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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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003년 12월 26일에 SM엔터테인먼트에서 데뷔한 대한민국의 남성 듀오 보이그룹이다.[6][7]
그룹명인 동방신기는 동방(東方)의 신(神)이 일어나다(起)는 의미이다.
2. 멤버[편집]
2.1. 전 멤버[편집]
자세한 내용은 JYJ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특징[편집]
캐치프레이즈는 We are T! 2인조 재편 이후이자 데뷔 9년차에 접어들 쯤에 고안된 인사법으로 팬들과 함께 진행하는 인사법이다. 동방신기가 "We are~"라고 선창하면 팬들이 야광봉 2개로 T자를 만들면서 T라고 외친다.[8]
빅뱅, 소녀시대, 원더걸스가 2세대 아이돌의 대중화를 이끌었다면 동방신기는 2세대 아이돌의 시발점이다. 다른 소속사에서 2세대 아이돌 그룹이 데뷔하기 전까지, R&B 소울 발라드가 가요계를 잠식시킨 시기에 사실상 비교적으로 대중 트렌드를 유지하며 활동한 유일한 댄스 아이돌이었다고 볼 수 있다.
대한민국 아이돌 그룹으론 처음으로 앨범 판매량 총 1000만장이라는 기록을 달성했다. 2023년 기준으로 앨범 누적 판매 기록 15,548,060장이라는 위엄을 보이고 있다.[9]
3.1. 로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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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 개그맨 진나이 토모노리가 처음 '東方神起'라는 이름을 보고 'ひがしかたかみおき(히가시카타 카미오키)'로 읽었는데 무슨 엔카 가수 이름인 줄 알았다고 한다. '토-호-신키'는 음독이고 '히가시카타카미오키'는 훈독으로 읽은 것이다.[2] 올바른 병음은 아니며, 东方神起를 표준중국어 기준으로 정확한 한어병음으로 표기하면 Dong Fang Shen Qi가 된다.[3] 방송 데뷔를 먼저하고 음반이 후에 나온 케이스로 SBS <보아&브리트니 스페셜> 출연일인 2003년 12월 26일이 공식 데뷔일이다.[4] 이전에 인터내셔널 싱글로 〈Hug (International Ver.)〉를 발매한 적이 있으나, 공식적으로는 〈Stay With Me Tonight〉을 일본 메이저 데뷔 싱글로 친다.[5] 5인조 시절에는 R&B, 아카펠라가 중심이었으나, 2인조로 개편하면서 일렉트로니카가 주류가 되었다.[6] 음반이 나온 날짜는 2004년 1월 14일이나 공식 데뷔일은 2003년 12월 26일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방송 무대로 먼저 데뷔하고 음원은 나중에 발매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수만의 친형이 운영한 스타월드에서 데뷔했던 걸그룹 슈가도 이런 케이스였다. 소속사인 SM 엔터테인먼트에서도 모든 데뷔 행사는 12월 26일에 맞춰 진행하고 있다.[7] 데뷔 당시에는 5인조 그룹이었으나 2010년 3월 24일까지 6년 3개월 간 5인 체제로 활동하였고, 2010년 8월 21일부터 SMTOWN LIVE 투어로 2인조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5인조로서 마지막 스케쥴은 2009년 12월 31일 NHK 홍백가합전이었고 녹음해둔 일본 싱글 시간을 멈춰서가 발매된 날짜가 2010년 3월 24일이다. 탈퇴 멤버 3명의 이름이 공식적으로 프로필에서 삭제된 시점은 SM엔터테인먼트와 JYJ가 소송을 끝낸 2012년 11월 28일. 후에 밝히기를 첫 무대 당시 2인조로 확정된 상황은 아니었고 내부에서는 멤버 추가 영입 등 여러 방안이 있었다고 한다. 이 공연을 보고 이수만이 둘이서 해도 되겠다는 판단을 내렸고 2010년 11월 23일, SM 엔터테인먼트의 공식 오피셜(일명 분홍 공지)이 올라왔으며 본격적으로 2인조로 활동한다.[8] 원래는 멤버들이 다 같이 허리를 숙이면서 "안녕하세요 동방신기입니다"라고 인사했지만, 동방신기 멤버들이 SUPER JUNIOR, 소녀시대, SHINee의 재치 발랄한 캐치프레이즈가 부러워 2012 TONE 투어에서 제안한 이후로 사용하고 있다.[9] 2015년 12월 19일 기준 한국 5,104,940장, 일본 9,038,57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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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주년 TENSE 전까지는 다른 상징이나 로고 없이 東方神起 한자를 사용했다.
