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토 다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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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제63대 농림수산대신 에토 다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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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0년 7월 1일 (63세) |
미야자키현 카도가와초 | |
학력 | 미야자키현립 미야자키니시고등학교 세이조대학 경제학과 졸업 |
가족 | 아버지 에토 다카미 |
소속 정당 | |
소속 파벌 | 무파벌 |
의원 선수 | 7 (중) |
의원 대수 | 43, 44, 45, 46, 47, 48, 49 |
지역구 | 미야자키 2구 |
약력 | 하버드 대학교 객원 연구원 에토 다카미 비서 미야자키현 제2구 중의원 농림수산대신 정무관 농림수산부대신 내각총리대신 보좌관 농림수산대신 |
1. 개요[편집]
일본의 정치인. 자유민주당 소속으로, 농림수산대신, 미야자키현 제2구 중의원을 역임했다.
2. 생애 및 정치 활동[편집]
미야자키현 카도가와초에서 태어났다. 건설대신, 운수대신, 방위청 장관, 총무상, 중의원 등을 역임한 에토 다카미[1]
극우 성향의 정치인이자 온갖 과거사와 관련된 망언을 일삼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작자는 무라야마 도미이치 내각 시절이던 1995년에 총무상으로 재직할 당시 "일본은 식민지 시대에 한국에 좋은 일도 했다"라는 망언을 일삼아서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이번 기회에 일본에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라고 경고하는 등 한일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된 적이 있다. 이 망언으로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면서 총무상직에서 물러났지만 이후에도 자신의 발언이 뭐가 문제냐며 적반하장식의 태도를 보였다. 2007년 베트남 호찌민 시의 호텔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미야자키현립 미야자키니시고등학교, 세이조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하버드 대학교 객원 연구원, 부친인 에토 다카미의 비서로 일하다가 2003년 제43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부친의 지역구인 미야자키현 제2구에 자민당의 공천을 받아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같은 지역구에서 연속 당선되었다.
후쿠다 야스오 내각에서 농림수산대신 정무관, 아베 신조 제2차 내각에서 농림수산 부대신을 맡았다. 이후 내각총리대신 보좌관을 거쳐 2019년 9월, 농림수산대신으로 임명되어 입각해 대신직을 역임했다.
3. 기타[편집]
-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극우파들이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내용의 광고를 미국 신문 등에 기고하는 것에 동참한 적이 있다.
4.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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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극우 성향의 정치인이자 온갖 과거사와 관련된 망언을 일삼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작자는 무라야마 도미이치 내각 시절이던 1995년에 총무상으로 재직할 당시 "일본은 식민지 시대에 한국에 좋은 일도 했다"라는 망언을 일삼아서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이번 기회에 일본에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라고 경고하는 등 한일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된 적이 있다. 이 망언으로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면서 총무상직에서 물러났지만 이후에도 자신의 발언이 뭐가 문제냐며 적반하장식의 태도를 보였다. 2007년 베트남 호찌민 시의 호텔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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