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독재 (r11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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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
2. 원인
2.1. 사회의식
3. 한반도의 군사독재
3.1. 현대 한국의 군사독재
4. 기능
6. 군국주의와의 차이점
7. 군사독재 목록
8. 관련 문서
9. 장르 작품의 군사독재


1. 개요[편집]


軍事獨裁 / Military dictatorship

쿠데타를 통해 정부입법부군인들이 장악하는 권위주의 독재 정부다.

대한민국의 경우 건국 이후 역사적으로 크게 두 차례의 군부가 존재했기 때문에 제3공화국~제4공화국박정희 정권을 군부 내지는 구군부, 전두환제5공화국신군부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문서는 민주정에 대비되는 독재체제로서 근현대의 군사독재정권을 다루며, 전근대의 군정은 군정 문서 참고. 중남미에서도 20세기에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 독재가 횡행하여 스페인어훈타라는 단어에 아예 군사정권이라는 뜻이 추가되었다.[1]


2. 원인[편집]


크게 둘로 나뉜다.


2.1. 사회의식[편집]


많은 사회 구성원이 공화주의, 민주주의를 받아들일만큼 계몽되지 못한 경우, 당장 사회적 강제력을 가진 군부가 정권을 잡는다. 이집트아프리카의 많은 군사독재정권이 여기에 해당한다. 정상적인 국가가 모종의 사태로 민간인들의 정부를 구성하지 못할 정도로 무너진다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강제력과 무력을 지니고 있는 군부가 정권을 잡을 수도 있기는 하지만, 현대 들어와서는 국가가 그 정도로 무너지는 일이 거의 발생하지 않아서 이런 사례는 별로 없다.

또는 사회적으로 엘리트가 극단적으로 부족한 상황에는 군사교육을 통해 어느 정도 배운 군인들이 그나마 통치에 적합한 엘리트 중 하나이다. 실제로 2차 대전 직후 제3세계에서는 군인들이 직접 정치에 나서는 것에 대해서 지금처럼 부정적이지 않았다. 1952년 이집트에서 가말 압델 나세르가 이끄는 군부세력이 아랍민족주의를 내걸고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이후 60년대까지 수십여개 후진국에서 군사정권이 들어섰는데, 이들은 대부분 반외세, 민족주의 성향으로 대중들에게 초기에는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2] 한국에서도 5.16 군사정변이 터졌을 때 장준하 같은 상당수의 지식인들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고, 일부는 박정희가 만든 민주공화당에 참여하기도 했다. 4.19 혁명이승만과 면담한 학생 대표들이 2년 정도 군정을 해서 북한의 침입에 대응하고, 사회 안정을 꾀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2.2. 국제정세[편집]


중소국의 자원 상황이 강대국의 이권과 이어지는 경우, CIA 같은 강대국 첩보기관들은 해당 국가에 반란세력을 준동시키고 국가문제를 터뜨려서 정권의 혼란을 유도한다. 정권이 약해지면 그 자리를 강대국의 입김을 받은 군부가 치고 올라온다. 중동, 남미, 개발도상국의 몇몇 군사독재정권이 여기에 들어간다.

그 외에 한국처럼 바로 이웃에 적을 두고있는 경우도 군사독재정권이 들어서기 쉽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군대를 가고 싶지 않아함에도 불구하고 전쟁 위험이 큰 나라에서는 사회 구성원들의 어쩔 수 없는 암묵적 동의하에 징병제가 시행되는 것처럼, 군사독재정권 역시 이런 '암묵적 동의' 혹은 '필요악'의 확대판 개념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있다. 물론 선진국들처럼 민주정권하에 통제되는 군대부정부패나 부조리가 적기에 보다 효율적인 군사력을 지닐 수 있지만, 거꾸로 말하면 선진국들 수준의 인프라를 지니지 않으면 이런 '이상적인' 조건을 가지기 어려우므로 차선으로 군사독재정권을 가져서 전쟁 위협을 해결하려 드는 방식이다. 이런 군사독재정권은 상술했듯 대개 '방어를 위한 군사독재정권'이기 때문에 군국주의에 빠질 위험도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그러나 이러한 군사독재정권 역시 장기화될 경우 극도로 권위주의적 분위기가 형성되어 개인의 자유나 언론의 자유가 완전한 민주정만큼 향상되기 힘들어지고, 전체적인 사회가 경직화되어 인권 탄압 위험에 빠지는 것도 사실이다.[3]


