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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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수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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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수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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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이천수_골때녀.jpg

이름
이천수
李天秀|Lee Chun-Soo

출생
1981년 7월 9일 (42세)
경기도 김포군 계양면
(現 인천광역시 계양구)[1]
거주지
인천광역시 서구 청라동 청라자이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신체
172.4cm[2], 77kg[3], A형
직업
축구 선수 (세컨드 스트라이커, 윙어 / 은퇴)
축구 행정가
축구 심판
소속
선수
울산 현대 호랑이 (2002~2003)
레알 소시에다드 (2003~2005)
CD 누만시아 (2004~2005 / 임대)
울산 현대 호랑이 (2005~2007)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2007~2009)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8 / 임대)
전남 드래곤즈 (2009 / 임대)
알 나스르 FC (2009~2010)
오미야 아르디자 (2010~2011)
인천 유나이티드 (2013~2015)
행정
인천 유나이티드 (2018~2020 / 전력강화실장)
대한축구협회 (2021~2022 / 사회공헌위원장)
국가대표
78경기 10골 (대한민국 / 2000~2008)
정보 더 보기 [ 펼치기 · 접기 ]
가족
아버지 이준만(1955년생), 어머니 박희야(1957년생)[1]
형 이천석[2](1979년생)
배우자
심하은(2012년 결혼 ~ 현재)[3]
자녀
장녀 이주은(2013년 6월 20일생)
장남 이태강, 차녀 이주율(2020년 1월 11일생)[4]
학력
부평초등학교 (졸업)
부평동중학교 (졸업)
부평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학 / 중퇴)
본관
전주 이씨 (全州 李氏)[5]
등번호
7번[6] 9번[7], 10번[8], 14번[9] 16번[10], 19번[11], 22번[12], 28번[13]
병역
예술체육요원[14]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
3. 기록
3.1. 대회 기록
3.2. 개인 수상
3.3. 수훈
3.4. 통산 성적
3.4.1. 국가대표
4. 플레이 스타일
4.1. 게으른 천재? - 박지성과의 비교
5. 은퇴 이후
5.1. 방송인 경력
5.2. 인천 유나이티드 전력강화실장
5.2.1. 선임 과정
5.2.2. 2019 시즌
5.2.3. 2020 시즌
5.2.4. 평가
5.3. 축구 심판 경력
5.4. 해설자 경력
6. 별명
6.1. 리춘수
6.2. 혀컴
6.3. 축구계의 풍운아
8. 여담
9.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축구 선수 출신 해설자, 방송인, 유튜버. 주은 아빠

선수 시절 포지션은 세컨드 스트라이커로 빠른 스피드와 정확한 킥과 프리킥 능력이 특징이었다. 라리가 역사상 최초의 한국인 선수다.


2. 선수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천수/선수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기록[편집]



3.1. 대회 기록[편집]








3.2. 개인 수상[편집]


  • AFC 아시안컵 토너먼트의 팀: 2007
  • A3 챔피언스컵 MVP: 2006
  • A3 챔피언스컵 득점왕: 2006
  • K리그 MVP: 2005
  • K리그 베스트 XI: 2002, 2005
  • K리그 도움왕: 2002
  • K리그 영플레이어상: 2002
  • AFC 올해의 청소년 선수: 2002
  • KFA 올해의 골: 2007
  • 춘계대통령배 도움왕: 1998
  • 추계연맹전 득점왕: 1998
  • 백운기 득점왕: 1999
  • 말레이시아 방가반두컵 득점왕: 1999
  • 자황컵 체육대상 남자 최우수상: 2002
  • 올해의 프로축구 대상 프로스펙스 특별상: 2004
  • 프로축구 골든볼 골든슈 시상식 - 월간 (9, 10월) 골든볼: 2005
  • 베스트 드레서상 최고의 베스트 드레서 스포츠 부문상: 2007


3.3. 수훈[편집]




3.4. 통산 성적[편집]



3.4.1. 국가대표[편집]


2017년 9월 5일 기준이다.
연령
출전

U-17
0
0
U-20
13
20
U-23
27
11
A대표
78
10
종합기록
118
41


4. 플레이 스타일[편집]








청소년 대표 시절 최태욱과 함께 투톱으로 뛰며 당시 한국 축구계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 작은 체구에 뛰어난 스피드를 가졌으며 특히 공 잡고 방향전환하면서 순간적으로 가속을 붙이는 능력이 좋았다. 전성기였던 2002년 월드컵 당시 차두리만큼 빠르고 박지성만큼 많이 뛴다는 평가까지 받았을 정도다. 거기에 발재간, 정교한 크로스와 킥 능력 등으로 국가대표 경기에서 많은 활약을 펼쳤다. 다만 후술할 멘탈 문제와 자기관리 소홀로 재능을 만개하지 못한 케이스.

공격 포지션은 대부분 소화했지만, 가장 파괴적이던 위치는 처진 스트라이커. 이후 국가대표에서는 작은 키로 인해 최전방 공격수보다는 주로 측면 공격수로 뛰게 된다. 고종수, 나카무라 슌스케와 더불어 아시아 최고 데드볼 스페셜리스트라 할만큼 정지된 상태에서 킥 능력은 세계적이었으나, 러닝 크로스의 성공률은 생각보다 평범하다.[4] 또한 국가대표 무대에서 시원하게 돌파하는 모습이 별로 안 나오기도 했다.[5]

그럼에도 이천수가 한때 박지성과 비교될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 이천수의 스피드나 가속력, 방향전환 능력이 국가대표 수비수들을 상대로 상당한 우위를 가져가지 못했던 것은 맞다. 하지만 분명 상당한 위협을 가할 정도는 됐다. 그런데 이천수 역시 박지성처럼 투쟁심이 엄청나서 활동량이 비록 박지성만큼은 아니라 하더라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활동량도 좋은데 공 없을 때 움직임까지 좋고, 성격 때문인지 좋을 때는 정말 과감하고 저돌적이라서 침투능력이 굉장히 위협적이었다. 알다시피 킥력도 상당했다. 박지성과 이천수가 동시에 가동되는 경우 둘 다 공 없을 때 움직임과 침투능력, 활동량과 투쟁심이 강하기 때문에 상대 입장에서 대처하기 난처하고 휘둘릴 가능성이 높았다.[6]

하지만 지나친 자신감과 골 욕심으로 말도 많은데, PK나 골을 넣을 수 있는 위치에서 프리킥을 얻어낸 상황에서 전담 키커를 무시하고 자신이 공을 차려는 경우가 빈번하다.[7] 프리킥의 경우 욕심을 내는 편이나 자신보다 잘 찬다고 인정하는 선수라면 굳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지만 이천수의 킥 능력은 아시아 원톱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고 이을용, 고종수 등 톱클래스 왼발잡이 키커들을 제외하면 당시 국내선수 중 이천수만큼 프리킥을 잘차는 선수가 손에 꼽을 만큼 적었기에 크게 논란이 되지 않았다.[8] PK의 경우 한중일 챔피언 대결이었던 A3 챔피언스컵 2006년 대회 도쿄에서 실축하고 나선 다시는 차지 않겠다고 말했다. 여담으로 울산 현대는 그 경기에선 PK 실축으로 J리그 제프에게 2-3으로 패했지만, 다음 경기인 도쿄에서 니시노 아키라[9]의 감바 오사카[10]전에서 감기몸살로 인해 후반에 교체로 들어온 이천수해트트릭을 기록하며 6-0으로 대승리[11]하고 우승했다.



두번의 유럽진출은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두번의 울산현대 시절의 이천수는 아시아 최고의 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으며, 특히 유럽 복귀 후 시즌의 절반을 손해봤음에도 뛰고 MVP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만들기도 하였다.

멘탈적으로도 무시무시한 선수였는데, 사건 사고에 자주 연루되는 악영향도 있지만 그 똑같은 멘탈이 필드 위에서는 흔히 전설로 얘기되는 파올로 말디니 뒤통수 후려차기[12]와 같이 스포츠맨 정신에 어긋나 해외에서 많은 비난을 받은 행위도 있었으나, 2002 월드컵 미국전에서 PK를 자청하던 모습 혹은 2006 월드컵 스위스전에서의 투혼과 눈물처럼 국내 국대 팬들에게는 긍정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13]

긍정과 부정 양 측면이 국내 선수에게는 유례가 드물 정도로 공히 두드러지니, 이런 류의 멘탈이 거의 천부적이란 걸 생각하면 이 선수의 선수 생활이 끝나감에 이르러서 못내 아쉬운 감은 금할래야 금할 수가 없다.[14] 다행히 말년인 인천 유나이티드 시절에는 술집 폭행 사건을 제외하고는 정말로 갱생한 듯 사고가 크게 줄었으며, 특히 말년에 고향 팀 인천에 대한 충성심은 당시 설기현의 통수질로 분노가 극에 달한 인천 팬들에게 위안이 될 정도였다. 어떻게 보면 실력의 수준은 좀 차이가 있겠지만 안토니오 카사노와 커리어가 묘하게 비슷하다.[15] 또한 체력과 활동량도 최상급이다.

