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후/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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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출생 및 가족
2.1. 서울 전학에 관련된 이야기
3. 친한 동료들과 사람들
4. 외모
5. 성격 및 취향
6. 야구
6.3. KBO를 대표하는 전국구 스타
7. 기부 및 선행 활동
8. 기타 이야깃거리



1. 개요[편집]


이정후의 여담 및 기타 사항 내역을 정리한 문서.


2. 출생 및 가족[편집]





  • 출생지가 대한민국이 아닌 일본이다. 아버지인 이종범이 일본프로야구주니치 드래곤즈에서 활동 중인 1998년에 태어났는데 주니치 드래곤즈의 연고지가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에 있기 때문이다. # 이정후 본인이 자신의 고향은 일본이라고 밝혔다.[1] 이 인터뷰로 지역감정을 들먹이는 무리들이 있는데, 이정후 본인은 오히려 지역감정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한다. 굳이 일본을 고향으로 지목한 것은 그런 의도가 있다. 어쨌든 이정후 본인은 개의치 않고 인터뷰에서 광주는 아버지의 고향이고 내 고향은 일본이다” 라고 못박는 편이다. 이런 인터뷰와 예전 싸이월드 글 때문에 기아광주를 싫어한다고 몰고 가는 팬도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본인도 부정한 바 있으니 괜히 오해할 필요는 없다.

  • 덧붙이자면, 보통 운동선수들이 고향을 이야기할 때는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한 곳, 흔히 엘리트 체육인의 경우 초등학교 때 운동을 시작하므로 초등학교가 위치한 곳을 고향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정후는 야구를 시작한 광주가 아닌 굳이 출생지이고, 3년 전후로 지내서 기억도 가물가물할 일본 나고야시를 고향으로 들고 있다. 매우 특이한 케이스인데, 명백히 본인은 특정 지방과 관계없다고 공식적으로 선을 긋는 의도가 담겨 있는 무브먼트. 그러나 본인이 기아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도의 인터뷰도 했던 만큼, 특정 지방이 싫어서라기보다는 특정 지역 팀의 레전드의 아들로서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지역감정에 휘말리는 것을 싫어하기에 굳이 대외적으로는 일본을 고향으로 내세우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유명인의 아들로서 고충이 많았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임과 동시에 유명인으로서 현명한 처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일본 나고야에서도 이정후에게 많은 주목을 하고 있었고, 실제로 나고야의 주니치 드래곤즈에서도 영입 제의를 했었다고 한다.

  • 원래 이름은 광현이였던 것이 아니냐는 추측들이 있었다. 경향신문 1998년 8월 24일 기사 참고 단, 광현이라는 이름이 단순히 태명인지 아니면 출생신고 때 정식으로 올렸다가 개명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의 여동생 이름인 이가현에서 알 수 있듯이 현자 돌림인 것을 보아서는 개명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다. 또한 함평 이씨 29대 ‘載’(재) 항렬이지만 항렬자를 쓰지 않았다. ???: 광현이 어때서!! 하지만 아기 시절에서부터 정후라고 방송에서 노출된 것으로 볼 때는 사실무근일수도 있겠다.

  • 아버지 이종범이 일본프로야구에서 뛴 바람에 어린 시절엔 공항에서 찍은 사진이 많다.

[ 어린 시절 공항에서의 사진 보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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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신생아 시절 김포공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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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김포공항에서
2000년 3살 시절 김포공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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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6월 20일 4살 시절 김포공항에서


  • 이종범의 아들이라 자신이 편하게 살았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테지만 그 때문에 친구들에게 양보해야 했던 것도 많았고, 어릴 때부터 눈치를 많이 봤었다고 한다. 심지어, 친구랑 같이 행동한 것에서도 혼자 혼이 났었다고 한다. 링크 게다가, 유명인의 아들이란 이유로 겪어야 했던 초등학생 시절의 일화를 털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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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가 유명인이라 자연스레 어린 시절부터 언론에 노출이 많이 되었는데 아버지를 따라 TV에 출연했던 적이 종종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 2008년 11월 28일 식신원정대 광주편과, 2009년 12월 13일 2009 한국시리즈 우승팀인 KIA 타이거즈 야구단 특집으로 꾸며진 출발 드림팀 시즌2에 출연했었다. #1 #2

  • 대부분 스포츠인 자녀들이 그러하듯 이정후도 어린 시절 아버지가 훈련과 원정 경기로 1년 중 절반은 집을 비우는 직업 특성상 어린 시절에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시상식에서나 인터뷰 등에서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추억을 만들어준 어머니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자주 표현한다. #1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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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4살 시절

  • 가족들과 반려견 2013년생 포메 ‘까오’를 키우고 있다. 이정후가 중3 때부터 키우기 시작한 반려견으로, 까오가 처음 집에 왔을때는 매우 까맣게 생겼었다고. 처음에는 사람이 오는데도 쳐다보지도 않아 어린 마음에 “가오 잡고 있네” 이런 생각이 들어 ‘까오’란 이름을 그렇게 짓게 되었다고 한다. 여동생이 SNS와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여 까오의 일상을 공개하고 있다. 2019년 9월 추석을 앞두고 한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까오가 건강하게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말하기도 했다. # 2019년 12월 11일, 절친한 동료선수 고우석, 강백호와 은퇴 특수견을 위한 기금마련 행사에 까오와 함께 참석했다. 관련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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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까오

  • 현재 집안(가족)에서 서열 1위로, 아버지 이종범은 서열 3위로 밀려났다고 한다.

  • 2017년엔 아버지에게 쓴소리를 들었다. # 2017 시즌에 1군 주전으로 활약하기 시작한 이후 풀타임으로 활약하는데 체력관리와 회복이 중요하다며 잘 먹고 수면을 충분히 취하라는 조언을 자주 한다고.

  • 5.18 민주화운동 민주유공자 자손일 가능성이 있다. 친할아버지 이계화, 즉 이종범의 아버지가 2021년 별세한 당시 기사에서 장지가 망월묘지공원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과거 신군부에 희생당한 희생자들을 모셔놓는 곳이기 때문에, 할아버지가 민주 유공자일 가능성이 있다. # 다만, 세간에 알려진 바와 다르게 망월묘지는 5.18 민주유공자 묘역 외에도 일반시립묘역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며 민주유공자 신묘역이 조성된 후에 사망한 유공자는 신묘역에 안치되기에 일반 묘역에 안치된 것이 아닌지 사실확인이 필요해 보인다.

  • 2022년 10월 10일, 절친인 LG 트윈스 투수 고우석이 동생 이가현 씨와 전격 결혼 발표를 하게 되면서 절친 사이를 넘어선 한 가족이 될 예정이다. 결혼식 예정일은 2023년 1월 6일로 이로써 동생이 오빠보다 더 먼저 결혼하게 됐다. #1 #2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정후와 고우석은 청소년 국가대표팀 시절부터 서로 친했는데 고우석이 이정후의 집에 자주 드나들면서 이정후의 여동생과 자주 만나게 됐고 평소에 알고 지내던 사이에서 연인으로 발전하면서 결실을 맺게 되었다고 한다. 즉 고우석과는 친구이자 처남-매제 관계가 된다. #1 #2

  • 2023년 3월, 반려견 까오의 동생 루아가 처음 공개됐다. #

  • 나중에 결혼해서 아들을 낳으면 무조건 야구를 시킬 것이며 타자를 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한다. 2023년 7월 플레이어 유니폼 컨셉 회의를 하던 도중 "내가 아빠의 기록을 깼기 때문에 아들이 내 기록을 깨주길 바란다" 고 말한 것이 그 증거. 참고로 한국야구 사상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이 나란히 야구를 해서 이름을 날린 경우는 흔치 않다.[2]

  •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끝난 후, 여동생이 인스타로 임신 소식을 밝히면서 곧 외삼촌이 될 예정이다. 11월 22일 여동생이 고우석 선수의 아들을 출산하면서 외삼촌이 되었다. SNS에 아빠랑 똑같다고 하면서 벌써부터 "삼촌이 다 사줄테니 타자하자"며 권유하는 모습을 보였다. #1 #2

2.1. 서울 전학에 관련된 이야기[편집]


  • 선동열이 이종범을 강제 은퇴시켜 이종범 일가가 서울로 이사하지 않았으면 이정후가 기아에 입단할 수도 있었다는 의견이 일부 기아팬들 사이에서 나온 적도 있다. 그러나 이종범이 은퇴한 2012년 이종범은 만 42세였고 이정후는 겨우 중학교 2학년이었다. 아무리 이종범의 은퇴가 늦어졌어도 이정후가 고등학교 때는[3] 은퇴를 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이사의 결정적인 원인은 딸의 교육 문제였기 때문에 이 의견은 딱히 설득력이 없다. 그런데 아직도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먹히는데, 해태 왕조 공신이자 동료이던 이종범을 친정팀에 감독으로 돌아온 선동열이 은퇴를 종용한 것과 기대이하의 성적 등이 겹친 선동열에 대한 괘씸죄와 이정후에 대한 타이거즈 팬덤의 미련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로 보인다.

