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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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임위원회 특별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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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제사법위원장
정무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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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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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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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원
외교통일위원장
국방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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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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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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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벤처기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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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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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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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보건복지위원장
환경노동위원장
국토교통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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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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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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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
정보위원장
여성가족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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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덕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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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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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삼석
비상설특별위원회 위원장
윤리특별위원장
[[정치개혁특별위원회|{{{-2

정치개혁특별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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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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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순
[A] 여당 원내대표가 겸직





김태호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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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국회휘장(9대-19대).svg 대한민국 국회의원 (경남 김해시 을)
제17-18대
최철국[1]

제18-19대
김태호


제20대
김경수[2]





파일:국회휘장.svg 대한민국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제21대 후반기
윤재옥

제21대 후반기
김태호


현직



제32·33대 경상남도지사

대한민국 제18·19·21대 국회의원
김태호
金台鎬 | Kim Tae-ho


파일:1B8795D5-EC89-4733-85A7-2F7443A4525A.jpg

출생
1962년 8월 21일[1](61세)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일부리 부산마을[2]
거주지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송정리 거창 푸르지오
서울특별시 종로구 무악동 인왕산 아이파크
본관
상산 김씨[3]
현직
제21대 국회의원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
국민의힘 산청·함양·거창·합천 당협위원장
재임기간
제36대 경상남도 거창군수
2002년 7월 1일 ~ 2004년 5월 19일
제32·33대 경상남도지사
2004년 6월 6일 ~ 2010년 6월 30일
서명
파일:김태호 서명.svg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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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가조국민학교[1] (졸업)
가조중학교 (졸업)
거창농업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농업교육학 /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교육학 / 석사 · 박사)
병역
대한민국 육군 병장 만기전역
신체
186cm
종교
불교
가족
아내 신옥임[2], 슬하 1남 1녀
소속 정당

지역구
경남 산청군·함양군·거창군·합천군
의원 선수
3
의원 대수
18, 19, 21
소속 위원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
경력
통일민주당 김동영 국회의원 비서관
민주자유당 이강두 국회의원 보좌관
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사회정책실장[3]
제6대 경상남도의회 의원
(거창군 제2선거구[4] / 한나라당)
제36대 경상남도 거창군(민선 3기 / 한나라당)
제32·33대 경상남도지사 (민선 3-4기 / 한나라당)
경남 FC 구단주
제41대 국무총리 내정자
제18대 국회의원 (경남 김해시 을 / 한나라당)
제18대 국회 후반기 지식경제위원회 위원
제19대 국회의원 (경남 김해시 을 / 새누리당)
제19대 국회 전반기 기획재정위원회 위원
새누리당 제18대 대통령 선거 경선후보[5]
제19대 국회 후반기 외교통일위원회 위원
새누리당 최고위원
제21대 국회의원 (경남 산청군·함양군·거창군·합천군 / 무소속)
제21대 국회 전반기 외교통일위원회 위원
윤석열 국민캠프 공동선대위원장
제21대 국회 후반기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


1. 개요
2. 생애
2.1. 정치 활동
2.1.1. 비서관 시절
2.1.2. 거창군수 시절
2.1.3. 경상남도지사 시절
2.1.4. 김해시 을 국회의원 시절
3. 비판 및 논란
3.1. 비속어 사용 논란
3.2. 21대 국회 상임위원회 결석률 1위
4. 소속 정당
5. 여담
6. 선거 이력
7.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정치인.


2. 생애[편집]


1962년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일부리 부산마을에서 3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거창농업고등학교(현 아림고등학교)[4],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농업교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1. 정치 활동[편집]



2.1.1. 비서관 시절[편집]


당시 김영삼의 최측근으로서 상도동계의 중진 의원이었던 김동영비서관으로 정치에 입문하였다. 그의 아버지와 김동영이 고등학교 동문이어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통일민주당 - 민주자유당을 거친 김동영 국회의원은 1991년 8월 19일에 암으로 임기 중에 사망하고 만다. 잠시 서울대학교 강사, 이강두 국회의원 보좌관[5]을 잠시했다가, 당시 민주자유당 - 신한국당 총재였던 김영삼에게 기용되어 여의도연구소 사회정책실장을 맡았다.