4.1. 게으른 천재? - 박지성과의 비교[편집]


동갑내기[16] 축구 선수이자 비슷한 시기에 스타로 떠오른 박지성과 비교되며 '게으른 천재'라는 인식이 퍼져있다. 노력하는 수재 박지성과 노력하지 않는 천재 이천수. 이러한 비교가 흥하게 된건 두 선수의 축구 인생이 상당한 대비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천수는 대학 축구 최고 명문인 고려대학교에 입학하고, 히딩크와 박지성조차도 박지성보다 이천수가 뛰어나다고 말한 사실 때문에 천재 이미지가 강했고 박지성은 받아주는 대학도 없었고 촉망받는 천재로 유명했던 이천수와 달리 대학을 거치지 않고 바로 일본 J리그의 교토 상가에 바로 입단하며 거의 무명 선수로서 선수시절을 보낸 뒤 월드컵을 통해 스타가 되며 '노력끝에 성공한 수재' 이미지가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 두 사람 다 비슷한 시기에 해외 진출을 했는데, 박지성이 히딩크 감독과 함께 PSV에 합류하고 굉장한 활약을 펼치며 다시 한번 성공 신화를 작성하며 빅 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성에 성공했지만 이천수는 여기서 성공해서 레알 마드리드로 가겠다는 당당한 포부와 다르게,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적응 실패와 더불어 경기장 벤치를 면치 못하게 된다, 이후 귀국하고 여러가지 스캔들에 휘말리며 저니맨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선수 커리어가 상당히 꼬인데 비해 박지성은 승승장구하고 성공하여 맨유로 간 이후에도 거의 도닦는 승려[17] 수준의 멘탈을 보였으니 두 선수는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스타에서 출발하여 여러가지 스캔들 등으로 재능을 다 꽃피우지 못한 선수와 무명 선수에서 출발하여 현세대 최고의 아시아 선수로 국민적 스타가 된 선수의 대비이니 축구 인생 자체로만 놓고보면 딱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게으른 천재 vs 성실한 수재의 전형이었던 것. 또한 박지성과 대비되는 잦은 방송 출연과 연예계 활동으로 인한 이런 저런 스캔들 때문에 안 좋은 의미의 풍운아로 유명해졌다.

하지만 이천수도 노력파 선수였다. 이천수가 재학 중이던 시절 부평고에는 한 명의 천재와 한 명의 노력가가 있었다고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로는 천재는 이천수, 노력가는 최태욱이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최태욱이 천재였고 이천수가 노력파였다고 한다. 부평고 시절 고교 축구계를 씹어먹던 동갑내기 최태욱에게 실력의 벽을 느끼고, 최태욱을 이기기 위해 미친듯이 연습했다고 한다.[18] 비교대상인 박지성 역시 전국에서 가장 축구 잘하는 초등학생 6명에게 주는 차범근 축구상을 받았을 정도로 재능이 좋았던 선수였다. 다만 중고교 시절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고 무명 시절로 인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노력가로 보였을 뿐이다. 물론 노력가는 맞지만 노력 이상의 재능이 있는 선수였다는 것이다.

애초에 박지성과 이천수를 재능과 노력의 기준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한 짓이다. 한국 학원 축구를 통해 성장한 선수가 월드컵에서 유럽 최강국들과 대등하게 맞섰다는 데에서 이미 두 선수는 한국에서 재능과 노력 모두 끝판을 찍은 것이다.스페인전에서 이천수가 투입되기 전과 후를 비교해보면 명확하다. 20살에 경기 내용을 이렇게 바꿀 수 있는 거 자체가 실력 포텐 모두 최상급이라는 얘기이다. 이 두 선수 중 한 선수는 세계 최고의 감독에게 '미친듯이 공간창출 해내는 월드클래스'라는 찬사를 받고 한 선수는 유럽에서 숱하게 방출된 이유를 찾자면 축구외적인 멘탈관리와 적응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앞으로도 있기 힘들 너무 큰 성과를 거두었고 그 주역들 역시 단숨에 톱스타 반열로 올라갔다. 이는 박지성과 이천수 모두 관련되는 얘기이다. 고참 선수들은 그나마 나았지만 이제 막 프로 생활을 시작하는 어린 선수들이 한국에서 '영웅' 칭호와 함께 최고 스타 반열에 올라간 것은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것을 케어해줄 에이전트 시스템 역시 전무했다. 그당시 한국의 에이전트 시스템이라 해봤자 세계적으로 자기 선수가 어느 정도 수준인줄도 모른 채 그저 4강 가고 유럽 강국들을 상대로 깜짝 활약을 했으니 유럽에서도 먹힐 거라는 안이한 생각에 빠져있었고 선수의 유명세를 이용해 광고나 뮤직비디오 출연 등 단기적인 수익에만 열을 올리는 상황이었다. 박지성은 성격 자체가 튀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나서지 않는 성격이었던 반면, 이천수 자체가 워낙 에고가 강한 선수라 이러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에 흠뻑 빠져있었다.[19] 수많은 B급 연예인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녔으며 20살 축구선수 치고는 거만하기 짝이 없는 자서전[20], 수많은 TV 광고와 예능 출연으로 한국에서의 톱스타로서의 위상을 충분히 즐겼다.

만약 이천수가 한국에서만 뛸 것이었으면 리그 탑급 선수로 자리잡을 수도 있었지만, 당시 이천수의 재능은 충분히 탈아시아 급이었다. 에이전트 또한 유럽에서 통할 것으로 봤기에 전 시즌 라리가 2위에 UEFA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는 레알 소시에다드에 이적시켰다.[21] 그러나 아무리 월드컵 깜짝 스타라고 하더라도 이천수는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자세로 도전자의 자세로 이적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었다. 안정환은 '유럽에서 축구를 아예 새로 배웠다,'고 언급할 정도로 한국 축구와 유럽 축구는 수준차가 매우 컸다.

반면 박지성의 경우, 도전자의 자세에서 이적을 임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초반에의 부진 역시 부상 여파도 있었지만 유럽 수위리그에서의 완전히 다른 축구를 접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도전자의 자세로 부와 명성이 보장되는 J리그 리턴의 유혹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만개하기 시작하면서 03/04 아인트호벤의 역대급 스쿼드의 핵심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후 그는 퍼거슨의 콜을 받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진출하게 된다. 거기다 박지성은 같은 팀의 감독인 히딩크가 애정을 가지고 그를 지도했다는 점도 큰 차이였다. 히딩크 감독은 박지성에게 일반적인 유럽 구단과 감독들이 하는 것 이상의 애정과 관심을 쏟아서 키워냈다. 아는 사람 없는 타지에서 능숙하지 않은 외국어와 냉정한 평가 속에 던져진 이천수와, 자신에게 관심과 애정을 지닌 베테랑 감독과 이영표라는 의지할만한 한국인이 함께하고 있던 박지성의 차이는 유럽 적응에 있어서 크게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22][23]

결국 두 선수의 이러한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낸것은 어린 나이에 너무나 큰 성공 후의 멘탈 관리 측면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한국의 스포츠 언론인들 사이에서의 중평은, 해외 진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력이 아니라 적응력이라는 것이다.[24][25] 비슷한 시기 선수 중 이 적응력이 강한 사람이 박지성, 이영표, 안정환, 설기현 등이고, 약한 사람이 이천수, 이동국, 송종국 등이다. 국가대표에서 보여준 축구 실력적인 측면에서는 결코 해외 리그에서 성패가 이렇게 크게 벌어질 레벨은 아니지만, 시즌 준비부터 시작해서 한 시즌이라는 긴 기간 동안 용병이라는 입장과 외로움을 이해하고 사생활 관리를 하며 경기력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동료들과 원만한 관계를 만드는 것에서 커다랗게 수준 차이가 벌어졌다고 할 수 있다.

2016년 1월 녹화한 지역민방 프로그램 <토크콘서트 화통>에 출연해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를 하면서 체격이 작다는 이유로 무시를 당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매일 새벽부터 일어나 운동을 하고 엄청나게 노력을 했다[26]는 이야기를 전한다. 끈기의 사나이. 목표 의식[27]과 긍정적인 마인드로 축구의 길을 개척해 나갔다고 한다. jtbc 뉴스룸 인터뷰에서도 '게으른 천재'라는 세간의 평가를 직접 언급했는데, 자신은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건 없다는 주의이며 현역 시절 노력파였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천수가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와 별개로, 은퇴 후에도 박지성과 비교되며 까이고, 게으른 천재 취급을 받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얼마나 그의 재능을 보고 기대했는지를 알 수 있다.[28][29]

또 이천수가 이렇게 열심히 노력을 하는 노력파였다는 것과 별개로, 놀 때는 논다라는 말을 본인도 본인 입으로 하기도 했다. 물론 이천수가 선수생활을 시작했던 00년대 초반은 한국은 물론이고 빅리그에서조차 아직까지는 그렇게까지 엄격한 자기관리가 널리 요구되는 환경은 아니었다. 매일 이태리 클럽에서 날밤을 새웠다는 호나우두도 유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 선수들과 같은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하지만 이천수가 나름대로 열심히 운동하던 것과는 별개로, 자기관리 측면에서는 그렇게까지 엄격하고 모범이 될 만한 선수는 아니었다. 말하자면 악! 하고 열심히 하는 것은 있겠지만 냉정하게 꾸준히 자기관리하는 선수는 결코 아니었다.