3.2. 인기와 위상[편집]
2000년대 중반 데뷔한 2세대 아이돌의 시초로 여겨지는 그룹이며, 동세대 아이돌 중 가장 독보적인 인기와 팬덤 규모를 자랑했던 그룹이다. 5명으로 활동했던 2004년~2009년 사이에는 사실상 팬덤과 인기로는 따라갈 그룹이 없었으며[10] , 특히 10~20대 팬층에서 동방신기의 인기는 절대적이었다. 5년 동안 총 7개의 대상[11] 을 휩쓸었으며 2006년 SBS 가요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지상파 마지막 가요대상 수상자로도 남아있다. 또한 음악방송에서 총 49회 1위[12]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13]
2세대 아이돌의 시초인만큼 1세대와 달리 온라인에서의 팬 활동이 아주 활발했는데, 동방신기의 공식 팬카페인 <유애루비>는 전성기 시절 100만명의 회원수를 찍었으며 멤버 개개인의 팬카페도 기본 10만에 가까울 정도로 회원수가 많았다. 또한 기존 오프라인에서의 화력도 엄청나서, 2007년~2008년 드림콘서트 당시에는 3만 5천명의 관객들이 입장해 2세대 아이돌 중 드림콘서트 입장인원 최고수를 찍었다.[14] 2000년대 중후반 드림콘서트의 3층 자리는 늘 동방신기의 팬클럽인 카시오페아 차지였다.[15]
무엇보다 동방신기는 이전의 케이팝 가수들과 달리 일본 시장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첫 보이그룹으로 평가받는다.[16] 2005년 국내에서 최정상의 자리를 찍은 뒤 일본으로 건너가 멤버 모두가 방송에서 자유롭게 회화가 가능한 수준이 될때까지 일본어를 배웠으며 상가 계단에서 라이브를 하는 등 바닥부터 올라오는 고생을 한 끝에 2000년대 후반부터 탄탄한 입지를 만들었다. 2009년에는 The Secret Code로 도쿄돔 입성이라는 쾌거를 이뤄냈으며 2013년 TIME, 2015년 WITH, 2017년 Begin Again, 2019년 XV, 총 4번의 돔투어로 해외 아티스트 사상 가장 많은 일본 돔 공연을 가진 가수로 기록되었다. 또한 NHK 홍백가합전에 3차례[17] 출연할 정도로 성공을 거뒀다.
2013년에는 7만명 이상의 수용인원을 자랑하는 닛산 스타디움에 입성하여 2일 동안 개최하여 일본에서 외국인 가수 최초로 그리고 유일하게 이틀 대관 공연을 한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2018년에는 Begin Again 투어를 통해 100만명을 동원함과 동시에 닛산 스타디움 3일 연속 공연을 확정하며 자체 기록을 경신했다. 해외 아티스트는 물론이고 일본 아티스트를 통틀어도 전무하며 개장 이래 최초 기록을 동방신기가 처음으로 이뤄냈다.