[ 무등 야구장에서의 사진 보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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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올스타전에서
2009년 기아 타이거즈가 정규시즌 우승했을 때


2012년 5월 26일 무등 야구장에서 열린 아버지 은퇴식에서


  • 프로 입단 초기 타팀 기아 레전드 선수였던 아버지 이종범에 대한 애정 때문인지 아들 이정후에 대한 과한 애정과 관심이 일부 기아 팬들에게서 표출되고 있다. 기아에 이종범이 가지는 의미가 워낙 크다보니 넥센에서 데뷔한 선수지만 야구를 잘해 탐나기도 하도 이종범의 아들이니 혹시 기아로 와주지 않을까 기대하는 기아팬들이 있다. 설상가상 기아팬들 사이에서도 올스타 투표 때 이적해와서 잘하는 이명기를 거르고 이정후에게 투표하는 사람들이 도마에 오른 바 있다. [4]


사실 제가 KIA 구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팬들이 궁금해하실 것 같아요. 그런데 진짜 아무 생각이 없어요. 어릴 때 저는 KIA 팬이었고, 야구장에 가거나 텔레비전으로 KIA 경기를 봤어요. 광주에서 야구를 시작했고, KIA를 좋아했던 소년으로서 제 꿈은 KIA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 뛰고 싶다는 마음이었죠. 그런데 아버지가 KIA에서 은퇴하고 서울로 이사를 왔어요. 아버지 은퇴 때는 사실 KIA 구단이 미웠죠. 어떻게 보면 아버지가 직장을 잃은 건데, 어느 자식이 그 직장을 좋아할 수 있겠어요. 하지만 어린 시절 한 때 했던 생각이에요.

제가 커서 프로 선수가 되고 보니 은퇴를 권유한 구단(KIA)과 섭섭해하는 선수(아버지), 둘 모두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 KIA에 대해서는 아무런 감정도 없습니다.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한 적도 처음이에요. 오히려 KIA 팬들께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어릴 때부터 '레전드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이 응원해 주셨어요. 야구장에 놀러 가면 치킨, 아이스크림도 사주신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광주에 경기하러 가면 좋아해 주시는 팬들이 많아요. 너무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2021년 12월 22일자 KBS 9 스포츠 中 (인터뷰)[5]



3. 친한 동료들과 사람들[편집]


  • 다른 팀 선수들하고도 굉장히 친한 편이다. 사회성과 친화력이 매우 좋아 보인다. 특히, 한화 이글스김성훈과는 같은 야구인 2세인지라, 공감대도 많았다고 한다. 아버지보다도 유명해지자며 약속을 했다고 한다. 김성훈이 21세로 요절하자, 인스타그램에 장문의 추모글을 올렸다. # 그리고, 발인식까지 자리를 지키며 마지막을 함께 했다.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도 수상소감에 김성훈을 언급했다. 관련 영상 이후에도 매년 김성훈의 기일마다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김성훈의 사진을 꼭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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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성훈 선수에 대한 추모글

  • 1998년생 동기인[6] 축구선수 이승우와 친구 사이다.[7] 다만 오래 전부터 친한 것은 아니고 둘 다 프로 선수 생활을 하면서 친해졌다고 한다.[8]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 게임에는 서로 같은 등번호(17번)를 달고 경기를 뛰었는데 이정후가 이승우에게 17번을 같이 달고 뛰자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 SBS 해설위원으로 발탁된 이승우와 약속으로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SBS 축구 시청 인증을 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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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생 친구들

  • 10살 차이가 나는 기아 타이거즈의 양현종과는 보통은 어려운 선후배 사이여야 맞겠지만 이정후가 워낙 어린 시절부터 야구장에서 봐왔으며 [9] 그저 잘 챙겨 주는 동네 형 같은 느낌이라[10] 양현종을 상대할때는 다소 편안해지는 것 같다고 한다.[11] 관련 영상 양현종은 어린 시절부터 본 꼬마 정후가 상대팀 주전 선수로 출전해서 자신과 맞대결하는 자체가 신기하고 대견하다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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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살 차이가 나는 잘 챙겨 주는 동네 형

  • 2017년 11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APBC)을 기점으로 구자욱, 김하성, 박민우 등과 두터운 친분을 쌓게 되었다.[12] 어린 선수들 위주라고 해도 당시 막내였던 탓에 어려움도 있었을 듯한데 본인 자체도 워낙에 붙임성도 좋고 서글서글한 성격인 탓에 모든 형들이 살뜰히 챙겨주며 너무 잘 해줬다고 한다. 특히 박민우는 이정후에게 “너 나이 때에는 다 얻어먹는 거야. 나중에 후배들 사줘.”라며 돈을 못쓰게 했다고 한다. 관련 기사 그 영향인지 후배들과의 만나는 자리에서는 절대 동생들 지갑을 못 열게 한다는 후담들을 들을 수 있다. 이에 한 살 동생이자 절친한 후배인 강백호는 이정후와 같이 출연한 방송에서 다시는 못 사주게 많이 먹겠다면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관련 영상

  • NC 다이노스 선수이자 이정후의 고등학교 선배 박민우는 자기가 여자면 이정후에게 대시했다는 발언을 했다가 이후 비시즌 때 이정후와의 동반 인터뷰에서 상황에 대해 해명했다.

  • 인스타그램에서 강백호와 디스전을 펼치기도 했다.[13] # 여담으로 강백호와는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절친한 사이인데, 강백호는 2020년 10월 5일 소속 구단 공식 유튜브 채널 ‘위즈티비’에서 고등학교 시절 미국 진출 기회가 있었지만 이정후의 초대로 고척돔에서 경기를 관람한 뒤 팬들이 이정후를 열정적으로 응원해주고 또 거기서 멋진 플레이를 보여주는 모습이 너무나도 멋있어서 자신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이후 처음으로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였다고 한다. 관련 영상 자신보다 먼저 우승반지를 끼게 된 강백호에 진심어린 축하를 전하기도 했다.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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左백호 右정후

  • SK 와이번스로 트레이드된 고종욱과는 입단 초때부터 2년 동안 원정 룸메이트로 함께 지낸 사이다. 고종욱은 당시 갓 입단한 이정후에게 “어린 선수들이 널 롤모델로 삼을 수 있다. 항상 프로답게 행동하라”고 강조했고, 그래서 이정후는 “아마추어 선수였던 나에게 ‘프로 마인드’를 심어준 정말 고마운 은인”으로 생각한다. # 그래서인지 고종욱의 이적 소식을 접했을때 너무 슬펐다고 한다. 이후 네이버 라디오볼에서 진행한 전화 인터뷰에서는 고종욱 선수에게 음성 편지를 남기며 눈물을 보이며 울먹거린 게 화제가 됐었다. 관련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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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형 김하성

  • 같은 팀 내에서는 박병호, 김하성과 끈끈한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당시 말에 따르면, 김하성[14]이 박병호의 오른팔, 이정후는 왼팔을 맡고 있다고 언급했는데, 한 방송에 출연한 김하성이 이를 말하자 듣고 있던 장성호는 대단한 선수를 양옆에 두고 있다며 박병호를 아주 부러워했다. 2021 시즌을 앞두고 김하성의 미국행이 결정났을 때 이정후는 자신의 SNS를 통해 “저한테 7번은 한 명이었는데 2명[15]으로 늘어났어요. 4년간 많은 걸 배우고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침마다 응원할게요”라는 애틋한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 김하성 또한 “정후는 아끼는 후배이고 동생이다. 밖에서도 자주 본다. 대단한 아이라고 생각한다. 분명히 아버지의 그늘에 가려질 수 있었는데 잘 해왔다.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고맙다”라고 답하며 훈훈함을 자아냈다. # 2021시즌 종료 후 박병호가 FA를 통해 kt wiz로 이적하는 충격적인 상황이 벌어지자 이정후 본인도 멘탈이 제대로 나갔는지[16] 본인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박병호 사진을 연달아 올리며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17] 이후 어느 정도 마음을 다잡았는지 인스타스토리에 박병호의 이적을 축하하는 글을 올렸다.

  • 같은 팀 소속 김혜성과 굉장한 절친이다. 실제 이정후는 98년생, 김혜성은 99년생으로 호적 상으로는 이정후가 한 살 많지만 김혜성이 빠른99인 데다가 이정후와 17드래프트 입단동기라서 실제로는 98년생들과 친구이다. 고등학교 시절 함께 청소년 대표팀에서 뛰기도 했고 키움의 황금 라인인 17드래프트의 주인공. 각종 인터뷰나 구단 유투브를 보면 경기 중에나 밖에서나 서로에게 말을 매우 예쁘게 한다. 서로를 칭찬 감옥에 가두는 스타일인 듯. 보는 팬들의 당연히 엄마미소. 아무래도 둘 다 젊은 나이에 팀의 간판 스타가 되다 보니 서로 많이 의지하는 듯 보인다. 김혜성과 이정후의 조합을 부르는 팬들의 애칭은 '혜후'.

