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지역별 현황/경상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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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밀양시[편집]


1910년 설립된 밀양유치원[1]이 최초로, 밀양시가 아직 밀양군이던 시절에 개원했다. 부산울산을 제외한 경상남도에서 최초로 개원한 유치원이다. 밀양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04년~1906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살아 있다면 119~120세이다.

이는 소도시치고는 굉장히 빠른 것이다. 밀양에 유치원이 설립될 당시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제주도에는 아직 유치원이 없었다. 1988년 이전에는 밀양시가 '군'이었기 때문에 밀양이 행정 단위가 '군'인 지역들 중에서는 가장 먼저 유치원이 들어온 지역이었으나, 1989년 밀양군 밀양읍이 밀양시로 승격되면서 이 타이틀은 1913년 유치원이 설립된 거창군으로 넘어간다. 현재까지도 시골인 지역이 남아 있는 도농통합 이전의 밀양군 지역에는 1970년대까지도 제대로 된 유치원이 없었다.

  • 옛 밀양군 지역: 1981년 무안초등학교 병설유치원[2] 첫 입학생은 1975년~197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8~49세이다.

청도군에 사립유치원이 3곳밖에 없어서, 청도군에 사는 유아들 중 일부는 같은 생활권인 밀양에 있는 유치원을 다니는 경우도 있다.[3] 읍면별로는 청도읍과 화양읍은 밀양, 금천면, 매전면, 운문면은 경주, 각북면, 풍각면, 각남면, 이서면은 대구로 가는 경우가 많은 편.

사립유치원은 6곳(시내 5곳, 하남읍 1곳) 있다. 의외로 과거에 나름 중심지 역할을 했던 삼랑진읍에는 사립유치원이 없다. 1960년대 20만 6,115명이던 인구가 2021년 10만 4,831명으로 줄면서[4], 유치원도 같이 줄었다.

배드민턴 선수 손승모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밀양시는 서울에 비해 손씨의 비중이 높아 원생이나 교사 중 손씨인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다. 물론 그 손씨의 대부분이 밀양 손씨[5]이다. 실제 밀양시 성씨 통계를 보면 10위까지의 성씨는 김, 이, 박, 최, 정, 손, 강, 장, 윤, 안씨로 손씨는 6위이다.

2021년 7월 16일 유치원생 1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2. 통영시[편집]


1911년 설립된 통영진명유치원이 최초이다. 통영시가 아직 용남군[6]이었던 시절에 개원했고, 위치는 지금의 통영시 문화동이다. 통영시보다 인구가 10배나 많은 울산시보다 19년이나 빨리 유치원이 설립되었다. 한편 광도면[7] 정도를 제외하면 아직도 시골인 옛 통영군 지역[8]에는 1970년대가 다 되도록 제대로 된 유치원이 없었다. 통영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05년~1907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살아 있다면 118~119세이다. 참고로 통영시는 철도가 지나지 않는 도시들과 국회의원 1명도 제대로 뽑지 못하는 지역[9]들 중 유치원이 가장 일찍 들어왔다.


통영진명유치원은 윤보선 전 대통령의 부인인 공덕귀 여사가 교사로 근무한 유치원이다. 또한 시인 김춘수, 김상옥, 유치환, 소설가 박경리가 졸업한 유치원이기도 하다.

사립유치원은 11곳 있는데, 그마저도 모두 시내에만 있다. (산양읍에도 없다.) 1960년대 13만 4,741명이던 인구가 2011년 14만 4,017명을 찍은 뒤 2021년 12만 8,293명으로 줄었는데도[10] 거의 그대로다.

통영에서 유치원을 다닌 유명인으로는 시인 김춘수[11], 김상옥[12], 유치환[13], 소설가 박경리[14], 축구선수 김민재[15]가 있다.

통영시는 최씨보다 정씨, 강씨가 더 많아[16] 통영의 유치원에서는 원생이나 교사의 성씨 분포상 정, 강씨가 최씨보다 더 많은 셈이다. 실제 통영의 10대 성씨는 김, 이, 박, 정, 강, 최, 조, 장, 황, 서씨 순서이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3. 거창군[편집]


1913년 거창읍 죽전리에 설립된 명덕유치원이 최초로, 거창군 인구의 20배 가까이 되는 울산보다 17년이나 빨리 유치원이 설립되었다. 첫 번째 원생은 1907년~1909년생이며, 첫 졸업생들은 살아 있을 경우 116~117세의 노인이 됐다. 현재 명덕유치원은 폐원되었고, 거창군에 현존하는 제일 오래된 유치원은 1979년 설립된 월천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다. 1926년 거창교회에서 유치원을 설립했으나, 거창군의 인구 감소로 무기한 휴원 중이다. 거창읍 중앙리 소재로, 1920년~1922년생을 첫 원생으로 모집했고 첫 졸업생들이 103~104세일 정도로 유서가 깊은 유치원이었으나 농촌 인구 감소가 이런 안타까운 결과를 낳은 것이다. 해발 고도가 높은 거창군의 특성상 거창에 있는 유치원에서는 4월에도 눈놀이를 할 정도라고 한다.[17] 과거에는 군 단위 지자체가 많아서 이 곳이 군 단위 최초의 유치원이 아니었으나, 군 단위 지자체들이 지속적으로 시로 승격되면서 현재는 거창이 군 단위에서 최초로 들어온 지자체가 됐다. 다만, 거창에서 근무하는 유아교사들은 모두 다른 지역의 대학을 졸업[18]했다.

거창읍에 군 인구의 60%를 넘는 4만 1,184명이 거주하는 도시 구조 때문인지는 몰라도 관내 사립유치원은 2곳이고 모두 거창읍에만 있다. 1960년대 13만 6,673명이던 인구가 2021년 6만 1,502명으로 줄면서[19], 유치원도 같이 줄었다.

수원 백씨 집성촌이 있는 동네답게 거창의 유치원에는 백씨 성을 가진 원생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고, 거창 출신들은 유치원 시절 만난 교사들 중 적어도 한 명은 백씨였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또한 신씨[20], 장씨[21]도 상대적으로 많아서 한 반에 거창 신씨, 거창 장씨 성을 가진 원생이 꼭 몇 명은 있을 정도였다. 실제 성씨 통계를 보면 거창군 10대 성씨는 김, 이, 박, 정, 최, 신, 강, 백, 임, 오씨 순서로 신씨[22]가 6위, 백씨가 8위일 정도.

배우 최리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4. 진주시[편집]


1916년 설립된 진주기독유치원이 최초이다. 진주시가 아직 진주군이었던 시절에 개원된 유서 깊은 유치원이었으나, 1947년 10월 19일 소실되었다. 현재는 80대 이상인 노인들만 진주기독유치원을 기억할 정도. 진주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10년~1912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살아 있다면 113~114세이다. 이 지역은 국회의원을 2명만 뽑을 수 있는 지역들 중 유치원이 가장 일찍 들어왔다. 당시 진주는 경상남도의 도청 소재지였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치원은, 1926년에 천주교 마산교구 옥봉동 성당 부설로 개원된 성모유치원이다. 본래 이름은 해성유치원이었으나, 1933년 일제의 탄압에 의해 폐쇄되었다가 1949년에 성모유치원으로 이름을 바꾸어 재개원했다. 이 곳의 첫 원생들은 1920년~1922년생으로, 첫 졸업생들은 현재 살아 있다면 103~104세이다. 불교계 유치원은 1931년 설립된 자명유치원으로, 통도사가 관리했다. 현재 자명유치원은 폐원되었다. 또한 2018년 대평면 마지막 교육기관인 한평초등학교가 폐교되면서 대평면에는 교육기관이 한 곳도 없어서 여기에 사는 유아들은 다른 면으로, 혹은 아예 시내로 원정 통학을 해야 한다. 한편 진주에서도 금산면[23] 정도를 제외하면 아직까지 시골인 지역이 제법 남아 있는 옛 진양군 지역에는 1970년대가 다 되도록 제대로 된 유치원이 없었다.


사립유치원은 21곳 있으며, 시내에만 몰려 있지 않고 문산읍, 금산면 등지에도 있다. 1960년대 25만 4,159명이던 인구가 2021년 34만 8,096명으로 늘면서[24], 유치원도 같이 늘었다. 이 때문에 사립유치원이 없는 산청군, 의령군, 고성군, 하동군에서 진주로 원정 통학을 하는 유아들도 있다.

경상남도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진주시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정-강-최-하-조-윤-서 순서라 조씨보다 전, 안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펜싱 선수 박상영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2021년 3월 19일 진주시에 사는 유치원생 1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해당 유치원생들이 검사를 받는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5. 고성군[편집]


1920년 고성읍 성내리에 설립된 신명유치원이 최초이다. 고성군의 인구 감소로 인한 원생 감소로 현재는 휴원. 현존하는 최고의 유치원은 1979년 설립된 회화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다. 고성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14년~1916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살아 있다면 109~110세이다.

