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스(음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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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프린스 로고 (Purple Rain 전용).png
프린스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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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5ARYZvK4L2afx8AcWcf6kF-1.jpg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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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프린스
PRINCE

헌액 부문
공연자 (Performers)
멤버
(개인자격)
입성 연도
2004년
후보자격 연도
2004년
후보선정 연도
2004년


파일:알앤비 명예의전당 로고.png 알앤비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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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프린스
Prince

멤버
(개인자격)
입성 연도
2016년 출처 참조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파일:oscar_logo.svg
음악상
제56회
(1984년)


제57회
(1985년)


제58회
(1986년)

미셸 르그랑, 앨런 버그만, 마릴린 버그만
(엔틀)

프린스
(퍼플 레인)

존 배리
(아웃 오브 아프리카)
빌 콘티
(필사의 도전)
모리스 자르
(인도로 가는 길)



역대 골든 글러브 시상식
파일:goldenglobe.png
주제가상 수상자
제57회
(2006년)


제58회
(2007년)


제59회
(2008년)

A Love That Will Never Grow Old
구스타보 산타올랄라
버니 토핀
(브로크백 마운틴)

The Song of the Heart
프린스
(해피 피트)

Guaranteed
에디 베더
(인투 더 와일드)



프린스
Prince

본명
프린스 로저스 넬슨
Prince Rogers Nelson[1]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출생
1958년 6월 7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사망
2016년 4월 21일 (향년 57세)
미국 미네소타주 챈하센
직업
음악가, 작곡가, 음악 프로듀서, 배우
로고 및
서명

파일:프린스 로고.webp
파일:PrinceSignature.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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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아버지 존 L. 넬슨
여동생 티카 넬슨
아들 아미어 넬슨
배우자
마이테 가르시아(1996년 결혼 ~ 2000년 이혼)
마누엘라 테스톨리니[1](2001년 결혼 ~ 2006년 이혼)
레이블
Warner Bros., Paisley Park, NPG, EMI, Columbia, Arista, Universal
신체
157cm
활동
1975년2016년
데뷔
1978년 앨범 ‘For You’
장르
, 소울, 펑크, R&B, , 디스코, 미니애폴리스 사운드, 프로그레시브 소울
악기
보컬, 기타, 키보드, 피아노, 베이스 기타, 드럼
종교
여호와의 증인
별명
The Purple One, His Royal Badness[2]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
2. 생애 및 활동 내역
2.1. 주요 활동
2.2. 사망
3. 특징
3.1. 대중적 이미지
3.2. 음악적 특징
4. 평가 및 영향력
4.1. 프로듀싱 및 송라이팅
4.2. 보컬
4.3. 춤
4.4. 악기 연주 실력
4.5. 음악 산업
4.6. 음악 평론지의 평가
5. 프린스에 대한 헌사
6. 영향을 준 아티스트
6.1. 프린스가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
7. 멀티 인스트루멘탈리스트
8. 더 레볼루션, 그리고 NPG
10. 이야깃거리
10.1. 여담
11. 마이클 잭슨과의 라이벌리
12. 디스코그래피
12.1. 앨범
12.2. 참여 앨범
12.3. 라이브 앨범
13. 빌보드 차트인 목록
13.3. 빌보드 핫 100 2위
13.4. 빌보드 핫 100 3위 ~ 10위
13.5. 빌보드 핫 100 11위 ~ 40위
13.6. 빌보드 핫 100 41 ~ 100위



1. 개요[편집]



<math> The</math> <math>Purple</math> <math> One</math>

Can You Make It Rain Harder?
비를 더 세차게 내리게 할 수 있나요?

슈퍼볼 공연을 앞두고 공연 기획자에게.[2]

미국가수, 작곡가, 기타리스트, 프로듀서, 배우.


2. 생애 및 활동 내역[편집]



2.1. 주요 활동[편집]


The Greatest Musical Talent of His Generation
당대 최고의 음악적 재능

빌보드#


프린스는 1980년대를 대표하는 미국의 전설적인 뮤지션이다.

최고의 히트작은 1984년 Purple Rain. 직접 주연한 동명 영화의 사운드트랙으로 음반은 빌보드 200에서 24주 연속 1위를 기록하며 미국에서만 1,300만 장이 팔렸다. 이 음반에서 9분이 넘는 대곡 Purple Rain[3], When Doves Cry[* 1984년 빌보드 연말 차트 1위] , Let's Go Crazy[4], I Would Die 4 U 등이 싱글차트를 휩쓸었다. 이어서 바로 다음해 'Around the World in a Day' 음반으로 차트를 점령했다. 이 시절이 프린스의 최고 전성기.

1987년에 발매한 명반인 Sign 'O' the Times 발매 이후로 대중의 비난이 계속되고 개인적 문제가 복잡해지면서 의미있는 작업물이 현저하게 줄었다. 1987년은 프린스가 첫 앨범을 발매하고 10년이 되지 못한 시점이고 1980년 그의 첫 번째 명반 Dirty Mind 발매부터 7년밖에 지나지 않은 해였다.

자신의 최대의 히트 앨범과 동명이자 자전적인 스토리를 담은 영화 Purple Rain에도 출연, 영화도 나름 흥행했다. 당시가 바로 리즈 시절이며, When Doves Cry, Let's Go Crazy를 모두 싱글 차트 1위에 랭크시키는 기염을 토하고, 앨범도 천만 장이 넘는 슈퍼 밀리언 셀러를 기록했다. 그리고 자신의 저택에 미발표곡이 1,000곡 정도가 쌓여 있었다고 하는데 프린스 팬들은 이를 'The Vault'라고 부른다. 본래 1,000곡을 전부 차례로 발표하려고 했으나, 음반사에서 프로모션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필사적으로 뜯어말렸다고 한다. 사실 이런 문제들이 아래 서술하는 음반사와의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 시절 우리나라에서도 정식으로 음반이 발매되어, 마이클 잭슨의 라이벌로 여겨지면서 큰 인기를 얻게 된다. 처음엔 단순히 댄스가수로 오인되었지만, 곧 그가 싱어송라이터이자 대단한 기타리스트 라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되었다.

이렇듯 팝뮤직계의 슈퍼스타로 부상했지만, 음반사와의 갈등으로 1990년대에는 제대로 된 활동을 하지 못했다. 프린스가 기행의 상징이 된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이 소속사와의 기나긴 분쟁인데, 프린스의 창작 욕구와 재능은, 다른 뮤지션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숫자의 곡을 만들게 했고 프린스는 이 음악들을 엮어서 꾸준히 앨범으로 발매하고 싶어했다.[5] 그러나 소속사는 앨범의 희소성, 판매량등을 고려해 2년에 한 번 정도 발표하기를 원했다. 열받은 프린스는 '그럼 prince 명의로만 안 내면 되겠네 ㅇㅇ'라는 결론에 이르렀으며, 음반사와의 분쟁으로 수 년동안 법정소송을 벌였다. 실제로 1996년에 공개된 앨범의 수록곡인 Face Down으로 이때 갈등을 벌인 Warner Bros. Records에 대해서 강한 비판을 한 적도 있다. 뿐만 아니라 뮤지션이 자신의 음악을 통해서 얻는 수익을 포함한 권리가 적다는 항의를 늘 해왔다.

파일:princesymbol.png
1994년 발매된 앨범인 Come의 표지에는 Prince 1958-1993이라고 나와있는데, 즉 「너희가 알던 프린스는 93년에 죽었다.」 이런 뜻. 계속되는 소속사와의 불화로 뺨에 노예(slave)라고 문신을 새기더니 아예, Prince라는 이름을 버리고 남성과 여성의 성 기호를 조합하여 만든 기호로 자신의 이름을 대신했다. 당연히 그런 기호의 이름 자체는 없었기 때문에[6] 궁여지책으로 사람들은 TAFKAP(The Artist Formerly Known As Prince), 즉 "한 때 프린스라고 알려졌던 아티스트"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때 기자가 '뭐라고 읽어야 됩니까'라고 했더니 '읽을 필요 없다(no need to read)'고 응수했다. 현재는 분쟁 해결 후에 이름을 되찾았다.

이 때 프린스가 이름을 바꾸고 낸 첫 음반인 The Gold Experience가 프린스의 90년대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힌다는 점에서 몇몇 팬들은 Come 앨범 대신 이 앨범을 홍보했다면 90년대 프린스의 암흑기는 없었을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다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음악들이 점점 더 난해해지고, 연주곡으로만 이루어진 앨범이나 종교적 색채가 짙은 앨범들을 발매해서 팬들이 꽤 떠나간 것도 한 몫 하긴 했다. 이 때문에 Come 앨범, 90년대 후반에서 00년대 초반 앨범들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받기도 한다.

음반사와의 분쟁으로 암흑기를 거치며 대중들은 점점 그를 잊어가는 듯 했지만, 2004년 'Musicology'를 내놓으며 빌보드 200 3위와 더블 플래티넘 획득 그리고 그래미 어워드를 석권(2개 부문 수상)했으며 그해 가장 많은 공연 수익을 올린 아티스트가 되는 등 완벽하게 부활했다.

차기작인 '3121' 앨범(2006년)으로는 대망의 앨범 차트 1위를 탈환, 역대급 천재의 클라스는 변치 않는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렸다.

2007년에는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서 폭우 속에서도 변함없는 라이브와 기타연주를 보여주었다. 특히 비가 내리는 와중에 퍼플레인이 울려퍼졌던 이 짧은 공연은 롤링 스톤이 선정한 "역사상 최고의 슈퍼볼 하프타임쇼" 1위를 차지했다. 미국 내에서 슈퍼볼 하프타임 쇼가 누리고 있는 위상과, 더욱이 이런 무대에서 다른 가수와의 협연 없이 오롯이 혼자서 무대 조명을 독차지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음악적으로 프린스의 위치가 대단하다는 것을 증명한 이벤트였다.

