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도환/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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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허도환

1. 개요
2. 학창시절
4.1. 2011 시즌
4.2. 2012 시즌
5.2. 2016 시즌
5.3. 2017 시즌
6.1. 2018 시즌
6.2. 2019 시즌
7. kt wiz 시절
7.1. 2020 시즌
7.2. 2021 시즌
7.2.1. FA
8. LG 트윈스 시절
8.1. 2022 시즌
8.2. 2023 시즌
9. 연도별 주요 성적


1. 개요[편집]


포수 허도환의 선수 경력을 정리한 문서.


2. 학창시절[편집]


학동초등학교 시절 서동욱, 오재원과 한솥밥을 먹었다. 학동초 6학년이던 1996년에 우승을 합작한 적 있었으며 허도환은 서동욱이 전 포지션을 소화하는 플레이를 보면서 “동욱이는 신 같은 존재였다" 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이후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각각 다른 학교로 진학함에 따라 셋의 진로는 갈라지게 된다.[1]

서울고에서는 동기 김영복과 포수 포지션이 겹쳤으나 김영복이 주로 1루수로 뛰었다. 2002년 제56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강호 천안북일고와의 연장 10회까지 가는 접전끝에 3-4로 패했다. 에이스 김휘곤(롯데 입단)이 10이닝 완투로 역투했으나 10회말 나주환의 극적인 역전 결승 솔로홈런으로 8강 진출에 실패했다.


3. 두산 베어스 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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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등학교 졸업반 시절이던 2003년 신인 지명에서 두산 베어스의 2차 7순위 지명을 받았으나, 두산과 계약하지 못하고 단국대학교에 입학한다. 단국대 시절에 별다른 활약을 보여 주지 못해서 졸업 직전 두산이 지명권을 포기하였고, 신고선수로 입단하기 싫으면 말라는 식으로 나왔기에 신고선수로 들어갔다. 입단 후 정식 선수로 등록, 홍성흔이 허벅지 부상을 당하자 마찬가지로 부상을 입었던 장원진과 자리를 맞바꿔 2007년 5월 23일에 1군에 콜업되었다. 이후 5월 27일 대전 한화전에서 9회 초에 대주자 및 대수비로 첫 1군 무대를 밟았다. 그 발 느린 허도환이 대주자로 나온 이유는, 이때 두산이 연이은 대타작전을 쓰면서 부상으로 정상적인 주루가 어려운 홍성흔도 투입해 볼넷을 얻어냈기에, 발이 느리다고 해도 홍성흔이 빠지고 포수를 봐야 하는 허도환이 미리 대주자로 들어갔던 것. 대주자로 나온 허도환은 이어진 대타 안경현[2]의 역전타때 1루에서 홈까지 쇄도하다가 주루사를 당했다. 이후 팔꿈치 인대 부상이 재발하며 1군 기회는 더 잡지 못했고, 시즌이 끝난 2007년 10월에 방출되었다.

방출 후에는 자비로 팔꿈치 수술을 받았고,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했다.

후에 스톡킹에 출연해 이 당시 있었던 일을 밝혔는데, 2007년 두산에서 뛰던 당시 상술했던 것처럼 5월에 한번 1군에 콜업됐다가 다시 2군으로 내려왔는데 이 때도 팔꿈치 통증이 있어 병원에서 MRI 촬영이 예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두산 2군 감독이던 그 분에게[3] MRI 촬영 사실을 보고했더니, "너는 1군에서 내려오더니 건방지게 선배들이 하는 거 배워서 아프다고 하면서 2군 경기 안 뛰려고 하냐?" 라고 하면서 사실상 수술을 못하게 했다고 밝혔다. 결국 그 분의 한 마디에 순식간에 자신감을 잃고 위축되어 부상을 참고 뛰다가 통증이 악화되어 8월이 되어서야 MRI를 찍었는데, 그 때는 인대가 이미 완전 끊어진 상황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다가 아니라 시즌이 거의 끝난 9월 즈음에 허도환을 따로 불러 면담하면서 "재활한 뒤 내가 기회를 더 줄 테니 내년에 열심히 해 보자" 라고 해놓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방출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허도환 본인에 의하면 이 때가 자신의 야구 인생 중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으며 이로 인해 자존심도 하락해 움츠러들었다고 밝혔다.

참고로 형 허태양도 같은 팀에 있었으나 운명의 장난인지 허도환이 입단하기 직전(즉 2007년 시즌 이전) 방출되고 말았다. 그리고 허도환 역시 단 1년만에 두산에서 방출되었다.


4. 넥센 히어로즈 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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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의 인물은 정민태 코치.

군복무를 마친 후 2010년 10월 넥센 히어로즈의 입단 테스트에 응시했고, 당시 넥센의 포수 기근에 힘입어 2011년 1월 신고선수로 다시 프로 유니폼을 입었다.


4.1. 2011 시즌[편집]


사직 롯데전을 앞두고 6월 1일 정식 엔트리에 등록되어 1군 무대에 복귀했다. 6월 2일 롯데와의 사직 원정 경기에서 브라이언 코리를 상대로 쐐기 2루타를 쳐내며 프로 데뷔 첫 안타를 기록했다. 이 경기는 롯데의 추격전 끝에 11:10, 넥센의 승리로 끝나 중요한 타점을 낸 셈이 되었다.

2011년 7월 2일 SK전에서 굴절된 타구에 급소를 맞았다. 이날 팔과 다리에 추가로 파울볼을 맞았다. 7월 5일부터 7일까지 KIA와의 군산구장 3연전에서는 번트를 엄청 못대는 모습을 보여줘서 까였다. 심지어 7월 7일에는 희생번트가 병살타로 둔갑하기도 했다.

7월 6일 3루 베이스로 슬라이딩 했다가 입가에 흙이 잔뜩 묻어서 허드리지, 허도슨 크루소라고 불렸다.

2011 시즌 1군 79경기에 출전, 기록깨기 할 때나 빛을 발하는 포수갈수록 상태가 시망이 되어가는 포수에 비해 준수한 수비 능력과 자주 출루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넥센팬들 사이에서 나름 지지를 얻었다.

