복지대구 건설
이상연
긍지높은 시민 건강한 도시
박배근
강한 도시 신뢰받는 시정
박성달
참여하는 시민 희망찬 도시
이해봉
새질서 새생활 새대구
한명환
화합하는 시민 봉사하는 시정
이종주
대구는 우리모두의 자랑입니다
문희갑
화합하는 시민 거듭나는 대구
아름다운 도시 품위있는 대구
조해녕
마음을 하나로 대구를 세계로
김범일
희망의 도시 일류 대구
권영진
오로지 시민행복 반드시 창조대구
행복한 시민 자랑스러운 대구
홍준표
자유와 활력이 넘치는 파워풀 대구

7. 여담[편집]


  • 1995년 지방자치제 출범 이후부터 현재까지 임기 중 사퇴하거나 궐위된 시장이 단 한 명도 없었던 광역자치단체장[33] 중 하나이다.
  • 권영진 전 시장을 포함한[34] 역대 민선 대구광역시장들은 퇴임 후에도 모두 대구에서 살고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라고 들릴 지 모르겠지만, 다른 광역자치단체의 경우 광역자치단체장을 지낸 뒤 수도권으로 올라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선 대구광역시장을 지냈던 문희갑, 조해녕, 김범일 모두 은퇴 후에도 대구광역시에서 살고 있다. 관선 대구광역시장을 지낸 이상희, 이의익, 이종주 전 시장 역시도 대구광역시에서 살고 있다.[35]
  • 김범일 전 시장까지 민선 대구광역시장은 모두 경북고등학교, 행정고시 합격 관료 출신이었는데, 권영진 전 시장은 비 경북고등학교, 비 관료 출신이다. 향후에는 고교 평준화의 영향으로 비 경북고등학교 출신 시장들이 더 나올 가능성이 높다. 현 홍준표 시장도 비 경북고등학교 출신이다.
  • 역대 민선 대구광역시장은 전원이 인서울 대학교 출신으로, 문희갑 전 시장은 국민대학교, 조해녕, 김범일 전 시장은 서울대학교, 권영진, 홍준표 시장은 고려대학교를 졸업했다. 반면 역대 민선 경상북도지사의 경우 이의근, 김관용 전 지사가 영남대학교, 이철우 지사가 경북대학교 출신으로서 전원이 대구시 지역대학을 졸업했다.

8. 관련 문서[편집]





