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각국 수상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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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각국 수상 현황[편집]


출처: 매일경제 / 영문 위키피디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순위
집계

전체
(20세기 이후)

과학분야
(20세기 이후)

과학분야
(21세기 이후)

1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404명,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293명,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91명,
2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137명,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95명,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29명,
3
파일:독일 국기.svg 독일
,111명,
파일:독일 국기.svg 독일
,88명,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19명,
4
파일:프랑스 국기.svg 프랑스
,72명,
파일:프랑스 국기.svg 프랑스
,40명,
파일:독일 국기.svg 독일
,16명,
5
파일:스웨덴 국기.svg 스웨덴
,33명,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25명,
파일:프랑스 국기.svg 프랑스
, 13명,
6
파일:소련 국기.svg 파일:러시아 국기.svg 소련+러시아
,32명,
파일:스위스 국기.svg 스위스
,23명,
파일:이스라엘 국기.svg 이스라엘
,6명,
7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29명,
파일:캐나다 국기.svg 캐나다
,18명,
파일:캐나다 국기.svg 캐나다
,5명,
8
파일:캐나다 국기.svg 캐나다
,28명,
파일:소련 국기.svg 파일:러시아 국기.svg 소련+러시아
^17명^
파일:스웨덴 국기.svg 스웨덴
^17명^
파일:스위스 국기.svg 스위스
,4명,
9
파일:스위스 국기.svg 스위스
,27명,
파일:호주 국기.svg 호주
,3명,


1.1.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편집]


세계 최선진강대국의 위상에 걸맞게 미국은 명실상부 세계 최다 수상자를 보유한 국가로서, 2022년 현재 노벨상을 수상한 미국인은 404명[1]. 2위인 영국과 비교하여도 단연 압도적인 차이이다. 1964년 까지 노벨상 수상 후보로 추천된 사람의 수도 4920명으로, 단연 1위를 차지하고 있다.[2]

21세기 이후 매년 4~11명의 미국인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되는 현재의 추이가 계속된다면 22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1000명대를 기록할 것이 확실시 된다. 학술분야에서 점점 패권, 선점국의 마태효과가 가속화되는 추세와 맞물린다.

세계의 과학계를 선도하는 나라답게, 미국은 과학 분야 노벨상들을 매년 휩쓸다시피 하는 걸로 유명하다. 어느 한 과학 분야 노벨상 시상에서 수상자 3명 모두가 미국인인 경우도 허다할 정도로 미국인의 비율이 높다. 그만큼 미국은 노벨상 수상이 일상화되어 있다. 물론 그렇다고 미국에서 노벨상이 가볍게 여겨지는 건 절대 아니고, 미국에서도 노벨상이 가장 권위 있는 상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만큼, 수상자가 배출되면 뉴스로 도배되는 건 기본이고 백악관에서 축하하는 행사를 한다.#

1943년 이래로 미국은 매년 1명 이상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으며, 문학상을 제외한 모든 시상 분야에서 수상자 수 1위를 달리고 있다.[3] 과학상 뿐만 아니라 평화상 수상자도 22명으로 제일 많고, 노벨 경제학상의 경우, 수상자의 70% 정도가 미국인으로, 거의 독점 수준으로 많다.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그만큼 미국 경제학계가 유리한 점도 분명 있다.#

유일하게 1위가 아닌 노벨문학상 분야는 13명으로, 국가별 순위 2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노벨 문학상 분야에서 미국은 사실상 박대받는다. 마크 트웨인은 후보에 열 번 가량 올랐으나 수상에 실패했고 로버트 프로스트와 필립 로스도 못받았으며 토머스 핀천코맥 매카시, 돈 드릴로, 조이스 캐럴 오츠도 모두 80살을 넘겨 받지 못할 것이란 분위기다.

그래도 13명으로 영국과 같이 2위니까 제법 받은거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여기에는 허수가 많다. 1948년 수상자인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은 영국문학과 문화에 매료되어 본격적으로 활동한 곳도 유럽이고, 상받기 한참 전인 1927년 영국에 귀화했는데 성인 때까지 미국인이라고 미국작가로 끼어넣어 계산내는 경우가 많다. 실제론 12명인데 1978년 수상자인 폴란드계 유대인 작가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는 망명와서 미국인이 되었을 뿐 이디시어로 글을 썼다. 1980년 수상자인 체스와프 미워시는 수상 당시 미국/폴란드 이중국적으로 폴란드어로 작품 활동을 했다. 1987년 수상자인 조지프 브로드스키는 소련 망명작가로 그의 대표시들은 모두 러시아어[4]로 쓰였다. 정작 작품의 절반 이상이 영어고 러시아어 작품들의 영어 번역도 직접했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같은 작가는 빠졌다.

즉, 이 허수들을 제하고 나면[5] 그 방대한 미국 문학에서 겨우 9명만 받은 셈이다. 참고로 유럽문학에서 주류였던 적이 한 번도 없는 스웨덴이 독일계 유대인으로 독일어로 집필한 1966년 수상자 넬리 작스를 제외하고도 7명인 것을 보면 북유럽 편향이 뚜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벨상 수상자들을 대학별로 분류할 경우에도 당연히 상위권은 미국의 대학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수상자수 순 대학 순위 2020년 기준으로 161명의 수상자를 배출한 하버드 대학교가 당연히 1위.[6]

세계에서 유일하게 과학상과 평화상을 모두 받은 인물인 라이너스 폴링 역시 미국인. 그런데 최상의 시나리오의 경우 3회 수상까지 가능했을지도... 반핵 운동 때문에 당시 매카시즘 광풍이 불고 있던 미국 정부에 출국 금지 조치를 받는 바람에 DNAX선 사진을 보지 못했고 DNA의 잘못된 구조를 내놓는 바람에 제임스 왓슨-프랜시스 크릭에게 생리의학상을 내줬기 때문.

