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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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Person of the Year
1927년부터 1998년까지는 남자는 'Man of the Year' 여자는 'Woman of the Year'라고 표기했다. 자세한 것은 후술.
올해의 인물을 선정하는 것은 타임지 뿐만 아니라 유명 언론사, 과학계, 문화계등 다양한 곳에서 선정한다. 그 중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것이 타임지가 12월호에 기재하는 올해의 인물이다.
2. 상세[편집]
미국의 타임지가 그 해 세계에 영향력을 가장 많이 끼친 인물 혹은 단체를 선정하여 공개하는 연례 이벤트(?)이다. 여기서 '영향력'에는 긍정적인 영향력 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영향력도 포함된다. 대표적인 예로 1938년에 선정된 아돌프 히틀러가 있다. 이 원칙은 올해의 인물로 2007년 블라디미르 푸틴과 2009년 벤 버냉키를 뽑으면서 언급했던 구절에서도 잘 드러난다. 다만 버냉키는 당시 세계금융위기를 진압하기 위한 소방수로써 미국은 물론 세계경제에 영향력을 연준 위원장으로써 끼친부분이 있기에 선정된 것이다.
올해의 인물은 선정된 사람의 행동을 공인해준다는 의미가 아니고, 다만 그 해 가장 뉴스 가치가 있는 인물을 뽑는 것.
-2007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선정하면서
올해의 인물은 영예가 아니다. 선이든 악이든 지난 한 해 동안 뉴스에서 가장 영향력 있었던 인물을 뽑는 것.
-2009년 벤 버냉키 의장을 선정하면서
특정한 단일 인물만 뽑히는 게 아니라 특정, 불특정 단체나 집단이 선정되기도 한다. 그 해 마땅히 선정될 만한 인물이 없을 경우 타임지 자체의 종합평가를 벌여서 선정하게 된다. 1959년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선정이 대표적. 때문에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었다고 해서 항상 대단한 화젯거리가 꼭 있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드물게는 사람이 아닌 물건이나 추상적인 대상이 선정되기도 한다. 1982년에 올해의 '기계'로 컴퓨터가 선정된 것이나 1988년 올해의 '행성'으로 뽑힌 '위기에 빠진 지구'가 선정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온라인 투표가 시작된 2008년 이후로는 온라인 투표에서의 득표도 선정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2012년의 올해의 인물 선정에는 온라인 투표 결과는 제외시켰다. 이유는 항목중 "이모저모" 항목을 참조.
3. 편향성?[편집]
아무래도 '미국'의 시사주간지다 보니 미국과 관련된 인물들이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확실히 미국에 영향을 많이 끼치면 타임지 입장에서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긴 하지만... 특히나 역대 미국 대통령은 첫 선정연도인 1927년도에 집권하고있던 허버트 후버 대통령과 제럴드 포드 대통령 2명을 제외하곤 전부 올해의 인물에 한 번씩 선정되기도 했다.[2]
우선 2013년 기준으로 전체 86번의 올해의 인물 중에 49번이 미국인들이 선정됐으며[3] 이들 중에서도 절반이 넘는 26명이 미국 "정치인", 그리고 단일인물이 2번 이상 선정된 것을 제외하면 13명의 미국 대통령이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었다. 기계나 물건 등이 자주 등장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냥 올해의 미국인으로 보는게 맞다.
두 번째로 선정인물이 많은 곳은 소련 시절을 포함한 러시아 정치인들로 총 7번 선정됐는데[4] 이 또한 당대 냉전시대 가장 큰 적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임지가 본질적으로 '세계' 주간지가 아닌, '미국'의 주간지라는 걸 유의해야 한다.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이 워낙 세계에 끼치는 영향력이 막강하다보니 잡지도 주목을 받게 된 것인데,[5] 결국은 타임지도 그냥 미국에서 발간되는 다양한 잡지들 중 하나다. 이에 대해 편향적이니 아니니 얘기하는 것은 오히려 타임의 위상을 지나치게 높여주는 것에 불과하다. 이 점을 생각하면, 미국 주류 시사지의 기준으로 그 해 영향력을 평가하기 때문에 미국인이 아닌 올해의 인물 선정은 그 해에 미국에서도 큰 이슈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2022년까지 아시아인이 선정된 적은 총 8번, 아프리카인이 선정된 적은 단 2번이다.
4. 역사[편집]
- 1927년 타임지에서 한가한 주에 뉴스거리가 될 만한 이야기를 선정하려고 했다. 그런데 편집국에서 당시의 기념비적 대사건이었던 찰스 린드버그의 대서양 횡단 비행을 커버스토리로 싣지 않는다는 중대한 오결을 내버렸는데, 이러한 실수를 무마하기 위해서 연말에 린드버그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던 것이 그 시초이다.#
- 1998년까지는 'Man of the year'이었으나 이후 여성 및 단체들에 대한 선정도 확대되어야 한다고 판단[6] 하여 1999년부터는 'Person of the year'로 바뀌게 되었다.
