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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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현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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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등번호 42번
엄종수
(1996)

신경현
(1998)


김병준
(1999~2000)
한화 이글스 등번호 32번
임수민
(1998)

신경현
(1999~2001)


고지행
(2003~2003.4.24.)
임재철
(2003.4.25.~2003)

신경현
(2005~2013)


이동걸
(2014)
한화 이글스 등번호 100번
결번

신경현
(2014)


박한길
(2015)
한화 이글스 등번호 92번
조정원
(2013~2014)

신경현
(2015~2017)


염진우
(2018)



파일:■.jpg

신경현
申炅賢 | Shin Kyunghyun

출생
1975년 12월 30일 (48세)
전라북도 군산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군산중앙초 - 군산중 - 군산상고 - 동국대
신체
187cm, 95kg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8년 2차 1라운드 (전체 2번, 한화)
소속팀
한화 이글스 (1998~2013)
지도자
한화 이글스 육성군 배터리코치 (2014)[1]
한화 이글스 2군 배터리코치 (2014~2015)[2]
한화 이글스 1군 배터리코치 (2015)[3]
한화 이글스 2군 배터리코치 (2016)[4]
한화 이글스 1군 배터리코치 (2016)[5]
한화 이글스 2군 배터리코치 (2016)[6]
한화 이글스 1군 배터리코치 (2017)[7]
한화 이글스 육성군 배터리코치 (2017)[8]
북일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18~2021)
한일장신대학교 야구부 코치 (2022~2023)
경남대학교 야구부 감독 (2023~)
응원가
Village People - Macho Man#[9][10]
가족
아들 신지후
1. 개요
3. 지도자 경력
3.1. 2014년
3.2. 2015년
3.3. 2016~2017년
3.4. 2018년 ~ 현재
4. 평가
5. 응원가
6. 그 외
7. 연도별 주요 성적
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한화 이글스의 前 1군 배터리 코치로 선수 시절 포지션은 포수.


2. 선수 경력[편집]


신경현의 선수 경력



3. 지도자 경력[편집]



3.1. 2014년[편집]


본래는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로 코치 연수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한화 포수진이 리빌딩이 당장 시급한 관계로 2014 시즌부터는 육성군 배터리코치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런데 2014년 4월 24일부로 분위기 쇄신차원이라는 명목으로 전종화 코치가 육성군으로, 조경택 코치가 1군으로 가게 되면서,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2군으로 이동했다.


3.2. 2015년[편집]


김성근 신임 감독이 부임하는 가운데 한화 코칭스태프의 적폐를 상징하던 인물인 조경택 코치를 비롯한 많은 칰무원들이 짐을 싸게 되었지만, 신경현 코치는 이상군, 임수민 코치와 더불어 한화에 남아 팀의 2014년 마무리훈련에 동행하게 되었다.

한편 9월 4일부로 1군에 승격되어, 같은 소속에 속했던 현역선수 절친과 마주보는 일이 생기게 된 것도 덤이다.


3.3. 2016~2017년[편집]


2016 시즌에는 2군에서 배터리코치를 역임하다가 시즌이 끝난 후 1군 배터리코치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시즌 종료 후 구단으로부터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고 짐을 싸게 되었다.


3.4. 2018년 ~ 현재[편집]


아들이 있는 북일고등학교 야구부에서 2018년부터 북일고 코치를 맡았으며 2020년 말에 부임한 이상군 감독 체제에서 수석코치를 지냈다. 2022년에 한일장신대학교 야구부 코치로 자리를 옮겼고, 이듬해인 2023년에 경남대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부임한다.[11]


4. 평가[편집]


커리어를 정리해보면 신인시절의 허리부상으로 인해 장타를 포기하고 밀어치기 위주의 단타만을 보여줬지만 타율 0.250 정도는 기대할 수 있는 공격력은 갖추고 있던 타자였다. 또한 '투수 리드[12]에 문제가 있다'라는 팬들의 의견과 다르게 현장에서 신경현의 볼배합에 대해 크게 의문을 표하거나 투수들의 불만이 표출된 적은 없었으며, 오히려 젊은 투수들이 신경현과 배터리를 맞추기를 원할 정도로 볼배합에는 일가견이 있는 포수였다. 한편 후배 투수가 실수할 때마다 째려봐서 기를 죽인다고 일명 '신경질'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면서 욕을 먹기도 했으나 이에 관련된 내용은 후술되어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게다가 이런 것들이 사실이었다면, 젊고 어린 신인급의 투수들이 과연 신경현과 호흡을 맞추려 하였겠는가를 생각 해 보면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수비의 핵심인 송구 능력도 컨디션에 따라 기복이 큰 편이었지만 전성기에는 주전 포수가 내야할 성적은 내줬다. 유리몸이라 300타수를 넘긴 시즌이 단 한번밖에 없었으나 의외로 경기 숫자는 100경기 이상씩은 꼬박꼬박 출전해줬으며, 커리어의 마지막을 찍을때까지도 70경기는 넘겼다.