2.1.2. 거창군수 시절[편집]


이후 고향인 거창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1998년 경상남도의회 의원, 2002년 거창군수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 또한 도의원 출신이였고, 김동영에 이은 유력 정치인으로 급부상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2.1.3. 경상남도지사 시절[편집]


2003년 한나라당 소속이었던 김혁규 경남지사가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면서 국회의원 출마를 이유로 사퇴하자, 보궐선거를 통해 경상남도지사로 당선된 후 2006년 재선되어 2010년까지 재임하였다. 도지사 첫 당선 당시 만 41세로, 역대 최연소 민선 광역자치단체장 기록을 가지고 있다.

파일:2004.6.5 재보선.jpg
2004.6.5 보궐선거 경상남도지사 선거포스터[6]

2010년 1월에 경남도지사 3선을 포기했으며, 이후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정운찬의 후임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되었으나, 아내의 관용차 사용을 비롯한 각종 논란과 구설수에 휘말려 중도 하차했다.# 이때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비는 내리고 어머니는 시집간다라는 말을 남겨 인구에 회자되었다.


2.1.4. 김해시 을 국회의원 시절[편집]


이로 인해 정치 인생에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였으나, 2011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 경상남도 김해시 을 지역구에 출마하여 제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기사회생했다. 당시 상대 후보는 국민참여당이봉수 후보였는데[7][8],후보 개인의 경쟁력이나 인지도는 김태호에 비해 떨어졌으나 야권 단일 후보로서 야권의 지원을 한몸에 받았고, 특히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거의 상주하면서 선거 운동을 하고 있었다. 사실상 김태호 대 유시민의 대결이었던 셈. 게다가 김해시 을 지역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봉하마을이 있는 곳으로, 친노의 성지와도 같은 곳이었으며, 그렇잖아도 이 지역에서 내리 재선을 했던 최철국 의원은 친노인사였다. 그런 상황에서 당선됐으니 상당한 힘을 받게 된 것.[9]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관이었던 민주통합당 김경수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제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문재인-안철수 단일화를 비판하며 "민주당이 국민을 홍어X으로 본다." 라는 비속어를 써서 논란이 되었다.

2014년 7월 새누리당 최고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원래 친이계였음에도 유승민을 비난했고, 신박으로 분류되었다. 당시 정병국[10], 조해진, 류성걸, 김희국과 같이 친이, 친유로 동시에 분류되는 인사들 외에도 이재오, 정두언, 주호영, 정의화[11] 등 친이계 중진들이 유승민 편을 든 것을 고려하면 신기할 따름이다. 아니 애초에 이 때는 사실상 유승민이 사실상 비박으로 돌아선 데다가 친이친박과 사이가 좋지 않음을 고려해도 대부분의 친이박근혜를 견제하기 위해 당시 유승민을 지지했다.

5년 후인 2020년 10월에서야 김태호의 이러한 행보의 이유가 밝혀지는데, 본인이 마포포럼 강연에서 반성조로 밝힌 바에 따르면 김무성, 유승민을 몰아내고 여권 대권주자의 선두를 차지하기 위한 속셈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둘과 모두 갈등을 빚는 모습이 언론에 비쳐졌다.


2.1.5. 제20대 총선 불출마[편집]


2015년 8월 3일,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일단 정계 은퇴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는데, 정치인으로는 충분히 야망을 펼칠 수 있는 50대 초반의 나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의중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평가. 일각에서는 대선 도전을 위한 준비라는 추측도 내놓는 중. 다만 불출마 선언 자체는 대권 행보라기보다 다음 총선에서 낙선할까봐 두려워서 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지역구인 김해시 을이 워낙 친노 성향이 강해서 야권에 웃어주는 곳이기도 하고, 중앙정치에 집중하느라 지역 현안에 소홀했다는 지역 내의 비판여론도 거셌기 때문이다.[12]


2.1.6. 제7회 경상남도지사 선거[편집]


이후 별다른 활동 없이 침묵을 지켜오다가,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경상남도지사 후보로 김경수 의원이 출마하면서, 2012년에 김경수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바 있는 김태호가 자유한국당의 경상남도지사 후보로 나서게 되었다. #, '홍준표 색깔 지우기'에 집중하며 선거운동을 했다.

