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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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민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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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K 와이번스 우승 엠블럼 V1.svg파일:SK 와이번스 우승 엠블럼 V2.svg파일:SK 와이번스 우승 엠블럼 V3.svg파일:SK 와이번스 우승 엠블럼 V4.svg파일:SSG 랜더스 우승 엠블럼 V5.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2007
2008
2010
2018
2022

파일: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로고.svg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야구 종목
금메달

2010





파일:KBO 로고(세로형/화이트).svg KBO 한국시리즈
2022 한국시리즈 MVP

파일:KBO 로고(세로형, 2013~2021).svg KBO 포스트시즌
2018 플레이오프 MVP



보유 기록
포스트시즌 최고령 홈런
40세 1개월 25일[1][2]
최고령 한국시리즈 MVP
40세 1개월 26일[3]


김강민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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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등번호 37번

(2000.4.30.~2000)

김강민
(2001~2002)


박주언
(2003)
SK 와이번스 / SSG 랜더스 등번호 0번
송재익
(2001)

김강민
(2003~)


현역




A대표팀 참가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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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G 랜더스 No.0
김강민
金江珉 | Kim Kangmin

출생
1982년 9월 13일 (41세)
대구직할시 서구
(現 대구광역시 달서구)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본리초 - 대구중 - 경북고
신체
182cm, 85kg
포지션
중견수[1]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1년 2차 2라운드 (전체 18번, SK)
소속팀
SK 와이번스-SSG 랜더스 (2001~)
병역
예술체육요원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야구 부문 금메달)
연봉
1억 6,000만원 (동결, 2023년)
등장곡
러브홀릭스 - 《Butterfly》 (2012~2018, 2022~)
응원가
이탈리아 나폴리 가곡 《'O Sole Mio》 (2017~)[2][3]
【 이전 응원가 보기 】
더 킬러스 - 《Spaceman》 (2007~2017)[1][A]
EXO - 《으르렁》 (2013~2017)[2][A]

가족
아내 박정선, 슬하 3녀
에이전트
파일:브랜뉴스포츠.png

1. 개요
3. 플레이 스타일
3.1. 수비
3.2. 타격
3.3. 그 외
4. 영구결번 가능성
4.1. 영구결번 긍정론
4.2. 영구결번 부정론
5. 여담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랜더스 팬들의 허락 없이는 늙을 수 없는 짐승.

이승현 SPOTV 캐스터(2022년 9월 11일 한화전)

SSG 랜더스 소속 외야수. 주 포지션은 중견수이다. 2001년에 SK 와이번스에 입단해 왕조시절부터 현재까지[4] 팀의 외야를 책임지고 있으며, KBO 리그 역사상 3번째로 20대, 30대, 40대의 나이에서 모두 우승을 경험한 선수이다.[5]

2. 선수 경력[편집]




3. 플레이 스타일[편집]



3.1. 수비[편집]




김강민의 타격폼
vs 정찬헌 (2020년 10월 30일)


만 38세 시즌, 보살로 주자를 잡아내는 김강민.
2021년 5월 26일 (kt전)
빠른 발과 뛰어난 판단력, 강한 어깨와 주자를 속일 수 있는 테크닉까지 외야수로서 수비에서 갖춰야 할 모든 걸 갖추고 있는 선수. 현역 감독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한국 최고의 외야수비[6]로 뽑혔다. 40살이 되어도 외야 수비에서 틈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여전히 리그 최상위권의 수비를 보여주고 있어 타격이 저조하더라도 여전히 쓰임새가 좋아서 호평을 받고 있다. 김강민 수비에 대한 비유 중 하나가 "나성범 어깨에 이종욱 수비범위"일 정도. 더군다나 40대의 나이에도 이런 비유에 걸맞는 수비력을 보여준다는 것부터 김강민의 수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만 37세 시즌, 2루타성 타구를 가볍게 잡아내는 모습.
2020년 5월 22일 (KIA전)

만 40세 시즌, 2루타성 타구를 가볍게 잡아내는 모습.
2023년 3월 27일 (LG전)
가장 대표적인 장점은 중견수로 출전했을 때의 타구판단이다. 선수 본인과 감독들의 인터뷰에서 타격이 이루어지는 순간 타구판단의 속도와 정확성을 남다른 장점으로 말하였으며, 호수비 영상을 보면 타격 순간에 판단을 마치고 낙구 지점까지 뛰기 시작하는 모습이 보이고, 이러한 이유로 다른 선수들이라면 놓치거나 다이빙 캐치로 어렵게 잡을만한 타구를 여유롭게 잡아버리는 장면이 자주 나오며, 또한 이러한 점 때문에 팬스 근처로 깊게 날아오는 타구를 등 뒤로 쫓는 경우에 강점이 있다. 여기에 이대형같은 소위 육상부 선수만큼은 아니더라도 발도 빨라서 수비에 더 도움이 된다. 더불어 기술적인 슬라이딩 캐치나 다이빙, 점핑 캐치도 안정적으로 수행한다. 투수 출신이라 어깨도 매우 좋아서 외야에서 홈까지 노바운드로 쏴버리기도 하며, 이 때문에 주자 억제력도 높다. 다시 말해 수비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완전체. 그 수비 잘하는 박해민가장 수비 잘하는 중견수로 김강민을 꼽은 적이 있다.