연이어 2007년에는 Planet Earth 앨범을 발매하여 빌보드 앨범차트 3위를 기록하고, 2008년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R&B 보컬 퍼포먼스 상을 수상했다. 투어도 전석을 매진시켰고, 2009년에는 Lotusflow3r / MPLSound로 빌보드 200 2위와 빌보드 탑 R&B 앨범 차트 1위, 빌보드 탑 인디 앨범 차트 1위를 거머쥐었다. Lotusflow3r / MPLSound 앨범은 대형유통사를 거치지 않은 인디 앨범으로는 이례적인 성공이었다.

Planet Earth 앨범은 영국에서 개최된 콘서트의 티켓과 함께 부록으로, 20Ten 앨범은 영국의 데일리 미러 2010년 7월 10일자에 부록 개념으로 동봉하여 배포하는 방식 등으로 '새로운 릴리스 방법을 시도해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 뒤로는 오피셜 릴리스가 많이 뜸해졌다. 프로젝트 말아먹기의 제왕답게[7] 2009년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DVD, 20Ten 디럭스 앨범, Welcome 2 America 앨범[8] 등등이 연이어 취소되고, 이 아저씨 뭐 하나 싶었을 즈음 '3rdEyeGirl'이라는 3인조 여성 밴드를 조직하고 2013년에 복귀했다.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엔 헤드라이너로 출연한다는 소식이 뜨자마자 티켓팅이 불지옥이 되는 마술을 보여주었다. '프린스가 뛰어난 뮤지션인걸 모르는 사람이 있겠냐만은 재즈 페스티벌에 헤드라이너가 되기엔 장르가 안맞지 않나?'라는 우려에도 공연장에서 신보 CD를 나눠주며 '니네 그거 들으면 공연장에 올 수밖에 없을걸?'이라는 패기를 보여주고, 여전히 뛰어난 보컬과 Purple Rain, Let's Go Crazy같은 히트곡을 모두 빼버리고 엄청난 숫자의 연주자들과 재즈 페스티벌에 맞는 자신의 곡과 많은 커버곡을 섞어서 도합 2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공연을 소화하여 관객들의 엄청난 호응을 이끌어냈다. 그렇게 그는 그가 왜 못하는 장르가 없는 뮤지션이라 평가받는지, 왜 투어만 했다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수익을 내는지 다시 한번 증명하였다. 이후에도 2013년에도 등장하여 다시 한번 멋진 공연을 보여주었다.

공식 유튜브 채널도 개설하고, 라이브 스트리밍(3rdEyeTV)도 열면서 이제 드디어 앨범이 나오나 싶었지만 결국 2013년도 디지털 싱글만 계속 발매하다 그냥저냥 지나갔다. 사실 발매된 노래들만 모아 보면 앨범 하나 정도 분량이 나오긴 한다.2013년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DVD도 찍긴 했는데 발매소식은 없다. 라이브 콘서트 음원도 발매한다고 했지만 역시 감감 무소식. 이쯤되면 남아있는 팬들이 불쌍할 지경. 결국 프린스 데뷔 이래 정규앨범간 발매 간격 최장기록을 경신한 2014년에 앨범을 낸다고 한다.

그래도 2014년도에 들어서는 슈퍼볼 직후 방송된 미드 New Girl에 출연하여 신곡도 선보이고, Arsenio Hall Show에도 출연, 각종 잡지에도 표지에 등장하는 등 미디어 노출이 늘긴 했다.

2014년 9월 Art Official Age과 Plectrumelectrum이라는 두 장의 앨범을 동시에 발매, 각각 펑크와 하드락에 특화된 앨범으로, 두 장 모두 빌보드 200 탑 10에 랭크시켜버렸다! 예상을 깨고 과거의 적이었던 워너 브라더스와 재결합하여 발표한 앨범이었기에 과거의 앨범들을 리마스터[9] 해줘서 내주지는 않을까 하고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던 시기였다.

2015년엔 볼티모어 폭동 사건의 도화선이 된 프레디 그레이의 사망을 기리며 그를 추모하는 공연인 Rally 4 Peace을 열고 볼티모어 폭동사건을 주제로 한 노래인 Baltimore를 발매하고, 2015년 그래미에서는 올해의 앨범 시상자로 나와서 기립박수를 받고 시상식 소감 처음부터 앨범은 중요합니다. 책과 흑인의 생명처럼요. 라며 Black Lives Matter를 대놓고 언급하고 박수를 받았다. 여전히 사회적인 언행을 멈추지 않는 뮤지션임을 보여주고 2016년에도 멋진 신보를 기대하게 하였다. 그러나...

2.2. 사망[편집]


“He’s with our son now.”

- 마이테 가르시아(Mayte Garcia), 프린스의 1처

사망 6일 전, 집으로 돌아오던 비행기에서 독감 같은 증세가 급격히 악화되어 일리노이 주에 비상 착륙을 한 후에 병원으로 이송되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고, 이후 증세가 호전되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그러나 현지시각 2016년 4월 21일, 미네소타 카버 카운티에 있는 프린스의 자택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 엘리베이터 안에 쓰러져 있었다고 한다. 소식은 TMZ가 최초로 보도하였으며, 이후 AP에서 공식적으로 보도하였다. 초기에는 황색언론으로 악명이 높은 TMZ발 찌라시로 여기는 이들이 많았으나 결국 사실로 드러났다.[10] 향년 57세.

경찰이 구체적인 사망원인을 수사했으며,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었다. 다만 TMZ가 기사화한 바에 의하면, 위의 비상착륙 후 입원했던 병원에서 약물 과다복용 문제로 마약 중화 주사를 맞았다고 하는데, 이것이 부작용을 일으킨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있다. 병원에서는 입원하여 24시간 동안 경과를 볼 것을 권유했으나 1인실이 없어 입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뉴스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진통제(아편계 약물) 과다복용으로 인한 죽음이라고 하는데, 자택에서 펜타닐 성분의 약품이 발견됐다고 한다. 의문인 점은 사망 전 약물 조사에서는 펜타닐 성분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약물을 지속적으로 투여한 것이 아닌 갑작스럽게 많은 약물을 투약해서 사망에 이른 것이다. 거기다 그가 약물을 거래한 흔적인 처방전 등이 발견되지 않아서 그의 죽음에 의문점이 생겼다. 그의 집에 펜타닐 말고도 9정의 약품이 더 있던 터라 펜타닐을 다른 약으로 오인해 섭취하다 약물 과다 사고가 발생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경찰 조사 결과, 허리 통증을 다스리기 위해 진통제를 먹었는데, 바이코딘펜타닐을 착각해 복용하여 사망한것으로 결론지어졌다.


4월 21일, 미국지역 한정으로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구글 두들이 게시되었다. 의미는 당연히 Purple Rain.# 그 외에도 세계 곳곳의 랜드마크에서도 그를 추모하는 보랏빛 조명을 켰다. 대표적인 랜드마크는 그가 생전 거주하던 미네소타 지역의 팀 미네소타 트윈스의 홈 구장인 타깃 필드.#

데이빗 보위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음악이 아이튠즈를 포함한 음원사이트를 독식했듯이 별세 이후 프린스의 히트곡들이 아이튠즈 차트를 보라색으로 물들이는 사태가 벌어졌다. 1500위의 사이에 100곡이 랭크되고 10위권을 죄다 프린스의 음악들이 독식한 순간도 있었을 정도였다.

4월 23일, 친지와 일부 지인들만이 참석한 상태로 장례식을 치루고 화장되었으며, 그 유해는 비공개로 보관된다고 밝혔다. 생전에 살았던 페이즐리 파크의 자택 겸 스튜디오가 박물관으로 전환해서 팬들을 위한 장소가 될 것이라고 유족들이 발표했다.

칸 영화제에서 추도 기획을 실시한다고 한다.

2016년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생전 친구였던 마돈나가 추모공연을 하였다.#

공교롭게도 주치의의 프로포폴 남용으로 사망한 마이클 잭슨처럼 약물 오남용으로 사망했다.

유투브의 리액션 채널 Fine bros에서 청장년층의 리액션 패널인 'Adults react'에게 프린스의 타계를 기리기 위해 뮤직비디오인 1999, When Doves Cry, Purple Rain(live)를 보여주며 추모 리액션을 보였는데, 청년세대들은 음악의 거물이였던 그를 기리고, 장년세대는 왕년에 익숙한 프린스의 노래와 퍼포먼스를 즐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픈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추모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공식 석상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점차 늘어가던 그였기에 그의 죽음은 더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다.


3. 특징[편집]



3.1. 대중적 이미지[편집]


80년대 당시 대중음악계의 메인 장르였던 록 음악소울, 팝 음악 등의 타 장르들과 결합시키는 등의 음악적 실험을 하면서 1980년대 팝의 중흥기를 이끈 뮤지션 중 한 명으로, 대중음악을 설명할 때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뮤지션 중 한 명이다.[11]

적나라한 섹스어필, 파티에서의 기행, 젠더스왑한 패션[12], 어떤 음악이든 섭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When Doves Cry에서는 아예 베이스를 없앤 후 키보드와 드럼의 반복만으로 음악을 설계하는 실험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음악 내외를 가리지 않던 파격적인 뮤지션이다.

종합해서 경지에 오른 춤, 에릭 클랩튼제프 벡 같은 수많은 레전드 기타리스트들이 극찬하는 탁월한 기타 연주 실력[13], 수많은 악기를 능숙하게 소화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싱어송라이터로서 작사, 작곡, 편곡까지 전부 혼자 했으며, 완벽주의의 극한인 프로듀싱 능력, 카피가 불가능한 가성을 활용한 창법 등 역사상 최연소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프린스의 재능과 역량은 말이 안나오는 수준이다. 심지어 본인의 음반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가수[14]에게 곡을 주고 프로듀싱을 해서 수많은 히트곡과 스타들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 까다롭기로 유명한 마일스 데이비스가 자신과는 음악 스타일이 잘 맞지 않아 공동작업을 마무리지을 수는 없었지만,[15] 21세기는 프린스와 마커스 밀러같은 멀티 플레이어가 이끌어나가야 한다고 자서전에 남긴 적이 있었을 정도의 뮤지션이기도 하다.