소송으로 인한 3년에 가까운 공백기와 소속사 후배 EXO의 데뷔로 인한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로 인해 현재의 팬덤 화력은 전성기에 비해서는 못 미치나, 팬덤 충성도는 연차에 비해 탄탄한 편이며 2인조 개편 이후 일본에 활동을 집중한 덕택에 얻은 확실한 입지와 강력한 티켓 파워 덕분에 SM엔터테인먼트의 매출을 책임지는 대표 아티스트이다. 2015년 SM 소속 아티스트별 매출 비중 1위, 2018년 군백기 이후 2위를 기록했음을 증권사 리포트로 확인된바 있다.
3.3. 콘셉트[편집]
동방신기는 아시아 음악시장을 제패를 목표로 기획된 팀이였으며 데뷔한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2004년 11월 25일 〈Hug〉로 영어, 일본어[18] , 중국어 싱글을 발매한다. 또한 중국 활동을 위해 중국인 멤버를 영입할 계획까지 있었으나 팬덤의 내부 반발과 보아의 성공적인 일본 진출을 기반으로 동방신기 또한 일본 위주의 활동을 펼치게 되어 중국 음악시장을 타겟으로 삼고자 했던 본래의 기획 의도와는 다른 활동 노선을 걷게 된다.[19]
팀 이름을 짓는 과정에서 'SM5', '드림팀', '오장육부', '전.먹.고(전설을 먹고 사는 고래)' 등 다양한 이름이 거론되었다. 이후 영화 《동방불패》를 보고 영감이 떠오른 이수만의 아이디어로 이름을 동방신기로 결정한다.[20] #
중국 시장을 어필하기 위한 전략으로 멤버들의 활동 가명을 이름 앞에 예명을 붙인 4글자 이름으로 작명했다. 영웅재중(英雄在中, Hero)은 영웅이라는 뜻을, 유노윤호(瑜鹵允浩, U-Know)는 "You know?"라는 단어를 통해 상대방을 알고 항상 이해하려는 마음과 빛과 소금이라는 뜻을, 시아준수(细亞俊秀, Xiah)는 아시아의 별이라는 뜻을[21] 가지고 있으며, 믹키유천(秘奇有仟, Micky)은 박유천의 영어 이름이다.[22] 마지막으로 최강창민(最强昌珉, Max)은 아시아의 최강이 되겠다는 포부를 담았다고 한다. 이런 설정은 H.O.T.의 강타, 신화의 신혜성, 전진을 토대로 만들어진 예명 마케팅의 연장선상이자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사례이며 향후 EXO 멤버의 초능력 콘셉트와 SMCU로 이어진다. 참고로 이로 인해 당시 10대 청소년들과 방송가에서 4글자 이름 짓기 열풍이 있었다.
댄스 음악이 점차 주춤해지고 발라드와 R&B가 음원차트에서 강세를 띠기 시작했던 기획 당시 가요계 판도에 맞게, 이후 지향하기 시작했던 SMP 장르로 정착하기에 앞서 발라드곡을 통한 실력파 그룹으로의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 아카펠라 댄스 그룹이라고 했는데 그에 맞게 각 멤버마다 음역대 포지션을 부여받았다.[23]
3.4. 역량[편집]
3.4.1. 5인 시절[편집]
1990년대 중반 댄스 음악의 강세와 아이돌의 등장으로 인해 가요프로에서도 립싱크가 주를 이룬 결과, 댄스 가수와 아이돌 그룹의 가창력 논란이 꼬리표처럼 따라붙게 되었고 이는 자연스레 아이돌 그룹의 한계와 편견으로 굳어져 갔는데 동방신기 역시 이러한 논란에서 마냥 자유로울 순 없었다. 'Hug' 활동 당시에는 멤버들의 앳된 목소리와 댄스곡이지만 강도가 세지 않은 안무 덕분에 어느 정도 커버가 되었지만 'The Way U Are'를 기점으로 댄스곡 위주의 활동을 하면서 가창력 논란은 점차 불거지기 시작했다.[24] 이는 동방신기도 본래 H.O.T.와 신화의 계보를 잇는 SMP의 적장자로서 기획된 팀이자 'Hug'를 데뷔곡으로 채택한 것은 동방신기의 자리매김을 위한 일시적인 전략이었음을 시사하는 바이기도 하다.
