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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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목록
2.1. 현재의 사례
2.2. 역사적 사례
2.2.1. 명목상 다당제였던 사례
3. 같이 보기


1. 개요[편집]


일당제(, One-party System는 어떤 국가의회에서 하나의 당만이 합법적으로 인정되는 정당제를 말한다. 대표적인 과두주의독재정치로서, 유일한 여당정부를 사실상 장악하고 있으며 다른 당은 선거에 참여할 수 없다.

일부 전체주의사회주의 국가가 이를 채택하고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여론의 불만을 달래고 민주주의 코스프레를 하기 위해 실권이 없는 거수기 정당, 곧 구색정당(satellite party)을 내세워 형식적 다당제와 같이 운영되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에리트레아처럼 구색정당 없이 대놓고 일당제인 국가도 존재한다.

일당제라고 하더라도 그런 거대한 정당에서는 파벌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아, 그 파벌의 일부가 제한적으로 당 주류 파벌이나 정부를 견제하는 야당 비슷한 역할을 맡기도 한다. 공청단, 상하이방, 태자당으로 나뉘어진 중국공산당의 파벌이 대표적이다.

일당제 국가라 하더라도 당원의 수는 전 국민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소련 공산당 6.84%(1986), 중국 공산당 6.74%(2021), 조선로동당 15.93%(2015), 나치당 12.88%(1945)이 그렇다. 이런 나라에서는 국민이 당원으로 가입하는 것이 이론(異論) 없는 애국상징이 되거나 일종의 명예, 특권처럼 여겨진다. 반면에 구 자이르의 '혁명대중운동(1967-1997)'이나 구 르완다의 '민주발전을위한혁명공화운동(1975-1994)'은 아예 전 국민이 자동으로 당원이 되었다.


2. 목록[편집]



2.1. 현재의 사례[편집]


파일:나무위키+넘겨주기.png   관련 문서: 일당독재

사하라 아랍 민주 공화국의 유일한 합법정당으로 사하라 민주공화국 의회(SNC)의 43 의석을 지역별로 가지고 있다. 다만 이를 규정한 현재 헌법은 서사하라의 “완전한 독립”시까지만 적용된다는 유보조항이 있다.[1] 서사하라 전역을 포함한 완전한 독립시 폴리사리오 전선은 해체되거나 다당제 선거에서 다른 당들과 경쟁하게 될 예정이다.

◎ 위성정당 등 구색정당을 두어 명목상으로는 다당제를 표방하는 국가


2.2. 역사적 사례[편집]


  • 파일:미국 국기(1777-1795).svg 미국 - 없음 (1789~1796년)
조지 워싱턴은 다당제에서는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거나 “정책과 관계없는 인신적 비난”만 판칠 것이라 여겼기 때문에, 이 시기 미국 정치에는 당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다. 따라서 엄밀히 따지면 무당제라고 하는게 더 적합하다.


2.2.1. 명목상 다당제였던 사례[편집]


  • 파일:대한민국 국기(1949-1997).svg 대한민국 제5공화국 - 민주정의당 (1980~1985년)[3]
  • 파일:라이베리아 국기.svg 라이베리아 (1878~1980년)
1878년 라이벌이었던 공화당이 해산된 이후부터 명목상으로는 다당제였으나 사실상 트루 휘그당(True Whig Party)이 유일한 정당이었다.
사실상 일당제였다. 일단 명목상으론 다당제라 여당 공화인민당 외에도 진보공화당(TCF)과 자유공화당(SCF)이 잠깐 결성되기도 하였으나 몇 달 안 가서 해산당했다.
  • 파일:미국 국기(1822-1836).svg 미국 (1824~1828년)[4][5]
정말로 이 시기에 딱 한 정당 밖에 없었다.[6] 그래도 위의 나라들과 다르게 나름대로 민주적으로 통치하기는 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한 이유가 미영전쟁 이후로 친영적이었던 연방당이 힘을 쓰지 못했고 당시까지만 해도 정당이 굉장히 느슨했기 때문에 민주공화당과 연방당의 합당 이후에도 얼마든지 내부에서 야당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1824년 대통령 선거에선 존 퀸시 애덤스, 앤드류 잭슨, 헨리 클레이, 윌리엄 크로포드 이렇게 4명이 출마 했는데 모두 민주공화당이었다.[7][8] 물론 나름대로 민주적이었다고 하더라도 당대에 여성흑인, 원주민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한계점은 있었다. 다만 이 시기에는 여성과 흑인 등 소수자[9]에게 선거권을 부여한 나라는 거의 없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3.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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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사하라 대부분 지역은 모로코의 점령 하에 있다.[2] 소련 말엽 다당제가 용인되어 야당인 소련 자유민주당이 탄생했다.[3] 신한민주당 창당 이전까지는 여당인 민주정의당과 구색정당 밖에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일당제였다. 1985년 신한민주당의 창당으로 일당제가 깨졌다.[4] 이전에는 (1792~1824년)이라 되어 있었으나 1824년 이전에는 연방당이 존재했고, 민주당은 1828년에 창당되었다.[5] 제임스 먼로 말기와 존 퀸시 애덤스 대부분의 집권기간이 이에 해당된다.[6] 엄밀히는 민주공화당은 야당인 연방당과 함께 동시 해산했으나 실질적으로는 민주공화당 세력에 연방당이 합류한 것에 가까웠다.[7] 이중 퀸시 애덤스와 헨리 클레이는 계파마저 연방당계로 같았다.[8] 심지어 애덤스와 잭슨은 부통령 러닝메이트를 둘 다 존 칼훈을 지목했다. 누가 이기든 부통령이니 개꿀아닌가[9] 이때의 여성은 이견이 생길수 없는 명백한 소수자였다. 또한 여성 선거권은 1920년에 시행됐다. 모든 주에서의 시행은 후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