3.2. 타격[편집]


1군 진입 초기부터 주로 하위타선을 맡았고 크게 두드러지는 활약은 없었지만 2010년을 기점으로 2할7푼~3할대의 타격, 20도루가 가능한 도루능력과 10홈런을 넘기는 장타력을 보이며 쏠쏠한 활약을 하는 중장거리 타자로 변모했다.[7] 가장 유명한 장면이 2018년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신재영을 상대로 뽑아낸 동점 홈런과 2022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최원태를 상대로 때린 역전 끝내기 홈런. 세부적으로 보면 통산 wRC+는 98~100으로 리그 평균 수준이며, 115를 넘긴 적이 4차례 있다. 크게 뛰어난 타격은 아니지만 그래도 평균 정도는 해주고, 한창 잘 하던 시기에는 타격으로도 준수한 생산성을 뽑아낼 수 있는 선수였다는 점에서 케빈 키어마이어와도 유사하다.

2군에 오래 머물렀고 주전자리를 꿰차는 데까지도 시간이 꽤 걸렸지만, 1군 진입을 대수비로 시작하여 장점을 잘 유지하고 타격까지 꽃피면서 수비와 타격 모두 좋은 야수로 발전해 나갔고 꾸준한 쓰임새를 보이며 결과적으로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의 위치까지 성장했다.

3.3. 그 외[편집]


빼어난 수비와 평타 수준의 타격에 가려진 단점도 있다. 비슷한 시기 주전으로 올라선 조동화번트에 대해서는 장인 소리를 듣는 반면 김강민의 번트 실력만큼은 매우 좋지 않다. 그 때문 팬들은 김강민의 번트 모션을 볼 때마다 순간 심장이 내려앉는 공포감을 느낀다. 2009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번트로 내야안타를 만들어 냈지만 번트 기술이 아닌 빠른 발을 이용한 안타라서 아직 번트가 미숙하다는 건 사실. 번트 파울플라이를 만든다거나, 2012년에는 자신이 댄 번트 타구에 얼굴을 맞는다거나(5월 4일 롯데전), 번트를 잘못 대서 병살될 것 같으니까 일부러 공을 헤딩해서 혼자만 아웃당하고[8][9](9월 26일 넥센전) 마는 어이없는 플레이도 했다. 헤딩 영상 그 경기 이후 네이버에선 김강민 천재논란이 일어났다. 어찌 됐든 순발력이 빛난 영리한 플레이.

한국나이 38살인 2019년에는 중견수로만 100경기 선발출장을 해서 900이닝을 넘게 소화했을 정도로 자기관리가 뛰어나다. 수비 RAA도 2020년부터는 다시 양수를 찍고 있어서 회춘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 비결로는 철저한 몸 관리가 뽑힌다. 마흔의 나이에도 선발에서 제외되면 경기 중후반 수비강화를 목적으로 김강민이 1순위로 대수비로 출장할 정도로 수비실력은 여전하며, 대수비 말고도 대주자로 종종 출전할 만큼 주력도 아직 쌩쌩하다[10]. 또 어깨 역시 투수 출신답게 외야 보살을 종종 기록할 만큼 강력하다. 실제로 만 39세 시즌인 2021년 6월 투수로 등판했을 때 최고구속이 146㎞로 나올 정도로 무시무시하다. 보통 남성이 30대 초중반부터 노화가 진행된다는 걸 감안했을 때 건강관리를 독하게 한 셈. 단점은 내구성이 살짝 결여돼 있다는 점이다. 프로 경력 21년 중에 시즌 전 경기 출장 시즌이 단 한 번도 없고 120경기 이상을 뛴 시즌도 5번뿐이다..[11] 즉 커리어 동안 규정타석을 채운 시즌이 5번밖에 없다는 것이다.[12] 다만, 독특하게도 선수 생활 황혼기에 접어든 2019년부터 3시즌 연속으로 120경기 이상을 출장하기도 했다.[13]


4. 영구결번 가능성[편집]


2023년 기준으로 KBO에서 은퇴 시기가 가시권에 들어온 선수 중 영구결번에 관한 논쟁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선수 중 한명이다. '영구결번 여부에 논쟁이 있다면 그 자체로 영구결번 자격이 없는 것이다[14]'라는 기존의 보편적인 여론에도 불구하고, 김강민의 영구결번 가능성에 대한 논쟁은 김강민 한 명 뿐 아니라 영구 결번이라는 개념 자체를 둘러싼 여러 부수적인 논쟁까지 불러일으킬 정도로 꽤나 뜨거운 화두다. 이는 김강민이라는 선수와 그 소속팀인 SSG 랜더스의 특징에도 기인한다.