박지성에 대해 이천수는 동시대에 운동을 했던 사람으로서 어쩔수 없이 라이벌 의식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두명 모두 은퇴한 현시점에서 박지성을 한국 축구의 상징이자 이천수 본인보다 더 나은 선수로 인정하고 존중하지만 그런 말을 하면서도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국가대표로서 초창기에는 박지성과 이천수가 경쟁을 했던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고 그런 치열한 환경속에서 동년배끼리 그 정도 경쟁의식은 생기기 마련일 것이다.[30]


5. 은퇴 이후[편집]



5.1. 방송인 경력[편집]


1993년 개봉한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1기 : 액션가면 vs. 그래그래 마왕 " 편에 19:00 즈음 등장한다. 하지만 이천수는 이 당시 13살. (한국 공개 96년에도 중3, 작중, 같이 등장한 설기현(19:03 즈음 등장) 역시, 한국기준 고등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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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BC 로고.svg 마이 리틀 텔레비전 역대 우승자
MLT-37 ~ 38

MLT-39

MLT-40
No. 089
허당닥터
옵세닥터

No. 100
아컴


No. 025
징글박
No. 039
매미킴
No. 059
양필라
No. 092
조코치
조코치st
홍혜걸
여에스더

이천수

박지우
김동현
양정원
조준호
조준현

은퇴한 뒤에는 연예계 진출을 선언했다. 아무래도 본인의 선수 전성기 시절 광고나 방송을 통해 대중매체에 자주 출연한 것도 있고 방송계에 흥미가 있던터라 적극적으로 방송에 출연하기 시작한다. 안정환, 송종국2002 월드컵 동료들이 연예계에서 잘 나가는 것도 영향을 끼친 듯. 그리고 마침내 MBC 엔터테이너 프로그램인 복면가왕에 참가했다. 출전 이름은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며 현역 은퇴 후 처음으로 선 무대라고 언급했다.[31]

기믹으로 독일 월드컵 전에 열렸던 투표로 뽑혔던 2006 월드컵에 나온 세계 추남 축구 선수 중 2위에 오른걸 밀고 있다. 1위는 호나우지뉴, 3위는 카를로스 테베즈.[32]

1 대 100 422회에서 1인으로 참가해서 6단계까지 갔으며 자신의 현역 은퇴에 대해 아내에게 이야기하자 쿨하게 수락했다고 언급했다.

상술한 추남 선수 2위 기믹으로 무한도전 못친소 페스티벌 2에 출연했고, 아육대에도 출연했다. 아육대에서 상대편 감독을 맡은 하석주는 "이천수 한 번 이겨보고 싶다"라고 말했다.[33]

O tvN어쩌다 어른 12회[34]에 출연했다.

2016년 3월부터 JTBC3 FOX Sports에서 K리그 클래식 해설을 맡고 있으며, JTBC에서 생중계로 편성되는 경기의 해설위원으로도 출연하고 있다. K리그 해설에 대한 평가가 현재까지는 굉장히 안좋다. 축구 팬들이 정말 싫어하는 형식의 해설[35]+그 해설도 잘 못함. 이 겹쳐져서 엄청나게 욕을 먹고 있다. 또한 경기 전 선수들 정보를 충분히 수집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김보경이 골을 넣자 당당하게 K리그 복귀골이에요라고 하여 김보경이 K리그에 처음 입단한 것을 아는 사람들은 뒷목을 잡았다. 그래도 나중에는 평가가 많이 좋아지긴 했다.

단 경기에 따라서 좋은 해설과 나쁜 해설의 차이가 심하게 나는게 단점.

슛포러브 캠페인에서 35m밖에서 농구 골대에 5회 시도만에 넣었다. 여담으로 이천수는 첫 시도만에 백보드를 맞췄는데, 맞추고 난 다음에 축구공의 탄력이 농구공과 다르기 때문에, 백보드에 맞춰 뱅크슛을 노리기보다는 클린샷을 목표로 하여 첫 시도에서 찬 것보다 살짝 천천히 차자는 마음가짐으로 차서 성공시켰다고 한다. 이 영상이 대박이 난 뒤로, 빠르고 정확한 서비스라는 이미지로 대부업체 CF 제의가 오고 심지어 콘티까지 왔었으나 거절했다.

파일:/image/011/2016/08/11/1L03M3ND2A_1_99_20160811063404.jpg

슛 포 러브 일원과 함께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축구 직관을 하다가 한국의 8강 진출이 확정된 뒤 손흥민을 필두로 선수들에게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 MLT-39에 출연하여 모르모트 PD에게 축구를 가르쳐줬다. 강력한 1위 후보 이경규도 나왔지만 이경규를 제치고 1위를 차지.

2017년 8월 방영되는 소사이어티 게임 2 플레이어로 참가 확정되었다. 이천수/소사이어티 게임 참고. 이곳에서도 초반부터 강력한 입담과 정치질을 보여주었다.

히딩크의 축구의 신에 출연하였다.

그러나 본인의 자신감에 비해 방송 쪽 재능이 없어 연예계에서 안정환, 서장훈같이 자리잡는데 실패하고 현재는 인터넷 방송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입담 자체는 좋지만 가끔 선을 넘는 경우가 종종 있고, 무엇보다 대중들의 시선이 예전보다는 많이 온화해졌지만 이천수가 또다시 방송에서 말실수를 할경우 과거의 행적까지 다시 끄집어내져서 비난받을 우려가 있어서 그런지 본인 자체도 말을 아끼는 편이기 때문에 차라리 인터넷 방송같이 제약이 없는 경우가 나은듯. 다만 전력강화실장 사퇴 이후에는 다시 방송에 활발하게 출연하였다. 2022년 들어 본인의 유튜브 채널이 흥행하면서 방송보다는 유튜브 채널이 더 주목받고 있다.

2020년 8월 인천 유나이티드 전력강화실장에서 사퇴한 후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박현빈 가족 편에 딸 이주은(현재 나이 10세)과 같이 게스트로 등장했으며, 이후 스폐셜 가족으로 단독 출연. 2020년 1월에 태어난 쌍둥이 남매(현재나이 4세)들이 공개되었다. 제작진들의 공식 입장은 없지만 2021년 부터 공식 사이트에 고정가족으로 소개가 되어 있는 걸로 봐서는 고정가족으로 합류한 게 확정이 되었으며, 쌍둥이 남매를 돌보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36] 그러나 2021년 6월 방송 이후로 출연이 없으며, 특별한 언급이 없이 하차하였다. 2022년 3월 출연자 명단에서 내려가면서 하차한 게 확정되었다.

2020년 9월 '시켜서한다! 오늘부터 운동뚱'에 김민경의 축구 코치로 출연했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며 온화하게 가르쳐주는 모습에 그의 선수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놀라고 있다.

2021년부터 2022년까지 SBS의 여자 셀럽 풋살 예능인 골 때리는 그녀들에 감독으로 출연했다. 시즌 1에선 불타는 청춘 출연자들로 이루어진 FC 불나방을 맡았고,[37] 시즌 2에선 FC 원더우먼을 맡았으나 시즌 2 종료 후 소리소문없이 하차했다.[38]

2022년 2월 살림하는 남자들에 합류하게 되었다. 하지만 해당 프로그램에서 안 좋은 모습들을 여러차례 보여줘서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자세한 건 항목 참조.[39]

2022년 KBS 연예대상 리얼리티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5.2. 인천 유나이티드 전력강화실장[편집]



5.2.1. 선임 과정[편집]


2018년 10월 즈음부터 친정팀이자 고향팀 인천 유나이티드의 비상대책위원회 멤버로 합류하였다. 박남춘 전 시장 부임 이후 체질 개선에 돌입한 인천 구단이 과거 선수로 활약해 구단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이천수를 불러들인 것이다.

이후 11월에는 이천수가 새 전력강화부장으로 내정되었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다시 인천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인천 팬들은 이천수의 인천 복귀를 환영했는데, 정확히는 이천수 그 자체보다는 대표이사 강인덕의 퇴임을 원했기 때문이다. 강인덕 대표이사와 김석현 단장 등이 팀을 떠나게 됐고, 대신하여 전달수 인천전국시도민연합회 회장이 새로운 대표이사로 팀에 합류할 예정이었다.

강인덕이 빠르게 퇴임하지 않으면서 전달수의 선임이 다소 미뤄졌지만, 비공식적임에도 꾸준히 인천 경기장에 등장하며 이미 팀의 일원이 된 행보를 보여줬다. 결국 12월 28일 주주총회에서 강인덕이 해임되면서 정상적으로 업무를 시작하게 됐다.