특히 블로킹 능력이 호평을 받았는데, 양상문 해설위원이 2011 시즌 주전 포수중에서 최고 수준의 블로킹을 보여준다고 칭찬하기도 했다. 바운드볼이나 폭투성 투구에 대한 블로킹 능력이 상당히 뛰어난 모습을 보인다고. 특히 넥센 히어로즈에 구위는 좋지만 제구는 엉망인 투수들이 널린지라, 엉망진창이던 강귀태의 블로킹과 대비해서 허도환의 블로킹 능력이 더욱 부각되었다. 문제는 이런 블로킹 능력과는 상반되는 도루 저지능력. 넥센 젊은 투수들의 슬라이드 스텝이 좋지 않은 편인것을 감안하더라도 도루저지율은 고작 0.263을 기록했다. 출처

타격에선 2011 시즌은 수비에 집중하겠다는 본인의 발언처럼 부족한 모습이다. 2011 시즌 안타 대부분은 그가 주전을 꿰차기 시작한 때에 친 것이 대부분이다. 빠른 승부를 하는 편이라 볼카운트 싸움은 다소 불리하게 가져가는 경우가 많으며, 당겨치기보다는 극단적 수준의 밀어치기가 많이 보인다. 실제로 안타의 경우 태반이 우측으로 날아가는 편.

체력적인 문제로 인해 점차 하락세를 보였지만, 기본적인 포구와 블로킹은 좋은 편이었기에 자주 출장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9월부터는 유선정과 로테이션으로 자주 나왔다.

타격은 빈약하지만 수비력과 투수들을 편하게 해주는 능력이 주목받으면서 새로운 안방마님으로 자리잡기 시작했고, 김시진 감독이 시즌 후 강윤구심수창과 함께 올해의 가장 큰 수확 3명 중 한 명으로 뽑기도 했다.


4.2. 2012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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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에는 강귀태를 밀어 내고 주전 포수로 자리 잡았다.[4] 유선정은 군 문제가 걸렸고,[5] 허준2차 드래프트에서 NC 다이노스로 떠났기 때문에 어부지리가 된 셈인데, 타격은 이전 포수들보다 떨어졌으나 대체 선수도 없었고 그래도 포구와 블로킹 만큼은 우수했기에 꾸준히 주전 자리로 기용되었다.[6][7]

4월 24일 경기에서 3안타를 치며 팀 승리의 1등 공신이 되었다. 물론 이 날 3루타성 1타점 안타를 치고 달리다가 다리가 풀려 넘어져 3루로 기어 들어가다 아웃된 것은 안 자랑. 동영상을 보면 김시진 감독도 허탈한(?) 웃음을 짓고, 캐스터와 해설자도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는 것을 느낄 수 있다. 2012년 최강의 개그 장면으로 꼽힐 수 있을 듯. 본인이 이후 스톡킹에 출연해 해명하기를 흙이 울퉁불퉁해서 뛰다가 실수로 자기 종아리를 차는 바람에 다리가 풀려버렸다고...

5월 11일 문학에서 열린 SK와의 경기에서 이재영을 상대로 통산 첫 홈런을 기록했다.

대상포진으로 인한 부진으로 5월 28일자로 2군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나이트김병현과 허도환의 호흡이 좋은 편이기 때문에 얼마 안가 다시 1군으로 복귀하였다.

전반기를 주전 포수로 보낸 뒤 2012 KBO 올스타전에 서군 포수 후보로 등록되었는데, 같은 서군에 있는 포수들이 신경현, 김상훈, 심광호 같은 포수라서 왠지 다들 허도환을 미는 분위기였다. SNS에서 올스타 투표를 부탁하는 글을 쓰기도 했는데, 결국 723,408표를 얻어서 2012 올스타전 서군 포수로 확정됐다. 득표 수는 전체 7등을 기록했다. 허도환이 1위를 달리자 그를 두고 김시진 감독은 알바를 써서 투표를 조작하는 게 아니냐고 발언하여 큰 웃음을 자아 낸 바가 있다.

1군으로 복귀한 후에는 최경철과 포수 마스크를 번갈아썼다. 하지만 끝내 빈약한 타격 문제와 더불어 여전히 약점으로 꼽히는 약한 어깨를 극복하지 못했다. 도루 저지율이 겨우 0.223이었다.


4.3. 2013 시즌[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허도환/선수 경력/2013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상무에서 갓 제대한 박동원의 백업으로 출발했으나, 박동원이 부진하면서 주전으로 복귀하였다. 이때부터 나 없으면 포수 없다는 생각이 든 건지 급격하게 교만해지기 시작했다.


4.4. 2014 시즌[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허도환/선수 경력/2014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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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한화 이글스 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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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도환 한화 시절 응원가


5.1. 2015 시즌[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허도환/선수 경력/2015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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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드로 한화에 이적하였다.


5.2. 2016 시즌[편집]


2016년 KBO 리그 2차 드래프트 2라운드로 차일목이 넘어오면서 바로 밀려나서 시즌 시작과 함께 2군 붙박이행. 조인성이 심각한 노쇠화로 까이는 와중에도 허도환을 언급하는 한화팬은 아무도 없다는게 현실.

4월 13일 조인성의 부상으로 1군으로 콜업되었다.작년보다 기회를 더 못 받고 있다.

그런데 5월 1일 삼성전에서 5회 대수비로 나온 후 6회 2루타 1타점, 8회 2루타 2타점으로 결승타를 쳤다.

5월 4일 SK전에서 심수창과 함께 제로퀵 사건의 당사자가 되었다.

5월 7일 경기를 마지막으로 다시 2군 붙박이가 되었다.

이태양이 손가락 염증 치료 및 재활을 위해 2군으로 내려간 시점에 1군으로 다시 콜업되어 12일 9번 타자로 LG전에 출전했으나 결과는 스윙 삼진.

7월 27일 내야수 주현상, 포수 조인성, 외야수 송주호가 2군으로 내려감에 따라 유격수 하주석, 외야수 이종환과 함께 다시 1군으로 콜업되었다. 조인성의 기대에 못 미치는 플레이에 지친 팬들은 감독의 들 모두가 2군에 모이게 된 것에 환호성을 보내고 있다.

9월 27일 두산전에서 3회초 조인성 다음 포수로 투입되어 4회말 2사 만루에서 니퍼트의 커브를 받아쳐 파울만루홈런을 만들어내어 두산을 얼어붙게 만들고 이후 공을 골라내다가 떨어지는 공을 받아쳐 니퍼트를 상대로 2타점 적시타를 때려내며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다.[8] 2타수 1안타 1삼진을 기록하고 9회말 2사 주자없는 상황에서 대타 장운호와 교체되었다. 팀은 홍상삼의 방화와 오선진의 끝내기 2타점 적시타로 기적처럼 8:9로 역전승.

10월 5일 kt전에서 2회 로위를 상대로 안타를 겨우 뽑아 4타수 1안타 3삼진을 달성하였고 팀은 선발 전원 안타와 이태양의 4일 휴식 후 호투, 송은범과 서캠프의 의문의 호투로 7대 2 승리를 거두었다. 7회 1사 1루에서 서캠프의 폭투를 잡아 무리한 주루를 시도한 상대 주자를 아웃시켜 2사를 만들고 삼진까지 유도하며 서캠프의 3이닝 세이브에 큰 기여를 했다.