화학자 칼 배리 샤플리스는 2022년 화학상을 수상함으로써 2관왕을 달성했다.


1.2.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편집]


영국의 수상자 수는 2020년 기준 모두 137명[7]으로 국적별 수상자 수 순으로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대학별로 분류할 때 2위와 9위가 각각 케임브리지 대학교(120명)와 옥스퍼드 대학교(72명)[8]로 영국 대학이 차지하고 있어 대학별 수상자 수 순으로도 상위권에 속한다. 모든 분야 전관왕을 달성한 국가이다.

생화학자 프레더릭 생어는 화학분야에서 2관왕을 달성한 수상자이다.

물리학자이자 생화학자인 로렌스 브래그는 25세 6개월의 나이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2023년 기준으로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중 최연소이자, 노벨상 전 분야에서 두번째 최연소 수상자이다.

1.3. 파일:독일 국기.svg 독일[편집]


독일의 노벨상 수상자 수는 전체 111명[9]으로 세계 3위이자 미국, 영국과 함께 현재 수상자 수가 100명 이상인 단 세 개 뿐인 나라 중 하나이다. 과학 분야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으며, 모든 분야 전관왕을 달성한 국가인 것은 물론이고, 세계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인 빌헬름 콘라트 뢴트겐이 독일인이다.


1.4. 파일:프랑스 국기.svg 프랑스[편집]


프랑스의 노벨상 수상자 수는 72명[10]으로 세계 4위이다. 전통적인 과학 강국답게 과학 분야에서 많은 수상자들을 배출하고 있으며, 문학상의 경우 16명이나 되는 수상자들을 보유하고 있어 1위를 기록하고 있다.[11] 모든 분야 전관왕을 달성한 국가이기도 하다.

유럽의 라이벌인 영국프랑스의 경우 경제-과학분야 노벨상에서 영국이 거의 3배로 앞서고 있다. 아무래도 영국은 영어권, 영미권인 만큼 미국과의 커넥션이 가장 수월하고 강하기 때문에 그 이익으로 인한 여파일 수 있다. 참고로 노벨상에 관한 내용은 아니지만 수학 분야에 대해 시상하는 필즈상의 수상자는 노벨상과는 반대로 프랑스가 미국에 이어 전체 2위를 자치해 영국, 독일보다 더 앞선다. 한편, 수상자들의 대부분이 파리 대학교 출신이다.

마리 퀴리는 물리학, 화학분야에서 2관왕을 달성했고, 과학분야에서 2관왕을 달성한 유일무이한 여성 수상자이다.

1.5. 파일:스웨덴 국기.svg 스웨덴[편집]


2020년 현재 33명[12]의 노벨상 수상자를 보유하고 있어 5위를 차지하고 있다. 과학 분야에서만 18명이 수상했으며, 특이한 점이라면 노벨문학상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

노벨상을 수여하는 나라가 스웨덴이다 보니 노벨 위원회가 무슨 노벨상 쿼터제라도 실시해서 이렇게 자국 수상자들이 많은 건지하는 의심을 간혹 받지만, 스웨덴은 이미 모든 시상 분야에서 수상자를 배출해 전관왕을 달성한 나라다.

사실 역대 최악의 노벨 과학상 랭킹에서 항상 1위를 기록하는 닐스 구스타프 달렌(Nils Gustaf Dalen)를 배출하기도 했다.# 그는 등대의 자동점멸장치[13]를 발명한 업적으로 1912년 노벨물리학상를 수상했다. 노벨위원회는 당시 해상교통을 안전하게 만드는데 공헌했다고 수상 이유를 밝혔지만, 지금 시점에서 볼 때는 아무래도 수긍이 가지 않는 내용이다. 사실 발명 내용을 따지자면 가연성, 폭발성 가스의 안전한 저장을 위한 다공성 소재를 개발했다고 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또한 노벨문학상의 경우, 스웨덴어를 쓰는 것에 대한 큰 메리트를 받았음은 부정하기 어렵다는 반론도 존재하고[14], 특히 노벨문학상 자체가 스웨덴이나 북유럽 출신들을 암암리에 밀어주는 경향이 뚜렷하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유럽 문학에서 주류였던 적이 한 번도 없는 스웨덴이 독일계 유대인으로 독일어로 집필한 1966년 수상자 넬리 작스[15]를 제외하고도 7명이다.

이렇게 암암리에 스웨덴을 밀어주는 경향의 예로, 마크 트웨인셀마 라게를뢰프에게 물 먹었고, 포스트 모더니즘의 산파이자 롤리타로 영미문학계에 일대 파란을 몰고 온 망명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세계 문학사에 남을 거장 중 하나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그리고 영국의 대문호 그레이엄 그린 등의 각국 국가대표급 작가들은, 스웨덴인이자 노벨위원회 위원이었던 에위빈드 욘손과 하뤼 마르틴손[16]에게 밀려 수상하지 못했다.

결국 욘손과 마르틴손 모두 스웨덴 아카데미 회원으로 '셀프 추천'과 '셀프 수상'을 했다는 비평가들의 신랄한 비판과 냉대속에 잊혀 욘손은 노벨문학상 수상 후 별다른 활동 없이 1976년 사망했고, 마르틴손은 심적인 고통과 문단 및 평단의 냉대를 이기지 못하고 1978년 가위로 자살해 수상 후 가장 비참한 최후를 맞은 작가로 노벨문학상 역사에 오명을 남겼다.

