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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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영국의 록 밴드 퀸의 기타리스트이자 천체물리학자. 리버풀 존 무어스 대학교 총장 역임.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2] 에 진학하여 천체물리학자[3] 를 꿈꾸던 그는 퀸의 전신인 스마일에 합류한 시점에서 이미 박사 과정을 밟던 중이었다. 그러나 밴드가 성공 가도를 달리게 되면서 학업을 잠시 중단하고 밴드활동에 전념하게 된다.[4]
밴드의 보컬리스트인 프레디 머큐리가 불세출의 보컬 능력과 무대 장악력을 지녔기에 가려지긴 했지만, 그의 기타 연주 실력은 세계에서도 손꼽힐 정도이다. 2005년 영국의 라디오 방송국인 '플래닛 락'이 실시한 투표에서 역대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Greatest Guitarist of All Time) 7위에 올랐고, 롤링 스톤 선정 100대 기타리스트(100 Greatest Guitarist of All Time) 중에서는 26위에 올랐다.
트레이드 마크는 젊은 시절 때부터 유지하고 있는 장발의 곱슬머리와, 그만의 전용 시그니처 기타라 할 만한 레드 스페셜이다.[5] 키가 크고 매우 말랐다. 평상시에 통이 큰 옷을 입는 것도 이를 감추기 위한 것이다.[6]
2. 음악성[편집]
2.1. 음악적 특징[편집]
브라이언 메이가 활동하던 시절에는 지미 페이지, 에릭 클랩튼, 제프 벡, 에디 밴 헤일런, 조지 해리슨, 데이비드 길모어 등 괴물같은 기타리스트들과, 키스 리처즈, 피트 타운젠드같은 역사상 족적이 큰 리듬 기타리스트들이 활동했었다. 또한 같은 밴드의 보컬리스트가 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보컬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인물이기에, 상술한 요인들 때문에 브라이언 메이는 상대적으로 저평가되는 면이 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본다면 하드 록 역사에서 상당히 큰 족적을 남긴 기타리스트인 동시에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중 한 명이다. 롤링 스톤 선정 위대한 기타리스트 26위에도 랭크 되었는데, 롤링 스톤과 퀸의 사이가 매우 나쁨에도 불구하고 제법 높은 30위권 안에 들었다는것부터 그의 높은 기타 실력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어린 시절, 기타를 살 돈이 마땅치 않아서 전자기사인 아버지와 함께 제작한 수제 기타 "레드 스페셜"을 가지고 있으며, 50년이 지난 지금도 녹음과 연주할 시에 메인 악기로 사용하고 있다.[7] 때문에 그의 기타 톤은 완전한 브라이언 메이의 수제이며, 평범한 기성 기타로는 그 독특한 톤을 카피하기 어렵다.[8][9] 연주할 때는 피크 대신 6펜스 동전[10] 을 사용하는데, 동전이 딱딱하기 때문에 컨트롤하며 연주하기가 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11] 브라이언 메이의 테크니션인 피트 맬런드론(Pete Malandrone)의 말에 인터뷰를 보면 동전으로 연주를 하기 때문에 브라이언 메이의 기타에는 늘 금속 가루가 묻어있고, 픽업은 깎여나간 것들이 많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자주 관리를 해줘야한다고 한다. 영상을 보면 동전으로 피킹한 것 때문에 기타 넥의 제일 하단 부분 역시 깎여 나갔고, 픽업 또한 눌리거나 휜 부분이 보인다.
퀸의 대표곡 가운데 "'39", "We Will Rock You", "I Want It All", "The Show Must Go On", "Too Much Love Will Kill You" 등 퀸의 하드락 넘버 상당수를 작곡했을 뿐만 아니라 발라드 등 여러 장르에도 일가견이 있다. 사실상 퀸의 마지막 정규 앨범인 Made in Heaven에서 그가 작곡한 "Too Much Love Will Kill You"는 1세대 SM3 CF에 삽입되어 다시 한 번 곡을 알렸다.
속주가 특기는 아니다.[12] 하지만 그의 연주는 상당히 치밀한 두뇌 플레이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것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라이브에서 그의 솔로파트다. 3집 "Sheer Heart Attack"의 첫 번째 트랙 "Brighton Rock"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자신이 연주한 멜로디가 몇 초 뒤 스피커에서 다시 나오는 딜레이 이펙터라는 장치를 가지고, 자신의 멜로디와 화음을 맞추는 새로운 멜로디를 보여준다. 간단히 말해서 기타로 돌림노래를 하는 셈.[13] 언뜻 보기에도 대수롭지 않아 보이지만, 막상 하나하나 따지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안드로메다급이다. 화성학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되는 연주.
직접 확인해보자.
특유의 기타 오케스트레이션도 유명하다. 단순한 단음 기타 멜로디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기타 음을 쌓아 올려 오케스트라 연주처럼 화려한 트랙을 만드는 것이 브라이언의 또 다른 음악적 장기. Jazz(음반)의 수록곡 <Dreamer's Ball> 인트로가 대표적이다.
또한 초기 퀸 사운드에 크게 기여한 바 있는데, 7집 "Jazz" 앨범 전까지 밴드가 신디사이저 없이 특수한 사운드를 낸 것은 그의 기타가 큰 역할을 했다. 4집 "A Night at the Opera"의 그 기묘하고 놀라운 효과음에 신디음이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뿐. 그의 다양한 연구와 전자공학도였던 존 디콘의 기계장치들이 초창기 퀸 사운드를 만든 것이다.