  • 허재 차남인 농구선수 허훈과도 꽤 친분이 있다. 일명 언론이 맺어준 절친으로 불리우는데 무려 세 차례나 같이 인터뷰를 했다. 2018년 당시 새해 기념 인터뷰 전까지는 일면식이 전혀 없었지만 둘 다 붙임성이 좋아 인터뷰를 하면서 조금은 친밀해졌다고 한다. 나이는 다르지만 스포츠인 2세라는 공통점으로 똘똘 뭉치게 된 모양이다. #1 #2


4. 외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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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 시점 미남 야구 선수의 대표주자로 삼성의 구자욱과 함께 가장 먼저 언급될 정도로 잘생겼다는 평가를 받는다.[18] 대개 야구계에서 잘생겼다고 하는 것은 야구를 잘 해서 잘 생겨 보이는 효과와 그냥 태어날 때부터 잘생김을 타고난 것이라는 두 가지인데 이정후의 경우는 둘 다 해당되는 케이스다. 외모가 상당한 아버지[19]와 어머니를 닮아서 그런 걸로 보인다.[20] 나이가 한 두살 먹으면서 아버지 얼굴이 점점 나오고 있다는 반응들도 나오는 중이다.

[ 광주서석초·무등중학교 야구부 시절 사진 보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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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서석초 야구부시절 한준수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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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무등중 야구부시절


  • 어릴때 아버지와 함께 간간이 매스컴을 탔었는데 어린 나이인데도 뚜렷한 이목구비가 눈에 띌 정도. 이때부터도 눈썹이 매우 짙다.(상단 사진 참고 바람)



중계 카메라에 찍힌 더그아웃에서 모습

  • 데뷔시즌부터 터지고 연일 화제에 오르면서 자연스레 외모도 대한 언급들도 많다. 가수 민경훈펜트하우스주석훈 역으로 출연했던 김영대과 닮았다는 평가가 많으며. 이미 충만한 스타성에 방점을 찍는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아이돌 대포캠 사진이 돌고 있을 정도이다. 진한게 생긴 탓에 중화권 배우 유덕화와 닮았다는 소리 또한 듣고 있는데 어린 나이탓인지 유덕화를 모르는 게 함정이다. 민경훈과는 최근 아는 형님 출연으로 드디어 첫 만남을 이뤘다.[21]


  • 2018년 1월 새해기념 연탄 나눔 봉사활동[22]에서 최강창민과 찍은 사진이 인터넷상에 공개되었고, 탑아이돌한테도 뒤지지 않은 외모로 화제가 되었다.[23] 한류스타와 사진을 찍은 영향에선지 이 사진으로 입덕한 해외팬들도 꽤 생겼다는 썰이 있다.

  • 외모에서 단점을 굳이 꼽자면 좁은 이마지만[24] 그냥 얼굴이 다 커버해준다. 매력포인트로는 코위 점.




  • 2020년 1월 결혼식을 앞두고 웨딩 화보를 촬영한 이영하의 신랑측 들러리로 강백호, 박치국 등과 참여했는데, 잘난 얼굴탓에 본인 화보집이 아니냐는 반응들을 얻으면서 의문의 민폐남이 되었다. 사진 보기

와 방금 프로필 사진은 굉장히 잘 나왔네요. 원래 미남이긴 합니다만, 야구모자 쓰고 저정도로 잘 나오기 쉽지 않은데...

고척 삼성 전 中 (24분 50초) 관련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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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스포츠 중계 도중 VTR 화면

  • 2020년 8월 30일, 경기 중계 중이던 캐스터 정우영은 이정후 타석에 VTR 화면에 뜬 프로필 사진을 보더니 갑작스레 얼굴을 칭찬하는 멘트를 쳤다.

  • 2021년 11월 8일, 심수창은 한 야구 관련 콘텐츠에서 현역 KBO 최고의 꽃미남 1위로 이정후를 꼽았다. [25] 이후 심수창 채널에서 ‘KBO 선수들이 뽑은 잘생긴 야구선수 이상형 월드컵’ 결승에 올랐다.[26]

  • 아는 형님에 아버지와 함께 출연했을 때 “아버지보다 본인이 나은 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라는 질문에 외모와 기럭지라고 대답했다.


5. 성격 및 취향[편집]


  • 초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축구를 했었다고 한다. 포지션은 공격수로 학교 대항전에도 나간적이 있다. 링크쇼트트랙도 했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골프 등 다양한 종목을 했었다고 한다.[27] 그 중 축구가 가장 재미있었지만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야구였다고 한다. 관련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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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년 6월 24일, 구단 공식 유튜브에 이정후의 MBTI 검사 결과 영상이 올라왔다.[28] 검사 결과는 ISFP-A가 나왔다. 그러나 지금은 ISTJ로 결과가 바뀌었다.

  • 영화보는 걸 좋아한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범인을 잡는 추리 스릴러 장르가 취향이다.

  • 남에게 민폐 끼치는 걸 가장 싫어한다. 이로 인해 남들한테는 사소한 실책이라도 저지르지 않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한다.

  • 자신이 스스로 멋있어 보일 때가 언제냐는 질문에 아침에 일어났을 때라고 답했다. 이유는 순수한 잠에서 깨어난 내 모습 때문이라고 한다.

  • 야구관련 콘텐츠 인터뷰에선 꽤 출연을 한 것에 반해 예능 방송엔 전혀 출연한적이 없었는데, 야구를 잘하면 주목 받을 수 밖에 없지만 평소 관심 받는걸 안좋아해서 방송 출연 제의가 와도 거절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 모습이 모순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엔 해야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였다고 하면서 그 이유로 요즘은 스포츠 선수들이 방송에 많이 나오는 추세지만 축구선수나 농구선수들에 비해 야구 쪽은 그런 점에 조금 보수적인 것 같아 야구를 조금이라도 더 알리고 싶은 취지로서 출연을 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실제로 2021시즌이 끝난 직후 아는 형님, 유 퀴즈 온 더 블럭를 비롯해 상당히 많은 예능에 출연했다. 아버지인 이종범의 인지도가 상당히 높아서인지 대부분 부자가 같이 출연하고 있다.

  • 아버지가 야구하는 것을 반대해서 야구 대신 축구, 골프, 쇼트트랙 등의 운동을 해봤다고 한다.

  • 민초단이다. 관련 영상 파인트 사이즈를 시키면 민트초코만 담기도 한다고 한다. 반면 김혜성 선수는 민트초코맛을 싫어한다고 한다.



  • 어머니 정연희 씨에 의하면 외식 보다는 집밥을 선호한다고 하며, 집반찬 중에서도 돼지 등갈비찜과 멸치볶음을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1 #2


6. 야구[편집]


  • 초등학생 시절부터 네이버를 검색하면 야구선수로 인물 정보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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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등학교 3년간 좋은 성적을 낸 비결로는 시합 전날 반드시 스윙 200개를 거르지 않았다고 한다. 하루라도 빼먹으면 시합을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 심리적인 기분 때문에 매일 하게 되었다고 한다. #

  • 야구를 시작한 뒤 대표적인 롤모델로 삼은 선수는 스즈키 이치로이다. 등번호를 입단 첫해 41번에서 2년차 때 51번으로 바꾼 것도 이치로 때문으로[29] 2019년 3월 20~21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시애틀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메이저리그 개막 2연전을 마친 뒤 29년 만에 공식 은퇴를 선언한 이치로의 은퇴 소식에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도 “Adieu 51”이라는 글귀와 함께 이치로의 사진을 게재했다. 그 외에도 정확도와 파워를 겸비한 타달선생으로 불리우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야나기타 유키오릭스 버팔로스요시다 마사타카를 롤모델로 삼고 있다.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선 가장 만나보고 싶어했던 선수로 야나기타를 꼽기도 했었다. # 올림픽 직후엔 요시다와 인스타 맞팔 한데 이어, 2022시즌 도중 야나기타와 맞팔로 진정한 야구인 성덕에 등극했다.

초등학교 3학년 나이에 야구를 처음 시작할 때, 아버지(이종범 LG 코치)가 ‘왼손타자가 되라’는 조언을 해주셨다. 야구 시작한 뒤 처음 접한 타격영상이 이치로의 영상이었다. 자연스럽게 제 롤모델이 됐고, 매일 이치로 타격영상을 보며 연습했다.

국적을 떠나서 이치로 선수가 야구를 대하는 태도라든지, 경기를 준비하는 자세를 봤을 때 정말 배울 점이 많은 선수라고 생각했다. 지금껏 야구하면서 늘 이치로를 롤모델로 삼았다. 올해 미국 캠프에서 같은 훈련장(피오리아 스포츠 컴플렉스)을 사용했다. 멀리서 걸어오는 모습을 봤는데, 다른 선수들과는 아우라가 다르더라.

제가 아직 어리지만, 언젠가 나중에 은퇴하게 된다면 이치로 선수처럼 멋있게 은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선수들의 은퇴 소식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야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동경하던 선수였다. 롤모델의 은퇴는 뭔가 헛헛한 느낌이었다.

