퓰리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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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litzer Priz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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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부문
2.1. 언론
2.2. 예술
2.2.1. 특별감사상
3. 유명 수상자
3.1. 한인 수상자
4. 유명 수상작(사진)
4.1. 유명 후보작(사진)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퓰리처상[1]미국의 신문 저널리즘, 문학적 업적과 명예 음악적 구성에서 가장 높은 기여자로 꼽히는 사람에게 준다. 퓰리처상은 뉴욕 시에 있는 컬럼비아 대학교가 관리한다. 본래 언론을 위한 상이지만 예술상 역할도 겸한다. 베트남 전쟁을 대표하는 사진으로 쓰이는 소녀의 절규도 퓰리처 수상작이다.

헝가리계 미국인인 조지프 퓰리처가 남긴 유언에 따라 50만 달러의 기금으로 1917년 만들어졌다. 언론에 14개 부문, 예술(문학, 음악)에 7개 부문에 걸쳐 상이 수여되고 권위와 신뢰도가 높아 기자들의 노벨상이라 불린다. 언론인에게는 가장 큰 영광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 상을 제정한 퓰리처는 역설적이게도 저널리즘의 적인 황색언론을 주도했던 인물이었다.[2] 황색언론 경쟁에서 퓰리처의 뉴욕 월드사가 패배하고, 퓰리처 본인도 실명하는 등 건강이 크게 악화되고 나서 깨달음을 얻어 후배들 중 참 언론인을 위해 제정한 상이 퓰리처상이다.

언론계에서 노벨상과 같은 위치로 통하기는 하지만, 전세계인을 대상으로 하는 상은 아니다. 언론부문은 미국 언론과 미국 언론계에 종사하는 언론인만을 대상으로 삼는 것이 원칙이며[3], 예술 부문은 미국인, 미국과 관련된 것만 대상이다.

다만, 2014년 공공보도 부문 수상자로 영국가디언지가 프리즘 폭로 사건을 보도한 업적으로 워싱턴 포스트와 함께 공동 수상자로 결정되었다. 가디언 지의 뉴욕 지사를 통해 이루어진 보도라고 하여 수상대상에 오를 수 있었다. 매년 4월 수상자를 발표하여 뉴욕컬럼비아 대학교에서 5월에 시상식을 한다. 1917년부터 수여하고 있다.

미국에서 워낙 권위가 드높다 보니 연예계 4대 상인 EGOT[4]과 합쳐서 PEGOT이라고도 부르며, 이 다섯 개를 모두 받은 사람을 PEGOT이나 PEGOT winner라고 부른다.

한국에는 한국기자상이 존재하긴 하...는데, 당연히 퓰리처상의 위상에 비할 바는 못 된다. 국제적 위상 때문만이 아니라 한국기자상은 여러 가지 면에서 퓰리처상에 비빌 대상이 아니다.

국내에서 출간되는 비문학 수상작의 경우 전기, 역사, 논픽션을 뭉뚱그려 퓰리처상 수상작이라고 홍보하는 경우가 많다.

특정 사진이 많은 공감을 얻을 만한 사진이거나 특정 사건에 대해서 묘하게 잘 설명하는 경우, 이 상의 이름을 빌려 X리쳐상이라 빗대 부르기도 한다.

2. 부문[편집]



2.1. 언론[편집]


공공보도 부문 또는 공공서비스 부문(Pulitzer Prize for Public Service)은 미국 정치나 중요한 사건을 집중 보도한 신문에 준다. 금메달이 주어지며,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 부문이다. 미국 국내 문제를 주로 다루므로 국제적으로는 덜 주목받지만, 1973년 워터게이트 사건, 2005년과 2006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2014년 프리즘 폭로 사건처럼 세계적으로 이목을 끈 사건을 보도한 성과로 수상한 예도 있다.
  • 특종보도 부문
  • 해설보도 부문
  • 탐사보도 부문
퓰리처상 탐사보도 부문(Pulitzer Prize for Investigative Reporting)은 탐사보도를 잘 한 기자에게 주는 상이다. 1953년부터 매년 시상되고 있다. 과거에는 이름이 달랐는데, 두 번 바뀌어 오늘날의 이름이 되었다. 뉴욕에 위치한 콜롬비아 대학교 언론대학원에서 주관한다. 하얏트 리젠시 호텔 고가 통로 붕괴 사고를 조사한 캔자스 시티 신문이 이 상을 받았다.
가장 유명한 부문.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땄다고 하면 바로 위 두 개이며, 사진이라는 이미지 덕분에 퓰리처상 중 가장 유명한 부문이다.


2.2. 예술[편집]




2.2.1. 특별감사상[편집]






3. 유명 수상자[편집]



3.1. 한인 수상자[편집]


현재까지 한인 재외동포 및 한국 국적의 퓰리처상 수상자는 3명이며, 총 4회 수상하였다.

