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 기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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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 기네스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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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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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우주연상
제29회
(1957년)


제30회
(1958년)


제31회
(1959년)

율 브리너
(왕과 나)

알렉 기네스
(콰이강의 다리)


데이비드 니븐
(세퍼레이트 테이블)


역대 베니스 영화제
파일:베니스 국제 영화제 로고.svg
볼피 컵 - 남우주연상
제18회
(1957년)


제19회
(1958년)


제20회
(1959년)

안소니 프란시오사
(빗물 가득)

알렉 기네스
(말의 입)


제임스 스튜어트
(살인자의 해부)


역대 골든 글로브 시상식
파일:goldenglobe.png
남우주연상 - 드라마(영화)
제14회
(1957년)


제15회
(1958년)


제16회
(1959년)

커크 더글러스
(열정의 랩소디)

알렉 기네스
(콰이강의 다리)


데이비드 니븐
(세퍼레이트 테이블)


역대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파일:BAFTA 로고.svg
남우주연상
제10회
(1957년)


제11회
(1958년)


제12회
(1959년)

피터 핀치
(A Town Like Alice)
프랑수아 페리에
(목로주점)

알렉 기네스
(콰이강의 다리)

헨리 폰다
(12인의 성난 사람들)

트레버 하워드
(열쇠)
시드니 푸아티에이
(흑과 백)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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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로고.svg
이름
알렉 기네스
ALEC GUINNESS

분야
영화
입성날짜
1960년 2월 8일
위치
1559 Vine Street



Sir Alec Guinness
CH, C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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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알렉 기네스 드커프 (Alec Guinness de Cuffe)
국적
[[영국|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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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출생
1914년 4월 2일
[[잉글랜드|
잉글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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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런던 메이다 베일
사망
2000년 8월 5일 (향년 86세)
[[잉글랜드|
잉글랜드
display: none; display: 잉글랜드"
행정구
]]
미드허스트
신장
177cm
묘지
영국 케임브리지
가족
배우자: 메룰러 샐러먼(1938년 – 2000년)[1]
아들: 매튜 기네스(1940년 6월 6일 ~ )
활동
1934년 – 1996년

1. 개요
2. 생애
3. 출연
3.1. 대표작
4. 서훈



1. 개요[편집]


영국배우. 로런스 올리비에, 존 길구드 등과 함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영국을 대표하는 배우다. 세 사람 모두 셰익스피어 연극의 대가로 불리면서, 이후에는 할리우드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것까지 대단히 유사한 과정을 밟아왔다. 그리고 셋 다 기사작위를 받은 것도 공통점.[2]


2. 생애[편집]


그의 첫 일은 광고를 카피하는 작업이었다. 그러다가 22살에 존 길구드가 제작하던 셰익스피어 연극 햄릿에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본격적으로 셰익스피어 연극과의 인연을 시작했다. 그 동안 존 길구드, 페기 애시크로프트 등의 명배우들과 한 무대에 서면서 경력을 이어나갔다. 2차 대전이 발발하자 해군으로 참전했다. 그가 한일은 시칠리아와 알바 섬 침공때 상륙선을 조종하고,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에 물자를 제공한 것이었다.

종전 후에는 미국 브로드웨이로 건너가 다양한 역할을 맡았고, 그 과정에서 토니상을 수상하기도 하는 등 89년 마지막 연극에 출연할 때까지 일생을 무대에 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영화같은 경우는 유독 페르소나 관계의 인물이라고 할 정도로 데이비드 린 감독과 함께한 작품이 많다. <위대한 유산>[3]을 시작으로, <올리버 트위스트[4]>, <콰이 강의 다리>[5], <아라비아의 로렌스>, <닥터 지바고>, <인도로 가는 길 A Passage to India> 등 총 6편이다.[6] 린은 물론이고, 기네스도 이 영화들을 통해 명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져간 셈이니 윈윈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이런 행보와는 다르게 두 사람의 관계는 좋지는 않은 편이었는데, 그럼에도 린은 기네스를 'my good luck charm'로 부르며 계속 캐스팅했다고.[7]

콰이 강의 다리의 니콜슨 대령과 함께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 준, 그리고 끝까지 불멸을 보장하게 만들어준 캐릭터가 바로 스타워즈오비완 케노비이다. 하지만 알렉 기네스가 당시 친구에게 썼던 편지에 따르면 그는 처음 스타워즈 대본을 읽고는, 애들 동화같은 유치한 쓰레기(fairy tale rubbish)로 여겼다고 한다. 그래도 영화가 깔고 있는 사상과 교훈을 괜찮게 봤고, 출연료도 2배로 인상해준다는 제의가 오자 결정했다고 한다.[8][9] 나중에는 수익 퍼센티지 계약으로 노후 걱정 없을 만큼의 돈도 풍족하게 벌었다. 또한 영화가 대박을 칠 것이라 생각한 몇 안 되는 배우들 중 한 명이라고 전해진다.

