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호/2002년/1~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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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조별리그 A조 미국전 (2002/1/18, 로즈 볼): 1:2 패배
1.2. 조별리그 A조 쿠바전 (2002/1/22, 로즈 볼): 0:0 무승부
1.3. 8강 멕시코전 (2002/1/27, 로즈 볼): 0:0(4 PSO 2) 승리
1.4. 준결승 코스타리카전 (2002/1/30, 로즈 볼): 1:3 패배
1.5. 3·4위전 캐나다전 (2002/2/2, 로즈 볼): 1:2 패배
2. 2월 남미 전지훈련
2.1. 우루과이전 (2002/2/14, 에스타디오 센테나리오): 1:2 패배
3. 3월 유럽 전지훈련
3.1. 튀니지전 (2002/3/13, 엘 멘자 스타디움): 0:0 무승부
3.2. 핀란드전 (2002/3/20, 카르타고노바 스타디움): 2:0 승리
3.3. 튀르키예전 (2002/3/26, 루어 스타디움): 0:0 무승부
4. 4월 평가전
4.1. 코스타리카전 (2002/4/20, 대구월드컵경기장): 2:0 승리
4.2. 중국전 (2002/4/27, 인천문학경기장): 0:0 무승부
5. 5월 평가전
5.2. 잉글랜드전 (2002/5/21, 제주월드컵경기장): 1:1 무승부
5.3. 프랑스전 (2002/5/26, 수원월드컵경기장): 2:3 패배



1. 골드컵[편집]


2002년 1월과 2월 골드컵 출전을 겸한 북미 전지훈련에서 2무 4패라는 저조한 성적을 거뒀는데, 성적도 성적이지만 경기력도 상당히 좋지 않았다. 연습경기에서부터 LA 갤럭시에 0:1로 패한 것을 시작으로 예선 미국전 1:2 패, 쿠바전 0:0 무(1무 1패 쿠바에 다득점에 앞서 2위로 8강행), 8강 멕시코전 0:0(승부차기 4:2승), 4강 코스타리카전 1:3패, 3위 결정전 캐나다전 1:2패로 총 2무 3패. 다만 당시 기술위원장 이용수의 회고에 따르면 FIFA 월드컵에서 한 조가 된 미국의 눈을 속이기 위해 최대한 전력 노출을 막았다고 한다. 이 점 또한 감안을 해야 할 수도 있다.

북미 전지훈련 결과가 부진한 것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자 당시 축구협회부회장 조중연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거스 히딩크 해임을 논의하겠다는 발언을 했는데, 애초부터 조중연은 별다른 실권이 없는 인물인데다 월드컵 개막까지 4개월도 채 남지 않은 시점인지라 새 감독을 뽑는 것 자체가 무리수였기 때문에 결국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계산된 발언에 불과했다.[1]


1.1. 조별리그 A조 미국전 (2002/1/18, 로즈 볼): 1:2 패배[편집]


파일:2002골드컵.png
2002 CONCACAF 골드컵 B조 1경기
2002. 01. 19. (토) 15:00 (UTC-8)

로즈 볼 (미국, 패서디나)
주심: 파일:CONCACAF NL DOM.png 사무엘 리차드

파일:USA USSF 2002.png

2 : 1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파일:CONCACAF NL USA.png 미국

36' 랜던 도노반
90' 다마커스 비즐리

파일:득점 아이콘.svg
38' 송종국
경기 영상



1.2. 조별리그 A조 쿠바전 (2002/1/22, 로즈 볼): 0:0 무승부[편집]


파일:2002골드컵.png
2002 CONCACAF 골드컵 B조 2경기
2002. 01. 22. (화) 15:00 (UTC-8)

로즈 볼 (미국, 패서디나)
주심: 파일:CONCACAF NL TRI.png 노엘 바이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0 : 0

파일:쿠바 국기.svg


파일:CONCACAF NL CUB.png 쿠바
-
파일:득점 아이콘.svg
-



1.3. 8강 멕시코전 (2002/1/27, 로즈 볼): 0:0(4 PSO 2) 승리[편집]


파일:2002골드컵.png
2002 CONCACAF 골드컵 8강전
2002. 01. 27. (일) 12:00 (UTC-8)

로즈 볼 (미국, 패서디나)
주심: 파일:CONCACAF NL HON.png 호세 피네다

파일:멕시코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0 : 0
A.E.T.
P.S.O.
2 : 4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파일:CONCACAF NL MEX.png 멕시코

-
파일:득점 아이콘.svg
-
경기 영상



120분을 싸우고도 0 : 0으로 비겨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4 : 2로 멕시코를 꺾고 4강 진출에 성공하였다. 이 경기에 출전한 골키퍼 이운재는 멕시코의 3번 킥커 알폰소 소사의 킥과 4번 킥커 이그나치오 이에로의 킥을 연달아 막아내며 자신이 왜 거미손인지를 완벽하게 입증하였다. 다만 이 경기에서 히딩크가 심판 판정에 격렬히 항의하다 퇴장당하는 모습을 보였다.