3.2. 음악적 특징[편집]


, 소울, 펑크(Funk), 재즈, 블루스, 일렉트로닉, 신스팝 등이 혼합된 뭐라 딱 꼬집기도 힘든 음악이 특징. 심지어 1996년에 발매한 앨범인 Emancipation의 수록곡 Face down에서는 직접 랩까지 소화하기도 했다. 스티비 원더조차도 프린스를 일컬어 어떤 음악이든 할 수 있는 뮤지션이라고 할 정도였다. 전 매니저에게 내가 랩을 배워야할까 라며 물어보기도 했을 정도로 다른 장르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았고, 실제로도 대중음악의 범주안에서는 사실상 거의 모든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을 했다. 이를 자신이 개척한 장르인 Minneapolis sound[16]라는 용어로 통틀어 이야기하지만, 사실상 저 용어는 프린스의 음악만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는 노래, 춤, 작곡, 편곡, 프로듀싱, 밴드를 조율하고 이끌어가는 것을 모두 다 잘하는 아티스트라고 소개하고 있다. 실제로 데뷔작인 1978년작 'For You' 앨범은 작곡, 편곡, 프로듀싱에 연주까지 전부 혼자했다. 작사도 하나의 곡을 제외하고(이나마도 공동작사) 모두 직접 했다. 당시 나이가 19세였다.

특유의 여리지만 누가 들어도 프린스라고 알 수 있는 유니크한 목소리와 펑키(Funky)한 기타의 사운드가 굉장히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런 대표곡으로는 프린스 앤 더 레볼루션의 "Kiss", Let's Go Crazy가 있다.

For, to, you, be, I를 각각 4, 2, U, B, Eye[17] 식으로 쓰는 등 가사 짓는 센스도 독특하다. 자기 노래 뿐만 아니라 여성 가수인 시네이드 오코너(Sinéad O'Connor)에게 제공해준 곡인 "Nothing Compares 2 U'도 마찬가지다.

가사에 성적인 문구를 아무렇지도 않게 집어넣는 것으로도 유명했는데, 예를 들면 프린스의 대표작인 Purple Rain에 수록된 Darling Nikki에서는 잡지 보면서 자위했다는 가사가 여과를 거치지 않고 대놓고 나온다. 이는 과격한 가사가 담긴 음악 앨범(대표적으로 힙합이나 익스트림 메탈 계열)에 붙는 Parental Advisory 딱지가 등장하게 된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성에 대한 노골적이고 파격적인 음악, 패션, 행적을 이어간 것과 달리 신앙심이 엄청난 기독교인으로 알려져있는데, 실제로 Let's Go CrazyI Would Die 4 U같은 유명한 곡은 물론이고 그의 음악을 디깅하다보면 그것이 직설적이건 은유적으로 돌려말하는 것이건 프린스는 자신의 신앙심을 꾸준히 음악에 녹여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프린스는 대중음악에서의 온갖 금기들을 굉장히 싫어했다. 대중음악에 종교와 성에 대한 언급이 어렵다는 것도 싫어했고, 어떤 장르의 음악에는 어떤 악기만 써야한다는 고정관념도 싫어했다. 이러한 생각에서 벗어나 이런 금기시되는 소재도 자유롭게 대중음악에서 쓸 수 있는 세상을 갈망한다고 인터뷰에서 발표한 적이 있다. 그런 마인드로 만들어진 프린스의 음악은 파격적이고 노골적이고 뻔뻔하지만, 결코 그것이 천박하다고 느껴지지 않게 만드는 완성도로 80년대를 휩쓸었다.

물론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것이 나오는 것은 지극히 힘든 것처럼, 자신에게 영향을 준 뮤지션들에게 영감을 받아서 프린스도 자신의 음악과 행보를 세상에 꺼내놓고 이어갈 수 있었다. 프린스 본인이 자주 언급한 본인에게 영향을 준 뮤지션은 블랙 뮤직의 제왕, 소울의 대부라고 불리던 제임스 브라운, 역사상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평가받으며 사이키델릭 록과 히피 문화의 상징이 된 지미 헨드릭스, 엄청난 무대매너와 로큰롤의 화신급 뮤지션이라 평가받으며 비틀즈와 더불어 가장 위대한 밴드로 꼽히는 롤링 스톤스[18][19], 프린스 본인도 늘 존경하는 뮤지션이라 언급한 자전적 싱어송라이터의 아이콘인 조니 미첼, 프린스 본인이 연주적인 부분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록 밴드 중 하나인 레드 제플린 등이 있다.


4. 평가 및 영향력[편집]


프린스는 대중음악을 설명할 때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뮤지션 중 한 명이며, 보통 대중음악사에서 가장 높은 족적을 남긴것으로 평가되는 비틀즈, 밥 딜런, 롤링 스톤스 다음 가는 아티스트들을 꼽을 때 레드 제플린, 데이비드 보위, 브루스 스프링스틴 등과 함께 반드시 거론되는 아티스트로서, ‘1980년대 최고의 아티스트’를 꼽자면 아무리 저평가받아도 세 손가락 안에는 무조건 꼽히는 아티스트이다. 가장 객관적인 지표로 꼽히는 어클레임드 뮤직에서 1980년대 최고의 뮤지션 1위로 산정되었으며, 올타임으로는 9위라는 순위에 산정되었다.[20] 또한 롤링 스톤에선 역사상 최고의 뮤지션 27위로 선정되었다.[21]

이처럼 프린스가 고평가받는 이유는 네오 소울얼터너티브 R&B의 시발점이 된 뮤지션이라고 평가받기 때문이다. 보통 얼터너티브 R&B의 시초를 일반적으로 네오 소울이라고 일컫는데, 이 네오 소울의 메이저화에 기여한 디안젤로맥스웰이 가장 크게 영향 받았던 뮤지션이 다름 아닌 프린스다. 심지어 디안젤로는 대놓고 Do Me, Baby의 파트 중 일부를 대놓고 샘플로 갖다 쓰고 자랑스러워 했을 정도. 네오 소울의 시대가 지난 2010~20년대까지도 영향력은 여전해서 미겔을 포함한 많은 아티스트들이 프린스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음악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얼터너티브 R&B의 대표적인 뮤지션 중 한 명인 The Weeknd는 2020 AMA 수상 소감에서 '프린스가 있기에 자신이 R&B를 기반으로 다른 장르와의 실험과 도전을 이어가는 것'이라며 데뷔 초 때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프린스를 샤라웃하고 있다. 프린스가 얼터너티브 R&B 장르의 선구자로서 내놓은 것으로 평가되는 곡으로는 대표적으로 Kiss(프린스) 등이 있다.

또한 프린스는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천재중 하나로 평가되는데, 이는 프린스가 보컬,악기 연주,춤,작사,작곡,편곡,프로듀싱 등 음악의 대부분 분야에서 능통했기 때문이다. 특히 프로듀싱 같은 경우, 전설이라 불리는 다른 가수들도 전문 프로듀서와 자주 협업하였는데, 프린스는 작사,작곡,편곡은 물론 자신의 전곡을 직접 프로듀싱 하는 천재성을 보여주었다. 또한 프린스의 기타 연주 실력은 그 에릭 클랩튼이 인정할 정도로 상당히 독보적이라고 평가된다. 게다가 프린스는 길었던 활동기간 동안 다양한 장르를 시도했는데, 펑크, R&B, , 신스팝, 재즈, 디스코, 소울, 전자음악등 다양한 분야에서 명곡, 명반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22] 결론적으로, 프린스는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천재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으며, 자신만의 사운드를 만들어 후대 뮤지션들에게 거대한 영향력을 주었기에, 평론가들이 고평가하고, 후대 뮤지션들에게 존경받는 뮤지션이라고 볼수 있다.

4.1. 프로듀싱 및 송라이팅[편집]


프린스는 그의 거의 모든 노래를 단독으로 작사, 작곡, 편곡 및 프로듀싱을 하였다. 그는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하였는데, 그가 시도한 장르는 너무 다양해서 통틀어 미니애폴리스 사운드라고[23][24]불린다. 그는 마이클 잭슨 등과 더불어 록 음악을 섞는것을 넘어 헤비 메탈, 펑크, 가스펠, 소울의 결합을 시도하였고, 이러한 음악적 실험의 완성본이라고 할 수 있는 Purple Rain 앨범은 장르의 결합의 진수를 선보여 평론가와 대중의 극찬을 받았다. Purple Rain에 이어, 프린스는 3년뒤에 나온 Sign 'O' the Times 앨범으로 다시금 그의 작곡 능력을 증명하였다.

프린스는 편견과 달리 대중적인 음악도 자주 작곡했는데, Raspberry Beret 또는 Cream등을 예시로 들 수 있다.[25] 프린스는 엄청난 창작욕구를 가지고 있었고 상상을 초월하는 개수의 곡을 작곡하고 앨범을 내었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개수의 앨범을 낸것은 물론이고, 다른 가수에게 곡을 자주 써주기도 하였다. 특히 프린스가 작곡해서 준 노래로 가장 유명한것은 역시 시네이드 오코너Nothing Compares 2 U. 이 노래는 빌보드 핫 100 1위를 기록하였고, 시네이드 오코너의 대표곡이 되었다. 또한 뱅글스에게 준 Manic Monday 는 빌보드 핫 100 2위를 기록하였다. 샤카 칸에게 준 I Feel for You 는 빌보드 핫 100 3위를 기록하였다. 시나 이스턴에게 써준 Sugar Walls 도 역시 빌보드 핫 100 9위를 기록하였다. 이외에도 그가 써준 노래중 빌보드 핫 100에 진입한 노래가 수없이 많다. 또한 프린스는 프로듀서를 따로 두지 않고, 자신의 전곡을 직접 프로듀싱을 하였다.


