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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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왕관을 쓴 자는 편히 쉴 날 없나니.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헨리 4세>
2. 개요[편집]
왕관(王冠)은 왕이 머리에 쓰는 관이다. 한국 역사에서는 금관, 면류관, 익선관, 원유관과 통천관 등이 사용되었다.
어느 문화권에서나 대체로 귀금속과 보석 등으로 만들어진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고, 동아시아의 익선관처럼 천과 면 재질로 만든 것도 있었고, 초기 제정 로마처럼 나뭇가지로 만든 월계관을 쓴 사례도 종종 있다.
3. 문화권별 특징[편집]
3.1. 동아시아[편집]
전통적으로 동아시아 문명에서 왕관은 면류관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원래 면류관은 주나라 왕이 제사를 지낼 때 쓰던 모자였다. 그런데 동아시아 그 자체가 된 유교가 주나라의 예법을 그 기원으로 두면서, 유교에서 이상적으로 내세운 주나라의 왕실 문화를 따라한 동아시아 각국의 군주들은 주나라처럼 면류관을 쓰고 다녔고, 자연스럽게 '왕의 모자 = 면류관'이라는 인식이 생긴 것이었다.
그러다 위진남북조시대에 무제가 신하들로 하여금 복두 착용을 의무화한 일이 있었는데, 복두란 일종의 두건으로 현대의 반다나 같은 물건이었으나, 이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쓰고 벗기 편하게 딱딱하게 굳은 '관'의 형태로 변하면서 우리가 사모 혹은 칸무리라고 부르는 물건이 된다. 아무튼 이렇게 탄생한 사모는 원래 신하들의 것이었으나, 확실히 면류관보다는 관리와 착용이 편했으므로 군주들도 애용하게 된다. 물론 신하들의 것과 구분되도록 이제는 장식이 된[2] 사모의 날개 장식을 위로 향하게 했고, 이게 명나라 시기에 정립되어 익선관이 되었다.
이 익선관은 각 나라마다 외형이 미묘하게 다른 것이 특징. 명은 익선관 위에 용 장식을 올렸고, 말기 고려와 조선은 명의 제후국이란 의미에서 용 장식을 뺀 것을 사용했으며, 대남국은 조선과 다르게 비교적 중국의 눈치에서 자유로웠던지라 명 못지 않은 화려한 장식을 많이 달았다.
그 외에도 원유관이라는 왕관이 각국에서 애용되었다. 면류관처럼 원유관 또한 옛 중국의 제사 복장에서 유래되었으며, 특히 류큐 왕국의 군주들은 평상시에도 착용하고 업무를 보았다.
동아시아 문명권에 속하지만, 동시에 중앙아시아 유목 문명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북방계 국가들은 유교를 늦게 접했기에 상술한 면류관 등을 도입할 여지가 적었다. 특히 원나라와 청나라가 그랬으며, 때문에 이들은 각각 몽골족과 만주족의 관모에서 변형된 왕관을 쓰기도 했다.
3.1.1. 한반도[편집]
삼국시대까지만 해도, 한반도의 여러 국가들은 저마다의 특색있는 상당히 독창적이면서도 예술적인 금관을 제작했다. 특히 신라의 금관은 세계적으로도 그 유물적 또는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을 정도로 아름다움이 공인되었으며, 현대 한국인들도 한국의 왕관하면 대부분 신라의 것을 생각할 정도로 후대인들에게 크게 각인되어있다.
다만 신라 금관의 경우에는 그 크기 때문에 예식용이라거나 심지어는 아예 살아있을 때는 안 쓰고 능묘에 안치하기 위한 관이라는 말도 종종 나오는데, 일단은 평상시 썼다 안 썼다를 파악할 만한 명확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 학계의 입장이다.
위와 별개로 백제는 금관을 별도로 만들어 착용하지 않고, 오라간[3] 에 금제 장식을 달아 왕관을 겸했던 걸로 유명하다. 다만 백제도 특유의 금동관을 만든 것으로 보아 금관을 제작할 기술은 충분했고, 어쩌면 만들었는데 후손인 우리 시대까지 전해지는 것이 없을 뿐일지도 모른다.