청아한 음색과 큰 성량으로 주로 메인 멜로디를 담당했던 영웅재중, 2세대 아이돌 중 손에 뽑는 완급조절과 보컬실력을 가진 시아준수와 팀내 역할 분담에 의해 대부분 시원한 고음을 담당했던 최강창민 , 그리고 무대에서 퍼포먼스로 시선강탈을 담당했던 리더 유노윤호, 매력적인 저음과 미국 출신으로 영어랩을 담당했던 믹키유천까지, 이렇게 다섯 멤버의 조화가 당시 아이돌 침체기에 이르렀던 가요계에 다시 아이돌붐을 일으키는 2세대 아이돌의 시작점이 되었다.
5인 시절 정규 앨범 4장으로 200만장과 싱글 + 스페셜 앨범 70만장으로 총2,684,982장의 (2008년기준 263만장) 판매고를 올렸고 일본 앨범 330만장과 5인조로 발매한 마지막 일본 음반 <時ヲ止メテ>가 에이백스 집계 기준 72만장을 판매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스페셜 음반을 제외한 총8장으로5인 활동이 종류되기 전까지 국내에서 2,300,000장을 판매했다.
이수만이 밝히길 동방신기의 멤버들은 당시 SM의 남자 연습생 TOP 5였는데 원래 각자 다른 그룹에서 그 그룹의 에이스로 데뷔할 예정이었지만 당시 SM의 상황이 영 좋지 않았기 때문에 확실하게 성공할 팀을 만드는 쪽으로 방향을 바꿔 동방신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3.4.2. 2인조 재편 이후[편집]
이전의 동방신기가 화려한 퍼포먼스와 함께 각 멤버들의 보컬과 팀의 화음을 내세우는 아카펠라 팀이었던데 비해 3인의 탈퇴로 인한 팀 재정비 후에는 주로 중저음 담당이던 유노윤호는 중간파트도 담당하고 고음 담당이던 최강창민 역시 중간 파트와 저음까지도 커버하게 되었다.
노래뿐만 아니라 퍼포먼스 역시 노래에 맞춰 두 멤버의 단독 퍼포먼스를 교대로 연출하거나 두 멤버가 주축이 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후 끝없는 노력을 바탕으로 다년차에 걸맞은 보컬과 퍼포먼스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3.5. 피지컬[편집]
유노윤호와 최강창민이 5인 시절부터 팀 내 최장신들[25] 이였던 덕에 2인 체제로 전환한 이후엔 평균 신장 184cm인 그룹이 되었다. 2011년 컴백 이후 '왜 (Keep Your Head Down)', 'Catch Me', 'Humanoids', 'Something' 등 타이틀곡이 퍼포먼스 위주로 바뀐 배경에는 두 멤버의 조화롭고 우월한 피지컬도 작용했다. 번갈아 가며 하는 페어 안무와 거울에 비춘듯이 서로를 미러링 하는 안무가 그 예시. 다만 이런 피지컬을 내세운 나머지 항상 제복과 수트만 입혀서 팬들은 아쉬움이 남기도.
특히 일본 방송에 출연할때마다 남들보다 위에 우뚝 서 있는 모습이 포착되어[26] 종종 트위터에서 화제가 되고 2ch에서 열폭 섞인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 2017 FNS 가요제 # 2018 엠스테 #
일본 활동 문서에도 서술되어 있듯이, 뛰어난 실력과 더불어 이러한 비주얼과 피지컬을 내세운 신사적이고 깔끔한 이미지로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4. 음반[편집]
개별 싱글 및 앨범의 구체적인 발매 정보에 대한 내용은 동방신기/음반 목록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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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로곡 ]
4.1. 미발표 음원[편집]
- Big time: 2010 SMTOWN LIVE에서 공개된 최강창민의 솔로곡. 자그마치 댄스곡이다.