시즌 종료 후 한화의 포수 4 중에서 유일하게 WAR[9]이 +를 기록했다.[10][11] 표본이 적은 것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타격면에서 차일목보다 낫고[12] 조인성보다는 당연히 훨씬 우수한 기록을 찍었고, 도루저지율[13]이나 Pass/9(9이닝당 폭투+포일) 등 수비지표는 놀랍게도 KBO 리그 포수들을 통틀어도 상위권이다.

2017시즌 주전마스크를 쓰기에 손색없는 모습. 김성근 감독도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고 인터뷰로 밝혔다. 물론 War이 겨우 0을 넘긴 것이라 타 팀의 백업 수준이라는 말도 있지만 포수의 War은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되는지라.

그만큼 잠깐 터지고 기아로 넘어간 한승택, 역시 잠깐 터지나 싶다가 원래대로 회귀한 정범모[14], 잠깐 반짝하나 싶더니 어느샌가 사라진 지성준 등 포수 유망주들을 제대로 못키우는 한화의 처참한 육성 능력을 대표하는 산 증인이기도 하다.


5.3. 2017 시즌[편집]


조인성, 차일목 단 둘만 버티는 중이라 1군에 올리라는 팬들의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신성현과 트레이드되어 한화로 온 두산 출신 백업포수 최재훈의 눈부신 2경기 활약에 뭔가 김 감독도 깨달았는지 20일 조인성차일목을 함께 2군으로 보낸 뒤 드디어 1군으로 콜업시켰다!

4월 23일 kt전 7회초 교체 출전해 1타수 1안타(2루타) 1득점 1볼넷을 기록했다. 타율 10할, 출루율 10할, 장타율 20할로 OPS가 무려 3.00.

5월 3일 SK전 9회말 대수비로 교체 출전해 10회초에 박정배를 상대로 승부를 가르는 결승 솔로 홈런을 쳤다! 영상 이후 10회말 올라온 송은범과 배터리를 이루어 1세이브 적립에도 성공했다.

5월 4일 SK전에 선발 출장했으나 4회말 좌측 햄스트링 통증으로 교체됐다. 상태를 지켜본 후 검진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한다.

검진 결과 5월 5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올 시즌 1군 8경기에서 9타수 3안타 타율 3할3푼3리 1홈런 1타점 3득점 2볼넷 1사구 OPS 1.278로 좋은 활약을 보였기에 팬들의 아쉬움을 낳고 있다.

이후 2017년 6월말 이후 부상에서 회복된 이후로는 1군에 복귀해서 최재훈과 함께 한화 이글스의 1군 포수라인을 전담하고 있다.

7월, 확실히 타격은 절망적이다. 최재훈 선발 경기에서 가망이 없을때 대타로 나와서 마무리를 하며, 허도환 선발인 경우 지거나 점수차가 근소하면 타격이 낫고, 다수 투수들과의 호흡이 좋은 최재훈이 투입되는 패턴.

그리고 28일 또 햄스트링 통증이 터져서 2군으로 내려가고, 차일목이 콜업되었다. 롯데전 안영명의 완투 페이스를 함께하고 2안타를 갈기면서 승리에 기여해 놓고 타석에서 한 번 휘청였는데 그때 올라온 듯. 잘하고 햄스트링으로 2군행.

9월 40인 확대 로스터에 정현석과 교체되어 올라왔다.

9월 6일 KIA 원정에서 대승을 거두면서 마무리포수로 올라와서 강승현과 마무리했다.

9월 14일 넥센과의 홈 경기에서 7회 빅이닝으로 10대 2의 스코어가 갖춰지자 정범모와 교체되어 8회 투입되었고, 강승현, 박상원과 각 1이닝씩 호흡을 맞추었다. 타석에서는 삼진을 당하며 물러났다.

이후 죽 최재훈/정범모의 백업으로 출전하고 있다

9월 30일 SK전 7회 종료 후 최재훈의 대주자로 투입된 강상원 대신 대수비로 투입되어 마무리 포수를 맡았다. 그런데 같이 배터리를 이룬 패전조 박상원이 기적의 2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홈런을 친 기억이 있는 박정배를 상대할뻔 했으나 대타 최진행과 교체되었다.

시즌 최종 타율 .225에 OPS .701로 타격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6. SK 와이번스 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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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도환 SK 시절 응원가

시즌이 끝난 후 2018년 KBO 리그 2차 드래프트에서 SK 와이번스의 지명을 받고 이적했다.[15] 이홍구를 대신할 백업 포수로 허도환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16]


6.1. 2018 시즌[편집]



▲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김광현의 공을 잡으며 우승을 확정짓는 장면

일단 개막 엔트리에는 이재원이성우가 이름을 올리면서 허도환은 2군에서 시즌을 시작하게 되었다. 임태준, 이윤재와 함께 2군 주전 포수로 출장하며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이재원이 부상 우려로 보호 차원에서 잠시 이성우가 선발 출장하는 와중에 5월 23일 1군으로 콜업되었다. 이날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대수비로 출장하며 오랜만에 1군에 복귀했다.

5월 25일에 다시 2군으로 갔다가 6월 5일부로 다시 1군으로 올라왔다.

6월 16일 롯데전에서 브룩스 레일리를 상대로 초구를 받아쳐 시즌 첫 홈런이자 SK 이적 후 첫 홈런을 기록했다. 하지만 팀은 서진용백인식의 방화로 대패.

그리고 다음날 다시 1군에서 말소되었다. 여러 모로 이성우가 여전히 건재한 기량을 보여주고 있는 터라 허도환의 자리 또한 생각보다 안정적이지는 않은 상황.

8월 14일 다시 1군으로 올라왔다.

거의 2군에서 시즌을 보냈는데, 플레이오프 엔트리에 트레이 힐만 감독이 포수 3명을 넣으면서 포함되었다.

11월 2일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는 이재원의 부상으로 선발출장했다. 결과적으로 교체되기 전까지 2타수 무안타로 출루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초반에는 팀 전체가 제이크 브리검의 역투에 속수무책으로 틀어막혔는데, 그래도 허도환은 브리검의 투구수를 늘리며 끈질기게 버텼다. 첫 타석에서는 끈질긴 승부 끝에 진루타까지 만들어냈으니 나쁘지 않았던 편. 수비에서도 블로킹 등에서 전체적으로 괜찮은 모습을 보였다.

2018년 한국시리즈에서는 6차전에서 이재원이 대주자 박승욱으로 교체되자 이재원의 대수비로 투입되었고, 마무리 투수 김광현마지막 아웃카운트 공을 받아 냈다.[17] 그리고 현역 생활을 시작한 두산 베어스 앞에서 커리어 첫 KS 우승 반지를 얻게 되었다.