5. 역대 명단[편집]
6. 기타[10][편집]
6.1. 지난 세기의 인물[편집]
1999년 송년호에서 선정한 세기의 인물. 1998년 워싱턴 D.C. 케네디 센터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지난 세기의 인물로 한명만 뽑는다면 누가 합당한가?"라는 토론이 열리게 되었고 그에 대해 타임지 나름대로의 답이라고 볼수 있다. 그 결과, 프랭클린 D. 루스벨트와 마하트마 간디를 제치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박사가 세기의 인물로 선정되었다. 이는 곧 20세기는 "과학의 시대"였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 정립한 상대성 이론이 텔레비전과 같은 가전제품에서부터 우주여행, 핵폭탄, 반도체까지 20세기 모든 과학기술의 바탕이 되었기에 최고의 인물로 선정.
또한 이 기사에서는 여기에 더하여 각 세기의 인물들도 선정하였다.
결과를 보면 알겠지만 16세기 이후 영미권 중심적이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16세기 이후의 세계 질서는 점차 영미권 중심으로 기울어가서 영미권의 역사가 세계의 역사를 주도했고 지금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15세기 이전의 인물들도 모두 유럽과 관련이 깊으며, 아시아인은 살라흐 앗 딘과 칭기스 칸 둘밖에 없다. 물론 이들도 유럽 세력과 전쟁을 통해 상호작용한 인물들이다.
- 11세기: 정복왕 윌리엄 (1027∼1087)
이 노르만인은 그의 것이라고 믿었던 잉글랜드를 점령하고 혼란의 도가니였던 유럽 속에서 국가 관료주의를 개척해 냈습니다.
The Norman took what he believed was his ―England― and pioneered state bureaucracy amid Europe's chaos.
기사 원문
- 12세기: 살라흐 앗 딘 (1138∼1193)
쿠르드족 승부사는 십자군들에게 신이 이교도들을 편애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증명했습니다.
The Kurdish adventurer proved to the Crusaders that God had no trouble favoring an infidel.
기사 원문
The Kurdish adventurer proved to the Crusaders that God had no trouble favoring an infidel.
기사 원문
- 13세기: 칭기즈 칸 (1167∼1227)
세계 정복자는 아시아를 휩쓴 대재앙이었으며, 검보다 더 강한 힘을 발휘했습니다.
The world conqueror swept through Asia like an apocalypse and set in motion forces more powerful than the s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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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rld conqueror swept through Asia like an apocalypse and set in motion forces more powerful than the s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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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세기: 조토 디 본도네 (1267∼1337)
그의 붓으로 이콘의 엄격함은 따뜻한 인간미로 녹아들었고, 신을 닮았던 얼굴은 사람의 얼굴이 되었습니다.
With his brush, the severity of religious icons melted into warm humanity, and the face of the Godlike became the face of man.
기사 원문
With his brush, the severity of religious icons melted into warm humanity, and the face of the Godlike became the face of man.
기사 원문
- 15세기: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1395∼1468)
무명의 인쇄업자가 촉발한 혁신은 개혁과 아직 끝나지 않은 정보 혁명에 불을 지폈습니다.
The obscure printer's innovation kindled reformations and a yet unfinished information revolution.
기사 원문
The obscure printer's innovation kindled reformations and a yet unfinished information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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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세기: 엘리자베스 1세 (1533∼1603)
종교개혁의 여신은 유럽의 강대국을 물리치고, 영국을 제국으로 향하는 서사의 여정을 써내려갔습니다.
The goddess of the Reformation defeated Europe's greatest power and set Britain on its epic journey to empire.
기사 원문
The goddess of the Reformation defeated Europe's greatest power and set Britain on its epic journey to empire.
기사 원문
- 17세기: 아이작 뉴턴 (1642∼1727)
우주에서 위대한 설계를 찾는 그의 과학적 탐구는 고대의 가설들을 뒤엎었습니다.
His scientific search for a grand design in the universe overturned ancient assumptions.
기사 원문
His scientific search for a grand design in the universe overturned ancient assump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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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세기: 토머스 제퍼슨 (1743∼1826)
미국 정신에 대한 정치적 선지자(先知者)의 표현은 지금까지도 세계에 혁명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A political visionary's expression of the American mind still inspires revolution around the world.
기사 원문
A political visionary's expression of the American mind still inspires revolution around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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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토머스 에디슨 (1847∼1931)
그의 발명품들은 현대적인 것에 대한 의미를 재구성했을 뿐만 아니라 창조성만이 보여줄수 있는 미래를 약속했습니다.
His inventions not only reshaped modernity but also promised a future bounded only by creativity.
기사 원문
His inventions not only reshaped modernity but also promised a future bounded only by creativ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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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1879∼1955)
그는 과학이 지배했던 지난 세기에서 가장 뛰어난 과학자였습니다. (폭탄, 빅뱅 이론, 양자물리학, 그리고 전자공학 등) 모든 과학적 영역의 기준엔 그의 흔적이 닿아있습니다.
He was the pre-eminent scientist in a century dominated by science. The touchstones of the era ―the Bomb, the Big Bang, quantum physics and electronics― all bear his imprint.