사립유치원은 없다. 1960년대 13만 1,449명이던 인구가 2021년 5만 1,361명으로 줄면서[25], 유치원도 같이 줄었다. 때문에 고성군은 사립유치원이 없는 군들 중 인구가 2번째로 많은 군(인구 5만 2,058명)이 되었고, 덤으로 고성읍 역시 사립유치원이 없는 군의 군청 소재지 중 인구가 가장 많은 곳 (인구 2만 4,850명)이 된 것이다. 이로 인해 고성군에 사는 유아들은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나 공립 고성유치원을 다니거나 아예 진주, 사천[26], 통영, 창원 등 주변 도시로 넘어가서 사립유치원을 다녀야 한다. 고성군이 고향인 유아교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라, 고향에서 근무하려면 다른 지역의 대학[27]을 졸업한 뒤 임용고시를 통과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고향을 떠나거나, 진주시, 창원시 등지로 장거리 출퇴근을 해야 한다.

경상남도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고성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최-정-강-황-장-허-서 순서라 조씨보다 허, 서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그나마 고성 이씨[28]들은 많은 편.

모델 박지나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2021년 8월 26일 고성군에서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 1명이 발생했다.


6. 양산시[편집]


1923년 설립된 양산유치원이 최초이다. 양산시가 아직 양산군이었던 시절에 지금의 양산 시내 (당시 양산면)에서 개원했으며[29], 2015년 개원한 양산유치원과는 다른 곳이다. 이 쪽은 물금읍 가촌리에 있는데, 2009~2012년생이 첫 원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14~15세인 신생 유치원이다. 양산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17년~1919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살아 있다면 106~107세이다. 당시 원생들은 지금의 양산 시내에 거주하는 유아가 다수였고 드물게는 부산광역시 북구 금곡동이나 양산시 물금읍, 동면에서 오기도 한다.

유치원이 많지 않던 과거에는 원동면, 물금읍 등지에서는 경부선 기차를, 양산읍에서는 버스를[30] 타고 부산광역시의 유치원으로 원정 오는 경우가 드물게 있었다. 과거 이 지역에서는 통도환타지아로 소풍을 가는 유치원이 있었으나 통도환타지아가 휴장하면서 부산 롯데월드로 소풍을 가는 양산 유치원이 많아졌다.

기장군 역시 여기 관할이던 시절에[31] 최초로 유치원이 들어왔고, 양산에 사립유치원이 본격적으로 들어선 시기는 부산광역시의 베드타운 역할을 시작하면서 인구가 급증한 1990년대 이후이다.

사립유치원은 37곳 있으며, 시내 (중앙동, 강서동, 양주동, 삼성동)에만 몰려 있지 않고 웅상 (소주동, 평산동, 서창동, 덕계동), 물금읍 등 다양한 지역에 분산되어 있다. 1960년대 5만 7,842명이던 인구가 2021년 35만 2,229명으로 늘면서[32], 유치원도 같이 늘었다.

경상남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양산시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정-최-강-윤-장-서-조 순서라 조씨보다 서씨, 최씨보다 정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야구선수 서준원과 유튜버 변승주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2021년 1월 6일 양산시의 유치원생 1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9월 7일과 12월 20일에도 무더기 집단감염이 있었다.


7. 산청군[편집]


1924년 설립된 산청유치원이 최초이다. 산청읍 소재였으며, 지역 사찰인 대원사에서 설립하고 해인사가 관리를 맡았던 불교계 유치원이었다. 현재 산청유치원은 폐원되고 없으며, 산청군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치원은 1979년 설립된 산청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다. 현재는 80대를 넘은 노인들만 산청유치원을 기억할 정도이다. 산청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18년~1920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살아 있다면 105~106세이다.

관내에 사립은 없고, 공립 단설유치원은 2019년에 겨우 생겼다. 진주시산청군 사이가 산으로 가로막혀 진주 시가지가 산청까지 확장되지 못해, 1960년대 11만 5,728명이던 인구가 2021년 3만 4,857명으로 감소했다.[33] 이것이 산청군을 사립유치원 없는 군으로 만든 원인이다. 때문에 산청군에 사는 유아들은 거주하는 읍면에 있는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을 다니거나 아예 진주시로 넘어가서 사립유치원을 다녀야 한다. 산청군이 고향인 유아교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라, 고향에서 근무하려면 다른 지역의 대학[34]을 졸업한 뒤 임용고시를 통과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고향을 떠나거나, 진주시 등지로 장거리 출퇴근을 해야 한다.

2021년 현재 산청군의 유치원 중 2곳[35]은 원아가 다 합쳐서 1명밖에 없다

경상남도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산청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정-강-최-권-민-조-오 순서라 최씨보다 정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전직 인터넷 작가이던 러브풀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36]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8. 의령군[편집]


1924년 최초로 의령유치원이 설립되었지만, 일제강점기에 폐원되었다. (2012년 설립된 의령유치원과는 다른 곳이다.) 의령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18년~1920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살아 있다면 105~106세이다.

의령군 자체의 적은 인구와 지형상의 이유로 진주, 창원 시가지가 여기까지 확장되지 못한 탓인지, 1960년대 10만 4,773명이던 인구가 2021년 2만 6,800명으로 줄어[37], 사립유치원은 없다. 때문에 의령군에 사는 유아들은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나 공립 의령유치원을 다니거나 아예 진주, 창원으로 넘어가서 사립유치원을 다녀야 한다. 의령군이 고향인 유아교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라, 다른 지역의 대학을 졸업하고[38] 임용고시를 통과해야 고향에서 근무할 수 있고, 사립유치원에서 근무하고 싶다면 고향을 떠나 진주창원으로 넘어가야 한다. 심지어 궁류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은 원아가 단 1명이다.

경상남도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의령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정-최-강-전-허-서-조 순서라 조씨보다 전, 허, 서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가수 유진원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9. 창원시[편집]


1926년 설립된 대자유치원이 최초로, 창원시가 아직 마산시창원군으로 나뉘어 있던 시절에 현재의 창원시 마산합포구 추산동에 개원했다. 지역 사찰인 정법사에서 설립하고 통도사에서 관리를 맡았던 불교계 유치원이다. 1926년 ‘배달유치원’으로 개원했으나, 1940년에 명칭을 현재와 같이 바꾸었다. 정법사 증축 공사 때 대자유치원의 재건축도 결정이 되어 해당 원생들은 영도유치원을 다녔다.[39] 창원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20년~1922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살아 있다면 103~104세이다. 비수도권에 일반구가 있는 도시들 중 청주를 빼면 유치원이 가장 늦게 들어왔다.[40]

해방 전 창원의 유치원은 주로 마산합포구를 중심으로 설립되었으며 창원시의 시가지 확장에 따라 인근에도 유치원이 설립되었다. 또한 아직도 시골인 지역이 꽤 남아 있는 도농통합 이전의 창원군에는 1980년대가 돼서야 겨우 유치원이 설립됐다.

  • 진해구: 1949년 진해성심유치원. 천주교 마산교구 중앙동 성당 부설이다. 진해구 최초의 유치원이며, 개원 당시에는 창원군 진해읍이었다. 첫 입학생은 1943년~1945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80~81세이다.
  • 의창구: 1970년 창원유치원. 의창구 최초의 유치원이며, 개원 당시에는 창원군 창원면이었다. 첫 입학생은 1964년~1966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59~60세이다.
  • 마산회원구: 1973년 새싹유치원. 당시 경상남도 마산시. 첫 입학생은 1967년~1969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56~57세이다.
  • 창원군 지역: 1981년 진전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첫 입학생은 1975년~197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8~49세이다.
  • 성산구: 1983년 리라유치원. 첫 입학생은 1977년~1979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6~47세이다.

유치원이 많지 않던 과거에는 함안군, 의령군, 김해군 진영읍[41] 등지에서 버스나 기차로 원정 통학을 하기도 했고, 지금도 사립유치원이 없는 의령군, 고성군(주로 배둔, 영현 등지) 등지에서 사립유치원을 보내기 위해 버스 등을 타고 여기로 원정 오는 경우가 있다. 특히 고성의 경우는 거리상 가까운 마산합포구[42]로, 의령의 경우는 마산회원구 쪽으로 많이 원정을 간다.

1960년대 41만 362명이던 인구가 2011년 109만 1,881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21년 103만 6,378명으로 감소했고[43], 창원시의 시가지 팽창에 따라 기존에 마산합포구 구마산, 신마산 일대[44]에 있던 유치원이 다른 구로 이전하기도 했다. 사립유치원은 시내에만 몰려 있지 않고 동읍, 북면, 내서읍 등 읍면 지역에도 있으며, 웬만한 광역시 수준이자 경남에서 가장 많은 101곳이 있다. 이로 인해 창원은 비수도권에서 사립유치원 개수가 가장 많은 자치시로 등극했다.

