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 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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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페이지
짐 맥카티
크리스 드레야
키스 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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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멤버 ]






제프 벡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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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5ARYZvK4L2afx8AcWcf6kF-1.jpg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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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제프 벡
JEFF BECK

헌액 부문
공연자 (Performers)
멤버
(개인자격)
입성 연도
2009년
후보자격 연도
1993년
후보선정 연도
2009년









제프 벡
Jeff Beck


본명
제프리 아널드 벡
Geoffrey Arnold Beck
출생
1944년 6월 24일
영국 잉글랜드 서리주 웰링턴
사망
2023년 1월 10일 (향년 78세)
영국 잉글랜드 이스트서식스주 워드허스트
국적
[[영국|

영국
display: none; display: 영국"
행정구
]]

신체
178cm
부모
아널드 벡
에델 벡
남매
누이 아네타 벡
학력
서튼 매너 학교
서튼 이스트 카운티 신 중등 학교
윔블던 예술대학[1]
직업
기타리스트, 송라이터
장르
사이키델릭 록, 퓨전 재즈, 인스트루멘탈 록[2]
데뷔
1965년 야드버즈 2집 'For Your Love'
소속
야드버즈 (1965–1966)
제프 벡 그룹 (1967–1969, 1970–1972)
벡, 보거트 & 어피스 (1972–1974)
무소속 (1974–2023)
서명
파일:Jeff-Beck-Autograph.jpg
레이블
EMI, Epic
활동
1964년 – 2023년
배우자
패트리샤 브라운 (1963 - 1967)
산드라 캐쉬 (2005 - 2023)[3]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
2. 활동
2.1. 야드버즈 시절
2.2. 초기: 제프 벡 그룹과 벡, 보거트 & 어피스
2.3. 전성기: 솔로 시절과 얀 해머와의 조인트
2.4. 이후의 활동
2.5. 사망
3. 상세
4. 사용 장비
4.1.1. 시그니처 모델
4.2. 앰프
4.3. 이펙터
5. 디스코그래피
6. 그에 대한 말
7. 그 외



1. 개요[편집]


제프 벡(Jeff Beck)영국기타리스트이다.

한국에선 에릭 클랩튼, 지미 페이지와 함께 소위 '록 3대 기타리스트'라는 타이틀로 불리며[4], 저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야드버즈에서 기타를 연주했던 사람이다. 저 두 사람과 달리 상업적으로 큰 성공은 거두지 못하였지만, 후대 기타리스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된다.


2. 활동[편집]



2.1. 야드버즈 시절[편집]


그는 1944년 6월 24일 잉글랜드 월링턴에서 태어났다. 10세때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를 하기도 했고 처음에는 베이스를 배우기도 했지만 이후 기타에 입문하여 척 베리리틀 리차드같은 초기 로큰롤 음악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2년제 아트 스쿨을 다니면서 세션 활동을 하다가 에릭 클랩튼의 후임으로 야드버즈에 가입해 지미 페이지와 함께 기타리스트로 활약하게 된다. 그는 야드버즈에 들어와 에릭 클랩튼이나 지미 페이지와 달리 굉장히 록적인 감성이 충만한 거칠고 그루브한, 초기의 하드록이라 할만한 걸출한 연주를 보여주며 주목을 받게된다. 'I'm Not Talking', 'Jeff's Blues' 같은 곡들은 지금 들어도 신명나는 훌륭한 로큰롤 넘버들이다. 야드버즈 때의 제프 벡이 최고였다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야드버즈를 지미 페이지한테 맡기고 탈퇴하면서, 밴드를 아직 결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미 페이지, 존 폴 존스, 니키 홉킨스, 키스 문 같은 쟁쟁한 멤버들의 도움으로 A사이드 'Beck's Bolero', B사이드 'Hi Ho Silver Lining'로 싱글을 낸 뒤 곧 그의 밴드 1기 제프 벡 그룹을 결성한다.

이때 잠깐 핑크 플로이드에서 탈퇴한 시드 바렛을 대신해 기타리스트로 들어오란 부름을 받았지만 무산되었다.