이후 한반도의 왕관들은 통일 신라 시기에 당나라에서 면류관을 포함한 중국식 복제를 들여오면서 잊혀지고, 이후 윗 단락인 동아시아의 왕관사에 편입되고 만다. 예외적으로 발해가 원뿔이 달린 특유의 금관을 썼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4]
3.2. 유럽[편집]
왕관하면 바로 생각나는 문명권이다.
유럽의 왕관은 기본적으로 고대 그리스의 월계관에 그 뿌리를 둔다. 월계관은 왕관이지만 주재료가 나무라 관리하기가 힘들었고, 이 때문에 로마 황제들은 헬레니즘 시절부터 쓰인 왕관인[5] 디아데마를 쓰거나, 재질을 금속으로 바꾼 월계관을 착용했다. 그 중에 금속제 월계관은 시대에 따라 점점 태양관과 성벽관으로 개량되는데, 이 두 형식이 유럽 왕관의 직계 뿌리이다.
유럽의 왕조들은 왠만해서는 왕관을 바꾸지 않는다. 이는 군주가 바뀔 때마다 새 익선관을 마련한 동아시아와 대비되는 부분. 단순히 '군주의 권위' 정도만을 상징하는 타 문화권의 왕관과 달리, 유럽의 왕관은 '국가의 주권'과 '민족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물건이라 절대 함부로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괜히 대부분의 유럽 국가의 국장에 왕관이 그려져 있는 것이 아니다. 일례로 헝가리는 자국의 성 이슈트반 왕관을 박물관도 아니고, 자국의 제 1급 보안 시설인 국회의사당에 보관하고 있다.
때문에 왕조가 바뀌어도 이전 왕조의 왕관을 그대로 사용한다. 예를 들어 나폴레옹 1세가 이탈리아 반도를 지배하던 신성 로마 제국을 사실상 멸망시키고, 이탈리아의 국왕으로써 대관식을 치를 때 썼던 것은 기존 합스부르크 황가의 롬바르디아 철관[6] 이었다.
다만 유럽 국가 중에 특이하게도 동로마 제국은 군주가 바뀔 때마다, 그 군주가 이전 군주와 성이 같든 다르든 새 왕관을 제작해서 바쳤다. 때문에 동로마식 왕관은 시대의 유행에 따라 관의 형태가 상이하게 다른 것이 특징이다.
또한 유럽은 세속적인 의미의 군주가 아니어도, 관습상 군주와 비슷한 대우를 받는다면 왕관을 쓸 수 있었다. 교황을 비롯한 여러 기독교 종파의 총대주교들이 그러하며, 선거로 뽑히지만 타국의 국왕과 맞먹는 권위를 누렸던 베네치아 도제도 '코르노 두칼레'라는 왕관을 착용했다.
기본적으로 귀족들이 군인이었던 중세 시대 서유럽에서는 왕도 기사였기 때문에 투구 위에 왕관을 올리기도 했다.[7]
다음은 헨리 5세의 투구를 묘사한 기록이다.
이른 아침이 되자 잉글랜드 왕은 미사를 올리기 시작했다. 하루에 세 차례 미사를 연이어 올리는 것이 그의 습관이었다. 미사를 올릴 때 왕은 투구만을 빼고 갑옷을 완전히 입고 있었다. 미사가 끝난 후 투구를 가져오게 했는데, 매우 화려한 것으로, 황제의 왕관처럼 아름다운 황금띠가 둘러진 것이었다.
장 드 와브랭(Jehan de Wavrin), Chronicles, 1399-1422, tr. Sir W. Hardy and E. Hardy, 1887
3.3. 고대 이집트[편집]
역사가 굉장히 오래된 문명답게 일찍이 왕관을 써서 파라오의 권위를 드높였다. 안타깝게도 이집트식 왕관은 갈대나 야자수 섬유 등으로 만들어서 보존성이 극악이기에 현대까지 남아있는 실제 파라오의 왕관은 없다. 그래도 나르메르 팔레트나 투탕카멘의 가면 등으로 그 구조를 파악하기 쉬운 편이다.