2019년 7월 4일에는 성산구 반지동의 사립유치원인 보람유치원 설립자가 유치원 건물과 부지를 통째로 교육청에 기부했고[45], 2019년에 입학한 원아들을 고려해 2023년에 공립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창원은 전국에서 명씨 성을 가진 사람이 가장 많이 살고 있어서[46] 그나마 명씨 성을 가진 원생이나 교사를 많이 볼 수 있는 동네이다. 또한 갈씨[47], 감씨[48], 공씨[49], 구씨[50], 노씨[51], 변씨, 빈씨[52], 서씨[53] 설씨[54], 신씨[55], 여씨[56], 왕씨[57], 전씨[58], 제씨[59], 주씨[60], 진씨[61], 차씨[62], 천씨[63], 추씨[64], 팽씨[65], 표씨[66], 하씨[67], 허씨[68], 황씨[69] 성인 원생들도 상대적으로 많다. 본관까지 내려가면 벽진 이씨인 원생도 보기 쉬울 정도. 저 성씨들 중 10대 성씨는 서, 황씨밖에 없는데 창원시 10대 성씨는 김 이, 박, 정, 최, 강, 조, 윤, 황, 서씨 순서이다.

배우 서경석은 진해 여좌유치원을 다녔다.[70] 또한 야구선수 나균안도 2001~2004년 사이에, 개그맨 김대범은 1983~1985년 사이에 진해동부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을 다녔다.[71]

2022년 2월 창원에서 유치원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10. 김해시[편집]


1929년 옛 김해읍 지역에 설립된 김해유치원이 최초이다. 김해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23년~1925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살아 있다면 100~101세이다.

김해군 시절까지 범위를 넓히면 1923년에 설립된 명지유치원이 있다. 하지만 명지유치원은 1978년 행정구역 개편 때 대저읍 등과 함께 부산으로 넘어갔고[72], 현재는 폐원되고 없다. 그리고 2014년 부산 강서구에 똑같은 이름의 유치원이 설립되었다. 한편 김해에서도 시골인 지역이 제법 남아 있는 도농통합 이전의 김해군 지역에는 1970년대까지도 제대로 된 유치원이 없었다. 때문에 김해군 시절 진영읍, 한림면에 살던 아이들은 기차를 타고 마산시, 부산광역시 등지로 원정을 가야 했다.


사립유치원은 2023년 기준 36곳 있는데, 시내에만 몰려 있지 않고 장유신도시진영읍 등 다양한 지역에 분산되어 있다. 1960년대 19만 9,202명이던 인구가 2021년 54만 2,338명으로 늘면서[73], 유치원도 같이 늘었다. 경남도 내에서는 창원시, 양산시 다음으로 사립유치원이 많은데(2021년까지는 양산보다 많았으나 2022년을 기점으로 양산에 역전당했다) 원아 250명 이상의 대형 유치원들이 성업 중인 것도 눈여겨 볼 점이다.

대한민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인 여민지[74]도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고 한다.

김해의 유치원에는 서울보다 하씨 성을 가진 원생이 상대적으로 많다고 한다. 다만, 하씨는 10위권 밖인데 김해시 10대 성씨는 김, 이, 박, 정, 최, 강, 조, 윤, 장, 서씨 순서이다.

2020년 8월 김해의 한 유치원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고 2021년 7월 17일부터 19일까지 9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11. 함안군[편집]


1929년 함안제일교회 부설로 가야읍 말산리에 설립된 성서유치원이 최초였으나 인구 감소로 무기한 휴원 중이고, 해방 이후로 한정하면 1945년 천주교 마산교구 함안성당 부설로 가야읍 말산리에 설립된 삼일유치원이 최초이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치원은 1979년 칠원읍 구성리에 설립된 칠원유치원이다. 함안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23년~1925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100~101세이다.

사립유치원은 7곳 있는데 칠원읍에 5곳(오곡리 숲속나라유치원, 자이채움널유치원, 해나라국제유치원, 구성리 주원유치원, 칠원유치원), 가야읍(말산리 우리유치원)과 함안면(광정리 꽃동산유치원)에 각 1곳씩 있다.

이렇게 된 원인은 칠원읍이 창원의 베드타운 역할을 하다 보니 가야읍보다 칠원읍의 인구가 더 많은[75] 도시 구조 때문이다. 1960년대 12만 3,176명이던 인구가 1990년 5만 9,820명으로 줄었다가 2021년 6만 4,182명으로 회복했는데도[76], 유치원이 줄었다. 이 추세라면 2030~2040년대에 함안군이 사립유치원 없는 군으로 전락한다. 애초 2040년대에 사립유치원이 남아 있을 군은 얼마 없다 함안군에는 대학이 없어서 함안에서 근무하는 유아교사들은 모두 타지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함안으로 발령받은 사람들이다.

경상남도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함안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조-정-안-최-강-황-윤 순서라 최씨보다 조, 정, 안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배구선수 장광균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12. 함양군[편집]


1930년 설립된 함양유치원이 최초이다. 지역 사찰인 영각사에서 설립했고, 해인사가 관리를 맡았다. 소재지는 함양군 함양읍이며, 현재는 폐원되었다. 현재는 구순 넘은 어르신들만이 이 유치원을 기억할 정도이다. 함양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24년~1926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살아 있다면 99~100세이다.

지리적 특성상 기본적으로 3월까지는 눈이 오기 때문에 입학식을 눈 맞아 가면서 하기도 했고, 더 옛날에는 어린이날에도 눈이 와서[77] 유치원 어린이날 행사를 눈 맞아 가면서 하기도 했을 정도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치원은, 1979년 설립된 안의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다. 사립유치원은 함양읍 신천리의 꿈나무유치원 1곳만 있다. 이는 이촌향도 현상으로 인해 함양군의 인구가 진주, 부산, 대구 등지로 유출되면서 인구가 급감해 1960년대 12만 2,591명이던 인구가 2021년 3만 9,080명으로 줄면서[78], 유치원도 같이 줄었다. 함양군에는 대학교가 없어서 방통대나 사이버대학을 진학할 것이 아니면 다른 지역으로 떠나야 하기 때문에 함양군에서 근무하는 유아교사들은 거의 수도권이나 대구,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함양군으로 온 것이다.

경상남도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함양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정-강-최-임-서-노-오 순서라 최씨보다 정, 강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잔나비의 멤버 윤결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13. 사천시[편집]


1931년 설립된 삼천포유치원이 최초로, 현재의 사천시 선구동에 있었다. 사천시가 아직 사천군이었던 시절에 개원했으나, 해방 직후 폐원되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치원은 1963년 옛 삼천포시 동동에 설립된 성광유치원이다. 사천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25년~1927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살아 있다면 98~99세이다. 한편 옛 사천군 지역에는 1970년대까지도 제대로 된 유치원이 없었다.


사립유치원은 8곳(삼천포 4곳, 사천읍 4곳) 있다. 심지어 시청이 있는 용현면[79]에도 없다. 1960년대 14만 8,522명이던 인구가 2021년 11만 1,105명으로 줄면서[80] 유치원도 같이 줄었다. 특히 서부 지역[81]에는 병설유치원만 몇 곳 있을 뿐이다. 이런 지역에 사는 유아들이 사립유치원에 다니고 싶으면 아예 진주[82]로 가야 한다. 사천시 역시 대학교가 없어서 방통대나 사이버대학에 갈 것이 아닌 이상 다른 지역에 가야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사천에서 근무하는 유아교사들은 수도권이나 진주 등에서 대학을 다니고 고향으로 돌아온 케이스이다.

경상남도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사천시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정-강-최-조-장-문-서 순서라 최씨보다 정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가수 박서진, 농구선수 홍아란, 축구선수 백지훈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14. 합천군[편집]


1935년 합천성당 부설로 유치원이 설립됐으나, 6.25 전쟁으로 인해 소실됐다. 현재 영업하는 곳 중에서는 1977년 천주교 마산교구 합천성당 부설로 설립된 성모유치원이 가장 오래됐다. 또한 이 곳이 합천군 유일의 사립유치원이다. 합천읍 합천리 소재로, 일해공원과 가까이 있다. 합천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29년~1931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살아 있다면 94~95세이다. 성모유치원 최초의 원생은 1971년~1973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살아 있다면 52~53세가 됐다.