개표 초반 김경수 후보에 5% 이상 앞서면서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으나, 인구가 많은 창원 성산, 김해 등 동경남 지역의 개표가 뒤늦게 진행되면서 김경수 후보의 득표율이 치고 올라와 결국 새벽시간대에 역전, 김경수 후보에게 약 10%p의 큰 차이로 패배, 이리하여 정치 커리어 처음으로 낙선을 하고 말았다. 그래도 지선에서 낙선한 다른 자유한국당 후보들 중에서는 그나마 타격이 덜한 편. 비록 몇몇 군데를 빼앗기긴 했지만[13] 그래도 서경남에서 승리를 거두면서[14] 나름 선전하였기 때문이다. 선거기간 내내 홍준표와 거리를 두며 상대적으로 지역 밀착형 선거전을 펼친 것도 그나마 타격이 덜한 요인. 물론 개표 초기 몇 시간 동안은 출구조사와 달리 본인이 상당히 앞섰기에 희망고문을 많이 당했을 걸로 보인다.


2.1.7. 제21대 총선[편집]


재선 경남지사, 험지인 김해에서 국회의원 재선 경력 등으로 자유한국당의 대선주자급 인물로 분류되기 때문에 중앙당에서는 차기 총선에 PK에서 판세를 이끌어주는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는 이야기가 있다. PK 험지로 분류되는 김해시 을 지역이나 창원시 성산구 혹은 부산광역시 북구·강서구 갑 등 파급효과가 큰 지역에 전략공천 이야기가 나오는데, 김태호 본인은 지난 지선에서도 선당후사의 정신을 보인만큼 이번 총선에는 험지 출마 의사가 없다고 한다.

결국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미래통합당의 텃밭이자 자신의 고향인 거창이 포함된 산청군·함양군·거창군·합천군 지역구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하였으나, 자유한국당 중앙당에서는 중진 험지 출마론을 내세워 대립했다. 2020년 3월 5일 홍준표와 함께 미래통합당 공천에서 컷오프당했고, 링크.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초반 여론조사에서는 현역 강석진[15] 후보에게 밀렸으나, 결국 강석진 후보를 꺾고 4년만에 원내 복귀에 성공했다.


2.1.8. 제21대 국회[편집]


21대 국회의원 임기를 시작한 후에, 7월 20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어 위기를 맞았으나 9월 25일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9월 17일, 국민의힘에 복당을 신청했지만 3개월 째 계류 중이다. 결국 연내 복당은 무산되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전봉민 의원이 편법 증여 및 부친의 기자 매수 시도 논란으로 탈당하고 다수 의원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할 상황에 처하는 등 개헌저지선이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홍준표, 윤상현 의원[16]과 함께 복당을 허용해야 한다는 당내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2020년 12월 22일, 본인 지역구의 숙원 민원인 거창 민간인 학살사건 등에 대한 배상법을 대표발의했다. 공문[17][18]

2021년 1월 7일, 국민의힘에 복당하였다. 6월 4일 국민의힘 비대위에서 강석진 위원장의 당협위원장직을 사퇴시키고, 김태호 의원을 조직위원장으로 임명하면서 차기 지방선거에서 공천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2021년 7월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였으나 33일 만인 8월 17일 대선 출마를 철회하였다. 이번 대선 출마 대신 차차기 대통령 선거 출마를 위해 차기 지방선거에서 다시 한번 경상남도지사에 도전할 수도 있다는 지역언론의 보도가 있다.#

2021년 10월 24일 심재철 전 국회부의장, 유정복 전 인천광역시장, 박진 의원과 함께 윤석열 대선캠프 공동선대위원장으로 합류하였다.

이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대신 주호영 원내대표 임기 이후의 차기 원내대표나 전당대회에서 당권에 도전할 것으로 보였지만 원내대표 선거와 전당대회 모두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2022년, 21대 국회 후반기 원구성에서 외교통일위원장이 되었다.

2023년 3월, 국민의힘 차기 원내대표 후보로 박대출, 윤재옥, 김학용과 함께 거론되었으나 외통위원장직에 집중하겠다는 말로 불출마 의사를 밝혔다.

3. 비판 및 논란[편집]



3.1. 비속어 사용 논란[편집]


새누리당 김태호 "국민이 홍어X이냐" 막말

제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문재인-안철수 단일화를 비판하며 "민주당이 국민을 홍어X으로 본다."라는 비속어를 써서 논란이 됐다.


