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시 야스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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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의 경찰 출신 정치인으로 이전 성씨는 와타나베. 제106대 법무대신을 역임하였다.
2. 생애[편집]
1959년 10월 12일, 일본 도쿄도 미타카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의사인 와타나베 다케시로, 2009년에 사망했다. 국내에 손꼽히는 명문고인 도쿄교육대학 부속 고마바고등학교[5] 를 졸업하고 도쿄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후 국가공무원채용1종시험을 통해 1982년에 경찰청에 입청한 경찰 캐리어다. 이후 이와테현·효고현 경찰본부 형사부 수사제2과장, 외무성 주인도네시아일본대사관 일등서기관 등을 역임했다. 정치인 하나시 노부유키의 딸과 결혼, 이후 아내의 성씨를 따라 성씨를 와타나베에서 하나시로 바꾸었다. 1999년 경시정 계급을 마지막으로[6] 경찰청을 나오고, 하나시 노부유키의 비서가 되었다.
2003년 제43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장인어른의 정계 은퇴로 자유민주당 소속으로 이바라키 3구에 출마해 첫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했다. 제44회 중원선 이후 자민당 축산낙농대책소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2013년 제2차 아베 신조 내각에서 재무대신 정무관에 취임했고, 2014년 9월 개조내각에서는 법무부대신으로, 같은 해 12월 제3차 내각에서는 법무부대신을 겸하여 내각부 부대신에 취임했다.
2016년 1월 중의원 법무위원장으로 취임했고, 8월에는 자민당 총무부회장으로 취임, 2017년 8월 제3차 개조내각에서 법무부대신 겸 내각부 부대신으로 재취임했다. 2018년에도 또다시 중의원 법무위원장이 되었다.
2020년 스가 내각에서 농림수산부대신에 취임하고, 2022년 제2차 기시다 제1차 개조내각에서 제106대 법무대신에 취임하며 첫 입각했지만 후술할 논란으로 11월 11일 사임 의향을 밝혔다.
3. 논란[편집]
11월 9일 도쿄에서 열린 자민당 무라이 슌스케 의원의 주최 저녁 행사에서 “법무상은 아침에 사형(집행) 도장을 찍는데, 낮 뉴스에 톱이 되는 것은 그럴 때 밖에 없는 밋밋한 자리” “법무상은 돈(정치자금)이 모이지 않는다. 득표에도 별 도움이 않는다”라고 농담을 했다. 사람의 생명을 박탈하는 일을 희화화면서 자신의 직위를 스스로 비하하였으며, 법무대신이라는 무거운 직책을 단순히 정치자금과 득표에 관련된 자리로 연결시킨 발언이었기에 파문이 커지기 시작하였다.
11월 10일 입장을 통해 발언을 철회하였지만 여론이 심각해지자 기시다 총리가 사실상 경질을 예고하였으며 결국 11월 11일 대신 직에서 사임하겠다는 의향을 밝혔다. 후임은 자신과 고등학교·대학 동기인 치바현 제7구의 사이토 겐 전 농림수산대신이 맡게 되었다.
4. 소속 정당[편집]
5. 선거 이력[편집]
6. 여담[편집]
- 자신의 실언 논란으로 인해 법무대신직을 물려받은 사이토 겐과 고마바고등학교·도쿄대학 동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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