이렇게 된 원인은 합천군의 급속한 인구 감소 때문이다. 1960년대 18만 9,454명이던 인구가 2021년 4만 4,006명으로 줄면서[83], 유치원도 같이 줄었다. 때문에 면 지역에 사는 아이들은 거주하는 면에 있는 병설유치원에 다녀야 하고, 사립유치원을 다니고 싶으면 대구광역시 등 주변 도시로 가야 한다. 심지어 삼가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은 원생을 다 합쳐도 1명밖에 없다. 합천군에 대학이 없기 때문에 합천군에서 근무하는 유아교사들은 거의 대구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전라북도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진안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정-강-최-문-윤-권-전 순서라 최씨보다 정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프로게이머 이승훈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2021년 7월 21일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가 1명 발생해 해당 유치원에 선별진료소가 설치되었다.


15. 하동군[편집]


1946년 최초로 하동기독유치원이 설립되었으나, 1950년 폐쇄되었다. 현재는 칠순 넘은 어르신들만이 이 유치원을 기억할 정도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치원은, 1979년에 설립된 노량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다. 하동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40년~1942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83~84세이다. 한마디로 조 바이든의 동갑내기 정도만 하동기독유치원을 기억하는 셈. 1970년 하동성당 부설로 유치원이 설립됐으나 1990년에 폐원되면서 하동군 역시 양구군, 장수군 등과 함께 사립유치원 없는 군이 되었다. 1964년~1966년생이 하동성당 부설 유치원 첫 입학생이고, 첫 졸업생들은 현재 59~60세, 마지막 졸업생은 현재 40~41세가 됐다. 또한 하동군의 마지막 사립유치원이 폐원될 당시 군의 전체 인구는 6만 5,866명이었다. 이런 이유로 하동군은 대한불교조계종25교구 본사 소재지 중 유일하게 사립유치원 없는 지역이 되었다.

사립유치원은 없다. 광양과 하동 사이는 섬진강으로 가로막혀 있어 광양 시가지가 하동까지 확장되지 못하고, 진주와도 덕천강으로 가로막혀 시가지가 확장되지 못해 사립유치원이 들어올 정도의 인구 유입이 없었다. 그로 인해 1960년대 14만 2,380명이던 인구가 2000년 5만 9,556명으로 줄었다가 2001년 6만 298명으로 잠깐 늘었으나, 2021년 4만 4,785명으로 줄었고[84], 그래서 사립유치원 없는 군이 된 것이다. 때문에 하동군에 사는 유아들은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나 공립 하동유치원을 다니거나 아예 진주 등지로 넘어가서 사립유치원을 다녀야 한다. 마찬가지로 하동군이 고향인 유아교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라 고향에서 근무하려면 다른 지역의 대학[85]에서 유아교육과를 졸업한 뒤 임용고시를 통과해야 하며, 사립유치원에서 근무하고 싶으면 고향을 떠나 진주 등지로 가거나, 고향에 살아도 진주 등지로 원거리 출퇴근을 해야 한다.

하동군에 대나무 숲이 있어[86] 하동군 관내 유치원생들이 이 곳으로 소풍을 가기도 한다.

하동군은 이 지역을 본관으로 하는 하동 정씨[87]의 영향으로 전국에서 정씨 비율이 박씨보다 높은 유일한 지역이라 하동이 고향인 사람들은 자신이 유치원 다닐 적에 ‘선생님들 중 박씨 성을 가진 사람은 없어도 정씨 성을 가진 사람은 꼭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게다가 유치원 시절 같은 반 친구들 중 박씨는 1~2명인데 정씨가 7명이라거나, 박씨는 없고 정씨는 있는 경우도 있었을 정도이다. 실제 하동군 10대 성씨도 김, 이, 정, 박, 강, 최, 조, 황, 서, 하씨 순서로 하동군의 상위 3개 성씨도 '김이정'이다.[88]

사립유치원이 없는 군 중에서는 서천군과 같은 도의 고성군 다음으로 인구가 많다. (서천군 53,125명, 고성군 52,433명, 하동군 46,529명) 현재 하동군에서 가장 가까운 유치원은 경상남도도 아닌 무려 전라남도에 있는데, 전라남도 광양시 광영동 소재의 혜화유치원이 그 주인공이다.

배구선수 전광인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16. 거제시[편집]


1949년 설립된 능포유치원이 최초로, 거제시가 아직 거제군도 아니고 통영군이었던 시절에 개원했다. 소재지는 현재의 거제시 능포동 (옛 장승포시)이었다. 현재는 폐원되었고, 거제군 복군 이후인 1971년 상문동에 설립된 큰별유치원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치원이다. 이 곳에 처음 입학한 사람은 1965년~1967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58~59세이다. 거제도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43년~1945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80~81세이다. 한편 거제시에서도 아직까지 시골인 지역이 제법 남아 있는 옛 거제군 지역에는 1970년대가 다 돼서야 유치원이 생겼다.

  • 거제군 지역: 1971년 큰별유치원. 첫 입학생은 1965년~196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58~59세이다.

이후 거제시의 유치원들은 주로 옛 장승포읍과 옛 신현읍 지역을 중심으로 설립되었다. 사립유치원은 29곳 있으며, 칠곡군 등과 같이 시내에만 몰려 있지 않고 고현지구 (舊 신현읍), 거제면[89], 사등면, 연초면, 장목면[90] 등 다양한 지역에 분산되어 있다. 1960년대 11만 7,875명이던 인구가 2021년 24만 5,754명으로 늘면서[91], 유치원도 같이 늘었다. 다만, 21세기 들어서는 거가대교의 개통으로 부산으로 가는 길이 편리해지자, 장목면 등 일부 지역에서는 아예 부산에 있는 유치원을 보내겠다는 경우가 늘고 있다.

거제는 전국에서 옥씨 성을 가진 사람이 가장 많고[92], 청주 다음으로 반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많이 살고 있어서[93] 거제의 유치원에서는 서울보다도 반씨, 옥씨 성을 가진 원생과 교사를 보기 쉽다. 다만 이들 성씨는 10위 밖인데 거제시 10대 성씨는 김, 이, 박, 정, 최, 윤, 강, 서, 장, 조씨 순서이다.

지리적 특성상 태풍으로 인한 휴원이 잦고, 폭설에 의한 휴원은 드물다.

개그우먼 신보라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17. 창녕군[편집]


1976년 설립된 창녕여자중고등학교 병설 창녕유치원이 최초이다. 국내 최초로 중고등학교에 부설된 유치원으로, 창녕에 5곳밖에 없는 사립유치원 중 하나이다. 그나마 과천시, 속초시보다는 많다 과거 부곡하와이로 유명했던 부곡면에는 병설유치원만 있다. 창녕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70년~1972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53~54세이다. 그 전에는 유치원에 다니려면 버스를 타고 마산이나 대구로 가야 했는데, 당시에는 고속도로도 없어서 등하원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건 다반사였다. 그 때문에 창녕군 출신의 거물 정치인인 홍준표, 박원순, 박영선은 모두 유치원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과거에는 창녕군의 유치원생들이 부곡하와이로 소풍을 많이 갔으나[94], 부곡하와이 자체가 폐장된 2017년 이후에는 우포늪으로 가거나 아예 대구, 창원 등 주변 도시로 소풍을 간다. 창녕군에서 대구로 소풍을 갈 경우 보통 이월드로 많이 가는 듯.

사립유치원은 창녕읍에는 3곳, 남지읍에는 2곳 있다. 1960년대 15만 6,744명이던 인구가 2021년 6만 1,301명으로 줄면서[95], 유치원도 같이 줄었다. 다만, 대합면에 산업단지가 들어서면 인구가 늘 가능성이 있으므로 산업단지 근로자의 자녀를 위한 유치원을 설립할 수도 있다. 설상가상으로 이 동네에는 대학마저 없어서 창녕에서 유치원 교사가 되고 싶으면 방통대나 사이버대학을 갈 것이 아닌 이상 무조건 다른 지역에 가서 대학을 졸업하고 창녕군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런 사람들이 가장 많이 진학하는 지역은 당연히 수도권이나 대구이다.

창녕군에는 성씨 (창녕 성씨), 신씨 (영산 신씨) 집성촌이 있었기 때문에 과거 창녕의 유치원에서는 원생과 교사들 중 창녕 성씨, 영산 신씨 성을 가진 경우가 많았으며, 지금도 창녕 성씨들이 많다. 실제 창녕군에서 성씨는 6위인데 창녕군 10대 성씨는 김-이-박-최-정-성-하-신-강-윤씨 순서이다.

배우 오연서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18. 남해군[편집]


1979년 설립된 성명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최초이다. 특이하게 남해읍보다 서면에 먼저 유치원이 설립되었다. 남해읍 최초의 유치원은 1994년 설립된 남해유치원이다. 이 곳의 첫 입학생은 1988년~1991년생으로 첫 졸업생이 35~36세일 정도로 역사가 짧다. 남해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73년~1975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50~51세이다.