2.2. 초기: 제프 벡 그룹과 벡, 보거트 & 어피스[편집]


그는 보컬로드 스튜어트, 베이스에 로니 우드, 드럼에 믹 웰러[5], 2집부턴 키보드에 니키 홉킨스라는 거의 크림에도 밀리지않는 사기적인 멤버들로, Truth(1968)와 Beck-Ola(1969) 두 앨범을 발표한다.[6] 그런데 초기 프로듀서 미키 모스트가 밴드의 리더는 직접 노래를 불러야한다는 고루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 제프 벡이 Tally Man, Hi Ho Silver Lining 등의 노래를 직접 불렀다.[7] 이 두 앨범은 록 역사상 위대한 앨범들로 인정받고 있으며, Truth가 초기 블루스 록의 모습에 가깝다면, Beck-Ola는 좀 더 전형적인 하드록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 Truth에는 야드버즈의 곡 Shapes of Things과 윌리 딕슨의 고전 You Shook Me가 실려있고[8] 제프 벡 솔로명의로 발매된 싱글에 수록된 Beck's Bolero[9], 로드 스튜어트의 보컬과 니키 홉킨스의 피아노가 빛나는 블루스 Blues Deluxe 또한 명곡이다.

  • Beck-Ola에는 앨비스 프레슬리의 고전 All Shook Up, Jailhouse Rock과 추후에 로니 우드와 로드 스튜어트가 독립해 결성한 밴드 페이시스도 본인들의 앨범에 실은 Plynth (Water Down the Drain), 그리고 당시로서는 상당히 무거운 분위기의 The Hangman's Knee와 Rice Pudding[10]이 실려있다. 이건 제프 벡이 앨범의 라이너 노트에서 밝힌 내용으로, 당시 초창기 하드록과 헤비메탈을 선도한 밴드인 바닐라 퍼지의 영향을 받아 무겁고 반복적인 베이스 비트를 본인의 음악에 도입해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밴드는 로드 스튜어트와 로니 우드의 갈등으로 곧 해산되고, 제프 벡은 보컬리스트 바비 텐치, 키보디스트 막스 미들턴, 드러머 코지 파웰을 받아들여 제 2기 제프 벡 그룹을 결성한다. 이들은 R&B 냄새가 충만한 Rough and Ready, Jeff Beck Group 두 앨범을 발매한다.

이후 제프 벡은 이 밴드도 해산시키고 위에서 언급한 바닐라 퍼지의 드러머 카마인 어피스와 베이시스트 팀 보거트와 함께 새로운 밴드 벡 보거트 앤 어피스(Beck, Bogert & Appice)를 결성하고 셀프 타이틀로 한 장의 앨범과 일본 한정으로 라이브 앨범을 낸다.

  • 드러머 카마인 어피스와 베이시스트 팀 보거트는 제프 벡 그룹 때의 멤버들에게 꿇리지 않는 굉장한 연주자들이었고, 이들은 이 앨범에서 당시 딥 퍼플레드 제플린에 전혀 밀리지 않는, 오히려 더 능가하는 엄청난 연주를 들려줬다. 이들의 음악은 여기서 이미 어느정도 재즈로의 방향성을 보여줬다. 재즈 퓨전의 대표주자였던 기타리스트 존 맥러플린의 밴드 마하비쉬누 오케스트라의 음악에 영향을 받은것으로 보이는데, 얼마 후 이 밴드 멤버들과 음악적 교류를 가지게 되기도 했다. 보컬은 드러머인 카마인 어피스가 맡았고, 스티비 원더의 원곡 Superstition과 아름다운 발라드 Sweet Sweet Surrender 등이 명곡이다. 저 Superstition은 원래 스티비 원더가 제프 벡에 주려고 했던 하드록 넘버였으나, 스티비 원더의 소속사가 이 곡을 펑크 버전으로 편곡하여 스티비 원더 명의의 싱글로 먼저 내버렸는데, 그게 빌보드 1위를 달성하며 누구나 한번 쯤은 들어본 명곡이 되어버린 것이다. [11]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서 협연한 Superstition 라이브