정리하면 전체적으로 겉으로 크게 두드러지는 장점은 별로 없었지만 반대로 겉으로 크게 두드러진 단점도 없었던 선수였다.

이러한 애매한 성적은 팬들이 기대했던 성적은 아니였기에 항상 질타와 비난을 받았으며, 09년 이후로는 투수 유원상과 함께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김동수, 박경완, 진갑용, 조인성으로 시작하는 같은 세대의 선수들부터 한 세대 아래의 강민호에 이르기까지 그가 있던 같은 시대에 걸출한 선수들이 많았던 것도 그에게는 불운이었다.

게다가 야구가 다시 인기를 얻고 자리를 잡은 2008년 올림픽 이후에 한화는 꼴지팀으로 몰락해 각종 인터넷에서의 비난여론도 크게 활성화된 상태였는데, 하필 투수진도 제몫을 해주는 선수들 대부분이 은퇴하고 김혁민, 유원상 등 반쪽짜리 역할밖에 못해주던 젊은 투수들이 차지하기 시작하면서 이런 투수진들을 신경현이 이끌어야했고, 이에 따라 투수들이 부진한것에 대한 비난도 동시에 받아야 했다. 또한 부상악화로 인한 수비에서의 불안정함[13]도 이러한 비난 여론에 한 몫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대체할 선수가 나오지 않으면서 그는 꾸준히 자리를 지켰는데, 이 때문에 한때 한화가 성적이 안나오는 원인으로 꼽히는 기량발전이 없는 4명의 선수인 의 한사람으로 꼽히기도 했다.

이러한 비난속에서도 꾸준히 자기 자리를 잡고 팀에 기여해왔고 결국 한화에서 은퇴했다.

은퇴 이후 신경현의 선수시절을 다시 돌아보면 한화에서 나름대로 의미를 남긴 것을 알 수 있다. 신경현이 주전으로 자리잡으면서 빙그레 시절의 주전포수였던 김상국 이후로 공수에서 수준이하의 포수진밖에 없었던 한화 포수진이 10여년만에 안정되었으며, 빙그레를 포함한 이글스 역대 포수 중 10년 가까이 주전을 차지한 유일한 포수였다. 또한 타팀에서의 이적[14] 없이 순수하게 이글스에서 키워낸 첫번째의,[15] 그리고 이후 그 뒤를 잇는 포수가 자리잡지 못한 상황에서 보면 유일한 포수였으며, 이것은 이글스의 포수육성이 그동안 얼마나 답이 없는지에 대한 반증도 된다.

그가 은퇴한 이후, 한화의 유망주들인 박노민, 정범모, 이희근, 이준수, 한승택 모두 공수에서 적정수준을 넘지 못하고 주전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결국 조인성, 허도환, 차일목 등 외부 인력을 활용, 팬과 코치진들에게 절망과 공포를 주면서 신경현을 욕했던 팬덤에서도 "신경현이 우리가 생각했던것보다 좋은 포수였던거 같다", "이럴땐 신경현이 보고싶다"라는 이야기가 가끔씩 나오기도 한다.

2016년 한화 포수들이 보여주는 모습을 보고 신경현을 그리워하는 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나마 2017년 최재훈의 영입으로 한화도 포수가 활약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차일목이 묘한데서 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놀라움을 주고 있다. 최재훈은 결국 신경현의 뒤를 이어 한화의 안방을 책임지고 있다.

다만 수비에서의 블로킹 과정에서 선수들과의 부상이 많았다.

5. 응원가[편집]



일단 들어보자. 소리가 크니 조심.

신경현의 응원가는 빌리지 피플마초맨을 개사한 곡으로 쉬운 가사와 흥겨운 멜로디로 따라부르기에도 좋고 신나는 응원에 최적화된 응원가계의 전설급 노래로, 신경현의 은퇴소식이 들려오자 은퇴 자체보다 응원가를 더 못듣는걸 아쉬워 한 팬들도 있을 정도였다.[16] 게다가 질경련으로 들리는 특유의 애먼 몬더그린덕에 야구 밖에서 알려진 것도 한몫했다. 일각에서는 홍창화 응원단장의 많고 많은 업적 가운데에도 신경현의 응원가 선곡을 최고로 꼽고 있다. 사실 질경련은 끼워맞추기라고 할 여지는 있어도, 아무리 들어도 '최고의 포수'가 '최고의 고추'로 들리는 걸 부정할 수 없는게 킬링 포인트.