스즈키 이치로의 은퇴에 대한 인터뷰 中[30]


  • 스윙 폼과 궤적이 정말 이쁘다. 오죽하면 SBS Sports에선 그림으로 만들었을 정도다. 사진 보기

  • 2018년이 겨우 입단 2년차 되는 해이지만 팀에 대한 대단한 애정표현으로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인터뷰마다 팀에 대한 자랑 멘트는 물론이고 해외진출을 하지 않는다면 원팀맨으로 남고 싶다고 한다던지, 2018 플레이오프에서는 부상으로 인해 경기에 출전할 수 없으니 그냥 집에서 쉬라고 구단에서 권유했지만 끝끝내 경기장에 나와서 카메라 부스에서라도 끝까지 팀과 함께했었다.[31]

  • 2019시즌 페넌 트레이스 종료 시점 기준으로 퓨처스 리그를 통산 단 3경기를 출장했다. 그것도 프로 2년차인 2018년에 뛰었다. 아시안 게임 병역 특례로 상무에서 활약할 일이 없어졌으므로,[32] 앞으로 기량이 쇠퇴하거나 부상 이후 컨디션 점검 차원이 아니라면 퓨처스 리그에서 보기 힘들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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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야구의 차세대 선두주자

  • 더그아웃 매거진 100호 표지 ‘각 구단의 향후 10년을 책임질 라인업’[33]에서 센터를 차지했다.

  • 롯데 자이언츠에게 매우 약하다. 상대타율 3할을 넘긴 시즌은 2019 시즌 뿐이고, 특히 롯데의 외국인 투수들은 거의 이정후 킬러급 면모를 보이는데 브룩스 레일리에게 17타수 무안타로 호구잡혔으며, 지금은 레일리의 이름을 이어받은 댄 스트레일리 상대로 무안타로 호구잡히고 있다. 22시즌에는 좌승사자 찰리 반즈에게도 호구잡혔다. 또한 김원중 상대로도 매우 부진하는 중이다. 최근 인터뷰에서 말하길 당시에 브룩스 레일리를 꼭 극복하고 싶었다고 한다. 반대로 삼성 라이온즈에게 극강한데, 혼자서 박병호 모드로 각성하며[34] 팀을 이끈다. 따라서 삼성팬들은 이정후가 타석에 들어서면 질겁한다고.. 하지만 2021시즌에선 롯데 상대로 무려 타율이 0.526을 기록하는 등 만나기조차 싫은 新악마로 등극했다. 22시즌은 .338을 기록했는데, 앞서 말한 반즈에게 호구잡힌게 크다. 허나 반대로 KIA 타이거즈에는 처음으로 0.140의 낮은 타율로 용서모드를 보이기도 했다. 반대로 삼성 라이온즈 상대로는 원체 강한데, 공수주에서 마이크 트라웃을 그대로 데려다 놓은것마냥 초극강이다.

  • 어린 나이에 주전에 들어서서 좋은 컨택을 보여줘서 그런지 통산 안타 수가 매우 많다. 2시즌이나 더 뛴 구자욱보다 안타 수가 170개 모자랄 뿐이며, 비슷한 타율을 기록하는 박민우보다는 3시즌을 덜 뛰었는데 안타 수는 300개 차이에 육박한다. [35] 현재로서는 박용택의 안타 기록을 깨고 3,000안타를 달성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선수이다.

  • 소프트뱅크 코치 카운셀러로 일하고 있는 김성근에 따르면 일본에서도 인기가 많다고 한다. 아버지가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뛰기도 했고 2019 WBSC 프리미어 12에서의 일시적인 인기로 보였으나 2021년 기사를 보면 여전히 관심이 있는 모양.[36] 또한 요미우리 자이언츠 1군 타격코치로 일하고 있는 김기태 역시도 현재 일본의 최고 투수로 손꼽히는 야마모토 요시노부를 상대로 올림픽에서 맞대결을 펼쳐 시원하게 공략해 낸[37] 이정후에 대해 일본 구단들이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뛰어난 타격 능력에 이상적인 타격 궤도와 군더더기 없는 짧은 스윙을 갖추고 있어 일본 투수들의 떨어지는 변화구도 충분히 대응과 공략이 가능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아버지도 이정후의 스타일이 일본 야구에 맞다고 했지만 본인은 여전히 메이저 리그를 꿈꾼다고 했으니 일본 팬들의 이정후가 일본프로야구에서 뛰는 염원은 이루어지지 않거나 메이저 리그를 경험하고 먼 훗날에 이루어질 듯하다. 애초 일본은 미국 진출시 추산되는 이정후의 몸값을 감당할 여력도 없으며 MLB행은 돈과 별개로 무대자체의 꿈과 의미를 두는 선수들도 있기에 손해를 감수하고 도전하는 케이스들도 많으나 일본행은 한국 내 FA규모가 커짐에 따라 그보다 훨씬 많은 돈을 보장받지 않는 한 사실상 대부분의 선수들 사이에선 메리트가 사라진지 오래기에 어쩌면 당연한 선택일수밖에 없다.

  • 원로 야구인 김인식은 이정후에 대해 “스즈키 이치로의 스타일과 가장 비슷한 선수가 이정후다. 주루와 수비, 콘택트 능력까지 모두 준수하다. 나이가 어리다는 걸 고려하면 성장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고 극찬했다. 관련 영상

  • 2021년 4월, KBO 리그 ‘황금세대’로 불린 야구 선배들이 한국 야구의 미래를 짊어질 재목을 꼽아달라는 물음에 가장 기대하는 선수로 뽑혔다.[38]

  • 2021년 12월, 나누리병원 일구상 시상식에서 특별공로상을 수상한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안우준 기록원은 수상 소감 중에 어린 시절 이정후에 대해 “이정후 선수를 초등학교 시절부터 봐왔다. 정말 야구를 예쁘게 잘했다. 원래 초등학교 야구는 기록 집계를 잘 안 했는데, 이정후 때문에 초등학교 기록까지 통계를 내고 집계를 하게 됐다.”라고 과거 에피소드를 언급하며 연신 칭찬했다. #

  • 2021년까지 리그를 대표하는 좌타 교타자 중 한 명이지만 최다안타 타이틀을 따지 못했었는데... 마침내 2022시즌 5관왕을 달성하며 최다안타 타이틀 수상에 성공했다! 2022시즌 이전에는, 2019 시즌, 역대 외국인 타자 단일 시즌 최다안타 기록을 새로이 쓰신 이 분에게 밀려 단 4개 차이로 최다안타 2위에 머물며 아깝게 실패한 바 있다.[39]

  • 2022시즌 기준으로 단 여섯 시즌만 뛴 어린 나이임에도 입단 첫 해부터 팀 주전을 꿰차 거침없는 성장을 이어가면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려는 모든 신인들에게 우상과도 같은 존재로 떠올랐다. 이때문에 이정후를 롤모델로 삼거나 타격폼을 따라하는 중고교 유망주들이나 야구인 2세, 아마추어, 현역 프로선수들이 아주 많다.
    • 대표적으로는 이병규의 장남 이승민(2005)[40], 김기태의 장남 김건형, 심정수의 장남 심종원 등이 있다. #1 #2 또한, 심우준, 양찬열, 나승엽, 유준규, 김현준 등이 언급했다. #1 #2 최근 제2의 이종범으로 불리우고 있는 김도영 외에도 2023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지명 김민석, 김건희 또한 이정후를 롤모델로 꼽았다. #1 #2 #3 #4

  • 선배 나성범은 이정후처럼 ‘나만의 스트라이크존’을 확실히 설정하고, 그 공에 확실히 힘을 싣는 타격을 하고 싶다며, 이정후의 선구안을 배우고 싶다고 언급했다. #1 #2

  • 2022년 9월, 한 인터뷰에서 2023 KBO 신인 드래프트로 유소년 시절부터 꿈 꿔 온 1차 목표를 이룬 110명의 후배 신인들을 향한 조언을 부탁하는 기자 요청에 축하 인사를 건네며 선배로서 당부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내가 프로야구 선수가 되기까지 주위의 도움이 있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프로야구 선수는 혼자만의 힘으로 되는 게 아니다. 부모님의 헌신과 뒷바라지, 학창시절 감독님과 코치님들의 지도, 자신의 프로 행을 위해 희생 아닌 희생을 한 동료들. 이 3가지는 결코 잊어선 안 된다.

지금 프로에 있는 선배들은 모두 본인들처럼 유망주로 지명을 받아 프로 무대에서 10년 가까이 혹은 그보다 많이 프로생활을 한 실력자들이다. 그들을 당장 뛰어 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나와 (강)백호 같이 입단 첫 해부터 경기를 바로 많이 뛰는 경우는 별로 없지 않나. 그런 사례를 먼저 생각해 조급해 해선 절대 안된다.

“프로는 똑같은 프로”다. 상하위 순번의 차이는 이제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프로는 이름값으로 야구를 하는 곳이 아니더라. 모두가 똑같은 프로야구 선수다. 하위 라운드에 지명된 선수들 중에서도 경기를 많이 뛰는 선수가 많다. 상위 지명 선수들보다 충분히 더 야구를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스포츠동아 (인터뷰)[41]



6.1. vs 강백호[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정후 vs 강백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이정후 vs 강백호.jpg
파일:이정후 vs 강백호 2.jpg


6.2. 팬 서비스[편집]


팬들이 없으면 야구선수들은 공놀이하는 사람들에 불과하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야구대표팀 훈련을 앞두고 응한 인터뷰 中 [42]


어렸을 때 친구들이랑 야구를 보러 다녔다. 나는 아빠랑 같이 가다보니 선수들을 보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친구들은 선수들이 공 하나 던져주거나 사인 한 번 해준 걸 아직도 기억하더라. 어린 친구들에게 사인을 해주면 평생 가는 것 같다. 그래서 더 잘해주고 싶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 국내 야구선수 중에서 팬 서비스 좋기로 평판이 아주 좋다. 야구장 외에 출국장, 기타 행사장 등에서도 팬들의 사인 요청에 사인, 셀카까지 친절하고 성실하게 잘 해준다고 한다. 특히 어린이 팬들한테는 어지간하면 사인 다 해준다고.[43] 그야말로 현재 구사하고 있는 최고의 인기에 쐐기를 박아버리는 수준. 팬 서비스에 관련된 말이 많은 요즘인데 일찍히 데뷔 시즌때부터 팬 서비스가 좋은 야구선수로 뉴스 출연도 했었다. #

  • 팬 서비스가 좋은 특별한 이유가 있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엄지척이 절로 나온다. 여담으로 아버지 역시 팬 서비스가 좋은 편이다.