한국시리즈 종료 후 가고시마 마무리캠프에 참가했다.


6.2. 2019 시즌[편집]


2018 시즌 종료 후 이성우가 방출됨에 따라 이현석, 전경원과 함께 이재원의 백업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플로리다에서 열리는 1차 스프링캠프에 참가했으며 오키나와에서 열리는 2차 스프링캠프에도 참가했다.

3월 15일 한화와의 시범경기에서 1타수 1안타 1타점 1득점을 기록했고 태그업 등 베이스 러닝에서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3월 19일 두산과의 시범경기에서 홈런과 2루타를 기록하는 등 맹활약했다.

시범경기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이현석 대신 백업 포수로 개막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이후에는 경기 중후반 대수비로 주로 나오고 있으며, 선발이 브록 다익손일 경우에는 다익손 전담 포수로 선발 라인업에 포함되며 꾸준히 얼굴을 비추고 있다.

5월 5일 롯데전에도 브록 다익손과 호흡을 맞춰 다익손의 6.2이닝 3실점 11탈삼진 호투를 이끌었고 타석에서는 7회초 브룩스 레일리를 상대로 역전 솔로홈런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여담으로 이전까지 홈런은 커녕 안타도 기록하지 못하다가 이 홈런으로 타율이 0.056(18타수 1안타)로 올랐다. 또 하나는 작년에 유일하게 1개 있던 홈런도 레일리를 상대로 쳤었다는 것.

5월 11일 KIA전에서 다익손과 호흡을 맞추며 다익손은 5이닝 3실점으로 승리투수를 하고 허도환은 2루타를 치고 나가 고종욱의 적시타로 6대3으로 점수를 벌리는 득점을 했다.

6월 7일 삼성전 10회말 만루 상황에서 스퀴즈를 실패하며 결국 경기를 끝내지 못했다.

6월 15일 선발 출전하며 헨리 소사와 1808일만에 배터리 호흡을 맞췄다.

그러나 6월 20일 KIA전에서 개막장 포수 수비로 팬들에게 욕을 먹었다. 스탯티즈 기준 WAR은 나종덕 다음으로 낮은 -0.47.

7월 17일 현재 안타가 6개인데 장타가 4개인[18] 기묘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장타성 타구가 아쉽게 잡힌 경우도 꽤 되는편.

8월 24일 기아전에서 선발 포수로 출장하였다. 2회 2사 만루에서 몸에 맞는 볼로 1타점을 기록하였다. 이후 8회 2사 3루 타석에서 대타 이재원으로 교체. 이재원이 1타점 2루타를 기록해 팀은 3:4로 승리하였다.

8월 30일 삼성전에서 주전 포수인 이재원의 부진으로 선발 출장하였다. 4타석 3타수 1안타로 시즌 9번째 안타를 기록했다. 1회에 박계범의 도루를 저지하고 2회 무사 2루 상황에서 희생번트를 통해 1사 3루를 만드는 등 쏠쏠한 활약을 하였다.

플레이오프 엔트리에 포함됐으나, 이재원의 끝없는 부진 속에서도 출장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시즌 후, 윤석민을 상대로 현금 2억과 함께 kt wiz로 이적했다. 장성우의 백업롤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7. kt wiz 시절[편집]



▲ 허도환 kt 응원가


7.1. 2020 시즌[편집]


시즌 초반에는 강현우에 밀리며 2군에서 시작했지만, 이후 1군에 올라오며 백업포수로 쏠쏠한 활약을 하고 있다. 반면 그를 보낸 SK는 이재원의 부상 이후, 포수난에 시달리며 왜 허도환을 트레이드했냐는 비판을 받게 된다. 그 후, SK는 이흥련을 트레이드로 영입하며 포수진에 간신히 숨통을 틔었다.

본인의 전 소속팀들을 상대로 선발출장할 때마다 유독 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6월 18일 SK전에서는 3타수 1안타 1볼넷 뿐만 아니라 도루저지를 기록하는 등 공수 양면에서 활약하였고, 6월 27일 한화전에선 3타수 2안타 2타점으로 무력시위를 선보였다.

7월 15일 한화전 8회말 1사 1,3루에서 박상원 상대로 적시타를 쳤다.

8월 15일 이홍구가 트레이드로 오면서 허도환이 트레이드가 되지 않느냐 하는 추측이 돌고 있었지만 트레이드 마감일까지 kt에 잔류하면서 추측은 사그라들었다. 다만 9회 말에 오재일의 포수 앞 땅볼을 1루수에게 던지려다가 크게 빗나가는 악송구를 범하면서 역전패의 시발점이 됨에 따라 입지에 어느 정도 변화가 올 가능성이 생겼다.

8월 26일 키움전 10회말 1사 2루에서 좌익수 키를 훌쩍 넘기는 끝내기 안타를 기록했다! 지난 15일 경기를 원맨쇼로 말아먹었는데 이번 경기에서는 주인공이 되며 설욕을 했다.

9월 30일 삼성전 10회초 대타로 출장해 좌익수 앞 깔끔한 안타로 타점을 기록했고, 이 안타가 결승타가 되었다.

10월 6일 어깨 통증으로 빠진 장성우를 대신해 포수 마스크를 썼으나, 4점차로 앞선 경기에서 허도환 특유의 2스트 이후 무조건 바깥쪽 아래 변화구를 주문하는 리드 때문에 주권이 상대에 2볼넷을 내리 내주고 투구수만 낭비하면서 역전의 빌미를 내주고 말았다. 9회초엔 빠른공에 강하기로 정평이 난 김준태를 상대로 직구로만 승부를 보다 담장을 때리는 장타를 허용, 또다시 1점을 내줬다.

10월 30일 페넌트레이스 최종전에서 8회말 장성우와 교체되어 대수비로 들어갔고, 3:4로 뒤진 9회 2사에 타석에 들어서 정우람의 초구를 받아쳤으나 우익수 뜬공으로 물러났다. 당시 kt는 경기 도중 LG와 키움이 동시에 지면서[19] 정규시즌 2위가 확정된 상황이라 경기에서 졌음에도 해맑게 웃으면서 아웃당하는 기묘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7.2. 2021 시즌[편집]


시즌 초에는 2군에 있었으나 이홍구의 심각한 타격 부진으로 뒤늦게 1군에 콜업되었다. 그러나 선발 출장만 했다 하면 이상한 볼배합과 터무니 없는 실책으로 팬들은 이홍구의 콜업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허도환과 친한 매직박에게 허도환의 볼배합이 구리다고 한 kt팬이 있는데, 매직박이 허도환에게 이 말을 전달했더니 허도환이 굉장히 화를 냈다고 한다. 그 뒤로 뜬금없이 각성했다.