- 이것만은 알고 가 (일본어 Ver.): 2012년 TONE 투어에서 공개되었으나 아직까지 음원으로는 공개되지 않았다.
- Santa Revolution (한국어 Ver.): 2013년 TIME SLIP 콘서트에서 공개된 유노윤호의 솔로곡, 저작권협회에 등록되어 있는것까지 확인 되었지만 일본어 버전만 U KNOW Y를 통해 공개되었다.
- Uptown Boys: T1ST0RY 투어의 오프닝 곡.
- ANDROID (한국어 Ver.): 일본 싱글 곡인 ANDROID의 한국어 버전으로 T1ST0RY 콘서트에서 2절까지 공개되었다.
- Somebody To Love (한국어 Ver.): T1ST0RY 콘서트에서 처음으로 한국어 버전이 공개되었다.
- Show Me Your Love (동방신기 Ver.): 2014년 T1ST0RY 콘서트에서 동방신기 버전이 처음 공개되었으며 2005년 발매된 원곡에서 초반과 후반의 랩 가사가 수정되었다.
- BANG! (한국어 Ver.): 2014년 T1ST0RY 투어에서 공개된 유노윤호의 솔로곡이나 일본 솔로앨범인 <U KNOW Y>에서 일본어 버전만 공개되었고 아직 한국어버전은 공개되지 않았다.
- Shout Out: 2014년 TREE 투어에서 최초로 공개됐으며 유노윤호의 솔로곡이다.
- Starlight (너의 자리): 2015년 T1ST0RY &...! 콘서트에서 처음 공개된 곡. 동방신기의 입대 전에 발매한 스페셜 앨범에 수록될 줄 알았으나 아니었고 심지어 정규 8집에도 수록되지 않았다.
5인조 버전:
- Maximum: JYJ가 탈퇴하기 전에 녹음한 곡으로 2010년 상반기 컴백으로 예정되어 있던 정규 5집의 타이틀 곡이였다는 얘기가 있다. 소송으로 인한 공백기 동한 유노윤호랑 최강창민이 5인조 버전의 녹음본으로 안무 연습을 했다. 하지만 2019년 전 멤버 믹키유천의 필로폰 투약 사건으로 한국 연예계에서는 사실상 퇴출된 상황이라서 공개 가능성은 없다. #
- 이별아: 영웅재중이 주연으로 출연한 《천국의 우편배달부》 OST다. 영화에 수록되었으나 소송 시기에 맞물려 발매되지 못하고, 10년 가량이 지난 후 작곡가 미친감성의 유튜브에서 공개되었다. #
5. 뮤직비디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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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라이벌로 여겨졌던 SS501 역시 동방신기에게 수적으로 훨씬 열세였다. 그나마 2세대 중 동방신기에 비빌만한 그룹은 BIGBANG이 유일한데 빅뱅 역시 팬덤 규모와 앨범판매량 등은 전성기 시절 동방신기보다 떨어진다.[11] 2005 KM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최고 인기 뮤직비디오상, 2006 KM 뮤직 페스티벌 올해의 아티스트상, 2006 제16회 서울가요대상 대상, 2006 제21회 골든디스크어워즈 음반 대상, 2006 SBS 가요대전 대상, 2008 KM 뮤직 페스티벌 올해의 앨범상, 2008 제23회 골든디스크어워즈 음반 대상[12] 지상파에서 21회, 케이블에서 28회[13] 공중파 1위가 적은 이유는 동방신기가 한창 활동하던 2000년대 중반 무렵 지상파 방송의 음악 프로그램에서 순위제를 폐지했기 때문이다. 음악중심은 2006년부터, 뮤직뱅크는 2001년~2007년 사이 순위제를 운영하지 않았으며 인기가요는 순위제를 폐지한 대신 매주 한 팀의 가수를 선정해 뮤티즌송을 수상했다.[14] god와 비슷한 수치다. 여담이지만 드림콘서트 역대 최다 입장인원을 기록한 가수는 H.O.T.로, 1999년 드림콘서트 때 무려 10만명의 관객이 입장했다.[15] 드림콘서트가 무료로 운영된 시절에는 이 3층 자리가 당시 가요계 최고의 인기그룹을 의미하는 척도였다. 