참고로 멕시코 대표팀 감독이 훗날 2015 AFC 아시안컵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된 하비에르 아기레다.


1.4. 준결승 코스타리카전 (2002/1/30, 로즈 볼): 1:3 패배[편집]


파일:2002골드컵.png
2002 CONCACAF 골드컵 준결승전
2002. 01. 30. (수) 18:00 (UTC-8)

로즈 볼 (미국, 패서디나)
주심: 파일:CONCACAF NL SLV.png 로돌포 시블리안
파일:코스타리카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3 : 1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파일:CONCACAF NL CRC.png 코스타리카

44' 로날드 고메스
77', 82' 파울로 완초페

파일:득점 아이콘.svg
81' 최진철
경기 영상


조별예선에서 폰세카가 부상당해 빠지고 대신 완초페가 토너먼트부터 합류하였다.
한국은 멕시코전에 퇴장당한 히딩크가 벤치를 지킬 수 없었고 김남일이 경고 누적으로 결장하였다.
후반 최진철의 만회골이 터진 직후 한국 수비수들이 방심하는 사이 킥오프에서 곧바로 뻥축구로 질러버린 상대에게 1대1 찬스를 내주면서 완초페에게 허무하게 추가골을 허용하고 말았다.[2]


1.5. 3·4위전 캐나다전 (2002/2/2, 로즈 볼): 1:2 패배[편집]


파일:2002골드컵.png
2002 CONCACAF 골드컵 3·4위전
2002. 02. 02. (토) 10:00 (UTC-8)

로즈 볼 (미국, 패서디나)
주심: 파일:CONCACAF NL TRI.png 노엘 바이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 : 2

파일:캐나다 사커 엠블럼.png


파일:CONCACAF NL CAN.png 캐나다
15' 김도훈
파일:득점 아이콘.svg
34' 김도훈 (OG)
35' 드웨인 데 로사리오



이 경기는 역대 대한민국 대표팀이 푸른색 유니폼을 착용하고 뛴 마지막 경기로 이 경기 이후에 원정 유니폼 색상은 흰색으로 변경되었다.


2. 2월 남미 전지훈련[편집]


골드컵이 그렇게 종료되고, 곧바로 대표팀은 북중미를 떠나 우루과이와 원정 경기를 치뤘다. 8만 관중이 운집한 압박되는 분위기 속에 1-2로 패배했다. 골드컵과 우루과이 원정까지 도합 7경기 4골 10실점.


2.1. 우루과이전 (2002/2/14, 에스타디오 센테나리오): 1:2 패배[편집]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svg
A매치 2월 친선경기
2002. 02. 13.(수) 21:00(UTC-2)

에스타디오 센테나리오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주심: 오라시오 엘리손도[3] (아르헨티나)
파일:Uruguay AUF 2002.png
2 : 1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파일:우루과이 국기.svg 우루과이

6', 65' 세바스티안 아브레우
파일:득점 아이콘.svg
26' 김도훈
경기 영상



3. 3월 유럽 전지훈련[편집]


골드컵의 처참한 결과를 뒤로 하고, 대표팀은 3월 유럽 원정을 떠났다. 영 좋지 못한 경기력을 보이던 김도훈은 결국 대표팀에 하차하게 되었고 대신 어깨 부상에서 회복한 황선홍홍명보가 오랜만에 대표팀에 승선하였다. 경기는 튀니지, 핀란드, 터키와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무렵부터 월드컵 본선에서 입게 될 새 유니폼을 착용하게 된다.