4.2. 보컬[편집]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프린스는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는 보컬리스트이기도 하다. 그의 보컬은 매우 유니크하고 따라하기 힘들다고 평가받는데, 특유의 펑키한 음색이 특징이며, 이를 바탕으로 롤링 스톤에서 뽑은 위대한 보컬리스트에서 16위에 선정되었다.

프린스는 팔세토샤우팅을 매우 즐겨 사용하였는데, 대표적으로 Kiss 에서 프린스의 팔세토를, The Beautiful Ones에서 그의 가성과 샤우팅을 확인할수 있다. 특히, Adore 에서 그의 보컬의 진수를 확인할 수 있다.

프린스의 성종은 테너가 아닌 바리톤이지만, 상당히 고음과 가성을 즐겨 사용하여 테너로 오해 받기도 하였다. 바리톤이기에 진성 최고음은 그다지 높진 않지만, 대신 팔세토를 극한으로 단련하여 상당히 넓은 음역대를 가질 수 있었다. 프린스의 음역대는 가성까지 포함하여 E2에서 B6으로, 그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프린스는 가성과 고음뿐만 아니라 바리톤답게 저음에도 상당한 강점을 발휘했는데, When Doves CryDiamonds and Pearls 같은 노래에서 그의 저음을 확인할 수 있다.

4.3. 춤[편집]


천재 육각형 뮤지션답게, 프린스는 춤과 퍼포먼스에도 매우 능숙했는데, 그는 라이벌인 마이클 잭슨 처럼 춤으로 유명한 뮤지션은 아니지만, 춤을 상당히 잘 춘다고 평가받는 뮤지션이다. 프린스는 작은 키[26]에 대한 콤플렉스로 인해, 무대에서 항상 하이힐을 신고 다녔는데, 하이힐을 신고 위와 같은 춤을 추는것을 보면 경이로울 정도. 다만 하이힐을 신고 격렬한 퍼포먼스와 춤을 자주 선보인 후유증으로 프린스는 허리 통증을 달고 살았고, 이 때문에 안타깝게도 진통제를 남용하여 사망하였다.

4.4. 악기 연주 실력[편집]


프린스는 명실상부 최고의 멀티 인스트루멘탈리스트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그가 30가지 악기를 프로급으로 다룰 수 있는것은 이미 매우 유명하다. 프린스는 또한 최고의 기타리스트중 하나로 평가된다. 유명한 기타리스트인 스티브 바이가 극찬할 정도. 프린스는 특유의 기타 톤을 직접 만들어 사용하였다. 그는 80년대를 지배한 팝스타 였지만, 최상위권 록밴드의 기타리스트와 견줄 정도의 기타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거의 모든 공연에서 일렉트릭 기타를 매고 공연하였고 일렉기타를 매고 하이힐을 신은 모습은 프린스를 상징하는 모습이 될 정도. 그는 롤링 스톤에서 뽑은 100대 기타리스트 33위[27], 롤링 스톤에서 뽑은 250대 기타리스트 14위, 깁슨에서 뽑은 50대 기타리스트 14위 에 선정되었다.


4.5. 음악 산업[편집]


프린스는 음악 산업의 부당함과 가수의 권리를 찾는 일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음악을 통제하고 싶어하였고, 음반사의 통제를 받고 싶어하지 않았다. 음반사와의 마찰이 있었지만, 프린스는 그의 원칙을 고수했고 90년대에 자신의 이름조차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프린스는 유튜브스포티파이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좋아하지 않았다. 프린스는 유튜브에 자신의 곡이 올라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28] 그로 인해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프린스의 공연 영상이나 음악들이 프린스 사후에 올라오게 되었다.

피트 타운젠드에서 테일러 스위프트에 이르는 아티스트들이 스트리밍 서비스와 그 밖의 디지털 음악 매체들이 아티스트들을 얼마나 부당하게 대하는지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에, 프린스가 워너 브라더스사와 벌였던 싸움은 점점 더 정당화되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의 음악과 마찬가지로, 그는 자신의 음악의 사업적 측면에 관한 한 대부분의 아티스트들보다 더 앞을 내다볼 수 있었으며, 앞으로 몇 세대에 걸치게 될 아티스트들의 권리에 대하여 그는 선구자격 목소리를 내었다.

4.6. 음악 평론지의 평가[편집]


  • 2004 롤링 스톤 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 27위[29]
  • 2015 롤링 스톤 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곡가 18위[30]
  • 2023 롤링 스톤 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보컬리스트 16위
  • 2023 롤링 스톤 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14위
  • 2023 어클레임드 뮤직 산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뮤지션 9위[31]
  • 2017 올뮤직 선정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뮤지션 31위[32]
  • 2018 Vulture 선정 로큰롤 명예의 전당 역사상 가장 위대한 뮤지션 6위[33]
  • 2014 NME 선정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 20위
  • 2012 NME 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프로듀서 38위
  • 2010 VH1 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뮤지션 7위[34]
  • 2015 빌보드 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R&B 뮤지션 8위[35]
  • 2019 Smooth Radio 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프로듀서 11위
  • 2021 SPIN 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락스타 2위
  • 2020 SPIN 선정 지난 35년간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 2위
  • 2012 SPIN 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6위
  • 2014 LA Weekly 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곡가 14위
  • 2016 LA Weekly 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보컬리스트 15위
  • 2011 Essence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R&B 스타 5위

5. 프린스에 대한 헌사[편집]


1978년 활동을 시작한 그는 음악계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겼고, 자신의 이름을 기호로 바꾸며 자신의 레이블에 도전했고, 도발적이고 노골적인 작품으로 전 세계의 보수적인 태도에 도전했다.

NME#


세상엔 수많은 속주 기타리스트들이 있지만, 악기를 연주함으로써 자신의 영혼까지 드러내는 자는 손에 꼽습니다. 영혼을 드러내는 수준의 연주자 중 한 사람이 프린스입니다.

스티브 바이[36]


마이클 잭슨King of Pop이라면, 프린스는 황제라고 부를 수 있다.[원문]

[37]

스티비 원더#


프린스는 혁명적인 예술가였고, 훌륭한 음악가이자 작곡가였다. 그는 독창적인 작사가였고 놀라운 기타 연주자였다. 그의 재능은 무한했다. 그는 지난 30년 동안 가장 독특하고 신나는 예술가 중 한 명이었다.

믹 재거#[38]


을 지난번에 수여해준 고인이 된 위대한 프린스[39]

는 내가 R&B 장르에서 끊임없이 도전하게 된 이유이다. 이 상을 그에게 바친다.

The Weeknd#


20세기에 태어난 흑인 모차르트

신해철#



6. 영향을 준 아티스트[편집]



출처:#,#,#,#

6.1. 프린스가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편집]



7. 멀티 인스트루멘탈리스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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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공연중 베이스 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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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린스의 드럼 솔로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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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린스의 재즈 공연 리허설 中 피아노
역사상 최고의 기타리스트 중 하나로 거론되는 동시에 폴 매카트니, 브라이언 존스, 존 폴 존스, 브라이언 윌슨, 게디 리와 함께 최고의 멀티 인스트루멘탈리스트를 꼽는다면 반드시 거론되는 뮤지션이다.[40] 이러한 악기 연주 능력에 힘입어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에 달하는 프로듀싱 능력을 보여준 인물.[41] 독학으로 악기연주를 익혀서 30가지 이상의 악기를 프로급으로 소화할 수 있다.

베이스 기타 역시 당대의 베이시스트들 중 프린스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탁월하다. 빅터 우튼도 레슨 비디오에서 "프린스 스타일의 프레이즈를 늘 연습했죠. 그는 정말 끝내주는 베이스 연주자라고요!"라고 언급하기도 한다.

그는 피아노도 프로 세션 급으로 칠 줄 알았고 공연 중에도 가끔 피아노로 반주하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더군다나 프린스의 아버지가 피아노 세션 연주자였기에 그는 7살에 처음 피아노를 잡았고 그를 상징하는 일렉트릭 기타는 오히려 그때보다 늦은 13살에 처음 잡았다는 일화가 있다.


7.1. 기타리스트로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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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성기 시절의 'Purple Rain' 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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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조지 해리슨 추모공연 중
'While My Guitar Gently Weeps'에서의 기타 솔로 (3:27~)

이처럼 수많은 악기들을 다룰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독보적인 부분은 기타 연주인데, 제프 벡이 흠잡을 데가 딱히 없는 기타리스트라고 극찬했으며, 스티브 바이[42]가 "세상엔 수많은 속주 기타리스트들이 있지만, 악기를 연주함으로써 자신의 영혼까지 드러내는 자는 손에 꼽습니다. 영혼을 드러내는 수준의 연주자 중 한 사람이 프린스입니다." 라고 말했으며, 롤링 스톤 선정 100대 기타리스트에서 33위를 기록하였고[43], 개정판에서는 무려 14위를 차지할 정도로[44] 독보적이다. 당장에 저 기타리스트 상위권에는 대부분 록 밴드나 포크, 블루스 밴드의 기타리스트가 올라와있는데, 상대적으로 저평가를 받기 쉬운 팝 스타가 저 자리에 오른 것만 봐도 프린스의 기타 연주가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가늠은 해볼 수 있을 것이다.