[1] 이러한 경향은 대권 주자급 거물 정치인 홍준표가 대구광역시장에 당선되면서 처음으로 깨졌다. 그러나 지속 여부는 차기 지방선거를 지켜봐야할 듯하다.[2] 대구광역시장과 유사한 광주광역시장도 같은 이유로 3선 시장이 없다. 게다가 광주광역시장의 경우 당내 경쟁이 더 심한 탓에 재선 시장도 박광태 한 명밖에 없다. 나머지 광주광역시장들은 보통 초선으로 커리어가 끝나는 편이며 광주광역시장직을 마치면 사실상 정계 은퇴 수순을 밟게 된다.[3] 다만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수성구 전체는 새누리당 권영진 후보가 이겼지만, 수성구 갑 지역으로 한정하면 새정치민주연합 김부겸 후보가 신승하였다.[4] 여기도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달서구 전체는 새누리당 권영진이 압승하였으나, 월성 1동은 새정치민주연합 김부겸이 승리하였다.[5] 도호부사는 원래 종3품 관직이지만 대구도호부사는 경상감사가 겸직했으므로 종2품이었다.[6] 선거 당시 당적.[7] 마지막 일제치하 경상북도 대구부윤 이었던 우에노 히코하치 부윤이 광복 하루 뒤인 8월 16일 근무 이탈함으로 인해 취임. 여담으로, 히코하치 부윤은 해방 직후 기자회견에서 종전 후에도 사랑하는 대구부민으로 남겠다는 말을 했는데, <대구시사>에서는 이 발언을 아부성 헛소리라고 평가했다.[8] 미 육군 대위. 10월 13일자로 일인 관료를 모두 해임했다.[9] 미 육군 소령.[10] 친일반민족행위자.[11] 선거 당시 당적.[12] 지방자치법 부칙 개정으로 인한 민선을 당선되었으나, 당선 후 여당우위의 의회 때문에 시정은 마비가 되었고, 이를 포함한 여러 사유로 시 의회는 시장을 공격하였다. 그 사이 또 개정된 지방자치법(시, 읍, 면장은 관선이나, 각 의회에서 불신임 안 제출 가능)으로 인해 불신임 안이 제출 및 통과되어 가결되어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다.[13] 선거 당시 당적.[14] 선거 당시 당적.[15] 1997.12.3.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1997~2004).svg
복당.
[16] 2012.2.13.
[[새누리당|
파일:새누리당 흰색 로고타입.svg
]]
으로 당명 변경.
[17] 2017.2.13.
[[자유한국당|
파일:자유한국당 흰색 로고타입.svg
]]
으로 당명 변경.
[18] 2020.2.17.
[[미래통합당|
파일:미래통합당 흰색 로고타입.svg
]]
으로 신설 합당.
2020.9.2.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으로 당명 변경.
[19] 최초의 비TK 출신 민선 대구광역시장. 다만 창녕군을 비롯한 경상남도 서북부 지역은 대구광역시의 영향을 많이 받는 지역이기도 하며 본인 역시 초중고 학창 시절을 대구광역시에서 보냈기 때문에 대구광역시를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있다.[20] 헌정사상 최초의 복수(경상남도지사, 대구광역시장) 광역자치단체장.[21] 실제 경선 득표율 기준. 페널티 10% 적용시 49.45%.[22] 종전 최다 득표율은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김범일 후보가 받은 72.92%이다.[23] 광역자치단체장 이력 기준으로 봐도 사실상 3선이라 봐도 무방하다.[24] 김부겸은 적어도 군포시에서 3선 의원을 지냈을 뿐더러, 한나라당 출신이라 더불어민주당 인사 중에선 상대적으로 보수적인데다 수성구 갑에서 40%를 득표하는 등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임대윤 후보도 한나라당 출신에 대구광역시 동구청장 재선에 성공한 이력이 있고, 민주당 소속으로도 4번 출마했던 사람이다. 반면 서재헌 후보는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선거(동구청장 출마)에서 2차례 출마하여 2연속 낙선한데다가 정치 외 커리어도 상대적으로 빈약한 편이라 사실상 대구광역시의원 내지 구청장 후보 수준의 이력에 가깝다.[25] 3% 이상 득표자만 기재.[26] 보수 성향 후보.[27] 보수 정당 후보, 새정치국민회의단일화.[28] 보수 정당·민주당계 정당 후보.[29] 민주당계 성향 후보.[30] 진보 정당 후보.[31] 진보 정당 후보.[32] 제3지대 정당 후보.[33] 광주광역시, 인천광역시, 충청북도, 경상북도, 전라북도 등. 원래 대전광역시도 이랬으나 권선택 전 시장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2017년 11월 14일 징역 10년, 벌금 5억원 선고로 시장직을 상실해 탈락했다. 충청남도는 도지사 재보궐선거가 없었으나 이쪽은 민선 도지사들이 대부분 1년 미만의 잔여 임기를 놔두고 모조리 사퇴했다. 경기도 역시 재보궐선거가 없었으나 여기도 잔여 임기 1년 미만을 놔두고 대통령 선거 출마로 사퇴한 적이 2번 있었다. 울산광역시는 1997년(여기도 재보궐선거가 없었으나, 임기 종료 전 사퇴한 사례가 1번 있었다.), 세종특별자치시장은 2012년 출범했으므로 제외.[34] 권영진 전 시장의 집은 서울특별시 노원구이고, 대구광역시에서는 관사(그것도 김범일 전 시장 시절 폐지했던 관사를 부활시켰다.) 생활을 해서 말이 나왔다. 게다가 중학교까지 고향인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졸업했으며, 대구광역시에서는 고등학교만 졸업했다. 다만 권영진 전 시장은 대구광역시장 이전에 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과 서울특별시 노원구 을에서 국회의원을 지내는 등 모든 정치적 직위를 서울특별시에서 역임하였다. 대구광역시장 퇴임 후에도 가족과 함께 대구광역시에서 계속 살겠다는 인터뷰를 했다. 이후 잠시 서울 노원구 자택서 거주하다 계명대학교 특임교수로 임명되면서 대구에서 거주 중이다.[35] 경상북도지사와 대구광역시장을 모두 지낸 김무연경북지사 역시도 대구광역시·경상북도에서 평생 공직 생활을 했고 대구광역시에서 여생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