5.2.2. 2019 시즌[편집]


2019 시즌이 시작되기 전 프리시즌 내내 팀의 이적시장을 주도했다. 새로 입단한 선수들 다수가 이천수의 설득을 받고 인천으로 왔다는 말을 했고, 부평고 동기인 박용호 코치 역시 비슷한 결의 이야기를 했다. 특히 이재성의 경우 본인이 현역 시절 상대했을 때 정말 뚫기 어려운 선수라고 추천했으며, 양준아 등의 선수들은 직접 설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적시장에서 실제로 움직인 것 외에도 전지훈련지에 동행하는 등 구단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거의 코치에 준하는 정도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고, 이적시장에서의 행보가 공격적이었기에 시즌 시작 전에는 제법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시즌 시작 후 인천의 순위가 끝없이 내려가고, 기대했던 선수들이 크게 부진하면서 이적시장을 주도한 이천수 역시 비판을 받게 됐다. 이재성은 부상으로 전반기를 날렸고, 양준아나 허용준은 심각한 부진에 빠졌으며, 그나마 괜찮은 모습을 보여준 문창진도 부상으로 자주 팀을 이탈하였다. 거기에 일부 이적생들은 경기에 제대로 출전조차 하지 못했는데, 영입 당시부터 의아한 평가를 받던 선수들에 대한 우려가 그대로 터져나온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튜브 채널 운영을 활발하게 하고, 국가대표팀 비판으로 구설수에 오르기까지 하자 팀에 전혀 집중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리고 여름 이적시장이 시작되던 당시 팀의 주요 선수였던 남준재김호남과 트레이드한다는 소식이 나왔고, 이 시점에서 팬덤의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여론이 과열되자 이천수는 구단 간담회에 참석하여 해명했고, 남준재 측이 이적을 요청했다고 주장하였다. 때마침 남준재 측의 행보도 인천 팬들을 자극하면서 이천수를 향한 비난 여론이 일단락되고, 남준재가 큰 비판을 받게 되었다. 사건 당시에는 이렇게 무마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남준재의 인터뷰 등이 나온 시점에서 돌아보면 이적의 최종 결정자인 이천수 실장 역시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평이 중론이다.

해당 트레이드 사태가 종결된 후 이천수는 유상철 감독과 함께 적극적으로 선수를 물색하여 여름에만 8명을 영입하는 행보를 보여줬다. 이들 대다수가 팀에 잘 적응하여 성적이 개선됐고, 팀도 최종적으로 잔류를 달성했다. 여름 이적시장의 성과 자체는 인정하는 팬들도 많았으나, 시즌 전체로 보면 여름에 지나친 선수단 개편이 일어나게 만든 그 자체에 대한 비판도 피해갈 수 없었다. 거기에 선수를 영입하는 과정이나 방식에 대한 반발도 많았기에 공과 과를 동시에 남긴 시즌으로 여겨졌다.

이와 별개로 유상철 감독의 투병 소식이 전해지자 이천수 역시 진심으로 마음 아파하는 모습이 자주 드러났다. 2019 시즌 34라운드 성남 원정에 동행했는데, 경기 종료 후 선수단 전체가 눈물을 보이자 이천수도 덩달아 눈물을 보였다. 평소의 이천수 이미지로는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 장면이라 인터넷 상에서 상당히 화제가 되었다. 아예 인천 구단, 유상철, 그리고 이천수가 모두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을 정도. 그리고 그 눈물의 원인이 유상철의 건강 악화였음이 밝혀지면서 많은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줬다.

5.2.3. 2020 시즌[편집]


새 시즌을 앞두고 유상철 감독의 유임 문제로 시끄러웠는데, 결국에는 유상철 감독이 퇴임하는 쪽으로 결정이 되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후임 감독 선임이 늦어졌고, 1차 전지훈련이 끝난 뒤 2월에서야 임완섭 감독이 선임되었다. 이 과정으로 인해 이천수 실장의 계획에 대한 의문을 표시하는 팬들이 상당히 늘었다. 이적시장의 행보 자체는 2019년과 마찬가지로 적극적이었고 구단에 대한 영향력도 여전했지만, 팀 전체를 운영하는 부분에서 좋은 평가는 받지 못한 셈.

시즌 시작 후 첫 경기까지는 평가가 나쁘진 않았으나, 그 후 지독한 무승 행진이 이어지면서 이천수는 또 다시 도마에 올랐다. 애초에 임완섭 감독이 원하는 선수 영입은 감독 선임 절차가 너무 늦어져서 전혀 없었고, 이런 상황을 자초한 이천수는 나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팀 분위기도 주장 이재성과 감독이 충돌하는 등의 사건으로 무너져 있었고, 강등이 거의 확정적인 분위기로 흘러가고 말았다.

결국 2무 7패라는 끔찍한 기록만을 남긴 채 임완섭 감독이 사퇴했고, 우선 임중용 수석코치가 다시 한번 팀의 감독대행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전에도 감독 선임을 질질 끌었던 전례가 있기에 이천수가 이 상황을 깔끔하게 수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컸다. 일단 임중용은 P급 자격증이 없기 때문에 두 달 안에는 새 감독이 필요하지만, 현재 인천의 상황이 너무 나쁘다는 점도 걸림돌.

이 와중에 여름 이적시장에서 구스타부 쿠스토지우를 영입하는 결정을 내리면서 꽤나 논란이 됐었다. 당시 이천수는 구스타보에 대해 호언장담하며 기다려보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팬들은 이전 경력도 제대로 남아있지 않은 외국인 선수를 굳이 영입한 데에 불만을 표시했다.

감독 선임 과정 역시 썩 매끄럽지 못했는데, 이임생의 선임으로 가닥이 잡히나 했지만 이 딜이 다시 무산되면서 팬들에게 혼란이 가중되었다. 그러다가 8월 7일, 조성환 감독의 선임 소식이 들리면서 마침내 감독 문제를 매듭지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2020년 8월 9일, 인천 전력강화실장직에서 사퇴했다. 조성환 감독의 선임이 인천에서의 마지막 행보였던 셈이다.

5.2.4. 평가[편집]


'프런트' 이천수에 대한 평가는 굉장히 부정적인 편이다. 두 시즌 연속으로 이적시장에서는 공격적인 행보를 보여줬으나, 정작 팀의 내부를 결속시키거나 운영이 정상적으로 되도록 만들지는 못했다. 결국 인천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으나 그와 별개로 하위권을 맴도는 상황을 전혀 벗어나지 못했다.

사실 선수를 보는 눈 자체는 괜찮았다. 2019년에 영입한 이재성, 허용준은 인천에서 마무리가 좋진 못했지만 당시의 경력 상으로는 충분히 높은 평가를 받을 선수였다. 양준아, 문창진 등도 인천이 나름 쏠쏠하게 기용한 선수였으며, 2019년 여름에 대거 영입한 선수들도 대체적으로 팀에 잘 녹아들었다. 2020년의 이적생인 김연수, 문지환, 김준범 등은 이천수가 떠난 후에도 몇 년간 인천에서 활약하여 팀의 상승세에 일조한 주요 멤버가 됐다.

그러나 이런 좋은 선수들을 영입하면서도 철학 없이 무작정 영입만 하는 구도가 이어져서 이들이 융화되지 못했고, 일부 선수들의 영입은 너무 뜬금이 없거나 의아한 결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나쁘지는 않은 스쿼드를 만들었으나, 말 그대로 모아만 둔 정도였던 셈. 여기에 유튜브 관련 구설수 등이 계속 발생하면서 행보의 진정성 자체를 의심하는 여론까지 발생했다.

여기에 2020 시즌에는 감독 선임 문제로 겨울에도, 여름에도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였다. 그 결과로 인천은 역대 최악의 성적을 거두었고, 조성환 감독의 노력으로 살아남기는 했으나 상처가 가득한 한 해를 보내고 말았다. 조성환 감독을 선임한 점은 분명한 업적이지만, 그 전까지의 수많은 과정들이 불만족스러웠고 팀을 15경기 무승까지 몰아넣었던 것 역시 이천수 실장의 책임이었다.

전반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방식 자체가 체계적이라기보다는 과도하게 즉흥적이고 감정적이었다. 이적시장을 짜는 과정도 그랬고, 팀을 운영하는 방식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기에 전력강화실장이라는 위치임에도 과도하게 팀에 관여하여 위화감이 생기기도 하였다. 결국 이천수 실장이 떠난 후 임중용 실장-전달수 대표이사를 중심으로 프런트가 개편된 이후부터는 인천의 행보가 크게 달라졌고, 구단 운영이 정상화되자 자연스레 성적도 따라오게 됐다. 이천수는 강인덕 대표 시절까지 쌓여있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인사였으나, 결국에는 그 역시 다른 문제들을 낳았고 그가 떠난 이후에야 구단은 마침내 기나긴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5.3. 축구 심판 경력[편집]


그라운드의 악동이었던 과거에 대한 속죄의 의미로 2021년 축구 심판 자격증에 도전한다고 유튜브를 통해 밝혔다. 컨텐츠 제목 부터가 '이런 심판'이다. 심판 자격 취득 과정이 영상콘텐츠화 되었으며 2021년 6월 KFA 5급 심판 자격증을 취득했다.[40]


5.4. 해설자 경력[편집]


2016년부터 2019년까지 JTBC GOLF&SPORTS의 K리그 해설로 참여한다.