스웨덴 우대의 끝판왕은 퓰리처상전미도서상을 수상한 영국의 시인 위스턴 휴 오든의 사례. 오든은 누가 봐도 노벨문학상을 받을 만한 사람이었음에도 못받았는데, 가장 유력한 이유가 '스웨덴 출신 노벨평화상 수상자' 다그 함마르셸드의 책을 번역할 때 일부 오역을 범했기 때문이다.[17]


1.6.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편집]


파일:The Nobel Prize.png 일본의 역대 노벨상 수상자
29명

[ 수상자 목록 | 펼치기 · 접기 ]
이름
연도·부문
사유
비고
유카와 히데키
(湯川 秀樹)
1949
물리
중간자의 존재 예측
최초 수상
도모나가 신이치로
(朝永 振一郎)
1965
물리
양자 전기역학의 기초 연구

가와바타 야스나리
(川端 康成)
1968
문학
소설 《설국
문학상 최초 수상
에사키 레오나
(江崎 玲於奈)
1973
물리
반도체와 초전도체의 터널효과 발견

사토 에이사쿠
(佐藤 榮作)
1974
평화
비핵 3원칙 제창
평화상 최초 수상
후쿠이 겐이치
(福井 謙一)
1981
화학
화학 반응의 궤도함수 대칭 해석
화학상 최초 수상
도네가와 스스무
(利根川 進)
1987
생리의학
항체 다양성의 유전학적 원리 해명
생리의학상 최초 수상
오에 겐자부로
(大江 健三郎)
1994
문학
소설 《개인적인 체험》

시라카와 히데키
(白川 英樹)
2000
화학
전도성 고분자 물질 개발

노요리 료지
(野依 良治)
2001
화학
키랄 촉매에 의한 비대칭 반응 연구

고시바 마사토시
(小柴 昌俊)
2002
물리
우주 중성미자 검출과 관련한 선구자적 연구

다나카 고이치
(田中 耕一)
2002
화학
생체고분자의 질량 분석을 위한 연성 탈착 이온화 방법의 개발
과학분야 학사 출신 최초 수상
고바야시 마코토
(小林 誠)
2008
물리
CP 대칭깨짐 원리 발견

마스카와 도시히데
(益川 敏英)

난부 요이치로
(南部 陽一郎)
일본 출생
미국 국적
시모무라 오사무
(下村 脩)
2008
화학
녹색 형광 단백질 GFP 발견 및 개발

스즈키 아키라
(鈴木 章)
2010
화학
팔라듐 촉매교차결합법(스즈키 커플링 / 네기시 커플링) 개발

네기시 에이이치
(根岸 英一)
히키아게샤
일본 국적.
야마나카 신야
(山中 伸弥)
2012
생리의학
유도만능줄기세포(iPS) 개발

아카사키 이사무
(赤﨑 勇)
2014
물리
청색 LED 발명

아마노 히로시
(天野 浩)

나카무라 슈지
(中村 修二)
일본 출생
미국 국적.
오무라 사토시
(大村 智)
2015
생리의학
회충 감염의 새로운 치료법 발견

가지타 다카아키
(梶田 隆章)
2015
물리
중성미자 진동 관측

오스미 요시노리
(大隅 良典)
2016
생리의학
자가포식(오토파지) 매커니즘 연구

가즈오 이시구로
(石黒 一雄)
2017
문학
소설 《남아 있는 나날
일본 출생
영국 국적
혼조 다스쿠
(本庶 佑)
2018
생리의학
음성적 면역 조절 억제를 통한 암 치료법 발견

요시노 아키라
(吉野 彰)
2019
화학
리튬 이온 배터리 개발

슈쿠로 마나베
(真鍋 淑郎)
2021
물리
기후 변화에 대한 신뢰성 있는 예측 모델 제시
일본 출생
미국 국적.
일본 국적을 취득한 적이 없는 일본계 외국인 수상자는 포함하지 않은 집계이다. 다만, 리위안저 (1986년 노벨화학상 수상)는 대만일치시기의 일본 국적 출신이지만 편의상 제외.




일본은 1949년 유카와 히데키가 첫 노벨상을 수상한 이래 총 29명[18]의 노벨상 수상자들을 배출하여, 노벨상 수상자 수 순위는 2021년 현재 세계 6위이다. 과학 분야만 25명[19]의 수상자가 나왔고, 경제학상[20] 을 제외한 모든 시상 분야에서 상을 받았다.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 수는 아시아에선 단연 1위로 독보적인 수준이며[21] 과학 분야만 따진다면 스웨덴을 제치고 세계 5위에 오르고, 21세기 들어서부터는 수상 빈도가 늘어나서[22] 노벨상 과학 분야에서 미국영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수상자를 배출했다. 서구권보다는 시작이 많이 늦었지만, 19세기 후반부터 근대 기초과학을 육성하기 시작하여 매우 빠른 속도로 따라잡은 결과이다.

한일관계의 특수성에 의해 일본의 노벨상 수상 소식은 자연스럽게 한국인들의 주목을 끄는 일이 많다. 특히 한국 언론들은 노벨상 수상 시즌에 종종 대한민국과 일본의 노벨상 수상 실적을 비교하며 뉴스와 기사를 내보내는데, 예시로 JTBC에서는 매년 10월만 되면 한국인들이 일본의 노벨상 수상 소식으로 인해 노벨상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듯 하다는 앵커브리핑을 한 적 있다.# # 19세기 후반[23]부터 근대 기초과학 육성을 시작한 일본과, 아무리 일러도 1980년대 초부터 국가적으로 기초과학 연구에의 투자를 시작한 한국의 노벨상 수상자 숫자를 서로 비교하는 건 무리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국인들 입장에선 배가 아픈 건 어쩔 수 없다.