3.2. 21대 국회 상임위원회 결석률 1위[편집]


2023년 10월 25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제21대 국회의원 상임위 출석률을 조사한 결과 김태호 의원이 26.5%로 결석률 1위에 올랐다고 밝혔다. 경실련은 결석률은 출장 등 특별한 사유 없이 상임위에 출석하지 않은 경우만을 대상으로 집계된 수치라고 했다. 경실련은 "김 의원은 본회의 출석률과 입법실적에 이어 상임위 출석률 하위 10위에도 올랐고 결석률은 가장 높았다"며 "매우 심각한 수준의 불성실 의정활동을 해 온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


4. 소속 정당[편집]


소속
기간
비고

[[통일민주당|
파일:통일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

1988 - 1990
정계 입문

[[민주자유당|
파일:민주자유당 글자.svg
]]

1990 - 1995
합당[19]

[[신한국당|
파일:신한국당 흰색 로고타입.svg
]]

1995 - 1997
당명 변경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svg

1997 - 2012
합당[20]

[[새누리당|
파일:새누리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12 - 2017
당명 변경

[[자유한국당|
파일:자유한국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17 - 2020
당명 변경

[[미래통합당|
파일:미래통합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20
합당[21]

[[무소속|
무소속
]]

2020 - 2021
탈당[22]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2021 - 현재
복당


5. 여담[편집]


  • 키가 186cm로 굉장히 크며 그가 1962년 생인 걸 고려하면 상당히 거인 수준이다.[23] 184cm인 정진석보다도 크며, 키가 168~9cm인 홍준표와 서 있을 때는 머리 하나가 더 있는 수준이다. 국민의힘 현직 최장신 의원인 187cm의 김웅에 이어 2위다.


  •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때 유세를 하면서 구순이 되신 아버지께서 고향에 내려와 일을 해야 보람이 있다고 말씀하셔서 왔다는 말과 함께, 본인 때문에 욕을 먹으셨다며 울기도 했다. # 아버지는 이듬해 돌아가셨다.

  • 아버지께서 생전에 차남에 대한 썰을 많이 푸셨다. # 그의 큰 체구에 대해서는 타고난 것 같다고 하셨다.

  • 역대 민선 경상남도지사들 중 유일하게 권한대행 체제를 거치지 않고 만기 퇴임한 지사다. [25] 근데 김태호는 정작 거창군수 임기 도중에 경남지사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사퇴했다는 것이 함정.

  • 2012년 18대 대선에서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과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사퇴한 안철수가 단일화 합의를 다소 늦게 하자 국민을 홍어X으로 아냐며 원색적인 비난을 하여 논란이 일었다.#[26]

  • 군수와 도지사를 모두 역임하고 국회의원에 당선된 단 둘뿐인 인물이다. 다른 한 사람이 후임 경남지사 김두관으로, 그도 도지사 당선 전 재선 군수를 했었다. 다만 국회의원 비서관을 거쳐 도의원 -> 군수 -> 도지사 -> 국회의원까지 역임한 인물은 전현직 정치인들을 통틀어봐도 유일하다. 즉 국회의원 비서관, 지방의원, 기초단체장, 광역단체장, 국회의원까지 역임해본 유일한 정치인으로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 2023년 명사초청 담담담에서 프로기사 이창호 9단과 수담을 나눴으며, 3점 접바둑에서 9집 차이로 패배하였다.[27]

6.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8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남 거창 2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1997~2004).svg

8,277 (55.74%)
당선 (1위)
초선
2002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남 거창군수
20,782 (57.14%)
초선[28]
2004
상반기 재보궐선거
(광역자치단체장)[29]
경상남도지사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svg

454,883 (61.60%)
초선[30]
2006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852,377 (63.12%)
재선
2011
상반기 재보궐선거
(국회의원)[31]
경남 김해 을
44,501 (51.01%)
초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새누리당|
파일:새누리당 흰색 로고타입.svg
]]

63,290 (52.11%)
재선
2018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남도지사

[[자유한국당|
파일:자유한국당 흰색 로고타입.svg
]]

765,809 (42.95%)
낙선 (2위)
[32]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

[[무소속|
무소속
]]

49,123 (42.59%)
당선 (1위)
3선[33]