3. 한반도의 군사독재[편집]


1961년5.16 군사정변이 일어나 대한민국에서 군사독재가 시작되었다.

박정희 정권은 우선 2년간 국가재건최고회의를 거친 뒤 박정희 정부대통령 직선제를 채택했고 정부 출범 이후에는 경제개발에 전력투구하여 상당한 성과를 기록하면서 가시적인 경제개발의 성과로 국민들의 지지[4]를 이끌어내었다. 실제로 국가재건최고회의직접 선거 방식의 제5대 대통령 선거을 진행했고, 여기서 박정희가 승리, 대통령에 취임하는 절차를 밟음으로써 집권의 명분은 당시로서는 충분하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은 1969년 3선 개헌으로 임기를 연장했으며, 1972년에는 한국식 민주주의라 자칭한 친위 쿠데타10월 유신을 행하며 사실상 박정희 종신독재체제인 제4공화국을 출범시킨다. 제4공화국5.16 군사정변 직후의 국가재건최고회의, 제3공화국 군사정권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5]

10월 유신1979년 김재규의 총탄에 끝난 뒤, 국민들은 유신헌법의 폐지와 정치적 민주화를 요구하며 군사정권의 종식을 기대했으며 최규하 정부12월 8일 비상조치 9호를 해제해 그간 금지됐던 개헌 논의를 허락하며 이에 화답하였다.

그러나 곧 전두환 정부의 서막을 연 12.12 군사반란과 이듬해의 5.17 내란으로 전두환을 위시한 신군부 세력은 하나회라는 군내 사조직을 통해 군권과 국가 통치권을 모조리 장악하였고, 박정희 사후 민주화의 열망에 가득찼던 야당 정치인들과 국민들, 학생들은 이에 반발하였다. 신군부는 이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광주의 민주화 운동을 본보기로 진압하여 정통성 문제를 일축하였다. 그러나 야당국민들, 학생들의 민주화 요구는 식을 줄 몰랐고 결국 1987년 전국적인 6월 항쟁이 일어나고 미국의 압박까지 들어오자[6] 6.29 선언을 통하여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이고[7] 전두환이 쫓겨나게 되면서 김대중의 사면복권, 각종 자유화 조치 등을 시행하면서 제도적인 민주주의가 정착되었다.

하지만 노태우 역시 전두환과 더불어 군부 출신이었고 유신 독재 및 전두환 정부 시절 만큼은 아니지만 1989년 들어서부터 공안정국 시기로 돌아섰다. 강경대 구타치사 사건이 대표적인 이 시기 공안사건이다. 즉 완전한 민주주의가 뿌리내린 건 문민정부가 들어선 1993년이다.

한편 북한1956년 8월 종파사건으로 김일성파와 갑산파를 제외한 타 계파가 숙청되면서 김일성 일가의 독재 체제를 성립하는데 성공하였다. 초기에는 권력 안정을 위해 경제 발전에 힘을 썼으나, 1960년대 무리하게 군사력을 증강시키는 과정에서 사실상의 병영국가로 전락하였다. 하지만 이 과정 속에서도 조선로동당조선인민군의 군 인사권과 검열권을 꽉 잡고 있었으며, 선군정치 시절조차 조선인민군은 그냥 김정일의 사병에 가까웠기 때문에 군사독재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저 문민 수령독재가 군정의 모습을 취했을 뿐이다.