냉정하게 김강민은 타자로서 리그에서 지배적인 선수였던 적은 없지만, 최정상급의 수비 능력을 포함한 야수로서의 위상은 결코 낮다고 할 수 없는 선수다. 게다가 2020년대에 들어서는 뛰어난 자기 관리로 롱런하는 리그를 대표하는 베테랑이자 최장기간 원 클럽맨으로서의 위상까지 추가로 얻게 되었으며, 2018년과 2022년 팀의 우승에도 결정적으로 기여하며 가을 야구에서도 임팩트를 남겼다. 또 그 소속팀인 SSG 랜더스는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구단이기에, 타 구단에 비해 기존 영구 결번의 소위 커트라인이 높지 않은 편이다.[15]

때문에 다른 팀이었다면 영구결번이 논의되기 힘든 선수임은 부인할 수 없으나, 이런 선수와 소속팀의 특수한 상황이 맞물리며 SSG 랜더스의 원 클럽맨으로서 은퇴가 확실시 되는 김강민의 영구결번 가능성은 '영구결번은 리그 차원의 문제인가, 팀의 내부적인 의사 결정일 뿐인가?', '영구결번에 있어 성적은 어느 정도로 고려되어야 하는가?' 등의 논쟁을 낳으며 이어지고 있다.

4.1. 영구결번 긍정론[편집]


김강민은 2022시즌 우승에 혁혁한 공을 세우며 KS MVP까지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이후 SSG 랜더스의 팬들을 중심으로 영구결번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사실 KBO의 팀들은 영구결번에 있어 굉장히 고전적이고 보수적인 관념을 고수하고 있지만, MLB의 경우를 보면 팀에 오랜 기간 헌신한 선수 + 타의 모범이 되는 선수라면 성적에서 약간 아쉽더라도 충분히 예우해주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김강민의 경우도 누적으로나 비율 스텟으로나 리그 전체를 아우르는 최고의 선수라는 것에는 이견이 많겠으나, 영구결번은 리그보다는 팀의 결정에 우선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냥 불가능하지는 않다. 특히 박용택의 은퇴투어 논란과 달리 영구결번은 오로지 팀 내부적으로만 기획되는 행사라는 점에서 결이 다르다.

  • 23년간 한 팀에서 뛰며 KBO 사상 최장 기간 원클럽맨으로 활약
  • 역대 3번째 20, 30, 40대의 나이에 모두 우승하고 PO, KS MVP 수상 이력
  • 베테랑으로서 다른 선수에게 모범이 되는 성실함과 훌륭한 프로의식
  • 불혹의 나이에도 젊은 선수들에게 뒤지지 않는 리그 상위급 수비력

위와 같은 이유로 김강민은 이미 인천야구의 전설로 불리우는 김광현, 최정에 못지않게 상징적인 인물임은 확실하다. 팀의 모든 우승에 함께했다는 점 또한 팀의 역사에 기록될 상징성으로 부족하지 않다.

만약 외야수 김강민이 영구결번된다면, SSG는 포수 박경완에 이어 사실상 영결이 확정적이라고 평가받는 투수 김광현, 내야수 최정까지 다채로운 영결 라인업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 네명이 곧 SK 왕조 시절의 주축 멤버였으므로 팬들에게는 두고두고 추억할 좋은 기억이 될 것이다.

또한 SSG는 프랜차이즈 선수들에게 대우를 잘 해주는 것으로 유명하며[16] 이를 고려했을 때 영구 결번을 지정해 줄 수도 있다.


4.2. 영구결번 부정론[편집]


  • 구단의 기존 영구 결번 선수 및 유력 후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누적 성적
  • 프로 경력 23년 중에 시즌 전 경기 출장 시즌이 단 한 번도 없고 규정타석을 채운 시즌이 5번
  • 선수 본인이 영구결번에 대해 부담을 느끼며 회의적#[17]

물론 반대하는 층도 상당수이며, 영구결번에 반대하는 팬들은 주로 위와 같은 이유를 들고 있다. 김강민 본인 또한 조금의 논란이라도 생기면 안 하는게 맞다고 밝힌 바 있고, 괜히 어정쩡하게 영구결번 지정했다가 차후에 야구 팬덤이나 커뮤니티 등에서 "김강민이 영구결번급이 맞긴하냐?"라는 식의 부정적인 의견이 올라오게 되면 LG 트윈스 박용택은퇴투어 논란 때처럼 팬과 선수 모두가 상처받을 수 있기 때문.

누적 성적도 아쉬움을 남기는데 데뷔는 2000년에 했으나 제대로 된 주전 멤버로 뛰기 시작한 것은 김성근 감독 부임 후인 2007년부터였고 주전으로 도약한 후에도 부진한 시즌이 꽤나 있었기에 통산 성적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다. 기존의 영구 결번인 박경완과 비교를 해봐도 박경완은 10년이라는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뛰었지만 훌륭한 수비는 물론이고 타격에서도 홈런왕을 비롯 구단 역대 타자 단일 최다 WAR, WAR 30.16(통산 67.63) 등 뛰어난 임팩트를 보여줬다. 현역 선수 중 영구 결번 유력 후보인 최정 역시 수비도 수준급이며 타격은 구단의 타자 부문에서 대다수 기록을 보유하고 있고 KBO 리그 전체로 봐도 역대 타자 WAR 1위를 차지할 만큼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김광현은 구단의 투수 부문에서 대다수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뛰어난 누적 성적과 스타성까지 겸비하고 있다. 위 세 선수는 팬덤으로부터 영구 결번 반대 의견이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관하다.