6월 18일 장성우가 부상 누적으로 인해 연속 포일을 저지르자 휴식기를 갖고 대신 허도환이 포수 마스크를 쓰게 되었다. 오랜만의 콜업.

6월 19일 두산과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 동점 적시타와 희생 번트를 안정적으로 대면서 2차전에서 괜찮은 활약을 남겼다.

6월 20일 두산과의 경기에서 7회말 홍건희를 상대로 동점 적시타를 때려냈다. 이후 8회말에 강백호의 역전 적시타, 박경수의 투런포가 터지며 kt가 4대 1로 승리했다.

6월 22일 KIA와의 경기에서 번트 두번을 기가막히게 성공했고 번트를 댄 이후 상대 투수의 송구실책으로 출루까지 성공했다. 한편 상대팀인 오선우는 번트를 실패하고 기아는 득점권 상황에서 득점까지 실패하면서 다시금 번트의 중요성을 알게 해주었다. (암튼 장성우 대신 잘 해주고 있다.)

6월 26일 한화와의 경기에서 라이언 카펜터를 상대로 투런 홈런을 뽑아냈는데, 이 홈런은 무려 2시즌 만의 홈런이었다.

6월 27일 한화와의 경기에서 첫 번째 타석에서 좌익수 키를 넘기는 큰 타구를 날렸으나, 2루에서 아웃되었다. 2.5루타 2021 ver. 이후 6회에는 신정락을 상대로 2:0에서 6:0으로 달아나는 KBO 리그 데뷔 첫 만루홈런을 날렸다. 무려 이틀 연속 홈런이다. 그리고 28일에 이홍구가 1군에서 말소됨에 따라 이홍구를 대신할 백업 포수로 계속 1군에 남을 것으로 보인다.

7월 2일 키움과의 경기 4회말 1사 2,3루 상황에서 기습적인 스퀴즈 번트를 성공시켜 투수전의 균형을 깼다. 다음 타석인 6회말엔 아예 요키시의 풀카운트 승부 끝에 유격수 방향 안타로 타점을 올려버렸다. 팀득점 4점 중에서 2타점을 책임지는 멋진 활약을 펼치며 MVP인터뷰까지 받게 되었다. 팀 동료였던 김태균 해설은 허도환을 엄청나게 비행기 태우면서 놀려댔다.

8월 20일 롯데전 선취점을 내는 1타점 적시타 포함 3타수 1안타를 기록했고, 8월 27일 SSG전에서는 동점상황 8회 1사 1, 3루에서 고의사구로 만들어진 만루 상황에서 대타로 나와 2타점 안타로 결승타를 쳤다. 많은 타석을 소화하진 못했지만 올 시즌 득점권에서 굉장히 강한 모습이다. 득점권 타율이 무려 .556, 득점권 OPS 1.581 이다.

8월 27일 수원 SSG전 대수비로 출장해 딱 1타석 들어섰는데 정확히 만루 찬스에서 걸렸고, 2타점 적시타를 기록했다. 득점권에서 유난히 강한 면모를 보인 덕에 벌써 시즌 14타점을 기록중이다.[20]

9월 5일 잠실 LG전 선발 출장해 4타수 2안타 1볼넷을 기록했다. 두번째 안타가 좌익선상에 떨어져 펜스에 원바운드로 맞는 공이었는데 2루까지 달리다가 넉넉하게 아웃당했다.

9월 11일 SSG전 8회말 1사만루 상황에서 병살타를 쳤다.
이게 올해 허도환의 만루상황속 타석에서 첫 아웃 이었다.

9월 28일 수원 두산전 2안타 3타점을 기록하여 시즌 20타점을 기록했다. [21] 시즌 타율은 .283.

10월 16일 포수와 부딪히며 부상을 당했고 다음날 말소되었다. 대체 선수로는 군 전역 후 복귀한 조대현이 등록되었다.

2021 시즌 기록은 62경기 타율/출루율/장타율 .276/.339/.390 sWAR 0.33을 기록하였다. 선발포수로서는 약간 부족하지만, 백업포수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성적으로, 어느 팀에 가더라도 엔트리에 최소 2명은 들어가는 1군 포수 엔트리에 포함될 수는 있을 정도의 성적을 유지했다. 2022시즌에도 무난히 1군 선수로 활약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도 부상이 회복된 덕분인지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는 포함되었다. 여담으로 kt의 선수들 중 유일한 한국시리즈 우승 경험이 있는 선수이다. 장성우가 주전 포수로 4경기 모두 선발 출장했고, 이렇다할 대타/대수비 찬스 없이 팀이 4전 전승으로 우승하는 바람에 단 1경기도 출전하지 못하고도 데뷔 2번째 우승 반지를 획득했다.


7.2.1. FA[편집]


2021년 시즌을 마치고 첫 FA 자격을 취득했다. 매직박 방송에서 통화를 했는데 매직박이 혹시 4억에 10년 계약은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오히려 본인이 kt가 나한테 4억을 왜 쓰겠냐면서 황당해 했다.[22] 아마 신청하지 않거나, 신청하더라도 단기 계약 정도로 끝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FA 신청을 했다. 스톡킹에서 말하길, 선수를 그만 둘 생각으로 신청했다고.

그리고 역대급 폭풍이 몰아치는 스토브리그 시즌 중에서 유일하게 조용했다. 정훈은 C등급이라는 이점으로 여러 구단 팬들의 시선을 받았는데[23] 허도환은 같은 C급임에도 어? 허도환도 FA였어? 라는 말 외에는 반응이 크게 없었으며, 장성우는 일련의 사건 때문에 타팀 팬들이 좀 꺼려서 그렇지 충분히 수십 억 규모의 계약을 따낼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되려 허도환이 낙동강 오리알이 돼버린 상황.

허도환 정도의 백업포수는 타팀에 얼마든지 있는 상황이고 만에 하나 가능성이 있었던 삼성도 트레이드로 김태군을 영입하며 가능성이 사라졌다. 연봉이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님에도 그 보상금조차 아까운 상황이기 때문에 타팀 이적은 어렵다. 백업포수로서 가치는 있기 때문에 원 소속팀 kt와의 계약이 유력하다. 그렇기에 허도환이 FA 신청을 한 이유가 kt측에서 외부 영입 성사시 보상선수 자리를 하나라도 더 만들기 위해 허도환에게 FA 신청을 요청했고 허도환은 그 요청에 따른 것이 아니겠냐는 추측이 다시금 나오고 있고 이는 가장 그럴 듯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24][25] 그러나 박해민의 보상선수로 김재성이 지명되며 백업포수가 사라진 LG에서 오퍼를 넣을 수도 있기 때문에 아직은 잔류를 속단하기는 금물인 상황. kt도 몇 달 전 김준태를 데려와서 백업 포수가 급하지 않은 상황이기도 하다.