파일:이정후_팬서비스.jpg


  • 2019년 7월 21일, 창원 NC파크에서 열린 올스타 팬사인회에서 이정후는 최근 KBO리그 인기, 관중 감소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44]

팬들이 기대하는 만큼 그라운드에서 좋은 플레이를 보여드리고 친절한 팬서비스로 팬들이 경기장을 찾아오게 만들어야 한다. 선수들이 팬들과 더 가까이 다가가야한다고 생각한다.

OSEN (인터뷰)[45]


  • 소속팀 키움 선수들이 대체적으로 팬서비스가 좋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출퇴근 때마다 미소를 지으며 팬들의 요청에 일일이 응하고 있는 듯. 2019년 10월 17일 경기가 끝난 후인 1시간이 지난 시간에도 일부 팬들이 선수들의 퇴근길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모여들자 경호 요원이 이정후의 즉석 팬 사인회를 마무리 짓고 빠른 귀가를 도우려고 해도 괜찮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팬들에게 시간을 할애하는 모습을 보였다. #

  • 2021년 11월 30일, KBO 시상식 종료 후 참가한 메타버스 팬미팅 인터뷰에서 메이저리그의 사례를 들며 팬 서비스를 원활하게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지 않은 것을 아쉬운 점으로 꼽으면서 [46] 그럴 때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지나가야 하는 팬 서비스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을 안타까움을 드러내며, 선수와 팬이 많이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이 잘 조성됐으면 좋겠다고 소신 발언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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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팬 서비스로 화제를 모은 장면

  • 2021년 12월 4일 열린 희망더하기 자선야구대회가 끝난 뒤 고척돔 펜스 위쪽 너머로 모여 있던 어린이 팬들에 자신이 쓰고 있던 모자와 입고 뛰었던 유니폼 상의를 벗어 선물했고, 게다가 자신이 신고 뛰었던 스파이크 끈을 갑자기 풀기 시작하더니 스파이크에 묻어있던 흙마저 깔끔하게 털어내 어린 아이의 손에 직접 쥐어주고는 맨발이 된 이후에도 야구공까지 가져와 선물을 해줬다고 한다. 이 모습이 찍힌 영상이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왔고, 이런 이정후의 팬 서비스 모습에 신발까지 벗어주는 건 메이저리그나 NBA에서 보던 모습이 아닌가라는 반응이 이어지며 폭풍찬사를 받았다. #1 #2

올해 마지막으로 팬들을 만나는 자리였기 때문에 선물을 드리고 싶었다. 코로나19로 팬 사인회 같은 행사도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 그런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시즌이 끝났으니 올해 더 이상 야구를 할 일이 없어서 유니폼이나 신발을 드릴 수 있었다. 특히 야구를 보러 온 아이들에게 많은 선물을 주고 싶어 공을 많이 던져줬다.

2021년 12월 6일 스타뉴스 (인터뷰)[47]


  • 팬들과의 소통 창구가 주차장같은 곳밖에 없다며 프로 야구의 인프라를 꼬집거나, 원정 숙소까지는 찾아오지 말라는 등의 선수가 먼저 하기 힘든 말을 하기도 했다.[48]



3년동안 변하지 않은것도 많이 있습니다 | 이정후가 히어로즈팬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

  • 팀이 팀이다 보니 강제로 프랜차이즈 스타들과 작별하는 일이 많은 팬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도 아는 아주 훌륭한 팬서비스 마인드를 가졌다. 2022년 5월 1일 kt wiz전 경기 후 단상 인터뷰는 히어로즈 팬들 뿐만이 아니 많은 야구 팬들, 야구 관계자들에게도 감동을 준 인터뷰로 크게 화제가 되었다.



[톱플레이] '홈런 배송' 이정후 "받으신 고객님 연락주세요" | 파일:MBC 로고 화이트.svg

  • 홈런구 산지직송 서비스. 2022년 6월 15일 고척돔 두산과의 경기에서 한 여성팬이 '이정후 여기로 공 날려줘'라고 적힌 피켓을 든 모습이 카메라에 찍혔는데, 정말로 홈런구가 그 자리에 정확히 안착[49]했다. 비거리 125미터의 홈런타구가 기막히게 옆에 떨어졌다. 의도한건 아닌데 어쨌거나 완벽한 팬서비스 장면이 연출되어 순식간에 각종 야구 게시판에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거기에 해당 여성 팬은 그 홈런볼로 싸인까지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날 그 여성팬들이 이번에도 외야석에서 어제와 똑같은 스케치북[50]을 흔들었고[51], 이를 알게된 이정후는 구단에 요청하여 경기중 고척돔에서 VIP룸 다음으로 비싼 좌석인 포수 뒷자리 로얄 다이아몬드 클럽으로 업그레이드 해주었고, 사인 배트도 함께 선물해주었다.

  • 2022시즌에는 연습구, 본인과 동료들의 싸인구, 이닝의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은 공 등을 외야석의 관중에게 던져주는 팬서비스가 카메라에 많이 잡힌다.

  • 2022년 12월 7일, 이정후는 지난 7월 직장 동료들과 야구 경기를 보기 위해 고척 스카이돔을 방문했다가 이정후의 파울 타구에 얼굴을 맞는 사고를 당했던 팬[52]을 직접 만나 위로 및 안부를 전하고 싶다는 본인 요청으로 팬의 직장을 찾아 준비한 선물 전달과 함께 즉석 사인회를 열었다. #1 #2


6.3. KBO를 대표하는 전국구 스타[편집]




[ 1위 – 10위 ]
한국갤럽은 매년 초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좋아하는 국내외 활동 야구 선수'를 선정하고 있다.

2000년대
[ 펼치기 · 접기 ]
2005년
※ 2010년 이후의 공식 발표 자료만 남아 있어 5위까지만 확인 가능.
1위
2위
3위
4위
5위
박찬호
최희섭
이승엽
김병현
이종범
2008년
※ 2010년 이후의 공식 발표 자료만 남아 있어 5위까지만 확인 가능.
1위
2위
3위
4위
공동 5위
이승엽
박찬호
양준혁
이대호
김병현 / 이종범


2010년대
[ 펼치기 · 접기 ]
2010년
1위
2위
3위
4위
5위
이종범
이대호
양준혁
김현수
최희섭
6위
7위
8위
9위
10위
류현진
김상현
봉중근
강민호
이용규
2011년
1위
2위
3위
4위
5위
이용규
류현진
이종범
홍성흔
김광현
6위
7위
8위
9위
10위
강민호
김현수
김상현
이용규
최희섭
2012년
1위
2위
3위
4위
5위
박찬호
이승엽
이대호
추신수
류현진
6위
7위
8위
9위
10위
이종범
김태균
김병현
윤석민
홍성흔
2013년
1위
2위
3위
4위
5위
류현진
이승엽
이대호
추신수
강민호
6위
7위
8위
공동 9위
이용규
윤석민
홍성흔
김태균 / 오승환
2014년
1위
2위
3위
4위
공동 5위
류현진
추신수
이대호
이승엽
강민호 / 윤석민
7위
8위
9위
10위
오승환
이병규
김태균
김현수
2015년
※ 2015년부터 2017년까지는 '류현진', '추신수' 등 해외 진출 선수들이 맹활약하면서 국내 프로야구 선수 응답이 크게 줄어 국내 프로야구 선수와 해외 활동 한국인 야구 선수를 분리.
좋아하는 해외 활동 한국인 야구 선수
1위
2위
3위
4위
5위
류현진
추신수
이대호
오승환
강정호
좋아하는 국내 프로야구 선수
1위
공동 2위
공동 4위
이승엽
강민호 / 윤석민
박병호 / 김태균 / 홍성흔
7위
8위
공동 9위
손아섭
김현수
양현종 / 김광현
2016년
※ 2015년부터 2017년까지는 '류현진', '추신수' 등 해외 진출 선수들이 맹활약하면서 국내 프로야구 선수 응답이 크게 줄어 국내 프로야구 선수와 해외 활동 한국인 야구 선수를 분리.
좋아하는 해외 활동 한국인 야구 선수
1위
2위
3위
공동 4위
류현진
추신수
이대호
박병호 / 강정호
6위
7위
김현수
오승환
좋아하는 국내 프로야구 선수
1위
2위
3위
공동 4위
이승엽
강민호
이용규
양현종 / 김태균
6위
7위
8위
9위
공동 10위
김광현
윤석민
이병규
손아섭
구자욱 / 정근우 / 나성범
2017년
※ 2015년부터 2017년까지는 '류현진', '추신수' 등 해외 진출 선수들이 맹활약하면서 국내 프로야구 선수 응답이 크게 줄어 국내 프로야구 선수와 해외 활동 한국인 야구 선수를 분리.
좋아하는 해외 활동 한국인 야구 선수
1위
2위
공동 3위
류현진
추신수
김현수 / 박병호 / 오승환
6위
7위
강정호
황재균
좋아하는 국내 프로야구 선수
1위
2위
3위
4위
5위
이대호
이승엽
강민호
이용규
김태균
6위
공동 7위
9위
10위
정근우
김광현 / 양현종
서건창
손아섭
2018년
좋아하는 국내 프로야구 선수
※ 2018년은 해외파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국내 프로야구 선수만 선정. 2019년은 좋아하는 선수에 대한 조사는 하지 않았다. #
1위
2위
공동 3위
공동 5위
이대호
양현종
김선빈 / 김태균
김광현 / 김현수
7위
공동 8위
10위
강민호
박병호
손아섭
나성범