만일 김강민이 주전으로 활약한 시즌이 많았다면 반대 의견은 훨씬 적었을 것으로 보인다. 원클럽맨 상징성이라고는 하지만 김강민이 종전 기록인 송진우, 권오준처럼 대부분의 커리어를 주전으로 뛴 것도 아니며, 최장기 원클럽맨이라는 타이틀은 김강민이 깼던 것처럼 언제든지 깨질 가능성이 있다. 당장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빠르게 데뷔했던 팀 동료 최정이 더 오래뛰어서 갈아치울 수도 있다.[18]

5. 여담[편집]


  • 별명은 인간을 넘어선 짐승같은 플레이라는 의미의 짐승강민, 짐강민, 김짐승이라 주로 불린다.[19] 그런 탓에 못하면 별명이 가축이나 지게로 바뀐다. 18~19시즌에는 나이가 무색한 활약을 펼치면서 틀딱이 미래, 줄여서 이미래[20] 내지는 미래형, 이를 넘어 이젠 아예 프로 데뷔 년도인 2001년을 2001년생으로 바꿔 고졸 신인 취급하며 아가강민이라는 별명까지 생겼다.[21][22]

  • 아무래도 출신지가 대구광역시라 그런지 인터뷰 중간중간에 살짝씩 동남 방언 억양이 들리는 편이다. 그래도 양준혁, 이승엽, 이대호, 추신수 등 다른 영남권 지역 출신 선수들과 비교해보면 억양이 막 도드라지게 나오는 편은 아니다. 그리고 스무살 때부터 줄곧 인천광역시에서 살다 보니 입단 초기보다 사투리가 많이 줄어들기도 했다.

  • 사진이 취미여서 소싯적 인하대학교 후문 앞 사진관에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고 한다. 아마도 신인 시절 인하대학교 인근 빌라촌에서 자취를 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23] 그 사진을 보고 두산 베어스 갤러리에서는 《거침없이 하이킥》의 개성댁을 닮았다고도 한다. 김강민 3종세트 개성댁 합성 심지어 이 사진은 후에 2016년 MBC SPORTS+에서 야구 중계때 공개되기도 했는데 당시 중계를 하던 한명재허구연은 처음에 공개된 사진을 보고 웃기는커녕 진지하게 "오.. 정말 잘생겼네요. 미남입니다." 이러고 넘어가다가, 마지막 사진에서 이수나와 합성한 사진을 보고서야 웃었다.

  • 폭발적인 활약을 보인 시즌은 없지만, 15여 년의 시간을 1군에 자리하며 이름을 알릴 수 있던 건 KBO 최고의 중견수 수비를 자랑하는 선수라는 것. 내야수 출신이지만 외야수로 1군에 자리잡기 시작하였는데, 주전급으로 성장하던 2000년대 말부터 리그 최상급의 수비라는 평을 받았고, 평균에 준하는 준수한 타격과 주루 능력까지 갖춘 선수로 평가받는다. 2021년 기준 만 39세로 SSG 현역 야수 중 최고령 선수였으나 김강민보다 두 달 먼저 태어난 7월생 추신수가 입단하면서 최고령 야수 타이틀은 벗게 됐다.

  • 이택근, 이용규, 이종욱과 함께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KBO 리그를 대표한 중견수로 꼽힌다.[24]

  • 호타준족으로 두 자릿수 홈런과 도루를 동시에 할 수 있는 타자지만, 부상 이후에 도루 개수가 줄었다. 물론 중견수로 계속 출장할 수 있을 정도로 수비능력은 여전하고 스피드 자체는 괜찮다. 37살에 시즌 절반을 결장했는데도 10개는 채우는 걸 보면 유지는 하는 것으로 보는 게 맞다. 초창기에 적었던 장타 능력을 자연스럽게 채우는 것으로 보인다.

  • 고교야구 시절, 군기반장곤기반장이었다고 한다. 주장을 맡은 적이 있는데, 선수들이 단체로 김강민을 피해 탈출한 적이 있을 정도.[25] 현재는 군기반장보단 그냥 장난치는 동네형 이미지가 더 강하지만, 그 모습 어디 가진 않았는지 종종 팀이 안 좋다 싶으면 표정이 살벌하게 바뀐다.

  • 은근 유리몸 기질이 있어 전 경기 출장은커녕 120경기 이상 출장이 2007년, 2012년, 2019년, 2020년, 2021년, 총 다섯 시즌으로, 다소 많지는 않다. 오히려 전성기가 지난 2019~21년에 연속으로 120경기 이상 출전하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 좌완투수의 공을 잘 치는 편이인데 특히 양현종 킬러다. 2014년 이후 맞대결 전적을 보면 통산 79타수 26안타로, 극강의 모습을 보였다. 참고로 같은 팀의 3루수 최정도 좌완투수 중에서 류현진 킬러였다.[26]

  • 본래 굉장히 풍성했지만 2017년을 기점으로 탈모에 시달리는지 예전보다 머리숱이 적다.