삼천포와는 바다로 가로막혀 시가지가 확장되지 못한 탓에 1960년대 13만 5,131명이던 인구가 2021년 4만 2,958명으로 줄었고[96], 이러한 인구 감소로 인해 사립유치원은 없다. 이런 이유로 사립유치원이 없는 군들 중에서는 서천군, 고성군, 울진군, 하동군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군이 되었다. (1위 서천군 53,125명, 2위 고성군 52,058명, 3위 울진군 49,526명, 4위 하동군 46,146명, 5위 남해군 43,479명, 6위 신안군 40,122명) 남해군 자체에 사립유치원이 없는 것은 물론 바로 이웃한 하동군에도 사립유치원이 없다는 점 때문에 남해군의 유아들은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나 공립 남해유치원을 다니거나 아예 사천, 진주 등지로 넘어가서 사립유치원을 다녀야 한다. 또한 남해군이 고향인 유아교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라, 다른 지역의 대학[97]에서 유아교육과를 전공하고 유치원 정교사 자격증을 취득했어도 임용고시를 보지 않으면 고향에서 근무하지 못하고 아예 진주 등 주변 도시의 유치원으로 가야 한다. 현재 남해군에서 가장 가까운 사립유치원은 사천시 벌리동에 있는 꽃나라유치원이다. 그나마 눈은 잘 오지 않아 눈으로 인한 휴원은 드물지만, 태풍으로 인한 휴원은 더 많다.

경상남도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남해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정-최-강-하-장-조-류 순서라 최씨보다 정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그나마 그 류씨들 대부분이 진주 류씨다.