13일 열린 튀니지와의 원정 경기에선 0-0, 18일 스페인에서 열린 핀란드와의 경기는 2-0으로 승리하였다. 실로 오랜만의 승리인데다 2002년 들어 처음으로 시원시원한 경기를 보여주었다. 골 결정력 부족으로 킬러가 없다며 걱정하던 히딩크는 황선홍이 활약하자 킬러가 돌아왔다며 그를 극찬했다. 마지막으로 27일 터키와의 경기에서 0-0으로 비기면서 1승 2무로 유럽 전지훈련을 마감하였다. 아주 놀라운 경기력은 아니어도 골드컵에 비해 어느 정도 성장세를 보였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전지 훈련이었다. 특히 이때 붙었던 튀니지와 터키는 몇 달뒤 월드컵에서 일본을 상대하게 된다.


3.1. 튀니지전 (2002/3/13, 엘 멘자 스타디움): 0:0 무승부[편집]


경기장 : 튀니지 튀니스 엘 멘자 스타디움
경기일 : 2002년 3월 13일 15:00 (GMT+0)
대한민국
0 : 0
튀니지
-
득점
-



3.2. 핀란드전 (2002/3/20, 카르타고노바 스타디움): 2:0 승리[편집]


경기장 : 스페인 카르타헤나 카르타고노바 스타디움
경기일 : 2002년 3월 20일 15:00 (GMT+1)
대한민국
2 : 0
핀란드
86', 87' 황선홍
득점
-


어깨 부상에서 회복한 황선홍의 활약으로 히딩크의 킬러 근심을 덜었다.
당시 핀란드 공수의 핵심이던 야리 리트마넨사미 히피아가 소속팀 리버풀 FC의 UEFA 챔피언스 리그 경기가 19일에 있었기 때문에 이 경기엔 출전하지 못했다.

설기현과 심재원은 이 경기 후 소속팀으로 잠시 돌아가 경기를 뛰고 24일 다시 대표팀에 합류하였고, 안정환은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페루자로 복귀해 유럽 전지훈련을 종료하였다.


3.3. 튀르키예전 (2002/3/26, 루어 스타디움): 0:0 무승부[편집]


경기장 : 독일 보쿰 루어 스타디움
경기일 : 2002년 3월 26일 18:00 (GMT+1)
대한민국
0 : 0
터키
-
득점
-
경기 영상



4. 4월 평가전[편집]


4월에 대표팀은 최종 엔트리 발표 전 16일간의 마지막 국내 전지훈련을 했다. 20일 코스타리카, 27일 중국과 평가전을 치뤘다.


4.1. 코스타리카전 (2002/4/20, 대구월드컵경기장): 2:0 승리[편집]


경기장 :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대구월드컵경기장
경기일 : 2002년 4월 20일 19:00 (GMT+9)
대한민국
2 : 0
코스타리카
24' 차두리
83' 최태욱
득점
-


20일에 열린 코스타리카와의 평가전은 A매치 첫 골을 기록한 차두리와 최태욱의 골로 2-0 승리를 거뒀다. (앞서 일본에서 일본과 평가전을 치렀는데 일본전은 1-1로 무승부) 3월에 1승 2무만 할 때만 해도 골드컵 졸전의 여파가 가시지 않던 터라 대표팀의 선전에 의문을 품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 경기 이후로 대표팀이 16강에 갈 수 있겠다는 의견이 서서히 일어났다. 특히나 코스타리카와는 1월 골드컵에서도 맞붙은 적이 있는데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경기력이 올라온게 보였다. 결국 그때와 같이 두골차로 리벤지 성공. 더구나 이 당시 코스타리카는 절대 약한 전력이 아니었다. 완초페와 고메즈, 폰세카 3각 편대는 현재도 올드팬들에게 회자될 정도의 수준.


4.2. 중국전 (2002/4/27, 인천문학경기장): 0:0 무승부[편집]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svg
2002년 4월 A매치 친선경기
2002.04.27.(토) 19:00(UTC+9)

인천문학경기장 (대한민국 인천광역시)
주심: 마쯔무라 카주하코 (일본)
관중: 47,223명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svg

0 : 0
파일:China CFA 2002.png
파일:UEFA KOR.png 대한민국
파일:UEFA CHN.png 중국
-
파일:득점 아이콘.svg
-
경기 영상

라인업
번호
이름
비고
라인업
번호
이름
비고
선발
1
이운재
GK
선발
22
쟝진
GK 45'
4
최진철

2
장은화
64'
5
김남일

3
양푸

7
김태영

5
판즈이

8
윤정환
62'
8
리티에

9
설기현
67'
12
수 마오쩐
45'
11
최용수

14
리웨이펑

13
이을용
62'
15
자오쥔저

20
홍명보

16
취보

21
박지성

18
리 샤오펑
83'
22
송종국
70'
21
쉬윈롱

교체
12
김병지
GK
교체
1
안치
GK 45'
23
최은성
GK
6
리밍
45'
24
김용대
GK
9
마밍위
83'
2
현영민

17
두웨이
64'
3
최성용

24
사오쟈이
70'
6
유상철
62'
25
장위닝
45'
10
이영표
62'