촬영된 영화를 처음 보고 그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고 한다.

스펙터클하고, 기술적인 성취가 놀랄 만한 영화이며, 아주 시끄럽지만 흥미진진하고 훈훈한 영화이다. 마지막의 전투씬은 5분만 더 짧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느꼈고, 일부 대화들은 짜증났으며, 대부분은 소란 속에 묻혀버렸다.[10]

그래도 대단히 생생한 경험이다.

"It's a pretty staggering film as spectacle and technically brilliant. Exciting, very noisy and warm-hearted. The battle scenes at the end go on for five minutes too long, I feel, and some of the dialogue is excruciating and much of it is lost in noise, but it remains a vivid experience."


오비완 캐릭터를 통해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에 후보까지 올랐지만, 당시에는 스타워즈로 얻은 명성을 썩 좋아하진 않았다. 그래도 조지 루카스마크 해밀, 캐리 피셔, 해리슨 포드등이 입을 모아 그의 프로페셔널함과 자세를 칭송한 것을 보면 영화 촬영에 허투루 임하지는 않았다. 오비완이 죽는 당초의 각본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다고 알려졌지만, 99년에 한 인터뷰에 따르면 오비완을 죽이는 건 그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조지 루카스에게 그 방법이 오비완을 강한 캐릭터로 만드는 것이라 설득했다고 한다.

스타워즈 자체는 대단한 영화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영화에서 나오는 두둑한 수입은 노배우의 여생을 여유롭게 만들어주었고 그의 마음을 너그럽게 하는 데에는 충분해서 스타워즈 프렌차이즈 자체에는 기네스는 딱히 불만이 없었다.[11] 하지만 그를 오비완으로만 아는 사람들에게는 짜증을 느꼈으며[12], 스타워즈 팬들에게 온 편지는 읽지도 않고 버렸다고 한다.

그의 97년도 자서전에 따르면 이러한 일화도 있다. 스타워즈를 100번도 넘게 봤다는 어린이에게 '그것은 네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스타워즈를 그만 볼 것을 약속하는 조건으로 사인을 해주었다. 아이에게 그런 말이 상처가 될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 아이가 언제까지나 환상속에만 살지 않고 현실을 보면서 정신적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 말한 것이다. 말의 의도 자체는 틀리지는 않았지만 그걸 깨닫기엔 아이가 너무 어렸다.

내가 아이에게 '스타워즈는 그만 보겠다고 약속해주지 않으련?'하고 묻자, 아이는 울음을 터트렸다. 아이의 어머니는 화가 나서, '어떻게 애한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죠?' 하고는 아이를 끌고 가버렸다. 그 애 어머니의 말이 맞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난 그저 그 소년이 물론 지금은 서른이 넘었겠지만 유치하고 진부한 판타지 세계에 살지 않기를 바랐을 뿐이다.

"'Well,' I said, 'do you think you could promise never to see Star Wars again?' He burst into tears. His mother drew herself up to an immense height. 'What a dreadful thing to say to a child!' she barked, and dragged the poor kid away. Maybe she was right but I just hope the lad, now in his thirties, is not living in a fantasy world of secondhand, childish banalities."