  • 2010년 12월 18일, 대구 프린스 호텔 별관에서 동갑내기 박정선 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아내는 현대무용을 전공했으며, 지난 2000년, 고교 시절 친구로 만나 연인으로 발전해 11년간의 긴 열애 끝에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됐었다고 한다. #

  • 포지션을 세 번[27]이나 전향하였다. 이 중에서 내야수에서 외야수로 전향을 하게 된 계기를 SK 구단 유튜브의 '하루강민' 영상에서 직접 밝혔다. 어느 날 외야 한 자리에 구멍이 생겨 급작스럽게 외야수로 경기를 나가게 됐는데, 그 경기에서 다이빙 캐치와 보살에 성공해 계속 외야에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외야수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다.

  • 입단을 투수로 했었고, 신인 시절에는 2루수로만 출장을 하다가 외야수로 전향한 케이스인지라, 가끔 나오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실책 때문에 수비를 못하는 줄 아는 사람이 많았었다.

    저쪽 홈플레이트 너머 지정석 그물망까지 간다든가



    제대로 던지지 못하고 땅바닥에 패대기 친다든가 하는 식.[28][29] 하지만 이런 약점마저도 외야 수비에 능숙해진 후로는 없어졌으며, 현재 나이 40이 먹었는데도 SK 내에서 김강민의 수비력을 능가하는 중견수가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2020년도에 입단한 최지훈이 꾸준히 경험치를 먹어가면서 김강민 못지 않은 수비력을 갖추면서 그의 후계자로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 20대 중후반 시절에는 외모가 준수했던 편이라 나름 얼빠들도 꽤 끌어모은 편이다.

  • 2023년 기준, SSG 선수단 내에서 하나의 등번호를 가장 오래 쓰고 있는 선수이다. 신인 시절이었던 2001년~2002년에 37번을 달았다가 2003년부터 0번으로 등번호가 바뀌었는데,[30] 이 0번을 2003년부터 단 1차례의 변경도 없이, 심지어 팀이 SSG로 바뀐 후에도 계속 쓰고 있기 때문이다.[31] 그래서인지 차기 KBO 영구결번 후보로 가끔씩 거론되기도 한다. 특히 2022년 한국시리즈에서 엄청난 임팩트를 보여주고 시리즈 MVP로 선정되면서 김강민에게 영결을 줘도 될 것 같다는 여론이 크게 증가했다. 팀과 구단주가 선수에 대한 대우를 확실히 해주는 성향이 있어, 누적은 상대적으로 낮을 수 있어도 원클럽맨으로 뛰며 팀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나타나 해결해준다는 점에서 오히려 누적으로는 앞서지만 팀 커리어에서 우승이 없는 선수들보다 영구결번으로서 적합하다는 여론도 있다.[32] 0번이 야구를 제외한 다른 스포츠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번호라 더욱 희소성이 있기도 하고.


  • 2019년, 과거 벤치클리어링 상대였던 류제국이 사생활 논란으로 야구계를 떠나자, 네이버 등지에서 벤치클리어링 재평가 드립이 나오기도 한다.

  • 롯데 자이언츠 팬들이 굉장히 싫어하는 선수 중 하나다. 거진 PTSD 수준의 반응을 보이는데, 이유는 너무 잘 해서였다. 통산 롯데전 OPS는 본인 통산 성적과 큰 차이 없는데, 사직구장에서 OPS가 .9를 넘는다. 그리고 김강민 플레이 스타일 상 타석에서 못 쳐도 수비로 조지든가 주루로 조지든가 하기 때문이다. 특히 909대첩은 김강민 하이라이트의 절정. 이후 김강민은 나올 때마다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에 자주 거론되며, 댓글에는 제발 은퇴해달라는 댓글이 다수. SSG 팬들만큼 열심히 박수 쳐줄 테니까 은퇴식은 롯데전에서 하라는 글이 꼴갤 개념글을 먹기도 했다. 기사로도 나왔다. 시간이 지나서 원망의 경지를 넘어 미운 정이 들었는지 꼴갤에선 김강민이 FA 신청을 했을 때 영입을 원하기도 했으며 은퇴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을 때 김강민 은퇴식은 사직구장에서 치러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 '박용택은 은퇴투어를 해야 하는가'로 야구팬들 사이에서 여러 의견이 오갔을 때도 "박용택은 몰라도 김강민은 은퇴투어 해줄 테니 제발 은퇴해 달라"는 농담도 있었다. 심지어 롯데 선수가 아님에도 나는 갈매기의 포스터 구석에 김강민이 있다는 것이 뒤늦게 화제가 되어 벗어날 수 없는 롯데와의 악연에 롯데 팬들이 고통받고 있다. 비단 꼴갤뿐만 아니라, 타 팀갤에서도 김강민의 수비나 송구 장면을 보여주면 대체 짐승 언제 은퇴하냐는 하소연이 달리기 일쑤다. 2023년에도 은퇴를 하지 않고 SSG에서 뛰게 됨으로써 팀 내 외야수들 중 최장 근속 년수를 갱신하였다. 심지어 이대호도 은퇴했는데 김강민은 더 뛴다...