2023년부터 TV조선의 국가대표 A매치 해설로 참여한다.


6. 별명[편집]



6.1. 리춘수[편집]


라 리가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뛰던 시절 얻은 별명인데 당시 현지 팬이 어눌한 발음으로 이천수를 가리키면서 ‘리춘수’로 발음했는데 하필 이 발음이 입에 착 달라붙어 유행어가 됐다. 근데 사실 이천수를 알고 있는 현지 팬들이 의외로 많아서 산 세바스티안에서는 리춘수라는 이름을 스페인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이게 인연이 됐는지 2021년 4월 개설한 그의 축구 유튜브 채널 이름도 ‘리춘수’다.

이어 2019년 당시 빌바오에서 스페인에 교환 학생으로 가있던 유튜브 출연자가 '리춘수'를 연호하는 현지인들의 영상을 재차 인증하였다. # 스페인어바스크어에서 모음에 'ㅓ'와 유사한 음가는 없고 Chun은 '춘'으로밖에 발음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발음하는 것.


6.2. 혀컴[편집]


혀컴이라는 별명도 있는데 입만 산 베컴이라는 뜻도 있고, 2003년 신인가수 루다의 1집 앨범 '투비'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면서 상대배역이었던 걸그룹 투야의 멤버 김지혜에게 과한 키스신을 시도해 논란이 되면서(...) 붙은 별명이다. 당시 이천수는 촬영 제의를 받았을 때 키스신이 없다면 가지 않겠다고 말했고 결국 3번의 키스신이 성사되었다. 하지만 이천수는 키스신 과정에서 를 사용한 프렌치 키스를 했고 결국 키스신 장면은 선정성 논란으로 삭제되었다고 한다.(혐짤주의) 요즘 같았으면 매장당했을 이천수 과거.jpg


6.3. 축구계의 풍운아[편집]




이천수의 반칙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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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계의 풍운아, 악동같은 별명들이 설명해주듯 심심할 때마다 크고 작은 구설수에 휘말린다. 파란색 유니폼만 보면 눈이 돈 다고 한다. 다음은 이천수의 숱한 사건사고들 중 일부. 토고전 세레모니는 사실이 아니다. 언더셔츠에 Y를 쓴게 아니라 땀자국이 Y자처럼 보인게 기레기들이 팩트체크도 안하고 넘겨짚은걸 기사로 쓴 것이다. 실제 저 당시 연애 중인 상대는 배우 김지유로 기레기들이 이름에 들어간 유를 Y와 억지로 연관시켜서 기사를 쓴 것으로 보인다.


7. 논란 및 사건 사고[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천수/논란 및 사건 사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여담[편집]


  • 월드컵과 올림픽에서 모두 득점해 본 한국인 선수 6인 중 하나다. 서정원에 이은 역대 2번째 기록으로 이천수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16강 조별리그 칠레전에서 1득점, 그 다음 대회인 2004년 아테네 올림픽 8강전 파라과이전에서 2득점하였으며, 2006년 독일 월드컵 32강 조별리그 토고전에서 1득점하였다. 이천수 이후로 박주영, 구자철, 손흥민, 황희찬만이 가지고 있는 아주 희귀한 기록이다. 올림픽과 관련하여 또 다른 기록으로는 보통 올림픽에 두 차례 출전하면 대개 두 번째 출전은 와일드카드로 뽑히는 와 달리 이천수는 2000년에는 만 19세로 무려 4년을 월반하였고, 2004년에는 만 23세로서 또래들과 함께 출전하였다. 이러한 사례는 흔치 않은 기록으로, 4년을 월반해서 올림픽에 나가 득점까지 올렸다는 점에서 이천수의 재능이 무척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41] 미친 프리킥으로 유명한데 현재도 프리킥 실력이 상당하다.

  • 1 대 100에서 '키보드에서 볼 수 없는 키'를 묻는 질문에 ESCCtrl을 몰라서 축구단같은 단어인 AC를 답으로 골랐다.

  • 2002 국대에서 뛸 당시, 거스 히딩크 전 감독에게는 골때리게도 릴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프랑스 축구 클럽인 릴 OSC로 이적을 추진했었던 경력 때문에 릴+성인 리(Lee)를 합쳐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

  • 2002 국대 시절에 주장 홍명보에게 명보야 밥먹자!라고 반말을 한 이야기가 유명하다.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이 한국 스포츠 특유의 딱딱한 위계질서를 깨기 위해서 선후배 상관없이 서로 반말을 하도록 명령을 했지만 감히 누구도 먼저 말을 놓지 못했는데, 이천수가 이걸 최초로 이행했다. # 원래는 김남일이 제일 먼저 반말을 했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당사자가 자신이 아닌 이천수가 범인(?)이라고 증언하였다. 참고로, 이천수와 홍명보의 나이 차이를 2020년대 국대로 체감하자면 대표팀에서 거의 막내급인 이강인이 국대에서 은퇴한 기성용이나 박지성한테 반말을 하는(...) 정도로 비교할 수 있다. 실제로 이천수는 2002 세대에서 거의 막내뻘이었다.[42] 이에 홍명보는 2021년 인터뷰에서 "기분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둘 중에 누구였든지 반말을 할 만한 사람들이지 않느냐?" 라고 농담을 했다.

  • 정작 홍명보에게 반말을 지른 이천수 본인은 그 순간이 엄청나게 무서웠다고 한다. 그래서,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의 말을 듣지 않으면 엔트리에서 짤릴지도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었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라고 회상하며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얼굴이 뻘개지고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라고. 또한 옆에서 홍명보에게 반말을 하는 것을 본 선배들은 거의 뒤집어지듯이 웃었다고 한다.

  • 위의 일화가 너무 유명해져서 그런지, 이천수는 개인 유튜브 리춘수 채널에서 현역에서 은퇴를 한 선배들이나 후배들과 같이 식사를 하면서 노가리를 까는 컨텐츠를 명보야 밥먹자라는 이름으로 진행하고 있다.


  • 2003년에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적이 있다. 루다 - 투비 이 뮤직비디오 출연 관련해서도 인터넷에서 여러가지 루머가 돌고 있다.

  • 이영표가 말하길, 이천수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성격이 남달랐다고 한다. 당시 올림픽 대표팀에서 만났다고 한다. 당시에 이영표는 대학생 4학년, 이천수는 미성년자였던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한일전에서의 씁쓸한 패배를 한 뒤 이천수가 팀에 합류를 했었고, 영 좋지 않은 분위기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자리에서 이영표를 비롯한 대표팀 선배들에게 이천수가 꺼낸 멘트는 "어떻게 일본한테 졌어요? 내가 있었으면 이겼어요!" 라고 당돌하게 일침의 멘트를 강하게 날렸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당시에는 스포츠계에서 선후배들간에 강한 위계서열을 경혐하는 것이 너무 당연시 되었기 때문에 상상을 초월한 문화충격을 받았던 이영표는 그저 경악해서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고 한다. 이영표의 말로는 선배들이 후배를 꾸짖거나 군기잡거나 폭행까지 가는 기준점이란게 있는데 이천수는 그 기준을 아득히 뛰어넘겼다. 이 정도가 되면 선배들도 아무런 할말이 없어지고 무슨 도를 넘는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결국 선배들끼리 "쟤는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된다." 라는 쪽으로 의견통일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브라질의 웹사이트에서 한 설문 조사에서 못생긴 축구스타 2위를 했었다.[43] 이제는 본인도 웃으면서 셀프디스로 이야기 할 정도다. 물론, 객관성이나 공정성 따윈 전혀 없었고 한국의 이천수 안티들과 일본, 중국에서 다같이 몰표를 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었다. 이천수가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에서 중국과 일본을 상대로 골을 많이 넣어서 감정이 안 좋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브라질에서 시행한 설문조사라서 1위는 호나우지뉴였고 3등은 카를로스 테베스가 했는데 남미권에서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아시아 출신의 이천수가 상위권을 차지했다는 점에서 객관성이나 공정성도 전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네티즌들이 반쯤 장난으로 밈을 만들기 위해서 설문조사를 한 것도 있었다.