일본의 특이한 수상 기록 중 하나로, 다나카 고이치라는 사내 연구원이 모든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 가운데 유일하게 학사 학력인 상태로 수상을 하는 진기록을 세운 일이 있다. 다음과 같이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었는데 안타깝게 놓친 사례도 있다.
  • 야마기와 가쓰사부로(山極 勝三郎)와 이치카와 고이치(市川 厚一)은 1915년에 토끼 귀에 콜타르를 지속적으로 발라 인공적으로 을 유발해내는 데 성공하며 그 과정을 해명했다. 당시에 둘 다 매우 유력한 노벨상 후보였으나, 1926년 노벨생리학·의학상은 암의 기원에 관한 주제에서 기생충의 원인임을 주장한 덴마크 과학자 요하네스 피비게르만 지명되었고 둘은 석연찮은 이유로 최종 선발에서 배제되었다. 하지만 현재 피비게르의 연구는 틀린 것으로 판명났다. 어쨌든 상을 한 번 줬다가 다시 뺏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피비게르의 수상 실적은 박탈되지 않고 유지되었고, 이후 야마기와와 이치카와가 그 연구로 노벨상 후보로 다시 내세워지는 일은 없었다.[24]

    야마기와와 이치카와의 인공적 암 생성 연구는 현대 의학에서 암 연구를 할 때 조직에 종양을 유도하는 방법의 기반이 된 연구이며, 따라서 이 둘에게 노벨상을 수여하지 않고 틀린 이론에 노벨상을 수여한 것은 노벨위원회의 흑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으로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만약 이 둘이 1926년에 노벨상을 받았으면 이들은 일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가 되었을 것이며, 유카와 히데키보다 23년은 더 이른 최초의 수상자가 되었을 것이다.
  • 스즈키 우메타로(鈴木 梅太郞)는 1910년에 세계 최초로 비타민B1을 발견했는데, 심사위에 제출된 해당 논문의 독일어 역본에서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는 사실이 기술되지 않아 노벨 위원회의 주목을 끄는 데 실패했고, 결국 1929년 비타민 발견 관련으로 노벨상을 시상할 때 이론적 토대만 제시한 크리스티안 에이크만과 프레더릭 홉킨스에게 비타민의 최초 발견자로 공적이 돌아갔고 스즈키는 안타깝게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인물의 문서 참고 바람.
  • 구레 겐(呉 建)은 척수에 속하는 부교감신경의 발견으로 1930년대에 6번이나 유력한 수상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되지 않았는데, 이에 대해 나중에 유엔 대사가 밝힌 바에 의하면 당시 일본이 추축국이었다는 이유로 노벨 위원회장이 수상자로 선정하기를 거부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같은 추축국이었던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는 당시에도 잘만 수상했다는 것이 이상한 점이다.
  • 오사와 에이지(大澤 映二)는 풀러렌의 존재를 세계 최초로 이론적으로 구성했지만 해당 논문을 영어가 아닌 일본어로만 작성하는 바람에 주목받지 못해, 1996년 풀러렌 개발 공적으로 스몰리와 크로토가 노벨상을 받을 때 수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영어 학원에서 광고 소재로 써도 좋을 듯하다 이 사건의 전말에 대해서는 네이처 저널 제384호에도 소개되어 있다.
  • 도쓰카 요지(戸塚 洋二)는 중성미자 진동을 세계 최초로 관측했으나 2008년 사망하여 2015년 노벨물리학상은 그의 제자인 가지타 다카아키와 아서 B. 맥도널드만 받았다. 살아 있었다면 확실하게 공동수상할 수 있었던 셈.[25][26]

시상 초중반에는 명백하게 노벨상감임에도 수상이 불발된 일본 출신의 수상후보가 유난히 많았던 탓에, 노벨재단이 일본인 또는 동양인을 차별한다는 설이 진지하게 돌았던 적이 있었다.[27] 물론 일본이라는 나라의 위상이 매우 높아진 지금은 그런 거 없고 일본인 수상자들이 쏟아져나오는 중.

유일하게 받지 못한 노벨 경제학상 후보군으로는 에미 나카무라 버클리 대학 경제학 교수가 그나마 일본계 캐나다인 여성 스타 경제학자로 물망에 오르거나, 기요타키 노부히로 프린스턴대 경제학 교수가 후보로 거론되는 수준이다. 존 베이츠 클라크상[28]을 수상한 나카무라 교수가 노벨상 수상 가능성이 다소 높다 볼 수 있다. 참고로 전세계적으로도 아직까지는 여성이나 단체가 수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상기 표 외에 일본과 연고가 있는 노벨상 수상자들은 3명 정도 존재한다.
  • 리위안저: 일본 제국령 대만 출신으로, 구 제국대학 중 한 곳이었던 타이베이 제국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1986년에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참고로 리위안저는 대만 출신 인물로서는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 찰스 피더슨: 1904년 대한제국 부산에서 태어났으나, 출생지만 한국이고 일본인 모친과 노르웨이인 부친 사이에서 태어난 일본계 인물이다. 이후 18세까지 일본에서 지내다가 1922년에 미국으로 건너갔고, 이후 미국으로 귀화하였다. 1987년에 미국 국적으로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출생지가 한국이라는 점 때문에, 수상자의 소속 국가를 출생한 국가로 분류하는 노벨 위원회의 관례에 따라, 형식상 대한민국의 노벨상 수상자로 분류되어 있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또는 노벨상/대한민국의 분야별 현황 문서 참고.
  • 베냐민 리스트: 독일인이나 홋카이도대학 소속 특임교수로 활동하던 당시였던 2021년에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1.7. 파일:스위스 국기.svg 스위스[편집]


세계에서 가장 연봉이 높은 국가이자 막강한 제조업으로 유명한 스위스의 수상자 수는 2020년 기준 27명[29]으로, 국가 별 수상자 수 순으로 러시아와 함께 공동 7위를 기록하고 있다.

