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광역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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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전광역시장은 대전광역시를 대표하고, 그 사무를 총괄하는 광역자치단체장이다. 1995년 1월 1일 이전까지는 직할시장이라고 불렸으며, 1989년 대전직할시가 충청남도로부터 분리 신설될 때까지는 충청남도 대전시장으로 불렸다.
대체적으로 나왔던 사람들이 다시 나오고 했던 사람들이 다시 하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모습이었다.[1]
여담으로, 충청 대망론 주자였던 안희정의 사례가 있는 충청남도지사가 충청권 대권주자로서 입지가 더 높은데[2] 부산광역시장 - 경상남도지사, 광주광역시장 - 전라남도지사의 관계와 유사하다.
1.1. 대전광역시장 선거 100% 적중 지역[편집]
대전광역시장 선거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지방선거 8회가 실시되었다. 대전시에는 5개의 자치구가 있으며, 이 자치구 중에서 대전광역시장 선거를 100% 맞춘 100% 적중 지역은 서구 하나뿐이다.
서울특별시장, 부산광역시장, 대구광역시장, 인천광역시장, 울산광역시장 선거에서는 각 지역의 중구에서 이긴 사람이 시장에 당선되는 징크스가 있는데, 대전광역시는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중구에서 박성효가 1위를 하면서 징크스가 깨졌다.
2. 역대 대전광역시장[편집]
2.1. 관선[편집]
2.2. 민선[편집]
3. 생존 중인 전직 민선 대전광역시장[편집]
- 홍선기 (1998년 7월 1일 ~ 2002년 6월 30일 재임, 민선 1~2기, 1936년 10월 3일 출생, 87세)
- 염홍철 (2002년 7월 1일 ~ 2006년 6월 30일 재임, 2010년 7월 1일 ~ 2014년 6월 30일 재임, 민선 3·5기, 1944년 8월 6일 출생, 79세)
- 박성효 (2006년 7월 1일 ~ 2010년 6월 30일 재임, 민선 4기, 1955년 2월 20일 출생, 69세)
- 권선택 (2014년 7월 1일 ~ 2017년 11월 14일 재임, 민선 6기, 1956년 1월 13일 출생, 68세)
- 허태정 (2018년 7월 1일 ~ 2022년 6월 30일 재임, 민선 7기, 1965년 9월 12일 출생, 58세)
4. 역대 선거 결과[편집]
4.1. 1995년[편집]
4.2. 1998년[편집]
4.3. 2002년[편집]
4.4. 2006년[편집]
초반에는 열린우리당 염홍철 후보가 앞섰지만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서울특별시에서 선거 유세를 하는 과정에서 커터칼 피습 테러를 당하는, 박근혜 커터칼 피습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래서 병원으로 실려갔던 박근혜 전 대표가 깨어나 한 말이 대전광역시는요?였고, 이 말 한 마디에 분위기가 반전되고 초접전 끝에 현역이었던 열린우리당 염홍철[9] 후보가 낙선하고 한나라당 박성효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로써 열린우리당은 여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전라북도지사 단 1석만 얻는 대참패를 하게 된다.[10]
4.5. 2010년[편집]
4.6. 2014년[편집]
선거 보름 전까지만 하다러도 박성효 후보가 권선택 후보보다 지지율이 매우 높았으나, 막판에 권선택 후보의 지지율이 상승하면서 개표 결과 3.31% 차이로 접전 끝에 권선택 후보가 승리를 거두었다. 이로써 최초로 민주당계 정당 대전광역시장이 나오게 되었다.
4.7. 2018년[편집]
전임 시장이였던 권선택이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퇴임당하고 초기에는 이상민 유성구 을 국회의원과 허태정 전 유성구청장이 물망에 오르다가 청와대 과학보좌관과 재선 유성구청장 경력의 허태정 후보가 공천을 받아 출마했다. 사실 대전광역시를 과학의 도시로 키우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발표가 있었고 유성구에는 카이스트를 비롯한 연구밸리가 조성되어 있으니 어찌 보면 허태정의 공천은 당연했다.
자유한국당은 박성효 전 대전시장이 공천되었다. 원래는 친박 돌격대로 알려진 이장우 동구 국회의원이 공천될 가능성이 높았다. 문제는 대전광역시 동구청장 시절에 동구청을 새로 짓는다고 돈이 부족함에도 돈을 과하게 많이 썼다가 욕을 쳐먹는데다 선거 분위기가 너무 안좋다보니 의원 자리를 지키려고 출마를 포기했고 그나마 시장 후보로 남아있던 박성효가 공천됐는데, 친박에다가 대전광역시장 시절에도 대전광역시의 주요 현안들을 죄다 다른 지역에 빼앗기는 등 대전광역시 시민들에게도 좋은 인식이 없다. 심지어 대전광역시장 임기 시절에 나무만 심다가 임기를 끝냈다는 말까지 있었다. 이는 박성효 전 시장의 주요 공약 중 한가지가 삼천만 그루 나무 심기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바른미래당은 바른정당 시절부터 대전시당 위원장을 맡고 있던 남충희를 단수 공천했다. 민주평화당은 서진희 후보, 정의당은 김윤기 후보가 대전광역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결국 허태정 후보가 56.41%의 득표율을 얻으며 당선되었다. 위 아 더 월드로 통일된 대를린이 다시 나타난 건 덤. 참고로 박성효 후보는 이번 선거 결과까지 합산한다면 대전광역시장 선거에 4번 출마하여 3번이나 떨어졌다.