  • JTBC 소속으로 2016년부터 2018 러시아 월드컵 예선과 K리그의 해설을 맡고 있다. 같은 방송사의 프로그램인 썰전에 게스트로 출연해서 남긴 중국화 발언이 이후 국가대표팀의 연일 거듭되는 부진에 맞물려 재평가 받았다.[44] 카타르전에서 홍정호, 이란전에서 장현수가 이걸 제대로 증명했다. 본인은 나중에 그런 뜻이 아니라고 해명했다.[45] 그러나 슈틸리케가 중국파까지 포함한 해외파를 실력, 출전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중용하고 K리거들을 차별하는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라 예사롭지 않다.

  • 미래일기에서 처음으로 그의 장모가 나왔는데, 이천수가 한창 방황 중일때 딸과 만났던 당시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그래도 그만큼 선한 사람이 없었는데... 언론이 너무 쏘대니까 그렇죠." 라고 하는 등 훈훈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이천수를 "아들!"이라고 부르면서 친아들처럼 아끼는 장모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원정팀의 무덤으로 악명높은 아자디 원정에서 대한민국이 거둔 유일한 1승에서 결승골을 넣었던 선수가 이천수다. 해당 경기는 2004 아테네 올림픽 축구 지역 예선전이었다.

  • 일본 웹에서 일종의 방송사고로 유명한데, 한국 유스로 출전한 일본 고교선발팀과의 경기에서 일본 캐스터가 8번 이천수, 좋은 찬스다.(8番のイチャンス,いいチャンスだ)(하치반노 이챤스, 이이 챤스다.)라고 말한 뒤 살짝 웃음이 터지는 영상이 있다. 사실 원래 일본식 외래어로 제대로 읽으면 이쵼수(イ・チョンス)라고 해야 하는 것이 맞다.

  • 슛포러브에서 이천수의 근본투어를 기획하여 직접 레알 소시에다드의 연고지 산 세바스티안으로 날아갔다.[46] 하지만 스페인 현지 팬들의 대다수와 심지어는 훈련장 바로 옆 숙소 로비에 근무하는 직원 조차도 이천수를 못 알아봤다. 이천수는 연신 괜찮다 했으나 사실 표정은 별로 좋지가 않았다.[47] 결국 시내까지 나가서 퍼레이드를 벌이는 곳까지 갔으나, 정말 알아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는 줄 았았으나 한 현지팬이 이천수를 알아봤다.[48] 그렇게 계속 희망을 가지고 "올라" 거리면서 인사를 했으나 처음과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우연히 만난 15살의 스페인 소년들과 일종의 인터뷰를 하는 중간에 어떤 분이 먼저 이천수를 알아봤다. 인터뷰 도중 뒤에서 "혹시 전에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뛰셨던 분 아니신가요?" 라며 먼저 물어봤다.[49] 사실 이 분은 당시 레알 소시에다드 구단 소속 택시기사를 하셨다고 한다. 이천수와 이천수의 어머니를 실제로 몇 번 태워서 기억이 난다면서 이천수와 사진을 찍으며 훈훈한 장면을 만들어냈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이천수는 내친김에 젊은 이들이 많은 번화가까지 가서 공세를 펼쳤고, 우연히 만난 20살의 청년과의 인터뷰에서 어디서 왔냐는 질문에 한국이라 답했고, 그 청년은 "이 분은 15년 전에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뛰었던 분 입니다." 라는 소개를 듣자마자 "리춘수!!!" 라고 소리쳤고. 이에 이천수는 말 그대로 데꿀멍. 영입 당시 기대가 커서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50] 이후 건너편에서도 몇몇 현지팬 분들이 알아보면서 훈훈한 장면을 연출하고 이천수의 근본 투어는 끝이 난다. # 그리고 스페인에 간 김에 백승호를 만나러 지로나 FC에 갔는데, 1군 감독인 파블로 감독이 이천수를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이 누만시아의 연고지인 소리아 출신이고, 경기를 보러갔었다고 했다.

  • 후배인 이승우를 매우 아낀다. 이승우가 어렸을 때의 자신보다 더 잘한다고 치켜세워주기도 했고, 러시아 월드컵 대표팀에 승선한 이후에는 인터뷰에서 이승우를 칭찬하고 그의 개성을 존중해줘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어린 시절의 자신감과 에고가 강하던 본인의 모습이 겹쳐보이기 때문에 더더욱 애정을 쏟는듯 하다. 다만, 사적으로 더 친한 것은 백승호로 보인다.

  • 박경림몰래카메라에 나왔다. 결혼을 전제로 사귀던 남자친구가 바람을 피웠는데 본인이 그래도 너무 사랑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연기하며 상담하는 역이었는데, 진심으로 조언하면서 걱정해주는 모습을 보여서 그 동안 싸가지 없고 성격 나쁘기만 하다는 이미지를 약간 벗었다. 어느 커피 전문점에서 진행됐는데, 옆에서 지켜보면서 안절부절 하는데 대놓고 티는 못내느라 30분 가량 물을 계속 주문하면서 2리터 정도를 끊임없이 마시는 개그를 보였다. 본인은 끝까지 눈치를 채치 못했던 게 몰래카메라는 원래 연예인만 하는 건 줄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도 맞바람을 피겠다며 새 남자를 소개하는 척 숨어있던 이경규가 나왔어도 몰래카메라라는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이 누나가 미쳐서 갈 데까지 갔구나..." 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 인천 유나이티드 시절 구단주였던 송영길인천시장과는 집에도 방문할 만큼 각별한 사이라고 한다.[51] 2018년 8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는 송영길을 당대표 후보로 지지하며 대의원과 당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기도 하였으며,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는 더불어시민당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 참석해 송영길을 비롯해 박찬대, 허종식 등 더불어민주당 인천광역시 국회의원 선거 출마 후보 유세에 힘을 보태는 등 정치적으로는 민주당 지지자인 것으로 보인다. 이후 2021년 더불어민주당 2차 대통령 후보 선거 인단 모집 홍보 영상에도 당대표인 송영길과 함께 출연하였다. #


  • 3년 동안 산 속에서 제기만 찼다는 컨셉으로 제기왕 이천수를 터치플레이에서 하고 있다. 그리고 이수근꺾었다 최근에는 위국헌신 국군장병을 위한 기부 프로젝트인 군대스리가를 진행하고 있다. 전 대한민국 국대 선수들을 모아 군인 올스타를 상대한다. 관련 기사


  • 2020년 1월 11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쌍둥이 아빠가 됐다는 소식을 알렸다. #


  • 2021년 4월 18일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채널 이름은 리춘수

  • 2021년 9월 황선홍 감독이 U-23 국가대표팀 감독이 되자 반색을 했다. "내가 봤을 때도 근엄하고 후광이 비치는데, 젊은 유소년 선수들은 정말 대단해 보일 것이다. 2002년 월드컵 멤버는 한국 축구 레전드이기 때문에 축구 선수라면 알고 있어야 하는데 그런 대단한 사람이 우리 감독이면 선수들은 정말 열심히 뛸 것이다. 홍명보 선배는 아깝게 실패했지만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에서 성공하고 국대 감독이 되면 그림이 좋을 것이다. 국가대표 지도자 경력만 없을 뿐, 클럽 지도자 경력이 길고 K리그 우승 경험도 있는 분이기 때문에 이번에는 잘 되었으면 좋겠다." 라고 평했다. 근데 잘 안되고 있다...


  • 본인의 나무위키를 직접 읽어보는 컨텐츠를 진행하기도 했다. #

  • 레알 소시에다드 입단식 당시 "여기 소시에다드에서 잘해서 레알 마드리드로 가겠다." 라는 희대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이 발언이 슛포러브 손흥민 편에서 다시한번 회자되었는데 공식석상이나 인터뷰에서 감정을 자제하는 손흥민이 정말 화들짝 놀라는 장면이 회자되었다. 손흥민이 토트넘 입단현장에서 여기서 잘해서 맨시티 가겠습니다라고 한 수준이다 황당하다는 투로 '대단하다...' 라며 이천수를 놀린 건 덤. 어쨌든 본인은 이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후배이자 자신과 같은 등번호를 달았던 알바로 오드리오솔라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해서 대신 꿈을 이루어줬다.

  • 훗날 김민재SSC 나폴리에 입단했을 때 "나폴리에서 영입 제의가 왔기 때문에 다른 팀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고 당연히 나폴리를 선택했다." 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래서 축구 팬들은 이천수와 정반대의 태도로 모범적인 인터뷰를 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이걸 이천수한테 보여줘야 한다!! ㅋㅋㅋㅋ" 라고 반응을 했고 이천수 본인도 이 반응을 인식하면서 "나 때는 선배들이 인터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입단했을 시절의 인터뷰보다 훨씬 세련되고 낫지 않느냐?" 라고 소감을 이야기하면서 "후배들은 절대로 나처럼 건방지게 인터뷰를 해서는 안 된다." 라고 반면교사를 삼아야 한다면서 셀프디스를 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그리고 나폴리로 이적한 김민재에게 "나폴리도 분명히 좋은 팀이지만, 더 잘해서 나폴리보다 좋은 팀에도 이적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훈훈한 태도로 격려를 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김민재는 23-24 시즌에 정말로 나폴리보다 명성이 더 높은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다.