2.3. 전성기: 솔로 시절과 얀 해머와의 조인트[편집]


제프 벡은 벡 보거트 앤 어피스도 또 해산하고 솔로로 활동하며 Blow by Blow라는 앨범을 내는데, 이 앨범을 흔히 제프 벡 최고의 앨범이라고 얘기한다. 재즈적인 지향성이 이미 확고해진 상태에서 일렉트릭 기타가 발휘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다 실험해본 걸작중의 걸작이라고 얘기한다. 비틀즈의 She's a Woman, 스티비 원더의 Cause We've Ended as Lovers, Thelonius[12], Freeway Jam 등등 명곡이 넘쳐난다.

이후에도 Wired같은 명반을 내고, 상술한 마하비쉬누 오케스트라 출신의 키보디스트 얀 해머와 협연한 라이브 앨범인 Jeff Beck with the Jan Hammer Group Live를 냈는데, 이 앨범 역시 명반이다. 얀 해머가 작곡한 곡이자 앨범 수록곡인 Blue Wind 라이브


2.4. 이후의 활동[편집]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제프 벡은 어떤 한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변화와 실험을 계속해왔다.

80년대Blow by BlowWired에 이은 재즈 퓨전 앨범인 There And Back을 발매하기도 했으며,# 제프 벡 그룹에서 함께 활동한 로드 스튜어트와 다시 만나 Flash 앨범에서 커티스 메이필드가스펠 블루스 People Get Ready를 함께 작업하기도 했다.#

90년대엔 Big Town Playboys란 밴드와 함께 진 빈센트의 곡 위주의 로커빌리 커버 앨범 Crazy Legs을 냈고,# 테크노, 일렉트로니카 위주의 앨범인 Who Else!를 내기도 했다.#

21세기 들어서도 백악관믹 재거와 함께 초청받고# 조니 뎁과 함께 앨범을 내는 등# 상당히 화려한 행보를 보여줬다.


2.5. 사망[편집]


2023년 1월 10일에 갑자기 발병한 세균성 뇌수막염으로 인해 향년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틀 뒤 1월 12일 벡의 공식 사이트엔 "그가 급성 세균성 수막염을 앓다가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는 글이 올라왔다.국내 기사

사망 근래까지 오지 오스본의 앨범에 피처링으로 참여하는 등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갑작스런 사망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표하였다. 동시에 그를 향한 추모의 메시지가 이어졌다.




3. 상세[편집]






1986년 일본 나가노 현 라이브[13]
1999년 일본 도쿄 라이브




2007년 영국 런던 라이브
2022년 미국 뉴욕 라이브[14]
그는 마찬가지로 야드버즈를 거쳐갔던 에릭 클랩튼, 지미 페이지와 달리 상업적으로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지만, 상업적인 성공, 그리고 이미 완성한 연주 스타일에만 머무르며 안주하던 그들과는 달리, 기존의 연주 기법을 연구하는 동시에 새로운 기법과 스타일을 도입해가며 끊임없이 변형/발전시켰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뮤지션/기타리스트로서 가장 충실했던 인물로 평가된다. 초기에 결성된 멤버로 밴드를 계속 이어갔다면 멤버들의 뛰어난 실력에 의지하여 충분히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어 안락하게 지금까지 밴드 활동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음악적 스타일을 변화시켜 가며 그 때마다 필요한 멤버들을 모으고 또 해산시켜가며 가장 그 음악적 컨셉에 맞는 작품을 발표해왔다.

그래서 그의 음악들을 단 하나의 장르나 스타일로 정의한다는 건 바보같은 짓이다. 그는 초기에는 누구나 그랬듯 블루스에 기초한 록 연주를 들려주었고 이후 최초의 하드 록/헤비 메탈 스타일의 연주를 들려주었지만, 이후 재즈적인 연주나 컨트리/서던 록에 기반한 연주쪽으로 기울기도 했고, 잠시 초창기 로커빌리 연주를 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노년기에 들어서도 그 실험적인 정신은 쇠퇴하지 않아 1990년대 이후엔 테크노일렉트로니카에 경도된 연주를 시도하기도 했다.