역시 호프만 라 로슈, 노바티스 등의 세계 최고의 제약회사를 보유한 나라답게, 노벨 생리의학상을 8개로 가장 많이 받았고, 노벨 경제학상을 제외한 모든 시상 분야에서 상을 받았다.

물리학상을 받은 대표적인 인물로는 역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사실 태생은 독일이지만 후에 독일 국적을 포기하고 스위스 국적을 얻어서 죽을 때는 스위스-미국 이중국적이었다.[30]


1.8. 파일:러시아 국기.svg 러시아[편집]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31]와 3번째로 많은 인구[32]를 바탕으로, 냉전 시절 미국과 함께 세계를 양분했던 초강대국으로서 제2세계의 선두 국가로 과학 발전을 이끌었던 소련의 후신 국가인 만큼, 러시아의 수상자 수는 2021년 기준 27명으로, 국가별 수상자 수 순으로 스위스와 함께 공동 7위를 기록하고 있다.

사실 러시아의 근현대 역사는 매우 혼잡해서 국적 예속 문제가 굉장히 복잡하기 때문에 러시아의 노벨상 수상자 수는 단순하게 몇 명이라고 딱 잘라서 말하기는 어렵다. 소련에 포함되어 있었어도 현재 러시아와 전혀 관련이 없는 지역 출신으로 있다가 해외를 나갔거나, 소련 혈통으로 독일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살았지만 소련 시민권은 가지고 있었다 등등... 심지어 세는 방법에 따라서는 러시아 제국 점령 하 폴란드프리비슬린스키 크라이[33] 등 여러가지를 집어넣어 최대 33명까지 말하는 경우도 있다. 기본적으로 수상 시점에 러시아 국적이었던 23명은 확실히 러시아의 수상자라고 인정되는 편이며, 현재 러시아에 속하는 출생 지역 + 수상 시점의 국적 등을 종합해서 따지면 27명이라고 본다.

한편, 모든 분야 전관왕을 달성한 국가이기도 하다.


1.9. 파일:캐나다 국기.svg 캐나다[편집]


미국과 함께 부유한 북아메리카 대륙권을 대표하는 나라 답게, 캐나다의 수상자 수는 2020년 기준 25명[34]으로, 국가 별 수상자 수 순으로 9위를 기록하고 있다.

모든 분야 전관왕을 달성한 국가이기도 하다.


1.10.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오스트리아[편집]


탄탄한 산업기반을 바탕으로 한 높은 국민소득과 복지예산을 갖춘 최상위 선진국 답게, 오스트리아는 23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며 전세계 10위를 기록하고 있다. 단, 23명 중 1974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수상자는 6명이고 오스트리아가 강대국이던 2차 대전 이전 수상자는 10명이 넘는다.

우리나라에는 하이든, 모차르트, 슈베르트, 체르니, 슈트라우스 등의 작곡가의 나라로만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일반인에게도 유명한 에르빈 슈뢰딩거나, 파울리의 배타원리를 발견한 볼프강 에른스트 파울리 등의 유명한 노벨상 수상자들도 많이 배출한 나라이다.

또한 모든 분야 전관왕을 달성한 국가이기도 하다.


1.11. 기타 국가[편집]




  • 파일:폴란드 국기.svg 폴란드: 18명[35]
    • 폴란드는 모든 분야의 노벨상 전관왕을 달성한 국가이다.




  • 파일:인도 국기.svg 인도, 파일:벨기에 국기.svg 벨기에, 파일:아일랜드 국기.svg 아일랜드, 파일:남아프리카 공화국 국기.svg 남아프리카 공화국: 11명
    • 남아공 괴담 등으로 파탄국가라는 이미지가 강한 남아공에서 11명이나 배출했다는 것이 의외인데, 6명은 아파르트헤이트와 관련해 평화상이나 문학상을 수상한 인권운동가, 정치인, 문학가 등이며 과학 분야 수상자는 5명(생리의학 3명, 화학 2명)이다. 그 5명 중 4명은 다중국적자로 다른 국가에서 활동했고 곁다리로 남아공 국적도 보유한 사람들이고 남아공 단일 국적 과학자는 남아공에 창궐 중인 AIDS 관련 연구로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시드니 브레너 1명 뿐이다. 즉 단순히 노벨상 수상자 숫자를 기준으로 그 국가의 과학 인프라를 판단하면 안 된다는 가장 좋은 사례이긴 하나, 각국 연구자의 국제 연구 협력에 참여하는 비중이 높아질수록 노벨상 수상 가능성이 올라가기 때문에 마냥 격하할 부분이 절대 아니기도 하다.