마이클 잭슨하면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가 검은 옷과 모자 그리고 은색 장갑이라면, 프린스의 경우에는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가 프린스의 마크를 본딴 보라색 기타를 멘 모습일 정도로 그 애정과 실력이 남달랐던 기타리스트이기도 했다. 프린스는 공연의 대부분을 기타와 함께 진행하기도 했다. 여담으로 기타히어로 제작사 측에서 기타히어로 프린스 버전을 내려고 프린스에게 제의를 하자 프린스는 바로 거절했는데, 그때 프린스는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라는 건 나도 잘 알지만, 아이들이 게임이 아닌 실제 기타를 배워야 한다는 믿음이 있어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밝힌 적이 있다. 기타에 대한 그의 철학과 자부심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는 레드 제플린, 특히 지미 페이지의 열렬한 팬이었기에, 음악적 부분뿐만 아니라 기타 연주 면에서도 지미 페이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다만 너무 재능이 다방면으로 많고[45] 성에 대한 노골적인 퍼포먼스와 가사, 패션, 기행으로 무장한 팝스타라는 이미지가 굳건해서 기타리스트를 포함한 악기를 소화하는 실력에 대해서는 대중들에게 저평가가 이루어졌다. 롤링 스톤지에서는 저평가된 기타리스트 중 1위로 선정된 적이 있다.


8. 더 레볼루션, 그리고 NPG[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더 레볼루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 페이즐리 파크[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페이즐리 파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0. 이야깃거리[편집]



10.1. 여담[편집]


  • 영화 귀여운 여인(Pretty Woman)에서 줄리아 로버츠가 욕조에서 거품목욕을 하면서 헤드셋을 끼고 프린스의 Kiss를 코믹하게 따라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리처드 기어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줄리아 로버츠가 "프린스 좋아하세요?" 라고 묻고 리처드 기어는 "인생보다 더" 라고 되받는다.

  • 신장이 157cm로 매우 단신인데, 왜소증인 경우를 제외하면 똑같이 위대한 기타리스트로 평가받는 앵거스 영과 더불어 남성 연예인들을 통틀어 최단신중 한명이다. 이 키 때문에 하이힐을 즐겨신고 다닌지라 게이 의혹을 받은 적도 있고[46] 하이힐을 즐겨 신은 결과 엉덩이 쪽에 무리가 가서 진통제로 버티기도 했다. 작은 키 때문에 상당히 신경이 쓰인 탓인지, 1990년대에 같이 활동하였던 The New Power Generation의 경우, 비슷한 키의 멤버로만 모집을 하거나 자신이 앞에 서서 원근법의 차이로 키 차이가 눈에 띄지 않게 촬영하는 등의 제약이 있었다. 2001년 공식적으로 여호와의 증인이 된 프린스가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음에도 수혈을 금지하는 교리 때문에 수술을 거부했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본인은 수술 진단 자체가 사실무근이라며 부인했다.

  • "저 키로?" 싶겠지만, 고등학교까지는 농구선수였다. 포지션은 포인트 가드로 실력도 출중했다고 한다. 그래서였는지 가수가 된 후에도 농구에 대한 애정이 많아서, 고향팀인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경기를 자주 관람하러 왔다고 한다. 게다가 본인이 팀버울브스 팬이기도 했다.

  • 역시 키 탓에 쉽게 상상할 수 없지만 에디 머피의 형 찰리 머피가 프린스에게 초대받았는데, 157cm인 프린스가 농구시합을 제안하자 185cm였던 찰리 머피는 비웃었으나 게임이 시작되고 프린스에게 처참하게 깨졌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100% 실화라고 한다. 웃긴 썰이라 그런지 2004년에 샤펠 쇼에서 재현된적이 있다 #. 프린스는 후에 'Breakfast Can Wait'의 싱글 커버에 그 스케치에서 나온 데이브 샤펠의 프린스 분장 사진을 넣었다(팬케이크 들고 있는 그 장면). 지미 팰런 쇼에서 데이브 샤펠이 언급하기도 했다#. "완전 천재적인 반격이죠. TV 스케치에서 프린스 놀렸는데 그걸로 앨범 커버에 쓰다니... 제가 뭘하겠어요? 프린스 분장한 사진을 썼다고 제가 프린스를 고소해요? 완전 체크메이트죠."

  • 킴 베이싱어, 마돈나, 카르멘 엘렉트라 등 당대 최고의 여자 연예인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녔다. 1996년 발렌타인 데이에 자신의 백업싱어 겸 댄서인 마이테 가르시아[47]와 결혼해 10월에 아들 그레고리를 얻었으나, 아기는 두개골 이상으로 뇌가 자라지 않는 파이퍼 증후군을 가져 태어난 지 1주일 만에 사망했다. 마이테 가르시아는 한동안 프린스의 월드 투어 세션으로서 동행했다.

  • 플레이보이라고 하지만 실제 성격은 극히 소심하고 낯가림이 많다고 크리스 터커가 토크쇼에서 말한 바 있다. 자신이 있다는걸 파티에서 알려주기 위해 특유의 가성을 쓴다나 뭐래나. 역시 프린스의 라이벌로 여겨진 마이클 잭슨 또한 그래보이지 않게 엄청나게 소심하고 낯가림이 많다.

  • 프린스는 얼터너티브 R&B의 탄생에 큰 기여를 한 아티스트이다. 프린스는 얼터너티브 R&B에서 가장 큰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있는 아티스트 The Weeknd에게 2015 AMA에서 최우수 R&B/Soul 앨범상 수상자 호명 및 상을 건내주었었다. 이 것이 프린스의 생전 마지막 시상이었다. 프린스가 사망한 이후에 치뤄진 2016 BBMA에서 The Weeknd가 Top Hot 100 Artist 부문 수상을 하며 수상 소감으로 "AMA에서 프린스가 상을 건네줄 때의 경험이 인생에서 가장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5년 뒤인 2020 AMA에서 앨범 <After Hours>로 다시 한 번 최우수 R&B/Soul 앨범상을 수상하게 되었을 때, 위켄드는 수상 소감에서 "지난 번 위대한 故 프린스[48]에게 상을 건네받았었다. 내가 끊임없이 R&B 장르에 도전을 하는 이유가 바로 프린스였다. 그리고 이 상을 그에게 바친다."라 밝히기도 했다. 해당 발언은 프린스의 공식 유튜브 채널 커뮤니티와 SNS에 업로드되었다. 위켄드가 제일 존경하는 아티스트 중 한명으로 아직도 프린스에 관한 영상을 인스타에 올린다.

  • 악당 전하(His Royal Badness)라는 별명이 있다.

  • 강한 영혼은 규칙을 초월한다는 말을 남긴 적이 있는데,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그의 행적과 맞물려 그를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 50대의 나이임에도 엄청난 동안을 유지했다. 여담으로 더 후의 베이시스트인 존 엔트위슬과 같은 나이에 사망했는데, 존 엔트위슬은 엄청난 노안이고 프린스는 엄청난 동안이라 둘을 모두 아는 팬들은 이에 대해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딱히 얼굴이 많이 변한 것도 아니라 성형 논란도 별로 없는 편이다.

  • 워낙에 음악과 관련된 부분은 빡세기로 유명해서, 과거 비욘세한테 리허설때 음정이 안 맞다고 혼내는 등 무서운 완벽주의자의 면모를 보였다.[49] 물론 단순히 혼내는 것이 아니라 비욘세가 하도 프린스를 어려워하고 무서워하니 '긴장하지 말고 크게 질러보라'고 격려해주면서 리허설을 이끌어갔다고 한다. 제임스 브라운 이후로 동료 가수들에게 함께 일하기 어려운 가수로 자주 꼽혔다. 이 완벽주의적인 면모는 타인은 물론 자신도 예외가 아니라 자신의 악기(주로 기타), 목소리, 음향에 엄청나게 엄격하여, 같이 무대에 서본 가수들도 이에 대해 험담보다는 '그런 완벽주의적인 모습이 있었기에 그런 커리어를 갖출 수 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으며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라는 식으로 자주 존경을 표했다.

  • 유튜브에 프린스 레볼루션 TV라는 채널을 개설, 자신의 뮤직비디오나 콘서트 영상들을 올려왔었는데 NPG 뮤직 클럽이라 하여 온라인 음원 다운로드 사이트를 열고 온라인 음원 사업에 뛰어들면서 프린스 레볼루션 TV에 있는 영상들은 죄다 '프린스가 자신의 곡이 유튜브에 올라가는 것을 원하지 않아 원곡이 막혔습니다.'라는 친절한 안내문구와 함께 원곡 대신 엉뚱한 다른 가수의 곡이 흘러나오게 됐다. 당연히 댓글은 각종 욕설로 도배가 돼있던 상황. 그나마 이 공식 유튜브 채널마저도 칸트러버시 뮤직과의 법적 문제로 인해 아예 폐쇄되었고, NPG 뮤직 클럽도 망했다. 2014년 현재는 프린스 명의로 하나, 3rdEyeGirl 명의로 하나 2개의 유튜브 채널을 다시 개설했다. 주로 라이브 공연 영상을 올리거나 새로 발매하는 음원들을 간단한 영상으로 홍보하는 편이다.

  • 제임스 브라운에게는 다급하게 모자를 벗으면서 고개숙여 인사할 정도로 깍듯하게 모시다시피하지만, 그래미 어워드에서 퀸시 존스가 평생 공로상을 받을 때는 입을 삐죽 내미는 등 선배라도 호불호를 숨기지 않는다.

  • 새벽의 황당한 저주에서는 주인공의 친구가 주인공이 가지고 있던 음반들을 좀비한테 던지는데 그 때 친구가 프린스의 최대 히트 앨범인 'Purple Rain' LP판을 던지려고 했을때 주인공은 그 앨범만큼은 안돼!라며 친구를 말렸다.

  • 드라마 뉴걸 시즌3는 한 화를 프린스 주제로 만들었으며, 프린스가 카메오로 나오기도 했다.

  • 2014년 10월 22일 라디오 스타에서 박준형이 언급했는데, 전세계에서 계약서에 "눈을 마주치면 안 된다"라는 조항이 붙은 3명의 인물중 한 사람이라고 한다.[50]

  • 이적이 펑키함과 섹시함을 가장 충실하고 세련되게 담은 곡으로 프린스의 'Kiss'를 뽑은 적이 있다. 긱스 활동 중에는 프린스의 Erotic City와 유사한 곡을 내놓기도 했다.