3.1. 현대 한국의 군사독재[편집]


과감한 리더십, 정책 추진력으로 급격한 산업, 경제발전을 이루기도 했지만, 군사독재정권은 부정적 잔재를 남겼다. 사실상 일제강점기 말기(1937년)[8]부터 민주화(1987년) 이전까지 50여년 동안 군사주의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한국대만과 더불어 선진국들 중에서도 민주화를 늦게 이룬 편에 속한다.[9][10] 한국이 실질적으로 민주화가 된 게 1987년인데, 같은 동아시아 국가인 옆나라 일본 조차도 GHQ 시절에 미국에 의해 민주주의가 도입되었으니 민주화 시기가 한국과는 40년 차이가 난다.
허나 군사독재를 한국의 압축 성장과 연관지어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독재가 국민들을 힘들게 했지만 고속 성장에 도움을 주었다는 것. 다만 이는 논란이 있으며 오히려 독재가 경제를 망치게 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4. 기능[편집]


군사독재정권은 정통성을 확보하려 여러 사회적 문제 요소에 무력을 동원한다. 구 집권층과 반대세력, 범죄조직이 제1목표로 말살되며 일시적인 사회 안정을 불러온다. 물론 군사독재정권의 새로운 집권자들이 새 기득권으로 변하고 군사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사람 역시 반대파로 몰려 숙청당한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고문성범죄 등은 덤이다. 또한 외세 침략, 민족 분쟁 같이 국가 존속에 위해가 되는 상황이 권위주의적인 방법을 통해 억제된다. 같은 맥락에서 일부 사례지만 저돌적인 리더십을 이용하여 경제 발전을 꾀하기도 한다.









그러나 위에서 서술했듯이 한 인사나 한 집단의 단독 집권이 장기화되면, 자연스레 투명한 국가운영이 불가능해진다. 부정부패가 늘어나고, 오직 무력에 의해 모든 정책이 수립되면 국가존속에 위기가 온다.


4.1. 군정[편집]


전쟁을 통해 전승국 군대가 패전국이나 그 식민지를 점령하고 그 지역에 정부(군정청)를 세우는 경우. 대한민국에서 군정이라는 단어는 군정청, 군정기라는 용어와 함께 이를 이른다.



5. 계급[편집]


쿠데타를 일으킬 경우 상당한 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군사독재정권을 일으킨 자들은 장성급 장교인 경우가 많다. 당장 한국만 해도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전두환 모두 당시 계급이 소장이었다. 여기서 더 올라가 군단장 이상이 되면 병력이 굉장히 흩어지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사단장급에서 가장 병력을 운용하기가 쉽기 때문으로 추정된다.[11]

그러나 영관급 장교가 이를 성공한 사례가 있기도 하고, 심지어는 위관급 장교부사관쿠데타를 일으켜 성공한 경우도 있다. 무아마르 카다피대령때 쿠데타를 일으켰고 더 이상 진급을 하지 않아 대령이 통치자를 가리키는 말로 바뀌었을 정도였다. 이집트가말 압델 나세르대위때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 쿠바독재자 풀헨시오 바티스타중사로서 1933년 9월 지지자를 모아 쿠데타를 일으키고 마차도 정권을 무너트렸는데 이를 '중사들의 반란'이라고 부른다.

6. 군국주의와의 차이점[편집]


군국주의는 사실상 대외침략, 팽창주의를 전제로 한 군사독재정권에 붙이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추축국북한, 다에시 등은 군국주의라고 할 수는 있지만 정반대로 4~5공시절 대한민국처럼 (명목상) 외부세력에 대한 방어를 강조하는 군사정권은 군국주의라고 부르지 않는다. 또한 군국주의 국가들은 좌우 이념과 상관없이 대놓고 일당제를 겸하고 있었는데[12] 대한민국은 군사독재 당시에도 어느 정도 통제는 받고 있었지만 신민당이라는 제대로 된 야당이 있었는데다 동양방송처럼 언론도 어느 정도 구색으로나마 다양성을 가지고 있었으므로[13] 완전한 군국주의, 전체주의 사회라고 부르기는 곤란한 것이다.