2020년대
[ 펼치기 · 접기 ]
2020년
1위
2위
공동 3위
공동 5위
류현진
추신수
이대호 / 이정후
김광현 / 양현종
공동 7위
9위
10위
최지만 / 박병호
김태균
양의지
2021년
1위
2위
3위
공동 4위
추신수
류현진
이대호
김광현 / 양현종
6위
7위
8위
9위
10위
이정후
양의지
김하성
최지만
손아섭
2022년
1위
2위
3위
4위
5위
류현진
추신수
이정후
김광현
이대호
6위
7위
8위
9위
10위
양현종
구자욱
나성범
양의지
강백호
2023년
1위
2위
3위
4위
5위
이정후
류현진
김하성
추신수
김광현
공동 6위
8위
공동 9위
양현종 / 양의지
최지만
김현수 / 최정






이정후는 이미 슈퍼스타지. 이정후가 타석에 나오면 관중들이 미치잖아.

원로 야구인 박영길[53]


  • 슈퍼스타 부재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프로야구에 가뭄 속 단비 같은 존재로서 매년 업그레이드 되는 성적을 기반으로 아버지의 후광으로 스타가 된 선수가 아님을 스스로 증명해 내는 동시에 뛰어난 팬 서비스와 잘생긴 외모가 그야말로 삼위일체를 이루며 국민의 사랑을 받는 전국구 스타가 될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평가받고 있다. 또한 현재 전국의 야구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야구에 별 흥미가 없는 사람들도 이정후는 어느정도는 알고 있을 정도로 전국구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다.

  • 한국갤럽 설문조사
    • 2020년 5월 1일, ‘가장 좋아하는 야구선수’ 순위[54]에서 이대호와 동득표율인 4%로 3위에 올랐다. #
    • 2021년 3월 31일, 동일 조사에서 3%의 득표율로 6위에 올랐다. #
    • 2022년 3월 23일, 동일 조사에서 6%의 득표율로 3위에 올랐다. #
    • 2023년 3월 28일, 동일 조사에서 12%의 득표율로 처음으로 1위에 올랐다. #

  • 데일리스포츠한국 설문조사
    • 2021년 11월 19일,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 순위에 2.0% 득표률로 6위에 올랐다. 무려 메이저리거 류현진과 동일 순위다. 2021년 처음으로 여론조사 항목에 추가된 ‘가장 기대되는 스포츠 유망주’ 순위에서도 4.6% 득표율로 2위에 랭크인 되었다. #
    • 2022년 11월 21일, 동일 조사에서 2.5%의 득표율로 5위에 올랐다. # ‘가장 기대되는 스포츠 유망주’ 순위에서도 4.2% 득표율로 2위에 랭크인 되었다.
    • 2023년 11월 21일, 동일 조사에서 1.3%의 득표율로 8위에 올랐다. #

  • KBO 올스타전
    • 2017년 나눔 올스타(베스트12)
    • 2019년 나눔 올스타(베스트12)
    • 2020년 나눔 올스타(베스트12) 나눔 올스타 최다 득표
    • 2021년 나눔 올스타(베스트12) 나눔 올스타 최다 득표
    • 2022년 나눔 올스타(베스트12) 나눔 외야수 최다 득표
    • 2023년 6월 26일, 2023 신한은행 SOL KBO 올스타전에서 팬 투표와 선수단 투표에서 모두 최다 득표 영예를 안았다. #1 #2 [55]


7. 기부 및 선행 활동[편집]


한국프로야구를 아껴주시는 팬들의 사랑을 장애어린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기부가 제게 큰 행복으로 돌아왔다. 장애어린이와 장애청년들이 더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응원하며 매년 비시즌마다 방문하고 싶다.

2022년 12월 26일, 인터뷰 中에서[56]


  • 2019년부터 어린이병원에 꾸준히 기부를 하며 선행 활동을 하고 있다. 2019년 5월 7일,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에 1,000만원을 기부했다. 이정후는 기부에 앞서 “프로가 되기 전부터 꾸준히 생각해오던 것이다. 프로 선수로서 성공하게 된다면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매해 어린이날에 장애 어린이들을 위해 1000만원씩 기부를 할 예정으로, 프로스포츠는 팬이 있기에 존재함을 잘 알고 있다. 앞으로 보다 더 야구를 잘 해서 더 많은 어린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도움을 주고 싶다”고 밝혔다. #

  • 2019년 12월 25일, 박찬호가 운영하는 박찬호장학회에 기부금 500만원을 전달했다. # 박찬호에 따르면 박찬호 재단을 통해 성장한 유소년 선수들이 37명으로 그 장학생 중에서 유일하게 재단에 기부해준 선수가 이정후라고 한다. #1 #2



  • 2020년 12월 29일, 아버지 이종범과 함께 장애어린이 치료와 재활을 돕는 푸르메재단의 홍보대사로 위촉됐고, 푸르메 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에 1,000만원을 기부했다. #

  • 2021년 5월 4일,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의 장애어린이들을 위한 기부금으로 1,000만원을 기부했다. #

  • 2021년 5월 6일, 아동복지시설 광주 신애원[57]에 어린이날을 맞아 500만원을 기부했다. # 이후 12월 26일에는 성탄절을 맞아 아이들에게 깜짝 선물을 전달해 달라며 500만원을 기부했다. #

  • 2022년 5월 2일, 아동복지시설 광주 신애원에 광주 KIA 타이거즈와의 다음날 경기를 앞두고 직접 복지시설을 찾아 500만원을 기부했다. #

  • 2022년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푸르메재단 장애어린이를 위해 1000만원을 기부했다. #

  • 2022년 11월 17일, 정규시즌 MVP 수상 후 MVP와 타이틀[58]로 받은 상금 전액을 기부한다고 하여 다시 한번 감동을 선사했다. # 12월 26일, 이정후는 아버지 이종범과 푸르메재단 넥슨 어린이 재활병원을 찾아 상금 전액을 장애 아동을 위해 기부했다. 푸르메 재단에 의하면 이정후가 2500만원을 기부하고 향후 1억원 이상 기부를 약속하면서 고액기부자모임인 ‘더 미라클스’의 38번째 회원이 됐다고 전했다. #


8. 기타 이야깃거리[편집]


  • 인터뷰에서 보면 느낄 수 있듯이, 중학교 시절까지 광주에서 성장했고, 사투리가 역대급으로 심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말투에 광주 사투리 억양이 입에 배어 있다.[59]


  • 과거에 Red Velvet열혈 팬이였다. 입단 당시부터 Rookie를 등장곡으로 썼으며, The Red Summer 발매 이후로는 추세에 맞춰서 타이틀곡인 빨간 맛으로 바꾸었다. 이 밖에도 Red Velvet SNS 페이지에 꾸준히 좋아요를 누르는 등 상당한 팬심을 보이기도 했다. # 현재는 SM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과 맞팔로우 되어있는 상태. 이후 갤럭시아SM 소속 자격으로 SM엔터테인먼트의 할로윈 파티에 초대 받고 Red Velvet 멤버들과 사진을 찍으면서 성덕 등극. 다음 달에는 엑소 콘서트에도 다녀왔다. 2018년 1월 6일 SMTOWN FRIENDS 식구들과 봉사활동을 하며 슬기와 사진을 찍었다. # 다만 최근 인터뷰에서 연예인에 관심 없다면서 슬기와 사진을 찍었냐는 질문에는 “팬이었다. 내 등장곡이 레드벨벳 노래였다. 이제 강렬한 걸로 바꾸고 싶다. 응원가는 괜찮은 것 같다.”라고 답했다. # 그리고 2018 시즌 개막이후 등장곡을 Red Velvet 노래 대신 다른 노래를 택했다. 이외에도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보고 김태리 팬이 됐다고 인터뷰하였고, 좋아하는 걸그룹 멤버는? 이라는 질문에 “아이오아이 김도연이 예쁜 것 같다”라고 언급했었다.