  • 신해철은 자신의 라디오에서 '20세기에 태어난 흑인 모차르트'라고 찬양하기도 했다.

  • 미네소타 바이킹스,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팬이였다고 한다. 그래서였는지 관중석에 자주 모습을 비춘 적이 있었고, 본인이 바이킹스 팬이라고 밝혔던 적도 있었다고. 프린스 사후, 모든 미네소타 스포츠 구단들은 프린스 추모 행사를 개최한 적이 있다[51]. 특히 미네소타 바이킹스같은 경우에는 Purple Rain을 변형해 Purple Reign[52]이라는 슬로건을 밀고 있다.



  • 2U 나 4U 같은 식으로 문장을 비슷한 발음의 숫자와 알파벳의 조합으로 표기하였는데 이는 프린스가 최초로 시도한 것이다. 시네이드 오코너의 대표곡 Nothing Compares 2 U도 이를 활용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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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대표적인 것이 2008년의 시즌 20의 Treehouse Of Horror 19의 두번째 에피소인 'How to get Ahead in DEAD - Vertising'. 이 에피소드에서 라이센스 비용과 조건을 맞추기 싫어하는 광고업자의 의뢰를 받은 호머 심슨에게 조지 클루니, 닐 암스트롱과 함께 끔살당하는 역할.[53] 타임스퀘어 한가운데에서 광고하는 '프린스가 엄선한 가뭄에 강한 잔디 씨앗' 추가로 이 에피소드 이전에 시즌 3의 첫번째 에피소드인 'Stark Raving Dad' 에 마이클 잭슨 대신[54] 출연할 예정이었지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무산된 적이 있었던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

  • 정엽 라디오에 출연한 바버렛츠가 프린스 공연에 조명 장비를 납품하던 회사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는데, 뮤지션의 삶에서 지치고 권태를 느낄 때 프린스의 하루를 되새겨보라는 것이었다. 프린스는 점심 쯤 일과를 시작했는데, 점심 어쿠스틱 팬미팅 1시간 - 그보다 더 큰 규모 팬미팅 2~3시간 공연 - 사운드 체크 3시간 - 본 공연 - 애프터 파티 - 다시 잼 세션(애프터 파티의 애프터 파티)에 이르기 까지, 이걸 매일같이 몇 십년을 해왔다고 하니 말 그대로 뮤지션들의 뮤지션이라고 할 만 하다. 참고로 원래부터 프린스 팬이었던 정엽은 일화를 듣고난 뒤 그 동안 자신이 상상했던 프린스는 꽤나 여유롭게 생활할 줄 알았지만 온 시간을 빡빡하게 음악에만 온 시간을 들여 인생을 바쳤다는 것에 적지않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 래리 그래엄이나 메이시오 파커 같은 펑키 음악의 거장들을 자택으로 초청해서 잼[55]을 하며 놀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삘 받으면 음반 내고 이 양반들을 다 이끌고 월드 투어를 다녔다.

  • 본인의 히트곡 말고도 샤카 칸,[56] 패티 라벨, 마돈나[57], 뱅글스[58], 시나 이스턴[59], 쉴라 E[60], 마티카[61], 셀린 디옹[62], 시네이드 오코너[63], 테빈 캠벨[64], 노 다웃 등에게 곡을 써 주거나 앨범에 참여하기도 했다. 특히 시네이드 오코너에게 준 Nothing Compares 2 U빌보드 차트 1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이외에도 영화음악에도 손을 대서 팀 버튼배트맨(1989년 영화) 등에 참여하기도 했다. 한국인들이 프린스의 음악을 들어봤다면, 아마도 이쪽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65].

  • 영화 쪽에도 손을 대서 Purple Rain 말고도 Under the Cherry Moon,[66] 비디오 영화 3 Chains o' Gold, 퍼플 레인의 후속작인 Graffiti Bridge 총 4작품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이 4작품은 전부 자신의 신곡을 사용한 뮤지컬 영화다. 그런데 이쪽에는 별 재능이 없는지 전부 평이 영 좋지 않으며, 그가 감독까지 맡은 Cherry Moon, Graffiti Bridge는 골든 라즈베리 어워드에서 극딜을 먹이기도 했다.[67]

  • 유니버설 픽처스가 프린스의 음악들을 차용한 뮤지컬 영화로 제작할 예정이다.# 맘마미아 형식으로 나온다.

  • 프린스도 표절논란에서 자유롭진 못했다. 프린스의 1995년도 발매 히트곡 는 이탈리아 법정에서 최종 표절 판정을 받았다.#

  • 정치적으로는 중도 성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BLM을 지지하고 버락 오바마를 위한 공연도 가졌지만, 1990년대에는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에게 후원한 적이 있다.

  • 생전에 프린스는 유튜브를 포함한 여러 동영상 사이트에 그의 뮤직비디오나 라이브 영상, 음원이 올라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음악을 실제로 팬들에게 들려주고 싶어했고, 실제로 그는 끊임없이 공연을 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그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 고화질 영상들이 올라오고, 프린스의 팬들이 그의 미발매곡, 그가 했던 작은 규모의 라이브까지 올리면서 오히려 생전보다 그의 영상이나 곡을 찾기는 수월해졌다. 그가 세상을 떠고 나서 오히려 그의 라이브를 손쉽게 감상할 수 있게 되고 그의 행적, 그의 경이로운 음악을 디깅하기는 쉬워진 셈. 참 아이러니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11. 마이클 잭슨과의 라이벌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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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스와 마이클 잭슨[68]

프린스의 라이벌을 꼽으라면 팬들이나 평론가들이나 이구동성으로 동시대에 활약했던 마이클 잭슨을 꼽는다. 이러한 라이벌리는 1980년대 초반부터 시작되었으며 보통 1960년대의 비틀즈 VS 롤링 스톤스, 1970년대의 레드 제플린 VS 핑크 플로이드[69], 1990년대의 투팍 VS 비기, 혹은 영국에서 브릿팝 전쟁을 했던 오아시스 VS 블러와 함께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라이벌리로 꼽힌다.

이 두 아티스트가 라이벌로 꼽히는 이유는 비슷한 시기에 큰 성공을 거두고 같은 흑인 가수라는 점 때문이다. 또한 이 둘의 비슷하면서도 다른듯한 외모와 이미지도 한 몫 했다. 초창기에는 둘의 라이벌리가 워낙 유명했고, 이들의 라이벌리를 강조하여 돈을 버는 가십지와 같은 타블로이드들의 언론 선동 등으로 둘 사이가 나빴을 것이다 등과 함께 각종 루머들이 많이 돌았는데 앞선 문단에서도 나왔듯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초반에 마이클과 프린스는 싱글 'Bad'의 듀엣과 관해 모여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프린스가 그때 부두술사 인형을 가지고 와서 마이클은 자신을 저주하려는 줄 알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증언에 따르면 마이클 잭슨은 프린스의 팬이었다고 하며, 프린스의 키보디스트였던 O'Neal이 밝힌 바에 따르면 프린스 역시 마이클 잭슨에게 영향을 받았고, 이 둘은 악감정 없이 서로를 존경했으며 사이가 좋았다고 한다.# 또 앨범 Bad의 콜라보 무산이 프린스가 마이클을 질투했기 때문이다라는 루머는 굉장히 유명한데, 실상은 그냥 프린스가 스케쥴[70]이 맞지 않았고 컨셉 역시 프린스와 어울리는 컨셉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뤄지지 못했던 것 뿐이었다.

또한 레니 크레비츠는 프린스와 함께 마이클 잭슨의 스튜디오에 찾아가 오후 내내 셋이서 재밌게 논 적이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으며, 둘이서 탁구를 친 적도 있다고 한다.[71]

한편 두 아티스트가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일화들도 있다. 먼저 프린스는 2004년 라디오쇼 'Doug Banks Morning Show'에 출연해 진행자가 말하는 단어를 듣고 한 단어로만 본인의 생각을 말하는 코너에서 마이클 잭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을 받았는데 '천재(Genius)'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어 마이클의 여동생 자넷 잭슨에 대해서도 질문을 받고는 '천재의 여동생(Genius' sister)'이라고 답했다고.[72]

마이클 잭슨은 'This is it' 공연을 앞두고 이번에 내가 쉬면 신은 그 재능을 프린스에게 줄 것이라 말했다고 하는 주위 증언이 있는데 사실 여부는 모른다. 어느 무대에선 마이클과 같이 있던 제임스 브라운이 관객석 쪽에 있던 프린스를 무대로 불러들여 둘이 즉흥적인 퍼포먼스 경쟁을 하기도 했다. Bad 월드 투어 때 마이클 잭슨의 밴드는 언제나 프린스의 It's Gonna Be A Beautiful Night를 연주했다. 마이클 잭슨이 노래를 부르지는 않았지만 콘서트를 마이클 잭슨이 지휘했고 매 공연마다 연주했으니 마이클 잭슨의 의사인 것은 확실한데 무슨 이유인지는 불명이다. 단순히 프린스의 이 노래를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흑인음악계 최고의 거장 중 한 사람인 스티비 원더는 마이클 잭슨이 왕(King of Pop)이라면 프린스는 황제(Emperor)라고 말했다.기사

안타깝게도 마이클 잭슨은 향년 50세, 프린스는 향년 57세로 두 명 모두 약물 관련 사고로 50대에 세상을 일찍 떠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12. 디스코그래피[편집]



12.1. 앨범[편집]