이론적으로도 '군부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는 사실만으로 군사독재정권이라 하는 거지 어떤 정치체제를 선택하는지는 군부 마음이기 때문에,[14] 비록 군국주의스러운 기조가 사회에 어느 정도 자리잡기는 하겠지만 군사독재정권이라고 반드시 군국주의를 택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군사독재정권과 군국주의는 그 개념이 일치하지만은 않는다.


7. 군사독재 목록[편집]


  • 고려무신정권, 1961(1972)[15]~1987년까지의 대한민국[16]
  • 헤이시 정권, 가마쿠라 막부, 무로마치 막부, 에도 막부, 1932년~패망 직전까지의 일본 제국[17]
  • 프리모 데 리베라, 프란시스코 프랑코 집권기의 스페인
  • 수하르토 집권기의 인도네시아
  • 1963년부터 패망 직전까지의 베트남 공화국[18]
  • 당나라 후기 지방의 절도사 정권
  • 군벌 난립기장제스, 장징궈 집권기의 중화민국
  • 태국의 역대 군인 출신 수상 정권들[19]
  • 전러시아 임시정부[20]
  • 이온 안토네스쿠 집권기의 루마니아 왕국
  •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집권기의 칠레[21]
  • 아르헨티나의 군사정권[22]
  • 미얀마의 군사정권[23]
  • 페르베즈 무샤라프 집권기의 파키스탄
  • 론 놀 집권기의 캄보디아[24][25]
  • 브라질의 군사정권[26]
  • 후안 벨라스코 집권기의 페루[27]
  •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 집권기의 파라과이
  • 중남미 대부분의 국가에 들어섰던 독재정권들[28]
  • 이스마일 엔베르 집권기의 오스만 제국, 케난 에브렌 집권기의 터키[29]
  • 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 집권기의 그리스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집권기의 프랑스 공화국[30]
  • 가즈니 왕조, 셀주크 왕조, 델리 5왕조맘루크계 왕조
  • 이라크의 군사정권[31]
  • 시리아의 군사정권[32]
  • 알리 압둘라 살레 집권기의 예멘[33]
  • 하피 줄라 아민 집권기의 아프가니스탄[34]
  • 이집트의 군사정권[35]
  • 무아마르 알 카다피 집권기의 리비아[36]
  • 알제리의 군사정권[37]
  • 나이지리아의 군사정권[38]
  • 시아드 바레 집권기의 소말리아[39]
  •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 집권기의 에티오피아
  • 수단의 군사정권[40]
  • 차드의 군사정권[41]
  • 무사 트라오레 집권기의 말리
  • 콩고민주공화국의 군사정권[42]
  •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군사정권[43]
  • 라이베리아의 군사정권[44]
  • 토고의 군사정권[45]
  • 야히야 자메 집권기의 감비아[46]
  • 이디 아민 집권기의 우간다[47]
  •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 치하의 폴란드 인민 공화국
  • 군인 황제 시대 당시의 로마

8. 관련 문서[편집]




9. 장르 작품의 군사독재[편집]




  • 스타크래프트
    • 테란 자치령[48]
  • 라이온 킹

  • 댈람[49]
  • 탈다림[50]
  • 켈모리안 조합 [51]
  • UED[52]


  • 은하영웅전설
    • 구국군사회의
    • 이제르론 공화정부[53]

  • 진격의 거인 - 마레 제국, 예거파[54]

