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세이이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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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의 정치인.
2. 생애[편집]
1952년 5월 11일, 일본 에히메현 오치군 미야쿠보정(현 이마바리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신지로는 에히메현의회 의장과 중의원 의원을 역임했고, 증조부 몬시로는 미야쿠보정장, 이마바리시장에 현의회 의원, 중의원 의원을 역임했으며, 조부 쓰네타로는 대검찰청 차장검사, 삼촌 코타로는 관료 중의 정점인 대장성 사무차관 출신으로 참의원 의원을 역임했고, 여동생 타츠코 역시 재벌가 출신이자 거물급 정치인인 오카다 가쓰야 전 부총리와 결혼한, 말 그대로 정치 명문 집안에서 태어났다.
1971년 도쿄교육대학 부속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7년 도쿄대학 법학부 정치학을 졸업했다. 대학 재학중에 아버지 신지로가 소속되어 있던 자유민주당의 번촌정책연구소의 고모토 도시오 회장의 지지를 받고 졸업 이후에 고모토 도시오의 비서가 되었다.
1983년, 제37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구 에히메 2구에 출마했으나 4위로 낙선했다. 이후 1986년에 자민당 소속으로 재출마해 첫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자민당에 입당해 번촌정책연구소에 소속되었다.
1993년에 자민당 재정부 회장을 역임하고, 1994년에는 중의원의 회의를 진행하는 의사진행계를 역임했다. 이후 1996년 고모토 도시오가 정계에서 은퇴한 이후에는 파벌의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1996년 제41회 중원선부터 소선거구제가 돌입됨에 따라 에히메 2구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2001년에 제2차 모리 개조내각에서 재무부대신에 임명되어 제1차 고이즈미 내각 때까지 역임했다.
2003년 자민당 총재선에서 같은 파벌의 고무라 마사히코를 추천해 이름을 올리지만, 고이즈미 준이치로에게 패배했다. 2004년 제2차 고이즈미 개조내각에서 내각부 특명담당대신(규제개혁, 산업재생기구)에 임명되어 첫 입각했고, 동시에 행정개혁, 구조개혁기구·지역재생 담당 국무대신에 동시에 임명되어 제3차 고이즈미 내각에서도 유임되었다. 이후 개조내각 때 퇴임했다.
2006년 총재선에선 다니가키 사다카즈를 추천했으나 패배했고, 2007년엔 후쿠다 야스오를, 2008년엔 요사노 가오루를 추천에 올렸으나, 번촌정책연구소는 후쿠다와 아소를 지지하지 않았고, 2008년 총재선에선 고무라 마사히코 회장이 아소 다로를 지지했다. 2010년 1월, 번촌정책연구소를 탈퇴했다.
2020년 총재선에서 이시바 시게루를 추천했으나 스가 요시히데가 압도적으로 당선되면서 패배했다.
2022년, 9월 27일에 치루어지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국장에 불참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베는 재정·외교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관료 기구까지 파괴했다. 국적(国賊)이다. 애초부터 국장은 반대해 왔다. 만약 출석하게 되면 아베의 문제점을 용인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불참할 것이다. 자민당 내에서 이런 이야기를 말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상한 일이다.”라고 밝혔다.# 국적(国賊) 발언 논란으로 당원권이 1년 정지되었다.#
3. 소속 정당[편집]
4. 선거 이력[편집]
5. 여담[편집]
- 당 내에서 소신파로 불린다. 2021년 중의원 선거 당시 nhk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자민당 국회의원 중 유일하게 헌법 7조 개정에 대해 반대 입장을 외쳤으며,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국장에도 참여를 거부하였다.
- 매우 덩치가 큰데, 체중이 120kg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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