  • For You (1978)
  • Prince (1979)
  • Dirty Mind (1980)
  • Controversy (1981)
  • 1999 (1982)
  • Purple Rain (1984)
  • Around the World in a Day (1985)
  • Parade (1986)
  • Sign 'O' the Times (1987)
  • Lovesexy (1988)
  • Batman (1989)
  • Graffiti Bridge (1990)
  • Diamonds and Pearls (1991)
  • Love Symbol Album (1992)
  • Come (1994)
  • The Black Album (1994)
  • The Gold Experience (1995)
  • Girl 6 (1996)
  • Chaos and Disorder (1996)
  • Emancipation (1996)
  • Crystal Ball / The Truth / Kamasutra (1998)
  • Newpower Soul (1998)
  • The Vault: Old Friends 4 Sale (1999)
  • Rave Un2 the Joy Fantastic (1999)
  • The Rainbow Children (2001)
  • One Nite Alone... (2002)
  • Xpectation (2003)
  • N.E.W.S. (2003)
  • The Chocolate Invasion (2004)
  • The Slaughterhouse (2004)
  • C-Note (2004)
  • Musicology (2004)
  • 3121 (2006)
  • Planet Earth (2007)
  • Lotusflow3r / MPLSound (2009)
  • 20Ten (2010)
  • Plectrum Electrum (2014)
  • Art Official Age (2014)
  • HITNRUN Phase One (2015)
  • HITNRUN Phase Two (2015)[73]
  • Piano & A Microphone 1983 (2018)[74][75]
  • Originals (2019)[76]
  • Welcome 2 America (2021)[77]


12.2. 참여 앨범[편집]


  • The Time - The Time (1981)
  • What Time Is It? - The Time (1982)
  • Vanity 6 - Vanity 6 (1982)
  • Ice Cream Castles - The Time (1984)
  • The Glamorous Life - Sheila E. (1984)
  • The Family - The Family (1985)
  • 8 - Madhouse (1987)
  • 16 - Madhouse (1987)
  • 24 - Madhouse (1988)
  • Gold Nigga - New Power Generation (1993)
  • 1-800 New-Funk (1994)
  • Exodus - New Power Generation (1995)


12.3. 라이브 앨범[편집]


  • One Nite Alone... Live! (2002)
  • Indigo Nights (2008)


13. 빌보드 차트인 목록[편집]



13.1. 빌보드 R&B 차트 1위[편집]




13.2. 빌보드 핫 100 1위[편집]


  • When Doves Cry (1984)[78]
  • Let's Go Crazy (1984)[79]
  • Kiss (1986)
  • Batdance (1989)
  • Cream (1991)


13.3. 빌보드 핫 100 2위[편집]




13.4. 빌보드 핫 100 3위 ~ 10위[편집]




13.5. 빌보드 핫 100 11위 ~ 40위[편집]


  • I Wanna Be Your Lover (1979) - 11위
  • 1999 (1982) - 12위
  • Take Me with U (1985) - 25위
  • Mountains (1986) - 23위
  • Partyman (1989) - 18위
  • The Arms of Orion (1989) - 36위
  • Gett Off (1991) - 21위
  • Money Don't Matter 2 Night (1992) - 23위
  • My Name Is Prince (1992) - 36위
  • Letitgo (1994) - 31위
  • I Hate U (1995) - 12위


13.6. 빌보드 핫 100 41 ~ 100위[편집]