아이리쉬 기타리스트 로리 갤러거의 팬이라 한다. 같이 찍힌 사진도 있으며[14] 본인 말로는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여담으로 두 분 다 복스 앰프 마니아시다.[15] 또한 로리 갤러거가 스트라토캐스터 → Dallas Rangemaster 트레블 부스터 → VOX AC30의 조합으로 내던 소리에 매료되어 트레블 부스터를 쓰기 시작했다.
또한 로저 테일러와 함께 퀸의 백킹 보컬을 맡았고, 8집 The Game 앨범까지는 직접 리드싱어로 맡기도 했다. 사실 로저 테일러가 주로 서브 보컬을 맡기 때문에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지만, 브라이언 메이는 꽤나 출중한 보컬리스트였다. 메이는 프레디 머큐리보다 먼저 솔로 앨범을 냈었다. 프레디 머큐리 사후 브라이언 메이 본인이 때때로 자신이 작곡한 노래를 직접 부르기도 한다. 이는 로저 테일러도 마찬가지.
브라이언 메이가 직접 부른 곡 중에 유명한 곡 중 하나가 Too Much Love Will Kill You인데, 프레디 머큐리의 버전이 더 유명하긴 하지만 브라이언 메이 버전도 상당히 괜찮다. 브라이언 메이는 라이브 공연에서 세계적인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이 곡을 듀엣으로 부른 적도 있는데, 다른 유명 가수들이 파바로티와 같이 불렀다가 압살당하는 굴욕을 맛보곤 했지만 브라이언 메이는 원곡자의 감성을 살려 오히려 파바로티보다 더 존재감 있는 가창을 들려줬다.
Too Much Love Will Kill You (브라이언 메이, 루치아노 파바로티)
그리고 의외로 가성이 상당히 높다. 그의 솔로곡 'Hot Patootie'라는 곡에서 낸 C#6(4옥타브 도#)이 그의 최고음으로 알려져 있다.
피아노 연주 실력도 꽤나 좋다. 원래 프레디 머큐리가 들어오기 전인 스마일 시절에는 브라이언 메이가 건반을 담당했었다. 프레디 머큐리가 들어오고 나서 Queen이 결성되자 머큐리가 메인 키보드를 담당하게 되지만, 여전히 서브 키보드로 활약한다. 라이브 공연에서 Save me, Teo Torriatte 등에서는 메이가 피아노를 치곤 했다.
Save Me
결론은 작사작곡, 악기연주, 보컬능력 어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뮤지션.
2.2. 사용 장비[편집]
자세한 내용은 브라이언 메이/사용 장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생애[편집]
3.1. 방한[편집]
- 2014년 8월 14일 잠실에 위치한 서울종합운동장에서 '슈퍼소닉 페스티벌 2014'를 통해 꿈에 그리던 퀸의 첫 내한공연이 이루어졌다. 멤버 로저 테일러와 보컬 아담 램버트와 함께 출연해 열정적인 연주를 펼치며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쳤다. 특히 'Love of my life'를 중심으로 많은 한국어를 쏟아냈다. 퀸의 라이브 역사상 최초로 "I Was Born to Love You"를 락버젼으로 연주했다.
- 2020년 1월 15일에 약 6년만에 내한공연을 위해 퀸 멤버인 로저 테일러, 그리고 아담 램버트와 함께 재방문 및 18일에서 19일 간 이틀 동안 공연을 했다. 공연장소는 서울시 구로구에 위치한 고척 스카이돔. 로저 테일러와 함께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입국장 문을 빠져나오는 순간, 수많은 팬들이 입국장 밖에서 환호성과 함성을 지르면서 맞이했는데, 특히 많은 젊은 여성팬들의 환호성이 장난 아니었다. 본인도 기뻤는지 이걸 동영상으로 찍어놓은 걸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기쁨의 코멘트를 적었다.
3.2. 건강악화[편집]
아담 램버트와 함께 꾸준한 퀸 월드 투어 활동을 해왔으나, 2016년 10월 21일 브라이언 메이 공식 홈페이지에서 자신의 건강 악화에 대한 글을 남긴다. 참고 2014년경에 암 종양이 발견되어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으나 2016년 다시 재발했던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자신이 암이라는 단어는 밝히지 않았지만, 그가 남긴 글 중에 'persistent illness which is destroying my energy and my will.'의 문장으로 보아 암이 재발하여 다시 암투병 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브라이언은 2016년 Queen + 아담 램버트 아시아 투어까지는 자신이 어떻게든 컨디션 조절을 하여 무사히 마쳤으나, 계속되는 체력저하와 건강악화로 인해 여태까지 꾸준히 듀오로 활동했던 켈리 엘리스와의 2016년 4분기 일정을 모두 취소하게 된다. 브라이언은 앞으로의 모든 SNS 활동과 기자 접촉을 자제하고 조용히 건강 회복에 전념하겠다는 말을 남겼고, 팬들에게 깊은 사과의 글을 남겼다. 브라이언 메이의 트위터 활동은 2016년 10월 22일에 올린 글을 마지막으로 활동이 정지된 상태였으나, 2016년 11월 10일 기준으로 건강이 회복된 것인지 다시 트위터 활동을 시작하였다.
건강이 많이 회복된 상태라고 하며, 이후 다시 왕성한 SNS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후 2021년 심장 수술 및 안구 수술을 받는다는 소식을 전해 오기도 했다. 다행히 수술은 별 탈 없이 끝났다고 한다.
2021년 12월 18일, 안타깝게도 코로나19 바이러스 검사에서 양성 결과가 나왔다는 소식을 SNS에 알렸다. 양성 판정이 나온 지는 일주일 정도 된 듯 하며, 다행히 차도가 보인다는 소식 역시 알렸다. 본인은 이번 소식에 대해 "두려워 하지 말되, 조심하십시오"라는 말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