  • 2018년에 패배하기 전까지는 도의원, 군수, 도지사, 국회의원 선거를 두루 거치면서 6전 6승을 기록했으니 선거의 왕이라고 불릴만 하다. 그것도 6번 모두 과반을 기록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 경남이 보수 후보가 유리한 곳이라고는 하지만 마지막에 국회의원을 역임했던 김해는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를 기점으로 민주당 강세지역이 되었고, 실제로 2018년 선거에서 패배할 때는 김해에서는 상대 후보인 김경수에게 몰표를 줬다.
  • 그리고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사상 처음으로 선거에서 패배를 맛보며 선거의 귀재라는 별명도 반납하게 되었다.[34]
  • 그나마 패배한 자유한국당 주자 중에서는 가장 선전한 편이지만, 최초로 민주당에게 경남지사를 헌납한 인물이라는 약간의 불명예[35]도 같이 얻게 되어 버린지라 국회의원은 할 수 있을지언정 당권이나 대권 같은 더 큰 정치행보에 나아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36] 물론 이때 판세가 워낙 보수가 궤멸하다시피 한 상황이긴 했다. 일단, 21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어 중앙 정치 생활은 이어나가고 있다.

7. 둘러보기[편집]



























[1] 음력 1962년 7월 22일[2] 상산 김씨 집성촌이다.[3] 제학공파 29세손 鎬(호) 항렬을 쓰고 있다.참조[4] 졸업 당시 3등이었다.[5] 김동영 사후, 공무원 출신으로 국회의원이 된 인물. 이후 내리 4선을 지냈다.[6] 당시 창원시장도 재보궐선거가 이뤄졌다. 결과는 한나라당 후보로 나온 두 사람의 압승이었다.[7] 민주당에서 전 국세청 차장 곽진업을 내세웠으나 후보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패했다. 사실 민주당에선 김경수에게 출마를 권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김경수는 유시민과의 관계를 생각해서인지 출마를 포기했다.[8] 이봉수는 1998년 제2대 지선(도의원), 2000년 제16대 총선(국회의원), 2006년 제4대 지선(김해시장)에 출마했으나 전부 낙선했다. 중간에 보은인사로 한국마사회 부회장과 대통령비서실 농업특보를 지낸 이력이 있다.[9] 반대로 유시민 대표의 대권 가도는 상당한 차질을 빚게 되었으며, 문재인 말고는 차기 대선에서 이길 사람이 없다는, 소위 '문재인 대망론'이 떠오르게 되었다. 유시민 뿐만 아니라, 이봉수도 완전히 잊혀져버렸고, 국민참여당은 별 수 없이 통합진보당으로의 합당 정국으로 빨려들어가게 되었다.[10] 조해진, 류성걸, 김희국과 달리 정병국친유로 분류되던 시기는 2016년 이후 바른정당 창당 시기이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친유보다는 보수계 소장파남원정 중 하나이자, 이명박 정부 시절의 장관 경력까지 더해지며 친이계로 분류되었다.[11]정의화 의장은 국회의장으로써 당시 무소속이었는데다 중립의 의무를 엄수해야 되는 상황에 처해있는지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12] 결국 20대 총선에서는 그를 대신해 천하장사로 유명한 이만기 인제대 교수가 새누리당 후보로 나섰으나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후보에게 더블스코어로 밀리며 낙선했다. 현역의원인 김태호의 지원을 업고도 더블 스코어로 패했다는 것은 그만큼 김태호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을 듯 하다.[13] 하동군, 진주시, 마산회원구, 고성군에서 김경수에게 졌다. 특히 고성군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기초단체장이 당선되었다. 다만 고성군은 요즘 들어서 시골 치고는 민주당 지지세가 높아져서 민주당을 보고 찍었기보다는 고향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백두현 후보의 인물론과 도지사 후보로 나선 김경수 밀어주기 정서에서 민주당 후보를 쭉 밀어준 것에 가깝다. 실제로 김경수의 출생지가 경남 고성군이기도 하고 말이다.[14] 물론 엄밀히 말해서 사실상 김태호의 텃밭합천군, 함양군, 거창군, 창녕군 등 일부 지역에서만 압승했다. 다른 지역들에서는 적어도 40% 이상 김경수 후보가 득표했다. 