  • 인도 수상자들의 경우 지금으로부터 몇년 전 영어 위키백과의 인도인 수상자들을 정리해놓은 문서에서 한 유저가 해당 주제로 심하게 어그로를 끌면서 문서 사유화를 시도하여 한바탕 수정전쟁이 벌어진 적이 있다. 당시 그 어그로의 내용인 즉슨 “인도인 노벨상 수상자”라고 알려진 이들의 대부분이 그러한 명칭으로 불리기에 결격 사유가 다 하나씩 있기 때문에 진짜 해당 명칭을 만족하는 수상자들은 타고르, 라만, 사티아르티 이렇게 3명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해당 기여분 또한 인도인 수상자 항목에 대해서만 타 국가 출신의 노벨상 수상자 집계 처리 기준에 비해 가혹했다 볼 수 있기 때문에, 10대 후반 시절까지 인도 국적을 가졌다가 이후 미국 시민권 취득 과정에서 잃게 된 경우를 포함하지 않는 것이 과연 합당하냐는 지적이 존재했다. 결국 해당 수정전쟁은 처음 저 어그로를 끌었던 유저의 영구 차단으로 결론이 났다. 후천적 미국 시민권 취득자까지 포함할 경우 인도 또한 모든 분야의 노벨상 전관왕을 달성한 국가이다. 해당 어그로에 대한 역반응으로 현재 영어 위키백과의 인도인 수상자 목록 문서는 아예 인도 출신 중 최종 수상은 불발됐으나 수상 후보로 거론된 적은 있는 사람들까지 죄다 수록하고 있다.


  • 파일:대만 국기.svg 파일:중국 국기.svg 대만중국: 10명[38]
    • 중국의 10명이라는 수는 다른 많은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결코 적은 수는 아니지만, 14억 인구와 세계 2위인 경제규모를 보유한 나라임을 생각해보면 수상자 수가 적은 편에 속한다. 게다가 그마저도 중국계 외국인이거나 수상 시점에서는 중국인이었지만 나중에 국적을 바꾼 사람들만 4명이고[36] 달라이 라마 14세류샤오보의 경우는 중화인민공화국 당국에서 수상을 인정하기를 전면 거부하고 있다. 또한 투유유말라리아 치료제 개발이라는 엄청난 업적으로 생리학상을 수상하긴 하였으나 그 투유유도 연령대를 따져 보면 생애의 상당 부분을 중화민국 시절에 보낸 사람이다. 그래서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에서 본인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선전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수상자는 사실상 모옌 한명 뿐인 상황.[37]

특히 류사오보중국 공산당 정부 차원에서 아예 수상을 하러 가지도 못 하게 막은 사례이다. 류샤오보는 201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중국 정부에 의해 수상을 거부당했다. 심지어 중국 정부는 류샤오보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그의 가족들도 가택 연금 조치하여 수상하지 못하게 막았다. 노벨위원회는 그를 위해 마련된 빈 의자에 공석으로 직접 상을 수여함으로써 중국 정부의 독재적 행태에 비판의 의사를 표했다.[39] 그리고 중국 정부는 노르웨이산[40] 연어 수입을 금지하는 보복을 했다. 다만 노르웨이에선 그다지 타격이 없었는데, 전세계 연어 시장 절반을 맡을 정도로 노르웨이 연어는 얼마든지 해외 수출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 출생이나 성장을 대만 섬에서 한 적 있는 사람은 2명이다. 그 중 1명은 본성인인 리위안저(李遠哲, 1986년 화학)이고, 1명은 외성인(본적지 산둥성)인 딩자오중(丁肇中, 1976년 물리학)이다. 리위안저는 수상 당시 귀화해서 미국 국적이었으며(출생 당시는 일본 국적) 후에 중화민국 국적을 회복하였다. 딩자오중은 부모가 잠시 미국에 체류했을 때에 태어났기 때문에 미국의 속지주의에 의해 이중국적으로 태어났으며, 유년기는 산둥성, 청소년기는 국부천대로 이전하여 대만에서 보냈다(마잉주의 고등학교 동문 선배이다.). 대만에서 대학을 중퇴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밖에도 1949년 이전에 중국 본토에서 태어나서 중화민국 국적을 가졌다가 타국 국적으로 귀화한 후 상을 받은 사례들도 있다.


1.11.1.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노벨상/대한민국의 분야별 현황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한민국의 역대 노벨상 수상자 2022년
이름
수상 연도·부문
수상 사유
비고
찰스 피더슨[41]
1987년, 노벨화학상
크라운 에테르 발견
출생 국가는 대한제국, 수상 시점에서는 미국 국적.
김대중
2000년, 노벨평화상
대한민국의 민주화 및 남북 평화에 기여
유일한 한국 국적의 수상자.

현재 대한민국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12월에 노벨 평화상을 받은 게 유일하다. 가나, 에티오피아, 케냐, 콩고민주공화국, 아제르바이잔, 미얀마, 베네수엘라, 페루, 예멘, 팔레스타인 등의 여러 나라와 함께 공동 51위다.


1.11.1.1. 북한[편집]

2023년 현재 북한의 노벨상 수상자는 존재하지 않으며, 북한의 지독한 경제상황과 폐쇄적인 연구 환경을 고려했을 때 북한 정권에 대항하는 사람이 수상하는 평화상, 문학상 정도가 아니면 북한의 노벨상 수상자 배출은 불가능에 가깝다.

평화상이나 문학상도 최소 북한이 시진핑 이전의 중국 수준으로 독재가 완화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그나마 비슷한 사례라고 볼 수 있는 반디라는 북한의 작가는 가명으로만 활동하고 있으며 정체를 숨긴다. 북한이었다면 말랄라 유사프자이 같은 인물과 달리 고국에서 응급처치를 받을 수 없거나 그녀의 아버지 같은 사람이 진작에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 연좌제로 수용소에 갇히거나, 류사오보 같은 인물이 생기기 전에 이미 시위가 없더라도 탱크가 들어왔을 것이다.