  • 헤일로 - UNSC[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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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Junta Militar의 준말. 공교롭게도 스페인프랑코 정권 역시 전간기 스페인 내전으로 수립된 군사정권이었다.[2] 대표적인 지금은 최악의 독재자로 평가되는 리비아무아마르 카다피이다.[3] 사실 '혼합형 체제'(hybrid regime, 외형적인 민주정에 권위주의가 결합한 체제)만 되어도 개인이 자유롭게 살기는 매우 힘들어진다.[4] 혹은 최소한도의 묵인[5] 그러나 제4공화국의 경우 제3공화국과는 달리 고문이 자주 자행되었고 강압 정책도 늘어났다. 전두환 정부 시기와 더불어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가장 '비민주적인 정부'로 악명 높다.[6] 6월 항쟁을 진압하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하려 했으나 제임스 릴리 당시 주한미국대사청와대로 찾아와 '계엄령을 선포할 경우 한미동맹의 심각한 타격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는 본국의 경고장을 전달했다.[7] 사실 이 때 전두환은 이미 직선제 개헌을 수용하려고 마음먹은 상태였으나 민주정의당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가 머뭇거리자 노태우를 압박하기 위해 계엄령 선포를 거론했다는 설도 있다. 대표적으로 MBC의 제5공화국 드라마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8] 도조 히데키로 대표되는 일본 군부가 폭주하기 전까지의 일본 제국은 군사 독재나 군국주의 국가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흔히 무단통치로 분류되는 1910년대1930년대 후반 이후의 일본 제국과 비교할 바는 되지 않는다.[9] 대만의 경우 한국과 같은 1987년, 계엄령 해제되고 민주화가 이루어진 걸로 본다.[10] 한국보다 더 늦게 OECD에 가입한 폴란드, 콜롬비아보다도 민주화는 더 늦은 편이다.[11] 다만 박정희전두환이 쿠데타 당시 소장이었다 해도 박정희는 2군 부사령관이란 실병력도 실권도 없는 자리, 전두환보안사령관으로 정보를 바탕으로 한 권력은 강하나 실전투병력은 많지 않은 자리였다. 이들이 쿠데타에 성공한 건 실병력을 거느린 영관급에서 준장, 소장급 장교들의 보스격의 위치에 있었던 것이 큰데 전두환의 경우는 되려 자신보다 계급이 높은 유학성, 차규헌, 황영시를 휘하에 두고 군사반란을 일으켰다. 전두환이 이런게 가능했던 이유는 전두환은 박정희를 최측근에서 보좌했던 것에 비해 유학성, 차규헌, 황영시는 계급은 높아도 박정희와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12] 물론 이것도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독재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을 억누르기 위해, 혹은 일당 독재 국가를 견제하려는 주변국의 의도를 잠재우기 위해 관제야당 형식의 명목상 다당제를 취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지금 북한.[13] 5공언론통폐합으로 방송국이 모두 공영화되긴 했지만 신문이나 잡지 등은 민간에서 계속 운영할 수 있게 해주었다.[14] 한국의 군사독재정권은 주로 반공주의에 입각한 자본주의를 택하였고, 북한의 군사독재정권은 비록 쿠데타를 통해 집권하지는 않았으나 국가의 통치근간과 정당성을 군대로서 갖고, 주체사상공산주의를 위시한 선군정치 정책을 취하였다.[15] 10월 유신이 이루어진 1972년 이전까지는 권위민주주의 정도로 분류하는 경우도 꽤 있다.[16] 박정희 정부, 전두환 정부.