서태지와 아이들, H.O.T., god도 모두 거쳐갔던 자리다.[16] SM의 일본 진출은 S.E.S. 시절부터 있었지만 S.E.S.는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뒀고, 신화는 이름 정도만 알리는데 성공했다. 일본 진출 성공의 스타트를 끊은 게 보아와 동방신기였다.[17] 2008년 59회, 2009년 60회, 2011년 62회[18] 일본 메이저 데뷔는 2005년 4월 27일 발매된 싱글 1집 〈Stay With Me Tonight〉이다.[19] 중국 위주의 활동은 슈퍼주니어와 EXO가 시도하였으나 두 그룹 모두 중국인 멤버의 탈퇴, 한한령 등의 이유로 중화권에서 오랜 시간 활동하지 못한 채 사실상 활동이 끝났고 NCT의 중화권 담당 유닛인 WayV가 고정적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SM에서는 동방신기부터 NCT의 데뷔까지를 생각해보면 매우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제대로 된 중화권 활동을 하게 된 셈.[20] 썰전에서 희철은 영웅재중과 유노윤호가 처음에 팀명을 듣고 거의 울상이 되었다고 말했다.[21] 본인이 직접 지은 것이라고 한다.[22] 한자 이름인 '비기'는 가요계의 숨겨진 무기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23] 하이: 최강창민, 미들하이: 시아준수, 메인: 영웅재중, 미들로우: 유노윤호, 로우: 믹키유천. 2인조로 개편한 이후에는 파트를 구별하지 않는다.[24] 다만 당시 MBC와 KBS에서는 100% 라이브를 원칙으로 했으며 AR조차도 허용되지 않았다.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사례로 2004년 정규 1집 활동 당시 SBS와 케이블 채널에서는 후속곡을 'Tri-Angle'로 활동했던 반면 립싱크가 불가능했던 KBS와 MBC에서는 스페셜 캐롤 앨범 타이틀곡인 '마법의 성'으로 활동한 점과 2집 활동 당시 MBC 쇼 음악중심 출연 클립이 있다.[25] 유노윤호 183cm, 최강창민 185cm[26] 파일:동방신기_일본방송_캡쳐.jpg
옆에 KAT-TUN과 Perfume이 서 있다.
옆에 KAT-TUN과 Perfume이 서 있다.
6. 수상[편집]
6.1. 시상식[편집]
6.2. 음악방송 1위[편집]
6.3. 기타 수상 및 홍보대사[편집]
7. 활동[편집]
7.1. 국내 활동[편집]
자세한 내용은 동방신기/국내 활동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1.1. 미디어 활동[편집]
자세한 내용은 동방신기/미디어 활동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2. 일본 활동[편집]
자세한 내용은 동방신기/일본 활동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3. 공연 및 행사[편집]
자세한 내용은 동방신기/공연 및 행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팬덤[편집]
자세한 내용은 카시오페아(동방신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 여담[편집]
- 데뷔 초 카시오페아의 막장 행보로 인한 반감으로 일부 남성들이 동방신기는 '동쪽에서 방귀뀌는 신기한 기술(혹은 기생충)'이라고 비아냥대곤 했다.
- SuperStar SMTOWN에서 동방신기의 5인 체제 시절 곡들은 현재 'Rising Sun'과 '"O"-正.反.合.', '주문-MIROTIC', 'Hi Ya Ya 여름날'만 서비스하고 있는 데 이 곡들도 2012년 열렸던 "Catch Me" 콘서트 라이브 앨범의 음원으로 서비스하고 있다.