우리가 흔히 고대 이집트라 부르는 시대의 그 이전 고대[8] 상이집트는 하얀색의 헤제트란 왕관을 썼으며, 하이집트는 빨간색 테슈레트란 왕관을 착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후에 두 나라를 무력으로 통일한 파라오인 나르메르는 통합의 의미로 두 왕관을 겹쳐서 '프셴트'라 이름 붙이고 쓰고 다녔다고 한다.
나르메르 시대 이후 가히 이집트의 상징이라 할 수 잇는 네메스란 왕관이 등장하는데, 사실 일반 이집트인들도 자주 썼던 두건에서 유래했다. 다만 반신인 파라오의 것이라 일반 이집트인들의 것과 다르게 크고 빳빳했으며, 태양신 라의 상징인 우라에노스를 장식으로 달았다.
전쟁에 나설 때는 투구 형식의 왕관인 '케프레시'를 착용했으며, 특히 람세스 2세가 해당 왕관으로 유명하다.
4. 무게[편집]
흔히 금관 같은 것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금이 꽤 고밀도이다보니 금의 비중이 높은 왕관을 쓰게 되면 목이 남아나지 않을것 같다는 말이 있지만... 왕관도 사람이 머리에 쓰라고 만든 물건이다. 그렇게 무겁게 만들지는 않는다. 다만 이게 여간 불편한지라 평상시에는 사용하지 않다가 대관식이나 행사 때만 사용하기도 하고 행사용과 실제 사용하는 것을 따로 만들기도 한다.
왕관의 무게는 신라 금관을 예로들면 '금관총 금관'이 0.692kg, '천마총 금관'이 1.262kg이다. 영국의 유명한 '제국 왕관'(Imperial State Crown)이 0.91kg 정도.
비교를 위해 방탄모의 무게를 예로 들면 한국군의 경우 1.1 kg, 미군이 쓰는 PASGT 같은 경우는 1.5 kg 정도 된다. 군필자라면 알겠지만 이걸 24시간 쓰고 다녀도 별 문제는 없다. 중세에 만든 진짜 튼튼한 철투구 같은 경우는 무거운 건 3kg에 달하는 것도 있지만, 그걸 쓰고도 얼마든지 전쟁했다.
물론 왕관의 경우는 아무리 왕이라도 조심조심 다뤄야 하기에 일상생활에 쓰고 있기에는 불편하겠고 고귀한 신분에 귀찮기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잠깐 머리에 쓰는 데는 문제 없다는 말.
엘리자베스 2세는 1953년 대관식을 회상하면서 "왕관이 너무 무거워, 고개를 숙이면 목이 부러질 것 같았다"고 증언했다. 참고로 영국 군주의 대관식 때 쓰는 왕관은 영국 제국관보다 훨씬 무거운 2.2 ㎏의 '성 에드워드 왕관(St. Edward's Crown)'이다.
5. 종류[편집]
6. 나무위키에 개별 문서가 있는 왕관[편집]
7. 언어별 명칭[편집]
라틴어로는 corona(코로나)라고 하며, 여기에서 파생되어 왕관을 뜻하는 말이 '코로나'인 언어들도 많다. 스페인어로는 라틴어와 동일하게 corona, 이탈리아어로는 coróna, 독일어로는 Krone 등. 영어의 크라운이나 북유럽의 크로네/크로나 역시 같은 어원. 영어로 대관식을 뜻하는 coronation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태양의 코로나 역시 형상이 왕관을 닮았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그러나 2020년 이후 사람들에게 가장 유명할 코로나는 아마도 코로나바이러스 중 유명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이 역시 바이러스 표면에 삐죽삐죽 솟은 돌기 때문에 실루엣이 왕관 같다고 붙은 이름.