[17] 명목상으로는 천황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적 입헌군주제 국가였으나 1930년대, 특히 5.15 사건 이후 군부가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침략전쟁을 주도하는 군국주의 국가였으며 수상이었던 도조 히데키 또한 현역 군인이었다.[18] 11.1 쿠데타 이후 계속 군인 출신 대통령만 나오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나라는 건국 때부터 1963년까지는 오히려 군 경력이 전혀 없는 관료 출신 독립운동가가 독재자로 등극해 군인 출신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했던, 군사독재와는 정 반대의 나라였다.[19] 입헌 혁명을 주도한 쁠랙 피분송크람부터 시작해서 현재 수상쁘라윳 짠오차까지 태국국왕의 승인과 묵인 하에 수시로 쿠데타가 일어나고 군부정치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나라이다.[20] 알렉산드르 콜차크백군 세력들을 통합시켜 만든 정부로, 적군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군사독재를 시행했다.[21] 뒷배경에는 미국, 영국,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의 지원도 적지 않았다.[22] 쿠데타로 집권하긴 했지만 포퓰리즘적인 성향이 강했던 후안 페론 정권을 군사쿠데타로 뒤엎고 집권한 정권.[23] 네 윈부터 시작해서 탄 슈웨까지이르는 사회주의 독재 정권으로 뚜렷한 비전이 없는 이상한 경제정책과 극도의 폐쇄주의, 점성술에 의거한 화폐개혁 등으로 미얀마를 망쳐놨으며 민주화와 물가 안정을 요구하는 시위대와 승려들, 소수민족들에 대한 학살을 자행하기도 했다. 그런데 2021년 2월에 또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5년간 유지된 민선정부를 무너뜨리고 군사독재를 시작해 많은 미얀마 자국민들을 학살하면서 국제적인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24] 말이 독재자이지 부하들이 그의 명령을 제대로 못 알아들을 정도로 무능했으며 결국 크메르 루주의 공세에 정권이 전복되어 나라가 공산화 되어버린다.[25] 그러나 크메르 루주를 이끌고 론 놀 정권을 무너뜨리고 집권한 폴 포트는 론 놀 정권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잔혹하기 짝 없는 데다 나라 경제까지 작살 낸 주범 중 주범으로, 사실상 김일성보다 미친 인간이다.[26] 이웃나라 아르헨티나, 칠레, 우루과이의 군부정권을 뺨 칠 정도로 살육과 탄압을 자행하였다는 것이 그나마 멀쩡한? 대통령이던 주앙 피게이레두시절의 기밀문서에서 드러났다.[27] 여타 중남미 군사정권들과는 달리 좌익 성향이었다.[28] 멕시코, 쿠바, 온두라스, 과테말라, 아이티, 파나마 등등 이들 국가엔 독립 후 극도의 정치적 혼란으로 수 차례나 군인 대통령이 등극했었다. 독립전쟁 당시 활약했던 카우디요라고 불리던 각지의 지방 군벌들이 그대로 성장하여 밥그릇 싸움을 했기 때문.[29] 명암이 있겠지만 오죽하면 2016년 터키 쿠데타 당시 국민들이 과거로는 돌아가지 않겠다며 에르도안편에 설 정도였다.[30] 얼마 안 가 나폴레옹황제에 등극하여 제정을 선포한다.[31] 압둘 카림 카심의 쿠데타로 인해 왕정이 붕괴된 이후 사담 후세인의 집권 전까지[32] 하페즈 알 아사드가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했고 현재의 그의 아들바샤르 알 아사드가 세습했다.[33] 민주화 운동으로 살레가 퇴진하면서 끝이 났지만 현재 나라 꼴은 내전으로 인해 막장이되어버렸다. 참고로 살레는 내전을 중재하러 반군을 찾아갔다가 피살당했다.[34] 이슬람 저항세력을 막는데에 더 이상 쓸모가 없고 미국에게 포섭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정보에 낚인 소련이 보낸 특수부대KGB요원들에 의해 대통령궁에서 살해당했고 이후 10년에 걸친 소련무자헤딘 간의 전쟁이 발발하는데 자세한 것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항목 참조.