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삼존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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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국보 제73호
금동삼존불감
金銅三尊佛龕


소재지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로 102-11 (성북동, 간송미술관)
분류
유물 / 불교공예 / 장엄구
수량/면적
1좌
지정연도
1962년 12월 20일
제작시기
고려시대


파일:금동삼존불감.jpg

간송미술관에서 보관 중인 금동삼존불감

1. 개요
2. 상세
3. 외부링크
4. 국보 제73호




1. 개요[편집]


금동삼존불감(金銅三尊佛龕)은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려시대의 금동삼존불과 불감(佛龕)[1]이다. 1962년 대한민국 국보로 지정되었다. 고려시대 또는 그 이전의 목조건축 양식과 조각 수법을 보여 주는 귀중한 예이다.

2. 상세[편집]


불감의 형식은 난간을 돌린 기단 위에 따로 불당의 모형을 만들어 얹은 것이다. 불당의 네 귀퉁이에 배흘림기둥을 세우고 정면과 양측 면을 개방하여 안이 잘 보이도록 하였다. 기둥 위에는 2단의 공포(栱包)가 있고, 기둥 사이에도 공간포(空間包)가 하나 놓여 있다. 지붕은 우진각 형식으로 기왓골이 표현되었다. 용마루 양쪽에는 치미(鴟尾)[2]가 있고, 네 귀마루에도 봉두(棒頭) 같은 장식이 있다.

불감 내의 삼존불은 본존불좌상을 두 협시보살입상이 시립(侍立)한 것으로, 표현 수법은 서로 같다. 본존은 높은 네모반듯한 대좌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하였는데, 대좌 밑에는 따로 연꽃잎을 끼워 놓았다. 머리는 나발(螺髮)로 얼굴을 약간 숙였다. 이목구비의 표현 수법은 치졸하다. 두꺼운 통견(通肩)의 법의는 옷주름이 형식적으로 묘사되었다. 손 모양은 오른손이 시무외인(施無畏印)을 취하고 왼손은 무릎 위에 대고 있다. 광배는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으로 되었으며, 투각(透刻)의 불꽃무늬로 가장자리를 장식하고 있다.

좌우 보살상은 형식이나 표현 수법이 같다. 머리에 삼면보관(三面寶冠)을 썼으며 구슬장식이 선각으로 표시되었다. 그 양쪽에서 늘어진 머리카락은 어깨를 덮고 있다. 천의(天衣)와 상의(裳衣)는 두꺼우며 옷주름이 투박하고 형식적으로 묘사되었다. 본존 쪽으로 향한 손은 두 보살 모두 시무외인을 취하고, 다른 손은 아래로 내려뜨리고 있다. 발은 매우 작으며 연화대좌(蓮花臺座) 위에 서 있다. 광배는 본존과 같은 형식이다.

불감 자체에는 아직도 도금색이 찬란하며, 지붕에는 녹청계의 색채가 남아 있는 등 전체적인 보존 상태는 매우 양호하다. 이 불감이 보여 주는 불당의 형식은 매우 고식(古式)으로, 지붕 부분은 신라 말엽 또는 고려 초기의 건축 양식을 보여 준다. 건축 기단부의 단순하고 고졸한 형태, 단칸의 주심포(柱心包)집 모양이면서 공간포 하나씩을 배열한 다포계(多包系) 구조, 배흘림기둥이 있는 우진각 지붕, 용마루 양끝에 있는 중국 오대(五代)·북송풍(北宋風)의 치미 그리고 네 귀마루의 봉두형 장식 등이 고식을 보여 준다.

불감에 비하여 삼존불의 조각 수법은 매우 치졸하고 서툰 편이다. 본존불의 허리가 길고 하체는 짧으며, 옷주름이 불규칙한 점이라든지, 보살상의 특이한 보관과 목걸이의 형식 등은 중국 북송과 요대(遼代) 불상 양식의 영향을 받았음을 시사하고 있다. 불감과 불상의 양식 등으로 미루어 볼 때 대체로 고려 중-후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3]

3. 외부링크[편집]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2_0&VdkVgwKey=11,00730000,11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7700

4. 국보 제73호[편집]


* 문화재청 홈페이지: 금동삼존불(金銅三尊佛龕)

불상을 모시기 위해 나무나 돌, 쇠 등을 깎아 일반적인 건축물보다 작은 규모로 만든 것을 불감(佛龕)이라고 한다. 불감은 그 안에 모신 불상의 양식뿐만 아니라, 당시의 건축 양식을 함께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작품은 높이 18㎝의 작은 불감으로, 청동으로 불감과 불상을 만들고 그 위에 금칠을 하였다. 불감 내부를 살펴보면 난간을 두른 사각형의 기단 위에 본존불과 양 옆에 보살상이 있으며, 그 위에 기둥과 지붕으로 된 뚜껑이 덮혀 있다. 법당 모양의 뚜껑에는 앞면과 양쪽에 커다란 창문이 있어서 안에 모셔진 불상을 잘 볼 수 있도록 하였다.

본존불은 얼굴이 추상적이고,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주름을 간략한 선으로 표현했다. 몸 뒤편에 있는 광배(光背)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로 나누어져 있으며, 불꽃무늬로 가장자리를 장식하고 있다. 본존불 양 옆의 보살상도 구슬로 장식된 관(冠)을 쓰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형식이나 표현 수법이 본존불과 유사하다.

불감은 지금도 금색이 찬란하고 지붕에 녹청색이 남아 있는 등 전체적인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본존불의 긴 허리, 불규칙하게 나타나는 옷주름, 그리고 보살이 쓰고 있는 구슬로 장식한 관(冠) 등 여러 양식으로 보아 만든 시기는 중국 북방 계통의 영향을 받은 11∼12세기 경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은 고려시대 또는 그 이전의 목조건축 양식과 조각수법을 보여주는 귀중한 예라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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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감이란 불상을 모시기 위해 나무나 돌, 쇠 등을 깎아 일반적인 건축물보다 작은 규모로 만든 것으로, 그 안에 모신 불상의 양식뿐만 아니라, 당시의 건축 양식을 함께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다.[2] 대마루 양끝에 세운 매 머리 모양의 장식[3]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금동삼존불감(金銅三尊佛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