영국 내에서는 알렉 기네스가 맡은 배역들 중 오비완만큼이나 유명한 캐릭터가 바로 79년 BBC에 의해 드라마화된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와 <스마일리의 사람들>의 조지 스마일리다. 이 두 편으로 영국 아카데미 TV부문 남우주연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다. 2011년 영화화된 작품에선 게리 올드먼이 명연기를 보여줘서 조지 스마일리 하면 으레 이쪽을 떠올리지만 그 이전까지는 알렉 기네스를 떠올렸고, 개중에는 기네스 쪽의 스마일리를 더 높게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파일:external/i.dailymail.co.uk/article-2283983-002DC92400000258-624_306x423.jpg
80년 아카데미 공로상을 수상했다. 말년에는 녹내장과 전립선암에 시달렸는데 결국 2000년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근엄한 배역을 주로 맡았지만 말년의 영화에서는 스너프 필름을 제작하는 조폭의 두목으로 열연한 적도 있으며, 1976년 코미디 추리영화 <5인의 명탐정 Murder By Death>에서 맹인 집사 제임서 벤슨멈(Jamesir Bensonmum)으로 나와 코미디 연극에서 갈고 닦은 솜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이름부터가 코미디인데, 제임 노인네, 벤슨 할멈이라는 뜻이다. 이 이름 소개 시퀀스는 데이비드 니븐매기 스미스, 두 영국 출신 명배우들과 함께 했다. 이름을 들은 니븐이 "이상한데! (How Odd!)"라며 놀라자, 바로 기네스가 '그건 저희 아버지 이름입니다. 하워드(Howard) 벤슨멈'으로 드립을 치고, 그에 질린 스미스의 연기가 일품이다. 오비완 케노비나 밑에 다른 대표작 이미지를 생각하고 이 작품을 보면 같은 배우가 맞나 싶을 정도. 참고로, 이 영화 촬영 중 들어온 대본이 바로 다음 출연작인 새로운 희망이다.

또한 재미있게도 그는 몇 차례 예언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예컨데 그가 제임스 딘을 만나 식사를 하던 중, 그가 새로 장만한 차를 보고는 "당장 저걸 갖다 버리지 않으면 사고를 당할 것이다"라는 농담을 던졌다. 딘도 이 말을 웃어 넘겼는데 정말로 그 해에 딘이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말았다. 스타워즈 촬영 당시에 오비완 역으로 캐스팅 되었을 때에도 각본을 보고는 단순히 유치한 판타지 영화로 치부했지만, 그것이 제법 대박날 것이라는 감이 들어서 수익 퍼센티지 계약까지 맺었고 덕분에 풍족한 노후를 보낼 수 있었던 것도 유명한 일화.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는 그가 정말 포스 능력자가 아니었나 하는 농담이 돌기도 한다.

글을 잘 쓰는 배우로도 유명했다. 본인이 직접 쓴 자서전은 상당히 날카롭고 명문이라 배우 자서전 중에서는 완성도가 높다는 평이 많다. 또한 정치적으로 깨어있는 사람이었던지, 본인이 유럽 백인 남성이라는 사실에 대해 반성한다는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가족 관계로는 아내와 아들이 있는데, 사실은 양성애자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동성애가 유죄이던 1946년에는 동성애 행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적도 있었다. 이 사실은 사후에 출판된 공인 자서전에서야 밝혀졌는데, 생전 주변인들에게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고.

3. 출연[편집]



3.1. 대표작[편집]




4. 서훈[편집]


  • 1955년 3등급 대영제국 훈장(CBE)
  • 1959년 기사작위(Knight Bachelor)
  • 1994년 컴패니언 오브 아너(CH)

[1] 1914년 10월 16일 ~ 2000년 10월 18일[2] 알렉 기네스는 1959년 기사작위(Knight Bachelor)를 받았다. 1959년 신년서훈명단(1959 New Year Honours)에 등재.[3] 주인공 핍의 친구인 허버트 역할로 나왔으며, 39년에 기네스가 출연한 동명의 연극을 본 린이 영화화하면서 기네스에게 다시 그 역할을 맡겼다.[4] 어디에 나왔는지 궁금한 분이 많은데 비열한 유대인 페이긴이 바로 기네스. 이 역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영국내 유대인 단체에서 정식 항의가 들어올 정도였다... 한때 반유대주의자라는 이야기가 돌 정도였다.[5]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6] 다만 데이비드 린 감독의 영화인 <라이언의 딸>에서는 안 나오고 알렉 기네스와 이미지가 비슷한 로버트 미첨이 주연했다.[7] 다만 후기작으로 갈수록 주연보다는 비중있는 조연으로 나온다.[8] 두 배로 준다 할 만한 것이, 스타워즈에 나오는 배우 중 유명한 배우라고는 알렉 기네스와 윌허프 타킨 역을 맡은 피터 쿠싱 둘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9] 더불어 해리슨 포드의 이름을 해리슨이 아닌, 테니슨(Tennyson)으로 생각하기도 했다고...[10] 왜 소란스러웠다고 썼는지 촬영 당시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촬영을 위해서 사용된 폭발 효과들이 그 원인으로 보인다.[11] 알렉 기네스는 이미 스타워즈 이전에도 이후로도 명망이 높았던 배우라서 스타워즈에 애착이 크진 않았다.[12] 캐리 피셔, 이완 맥그리거, 웨지 안틸레스 역의 데니스 로슨 등도 비슷한 고충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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