[35] 가말 압델 나세르가 쿠데타로 왕정을 전복시킨 이래로 안와르 사다트, 호스니 무바라크를 거쳐 현재 압델 파타 엘 시시에 이르고 있다. 즉, 2011년에 있었던 민주화운동이 도로아미타불이 되어 버린 셈으로 원인은 무바라크 이후 집권했던 무함마드 무르시샤리아에 기반한 이슬람식 통치에 대한 반발을 군부가 교묘히 파고 들어 무르시를 축출하고 재집권 한 것으로 볼 수 있다.[36] 그 전에는 왕정이었다.[37] 우아리 부메디엔의 쿠데타 이후 부테플리카에 이르기까지 알제리사회주의로 통치하며 이슬람주의 세력을 탄압하고 있다. 이슬람 또한 이에 대한 반발로 게릴라를 결성하여 무력항쟁과 테러를 벌이는 중[38] 비아프라 전쟁을 일으킨 야쿠부 고원이 대표적이다.[39] 이 인간이 끝나자마자 소말리아는 전국 각지에서 실사판 북두의 권이 연출되게 된다.[40] 가파르 니메이리부터 오마르 알 바시르까지 이어졌고 바시르를 축출한 현재 군부가 정권을 연장시키려는 시도를 하는 중이다.[41] 이들과 더불어 현재까지 이슬람기독교내전이 끊이질 않고 있다.[42] 모부투 세세 세코부터 투치족 출신인 카빌라 부자까지[43] 프랑수아 보지제가 셀레카 반군에게 축출당한 이후 내전이 벌어졌고 그 결과 세계 파탄국가 3위에 랭크되었다. 참고로 1,2위는 남수단소말리아[44] 새뮤얼 케니언 도부터 시작해서 찰스 테일러까지 이르며 이들은 자국에서의 만행도 모자라 인접국 시에라리온의 내전에도 개입하였다.[45] 아버지 냐싱베 예아데마에게 아들인 포르 냐싱베가 세습했다.[46] 일개 중위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각종 학살을 자행하다가 더이상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되자 국고를 몽땅 가지고 외국으로 도주해버렸다.[47] 이 인간의 집권 시절 우간다는 말그대로 생지옥이었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48] 반군 코랄의 후예 리더 아크튜러스 멩스크가 세운 제국으로 후에 그가 처단되고 아들인 발레리안이 집권하게 되면서 독재에서 벗어나 민주주의식 체제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자치령 군대의 주인은 황제임에도 자치령의 국군 통수권은 최고사령관 직책을 가진 에드먼드 듀크, 호러스 워필드와 같은 현역 군인들이 담당하고 있다. 현재 발레리안 정권에서도 제독 맷 호너가 담당하고 있고 통치 체제를 지원하며 황제와 함께 국가를 통치하는 2인자로써 위치해 있기에 엄연한 군사정권이다. [49] 사실 순수한 군사정권은 아닌데 무인 계급인 기사단의 세력이 강성하다보니 군사정권화 되었다. 기존 정치세력이 몰락하고 종족이 위기에 몰리면서 자연스럽게 군인 계급이 정치권의 주류가 된 경우. 대표적으로 사도가 기존의 심판관을 대신할 존재로 육성되는 기사단 소속 프로토스다.[50] 매우 호전적이고 전투적인 집단이고 무력을 중요시하는 약육강식 사회라 전사들을 우대하고 학자들과 기술자들을 천대한다. '승천의 사슬'이라는 계급제도는 라크쉬르라는 의식을 통해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도전해 둘중 하나는 반드시 죽으며 승리할 시 하급자가 상급자의 자리를 차지할수 있는 합법적인 쿠데타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다. 말라쉬, 알라라크또한 라크쉬르를 통해 탈다림의 통치자인 군주의 자리를 차지했다. [51] 조합의 국가원수가 마-사카이라는 이름의 장군이다.[52] 파시스트 성향의 국가이며 통치위원회의 가장 상석을 군부 대표인 제라드 듀갈 제독이 차지하고 있다.[53] 민주주의를 대의로 내걸었지만 사정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군사독재정권[54] 854년 시점 병단 출신 군인 프록 폴스타가 직접 지휘하는 예거파 군사정권파라디 섬을 점령했다.[55] 다만, 인류 생활구역의 모든 행정권은 근본적으로 민주 문민 정부인 UEG에 있다. UEG의 행정력이 아직 미치지 않는 외부 식민지에 하부기관인 UNSC가 군정을 실시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