우추량
GK
14
이천수
67'

우청잉

15
이민성


순지하이

16
최태욱
70'

가오라오

17
이동국


위건웨이

18
황선홍


치홍

19
안정환


하오하이둥

26
차두리


양천

27
박요셉


수마오전


27일 중국과 평가전을 가졌는데, 상대가 상대임에도 불구하고 코스타리카 전보다 공격력도 무뎌졌고, 수비도 허점을 드러내고 간간히 결정적인 찬스를 내주며 0-0으로 비겼다. 다만 상대가 쿵후축구라 몸을 사릴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한국 대표팀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직전 중국과의 평가전에서 황선홍이 부상을 입어 본선에 나오지 못하는 악재를 겪은 바 있다. 박지성도 자서전에서 이 경기에 대해 반대하는 팬들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허나 이 경기 때문에 중국이 쓸데없는 근자감을 갖게 되었는데 이전까지의 전적은 모조리 다 무시하고 자신들과 1번 비겼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이 우리와 동급이다!"는 망상을 하게 된 것이다. 더군다나 이때 중국은 아직까지 한국을 상대로 A매치에서 단 1번도 이겨본 적이 없었다.[4] 그런데도 고작 1번 비겨봤다고 동급 운운한 것이다.

이 때문에 중국은 열폭을 했고 특히 터키와의 경기에서 한국 서포터즈들이 이웃나라이자 형제의 나라인 자신들을[5] 응원해주지 않고 멀리 떨어진 터키를 응원한 것에 앙금이 남은 데다 자신들과 동급이라 여겼던 한국이 4강까지 승승장구하는 꼴을 보고 한국이 심판을 매수했다는 망언을 내뱉었다.


5. 5월 평가전[편집]



5.1. 스코틀랜드전 (2002/5/16,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 4:1 승리[편집]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svg
2002년 5월 A매치 친선경기
2002.05.16.(목) 20:00(UTC+9)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 (대한민국 부산광역시)
주심: 산탄 나갈링감 (싱가포르)
관중: 52,384명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svg

4 : 1

파일:Scottish Football Association Old Logo.png

파일:UEFA KOR.png 대한민국

15' 이천수
57', 87' 안정환
67' 윤정환

파일:득점 아이콘.svg
74' 스콧 도비



중계 방송
파일:MBC 로고(1986-2005).svg
임주완
차범근


사실 스코틀랜드의 전력은 유럽의 강호와는 거리가 멀었기에 충분히 한국이 이길 수 있는 상대지만[6], 무려 4골이나 넣으며 대승을 거둔 것은 예상 외의 결과였다.[7] 골도 많이 났지만 공격이 전개되는 과정이 훌륭한 것이 큰 성과였다. 이천수가 페널티박스 안에서 볼터치 몇 번으로 수비수와 키퍼를 제치고 골을 넣지 않나, 안정환이 수비수를 아주 간단히 제치고 빨랫줄같은 중거리슛을 넣지를 않나, 이을용의 패스를 살짝 흘리면서 수비수 사이로 들어간 안정환이 흘린 패스를 받아서 바로 해 준 윤정환의 어시스트를 골키퍼가 튀어나온 것을 보고 그대로 칩샷으로 마무리한 마지막 네 번째 골장면은 이 날 경기의 백미였다.[8] 이는 높은 조직력과 개인기를 모두 갖춘 팀이 절정에 달했을 때 어떤 경기력이 나오는지를 제대로 보여준 것이고, 이 경기를 기점으로 대표팀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경기에서 나온 안정환의 칩샷과 반지 키스 세레머니도 많은 화제를 낳았다.

히딩크의 자서전에서 스코틀랜드와의 평가전을 잡은 이유가 밝혀졌는데, 조별리그 첫 상대 폴란드전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폴란드의 장신으로 이루어진 포백을 공략하기 위해 비슷한 팀인 스코틀랜드를 꼽았다고...

실제로 그 판단이 정확한게 스코틀랜드와의 평가전을 통해 얻은 판단으로 본선에서 시종일관 폴란드를 몰아붙이며 어렵지 않게 2대0 완승을 거두었다.