  • 최근에는 롯데 팬들보다 키움 히어로즈의 팬들이 김강민의 이름만 봐도 치를 떨 정도로 싫어한다. 가을 야구에서 만날 때마다 키움 상대로 엄청난 임팩트의 홈런을 선보이며 키움을 좌절시켰기 때문. 김강민의 통산 포스트시즌 홈런 6개 중 5개가 키움을 상대로 기록한 것이다.[33] 게다가 모든 홈런이 키움의 한두 점 차 리드나 동점 상황에서 터져나온 치명적인 홈런이다보니 그 충격이 더 할 수밖에 없다. 특히 2022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의 끝내기 홈런은 시리즈의 향방을 사실상 결정지은 것은 물론, 김강민이 한국시리즈 MVP가 되는데 큰 영향을 주었을 정도로 엄청난 한 방이었다.

  • 나이가 40대에 진입했음에도 중견수 주전으로 나오는 일이 많다 보니 팬들 사이에선 노인학대라며 차기 주전 중견수를 발굴하지 못해서 김강민이 계속 출전하는 웃픈 상황을 자조하는 밈이 있다. 다행히도 2020 시즌에 최지훈을 발굴하여 후계자를 찾았지만 최지훈이 경험이 부족하고 21시즌에 부진하다 보니 여전히 김강민이 주전인 지라 김강민이 출전하면 노인학대라는 글이 꽤나 올라온다. 그럼에도 세 경기 연속 홈런에 여전한 수비실력을 보여주다 보니 강제로 은퇴를 할 수 없는 선수로 취급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 2021년 6월 22일, LG와의 경기에서 팀이 13대 1로 지고 있었던 9회초 1아웃 상황에 등판하여 ⅔이닝 1사사구 1피홈런을 기록하였는데, 평균구속 135KM에 최고 구속이 무려 146km/h[34]을 찍었다. 김원형 감독이 부상을 염려하여 가볍게 던지라고 주문했는데 오히려 컨트롤이 안 돼서 홈런을 맞았고, 그 뒤부터 세게 던지다 보니 146이란 구속이 나왔다고 한다. 김강민의 그런 승부근성에 학을 뗀 김원형 감독은 아무래도 다칠 것 같다며 다음부터는 투수로 올리지 않겠다고 밝혔다.

  • 유치원 학부형 계주에 참여했다고 한다.# 2021년에 올라온 글이지만 실제론 2014년에 있었던 일이 뒤늦게 발굴된 거라 한다.# 2021년 기준으로도 나이가 무색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지만, 2014년에는 32도루(커리어 하이)를 기록했을 정도로 지금보다 더 빨랐기 때문에, 치트키 그 자체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돌아온 불타는 그라운드 1화(14분 지점부터)에서 밝히길 세게 뛰지 않았고, 역전시키지도 않은 걸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 선수 경력이 긴 만큼 팬층도 두텁다. '별빛 김강민'이라는 김강민 팬클럽이 있을 정도다. 또한 그만큼 김강민의 팬서비스가 좋은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슼튜브의 콘텐츠 중 하나인 'W라디오'에 나와 시청자 사연을 읽어주는 코너에서 신인 시절, 자신을 응원하던 꼬마 아이를 10여 년이 지난 뒤에도 기억하는 모습을 보여줘 화제가 되었다. #[35]

  • 동갑내기 스타인 추신수가 오랜 메이저리그 생활을 끝내고 불혹에 다가선 나이에 SSG 랜더스로 오면서 KBO 데뷔를 하였는데 이때 김강민 본인이 추신수의 팀 적응을 도와주기도 하였다. 나이가 동갑인데다가 팀 내에서도 최고참이라서 그런지 서로 간의 우애가 매우 두터운 편이다.


  • 2023년 기준으로 생년월일이 3위이지만[36] KBO 경력으로 보면 최장수 선수이다.[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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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격편
수비편
  • 2022년 한국시리즈에서의 활약으로 인해 데뷔 후 22년만에 처음으로 CF 광고를 찍게 되었다. 모기업인 신세계그룹 계열사의 할인행사인 쓱데이 광고로 김강민이 타석에 들어서 한우, 삼겹살, 계란, 세제 등 각종 식료품과 생필품을 쳐주는 내용과 반대로 수비에서 물건들을 잡아내는 내용이다.