8. 기타[편집]
어느 나라나 중요 행사용 왕관과 평상용 약식 왕관이 구분되는 경우가 흔했다. 중국식 사모형 왕관을 차용한 통일신라와 고려, 조선도 중요한 의식 때에는 사모형 왕관을 쓰지 않았는데, 통일신라는 금관을 썼고, 고려와 조선은 면류관을 썼다. 중국 한족 왕조의 경우 사모형 황제관이 생겨난 이후로는 중요한 의식 때만 면류관을 썼다. 중국 이민족 왕조의 경우 제각기 차이가 있다. 거란족의 요나라와 여진족의 금나라는 평상시에는 한족의 송나라와 같은 전각복두형 황제관을 쓰고, 중요한 의식 때는 면류관을 썼다. 몽골족의 원나라는 평상시와 중요한 의식 때의 황제관이 같았다. 만주족의 청나라는 평상시에는 빨간색 빵모자형 황제관을 쓰고, 중요한 의식 때는 만주족의 사발형 관모를 황제 전용으로 변형시킨 형태의 황제관을 썼다.[9]
유럽 절대왕정시대에도 군주들은 중요 행사 때는 화려한 왕관을 썼지만, 평상시에는 당시 귀족과 신사층이 쓰던 평범한 삼각모를 썼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행사에서조차 전통적인 디자인의 왕관을 실제로 착용하는 일은 영국과 통가 두 나라를 제외하고는 없다. 다른 군주국의 군주들은 왕권을 상징하는 보물(레갈리아)로 왕관을 물려받기는 해도, 이를 실제로 착용하는 일은 없고, 그냥 양복 정장을 입거나 군복 예장에 정모를 착용한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역시 제국왕관은 의회 개원식 등 국가행사에서만 착용할 뿐, 일반 의전 행사 때는 티아라를 착용하고 평상시에는 여성용 챙모자를 착용했다. 엘리자베스 2세는 2017년부터 의회 개원식도 제국왕관 없이 평상복 차림으로 참석했는데, 아무래도 고령인지라 거추장스러운 왕관과 예복을 착용하는 게 힘들었던 모양이다. 왕위를 물려받은 찰스 3세의 경우 2023년 5월 6일 대관식에서는 성 에드워드 왕관을 착용하기로 예정되어 있지만, 이후 행사에서 어떤 복장으로 등장할지는 아직 미지수.
이걸 꽃으로 만들면 화관이 된다.
왕관이 그려진 국장 또는 국기도 있다. 대표적인 나라가 타지키스탄, 리히텐슈타인, 스페인, 크로아티아가 대표적이다. 러시아 연방, 헝가리는 국장에 위에 나온 러시아 제국 황제관, 성 이슈트반 왕관을 그려넣었다. 이탈리아도 이탈리아 왕국 시절 국장에는 롬바르디아 철관이 들어가 있었다. 기업 중엔 삼영화학공업 및 하이트맥주의 상징물인데, 특히 하이트는 조선맥주 시절에 공식 로고로 썼다.
체스에서는 킹과 퀸의 윗부분에 왕관이 달려있다. 단, 킹은 십자가가 달린 크라운 형태의 왕관인 반면 퀸은 십자가가 없는 티아라 형태의 왕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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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테두리 부위에 달린 다이아몬드는 세계에서 2번째로 큰 다이아몬드인 컬리넌 2, 윗부분의 붉은 보석은 흑태자의 루비이다.[2] 원래는 머리에 묶고 남은 끈이었다.[3] 검은색 비단 모자[4] 대조영 문서에 들어가면 해당 금관의 형태를 볼 수 있다.[5] 사실 왕관이라고 할 것도 없다. 그냥 머리끈이다.[6] 예수의 몸에 박혔던 성정으로 만든 전설적인 왕관이다.[7] 킹덤 오브 헤븐과 로빈 후드(2010년 영화)에 묘사된 리처드 1세의 모습이 그 한 예.[8] 상이집트가 얼마나 고대냐면, 로마 공화국인은 물론이고 그보다 훨씬 이전 미케네 문명의 선주민들조차 초고대 문명으로 바라본 나라다.[9] 전자는 청나라 배경 중화권 사극에서 청나라 황제가 평상시에 많이 쓰는 빨간 황제관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우며, 후자는 마지막 황제에서 주인공 선통제가 즉위식에서 쓴 황제관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