의외라면 의외의 사실로 kt 창단 후 역사상 처음으로 내부 FA 유출 대상이 되었다.[26]

8. LG 트윈스 시절[편집]


그리고 12월 30일, 백업 포수가 없는[27] LG 트윈스와 2년 계약에 계약금 2억, 연봉 2억, 총 4억이라는 소규모의 계약을 체결하며 이적이 확정되었다. C등급 FA라 상대적으로 출혈이 크지 않기 때문에 영입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전임자인 이성우도 LG 시절을 제외하고 소속팀이 모두 우승했지만,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든 것은 2018년 단 한 시즌 뿐.

LG 팬들은 의외라는 반응이 많다. FA 시장에 강민호와 허도환이 나왔을 때 차명석 단장은 포수 포지션에 대해서는 관심 없다고 말했고, 김재성이 박해민의 보상선수로 삼성으로 이적하였을 때도 유강남의 백업포수는 내부에서 해결할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전 포수 유강남의 갑작스러운 부상, 혹은 기존 백업 포수들의 경험 부족으로 인한 수비 불안 등의 우려를 지울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인지 허도환을 영입해 서비스 타임을 더 가지려는 의도로 보인다.

LG로 이적하면서 허도환은 두산, 넥센, SK, kt와 더불어 수도권 5개 팀을 모두 거친 선수가 되었다. 또한 LG가 여섯 번째 팀이 되면서 최익성[28]과 함께 KBO에서 가장 많은 팀을 거친 선수가 되었다.

심수창의 유튜브에 출연했는데 kt와는 2번 만났지만 입에 담을 수도 없는 금액을 제시했다고 한다. 이후 기사에서는 kt가 단년 계약을 제시했다고 한다.

시즌 전 형님상을 당했다.[29]


8.1. 2022 시즌[편집]


시즌 개막 직전 형님상을 당해 개막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대신 박재욱이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이후 4월 8일 경기 직전 류지현 감독의 발언에 의하면 형님상으로 인해 마음 고생이 꽤나 심했던 듯 혼자서 연습을 하고는 있으나 컨디션이 제대로 올라오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때문에 복귀까지는 시간이 다소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4월 9일 1군 엔트리에 복귀했다.

4월 15일 한화전에 출장하였으나 2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4월 21일 kt전에 출장하여 4타수 3안타(2루타 2) 1득점으로 맹활약하였으나 팀은 패배했다. 이날 박병호에게 2,712일만의 도루를 허용했다.[30]

그 이후로는 작년 모습 정도의 활약을 했다. 선발로 나오는 날은 주로 플럿코 전담포수 및 유강남의 체력안배를 위해 나왔다.

5월 26일 친정팀이었던 키움전에서 6:0으로 처참하게 지는 와중에 솔로 홈런으로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시즌 1호.

그러나 6월 들어 타격이 영 시원찮다가 선발출장한 17일 키움전에서 3타수 1안타를, 역시 선발출장한 26일 KT전에서 4타수 2안타를 때려냈다.

7월 23일 NC전에서 대타로 타석에 들어서 2타점 적시 2루타를 날리기도 했다.

이후 타격에서 부진하며 타율도 어느덧 0.226까지 떨어졌다. 게다가 유강남도 8월 9일 기준으로 10경기 동안 타율 0.367의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거의 막판 대수비로만 출전하는 중이다.

전반기 중후반 즈음부터 김윤식의 전담 포수로 출장하면서 김윤식 선발 경기에는 거의 선발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9월 2일 kt전에서 김윤식 선발 등판에 맞춰 9번 포수로 선발 출장하여 수비에서 김윤식의 호투를 이끌고 타석에서 멀티히트를 기록하며 활약했다. 팀은 오지환문보경의 홈런으로 승리하여 6연승을 달렸다.

9월 17일 한화전에서 9번 포수로 선발 출장해 이민호와 배터리를 맞추며 좋은 호흡을 보였다. 6회 유강남이 마스크를 쓰자 연속 안타를 허용한 것을 보면, 허도환이 LG의 토종 선발진과 잘 맞는 것 같아 보인다. 이날 경기는 문보경의 희생플라이, 오지환의 홈런과 유강남의 주루 플레이로 4-1로 승리했다.

10월 5일 KIA전에서 두 타석 만에 멀티히트를 기록하고, 1타점도 올리면서 승리에 기여했다.

김윤식이 플레이오프 엔트리에 포함됨에 따라 전담 포수인 허도환 또한 자연스레 엔트리에 승선했고[31] 김윤식이 선발로 나온 3차전에서 멀티히트를 치며 분전했지만 팀은 1승 3패로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정상호, 이성우, 김재성 등 과거 타격에서 폐급이었던 백업 포수들보다는 나은 성적을 보여줬다. 이성우는 2020년 회광반조를 보였지만 9-10월 많은 나이 때문에 급격한 부진에 빠지기도 했다. 물론 주전 유강남보다는 타격이나 프레이밍 등에서 아쉬운 모습이 많았지만 젊은 선발투수들을 잘 이끌며 제2포수로는 손색없는 활약이었다.

이후 FA로 박동원이 영입되면서 2014년 이후 9년 만에 재회하게 되었다. 박동원의 경우 유강남만큼 많은 수비이닝을 소화할 수 있는 금강불괴는 아니라서 허도환의 역할이 더 중요하게 되었다.

8.2. 2023 시즌[편집]


  • 시범 경기
백업 자리를 놓고 13살 어린 김기연과 경쟁했다. 그러나 3월 21일까지 총 5경기에 출장하여 4타수 1안타 2삼진의 그저 그런 타격 기록으로 개막 엔트리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

  • 정규시즌
결국 개막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아무래도 만 38세라는 많은 나이라 어린 선수에게 기회를 주고자 한 듯. 염 감독의 말로는 2군에서 홈 경기만 출전시키고 원정에서는 잔류군 코칭을 시킬 것이라고 한다. 이번 시즌이 선수로서의 마지막 시즌이 되는 게 유력해졌다.# 실제로는 원정 경기의 절반 정도에도 출장하여 실전을 꾸준히 대비하도록 했다고 한다.

현재 김윤식의 퐁당퐁당식 부진이 이어지고 있어, 2022년 김윤식이 좋았을 때의 전담포수였던 허도환을 보고싶어하는 팬들이 매우 많다.