별명 및 애칭도 응원가에서 따와 최고의 포수, 혹은 살짝 비꼰 채고(체고)의 포수가 되었을 정도이며 순전히 이 응원가 때문에 항상 역대 최고 포수 논쟁에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다. 박경완의 응원가 가사가 최고의 타자인 탓이 크다.

또한 상술한 몬더그린 때문에 질경련이라는 애먼 별명도 있다.

같은 멜로디가 넥센으로 간 박병호LG시절 응원가에도 사용되었던 적이 있다.[17] 이후 김재율이 쓰다가 KBO 리그 응원가 저작권 사태로 인해 더이상 쓰이지 않게 되었는데... 이쪽은 정상적인 걸 넘어서 꽤 좋은 응원가로 기억되고 있다. 들어보자.

전근표, 정현석의 응원가와 함께 응원가계의 전설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2015시즌 등장한 신인 신성현의 남동생과 동명이인에다가 포지션도 같은 포수라 만일 한화로 온다면 이 응원가를 다시 들을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팬들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야구를 접고 공부에 열중한다고 하여 들을 일이 없게 되었다.

결국 신경현의 응원가는 2017년 한화 포수 공통의 응원가로 부활하며 불멸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조인성, 차일목, 지성준의 이름을 넣어 3가지 버전을 새로 녹음했다.

6. 그 외[편집]


  • 얼굴을 자주 찡그리는 탓에 '신경질'이라는 별명도 붙었는데, 사실 얼굴을 찡그리는 것은 시력이 좋지 않아 생긴 버릇이지 신경질과는 무관하다고 한다. 거기다 안구 건조증이라 라식 수술도 못 받는다고 한다. 안경 쓰고 나온 경기에서도 계속 얼굴을 찡그리는 장면이 눈에 띄지만, 이 역시 습관이 몸에 밴 탓이라 생각하면 이해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

  • 한화에 신경현과 함께 백업포수로 심광호가 있었을 시절엔 둘의 이니셜이 같다는 것에서 착안해 신경현은 SKH 1호기, 심광호는 SKH 2호기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심광호가 트레이드된 이후로는 1호기라는 별명은 거의 쓰이지 않았다. 반면 심광호는 트레이드 된 이후로도 쭉, 심지어 은퇴한 지금까지도 당시의 팬들에게 2호기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 류현진이 2013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LA 다저스로 건너간 이후 류현진과 단짝으로 배터리를 맞추는 주전포수 A.J. 엘리스에게 엘경현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더불어 신경현 특유의 '밀려치기' 타법을 류현진이 줄곧 선보여 옛 한화팬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 있다.

  • MLB에 간 류현진이 등판하는 날마다 문자를 보내 격려를 해주었다고 한다.기사

  • 은퇴식날 경기를 다뤘던 야구친구에서 MVP로 선정해주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그날 은퇴한 선수는 물론이고 복귀한 선수, 통산 기록을 갱신한 선수, 심지어는 심판의 오심에 항의하기 위해 등판을 했단 이유로 김응용감독도 MVP로 선정해줬다는 점을 생각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 은퇴에 발 맞추어, 마구마구 유저들 사이에서 신경현 레전드 카드 출시에 관한 떡밥이 돌고 있다. 체고의 포수를 비꼬기 위한 우스갯소리로 시작된 듯 하나, 기존의 레전드 카드 중 '왜 이 선수를 레전드로 출시해?' 라는 의문 부호가 붙는 카드들을 근거로 들며 신경현의 레전드 카드 출시를 옹호하는 유저들이 생겨나고 있다. 체고의 포수는 통산 600안타 언저리에 30홈런 정도 친 100안타 시즌 한 번 없고 두 자릿수 홈런을 겨우 한 시즌 친 선수지만 레전드 카드 능력치 상한선에 의해 최소 70-77의 파워-컨택트 능력치를 받을 수 있어 이글스 계열 덱을 가진 유저들로 하여금 나온다면 롯데 올스타의 김민재 레전드만큼이나 엄청난 환영을 받을 듯 하다. 물론 기대 반 의심 반이다. 결국 출시가 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은 한때의 해프닝으로 끝나버렸고 이도형도 한 때 레전드 카드 떡밥이 돌았으나 이 역시 출시가 되지 못하였다.