6. 관련 문서[편집]


[1] 주전으로 도약한 2007년부터 계속해서 주로 맡고 있는 포지션이다. 본래 투수로 입단하고 2군에서 내야수로 뛰기도 했지만 외야수 전향을 권유받았고, 전향 후 점차 수비력이 좋아지며 2000년대 후반부턴 리그를 대표하는 수비수에까지 이름을 올렸다. 수비가 궤도에 오른 이후로 노쇠화의 기미 없이 꾸준히 좋은 수비를 보여주고 있으며 불혹의 나이에 들었음에도 중견수 수비에 있어서 여전히 리그 상위권의 활약을 보인다. (2020 시즌 종료 기준 1480경기 출전)[2] 안타 김강민~ 안타 김강민~ 안타 김강민~ 오오오오~ 김강민~ 오오오오~ 짐승 강민~ 오 김강민~[3] 원곡 가사는 Ma n'a-tu so-le chiu bel-lo ohi-ne' 'o so-le mi-o sta-nfron-teate 'o so - - le'o so-le mi-o sta-nfron-tea te sta-nfron-tea te x2[4] 흔히 얘기하는 '파란슼'(창단 당시부터 2005년까지 썼던 로고가 파란색이어서 그렇게 부른다.) 시절부터 현 SSG까지 모든 팀로고를 달아본 선수는 김강민과 2005년 입단한 내야수 최정 둘뿐이다.[5] 다른 선수는 진갑용임창용.[6] 외야수 중 최고 수비력를 놓고 경쟁구도를 펼쳤던 이우민이종욱이 타격부진이나 부상 등의 이유로 경기에 출장하지 못하거나 나이가 들면서 수비력이 쇠퇴하는 반면, 김강민은 궤도에 오른 이후론 수비력을 꾸준히 유지했다. 이제는 유한준과 함께 단 둘만 있는 공격이 가능한 베테랑 외야수로 꼽힌다. 그나마도 유한준은 지명타자로 나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리고 유한준이 2021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며 사실상 유일한 존재가 되었다.[7] 세부적으로 말하자면 갖다 맞히는 능력은 적절하지만 월별 기복이 있는 스타일이다. 장타력은 어느 정도 한방이 있는 수준은 된다.[8] 본인은 인터뷰를 통해 일부로 그런 것이 아니라며, 어떻게 그렇게 짧은 시간에 그런 판단을 할 수 있겠냐며 극구 부인했지만... 두 발을 동시에 떼며 점프하는 듯한 모션이나 번트 타구 등을 고려해봤을 때 병살을 피하고자 일부러 헤딩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9] 결과적으로 그 이닝에서 2점 선취득점을 올릴 수 있었다.[10] 다만 2023년을 기준으로 이젠 나이가 나이인지라 2루에서 홈으로 들어오는 주루 플레이를 하고나면 예전에 비해 많이 힘들어한다[11] 단, 본인이 부진해서 못 뛴 적도 많다.[12] 2010, 2012, 2013, 2014, 2019[13] 주전보다 백업으로 자주 나온 것을 감안해도 나이에 비하면 대단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참고로 백업으로 나올 때도 빠르면 3회, 늦어도 7~8회 정도에 주로 투입되었다.[14] 과거 김강민 본인도 언론 인터뷰를 통해 동일한 입장을 밝힌 바가 있다. 김강민은 누구 하나라도 "왜?"라고 한다면 당연히 안 해야 된다며 모두에게 인정받은 레전드만이 영구결번이라고 설명을 덧붙혔다.[15] 정확히는 박경완 1명 뿐인데, 박경완은 선수로서의 입지는 김강민과 비교할 수 없이 높으나 프랜차이즈, 원 클럽맨으로서의 입지는 김강민보다는 떨어진다. 김광현과 최정이 영구 결번 입성을 예약해둔 상태이며 이 둘의 결번 이후에는 다른 팀 못지 않게 커트라인이 올라가겠지만, 이 둘은 김강민 뒤의 차례가 될 것이다. 만약 김강민이 이들보다도 늦게 은퇴한다면 오히려 그게 영구결번 사유가 될 만하다[16] 영구 결번까지는 아니더라도 1군에서 어느 정도 이상의 성과를 낸 원 클럽 플레이어에게는 꽤 성대하고 알찬 은퇴 행사를 치러줬다.[17] 기재된 이영미 유튜브 채널 인터뷰 뿐만 아니라 다른 언론사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내용을 몇 차례 언급한 바 있다.[18] 최정은 2023 시즌 기준으로 SSG에서 19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으며, 김강민과 4시즌 차이가 나는데 비해 나이는 5살 어리다.[19] 만화가 최훈의 프로야구 카툰에서는 늑대인간 비슷한 모습으로 묘사된다.[20] 공교롭게도 이미래는 당시 SK의 치어리더 이름이기도 했다. 현재는 NC 다이노스를 거쳐 한화 이글스로 이적했다.[21] 예시로 2021년 5월 23일 문학 LG전에서 앤드류 수아레즈를 상대로 홈런포를 쏘아올리며, 오원석과 함께 고졸신인들의 활약이 돋보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22] 심지어 쓱튜브에서도 은근슬쩍 김강민의 자막 위에 01년생이라고 적어놓기도 한다.