  • 계약금, 연봉 및 수입에 관하여 모든 돈 관리는 부모에 맡겼다고 한다. 이 때문에 매달 용돈을 받아 쓰고 있는데 매년 상승하는 연봉으로 용돈도 함께 협상하고 있다고 한다. 2020년 1월 기준 용돈은 아직 2019년과 같은데 2018년 삭감을 당하고[60] 2018년, 2019년은 똑같아 올해는 꼭 협상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인터뷰했다. 입단 6년차인 최근까지도 용돈 협상을 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 강타자인 이정후를 상대하고 난 이후 투수들이 비교적 편안한 상태로 공을 던질 수 있다는 이유로 후이자(...)라는 별명이 생겼다. 2021년 와일드카드전에서 안우진의 투구를 본 두산 팬들이 안우진의 빠른 공을 보고 나니 선수들이 강속구에 잘 대처한다며 안센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는데 비슷한 맥락이다. 별명에 대한 자세한 서술은 이정후/별명 문단을 참고.

[ 광고 출연 사진 보기 · 접기 ]

파일:이정후이종범_유사나.jpg


파일:이정후유사나.jpg


파일:이정후_아디다스.jpg




파일:이정후레드불.jpg




  • KBO 리그를 대표하는 스타선수로 발돋움하면서 광고 출연도 부쩍 많아졌다. 아디다스[61]레드불[62], 유사나 등 글로벌 브랜드와 후원 계약 및 앰버서더로 임명되었으며, 컴투스의 메인 광고 모델로도 4년째 활동하고 있다.[63] 그 중에서 유사나코리아 본사가 위치한 역삼역 사거리와 역삼역에는 이정후의 전광판 광고가 5년째 크게 내걸려있는데 그걸 본 아버지 이종범의 지인들이 아들이 멋지게 잘 나왔다면서 사진을 찍어 이종범에 연락 해온다고 한다. #1 #2 #3

작년까지만 해도 아버지 이름이 더 알려져 있었는데 올해 알을 깨고 나온 것 같아 방송도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64]

지금까지 많은 방송 섭외가 있었지만 이제야 처음 응하게 된 것에 대해[65]

  • 프로 데뷔 후에는 연말 야구 토크쇼 컴투스프로야구포인트 B하인드 말고는 예능 방송에 출연한 적이 전무했으나 야구를 조금이라도 더 알리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친 이정후는 세계최초 부자타격왕 타이틀을 따낸 2021시즌이 끝난 직후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 첫 예능을 국민MC와 함께 이날 방송에서는 자신의 야구 이야기 외에도 과거 아버지의 은퇴와 영구결번식을 회상하면서 당시 힘들었던 심경을 처음으로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첫 예능인지라 걱정반 기대반이였던 팬들 사이에서 반응도 좋았다.[66] 12월 11일에 아버지 이종범과 함께 아는 형님에 출연했다. 아버지와는 첫 예능이자 방송 출연.



  • 2019년 프로야구 개막 전 MBC 스포츠매거진에서 중화반점을 열창하는 모습으로 놀림받았다. 관련 영상

  • 2019년 11월, 스마일라식 수술을 받았다.


  • 2021년 5월에는 머리색을 팀 유니폼 색깔과 같은 버건디색으로 변화를 줬다. 시즌 초 타격에 부침을 겪으면서 머리라도 바꾸면 잘 될까 싶어 염색을 했다고 한다. # 고교 졸업 후 잠깐 금발로 탈색을 한적은 있었지만 데뷔 이례 첫 머리 염색이다. 공교롭게도 4월 29일 삼성전에서 데뷔 첫 사이클링히트를 달성한 양의지도 같은 미용실에서 머리를 단장한 뒤 기록을 세웠는데 이정후도 7개월 뒤인 10월 25일 한화전에서 데뷔 첫 사이클링히트를 달성했다. 여담이지만 양의지와 이정후는 무등중학교 동문이다.

  • 2022년 3월 31일, 이정후는 KBO가 통신 3사와 포털사이트 컨소시엄과 프로야구 뉴미디어 중계권 계약을 맺은 뒤로 영상 관련 콘텐츠 활용이 어려워진 현 상황을 비판했다. 이정후는 “정말 이해가 안 된다. 당장 나도 하이라이트 중 내 타석만 본다. 타석 전체도 아닌 타격하는 그 장면만 볼 때도 있는데 팬들은 오죽하겠나”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

  • 손흥민과도 은근히 공통점이 있는데 한국 스포츠 분야에서는 절대적인 스타성과 재능은 물론이고 아버지에 이은 2대째 스포츠 스타이기도 하다. 물론 이정후의 아버지인 이종범은 손흥민의 아버지인 손웅정보다는 스타성이나 인지도가 훨씬 높았다. 다만 손웅정은 아들인 손흥민이 태어나기도 전인 28세에 선수 생활을 접었고, 이종범은 이정후가 중학생으로 성장했을 때까지 선수 생활을 해서 비교를 하기엔 좀 맞지가 않다.

  • 2023년 공인회계사 제1차 시험 경제원론에 아버지와 함께 등장했다. 2003년 8억을 받은 야구선수 아버지와 그를 따라 야구선수가 되고 2023년에 12억을 받은 아들의 연봉 가치 차이를 비교하는 문제였는데 스토리가 누가 봐도 이종범 이정후 부자였다.[67]