  • Soft and Wet (1978) - 92위
  • Controversy (1981) - 70위
  • Let's Pretend We're Married (1983) - 52위
  • America (1985) - 46위
  • Anotherloverholenyohead (1986) - 63위
  • If I Was Your Girlfriend (1987) - 67위
  • New Power Generation (1990) - 64위
  • Insatiable (1991) - 77위
  • Sexy MF (1992) - 66위
  • The Morning Papers (1993) - 44위
  • Pink Cashmere (1993) - 50위
  • Purple Medley (1995) - 84위
  • Gold (1995) - 88위
  • The Greatest Romance Ever Sold (1999) - 63위
  • Call My Name (2004) - 75위
  • Black Sweat (2006) - 60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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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린스라는 예명(藝名,stage name)은 본인의 원래 이름 중 퍼스트 네임에서 따왔다. 이는 마돈나도 마찬가지다.[2] 프린스가 공연한 2007년 슈퍼볼은 슈퍼볼 하프타임쇼 역사중 유일하게 세찬 비가 내린 날이었다. 공연 기획자가 걱정을 하지 않을수가 없던것.[3] 프린스의 대표곡[4] 빌보드 핫 100 1위[5] 실제로 프린스의 디스코그래피는 상식을 초월한다. 80년대를 풍미한 가수의 디스코그래피가 정규작만 39개이며 2000년대 이후 발표한 정규작만 16개라니 이게 말이 되나 싶을 정도.[6] 편의상 Love Symbol이나 Prince Symbol로 부르긴 한다. 'The Artist'이나 'Symbol'도 그 때 만들어진 이름[7] 실제로 앨범 제목, 트랙리스트만 알려지고 발매되지 않은 앨범들이 꽤 많다[8] 가칭. Welcome 2 투어 당시 라이브로만 선보인 신곡들이 있어 20Ten 디럭스가 아닌 새 앨범을 발매한다는 루머가 돌았다. 결국 그런거 없었다.[9] 놀랍게도 아직 과거 앨범 리마스터가 제대로 되지 않은 뮤지션이기도 하다.[10] 공교롭게도 TMZ는 2009년에 또다른 흑인 팝스타인 마이클 잭슨의 사망을 최초로 보도한 적이 있다.[11] 우연인지 프린스, 마이클 잭슨, 그리고 마돈나까지 세 명은 모두 1958년생 동갑이다. 그리고 셋은 서로가 사적으로도 특이한 인연을 지니고 있다.[12] 특히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하이힐.[13] 더 나아가 에릭 클랩튼은 프린스의 곡을 커버하기도 했다.[14] 스티비 닉스, 샤카 칸, 패티 라벨, 시나 이스턴, 마돈나, 뱅글스, 시네이드 오코너, 마티카, 테빈 캠벨 등이 그에게서 곡을 받아 히트시켰다. 심지어 전혀 어울리지 않아보이는 셀린 디온도 곡을 받은 적이 있다.[15] 2020년 나온 사인오더타임스 슈퍼디럭스판에 수록된 "Can I Play With U"가 있는데, 잘 안 맞은 것 치고는 꽤나 좋다.[16] 신스팝뉴 웨이브의 요소가 결합된 Funk rock[17] 심지어는 이것도 👀 와 같은 기호로 표현하기도 했다.[18] 원래부터 프린스는 롤링 스톤스에게 리스펙을 표현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프린스가 말 그대로 뉴비라고 부를만한 시기였을 때 처음으로 프린스와 프린스의 밴드는 천외천급 규모의 경기장에서 공연을 해볼 기회가 생겼다. 이 경기장에서 공연하는 것은 롤링 스톤스였는데 그 롤링 스톤즈 초대로 81년 투어의 오프닝 게스트로 서게 된 것. 그때 프린스는 157cm의 신장에 검은 트렌치코트에 수영복처럼 보이는 비키니와 높은 힐을 신은 모습이었는데, 이런 패션만으로도 당시에는 엄청난 야유가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패션으로도 모자라 프린스는 흑인이었기 때문에 말 그대로 관객들은 폭발했다. 폭풍같은 야유와 각종 음식, 술병, 각종 위험한 물건들이 그와 그의 밴드를 향해 던져졌고, 이것을 본 프린스는 멘탈이 터져버렸다.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잘 안되지만 이때 프린스는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고 4곡을 연주한 뒤 백스테이지에서 오열했고, 멤버들도 그냥 내버려두고 혼자 미네소타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믹 재거“어이구야, 사람들이 나한테 던진 캔이랑 병만 해도 수천 개는 될 거다. 너 진짜로 거물 헤드라이너가 되고 싶은 거 맞냐? 만약 그렇다면 넌 그런 게 날아올 것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거야. 뒈질 준비나 하라고.”라며 믹 재거 본인이 업계에서 수없이 흥행과 부진을 반복하면서 쌓은 경험, 후배의 대한 충고, 그 와중에 어딘가 섞인 껄렁함이 모두 포함된 일갈을 프린스에게 전화로 날렸고, 이를 듣고 프린스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투어에 다시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롤링 스톤스의 믹 재거 급의 거물이면 얼마든지 다른 오프닝 게스트를 불러왔을 수도 있었을텐데, 믹 재거는 프린스가 데뷔할 때부터 눈여겨 볼만한 신인이라고 여겨서 직접 전화를 걸어 섭외도 하고 상상하지도 못한 고비를 만나 괴로워하는 그에게 충고를 했다. 대중음악 역사를 통틀어도 여러가지 의미로 가장 파격적인 두 거물의 인간적인 부분을 볼 수 있는 비하인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충고와 콘서트의 경험을 바탕으로 프린스는 파격적인 음악으로 전 세계를 사로잡은 뮤지션으로 발돋음할 발판을 갖추게 된다.[19] 반면 키스 리처즈는 프린스에 대해 악담을 퍼부었다고 한다. 다만 이 분은 자기네 보컬자신의 절친한테도 악담을 퍼붓는 사람이고, 독설가로서의 컨셉을 갖고 있기에 걸러들을 필요가 있다.[20] 즉 이 통계에 따르면 비단 1980년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대중음악 역사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의미이다.[21] Rolling Stone[22] 다만 프린스 음악의 기본 바탕은 Funk에 기반한 R&B로 평가된다[23] 프린스의 고향이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이며, 평생을 미네소타에서 살았다.[24] 그 유명한 브루노 마스Uptown Funk도 미니애폴리스 사운드의 일종으로 분류된다.[25] 다만 이 노래들에도 성적인 은유가 있다.[26] 157cm[27] 그는 락스타가 아닌 팝스타였지만 많은 락 밴드 기타리스트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다.[28] 심지어 프린스 노래 커버 영상도 막았을 정도[29] 뮤지션, 작곡가, 기타 음악산업 중진 등 총 56명의 패널로 구성된 전문가 집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하였다. 2011년에 한 차례 개정하였으나 리스트에 변동은 거의 없었고 프린스는 기존과 같은 27위를 유지하였다.[30] 롤링 스톤 집필진들이 직접 선정하였다.[31] 어클레임드 뮤직은 개인의 취향을 모두 배제하고 음악 평론가들, 또는 잡지 등의 매체들이 매긴 순위를 종합해서 포인트를 줘서 순위를 매기는 사이트다. 순위가 매겨진 앨범과 곡의 리스트를 공개된 공식을 바탕으로 합해 올타임 아티스트들의 순위도 매긴다.[32] '모든 음악'이라는 사이트 이름에 걸맞게 장르와 국적을 불문한 전 세계 온갖 음반, 뮤지션과 그에 관한 정보와 리뷰를 찾아볼 수 있다. 세계의 300만 장 이상의 온갖 음반, 100만 명 이상의 음악가의 데이터, 3,000만 이상 트랙의 데이터를 가지고 있으며, 수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른 아티스트들에게 가장 많이 영향을 준 아티스트의 순위를 매겼다. 구체적으로는 뮤지션들이 누구에게 영향을 받았는지 인터뷰 자료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그 누적 언급빈도를 바탕으로 선정되었다.[33]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뮤지션들 중에서만 뽑은 것이라서 명예의 전당 헌액 조건들 중 하나인 데뷔 후 경력 25년을 채우지 못한 뮤지션들은 모두 제외됐다.[34] 음악평론가와 현직 뮤지션, 기타 음악산업 종사자 등 총 200명 이상에게 투표를 실시하여 선정하였다. 1998년에도 VH1은 같은 주제로 현역 뮤지션들에게 투표를 실시하여 리스트를 발표했었는데 이때 프린스의 순위는 18위였다.[35] 빌보드 집필진들이 직접 차트 성적이나 판매량 기준이 아닌 영향력, 음악적 유산 등을 고려하여 선정하였다.[36] 스티브 바이는 프린스의 열렬한 팬이다.[원문] If Michael (Jackson) was the King of Pop, Prince should be the Emperor.[37] 일반적으로 작위를 가리킬 때의 왕은 ‘Prince’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지만, 이 발언은 왕을 King이라고 칭한 후 뒤에 Emperor가 나왔으므로 해당 표현이 맞다. 또한 일반적으로 Prince라고 불릴 뿐이지 King도 Emperor 밑의 왕을 쓰이는 표현으로 많이 쓰인다.[38] 믹 재거는 프린스에게 많은 영향을 준 아티스트로 알려져있다.[39] Great Prince[40] 이러한 점으로 인하여 롤링 스톤스브라이언 존스와 가장 비슷하다고 평가받는다. 둘 다 기타 실력도 각 시대 최고의 재능이라 일컬어지며, 올라운더형 악기 연주 능력을 통한 음악 프로듀싱 능력도 각 시대를 대표하는 재능으로 꼽힌다. 단, 프린스는 나이를 먹고 나서도 역대 최고의 기타 실력을 유지한 반면 브라이언 존스는 개인적 문제로 음악 활동을 일찍 마감하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41] 프린스와 비견되는 브라이언 존스, 레드 제플린의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 등과 함께 최고의 록 음악 프로듀서로 거론된다.[42] 실제로 스티브 바이는 프린스의 굉장한 팬이다.[43] 이는 믹 테일러, 리치 블랙모어, 디 에지, 로리 갤러거보다도 높은 순위이다.[44] 이는 키스 리처즈, 에릭 클랩튼, 조지 해리슨, 브라이언 메이보다도 높은 순위이다.[45] 그림도 잘 그렸던 모양이다. 최근 그가 직접 그린 그림이 경매에 나와 한화 약 2억 9천에 값어치가 책정된 적이 있다.[46] 게이설이 계속 퍼져나가자 홈페이지에서 자신의 곡들은 모두 여성에 대한 사랑을 다루고 있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여담으로 프린스와 비견되는 마이클 잭슨도 게이설이 있었지만 아닌 것으로 판명났다.[47] 15살 연하다.[48] 원문: The late(故), great Prince[49] Purple Rain 앨범은 전부 라이브 녹음인데다 격렬한 춤을 추면서도 전곡은 물론이며 특유의 애드립 부분이라도 음정 하나 안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프린스의 완벽주의에 걸렸으니 그냥 넘어 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프린스는 마이클 잭슨, 마돈나와 함께 198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로, 비욘세가 어렸을 때 이미 최고의 인기를 누렸고 비욘세도 프린스의 엄청난 팬이라 리허설을 매일 한시간씩 프린스와 같이 하면서도 가슴이 벅차고 벌벌 떨면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에 프린스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59번째 그래미 공연에서 딸에게 프린스를 오마주하는 패션을 입힌 다음 관객으로 초청하고 공연하는 등 꾸준히 존경을 표현한 적이 있다.[50] 나머지 두 사람은 톰 크루즈, 마이클 잭슨이었다고 한다. 박준형이 스피드 레이서 촬영 때 톰 크루즈가 옆 촬영장에서 촬영하고 있어서 신기해 했는데 주위 사람들이 쳐다보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이유는 탐 크루즈의 계약서에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않아야 한다."라는 조항이 붙어있기 때문이라고 한다.[51] 더구나 그의 히트곡 중 하나인 'Lets Go Crazies'는 미네소타 바이킹스미네소타 와일드가 각각 터치다운과 골 득점시 사용하고 있다.[52] 의역하자면은 세상을 보라색으로 물들여라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53] 참고로 이때 나온 BGM은 토킹 헤즈의 Psycho Killer다.(...)[54] 정확히는 자신이 마이클 잭슨이라고 믿는 환자[55] 코드만 정해두고 하는 즉흥연주다.[56] I Feel for You[57] 4집에서 듀엣으로 부른 "Love Song"[58] "Manic Monday"[59] "Sugar Walls", "101" 등[60] "The Glamorous Life", "A Love Bizarre"[61] "Love...Thy Will Be Done"[62] "With This Tear"[63] "Nothing Compares 2 U"[64] "Round and Round"[65] 이 영화에서 잭 니콜슨의 조커의 이미지 구축에도 크게 일조했던 게 프린스의 음악이다. 대표적으로 조커가 부하들과 미술관에서 반달리즘을 저지를 때 흐르던 'Partyman'과, 후반부에서 조커가 퍼레이드를 하며 고담 시민들에게 돈을 뿌릴때 나왔던 'Trust' 는 배트맨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귓가에 남는 곡. 프린스가 배트맨 TV 시리즈의 주제곡을 재해석하여 극중 사운드와 믹싱한 경쾌한 댄스곡 'Batdance'도 유명한데, 이 곡의 뮤직 비디오에서는 조커와 투페이스, 배트맨의 분장을 한몸에 두른 프린스의 카리스마 넘치는 퍼포먼스를 볼 수 있다. 'Batdance'는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핫 100에서 1위를 하기도 했다. 그 외에 시나 이스턴과 듀엣으로 부른 발라드 'The Arms of Orion'도 빼놓을 수 없는 명곡이다.[66]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가 이 작품에 주역으로 출연했다. 참고로 그녀는 이 작품으로 골든 라즈베리 어워드에서 '최악의 여우조연상', '최악의 신인상'에 후보로 오르는 굴욕을 맛보았다.[67] 체리 문은 무려 5개(...) 부문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그나마 Graffiti Bridge는 5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지만 수상은 면했다.[68] 이 사진은 둘의 라이벌리를 조명하며 최근에 와서야 만들어진 "합성 사진"이다. 마이클 잭슨과 퀸시 존스가 그래미에서 상을 탄 이후의 순간을 담은 사진이고, 프린스는 자신의 공연에서 찍힌 사진이다.[69] 다만 이 둘은 현대에 와서 라이벌로 평가받는 것이지 당대엔 라이벌이란 인식이 없었다.[70] 마이클은 꽤 긴 시간 공을 들여 앨범을 만드는 타입이었고, 프린스는 가히 엄청난 수의 작업량을 보여주는 가수였다. Bad가 만들어지던 같은 시기에 프린스는 Parade, Sign 'O' the Times와 같은 앨범을 연달아 만들고 있었고, 시기상 프린스가 정말 바빴을 수 밖에 없는 시기이기도 했다.[71] 운동신경이 좋은 프린스가 마이클 잭슨을 늘 탁구로 농락했는데, 한번은 계속 농락당하는 것에 짜증이 난 마이클 잭슨이 탁구공을 세게 쳤는데 그게 프린스의 사타구니에 맞았다고 하는 루머도 있으나 이 역시도 라이벌리를 가장한 루머일 뿐이다. 이런 루머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둘이 탁구도 재밌게 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는 점 뿐이다.[72] 자넷 잭슨이 오빠 마이클 잭슨과 집안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는 걸 생각하면 자넷의 입장에서는 좋은 뉘앙스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프린스의 밴드 The Time의 멤버 Jimmy Jam and Terry Lewis가 자넷의 전담 프로듀서가 되면서 프린스와의 관계가 소원해졌고 프린스는 자넷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품게 되었다는 소문도 있다.[73] 생전 발매된 마지막 앨범. Black Is The New Black이라는 앨범을 작업하고 있었지만 중단되었다.[74] 1983년에 녹음된 여러 데모들이 포함된 앨범. 앨범 제목 그대로 프린스의 보컬과 피아노 연주만이 삽입되있다.[75] Purple Rain(노래)의 데모 버전이 실려 있기도 하다.[76] 다른 아티스트에게 준 노래들을 프린스가 부른 앨범. 그 유명한 Nothing Compares 2 U가 실려있다.[77] 사후 첫번째 정규 앨범. 2010~12년 사이 완성되었지만 발매가 취소된 앨범이다.[78] 5주 1위, 1984년 빌보드 연말 차트 1위[79] 1위 할 당시 국내에서는 방송 금지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