- 2004년 7월 MBC 코미디하우스의 '10분 토론'이라는 코너에서 김현철을 주축으로 한 개그맨들이 '서방신기'라는 이름으로 이들을 패러디하여 팬들로부터 집중포화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이즈마케팅이 어느 정도 통했는지 한번은 동방신기가 직접 코너에 출연하기도 했다. 당시 부른 곡은 정규 1집 수록곡인 'Thanks To'로 정식 발매 이전 아카펠라 버전으로 짤막하게 선공개하였다.
- 과거 예능 프로그램인 X맨 자막의 최대 피해자들이다. X맨 자막을 검색해 보면 동방신기의 지분이 엄청나다. 예를 들면 난리났다! 동방가문, 나왔다! 댄스신기, 속단할 수 없는 매력남 등등이 있다.
- 2인 체제 전환 이후로는 5인 체제의 동방신기와 구분짓기 위해 5인 시절은 '구동방', '오방신기', 2인 체제의 현재 동방신기는 '현동방'이라고 주로 부르고 있다. '이방신기'라는 표현은 팬들이 반기지 않으므로 사용을 자제하도록 하자.
- 5인 체제의 동방신기를 레전드라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음반 판매량과 팬덤 화력이 정점을 찍었던 <MIROTIC> 이후 팀이 분열된 것에 대한 아쉬움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이유로 5인 시절을 추억하는 올팬, 그리고 JYJ의 팬이나 카시오페아[29] 와의 마찰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곤 한다. 또한 1세대 아이돌 및 90년대 가수들을 재조명한 무한도전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시리즈 방송 이후 동방신기의 5인 재결성을 희망하는 의견 역시 적지 않게 오간다.
- 3인의 탈퇴 이후 SM 엔터테인먼트에 잔류한 두 멤버가 고스란히 동방신기라는 이름으로 컴백한 것에 놀랄 수는 있지만, SM의 관점에서 이를 설명하면 이해하기 쉽다. 동방신기는 SM 소속의 현역 아이돌 그룹 중 최고참에 속하는데다, 가장 화려한 전성기를 누린 일종의 상징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SM의 브랜드 가치, 더불어 후속 그룹의 런칭과 현재 활동 중인 그룹들의 미래 제시를 위해 SM에서도 꾸준하게 밀고, 포장해 줄 수밖에 없다. 동방신기가 깨지면 SM이라는 브랜드에 상당한 데미지가 오기 때문에 '동방신기'라는 이름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2001년 H.O.T.의 해체 이후부터 2003년 동방신기 데뷔 이전까지의 암흑기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2인조 개편 이후 일본에서의 높은 인기는 SM의 전략이 어느 정도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 KBL의 안양 KGC인삼공사에는 인삼신기라는 그룹이 있는데, 이 그룹을 모방하였다.
- 팀의 네임밸류와 위상에 비해 유튜브 뮤직비디오 조회수 화력이 타 아이돌들에 비해 다소 빈약한데 이는 유튜브가 점차 보편화되어가던 시기인 2009년이 멤버 3인의 소송 사건으로 인한 공백기와 겹쳤던 데다 SM엔터테인먼트가 동방신기의 2인 재편 이후인 2011년에 유튜브 계정을 새로이 개편하여 앞서 개설한 SM엔터테인먼트 채널에 게재된 뮤직비디오와 화력이 분산되었기 때문이다.[30]
- 유노윤호와 최강창민은 나 혼자 산다에 출연 했을때 숙소생활을 그만둔 후 서로의 집을 가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같은 멤버인데 너무 거리를 두는게 아니냐는 반응에 최소한의 선을 지켜나가면서 활동하는 것이 롱런의 한 이유라고 밝혔다. 다만 두 사람은 일본에서 10년 동안 숙소생활을 함께 하고 있다고 한다 .둘의 사이가 좋지 않냐고 묻는 일반인들이 있는데,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애초에 사이가 안좋으면 15년동안 같이 활동하기 어려우며, 무엇보다 인터뷰에서 "실제는 그런 얄팍한 유대가 아니거든요"라며 유대감을 밝힌 바가 있다.