2002 월드컵이 끝나자마자 스코틀랜드 축구 협회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을 스코틀랜드에 초청했다고 한다. 아마 원정 평가전이나 친선경기를 제안한 것으로 보이는데, 당시 다른 일정(11월 브라질 친선경기로 추측) 때문에 대한축구협회에서 고사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2022년 1월 14일까지 대한민국이 유럽 대표팀을 상대로 가장 많은 득점으로 승리한 경기였다. 이로부터 20년 후인 2022년 1월 15일, 아이슬란드와의 평가전에서 5:1로, 1월 21일 몰도바와의 평가전에서 4:0으로 승리하면서 기록이 경신되었다.


5.2. 잉글랜드전 (2002/5/21, 제주월드컵경기장): 1:1 무승부[편집]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svg
2002년 5월 A매치 친선경기
2002.05.21.(화) 19:00(UTC+9)

제주월드컵경기장 (대한민국 서귀포시)
주심: 아마트 그알리드 수피안
관중: 39,241명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svg

1 : 1

파일: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png

파일:UEFA KOR.png 대한민국
파일:UEFA ENG.png 잉글랜드
51' 박지성
파일:득점 아이콘.svg
26' 마이클 오언





베컴시먼 단 둘만 빼고는 주전이 그대로 나선 잉글랜드와 1대1 무승부를 기록했다. 전반 중반 오언에게 실점했지만 후반 5분만에 이천수의 코너킥을 최진철이 머리로 방향을 꺾은걸 박지성이 헤딩으로 밀어넣으며 동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치열한 공방 끝에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대표팀에 대한 기대가 그야말로 고조되었다.[9]

이 경기가 끝나고 베컴이 성질을 내며 선수들에게 유니폼을 교환하지 말고 빨리 들어오라는 제스쳐를 취해 한동안 데이비드 베컴에 대한 국내의 여론이 좋지 못했다. 다만 잉글랜드 입장에서는 유럽의 2~3류만도 못한 아시아의 듣보잡으로 여긴 한국에 단 1득점만 기록하고 그마저도 지키지 못해 무승부를 기록한만큼, 우승을 노리는 잉글랜드의 베컴이 빡쳐서 성질내는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여담으로 잉글랜드 대표팀은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본선 경기를 치루길 바랐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일본의 비싼 물가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일본에서 경기를 치루면서 홈팀 이상급의 대우를 받으며 엄청난 인기와 주목을 받았다.[10]

그리고 제주도 입국 당시 어느 한국인이 홀로 잉글랜드 대표팀 입국을 기다리고 입국하는 순간 열렬히 응원을 했다는 일화도 있다.

참고로 이 경기가 지금까지 한국과 잉글랜드의 유일한 A매치 맞대결이다. 잉글랜드 리그나 잉글랜드 축구 대표팀이 한국에서 가지는 인지도와 위상을 생각하면 다소 의외인 사실. 스페인이나 프랑스, 독일 등은 평가전이나 월드컵 본선에서 몇번 경기를 한 적이 있지만 잉글랜드는 여태껏 이 경기가 전부다.

이 경기에서 동점골을 넣은 박지성은 3년 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고, 자신을 담군 폴 스콜스오언 하그리브스와 동료가 된다.[11]


5.3. 프랑스전 (2002/5/26, 수원월드컵경기장): 2:3 패배[편집]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svg
2002년 5월 A매치 친선경기
2002.05.26.(일) 18:00(UTC+9)

수원월드컵경기장 (대한민국 경기도 수원시)
주심: 마사유시 오카다 (일본)
관중: 41,600명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svg

2 : 3

파일:France FFF 2002.png

파일:UEFA KOR.png 대한민국

26' 박지성
41' 설기현

파일:득점 아이콘.svg
16' 다비드 트레제게
53' 크리스토프 뒤가리
88' 프랑크 르뵈프






2001년 컨페드컵에서 프랑스에게 0:5로 대패한 한국이, 2002년 월드컵 직전 평가전에서는 전반까지 2:1로 프랑스를 압도하는 수준으로 강해졌다. 앙리의 크로스에 이은 트레제게의 환상적인 가위차기로 프랑스가 선취 득점에 성공하였으나, 그 뒤 10분만에 김남일의 패스를 받은 박지성이 동점골[12], 설기현이 전반 41분경에 역전골을 성공시켰다.[13] 후반전에 역전당하기는 했지만 사실 무승부가 될 수도 있었다. 명백한 프랑스 선수의 페널티 에어리어에서의 핸드볼 반칙이 일어나고 공은 골 라인 바깥으로 나갔을 때 주심은 페널티 킥이 아닌 코너킥을 주었던 것이다. 당시 히딩크가 경기 후에 한 말을 통해서 판정에 대한 아쉬움을 알 수 있다.