허태정 후보의 당선으로 인해 대전 도시철도 2호선을 트램으로 하는 정책이 추진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4.8. 2022년[편집]
초반엔 중구와 동구 표가 먼저 개표되면서 이장우 후보가 앞서나가다, 후반에 허태정의 홈스테이트인 유성구 표가 쏟아지면서 추격을 했지만 결과는 3%p 내외 격차로 이장우 후보가 이겼다.
세부적으론 유성구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모두 이장우 후보가 이겼는데, 특히 둔산신도시가 있는 서구가 이장우의 손을 들어주며[11] 허태정에게 결정타를 날렸다. 물론 유성구에선 5%p 나마 앞섰지만, 인구가 절반 정도 적은 중구에서 9% 앞서서 유성구의 우위를 상쇄했을 뿐더러, 앞의 서구까지 거들면서 허태정 후보가 석패했다.
이제 동대전이 보수 정당 우위, 서대전이 더불어민주당 우위란 대를린 장벽이 사실상 무너지고, 유성구 vs 대덕구, 서구 vs 중구, 동구 구도로 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게 되었다.
또한 광역의원, 기초자치단체장 모두 유성구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궤멸되면서 더불어민주당은 위기를 맞게 되었다.
5. 역대 정당별 전적[편집]
6. 역대 후보별 순위[편집]
- 사퇴, 사망, 등록 무효 후보 제외.
7. 시정 구호[편집]
8. 관련 문서[편집]
[1] 집권 여당 소속, 민선 구청장 출신 후보가 단 한 명도 당선되지 못한 특이한 징크스가 있었으나, 유성구청장 출신의 허태정과 동구청장 출신의 이장우가 연속으로 당선되면서 깨졌으며, 연임한 인물은 홍선기 전 시장이 유일하다. 구청장을 포함한 민선 기초자치단체장 출신의 광역단체장은 전국으로 범위를 넓혀도 많지 않고 구청장만 한정할 경우 더더욱 적다.[2] 충청북도지사는 충청북도 자체가 충청남도에 비해 존재감이 떨어지는 동네고, 역대 민선 지사들도 대부분 무난한 스타일의 공무원 출신이 대다수라 튀지 않고 안정적으로 도내 행정 사무만 주로 수행했기에 외부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편이다. 참고로 민선 8기 김영환은 최초의 의료인 출신의 충북도지사이다.[3] 선거 당시 당적.[4] 선거 당시 당적.[5] 2005.3.8.
탈당.
2005.4.20.
[[열린우리당|
]]
입당.[6] 2012.11.16.
[[새누리당|
]]
으로 흡수 합당.[7] 2015.12.28.
으로 당명 변경.[8]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 및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으며 시장직 상실.[9] 원래 염홍철은 당적이 한나라당이었지만 2005년에 한나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10] 즉 텃밭이라고 여겨지던 호남권에서조차 대참패한 것인데, 하물며 광주광역시장, 전라남도지사 자리도 당시 군소 정당급으로 작아져 오늘 내일하던 민주당(구 새천년민주당)에게 내줬을 정도로 대패한 선거였다.[11] 대전광역시 서구에서 이장우 후보가 3,927표 앞섰는데, 둔산동에서만 1,160표 앞섰다., 물론 갈마동과 월평동에서도 이장우 후보가 이긴 건 덤이다.[12] 3% 이상 득표자만 기재.[13] 보수 정당 후보.[14] 보수 정당 후보, 새정치국민회의와 단일화.[15] 보수 정당 후보.[16] 보수 정당 후보.[17] 보수 정당 후보.[18] 보수 정당 후보.[19] 제3지대 정당 후보.
탈당.
2005.4.20.
[[열린우리당|
입당.[6] 2012.11.16.
[[새누리당|
으로 흡수 합당.[7] 2015.12.28.
으로 당명 변경.[8]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 및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으며 시장직 상실.[9] 원래 염홍철은 당적이 한나라당이었지만 2005년에 한나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10] 즉 텃밭이라고 여겨지던 호남권에서조차 대참패한 것인데, 하물며 광주광역시장, 전라남도지사 자리도 당시 군소 정당급으로 작아져 오늘 내일하던 민주당(구 새천년민주당)에게 내줬을 정도로 대패한 선거였다.[11] 대전광역시 서구에서 이장우 후보가 3,927표 앞섰는데, 둔산동에서만 1,160표 앞섰다., 물론 갈마동과 월평동에서도 이장우 후보가 이긴 건 덤이다.[12] 3% 이상 득표자만 기재.[13] 보수 정당 후보.[14] 보수 정당 후보, 새정치국민회의와 단일화.[15] 보수 정당 후보.[16] 보수 정당 후보.[17] 보수 정당 후보.[18] 보수 정당 후보.[19] 제3지대 정당 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