  • 강형원 기자[5](1993년 스폿뉴스보도부문, 1999년 특집부문)
1963년 한국 출생, 1975년에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하여 UCLA에서 정치학 및 외교학을 전공한 한국계 미국인이다. 1992년 LA 폭동 당시 생생한 현장보도로 93년 스폿뉴스 보도부문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이후 AP워싱턴지국 사진부장으로 활동하던 1999년에 지국의 사진기자 16명 등 100여명을 동원, 빌 클린턴 대통령의 르윈스키 스캔들을 취재했고 이와 관련된 사진 20장을 밝혀 다시 퓰리처상을 받았다. 보도사진 이외에 한국의 문화유산에 대한 조예가 있어 《사진으로 보는 우리 문화유산》등의 저서를 집필했다.

AP통신 서울지국 기자로 활동하던 1999년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을 동료와 함께 보도해 2000년에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대한민국 국적 기자로서는 최초 수상이다. 상은 동료기자인 Charles J. Hanley 및 Martha Mendoza와 함께 받았다.

중앙대학교 사진학과 전공. 미국-멕시코 국경지대에서 최루탄을 피해 달아나는 중남미 이민행렬의 상황을 잡아내 영예를 안았다. 대한민국 국적 사진기자로서는 최초 수상이며, 상은 김경훈 기자가 포함된 '로이터 사진촬영 스태프 팀(Photography Staff of Reuters)' 13명의 이름으로 받았다.


4. 유명 수상작(사진)[편집]


파일:아버지의 깃발.jpg
이오지마의 성조기(Raising the Flag on Iwo Jima), 1945년 AP통신 기자 조 로젠탈 촬영

이오지마 전투에서 촬영한 사진으로 같은해인 1945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아버지의 깃발로도 유명하나, 이는 동명의 소설 및 영화가 워낙 유명해서 그런 것이고 원제는 저것이다.

파일:attachment/k28_12040357.jpg
무너진 다리를 건너 탈출하는 피난민들(Flight of refugees across wrecked bridge), 1950년 AP통신 기자 맥스 데스퍼 촬영

6.25 전쟁 하면 떠오르는 사진으로 1951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여담으로 한강 인도교 폭파 사건이 유명하여 해당 사진을 한강대교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대동강철교다.

파일:attachment/uploadfile/Tokyostabbing.jpg
도쿄 찌르기 사건(Tokyo Stabbing), 1960년 마이니치 신문 기자 나가오 야스시 촬영

해당 사건을 촬영한 사진으로 1961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guyen.jpg
사이공식 처형(Saigon Execution), 1968년 AP통신 기자 에디 애덤스 촬영

1968년, 베트남 전쟁 구정 공세 당시 촬영된 사진으로 1969년 수상작.

파일:attachment/Phan_Thi_Kim_Phuc_(1972).jpg
소녀의 절규(The Terror of War), 1972년 AP통신 기자 닉 웃 촬영[6]

파일:attachment/인종차별/Pulitzer.jpg
국기의 불명예(The Soiling of Old Glory), 1976년 스탠리 포먼 촬영

인종차별을 나타내는 사진으로 1977년 수상작이다.

파일:external/blogimg.ohmynews.com/1181065599.jpg
수단의 굶주린 소녀(The vulture and the little girl), 1993년 케빈 카터 촬영

아프리카 식량난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사진으로 1994년 수상작이다. 언론인의 보도 윤리에 대한 논란도 거셌던 사진으로, 케빈 카터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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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한 광대(A bold buffoon), 1996년 AP통신 알렉산드르 제밀리아니첸코 촬영

1996년 러시아 대선의 유세 도중 술에 취한 보리스 옐친이 춤을 추는 모습으로 1997년 수상작이다.


4.1. 유명 후보작(사진)[편집]


파일:attachment/cheonanmun_tank.jpg
탱크맨(Tank Man), 1989년 AP통신 기자 제프 와이드너 촬영

천안문 6.4 항쟁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진으로 1990년 결승 진출작이다.



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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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ulitzer의 영어 발음 /ˈpʊlɪtsər/ 는 '풀리처'에 가깝다. 헝가리어 원래 발음도 '풀리체르'라서 '퓰'로 발음할 까닭이 없다. 한국에서 '풀'이 '퓰'이라고 바뀐 이유는 철자만 보고 발음을 잘못 알아서 생긴 듯.[2] 황색언론(yellow journalism)이라는 단어조차 이 인간(그리고 퓰리처에게 개싸움을 건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 때문에 탄생했다.[3] 다만 외국인은 미국 언론사에서 일하면 수상 대상이 될 수 있다. 또한 외국 언론사의 미국 지사 등 미국 현지법인도 수상대상이다.[4] 에미상(E), 그래미 어워드(G), 오스카상(O), 토니상(T).[5] 1988년 당시 공산국가로 한국인이 입국하기 어려웠던 중국과 북한을 취재하기 위해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였으나, 이후에도 별도로 영어식 이름을 쓰지 않고 'Hyungwon Kang'을 그대로 사용했다.[6] 소이탄에 의해서 옷에 불이 붙어 옷을 벗은 상황이다. 사진 속 소녀 판티낌푹은 다행히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