좋은 경기에서는 좋은 심판이 있어야 한다. 경기장의 모든 사람들이 본 반칙을 유일하게 보지 못한 것은 한국의 친구인 일본인 주심뿐이었다. 본선 경기가 아닌 만큼 그냥 넘어갔다. 비록 졌지만 좋은 경기였다. 아직 우리는 D조의 최약체다. 방심은 있을 수 없고 자만 또한 없다. 필요한 것은 세계를 놀라게 할 D-Day를 기다리는 것 뿐이다.


프랑스와의 평가전 이후 덤덤하던 히딩크와는 달리 외신들의 반응 및 프랑스 선수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반응들 중 볼드체로 표기되는 문장들은 이후 월드컵때 실제로 일어났다.

세계적 명장이 조율하는 완벽한 하모니에 프랑스가 긴장했다. 일본과 너무나 대조되는 강한 전력으로 보인다. 같이 16강에 오르면 좋겠지만 내가 보기에 한국은 그 이상도 가능해 보였다. - 일본 NHK 특파원


정말 강하다. 프랑스도 긴장한 전력으로 D조의 일대 격전이 예상된다. 경기 내내 압박하는 수준은 이미 최강에 도달했으며 패스와 드리블, 골 결정력에서 한 단계의 진보를 이루었다. 탈아시아를 외쳐온 일본과 너무 비교되는 급성장이다. - 일본 요미우리 신문 기자


'브레이브 코리아(용감한 한국)' 엄청난 전력이라는 말 외에 다른 표현이 필요할까. 스코틀랜드전과 잉글랜드전의 선전은 결코 단순한 평가보고서가 아니었다. 홈 어드벤티지를 등에 업은 한국은 이번 대회 최고의 성적을 낼 것이다. 98년 크로아티아의 바톤을 이어받을 2002년 최고 돌풍의 핵은 한국? - 영국 월드 풋볼


1년 전의 모습은 어디로? 정말 너무나 충격적인 급성장. 프랑스는 비신사적인 블로킹(핸드볼 반칙)으로 구사일생. 홈팬의 일방적인 응원을 지원받는다면 사상 최고의 돌풍이 예상된다. - 영국 BBC


한국의 크로스 한 방이 프랑스를 떨게 만들었다. 챔피언에 기죽지 않는 저돌적인 한국은 분명 16강 이상의 전력이 분명하다. - 인터넷 원 풋볼


후반의 역전패는 한국의 미완성을 보여주는 예다. 이 부분만 보완한다면 이번 대회 최고의 다크호스가 될 것이다. 세계적인 명장이 자신의 명성에 부응하는 팀을 만들어냈다. - 영국 로이터


지난 대회 챔피언 프랑스가 한국의 첫번째 경고장을 받았다. 한국은 이제 신흥 강호로서 월드컵을 맞이하게 됐다. 이번 대회는 역대 최고의 돌풍이 불 것 같은 조짐이다. - 인터넷 사커 에이지


강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엥겔 감독이 강조한 '한국 1승 제물'은 큰 착각이란 걸 알았다. 첫 경기에서 크게 지지 않을까 너무 걱정된다. 만약 오늘 같은 전력만 보인다면 한국은 조 1위도 넘볼 수 있을 것 같다. - 폴란드 방송 해설자


너무 예상 밖이다. 언론들이 떠들어댄 D조 최약체가 맞는지 의심스럽다. 한국이 가장 약하다면 D조 가운데 누가 강하다는 말인가. 포르투갈은 마지막 한국과의 경기 전에 무조건 16강을 확정지어야 한다. 만약 끝까지 혼전이 벌어진다면 한국의 16강 제물이 될 수도 있다. - 포르투갈 기자


놀랍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지금의 한국의 전력이 진정한 실력이라면 적어도 내가 보기에 한국은 세계 빅4(월드컵 4강)에 해당된다. 독일도 이 정도는 아니다.[14]

히딩크 감독이 어떤 훈련으로 저렇게 만든 것인지 정말 궁금하다. 독일에서 보는 포르투갈의 전력은 그리 강하지 않다. 한국이 D조의 1위가 될 것 같다. - 독일 기자