배구선수 임명옥과 스켈레톤 선수 윤성빈[98]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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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5년 설립된 밀양유치원과는 다른 곳이다.[2] 전라남도 무안군과 한자 표기가 다르다. 그 쪽 무안은 務安, 이 쪽 무안은 武安. 참고로 김병지가 이 동네에서 태어났다.[3] 사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청도군에는 유치원이 없다시피해서 청도에 사는 유아들은 밀양, 경산 등지로 나가야 유치원을 다닐 수 있었다. 주로 청도읍, 화양읍, 금천면, 매전면, 운문면은 밀양으로, 각북면, 풍각면, 각남면, 이서면은 대구로 갔다고 한다.[4] 그 와중에 시내 인구는 4만 288명에서 5만 2,876명으로 늘어, 시내 집중도가 19.5%에서 50.4%로 높아졌다. 밀양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5만 2,876명, 상남면 8,496명, 하남읍 7,165명, 삼랑진읍 6,682명, 부북면 5,240명, 무안면 5,024명, 단장면 4,315명, 산내면 3,962명, 초동면 3,424명, 상동면 3,066명, 산외면 2,821명, 청도면 1,760명으로 읍면 지역의 상태가 매우 열악하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이런 이유로 버스 배차간격도 벌어지고 있다. 1960년대에는 상남면(21,937명), 무안면(20,003명)이 2만 명을 넘을 정도로 잘 나갔으나 상남읍, 무안읍으로 승격하지 못하고 그대로 몰락하면서 이 지역 주민들이 시내로 유치원 원정을 보내는 형편이다.[5] 밀양 손씨의 유명인으로는 손흥민이 있다.[6] 통영군1914년 용남군과 거제군의 합군으로 설립된 군이다. 이후 1953년 거제군이 다시 분리됐다.[7] 현지인들은 광도면 일대를 주로 ‘죽림’이라고 부른다.[8] 당시 통영은 시내가 충무시, 읍면 지역은 통영군으로 나뉘어 있었다. 옛날 지도에서 '충무시'가 나오면 통영 시내라고 이해하면 된다.[9] 쉽게 말해 복합선거구인 지역.[10] 그 와중에 시내 인구는 5만 513명에서 7만 1,388명으로 늘어 시내 집중도는 37.5%에서 56%로 높아졌다. 통영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7만 1,388명, 광도면 3만 1,088명, 용남면 1만 2,668명, 산양읍 4,667명, 도산면 2,933명, 한산면 2,025명, 욕지면 2,018명, 사량면 1,506명으로 읍면 지역의 인구가 매우 적다.[11] 1922년 11월 22일생, 2004년 11월 29일 82세로 별세. 그 시절이면 유치원이 매우 드물었던 시절이며, 그는 1926~1928년 사이에 유치원에 다녀 일본어에 매우 능통했다.[12] 1920년 5월 13일생, 2004년 10월 31일 84세로 별세. 그 시절이면 유치원이 매우 드물었던 시절이며, 그는 1924~1926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13] 1906년 7월 14일생, 1967년 2월 13일 60세로 별세. 그 시절이면 유치원이 극히 드물었던 시절이고, 그는 1910~1912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정황상 2회 졸업생으로 추정된다.[14] 1926년 12월 2일생, 2008년 5월 5일 81세로 별세. 그 시절이면 유치원이 드물었던 시절이고, 그녀는 1930~1932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박경리라는 이름은 그녀가 성인이 된 이후 김동리가 지어준 필명이므로 유치원은 본명인 '박금이'라는 이름으로 다녔다.[15] 김민재는 1996년 11월 15일생 (27세)이므로 1999~2002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유치원 시기에 2002 한일 월드컵이 열렸으며 (1996년생들은 유치원생 때 파울루 벤투마우리시오 포체티노, 디에고 시메오네를 TV에서 봤다. 다만, 벤투는 한국에서, 포체티노는 일본에서 3경기만 뛰고 귀국했다. 참고로 이 대회에서 네덜란드, 호주, 콜롬비아, 모로코는 떨어졌다.), 같은 시기에 유치원을 다닌 사람으로 테니스 선수 정현과 축구선수 황인범이 있다.[16] 정씨 7,408명, 강씨 5,217명, 최씨 5,021명. 1~3위는 당연히 김, 이, 박.[17] 거창군은 경상남도에 있지만 4월에도 눈이 내린다. 심할 때는 어린이날, 어버이날에도 눈이 왔을 정도.[18] 거창군에는 대학이 있지만, 그나마 있다는 대학들인 한국승강기대학교경남도립거창대학에는 유아교육과는 없다. 거창에서 근무하는 유아교사는 대부분 대구에 있는 대학을 졸업하고 거창으로 발령받아 온 경우이고, 가끔씩 부산, 수도권 대학 출신이 오기도 한다.[19] 그 와중에 거창읍의 인구는 1960년대 3만 4,707명이었다가 2021년 4만 899명으로 늘어나, 읍내 집중도는 47.7%에서 66.1%로 도리어 높아졌다. 그만큼 거창읍을 뺀 나머지 지역은 매우 열악하다는 뜻인데, 거창군의 읍면별 인구는 거창읍 4만 899명, 가조면 3,732명, 남상면 2,341명, 마리면 1,987명, 위천면 1,965명, 웅양면 1,875명, 주상면 1,527명, 북상면 1,521명, 신원면 1,467명, 남하면 1,424명, 고제면 1,416명, 가북면 1,348명으로 거창읍에 인구의 66%가 몰려 있고, 거창군 2위인 가조면조차 거창읍 인구의 10분의 1 수준도 안 된다. 이런 점 때문에 거창군 주민들은 ‘거창군에서 거창읍을 빼면 시체’라는 말을 할 정도이고, 서브웨이, 맘스터치어지간한 프랜차이즈 음식점들은 모두 거창읍에 몰려 있다. 거창에 사는 사회복무요원들도 오토바이나 자전거, 자가용 출근은 거의 필수.[20] 여기서 말하는 신씨는 한자가 慎인 신씨이다. 거창 신씨는 전국 인구가 5만 1,865명인데 그 중 1,788명이 거창에 살고 있었다. 이는 해당 성씨가 거창 신씨 단본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인디가수 요조가 이 성씨다.[21] 한자가 章이다. 전국적으로 5,764명밖에 없는 극희귀 성씨이지만 거창에는 446명이 산다. 이는 해당 성씨가 거창 장씨 단본이기 때문이다. 거창에서 이 성씨는 30위이다. (張씨는 16위)[22] 흔히 신씨라고 하면 한자가 申인 신씨를 떠올리는데, 거창에는 그 신씨보다 愼이라는 한자를 쓰는 신씨 (거창 신씨)이다. 신씨 중 이름이 '-성', '-범', '용-' 중 하나라면 80%는 거창 신씨다. 거창에서 '삼갈 신'자를 쓰는 신씨는 6위, '펼 신'자를 쓰는 신씨는 18위, '매울 신'자를 쓰는 신씨는 54위이다.[23] 공군교육사령부가 이 곳에 있다. 그 영향으로 인구가 2만 1,848명까지 늘어 이 동네에도 사립유치원이 있다.[24] 옛 진주시의 인구는 1960년대의 10만 7,035명에서 27만 8,318명으로 늘었으나 옛 진양군 지역의 인구는 1960년대의 14만 7,124명에서 6만 9,778명으로 줄어들어 시내 집중도가 42.1%에서 79.6%로 높아졌다. 진주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27만 8,318명, 금산면 2만 1,074명, 문산읍 8,188명, 정촌면 8,046명, 집현면 4,727명, 내동면 4,132명, 명석면 4,025명, 대곡면 3,254명, 일반성면 2,635명, 수곡면 2,243명, 금곡면 2,238명, 진성면 1,915명, 미천면 1,631명, 이반성면 1,607명, 사봉면 1,523명, 지수면 1,481명, 대평면 1,059명으로 면 지역의 상태가 많이 열악한 편이다. 특히 이반성면은 경상남도 수목원이 있고 강호동이라는 유명인도 배출했지만 인구는 2,000명에도 못 미친다.[25] 그만큼 고성읍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매우 열악하다는 뜻이다. 고성군의 읍면별 인구는 고성읍 2만 4,493명, 거류면 4,328명, 회화면 3,605명, 동해면 3,088명, 하이면 2,760명, 하일면 1,848명, 마암면 1,764명, 삼산면 1,759명, 대가면 1,689명, 상리면 1,591명, 영오면 1,439명, 개천면 1,129명, 구만면 1,010명, 영현면 858명인데, 면 지역은 모두 인구가 5,000명 미만에 특히 영현면은 인구가 1,000명 미만이다. 반대급부로 고성읍의 비중은 높아졌는데 고성읍의 인구는 1960년대에 2만 5,254명이었다가 2021년 2만 4,493명으로 감소했지만 비중은 19.2%에서 47.7%로 높아졌다.[26] 주로 하일면, 하이면에 사는 경우.[27] 경상남도 고성군에는 대학이 없다. 고성에서 근무하는 유아교사들은 진주창원유아교육과가 있는 인근 지역의 대학을 졸업하고 고성으로 발령받아 근무하는 사람들이다.[28] 고성 이씨의 '고성'이 이 곳이다. 당시의 고성은 현재의 통영시까지 관할했다.[29] 이 때 교사로 근무한 사람 중에는 김원봉의 아내였던 박차정이 있다.[30] 양산 시내에 철도가 들어선 것은 21세기에 와서다.[31] 정확히는 동래군이 기장군 지역만 남은 상태에서 폐지되면서 양산군에 흡수된 것.[32] 가장 많이 늘어난 곳은 단연 물금읍이다. 이 동네는 2021년 인구가 12만 421명으로 이미 밀양시의 인구를 추월했다. 양산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물금읍 12맘 421명, 웅상지구 (舊 웅상읍) 9만 5,292명, 양산시내 (舊 양산읍) 7만 6,596명, 동면 3만 5,265명, 상북면 1만 2,918명, 하북면 8,371명, 원동면 3,366명으로 물금읍에 33.7%, 웅상지구에 26.7%, 시내에 22%가 거주한다. 또한 물금읍은 경상남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읍면동이다. (2위는 김해시 북부동) 웅상지구의 매곡동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사저가 있고, 하북면에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절인 불보종찰 통도사가 있다.[33] 그만큼 산청읍도 인구가 매우 적다. 산청군은 읍면별 인구가 산청읍 6,840명, 신안면 5,732명, 단성면 5,603명, 시천면 4,156명, 금서면 2,884명, 신등면 2,106명, 생초면 2,035명, 삼장면 1,836명, 차황면 1,413명, 생비량면 1,187명, 오부면 1,065명으로 산청읍조차 1만 명은커녕 7,000명도 넘지 못하고 있으며 비중도 19.4%로 낮은 편이다. 심지어 산청읍 (6,840명)은 청송읍 (5,347명) 다음으로 군청 소재지의 인구가 적다. 