  • 2022년 9월 14일.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리춘수(이천수)에서 실버 버튼을 받았음을 인증하는 영상을 사과영상 '컨셉'으로 업로드 하였다. "인생 루틴상 사고를 칠 수 있으니 미리 사과하는 영상을 찍었다." 라면서 장난스레 젊은 시절 한 성질하던 태도를 반성하면서 자조하기도 하였다. #

  • 유튜버가 된 이후에 사커맘들에게서 상담 요청이 많이 온다고 한다. 청소년 선수나 청소년 선수의 가족에게는 직언을 하는 편이다. 유튜브 영상에서 매우 솔직하게 비용 문제를 말한 적이 있다. 아이에게 축구를 시키면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2022년 기준 3억원 내외의 돈이 필요하며, 프로 선수 생활을 6년정도 하면 순익으로만 3억 이상을 벌 수 있다. K리그에서 유명 선수가 되면 3배, 국가대표팀에 출장기록이 생기면 비용의 10배도 벌 수 있다고 답했다. 축구에 3억이 드는 이유로 2010년대부터는 비성인 선수도 30만원이 넘는 선수용 축구화를 신는데 한국에는 잔디구장도 인조잔디 구장이라 한달에 한번씩 갈아신어야 해서라고. 본인은 1990년대에 3만원짜리 저가 축구화를 신고 5천원씩 써서 수선하여 못 신을 때까지 계속 신었다고 밝혔다.


  • 형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생계를 책임져서, 형이 배를 타서 번 돈으로 이천수가 축구를 할 수 있었던 어려웠던 시절의 사연을 밝히기도 했다. #영상

  • 본인이 받은 공단건강검진에서 뇌졸중, 실명, 심장마비가 걸릴 수도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


  • 중국 시나스포츠에서 2023년 4월 5일, 이천수가 유튜브에서 중국 축구를 비판하는 것을 편집해 맹비난만 했다는 투로 보도했다. 하지만 여기 보도에서도 '불쾌하지만 이천수가 지적한 것이 현실이라 그를 비난할 수 없는 게 중국 축구 현재 모습'이라고 인정했다. 시나스포츠는 이미 2022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 베트남에게 져버린 중국이 아시아 진출권이 늘어나도 이젠 2022 월드컵에 나가지 못한 이라크, 아랍에미리트, 오만, 바레인, 우즈베키스탄, 요르단은 물론이며, 쿠웨이트나 베트남도 중국이 쉽게 이기리라 장담 못한다고 보도했다.

  • 2023년 7월 4일 밤 음주운전 뺑소니범 검거에 기여했다. 이천수는 더현대 서울에서 오픈한 주먹감자라면(...) 팝업스토어에 방문했었다. 저녁 시간대에 송소희가 왔는데 비가 오는 날이라 택시가 잡히지 않자 매니저인 전직 축구선수 출신 지병주와 함께 집 근처까지 차로 데려다주고 귀가하는 중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체 중인 동작역 인근 올림픽대로 진입로에서 "저 사람을 잡아달라"는 노령의 택시 기사를 목격하고 즉시 차량에서 내려 매니저와 함께 범인을 뒤쫓았고, 슬리퍼를 신고 빗길 1km를 질주한 끝에 뺑소니범을 잡아 경찰에 인계했다.[54] 이천수는 택시 기사에게 "저는 불의를 보면은 이런 거 안 넘겨요"라고 딱 한마디만 했다고. #1 #2 #3 #4 리춘수 유튜브 경찰에서는 이천수에게 7월 18일 감사장과 포상금을 수여하기로 했으며, 이천수는 유튜브 수익과 포상금 전액을 순직 경찰의 자녀를 지원하는 재단에 기부하기로 했다.#
    • 현역 시절 악동 이미지가 워낙 강했고 음주 관련 난동 사건도 일으킨 전례가 있는 만큼 기사 제목의 '음주'만 보고 이천수가 음주 뺑소니를 저지르고 달아났다가 경찰에 체포된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당시 현장 출동한 경찰도 이천수가 범인인 줄 알았다고 하며[52] # 심지어 이천수의 아내인 심하은조차도 다음 날 미담 기사가 나자 "오빠, 또 사고 쳤어?"라고 반응했다고 한다.(...)[53] 한편으로 언론에서는 40대의 나이에도 전력질주를 통해 뺑소니범을 잡았다는 점을 주목하며 현역 시절 이천수의 빠른 주력을 재조명하기도 했다. #
    • 뺑소니범 검거 소식이 알려지고 난 뒤 아내 심하은을 통해 이천수의 과거 미담이 하나 더 알려졌다. 이천수는 사실 몇 년 전에 여자화장실 몰카범도 차를 타고 도주하는데 뛰어가서 잡았었다고 한다. 심하은 "이천수, 과거 여자화장실 몰카범도 잡아…칭찬해"