그리고 밀양시, 통영시, 사천시, 함안군에서도 이기기는 했지만 중간에 역전도 허용하는 등 찝찝하게 이겼다.[15] 민선 3~4기 거창군수 출신으로 김태호가 경남지사 출마를 위해 거창군수 직에서 사퇴하면서 궐석이 된 자리에 보궐선거로 당선된 바 있다. 이후 20대 총선에서 이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16] 21대 총선 당시 탈당했던 국민의힘 출신 당선자 중 복당이 허락된건 김태호 의원 이전에는 권성동 의원 뿐이었다.[17] 거창 민간인 학살사건 등에 대한 명예회복 관련 법안은 이미 있지만 배상에 관한 법이 없다고 한다. 사실 2004년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만들어질 뻔했지만 정부의 거부권 행사로 좌절됐다고.[18] 그러나 같은 해 발의돼 제정된 여순사건특별법과 달리 이 법안은 계류 중에 있고, 결국 유족들이 여순사건특별법을 대표발의했던 소병철에게 대신 이 법안을 발의해 달라고 의뢰하기에 이른다. # 이에 김태호는 산청군 태생인 상대 당 김병욱이 만든 해당 법안 개정안에 공동참여했다. $[19] 민주정의당, 신민주공화당과 신설 합당. 이른바 3당 합당.[20] 통합민주당과 신설 합당.[21]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과 신설 합당.[22] 공천 탈락에 대한 불복으로 탈당.[23] 1960년대생들의 평균 키는 168cm 정도에 불과했으며, 현재로 치면 190cm이 훨씬 넘는 것과 비슷하다.[24] 1cm씩이고 한마디로 장신즈/키다리즈이다.[25] 민선 1~3기 김혁규 지사는 17대 총선 출마 때문에 사퇴했고, 민선 5기 김두관 지사는 임기 2년 만인 2012년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참여를 위해 사퇴했다. 김두관의 후임인 민선 5~6기 홍준표 지사 역시 임기 도중 제19대 대통령 선거 자유한국당 후보로 선출되어 중도 사퇴한다. 김태호 본인과 선거에서 맞붙었던 민선 7기 김경수 지사는 드루킹 여론조작 사건에 연루되면서 대법원에서 징역 2년, 피선거권 상실 5년을 선고받아 지사직을 박탈당했다. 민선 8기 박완수 지사가 만기 퇴임하면 유일 기록이 깨진다.[26] 의외로 이 드립은 일베와는 별로 관련이 없는데, 자세한 내용은 여기 참조. 기성세대들도 꽤 쓰는 말이다. 해석하면 '국민 앞에서 장난치냐', '국민을 병X으로 아느냐' 등이다.[27] 한편 정우택 국회부의장은 이창호 9단의 스승 조훈현 9단과 3점 접바둑을 뒀는데 조 9단을 이겼다. 정우택 부의장과 조 9단은 둘 다 제20대 국회에서 같은 정당 소속으로 함께 의정을 한 적이 있다.[28] 2004.5.19: 사퇴(경남지사 선거 출마)[29] 전임자 김혁규 지사 사퇴[30] 역대 최연소 민선 광역자치단체장[31] 전임자 최철국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의원직 상실[32] 7번의 선거 중 첫 낙선[33] 2021.1.7 국민의힘 복당[34] 같은 당의 남경필경기도지사, 서병수부산광역시장, 김기현울산광역시장도 역시 김태호 前 경상남도지사와 똑같이 2018년에 패배하기 전까지는 역대 출마한 선거에서 전승을 기록했으나, 이번 선거로 네 사람 모두 선거 이력상 사상 첫 낙선이 기록되었다. 다만 정계은퇴를 한 남경필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원내에 복귀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즉 2018년 지방선거의 결과는 전국적으로 민주당 지지세가 너무 높아졌기에 발생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겠다.[35] 하지만 정작 김두관이야말로 가장 두고두고 까이고 있다. 민주당으로서는 어렵사리 최초로 경남지사직을 가져왔는데 김태호처럼 만기퇴임도 아니고 경선 단계에서 중도 사퇴를 했다가 낙선하고 빈자리에 홍준표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 당시 홍준표는 19대 총선에서 낙선하고 정계 은퇴까지 고려할 정도로 정치 생명에 위기를 맞은 상황이었는데 경남지사 경력 덕분에 정치적으로 재기하고 유력 대권주자로 성장했다. 즉 민주당 지지층 입장에서는 김두관이 경남지사직을 홍준표에게 헌납하고 그를 유력 대권주자로 키워준 격이니 김태호 이상으로 실책이 컸던 것이다.[36] 김두관 現 국회의원(양산시 을)이 5회 지방선거때 국무총리 후보자로 영전한 김태호를 대신해서 나온 이달곤 후보를 꺾고 당선된 적이 있긴 하지만, 당시 김두관은 무소속으로 출마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