1군에서 백업포수로 활약중인 김기연은 타격은 말할 것도 없으며, 도루저지도 안 좋고, 블로킹도 최악에 플라이아웃 실책으로 올시즌 100이닝도 안 뛰었으나 벌써 3실책을 기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승을 노리는 팀의 감독이 대놓고 허도환을 무시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

그러나 김기연이 6월 2일 최악의 플레이를 시전하며 말소되었고, 반대급부로 김범석과 함께 1군에 콜업되었다.

6월 6일 키움전에 8회 말 박동원의 대수비로 유영찬과 함께 투입되었으며, 9회초 병살타를 기록하였다.

6월 17일 두산전에 선발로 나왔으나, 바운드된 투구를 목젖에 다이렉트로 맞았다. 순간적으로 쓰러졌으나[32] 다시 일어나서 경기를 했다.[33] 이때 타석에 섰던 양의지도 이를 발견한 후 응급처치를 도왔던 반면[34] 쓰러질 때 감독인 염경엽은 직접 가기는커녕 눈길 한 번 안 주는 모습으로 LG팬들에게 욕을 먹고 있다. 그 이후 곽빈을 상대로 한 점차로 쫓아가는 1타점 적시타를 보여주며 경기를 9회까지 마무리 지었다.

6월 21일엔 갑자기 박동원의 대주자로 나오더니, 의외로 굉장히 빠른 주력을 선보이며 홈에 들어왔다.[35]

6월 22일 대주자로 교체된 박동원 대신 대수비로 출장하여 첫 타석에서 유격수 땅볼 때 타석에서 미끄러져 넘어지는 바람에 병살타 때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굴욕을 당했으나 연장 12회초에 맞은 두 번째 타석에서 전사민의 2구에 절묘한 스퀴즈 번트 야수선택으로 3루주자 박해민을 불러들여 결승타점을 만들어냈다.

6월 25일 롯데전 이후엔 한 달째 선발 포수로 경기에 나오지 않고 간간히 대수비나 번트 위한 대타로 나오고 있으며 거의 박동원 혼자 포수 수비를 소화하고 있다.

7월 30일에는 선발로 나와서 사구만 두 번 맞고 안타와 2득점도 올리는 등 알찬 활약을 했다.

8월 19일 문학 SSG전 3회말 선수 보호차원에서 박동원 대신 대수비로 투입되었다.

8월 20일에는 손목 통증을 호소한 박동원 대신 선발로 나와 5회 말에 결정적인 홈 보살을 성공해 실점을 막았으며 6회 초에는 엘리아스를 상대로 자신의 시즌 첫 홈런인 동점 솔로포를 때렸다. 하지만 팀은 홈런을 제외하면 득점을 전혀 하지 못하여 1-2로 패배하고 말았다.

9월 17일 SSG와 DH 2차전 선발 출장해 5회말 3대2로 앞선 가운데 솔로 홈런을 쳐, 시즌 자신의 2번째 홈런을 기록했다. SSG전에서만 2개를 쳤다. 허도환의 솔로 홈런은 빅이닝으로 가는 기폭제가 되어 LG는 SSG와의 더블 헤더를 모두 이기고 시리즈를 스윕했다.

9월 27일 KT와 더블헤더 2차전 선발 출장해 1타점 적시2루타를 기록하고 문성주와 교체되었다. 작년보다 타율은 낮지만 오히려 더 많은 영양가 있는 안타를 만들어내고 있다.

10월 5일 3타수 2안타 2타점 2득점으로 경기를 캐리하셨다. 타점이 안타보다 더 많다.

  • 포스트시즌 - 한국시리즈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백업포수로서 승선하였는데, LG가 29년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들어올리는데 성공함에 따라 2018 SK, 2021 kt에 이어 통신사가 있는 팀에서 우승을 다 해보게 되었고, 동시에 3개 팀에서 우승 반지를 획득하는 기록을 세웠다.[36]

그리고 수원구장에서 펼쳐진 4차전에 7회말 박동원의 대수비로 7번타자에 들어서 8회초 2아웃 주자 1루에서 배제성을 상대로 좌익수 옆 1타점 적시 2루타를 쳐내며 스코어를 15:1로 더 벌리는 역할을 해냈다. 이후 폭투 때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3루로 달려갔다. 헛둘헛둘 이 타석이 본인의 시리즈 마지막 타석으로 남아 최종적으로 KS에서 타율 1.000, OPS 3.000, wRC+ 797.9의 괴물같은(?) 기록을 남기고 우승반지를 얻었다.

9. 연도별 주요 성적[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출장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7
두산
1
0
.000
0
0
0
0
0
0
0
0
.000
.000
연도
소속팀
출장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1
넥센
79
166
.223
37
6
1
0
15
13
2
13
.271
.275
2012
94
210
.195
41
11
0
1
14
11
0
22
.262
.272
2013
116
260
.215
56
12
1
1
19
29
0
43
.281
.327
2014
93
182
.220
40
8
0
2
12
18
0
28
.297
.322
연도
소속팀
출장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5
한화
61
91
.176
16
7
0
1
6
8
0
12
.286
.272
2016
48
78
.218
17
2
0
0
12
9
0
11
.321
.315
2017
30
40
.225
9
3
0
1
4
4
0
6
.375
.326
연도
소속팀
출장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8
SK
23
22
.273
6
0
0
1
1
4
0
2
.409
.333
2019
56
79
.127
10
3
0
1
6
3
0
8
.203
.202
연도
소속팀
출장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20
kt
52
53
.264
14
1
0
0
5
2
0
8
.283
.361
2021
62
105
.276
29
6
0
2
21
8
0
10
.390
.339
연도
소속팀
출장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22
LG
64
85
.247
21
5
0
1
6
7
0
4
.281
.341
2023
47
64
.141
9
3
0
2
10
8
0
9
.281
.243
KBO 통산
(13시즌)
826
1435
.213
305
73
2
13
131
124
2
176
.297
.293