[23] 김강민은 SK에 지명을 받기 전까지 인천과 연고가 전혀 없었던 터라 당연히 자취를 할 수밖에 없었다. 입단 초기 인하대 후문 인근 빌라촌에서 자취를 해야 했던 것은 이유가 있다. 입단 후 한동안 2군에 머물렀던 그의 입장에서는 당시 2군 경기장인 SK 드림파크까지 걸어서 출퇴근해야 했고 인천에서 자취하는 비인천 출신 청년들이 주로 많이 사는 자취방 밀집지역 중 하나가 인하대 후문 쪽이어서 그 곳에서 자취하기로 했던 듯하다. 사실 박재상, 조동화, 박정권 등 또래의 동료들과도 왕조 개창 전까지 인하대 후문 부근 빌라촌에서 살면서 어울렸다. 넷 다 과거 20대때 추억하면 인하대 후문이나 용현동, 학익동에서 같이 놀던 얘기를 꺼낸다. 2군 구장이 문학구장에서 아예 먼 강화도에 있는 현재는 강화도 하숙집이나 빌라 등에서 자취를 하는 선수들이 많다.[24] 팀 커리어는 4명 중에 제일 좋지만, 이들에 비해 2군 생활을 오래했고, 주전으로 발돋움 하기까지도 기간이 꽤 길었기에 통산 기록이 가장 떨어진다. 다만 중견수 수비가 궤도에 오른 후론 항상 수비 잘하는 선수로 거론 되어왔고 타격도 2010년을 기점으로 성장하여 종합적으로 봤을 때, 국가대표급으로 성장하였기에 한 시기를 대표하는 중견수 그룹으로 묶이기에 부족함은 없다. 좀 더 세세하게 들어가자면 언급된 셋은 2000년대 중반부터 활약이 두드러졌다면, 김강민은 후발 주자로 2010년부터 그런 별칭을 얻었다.[25] 2016년 1월 13일 《라디오볼》에서 언급.[26] 류현진이 무릎팍도사에 나와서 증언한 바에 의하면, 볼을 던져도 쳐냈다고 한다(...)[27] 투수-내야수(2루수)-외야수[28] 심지어 패대기 송구는 2008년2009년 2년 연속으로 했다.[29] 이게 일종의 습관성일 수도 있는데 일본프로야구의 살아있는 전설 카네모토 토모아키히로시마 도요 카프 시절 주전 꿰차기 전부터 주전되고 나서 무시무시한 타격으로 각성했을 때에도 수비할 때 저런 정줄놓는 송구와 패대기 송구를 해대서 경기 끝나고 감독에게 매번 살인펑고를 받으면서 수비연습을 했다고 한다.[30] 여담으로 0번을 쓴 이유는 남는 번호가 없어서 단 거라고. 이후 지금까지 계속 쓰고 있다고 한다.[31] 게다가 김강민은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으로 병역특례를 받았기 때문에 군 복무를 위해 팀을 떠난 적도 없었다.[32] SSG의 현역 선수 중 가장 유력한 영구결번 후보로는 최정이 있다. 무슨 일이 있지 않는 이상 100% 확정이다. 김광현 역시 팀에서의 상징성으로 치면 만만치 않고 2022년에 복귀했기 때문에 영구 결번 확정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최정이나 김광현이나 아직 30대 중반의 나이이기 때문에 은퇴까지의 시기는 꽤 먼 편이기에 그나마 그 전에 영구결번이 생긴다면 현재로썬 김강민이 가장 유력하다. 김강민은 둘에 비하면 기록적인 면은 좀 떨어지긴 해도 팀의 몇 안 되는 원 클럽 맨에 주전으로 자리잡은 왕조 시절부터 팀에 꾸준히 기여한 부분도 많으며 공격적인 스탯은 떨어져도 수비 부분은 매우 좋기 때문에 영구결번의 확률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SSG는 영구결번이 박경완 단 1명만 존재하고, 애초에 KBO 구단들이 영구결번을 주는 사례가 굉장히 적다는 걸 생각하면 확률이 높진 않다. 그래도 영구결번은 명예의 전당이 아니라는 말이 있는 만큼 팀 내 상징성 등으로 보면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33] 2018년 플레이오프에서 3개, 2022년 한국시리즈에서 2개.[34] 문학 야구장 전광판 기준으로는 145.7km/h[35] 이 당시 사연의 주인공은 수험생이어서 김강민의 친필 사인이 담긴 실착 유니폼을 선물로 주어 또 화제가 되었었다. # 여담으로 이 학생은 응원에 힘입어 대학도 잘 갔다고 알려졌다.[36] 1위는 추신수, 2위는 오승환[37] KBO에서 23년차이며 추신수는 선수시절 대부분을 MLB에서 보내고 KBO 경력은 3년차이며, 오승환은 대졸 선수로, 2005년에 입단하고, NPB와 MLB를 거친 전례가 있다. 반면 2022년에 은퇴한 이대호와 입단 동기이기는 하나, 이대호 또한 NPB와 MLB를 거쳐 6년의 공백이 있었기에 2022년부터 최장수 선수이기도 했다. 2021년에는 그보다 1년 선배인 유한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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