- 방송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둘은 성격이 아예 정반대이다. 유노윤호가 열정이 넘치고 매사 적극적으로 눈에 불을 켜고 임하는 스타일이라면, 최강창민은 적재적소에 치고 빠지면서 타이밍을 잘 활용하는 스타일이다. 더 자세한 사항은 최강창민 어록을 검색해 보도록 하자. 이 둘의 온도차를 확연하게 알 수 있는 방송이 나 혼자 산다나 제대 후 출연한 해피투게더 4, 그리고 아는 형님이다.
- 일본 소설 '계절은 회전목마처럼'에서 '동방견문록'으로 패러디되었다.[34]
- 2016년 희철이 강타의 콘서트 게스트로 왔을 때 밝힌 바에 따르면 SM 내부에서는 동방신기의 두 사람과 같이 소속사 후배 연예인들의 군기반장 노릇을 하고 있다고 한다.
- 아는 형님 출연 당시, '나를 맞혀봐' 코너에서 최강창민이 유노윤호가 2011년 당시 최강창민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무대 시작 전 인트로 부분에서 "창민아 생일 축하한다!!"라고 외친 부분을 언급했는데, 이에 대한 폭발적 반응을 이끌어 냈으며 그 이후로 각종 SNS와 커뮤니티에서 계속해서 언급되면서 일종의 밈화가 되었다.
- 2007년 알럽 동방신기라는 도트그래픽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이 시판되기도 했다.
- 그래비티 폴즈에 등장하는 가상의 뮤지션 그룹 세브럴 타임즈의 한국어판 현지화명이 동방신기의 패러디인 "서방신기"로, 작중 멤버들의 예명도 동방신기 멤버들의 작명 방식을 충실하게 따라간다. 한국어 재더빙판 "괴짜가족 괴담일기"에 해당 로컬라이징이 적용되었다.
10. 논란 및 사건 사고[편집]
자세한 내용은 동방신기/논란 및 사건 사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1. 역대 프로필 사진[편집]
분류
[27] 수상자명은 동방신기였으나 엠넷과 이미 틀어졌던 SM은 보이컷을 선언해 2인은 불참하였고 대신 소송을 진행중이던 세 명이 시상대에 올랐다.[28] 성격도 정반대다. 리더인 유노윤호는 불같은 성격이고 최강창민은 물같은 성격이다. 이 성격은 어느잡지 인터뷰에서 본인들이 밝힌 적이 있다.[29] 카시오페아 중에서 동방신기가 원래부터 2인조였다고 밝히는 이들도 있다.[30] 반대로 비슷한 연차인 슈퍼주니어는 유튜브 화력이 상당한데, 1억뷰를 달성한 곡만 4곡이며, 5집 'Mr. Simple'은 1억 8,000만뷰를 달성했고, 8집 'Lo Siento', 6집 'Sexy, Free & Single', 7집 'MAMACITA (아야야)'는 조회수가 7,000~9,000만 뷰이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데뷔 연차는 비슷하지만, 슈퍼주니어가 본격적으로 해외 진출을 한 시기가 2009년이고, 그 무렵에 유튜브가 활성화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동방신기는 그때 소송으로 인해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31] 이것은 제대하고 복귀하는 인터뷰에서 밝혔다.[32] 특히 데뷔 15년차인데도 초심을 잃지 않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춤연습을 하는 유노윤호의 모습을 보고 놀랐다는 의견이 많다.[33] 한자를 훈독으로 읽었을 때[34] 멤버가 탈퇴하여 두 명이 남은 점까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