[1] 허도환은 이수중-서울고-단국대, 서동욱은 휘문중-경기고-프로직행, 오재원은 경원중-야탑고-경희대를 다녔다.[2] 안경현도 전날 입은 허벅지 부상으로 선발에서 빠져있었다. 이로 인해 구대성에게 역전타를 치고도 1루까지 절뚝거리며 진루해야 했다.#[3]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스톡킹을 진행하던 심수창을 향해 "누군지는 말 안할게요. 이 하도 많이 하셔가지고...그 분이..." 라고 말했는데, 당시 두산 2군 감독이 박종훈이었다.[4] 강귀태는 2011 시즌 종료 뒤 연봉협상 과정에서 프런트와 충돌했고, 2012 시즌 들어서는 주전 보장을 요구해서 김시진 감독과의 불화설까지 흘러나왔다. 심지어 태업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4월 말에 강진 2군행.[5] 유선정은 2011 시즌 후 상무 입대를 추진하다가 탈락하고 나서 2012년 8월에 공익으로 입대했다.[6] 사실 이때도 빈약한 도루저지와 지나치게 단순한 투수리드에 대한 비판은 계속 나왔다. 그러나 아직 1군 경험이 별로 없는 포수라는 점에서 계속 경기에 나오고, 김동수 코치가 지도해주면 좋아질꺼라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7] 그러나 후술하겠지만, 1군 풀타임 주전을 두시즌이나 하고 나서도 계속 그 상태 그대로... 아니 오히려 퇴보했다. 무엇보다도 몇년동안 강귀태의 알까기에 눈이 썩던 넥센팬들 사이에선 그래도 커태보단 블로킹 능력이 낫다는 이유로 2012 시즌 까지는 모든게 무마됐다.[8] 허도환이 적시타를 치기 전까지 니퍼트는 이번 시즌 만루 상황에서 15타수 무안타를 기록중이었다.[9] 스탯티즈 기준.[10] 조인성 -1.36, 차일목 -0.62, 정범모 -0.10, 허도환 0.11.[11] 물론 허도환과 정범모는 표본이 적긴 하지만 조인성은 말 그대로 처참했고, 차일목은 후반 들어 체력 때문에 수비실책이 나오면서 까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번 시즌 허도환의 모습은 나름 안정감 있었다.[12] 타율은 1푼 정도 낮았지만 OPS는 3푼 높다.[13] 표본이 적어 큰 의미는 없지만 무려 40%에 달한다.[14] 본래의 본헤드 플레이가 반복되던 와중에 그 인물의 지침사항에 따라 도루저지를 정석대로 오버스로로 바꾸었다가 저지율이 크게 하락한 것도 한몫했다. 결과적으로는 17시즌 재활 후 복귀해 공이 잡히는대로 오버/사이드스로를 아무렇게나 골라가며 한다고 한다.[15] 여담으로 해당 2차 드래프트에서 유일하게 팀을 옮긴 포수이다. 한화 팬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16] 이홍구가 1월 입대하면서 당장에 써먹을 수 있는 포수가 팀에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최소 포수 가용 인원이 3명은 돼야 하는데 이재원을 주전으로 쓰고 이성우를 백업으로 둔다고 해도 1명이 부족한 것이 현재 SK의 형편. 게다가 2018년 이성우의 나이는 무려 38세다. 상무에서 전역한 이윤재도 있지만 나이 30줄에 1군 경력이 전무해 당장 활용하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2021년 시점에서는 이재원 빼고 다 SK를 떠났다.[17] 이 역할이 큰 것이 나중에 자료화면이 나올 때 계속 비춰지는 세 명(우승 확정 당시 투수, 타자, 포수) 중 하나이기 때문. 그래서 김광현-박경완 조합이 아직도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18] 2루타 3개, 홈런 1개[19] 특히 LG는 한화에 이어 SK에도 고춧가루를 직빵으로 맞으면서 2위에서 4위로 급하락하는 치명타를 입었다. 키움 역시 두산을 3위로 만들어주고 팀은 5위로 추락하면서 그야말로 초상집 분위기였다.[20] 여담으로 시즌 14타점 이상을 기록했던 마지막 시즌이 2013시즌이다.[21] 종전 최다 타점은 2013시즌의 323타석 19타점인데, 올 시즌은 108타석만에 20타점을 기록했다.[22] 이 시점에서 선수 본인마저 그렇게 생각했으나 백업 포수가 없는 잠실의 모 구단이 4억을 쓰며 정말로 그렇게 됐다. 무옵션으로 깔끔하게.[23] 그러나 이는 추후 팬들에 의해 설만 무성했을 뿐 실제로 영입 제의를 한 구단은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24] 가끔씩 구단들이 쓰는 방법으로 선수들도 좋아한다. FA를 신청하면 기본적으로 선수 본인의 자존심도 살고 기존 연봉의 삭감 없이 계약금도 소액이나마 받는 경우도 있는 등 금전적으로도 손해가 없어서 선호하는 편. 과거 LG가 이진영, 정성훈을 FA로 영입하기 위해 최원호, 이종열, 최동수와 이런 식으로 FA로 재계약을 맺은 전례가 있다. 근데 이 셋 중 최동수만 연봉이 올랐고 나머지는 직전 해에 부진했던지라 FA를 맺고도 연봉이 삭감되었다.[25] 정작 kt는 C등급인 박병호를 데려와 보상선수 없이 고액의 보상금만 주게 되었다.[26] 허도환 이전에 kt의 내부 FA였던 이진영, 이대형, 박경수, 금민철, 유한준은 전부 kt와 재계약을 맺었다.[27] 2021년에 백업 포수를 보던 이성우는 은퇴했고, 김재성 역시 박해민의 보상선수로 삼성으로 이적하면서 백업포수 자리에 공백이 생겼다. 박재욱, 김기연, 전준호는 1군 경험이 일천한 선수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1군 경험을 쌓기까지 시간을 벌어줄 선수가 필요했다.[28] 삼성, 한화, LG, KIA, 현대, SK를 거쳤으며 그가 활동한 기간동안 존재했던 팀 중 쌍방울, 두산, 롯데를 제외한 모든 팀을 거쳤다. 또한 삼성은 2004년에 다시 뛰어서 7번째로 팀교체였다.[29] 허석호씨. 한 때 투수로 프로야구에서 활약하였고 개명 전 형의 이름은 허태양이다.[30] 단, 박병호는 10년 전 얘기지만 20-20도 달성했을 정도로 그 덩치 치고는 절대 느리지 않다. 단지 최근에 너무 자주 깨졌던지라 과감한 주루 플레이를 자제하는 것 뿐.[31] 사실 유강남을 제외하곤 1군 경험이 풍부한 포수가 없는 LG의 팀 사정상 백업포수로 승선이 유력했다.[32] 여기서 목에 공을 맞고도 재빨리 공을 글러브에 집어넣고 쓰러지는 모습에 허도환의 프로정신을 칭찬하는 반응이 많았다.[33] 잠시 기절하여 약간의 발작까지 일으켰다.[34] 양의지도 포수인지라 보호 장비를 풀어줄 때 상당히 능숙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35] 대주자도 아낄 겸 교체 없이 대수비로 쓰기 위해 그런 것이다.[36] 3개 팀에서 우승 반지를 획득해본 케이스는 허도환을 포함해 최훈재(LG/해태/두산), 박종호(LG/현대/삼성), 심정수(OB/현대/삼성) 4명만 가지고 있는 진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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