그런데도 이런 시골 동네에서 성철 스님(단성면 묵곡리), 박항서(생초면 어서리)라는 유명인이 배출됐다.[34] 산청군에는 대학이 없다.[35] 단계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삼장초등학교 병설유치원.[36] 러브풀 (본명 이동훈)은 1980년 9월 10일생이고 2007년 6월 27일간암으로 사망했는데, 유치원은 1984~1986년 사이에 다녔다. 정황상 공립유치원을 다녔거나 다른 도시로 넘어가서 사립유치원을 다녔을 가능성이 높다.[37] 1960년대 의령군의 인구는 경기도 용인군과 비슷한 수준에 경상남도 양산군보다 많았으나, 의령군의 인구가 계속 줄면서 현재의 의령군 인구가 1960년대 양산군 인구보다도 적다. 그만큼 의령읍도 인구가 매우 적다. 의령군의 읍면별 인구는 의령읍 9,543명, 부림면 2,844명, 지정면 1,854명, 가례면 1,701명, 용덕면 1,563명, 화정면 1,532명, 정곡면 1,431명, 칠곡면 1,199명, 유곡면 1,174명, 궁류면 1,156명, 대의면 1,041명, 봉수면 1,006명, 낙서면 756명으로 의령읍조차 인구 10,000명을 못 넘고, 면 지역은 3,000명을, 낙서면은 1,000명을 못 넘는다. 낙서면의 인구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가포동 (인구 677명)을 제외하면 경상남도의 읍면동 중 가장 적은데, 경상남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읍면동인 양산시 물금읍 (인구 11만 8,579명)의 153분의 1 수준이다.[38] 의령군에는 대학이 없다. 그나마 군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도 창원에 있다.[39] 회원동 주민센터로 올라가는 길 골목에서 왼쪽으로 가면 현재는 다른 유치원이지만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40] 전주시 1921년, 천안시 1921년, 포항시 1922년, 창원시 1926년, 청주시 1929년. 수도권에는 1960~70년대에 겨우 들어온 곳도 있다.[41] 김해군 폐지는 1995년.[42] 아예 고성군과 붙어 있다.[43]마산시는 1960년대 15만 4,600명에서 2021년 36만 7,005명으로, (마산합포구 17만 5,716명, 마산회원구 19만 1,289명), 옛 창원시는 1960년대 17만 5,266명에서 47만 6,978명으로 (의창구 26만 2,408명, 성산구 21만 4,570명), 옛 진해시는 8만 496명에서 19만 2,755명으로 늘었다. 각 지역의 비중은 옛 마산시가 37.6%→35.7% (마산합포구 17.1%, 마산회원구 18.6%), 옛 창원시가 42.7%→45.8% (의창구 24.5%, 성산구 21.2%), 옛 진해시가 19.6%→18.5%로 변해 전체적으로 옛 창원시 지역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읍면동별로도 (舊) 창원시 시내 40만 6,111명, (구) 마산시 시내 27만 7,915명, (구) 진해시 시내 19만 2,755명, 내서읍 6만 6,547명, 북면 4만 3,411명, 동읍 2만 51명, 진동면 1만 2,349명, 대산면 7,225명, 구산면 4,318명, 진전면 4,004명, 진북면 3,544명으로 삼진(三鎭) 지역이 매우 열악하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44] 마산고등학교마산여자고등학교, 성지여자중학교성지여자고등학교가 이 곳에 있고, 해당 학교 학생들이 자신이 졸업한 유치원을 방문하기 위해 구마산, 신마산으로 가기도 한다. 다만, 1970년대까지는 이런 경우가 드물었는데, 현재의 50대 이상은 유치원 취원율이 1%대에 불과하던 시절에 태어났기 때문. 실제 통계로 보면 1956년생이 유치원에 입학하는 1960년이 돼서야 취원율이 1%를 돌파했다.[45] 참고로 보람유치원을 교육청에 기부한 원장은 84세이다. 정황상 1935년생으로 추정된다.[46] 명씨 인구가 2만 9,110명인데 그 중 789명이 창원에 살고 있었다.[47] 갈씨는 전국에 2,086명만 있는 희성이지만 창원에 그나마 많다. 기초자치단체로 내려가면 87명의 창원이 1위이다.[48] 감씨 자체는 인구가 6,024명인 희귀 성씨이지만 창원에 그나마 많이 살아서 전국 감씨 중 1,228명이 창원에 살고 있었다.[49] 전국 공씨 인구는 9만 1,869명인데 그 중 3,239명이 창원에 살고 있었다.[50] 전국 구씨 인구가 19만 3,080명인데 그 중 7,315명이 창원에 살고 있었다. 사실 이것은 진주 등지에 살던 능성 구씨들이 창원으로 넘어온 것과 아예 창원을 본관으로 삼은 창원 구씨의 영향이 크다. 이름이 '-서', '-회', '자-', '본-', '-모'로 끝나면 거의 능성 구씨, '-근', '병-', '-효'로 끝나면 거의 창원 구씨다.[51] 전국 노씨 인구가 25만 6,229명인데 창원에 6,334명이 살고 있었다. 아마 김해 등지에 살던 노씨들이 창원으로 많이 넘어온 것으로 추측이 가능하다.[52] 전국 빈씨 인구가 5,593명인데 그 중 218명이 창원에 살고 있었기 때문. 사실 빈씨 자체도 수도권 (1,927명)보다 동남권 (1,961명)에 더 많이 살고 있다. 전국적으로는 수도권 집중, 그러나 빈씨는 동남권 집중[53] 서씨 자체는 수도권에 더 많이 살지만, 서씨 인구 1위는 창원이다. 수원은 16,245명, 창원은 17,830명으로 수원과 1만 명 이상 차이가 난다.[54] 설씨 인구 1위인 기초자치단체가 창원시이다.[55] 여기서 말하는 신씨는 한자가 辛이다. 신씨 자체는 수도권에 더 많이 살지만 (전체 인구 19만 2,877명, 수도권 거주자 8만 6,321명), 기초자치단체 단위로 가면 창원이 6,821명으로 1위이다.[56] 여씨 자체도 동남권에 몰려 살지만 그 중 창원에만 1,092명이 살고 있었다. 아마 의령 여씨가 여씨 중 대종이고, 그들이 대체로 경상남도에 살고 있기 때문.[57] 왕씨 자체는 수도권에 더 많이 살고 있지만 (전국 왕씨 인구 2만 5,565명, 수도권 거주 왕씨 1만 4,833명), 시군구 단위로 내려가면 창원에 685명의 왕씨가 살고 있다. 다만, 왕씨는 대종이 개성 왕씨이다.[58] 한자가 田이다. 田씨는 18만 6,469명만 있고, 그 성씨 자체가 수도권에 더 많이 살고 있지만 창원에는 7,165명이 살고 있다.[59] 제씨 전체 인구는 2만 95명인데 제씨 인구가 1,000명을 넘는 기초자치단체가 창원 하나뿐이다. 전국적으로 수도권에 인구가 많다고는 하지만, 제씨는 동남권에 더 많이 사는데 이는 제씨가 칠원 제씨 단본이기 때문이다.[60] 주씨 자체는 수도권에 더 많이 살지만 (전국 인구 19만 4,766명), 기초자치단체 단위로 내려가면 창원이 4,516명으로 1위, 수원은 4,318명으로 2위이다.[61] 전국 진씨 인구가 15만 7,599명인데 그 중 6,744명이 창원에 살고 있었다. 수도권에서 진씨가 가장 많이 산다는 수원조차도 창원보다 적다.[62] 차씨 자체는 수도권에 더 많이 살지만 (전국 차씨 인구 19만 4,782명 중 9만 6,646명이 수도권 거주 중), 시군구 단위로 가면 창원의 차씨 인구가 5,742명으로 1위이다.[63] 전국 천씨 인구가 12만 1,780명인데 그 중 3,388명이 창원에 살고 있었다. 수도권 1위인 수원조차도 천씨 인구는 창원보다 적다.[64] 전국 추씨 인구가 6만 483명인데 그 중 1,502명이 창원에 살고 있었다. 수도권 1위인 수원도 추씨 인구는 1,110명이다.[65] 전국 팽씨 인구가 2,935명인데 그 중 791명이 창원에 살고 있었다.[66] 전국 표씨 인구가 3만 743명인데 그 중 1,010명이 창원에 살고 있었다, 수도권에서 그나마 표씨들이 많이 산다는 수원도 표씨 인구는 842명이다. 다만, 표씨는 사실상 신창 표씨 하나뿐이다.[67] 전국 하씨 인구가 23만 481명인데 그 중 1만 40명이 창원에 살고 있었다. 참고로 하씨 인구 2위, 3위도 모두 경상남도인데 진주에는 7,294명, 김해에는 4,835명의 하씨가 살고 있었다. 이는 하씨의 대종이 진주 하씨이기 때문이다.[68] 전국 허씨 인구가 32만 6,770명인데 그 중 창원에 9,824명이 살고 있었다. 사실 이는 허씨의 본관 때문인데, 김해 허씨들이 경상남도에 많이 살아서 이런 인구 분포를 보이는 것.[69] 전국 황씨 인구가 69만 7,171명인데 그 중 1만 9,131명이 창원에 살고 있었다. 황씨 자체는 수도권에도 많이 살고 있지만, 창원 황씨의 영향으로 기초자치단체 중 황씨 인구 1위가 이 지역이다.[70] 서경석은 1972년 2월 15일(52세, 음력으로 1월 1일)이므로 유치원은 1976~1978년 사이에 다녔을 것이다. 1972년생들은 버스 등 대중교통에서 담배 피우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시절에 유치원을 다녔는데, 유치원에 입학하자마자 용인자연농원이 문을 열고 양정모 선수의 첫 금메달을 본 셈. 서경석이 진해 출신이 아닌데도 진해에서 유치원을 다녔던 것은 아버지의 직장 때문이라고 한다.[71] 김대범은 1979년 8월 19일생(44세)이므로 1983~1985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김대범이 유치원을 다닐 시절에는 양평, 가평은 물론 춘천에도 고속도로가 없는 것은 물론 롯데월드 어드벤처가 아직 착공 단계였으며, 중고등학생들이 교복을 입지 않았다고 한다. 비록 강원도 동해시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지만 유치원만큼은 고향인 경남 창원에서 다녔다고 한다.[72] 이 때 김해국제공항도 부산 관할로 바뀌었고, 김해교도소부산교도소로 개명했다.[73] 시내 지역의 인구는 1960년대의 3만 9,460명에서 28만 1,153명으로 늘었다가 27만 5,689명으로 줄었으나, 시내 집중도가 19.8%에서 51.6%로 높아졌다. 김해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27만 5,689명, 장유지구 16만 5,079명, 진영읍 5만 5,932명, 주촌면 1만 8,209명, 한림면 7,656명, 진례면 6,587명, 대동면 6,122명, 생림면 3,841명, 상동면 3,223명으로 시내에 52.3%, 장유지구 (롯데 워터파크가 있는 그 곳이다.)에 29.3%가 거주하고 있다. 이런 지리적 특성 덕에 사립유치원이 분산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경상남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읍면동 3곳 중 2곳 (북부동 8만783명, 내외동 7만 5,138명)이 김해에 있다. 나머지 하나는 양산시 물금읍.