우리가 대패한 한국의 전력은 역시 이 정도였다. 국내 여론이 우리 선수들의 졸전을 질타했지만 오늘의 경기는 도저히 우리가 상대할 수 없는 스케일이다. 정말 오늘 경기는 프랑스의 완벽한 패배다. - 스코틀랜드 기자


가까스로 승리했지만 부끄러운 경기였다. 프랑스는 월드컵 챔피언으로서의 자만심을 버려야 한다. 한국의 전력은 아무리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분명 16강 이상의 실력이었다. 그동안 한국의 경계 대상은 오직 '히딩크'였으나 그가 한국 선수 전원을 전사로 탈바꿈시켰다. 홈팀인 만큼 좋은 결과가 예상된다. - 프랑스 기자


눈이 의심스러운 전력이다. 오늘 프랑스의 멤버는 98년 우승 시의 베스트였다. 1년 사이에 성장한 배경이 정말 궁금하다. - 프랑스 방송 해설자


우리에게 큰 패배를 안겨준 프랑스라 계속 한국을 응원했는데 정말 이렇게 잘 하리라고는 생각치도 못했다. 1승과 16강이 목표라고 들었지만 지금 같은 상승세를 유지하면 그 이상도 넘볼 수 있다. 2002년 대회는 한국의 최대 돌풍이 예상된다. - 브라질 통역담당관


이번 대회 최대 다크호스다. F조가 최악의 상황이지만 오늘의 경기로 D조의 상대국들은 비상이 걸렸을 것이다. 한국에게 행운까지 따라준다면 월드컵 역사상 최대의 이변이 생길 것이다. - 미국 CNN


강한 정신력에 놀라운 전술과 압박 플레이는 세계 톱클래스와 부딪쳐도 절대 눌리지 않는다. 골 결정력도 몰라보게 향상됐다. 미국의 아레나 감독에겐 깊은 생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의 급성장으로 첫 경기 포르투갈전에 모든 사활이 걸렸다. - 미국 ESPN


한국의 경기는 그 동안 여러 번 봤다. 오늘 경기도 그다지 놀라울 것이 없었다. 이미 한국은 강팀이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경기를 치를 것이다. - 예지 엥겔 폴란드 감독


작년과 너무도 다르다. 전반이 끝나고 락커룸에서 선수들은 깊은 침묵에 빠졌었다. 모두들 정말 놀랍다는 말뿐이었다. - 미카엘 실베스트르


르메르 감독이 너무 화가 나 락커룸의 분위기는 정말 어두웠다. 자칫하면 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평소의 여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정말 대단한 발전이다. 한국은 분명 16강 이상의 전력이다. - 마르셀 드사이


별로 신경쓰지 않은 팀이지만 직접 부딪혀 본 경험으로 한국은 16강 전력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는 그 이상인 것 같다. 친선경기인데 한국 선수들은 파워로 밀어붙였다. 역전을 당했을 때에는 정말 무서웠다. - 다비드 트레제게


히딩크 감독이 마술을 부린 것 아니냐. 1년이 지났을 뿐인데 한국은 10년을 성장한 느낌이다. 솔직히 너무 놀랐다. - 로저 르메르 프랑스 감독


그리고 위의 볼드체로 쓰인 말들은 모두 현실로 일어났다. 그리고 어찌 보면 이 경기는 프랑스에게는 닷새 후 닥쳐올 치욕적인 참사, 그리고 단 한 골도 못 넣은 채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대재앙의 전조였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패배한 경기 중에서는 한국 축구사에 남을 수준의 명경기로 손꼽히며[15] 이 경기에서 동점골을 터뜨린 박지성도 훗날 회고 인터뷰에서 그렇게 평했을 정도다. 당시 해설위원들도 아깝게 패배했지만 명경기라고 했고, 박지성과 설기현의 득점 루트와 수준은 2020년대에 다시 봐도 훨씬 높은 예술적 수준을 보여줬다. 국민들도 이 경기를 보고 난 뒤, 이번 월드컵에선 "강팀과 맞붙어도 해볼 만하다."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또한 한국의 본선 첫 상대 폴란드 선수단성남 일화 천마와의 평가전을 마친 뒤 바로 수원월드컵경기장을 찾아 프랑스와의 평가전을 지켜봤는데, 앵겔 감독의 인터뷰와는 달리 관중석에서 포착된 모습은 말 그대로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하기야 자기네가 알고 있던 전력과는 판이하게, 그것도 세계 최강팀으로 평가받는 프랑스를 몰아붙이는 광경을 봤으니 무리도 아니었겠지만 말이다.(당시 성남 일화 천마 와의 평가전에서 2대1로 겨우 승리했지만 내용상 성남에게 엄청 고전했다. 사실상 이 평가전까지 지켜본 폴란드 대표팀은 기싸움부터 밀리면서 한국전은 패배가 확실시된 분위기로 추측된다.)