9.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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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9년에 계양면은 인천직할시 북구에 편입되었으며 북구가 계양구와 부평구로 분할한 해는 1995년이다.[2] KBS 2TV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공개한 신체 검사 결과다. 출처 기사[3] 선수 시절은 65kg. 이천수 본인이 2022년 3월 23일 유튜브 방송 라커룸 시즌2: 오프더볼 EP07에 출연해서 자신의 체중이 77kg이라고 밝혔다. 출처 영상[4] 이 분야에선 설기현이나 고정운이 압도적이다.[5] 그래서 올드팬들 중에서도 이천수에 대해 데드볼을 제외하면 거품이라는 의견이 결코 적지 않다.[6] 06 월드컵에서도 이 둘이 선발로 나가서 상대를 흔들다가 테크닉이 뛰어난 안정환이나 피지컬이 막강하고 크로스가 강한 설기현을 투입해서 재미를 보곤 했다.[7] 2006년 독일월드컵 토고전에서 기록한 프리킥 득점도 각도상으로는 왼발 키커인 이을용이 차기에 좀 더 유리한 위치였으나, 본인이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며 키커로 나서서 4년전 누구보다 욕심을 냈으나 이루지 못했던 월드컵 본선에서의 골을 이때 기록하게 된다.[8] 오른발 킥력만큼은 한국에서 역대급으로 꼽는다. 그와 비견되는 오른발 키커는 김형범 정도.[9] 2018 월드컵 일본 16강 15위 기록 감독[10] 당시 J리그 우승팀[11] 한일전 모든 축구 매치 최다 점수차 경기[12] 당시에는 경기중에 순간적으로 공으로 착각했다고 해명했으나, 훗날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무릎팍도사뉴스룸, 비정상회담에 출연해서는 일부러 걷어찼다고 인정했다. 무릎팍도사에선 "아니 사람 머리를 공으로 착각한다는 게 말이 되나요"라면서 셀프디스까지 시전.[13] 소위 이런 캐릭터는 국대에서는 엄청난 활력소가 된다. 2015년 프리미어 12의 오재원과 흡사하다. 이런 유형은 남의 편이면 굉장히 밉상이지만 우리 팀일때는 좋은 선수[14] 지금도 여전히 이천수를 그리워 하는 팬들이 많다. 사건사고는 많았어도 지금 이천수급으로 잘하는 국가대표 선수는 손흥민을 제외한다면 거의 없다. 이승우가 비슷한 캐릭터지만 이승우는 국대에서는 활약도는 물론이고 클럽에서도 활약이 전혀 없다. 프로가 인성이 중요하지만 선수 평가에 있어서는 실력이 중요한 법이다. 물론 야구 김동주처럼 아예 인성파탄급이면 평가가 떨어지지만 말이다. 기성용도 SNS로 구설수가 있지만 국대 활약으로 인해 평가가 올라간 편이다. 허재, 서장훈보고 인성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지만 최소한 한국농구에서 이 두명을 빼놓고는 이야기가 되지를 않는 것처럼 말이다.[15] 어린 시절 천재로 주목받음, 그러나 멘탈이 극도로 나빠 전성기 때 평가는 이중적, 해외 진출 실패(카사노는 레알 마드리드 CF에서 실패를 경험했다), 나이를 먹고 결혼하고 나서야 정신차렸다.[16] 실제로는 3월생 박지성이 음력으로 출생신고를 해 실질적인 조기입학을 하여 1년 선후배 관계다.그래서 박지성을 언급할땐 ‘지성이형’이라고 부른다[17] 실제 박지성의 종교는 공식적으로 불교로 알려져 있다.[18] 그리고 이천수와 최태욱이 3학년이 된 해에, 부평고는 학성고, 포항제철고, 풍생고, 강릉농고 등 전통의 강호들을 그야말로 압살해버린다.[19] 사실 서장훈도 에고가 강한 성격이긴 하지만 서장훈은 자기주장이 심하게 강할 뿐이고 까칠할 뿐이지 이천수처럼 아예 멘탈 문제를 드러내진 않았다. 그리고 서장훈은 말도 잘하고 독서도 열심히 하는 똑똑한 선수라서 경기장 내에서 과한 승부욕을 보여서 논란이 된 것은 있어도 망언은 일절 하지 않았다.[20] 일반적으로 자서전이라는 것이 인생을 회고하면서 쓰는 것임을 생각하면 데뷔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20세의 선수가 월드컵 한 번 경험했다고 축구 선수로서의 인생을 회고한다는 것은 얼토당토 않은 소리다. 사실 자서전을 쓸 레벨이라면, 어느 정도 커리어를 쌓고 쓰는 것이 맞다. 축구 선배인 홍명보는 2002 월드컵 이후에 썼고 박지성도 첫 자서전을 맨유 입단 이후에 썼다.[21] 이 선택은 이천수에겐 매우 치명적이었다. 게다가 이천수 자신도 함부로 레알 마드리드를 운운할 정도로 분에 넘치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부터 유럽 중하위권 팀에서 차근차근 배우며 현지 적응에 노력을 기해도 모자랄 판에, 세계 최고 리그 중 하나라는 라리가에서 우승을 노리던 돌풍의 팀으로 입단해서 막대한 기대를 한 몸에 받았으니 실패하는 건 무리도 아니었다. 초반에야 꽤 준수한 활약을 했지만, 처음 경험해보는 외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큰 기대가 전부 부담감으로 돌아가자, 현지에 딱히 친한 선수나 믿음을 주던 감독도 없었던 이천수는 그대로 국내에 유턴하고 만다.[22] 실제로 근본 투어에서 이천수는 외지에서 어머니와 둘이 생활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리고 박지성도 유럽 진출 초기에는 홈 팀 팬에게 온갖 조롱을 당하고, 팀원에게 디스를 당할 정도로 부진했지만, 그의 잠재성을 알아보고 애정으로 지켜봐준 히딩크 덕에 자신감을 얻고 주전으로 발돋움 할 수 있었다.[23] 이영표의 영향도 매우 컸다고 볼 수 있다. 박지성과 이천수는 유럽 무대를 노크한 2003년에 우리 나이로 고작 23세였다. 물론 23세가 법적으로 성인이긴 하지만 세상의 풍파를 견뎌내기에 충분한 나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영표는 박지성보다 4살 많은 선배로 아인트호벤에서도 더 빨리 적응했고, 의지할 만한 한국인 선수가 있고 없고는 아직 어린 선수가 적응하는데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24] 리그의 플레이 색깔이 다른 건 스카우터의 몫이지만 선택을 하는 순간 그 때부터는 선수의 책임이 된다. 이는 어느 프로 스포츠에서도 공통된 사항이다. 감독이나 프런트의 변수가 있긴 하지만 그 때는 이미 차기 시즌 연봉이 정해져 있을 것이다.[25] 잘 와닿지 않다면, 옆동네 KBO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KBO보다 살짝 높은 수준으로 평가되는 AAA에서 한끗 날리던 선수들을 100만달러 꽉꽉 채워서 데리고 왔는데 한 시즌, 혹은 그마저도 다 못 채우고 집에 가는 선수들이 몇 명씩은 꼭 나오니.[26] 과거 다른 방송에서는 고교 시절 이천수가 새벽 동 트기도 전에 부평 공원묘역에서 러닝을 하던 이야기가 나온 바 있다. 담력과 체력을 키우기 위해서였다는 것.[27] 이천수 본인이 생각하는 의미는 단어 본연의 뜻인 목표에 대한 인식과 함께 목표 추진의 과감함과 목표를 이루기 위한 집념어린 노력과 끈기, 정열을 말한다.[28] 노력을 안해서 재능을 망쳤다며 박지성과 비교를 한다는 건, 곧, 노력만 열심히 했다면 박지성 같은 선수가 될 수 있었을 텐데라고 아쉬워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29] 이천수의 국가대표 활약이 어떻게 보면 애매하고 꾸준하지 않았기 때문에 올드팬들 중에는 그 정도는 아니라고 저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천수 말고는 아직도 k리그에서 라리가 직행한 선수가 없고, 빅리그 직행으로만 따져도 k리그에서 빅리그 직행한 사람은 거의 없다. 4대리그로만 한정하면 이청용, 구자철, 지동원, 홍정호, 윤석영, 조원희, 이동국뿐이다. 게다가 이천수는 나이도 한국나이로 23이라는 아직 유망주 나이에 라리가 전시즌 2위팀에 직행한 것이다. k리그에서 빅리그 챔스진출팀으로 바로 이적한 케이스는 아직까지도 이천수뿐이다.[30] 이천수가 안 보이는 곳에서 끊임없이 노력했다고 하지만 축구인들이 속속 인방으로 복귀하고 있는 현재 이런 저런 증언을 모아 보면 프로가 된 이후로는 꾸준하게 열심히 운동했던 그룹에 속하기는 어려워 보인다.[31] 참고로 소크라테스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7현인 이후의 소크라테스 철학을 상징하는 말이 됐을 뿐. 델포이에 위치한 아폴론 신전의 앞마당인 프로나오스에 새겨져 있는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격언이다. 이 말을 한 것으로 알려진 사람은 탈레스가 제일 유력하다고.[32] 사실 한국 네티즌들이 투표 사실을 알고 몰빵한 것. 이런 류의 투표는 얼마나 못생겼느냐보다 얼마나 인지도가 높으냐가 훨씬 중요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투표였으면 이천수는 순위권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33] 이천수가 전남에 있을 당시 코치가 하석주였다.[34] 2016년 2월 18일분[35] 전술 해석이 아닌 노닥거리면서 하는 해설[36] 2020년 방송에는 첫째딸과 함께 출연하였으나, 2021년에 들어서는 첫째딸은 방송에 나오지 않고있다. 아무래도 학교를 다닐 시기라 출연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37] 참고로 서동주를 제외한 모든 선수들이 이천수보다 누나다.[38] 여담으로 부인인 심하은도 FC 국대 패밀리 팀 선수로 출연하다가 이천수와 동반하차했다.[39] 실제로 SNS에선 그를 비판하는 댓글과 욕하는 댓글로 가득 차 있다.[40] 초등학교 축구팀 8:8 경기 및 5~7부 리그, 아마추어 축구 경기 심판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41] 유일한 케이스는 아닌 것이 와일드카드가 아닌 연속 2회 올림픽 출전기성용도 2008년과 2012년에 달성하였으며, 4년 월반 출전은 기성용과 2008년 올림픽에 함께 출전한 조영철도 달성하였다. 이때 올림픽에 같이 나간 기성용은 조영철과 같은 1989년생이긴 하지만, 이쪽은 빠른 생일이라 1988년생인 이청용과 동기이므로 3년 월반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42] 거스 히딩크 자서전 마이웨이에서도 이 선후배 문화 없애는것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은 선후배 문화를 선수들이 보이는 순간 엄한경고 조치를 했던것으로 보인다. 이천수의 당돌함을 좋아했던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이 이천수에게 시킨 이유가 있었던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런저런 문제를 없앤 결과...다들 알다시피 2002년 월드컵에서 대성공을 거둔다.[43] 기사 내에서는 이천수가 3위, 호나우지뉴가 4위였지만 기사가 화제가 되면서 호나우지뉴와 이천수의 순위가 급상승 했다.[44] 참고로 같이 해설로 발탁된 유상철 역시 저 발언 이후, "우리도 1, 2년 조기축구회 뛰면 조기축구화 된다"는 첨언을 남겼다.[45] 짤방이 악마의 편집이긴 한 것이 원래는 중국 슈퍼리그가 유럽리그 출신 초고액 용병들을 대거 영입하면서 수준이 올라가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46] 프로그램 이름이 걸작인 이유가 현 소시에다드 스쿼드에 근본론 그 자체이신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프로그램에 출연했다.[47] 아마도 이천수의 성격 상 아무래도 상처를 받긴 받았을 것 같다. 하지만 15년 전에 그것도 마지막 시즌은 다른 팀으로 임대갔고 한 골도 기록 못한 선수를 팬들이 기억할리가...[48] 이름은 기억 못하는듯 하였으나 '공격수였잖아요', '별로 안 뛰어서 못 알아봤어요' 라는 식으로 말하는걸 보니 진짜로 기억은 나는게 맞는 듯하다.[49] 이 분도 얼굴과 이름이 '리' 였다는 사실 정도만 기억난다고 하셨다.[50] 이게 정말 대단한 것이, 아무리 현지 팬이라도 본인이 5살 때 응원하던 팀에서 폭망해버린 아시아 국가 선수를 기억하는 현지 축구팬이 과연 몇이나 될지 잘 생각해보자. 아마도 레알 소시에다드의 골수 팬인듯 하다.[51] 마침 송영길의 국회의원 시절 정치적 텃밭이 이천수의 고향계양구였고 이천수의 아내 심하은은 송영길과 같은 전라남도 고흥군 출신이다.[52] 이 말을 들은 이천수의 어머니 : 난 그 경찰관이 이해가 된다(....)[53] 영상 145초 부근의 이천수의 증언[54] 해당 뺑소니범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08% 이상으로 면허 취소 대상이라고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