[74] 1993년 4월 27일생(31세)이므로 1996년~1999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을 것이다. 이들은 유치원 시절에 IMF 사태를 겪은 셈이다.[75] 가야읍 18,949명, 칠원읍 20,186명.[76] 그만큼 함안군이 창원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는 뜻이다. 함안군의 읍면별 인구는 칠원읍 1만 9,486명, 가야읍 1만 8,666명, 군북면 6,228명, 칠서면 5,404명, 대산면 3,478명, 법수면 2,888명, 산인면 2,771명, 함안면 2,401명, 칠북면 1,948명, 여항면 912명으로 제39보병사단 이전 버프를 받은 군북면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 면들은 대부분 인구가 5,000명 미만이고, 심지어 여항면은 1,000명 미만이다. 또한 함안면이 6.25 전쟁으로 시가지가 박살이 나면서 (이건 철원군도 마찬가지. 이 쪽도 철원읍이 박살나면서 군청을 갈말읍으로 옮겼다.) 가야읍이 성장하기 시작했으나, 2010년대를 기점으로 칠원읍의 인구가 가야읍을 역전했고, 인구의 28.8%가 가야읍, 30.7%가 칠원읍에 거주하고 있어 사립유치원 설립자들이 이 두 지역만을 고려하고 있을 정도이다. 반면 함안면에는 함안역이 있다.[77] 과거 함양군은 어린이날, 부처님오신날, 개천절, 한글날에도 눈이 왔었다고 한다.[78] 그만큼 함양군의 인프라가 열악하다는 뜻이다. 함양군의 읍면별 인구는 함양읍 1만 8,418명, 안의면 4,574명, 수동면 2,403명, 마천면 2,172명, 지곡면 2,044명, 서상면 1,836명, 유림면 1,656명, 휴천면 1,620명, 백전면 1,553명, 서하면 1,445명, 병곡면 1,359명으로 면 지역의 인구가 5,000명 미만이고, 심지어 1,000명대인 면도 6곳이나 된다. 반대급부로 함양읍의 비중은 높아졌는데, 비록 인구는 1960년대에 2만 6,760명이었던 것이 2021년에 1만 8,418명으로 줄었지만 비중은 21.8%에서 47.1%로 높아졌다.[79]삼천포시와 구 사천군의 사이가 나빠 이 곳으로 시청이 정해졌고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때는 삼천포 출신의 이방호가 사천군 출신의 강기갑에 패배했을 정도. 이 동네에 밀양 박씨 은산군파의 집성촌이 있다.[80] 시내 (옛 삼천포시) 인구는 1960년대 5만 3,144명이던 시내 인구가 2021년 4만 5,559명으로 줄었으나 그 비중은 35.8%에서 41.5%로 높아졌다. 같은 시기 사천읍의 인구는 1만 7,322명에서 1만 8,003명으로 늘어 그 비중도 11.7%에서 17%로 높아졌다. 사천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舊 삼천포시) 4만 5,559명, 사천읍 1만 8,003명, 사남면 1만 5,549명, 정동면 1만 2,968명, 용현면 7,584명, 서포면 3,545명, 곤양면 3,443명, 곤명면 2,839명, 축동면 1,615명으로 사천시 인구의 89.4%가 시 동부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이런 상태이니 사립유치원 설립자들도 동부 지역만을 고려 대상으로 삼고 있다.[81] 조선 시대에 곤양현이었던 지역.[82] 하동군에는 사립유치원이 없다.[83] 합천군에서 인구 1만 명을 넘는 읍면이 합천읍 하나밖에 없을 정도. 합천군 읍면별 인구는 합천읍 1만 1,339명, 가야면 4,272명, 삼가면 3,280명, 초계면 2,480명, 야로면 2,428명, 율곡면 2,250명, 용주면 2,220명, 대병면 2,064명, 대양면 1,844명, 가회면 1,787명, 쌍백면 1,771명, 청덕면 1,655명, 묘산면 1,593명, 봉산면 1,444명, 적중면 1,429명, 쌍책면 1,282명, 덕곡면 866명으로 합천읍을 뺀 나머지 면들은 인구가 5,000명 미만이고, 심지어 덕곡면은 1,000명 미만이다. 게다가 가야면은 해인사라는 유명한 절까지 있는데도 (삼보종찰 중 법보종찰이 이 곳 해인사이다. 불보종찰은 통도사, 승보종찰은 송광사.), 율곡면은 전두환 前 대통령이라는 유명인을 배출했음에도 인구가 매우 적고, 합천읍의 비중도 25.8%에 불과하다. 소아과도 없어서 소아과 진료를 위해 대구로 가야 하고, 심지어 합천시외버스터미널은 주말만 되면 문화 생활을 위해 대구로 가려는 사람들로 붐빈다고 한다. 여기 사는 사회복무요원들도 자가용이나 오토바이 출퇴근은 거의 필수일 정도. 게다가 제헌국회 시기에는 합천군 갑, 합천군 을 이렇게 2명의 국회의원을 뽑았으나, 현재는 거창군, 산청군, 함양군과 한 선거구를 구성한다.[84] 그만큼 하동읍을 제외한 나머지 면들을 상황이 열악한 셈이다. 하동군의 읍면별 인구는 하동읍 1만 21명, 진교면 6,041명, 옥종면 4,344명, 금남면 3,527명, 악양면 3,494명, 금성면 3,120명, 화개면 3,058명, 고전면 2,293명, 적량면 1,945명, 횡천면 1,904명, 양보면 1,764명, 북천면 1,847명, 청암면 1,527명으로 인구 5,000명 이상인 읍면이 2곳뿐이다. 심지어 청학동마을로 유명한 청암면은 아예 인구 수 꼴찌다. 반대급부로 하동읍의 비중은 높아졌는데 1960년대 2만 1,199명이었던 인구가 2020년 1만 239명으로 줄었으나 비중은 14.9%에서 22.1%로 높아졌다.[85] 하동군에는 대학이 없다.[86] 에버랜드 판다월드에 사는 판다 러바오, 아이바오, 푸바오, 루이바오, 후이바오가 이 곳에서 나는 대나무를 주식으로 먹는다. 정작 하동군에서 에버랜드는 매우 멀어서 하동군 관내의 유치원생들은 그 곳으로 소풍을 가지 않는데 유치원에서는 소풍을 먼 곳으로 잘 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경기도 포천시, 연천군, 가평군, 양평군, 남양주시 등에서 서울로 소풍을 가는 경우는 있지만.) 하동군에서 에버랜드는 관내 학교들이 수학여행으로나 가는 수준이다.[87] 하동 정씨 중 잘 알려진 인물로 정주영이 있다.[88] 안동시는 김이권, 강릉시•평창군•정선군은 김이최, 성주군은 이김박, 목포시•무안군•신안군•진도군은 김박이, 제주도는 김이고 순서이다.[89] 문재인 대통령이 태어난 곳이다.[90] 김영삼 前 대통령이 태어난 곳이다.[91] 시내인 옛 장승포시 지역의 인구는 1960년대 1만 6,636명에서 2019년 7만 7,065명으로 늘었고 그 비중도 14.1%에서 31.7% (옛 신현읍 지역 포함 시 동 지역 인구는 19만 3,942명, 해당 지역의 비중은 78.2%가 된다.)로 높아졌다. 거제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고현지구 11만 4,828명, 시내 7만 7,065명, 사등면 1만 3,302명, 연초면 8,298명, 일운면 7,961명, 거제면 7,293명, 하청면 4,728명, 장목면 4,571명, 동부면 3,131명, 둔덕면 2,972명, 남부면 1,605명으로 면 지역의 상태가 열악한 곳이 많다는 뜻이다. 일운면에는 대명 리조트가 있고, 장목면은 김영삼 前 대통령의 고향, 거제면은 문재인 대통령의 고향인데도 인구가 1만 명을 못 넘고 있으며, 남부면은 아예 인구 수 꼴찌다.[92] 전국 옥씨 인구가 2만 5,107명인데 그 중 경상남도에 6,962명, 특히 거제에 2,862명, 창원에 1,659명이 살고 있었다. 모든 성씨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는 반례를 아주 잘 든 성씨인데, 이는 옥씨가 의령 옥씨 단본이기 때문.[93] 전국 반씨 인구가 2만 8,062명인데 그 중 청주에 1,457명, 거제에 1,094명이 살고 있었다. 창원은 640명, 음성은 622명이었고 수도권에서 그나마 반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많이 산다는 수원조차도 인구가 555명에 불과하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반씨의 본관이 거제이고(거제 반씨), 음성에 살던 반씨들이 청주에 많이 정착했기 때문.[94] 이는 대구, 청도, 밀양, 창원 등도 마찬가지. 이 때문에 대구에서 유치원을 다녔던 유튜버 정대철도 부곡하와이로 소풍을 간 것이다.[95] 그만큼 창녕읍과 남지읍을 뺀 나머지 면들을 상황이 열악하다는 뜻이다. 창녕군의 읍면별 인구는 창녕읍 1만 6,994명, 남지읍 1만 2,263명, 영산면 5,546명, 대합면 3,878명, 부곡면 3,579명, 도천면 2,768명, 대지면 2,569명, 이방면 2,540명, 계성면 2,363명, 고암면 2,034명, 장마면 1,863명, 유어면 1,781명, 성산면 1,588명, 길곡면 1,535명으로 인구 5,000명 이상인 지역이 3곳밖에 없다. 그래도 읍 지역의 비중은 높은데, 창녕읍은 2만 2,865명에서 1만 6,994명으로, 남지읍은 2만 1,373명에서 1만 2,263명으로 줄었으나 비중은 창녕읍이 14.6%→27.6%, 남지읍이 13.6%→19.9%로 높아졌다.[96] 남해군에서 인구가 1만 명을 넘는 읍면이 남해읍 하나일 정도. 남해군의 읍면별 인구는 남해읍 1만 3,222명, 창선면 5,567명, 삼동면 3,902명, 이동면 3,733명, 고현면 3,543명, 남면 3,534명, 설천면 2,876명, 서면 2,624명, 미조면 2,348명, 상주면 1,609명으로 남해읍과 창선면을 제외한 나머지 면들은 상태가 매우 열악하다. 심지어 남해읍의 비중도 30.7%밖에 안 된다. 1960년대에는 삼동면(23,128명), 창선면(20,548명)이 인구 2만 명을 넘을 정도로 잘 나갔으나 삼동읍, 창선읍이 되지 못하고 몰락하면서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면내 유일한 유치원으로 남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군내 버스의 배차간격이 엄청나게 길고, 이 곳에 사는 사회복무요원들도 자가용이나 오토바이를 이용한 출퇴근은 거의 필수로 인식될 정도이다.[97] 경남도립남해대학이 남해읍 북변리에 있기는 하지만 유아교육과는 없어서 남해군이 고향인 사람들은 유치원 교사가 되려면 고향을 떠나야 한다. 남해군에서 근무하는 유치원 교사들은 대체로 수도권이나 진주, 부산으로 떠나서 교육을 받은 뒤 교사로 발령받아 남해군으로 돌아오는 듯.[98] 윤성빈은 1994년 5월 23일생(29세)이므로 1997~2000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윤성빈은 이동면 난음리에서 태어났고 남해군에 사립유치원이 없는 정황상 남해이동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을 다녔을 것이다. 1994년생들은 IMF 사태Y2K 문제를 유치원 시절에 겪은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