경기 이틀 후 프랑스 대표팀은 스폰서 LG전자의 인연으로 구리 LG 챔피언스 파크에서 안양 LG 치타스와 연습경기를 펼쳤는데 주요 선수들이 부상과 체력 저하로 나오지 못하게 되자 안양 선수들 몇몇이 프랑스 대표팀에 깍두기로 들어가 경기를 했다는 일화가 있다.

여담으로 이 경기는 대표팀이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가진 경기 중 유일하게 패한 경기다. 이 경기를 이후로 단 한 번도 수원에서 진 적이 없다.

4년 후 두 팀은 2006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만나 1대1 무승부를 거둔다.
[1] 그러나 16년 후에는 월드컵 개막 1달도 안 남은 상태에서 감독을 바꾸는 팀이 속출했다.[2] 최진철의 골을 느린 화면으로 보여주는 사이에 골이 들어갔으며, 본래 경기 화면으로 되돌아왔을 때는 이미 골 세레머니를 하고 있었다. 이 정도로 벼락같이 어이없게 골을 허용한 것이다.[3] 2006 FIFA 월드컵 본선 스위스전에서 주심을 본 그 심판이다.[4] 중국이 한국을 상대로 승리한 건 2010년, 2017년 때 단 2번 뿐이다.[5] 한국인들은 결코 인정하기 싫지만 중국은 은근히 한국을 향해 "우리는 너희랑 형제 국가야."라고 일방적으로 우긴다. 하지만 중국은 단지 이웃나라일 뿐 형제국인 적이 거의 없다. 형제국이라고 부를만 했던 시기는 조선 초~임진왜란까지의 기간뿐인데, 그마저도 일방적으로 명나라가 우위에 있고 조선을 제후국으로 삼는 전형적인 중국 중심의 세계관일 뿐이다. 중국인들이 말하는 "형제국"은 '같은 부모에게서 나온 동등한 형제관계'를 뜻하는 것이 아닌, 그저 자기네들이 형님 대접을 받고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은 복종의 대상이라는 어거지에 불과하다.[6] 당시 스코틀랜드는 유럽 지역예선에서 전 대회에서 첫 출전에 3위라는 돌풍을 일으킨 크로아티아, 비록 한물 가긴 했지만 여전히 저력이 있던 벨기에, 예나 지금이나 유럽의 변방들인 라트비아 및 산마리노와 한 조에 속했는데, 만만한 약체들인 라트비아와 산마리노만 양학했을 뿐 본선을 가기 위해서는 꼭 넘어야만 하는 난적들인 크로아티아와 벨기에를 상대로 3무 1패라는 저조한 성적에 그쳐 탈락한 팀이다. 그렇다고 해도 벨기에와 크로아티아라는 16강이 가능한 팀들과의 전적이 3무 1패라는 걸로 보자면 저 팀들에게 발릴 정도로 마냥 약한 전력은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7] 잉글랜드와 평가전 직전 마이클 오웬도 이 결과를 듣고 스코틀랜드가 그렇게 대패할 정도로 약한 팀은 아니라며 놀라워했다.[8] 이 골은 아직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득점 장면 중 하나로 자주 회자된다.[9] 다만 스코틀랜드전이나 프랑스전에 비하면 매우 고전한 경기다.[10] 이는 베컴 영향이 엄청 컸다.[11] 하그리브스는 2007년에 맨유에 왔다.[12] 이 경기는 박지성이 A매치에서 득점한 경기 중에 유일하게 패배한 경기다.[13] 바로 직전 경기 잉글랜드전에서도 동점골을 기록한 바 있다 보니, 박지성에게는 한동안 동점골의 사나이라는 별명이 붙었다.[14] 히딩크호의 여러 하위 문서들의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이 당시의 독일은 잘해야 8강 정도로 예상되던, 우승 후보와는 거리가 있는 전력이었다.[15] 흔히들 말하는 이른바 졌잘싸의 표본 같은 경기라고 보면 된다. 2010년 월드컵 16강 우루과이전도 비슷하게 졌지만 명경기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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