분단 직후 이것보다 좀 통제가 약할 시기에도 신의주 반공학생사건이라는 시위가 일어난 적이 있는데, 기관총으로 진압당하고 지금까지 사람들을 '민청'이라고 불리던 청년동맹 같은 단체에 강제 가입시키고 그곳 스파이가 주민을 감시한다고 한다. #

만약 북한의 억압을 정말 시진핑 이전의 중국 수준으로만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평화상 수상은 거의 확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1.12. 미수상국[편집]


2023년 기준 노벨상 수상 횟수[42]가 전무한 나라들 목록이다. 2021년 현재까지 노벨상을 단 한 번도 수상한 적이 없는 나라는 모두 112개국[43]으로 전 국가들의 60%에 달한다. 아래의 국가들은 출생 국가에 따라 분류한 것이며, 수상자의 국적 예속을 무엇을 기준으로 잡느냐에 따라[44] 포함되지 않는 국가들이 일부 있을 수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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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19 18:42:30에 나무위키 노벨상/각국 수상 현황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수상자 중 2명은 두 번 수상했기 때문에 개수로 따지면 406개이다. 또한 출신은 다른 나라이지만 후에 미국 시민권을 가진 사람 111명을 포함한 수다.[2] 다만 수상 후보로 추천된 사람의 정보는 당시 체류 국가의 정보 뿐이므로 이들이 모두 미국인은 아니다.[3] 노벨문학상은 프랑스가 최다 수상했다.[4] 산문은 영어로 쓰긴 했는데 이 사람은 파스테르나크, 만델스탐과 어깨를 나란히 한 명시인 안나 아흐마토바가 옆에두고 키운 후배작가로 시쪽이 본업이다.[5] 1976년 수상자 솔 벨로우도 퀘벡 출신의 귀화 캐나다인이지만, 9살때 미국으로 이주해서 쭉 미국에서 수학하고 활동했기 때문에 사실상 미국 문단이 키운 작가다.[6] 학, 석, 박, 교수, 객원연구원 등 통합. 참고로 그 아래로도 케임브리지 대학교(2위)와 옥스퍼드 대학교(9위)를 제외하면 12위까지 미국 대학교들이다.[7] 프레더릭 생어가 2번을 수상하여 개수로는 138개이다. 또한 출신은 다른 나라이지만 후에 영국 시민권을 가진 사람 32명을 포함한 수이다.[8] 학, 석, 박, 교수, 객원연구원 등 통합.[9] 출신은 다른 나라이지만 후에 독일 시민권을 가진 사람 10명을 포함한 수이다.[10] 마리 퀴리가 2회 수상하여 개수로는 73개이다. 또한 출신은 다른 나라이지만 후에 프랑스 시민권을 가진 사람 11명을 포함한 수이다.[11] 다만 수상 대상 작품에서 쓰인 언어 순으로는 프랑스어가 아닌 영어가 1위이다. 프랑스어는 2위. 이유는 당연히 미국과 영국이 합쳐지기 때문.[12] 출신은 다른 나라이지만 후에 스웨덴 시민권을 가진 사람 3명을 포함한 수이다.[13] 가스등의 자동태양 밸브 장치로, 일명 솔벤틸. 햇빛의 작용에 따라 새벽에는 꺼지고 저녁이나 어두울 때는 자동적으로 켜진다.[14] 특히 걸출한 문학가를 많이 배출한 미국과 비교해보면 이러한 점이 더욱 두드러진다.[15] 독일 태생 스웨덴 시민권[16] 그의 를 낭송한 게 골든 레코드에 실렸지만, 심지어 골든레코드를 만든 칼 세이건 등은 이 사람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한다.[17] 스웨덴인은 아니더라도 정 북유럽 작가에게 상을 주고 싶으면 헨리크 입센, 스트린드베리 등 받을 만한 사람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닌데도 이들을 제외함으로써 스스로의 권위에 흠집을 내버렸다.[18] 다만 2017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가즈오 이시구로는 일본 출생이지만 영국으로 귀화했기 때문에 수상 시점에서는 영국 국적이었으며, 노벨상을 받은 작품도 영국에서 집필되었다. 가즈오 이시구로를 제외하고 그 외 28명의 수상자의 경우, 전원 학사·석사·박사 학위 중 한 가지 이상을 일본 내 대학에서 수료한 수상자들이다.[19] 과학 분야 상 중에서 수상 내역이 발명인 경우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그래서 일본은 자연히 공과대학 출신 수상자가 많다.[20] 평화상 1명 ,문학상 2명[21]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노벨상 수상자가 많은 인도와 이스라엘(12명)보다 2배 이상 더 많다.[22] 그 전까지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 수는 고작 9명뿐으로, 인구와 경제 규모에 비해서는 상당히 적은 수준이었다. 2000년대 이후로 노벨상 수상자가 급격히 늘어나 지금에 이른 것이다.[23] 본격적인 일본 근대 과학의 발전은 근대 과학 연구를 국가적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장려하기 시작한 메이지 유신 직후부터라고 볼 수 있다.[24] 그런데 당시 노벨위원회였던 폴케 헨셴(Folke Henschen)의 증언에 따르면, 노벨상 선고위원회에서 이 연구를 심사할 때 동양인에게 노벨상은 아직 너무 이르다라는 등의 발언이 있었다고 한다.[25] 2002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고시바 마사토시의 애제자 가운데 한 명이다.