기사 원문
He was the pre-eminent scientist in a century dominated by science. The touchstones of the era ―the Bomb, the Big Bang, quantum physics and electronics― all bear his impr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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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지난 1천년의 인물[편집]
인쇄술의 아버지인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지난 1천년의 인물로 선정되었다. 물론 금속활자 인쇄술 자체는 구텐베르크가 발명하기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인쇄술이 사회를 바꿀 수 있을 정도로 본격적으로 보편화된 데에는 구텐베르크의 역할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고려에서 구텐베르크보다 앞서서 금속활자 인쇄술이 있긴 했지만, 글자 종류가 수없이 많은 한자라는 문제가 있었고 아시아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칠 정도는 아니었다.[11]
특히나 근 1천년간 수많은 분야에서 수많은 위인들을 제치고 인쇄술의 아버지 구텐베르크가 당선된 것은 타임지 역시 간행매체로 출발했고, 사실상 이 모든 '올해의 인물'들이 타임지라는 언론의 이름 아래에 선정되고 공개될 수 있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쉽게 말하면 구텐베르크의 업적 덕에 인쇄술도 언론매체도 발달하고 현재의 타임지 역시 존재할 수 있었다는 것.
7. 이모저모[편집]
- 2016년까지 총 88번의 선정이 있었고 그중 50명이 미국인이다.
- 역대 항목중 최연소 선정자는 2019년 선정된 그레타 툰베리로 만 16세에 선정되었다. 두 번째로 어린 선정자는 1927년 최초 선정자인 찰스 린드버그. 그의 나이 만 25세였다.
- 역대 최고령 선정자는 1985년에 만 81세의 나이로 선정된 덩샤오핑, 두 번째로는 만 79세에 선정된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이다.
- 단일 인물 최다 선정자는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으로로 1932, 1934, 1941년 선정되었다.
- 리처드 닉슨은 현재까지 유일한 2연속(1971년, 1972년) 선정자다.
- 조지 H. W. 부시(1990년)와 조지 W. 부시(2000년, 2004년)는 부자(父子)지간이 선정된 유일한 사례다.
- 자말 카슈끄지 기자는 발표 당시 사망한 인물로서는 최초로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었다.
- 온라인 투표 실시 이후로 4chan의 조작에 의해 moot이 온라인 투표 1등을 하기도 하였다. 그냥 해프닝으로 넘어갈 줄 알았는데, 2012년 투표에서는 4chan이 김정은을 밀어주기로 하였다!! 당시 온라인 투표에서 압도적인 득표율을 얻었으며, 4chan에서는 그에 그치지 않고 이니셜을 순서대로 세워서 KJUGASCHAMBER(김정은 가스실)를 완성했다![12] 덕분에 사실 유력한 후보와는 거리가 멀었던 사람들이 순서대로 줄을 서고 4위를 랭크하던 싸이는 10위밖으로 쫓겨났다. 결국 타임지는 1위로 마감했던 김정은의 탈락에 대해서 "심사위원단이 온라인 투표를 가지고 올해의 인물을 선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 타임지가 올해의 인물을 선정하기 시작한 이후 미국 대통령은 보통 당선된 해나, 이 땐 넘어가도 임기 중 한 번 이상은 무조건 선정이 되었는데, 승계 대통령이며 심지어 러닝메이트로 선출되지도 않은 제럴드 포드만 유일하게 올해의 인물로 선정이 되지 않았다.
8. 관련항목[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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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외에도 가끔 고르바초프처럼 년대 인물도 뽑는다.[2] 주로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의 당선자가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는 경우가 많다.[3] 횟수로만 49번이고 포함된 인원은 공동수상한 헨리 키신저와 케네스 스타, 미국인 과학자 15명, 아폴로 우주선 탑승자 3명, 미군 수천 명(!) 등등으로 훨씬 많다.[4] 이오시프 스탈린이 2번 받았다. 스탈린은 조지아 출신이지만 스스로 러시아인을 자부했고, 무엇보다도 그가 러시아 정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에 러시아에 포함되었다.[5] 이 점은 미국의 유력 신문인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가 세계를 대표하는 신문으로 취급받는 것과 비슷하다.[6] 남성만 선정되었다는 소리가 아니다. Man이라는 단어는 원래 남녀 가리지 않고 사람을 지칭할 때도 쓸 수 있는 단어이며, 1936년에 이미 최초 여성 선정자가 나왔다. 다만 다르게 쓸 수 있다곤 해도 기본적으론 'Man'이라는 단어가 남성의 의미가 강하다보니 가치중립적인 표현인 Person으로 변경했다.[7] 폴란드 연대노조 위원장.[8] 루카니코스는 시위 후유증 겸 화학물질 흡인으로 인한 장기손상으로 인해 2014년에 사망하였다.[9] 2010-2011 아랍권 민주화 운동,2011년 러시아 총선 사태, 월가 점령 시위 [10] 이외에도 가끔 고르바초프처럼 년대 인물도 뽑는다.[11] 그렇다고 해서 직지심체요절의 가치를 폄하할 이유는 없다. 실제로 최초라는 타이틀 자체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며, 엄연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된 상당히 가치있는 유산으로 인정받는다.[12] 북한의 회령 정치범수용소를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