  • 2015년 정범모의 삽질 때문에 야구 커뮤니티에서는 좋은 의미에서의 재평가가 계속 이뤄지고 있다.

  • 아들 신지후도 야구선수이다. 2017년 북일고에 진학해 코치인 아버지와 한솥밥을 먹었으며, 포지션은 아버지와는 달리 투수. 아버지와 달리 포수를 안 한 이유는 아버지가 '포수는 힘드니 하지 말라' 조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투수로서의 재능이 출중한지 2020년 1차 지명자 후보군으로 오르내리고 있다. 지역 야구계에서는 신지후 군의 한화 1차 지명 가능성이 꽤 높았다. 그리고 결국 신지후가 한화 이글스의 1차 지명을 받으며 KBO 리그 사상 세 번째로 아버지가 뛰었던 팀에서 아들도 뛰는 사례가 만들어졌다.[18]

  • 프로 진출은 하지 않았지만, 신성현의 동생 이름이 신경현이다. 포지션도 포수였다.

7. 연도별 주요 성적[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8
한화
8
7
.000
0
0
0
0
0
0
0
1
.000
.125
1999
11
7
.000
0
0
0
0
1
0
0
1
.000
.125
2000
37
71
.155
11
2
0
2
5
4
0
5
.268
.211
2001
23
40
.325
13
5
0
0
6
5
0
5
.450
.400
2002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서 군 복무
2003
2004
97
274
.274
75
11
2
5
27
27
3
23
.383
.330
2005
110
321
.277
89
15
1
4
23
38
2
31
.368
.341
2006
100
272
.243
66
11
0
2
15
26
4
26
.305
.309
2007
107
260
.250
65
9
0
2
15
33
4
18
.308
.299
2008
107
296
.267
79
16
3
3
41
27
4
28
.372
.330
2009
78
176
.256
45
4
0
2
15
19
0
28
.313
.358
2010
119
253
.249
63
13
0
10
40
29
6
27
.419
.321
2011
103
233
.266
62
9
0
1
27
18
5
25
.318
.335
2012
76
149
.181
27
0
0
0
9
10
1
15
.181
.253
2013
1군 기록 없음
KBO 통산
(13시즌)
976
2359
.252
595
95
6
31
224
236
29
233
.337
.319


8. 관련 문서[편집]



[1] ~4월 23일[2] 2014년 4월 24일~2015년 9월 3일[3] 9월 4일~[4] ~4월 12일[5] 4월 13일~8월 12일[6] 8월 13일~[7] ~6월 13일[8] 6월 14일~[9] 한화 신경현~ 최고의 포수 신경현~ 한화 신경현~ 이글스의 안방마님~ (x2)[10] 은퇴 후 한화 포수 공통 응원가가 되었다. 박병호, 김재율의 LG 시절 응원가와 같은 곡이기도 하다.[11] 전임감독이 삼미 슈퍼스타즈의 좌완투수 였던 감사용 감독이었다.[12] 정확히는 볼배합[13] 시즌 전체로 보면 나쁘지 않은데 컨디션에 따라 경기력이 심하게 차이가 났다.[14] 참고로 신경현 이전의 빙그레-한화 포수들은 외부영입이 주를 이뤘다. 유승안해태 타이거즈에서, 조경택이도형두산 베어스에서 트레이드 해 왔다. 양용모강인권은 데뷔가 빙그레-한화였지만 정작 타팀으로 트레이드 되어 괜찮은 백업요원이 됐기 때문에 여기서는 논외.[15] 빙그레 시절부터 따지면 김상국도 있긴 하다. 하지만 김상국은 마지막 커리어 2년을 현대 유니콘스에서 보냈다.[16] 은퇴식에서도 응원가가 흘러나왔다.[17] 안타 박병호~ 날려버려 날려버려 박병호~ 안타 박병호~ 날려버려 박병호~ 안타![18] 아버지가 뛰었던 팀에서 아들이 뛰었던 첫 사례는 유승안경찰 야구단 감독과 장남인 현 KT 위즈 소속 투수 유원상이다. 아버지는 MBC 청룡에서 프로야구 데뷔한 후 빙그레 이글스에서 전성기를 맞았고 유원상은 아버지와 반대로 한화 이글스에서 프로 데뷔를 하고 LG 트윈스로 이적해 커리어하이를 기록했다. 두 번째 사례는 유승안 감독의 차남인 KIA 타이거즈 내야수 유민상이다. 아버지 유승안은 프로야구 초창기 해태 타이거즈에서 잠시 뛴 적이 있고 유민상은 KIA 타이거즈 선수였다. 반면 부자 야구선수로 유명한 이종범이정후 부자는 서로 겹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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