[26] 통상적으로 높은 수준인 자연과학 연구에는 다수의 학자가 멤버로 참가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노벨상의 자연과학 부문에서는 하나의 주제에 대해 대표자 3명까지 수상이 인정되곤 있지만, 2015년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선택된 것은 위에서 말한 가지타 다카아키와 아서 B. 맥도널드의 두 사람 뿐이었다. 이는 본래대로라면 수상자 가운데 한 명으로 선택될 것이었던 도쓰카를 위해서 스웨덴 왕립 과학원의 노벨상 선정위원회가 세 번째 수상자 자리를 일부러 공석으로 해둔 것이라는 견해도 있으며 가지타 다카아키도 그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NHK의 특별 프로그램에서 밝힌 적이 있다.[27] 실제로 20세기 초 당시 노벨위원회였던 폴케 헨셴(Folke Henschen)은, 동양인에게 노벨상은 아직 너무 이르다라는 등의 발언이 노벨상 선고위원회에서 나온 적도 있었다고 증언했다.[28] 노벨경제학상의 예비상이라 평가받는 상이다.[29] 출신은 다른 나라이지만 후에 스위스 시민권을 가진 사람 4명을 포함한 수이다. 한편, 거주지 기준으로는 스위스에서 8년간 일한 1984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게오르게스 쾰러를 포함하는 경우도 있음.[30] 북미, 유럽 쪽에는 나라들이 다 붙어 있어서 그런지 이렇게 출신이 복잡한 수상자가 매우 많다. 그래서 이 문서의 순위에 들어간 수상자 숫자도 중복 카운팅이 상당히 많다.[31] 약 2,240만km². 이는 세계사적으로도 손꼽히는데, 대영제국몽골 제국, 러시아 제국에 이어 역사상 4번째로 넓은 영토를 보유한 나라가 소련이다.[32] 약 2억 9,000만 명.[33] 이 경우, 마리 퀴리가 러시아의 수상자로 집계되어 복수 수상자 배출국이 되기도 한다.[34] 출신은 다른 나라이지만 후에 캐나다 시민권을 가진 사람 4명을 포함한 수이다. 한편, 업적 기준으로는 1908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어니스트 러더퍼드와 1923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존 제임스 리카드 매클라우드를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35] 마리 퀴리가 2회 수상하여 개수로는 19개[36] 이 중 양전닝과 리정다오는 수상 당시 중화민국(대만) 국적으로 수상했다. 그러나 이들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전에 국외로 떠났다가 중화민국 국적인 상태 그대로 노벨상을 수상한 경우이며, 대만에서 태어나거나 거주한 적은 없었기 때문에 보통 대만의 수상자로 보지는 않는다. (다만 리정다오의 가족은 국부천대 때 대만으로 갔다. 그의 형 중 하나도 대만의 유명한 수의학자였다. 반면 양전닝의 가족은 대륙에 그대로 있었기 때문에 중공 당국은 양전닝을 대만에 뺏기지 않으려고 갖은 공작을 했고 양전닝 본인도 대만에 대한 별 애착이 없었다.) 노벨상 수상 이후 두 사람은 미국 국적을 취득하였다. 2016년에 양전닝은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을 취득하였다.#[37] 오히려 과학상 수상자가 아닌 문학상 수상자가 이 조건에 해당된다는 게 공교롭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이는 모옌의 경우 순수 문학 성향이 매우 강한 사람이라 작품들 내에서 정치색이 그다지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38] 관점에 따라 더 늘 수도 있다. 또 중국의 현대사를 고려하면 중화인민공화국 수상자와 중화민국 수상자를 무 자르듯 딱 잘라서 별개로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양쪽을 굳이 나누자니 상당히 족보가 꼬이기도 하기 때문이고, 또 수상자 중 '중국인'이란 정체성을 갖고 있으나 '중화인민공화국인'이란 정체성이 전혀 없는 사람들도 더럿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양쪽을 구분하지 않고 같이 놓기로 한다.[39] 이렇게 수상을 강제로 거부당하고 빈 의자에 수상을 해준 사례는 1935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였던 나치 독일 시대의 카를 폰 오시에츠키 이후 처음이다.[40] 다른 상은 스웨덴에서 수상하지만, 평화상은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에서 수상한다.[41] 찰스 피더슨은 1904년 대한제국부산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출신지 기준으로 수상자의 국가를 분류하는 노벨위원회의 분류 기준에 따라 대한민국의 수상자로 분류된 것이다. 물론 부모가 외국인이고 외국으로 떠났으며 태어난 곳만 한반도일 뿐이라 피더슨은 한국인 수상자가 아니다.[42] 또는 해당 출신지의 국적을 가진 나라에서 출신한 사람들의 수상자가 없는 경우.[43] 코소보를 제외하면 111개국이다. 그리고 그린란드, 푸에르토리코, 마카오, 홍콩, 프랑스령 기아나, 아루바, 버뮤다 등처럼 다른 나라의 속령이나 자치령 등과 같이 정식 국가로 인정되지 않은 지역은 당연히 제외. 물론 그런 지역들까지 포함한다면 더 많아진다.[44] 예를 들어, 카자흐스탄 등 옛 소련 구성 국가들은 소련 당시의 노벨상 수상자를 해당 국적으로도 포함시킬 수는 있겠지만, 이 목록에서는 이 경우 수상자가 해당 지역에서 출생하지 않았으면 그 나라의 수상자로 간주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