[1] 눈썰미가 있는 사람은 눈치챘겠지만 인터뷰 영상에서 이정후가 입고 있는 언더슈트엔 한화 이글스 로고가 박혀있다. 아마 이종범이 한화 이글스 코치 시절에 지급 받은 것을 입은 게 아닌가라고 추정된다.[2] 진갑용의 가문이 야구 가문으로 꼽히는데 진갑용의 아버지인 진한규 씨가 경남상고 재학 시절 야구를 했다고 한다. 진갑용의 아들은 익히 알려진 롯데 자이언츠 투수 진승현.[3] 대략 2014년 전후[4] 물론 팬투표는 자기 맘대로 하는 거지만 잘해주는 우리 팀 선수는 이적생이라고 거르고, 상대팀 선수를 레전드 아들이라고 예뻐하는건 팬 입장에서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특히 갸갤에서는 이명기를 거르고 이정후를 픽한 사람들에 대한 반감이 심하다.[5] #[6] 이승우가 빠른 98년생이긴하나 나이가 같아 친구가 된듯 보인다.[7] 야구선수와 축구선수가 서로 친한 사례는 종종 있다. 신태용 전 축구 국가대표 감독이 영남대학교 동기 양준혁 해설위원과 절친인 것이 가장 유명한 축구선수-야구선수 친분 관계.[8] 사실 이정후가 중,고등학교 때는 이승우가 스페인에 있었기 때문에 친해질 기회가 거의 없었다.[9] 프로 데뷔 전부터도 꼭 한번 상대해보고 싶었던 투수였다고 한다.[10] 보통 선후배 간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경우에는 선배 쪽에서 잘 챙겨 주고 귀여워 해 주는 경우가 많다. 늦둥이 동생을 챙기는 형/누나들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11] 통산 전적이 25타수 10안타이다.[12] 야구에서는 흔치 않은 연령별 제한이 있는 성인 국제 대회인 터라 만 25세 이하, 프로 3년차 이하라는 선수 선발 조건이 달려 있었다.[13] 이정후 vs 강백호 문서에도 나오지만, 야구팬들이 틈만 나면 비교논쟁을 벌이는 것과는 별개로 둘은 상당한 절친이다.[14] 김하성은 원정 룸메이트를 하면서 동료 선수로서 자극과 동시에 본보기가 됐던 선배이자 형이였다고 한다.[15] 아버지의 선수 시절과 김하성의 등번호가 모두 7번이다.[16] 실제로 박병호의 인터뷰 기사에 의하면 계약 직후 박병호와의 전화통화 중 펑펑 울었다고 한다. 얼마나 울었는지 박병호가 안타까운 마음에 한숨을 내쉬었을 정도. #[17] 박병호뿐만 아니라 시즌 중 트레이드를 통해 LG 트윈스로 이적한 서건창의 사진까지 올린 걸 보면 구단 자체에 정나미가 단단히 떨어진 것 아니냐는 의견도 많다.[18] 데뷔 1~2년차만 해도 여드름 자국, 햇볕을 많이 쐬어 까무잡잡한 피부, 비쩍 마른 체형 등 관리하지 않은 10대 후반~20대 초반 학생이라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모습들로 인해 잘생겼다는 평은 그다지 많지 않았으나, 연차가 쌓이고 대학생 내지는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그 나잇대 남성들이 으레 그러하듯 외모 관리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며 상기한 단점들이 거의 사라져 점점 잘생겨지기 시작하더니 현재는 미남 야구선수의 상징격 인물이 되었다.[19] 전성기엔 아버지 역시 남성미 넘치는 훈남이었다.[20] 참고로 고우석의 아내이기도 한 이정후의 여동생 역시 상당한 미녀로 평가받는다. 이종범은 딸이 본인을 많이 닮았다고 한 바 있다.[21] 이날 이정후는 희망 짝꿍으로 민경훈을 지목해 버즈 노래를 열창하면서 닮은꼴에 대해 언급했다.[22] SM엔터테인먼트 & ESteem & MYSTIC 엔터테인먼트 & 갤럭시아 SM & Speeker의 소속 연예인, 스포츠 선수들과 임직원이 참여한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당시 갤럭시아 SM 소속으로 아버지 이종범도 참석했었다.[23] 참고로 최강창민은 카메라가 실물을 다 못담는다는 얘기가 많이 나오는 연예인 중 한 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리지 않을 정도.[24] 이것도 아버지 쪽에서 유전된 것으로 보인다.[25] 여담으로 자막이 이정'후'가 아닌 이정'우'로 오타가 났다.[26] 최종 1위는 없고, 이대은과 공동 1위로 마무리됐다. 참고로 이정후는 강적 구자욱을 이기고 결승에 올라왔다.[27] 이유는 아들이 야구선수로 성공을 했을때는 상관이 없지만 잘 되지 않았을때 아버지의 유명세에 비참한 인생을 살까봐 아버지 이종범이 어떻게든 야구만은 시키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 재미있는 것은 아버지 이종범도 어린 시절 축구에 소질이 있었다는 점이다. 하일성 해설위원의 전언으로는 이종범이 축구선수가 될 뻔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28] 예전 한번 해봤던 기억은 있지만 무슨 유형이였던건 기억이 안난다고 한다.[29] 이치로는 아마추어 시절부터 일본프로야구 오릭스 버팔로스, 메이저리그 시애틀 매리너스를 거치는 동안 51번을 떼지 않았다.[30] #1 #2 [31] 시즌 종료 후에는 엔트리에 올라와 있지 않으면 덕아웃에 출입할 수 없다.[32] 상무 야구단은 퓨처스리그에만 소속되어 있다.[33] 2019년 8월호에 공개된 표지사진인데 당시 이미 이정후 커리어나 위상이 어나더 레벨이였어서 왜 저기에 이정후가? 라는 반응들이 많았다. 19시즌 히어로즈 라인업에서 데뷔 1~2년차였던 정은원, 김민, 정우영, 원태인과 묶이려면 김혜성이 적당했다. 게다가 선수들의 연차나 위상에 공통점이 전혀 없었다. 3~4년차였던 이영하, 구창모까진 그렇다쳐도 서진용과 김원중은 이미 군대까지 다녀와서 20대 꺾이는 나이였는데 10년을 책임질 운운하는건 어폐가 있다. 무엇보다 아이러니하게도 18시즌 데뷔한 또 다른 한국야구의 미래 강백호가 빠져 선정에 의구심을 드는 반응들이 많았다.[34] 여담으로 박병호도 삼나쌩의 선두주자 중 하나이지만 이정후보다는 덜하다.[35] 심지어 구자욱박민우는 둘다 빠른93년생으로 유급했다.[36] 특히 주니치는 아버지인 이종범이 주니치에서 선수생활을 한 경력과 나고야 태생이라는 바탕을 근거로 소위 ‘적통’이란 명분을 내세워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주니치 구단 자체가 로컬보이에 유독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서 드래프트나 FA영입도 연고지 출신들 위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2021년 이후 처참해진 주니치 타선에 질려 마침 나고야 태생에 잘하는 타자가 있으니 더더욱 관심이 갈수밖에 없다. 팬들은 아예 명예 주니치 선수 취급 중이다.[37] 무사 1루에서 야마모토를 상대로 우익수 키를 넘어가는 큼지막한 2루타를 터뜨렸고, 1-2로 뒤진 6회초 무사 1루에서 야마모토와 풀카운트 승부 끝에 포크볼을 공략해 우익수 오른쪽에 떨어지는 안타를 기록했는데, 단연 이 경기의 최고 명승부라는 평가.[38] 추신수, 정근우, 김강민, 오승환, 이동현 등이 이정후를 지목했다. #[39] 그래도 최다안타 TOP 5 안에는 꾸준히 들 수 있을 정도다. 2020년에는 김현수와 최다안타 공동 5위였으며, 앞에는 자기가 세운 기록을 스스로 갈아치운 2년 연속 안타왕 호미페. 당해 MVP 멜 로하스 주니어, 작년의 부진을 씻고 완벽하게 부활한 손아섭, FA로이드 최형우 뿐이었다. 하지만 2021시즌에는 부상으로 인해 20여경기를 날리면서 안타왕은 또다시 이후를 기약하게 되었고, 2022시즌 최다안타를 포함, 5관왕을 달성했다.[40] 휘문중·고교 후배. #[41] # [42] # [43] 아무래도 자신의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야구장에 많이 다니고 느낀 영향도 없지 않아 큰 듯하다.[44] 사실 선수들 식성을 생각하면 그걸 나눠먹긴 좀 힘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갈수록 선수들이 식단관리, 몸관리에 철저해지는 추세라 가급적 음식 선물은 자제하는 편이 좋다. 쿠키 같은 건 그나마 한두개 깨작깨작 집어먹으면 그만이지만 도시락 선물 같은 건 정말 처치곤란이다.[45] #[46] 한국에서는 팬 서비스가 이뤄져야 하는 운동장에서 팬들과의 동선이 겹치면서 선수들은 출근길, 퇴근길, 당장 원정으로 떠나야 하는 길 등 팬 서비스를 하기에 여의치 못한 상황이 많다고.[47] #[48] 원정 경기를 갔을때 머무는 숙소는 홈에서의 집과 다를 바 없다. 몇몇 선수들이 문제가 되긴 하지만 대부분의 야구 선수들은 경기장에서 싸인을 잘 해준다. 굳이 선수가 쉬는 집까지 찾아가서 요청하지 말고 선수와 팬 사이의 선을 지켜달라는 의미이다.[49] 보통은 관중석 의자나 땅바닥에 튕겨서 통통 튀면서 타 팬들과 쟁탈전(?)이 펼쳐지거나 멀리 튕겨져 날아가는데, 이정후의 홈런볼은 정말로 여성팬의 바로 옆자리에 조용히 안착하여 다칠일도 없이 이정후의 홈런볼을 유유히 득템할 수 있을 정도였다.[50] 고마워요 이정후♡[51] 원래 구단에서 해당 여성 팬들을 찾으려고 SNS에 올렸으나 원래부터 3연전 내내 직관이 예정되어 있었다고 한다.[52] 응급 처치 후 곧장 병원으로 후송됐고 이후 통원 치료를 받아왔다고 한다.[53] #[54] 2013년, 14년 설문조사 이후 6년 만에 부활했다.[55] 1, 2차 팬 투표 중간집계에서 1위를 놓치지 않았던 이정후는 마지막 주에도 선두를 유지하며, 총 239만 2236표 중 124만 2579표(51.9%)의 높은 득표율로 팬 투표 1위를 차지했다. 또한, 355표 중 276표(77.7%)로 선수단 투표에서도 1위를 기록하며 팬과 선수 모두에게 높은 지지를 받았다. 팬 투표와 선수단 투표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한 것은 2018년 두산 양의지에 이어 역대 2번째이다. 이정후의 선수단 득표 276표(득표율 77.7%)는 2016년 NC 나성범, 2022년 삼성 호세 피렐라의 236표를 훌쩍 뛰어넘는 역대 최다 선수단 득표 및 득표율로 기록됐다. 데뷔 후 첫 최다득표 1위를 차지한 이정후는 5시즌 연속이자 통산 6번째 베스트 12에 선정되었다.[56] # [57] 아버지 이종범이 프로에 입단한 1994년 해태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온 곳이다.[58] 이날 시상식에서 이정후가 받은 트로피는 총 6개, 상금은 2500만원(타자 타이틀 각 300만원과 MVP 1000만원)에 달한다.[59] 이정후가 중/고등학교를 서울에서 나오고,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 팀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지만 어렸을 적부터 광주에서 살기 시작해 중학교 2학년까지 살고 이사를 갔기 때문에 광주 사투리가 남아 있을 수 있다. 게다가 프로에서도 숙소 생활을 하지 않는 대신에 아버지와 한 집에서 살고 있기도 하고...[60] 오히려 연봉은 올랐는데 집안 반항이라도 한 건지는 불투명하다.[61] 2019년 1월 28일,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와 공식 모델 및 후원 계약을 체결했고, 향후 아디다스 브랜드 앰배서더로서 아디다스 용품 일체를 지원받고 주요 카테고리 모델로도 활동중에 있다. # 2020년에는 손흥민, 화사와 함께 아디다스 러닝 캠페인 ‘FASTER THAN: ~보다 빠르게’ 캠페인 앰버서더로 선정됐다. #[62] 국내 구기종목 스포츠 선수로는 최초로 선정되었다. #[63] 2020년 2월 14일, 컴투스는 3D 모바일 야구 게임 ‘컴투스프로야구2020’의 신규 시즌 게임 공식모델로 이종범과 이정후 부자를 선정했고, 이정후는 아버지와 처음으로 광고 출연을 하게 됐다. 2021년에 KBO 신인상 출신 선수 4인을 선정하면서 2년 연속 출연했다. #1 #2 2022년에 이어 2023년에도 네 번째 재계약을 하면서 4년 연속 인간컴프야등극 특히 2023년에는 처음으로 단독 모델로 발탁되었으며, 2023 시즌을 마치면서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해외 진출을 하게 됨에 따라 마지막 광고가 되었다.[64] 이제야 아버지보다 자신의 이름을 앞세워 말할 게 생긴 것 같다고 한다.[65] # [66] 특히 유재석과는 21년전 이정후의 여동생 돌잔치에서 만난 적이 있었던 구면이였던 것이 밝혀지기도. 아빠친구 파일:2364716_2357753_153.jpg [67] 2003년은 이종범의 전성기 시즌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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