속주에 특화된 그런 기타리스트는 절대 아니었지만, 제프 벡의 연주에서 가장 주목되고 고평가 받았던 부분은 바로 극한으로 갈고 닦은 뉘앙스표현력이다. 기타라는 악기를 악기가 아닌, 마치 몸의 일부분처럼 다룰 정도로 그 뉘앙스 표현이 훌륭했는데, 한 음 한 음을 격정적이고 또렷하게 감정을 실어 연주하였으며, 그의 대표곡인 Cause We've Ended as Lovers같은 곡을 들어보면 말 그대로 기타가 울부짖는다는 말이 단순한 비유 레벨에서 끝나지 아니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시도들 끝에 왼손은 코드를 짚기만 하고 핑거스타일로 검지와 엄지 등으로 현을 치는것과 동시에 나머지 손가락으로 비브라토 암을 흔들거나 치면서 독특한 톤을 내는 연주의 스타일을 완성했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 25주년 공연에서 비틀즈A Day in the Life를 연주하는 이 영상을 보면 어떤 스타일인지 알 수 있다. 비브라토 암의 존재 이유를 누구보다 잘 나타내주는 기타리스트고 독보적인 연주실력을 보여준다.

야드버즈 출신의 다른 기타리스트들(에릭 클랩튼, 지미 페이지)이 지금에 와서는 극복했다고는 해도 커리어 내내 약물 중독이나 사생활 문제로 큰 곤혹을 치뤘던 반면, 마약, 음주, 흡연 중 어떠한 것도 즐기지 않았던, 인간적으로도 훌륭한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4. 사용 장비[편집]



4.1. 일렉트릭 기타[편집]


제프 벡은 초창기에는 펜더 에스콰이어를, 그 이후로는 레스폴을 사용하다가 최종적으로는 스트라토캐스터를 본인의 메인기타로 삼았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Jeff_Beck_with_1954_Esquire.jpg}}} ||
1954년에 생산된 펜더 에스콰이어로, 초창기 제프 벡의 메인 기타였다. 본래 제프 벡이 야드버즈에 있을 적인 1965년에 함께 투어를 진행했던 워커 브라더스(Walker Brothers)라는 밴드의 존 워커(John Walker)가 소유하고 있던 에스콰이어로, 투어 도중 그가 제프 벡에게 이 기타를 75파운드에 살 것을 제안했고, 제프 벡이 이를 수락하면서 얻게 되었다. 그 이후로 계속해서 제프 벡의 메인 기타로 활약했으나 대략 9년 뒤인 1974년에 그가 벡, 보거트 & 어피스의 두번째 앨범[15]을 작업하던 도중, 시모어 던컨사의 창립자인 시모어 W. 던컨이 개조한 텔레캐스터[16]와 이 에스콰이어를 교환하였고, 그렇게 제프 벡의 손을 떠나게 된다. 제프 벡은 이후 여러 번 인터뷰에서 이 때의 결정을 후회한다고 밝혔다.
추후 펜더 커스텀 샵의 트리뷰트 시리즈를 통해 원본 모델을 완벽하게 복각한 레플리카 모델이 생산되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Jeff_Beck_with_1954_Oxblood_Les_Paul.jpg}}} ||
1954년에 생산된 깁슨 레스폴이다. 본래 1954년에 생산된 깁슨 레스폴들은 골드 탑(Gold Top)이라 불리는 금색 피니쉬로 마감되었으나, 그는 이 금색 피니쉬를 모두 벗겨내고 검붉은색으로 다시 도색했으며, 픽업 또한 기존의 P-90에서 오픈형 험버커 픽업으로 교체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었다. 브릿지 또한 54년도 모델답게 튠오매틱 브릿지가 아닌 레스폴 스페셜이나 주니어에 장착되는 랩어라운드 브릿지를 장착하였다. 옥스블러드(Oxblood)라는 명칭은 앞서 언급된 검붉은 피니쉬 색에서 따온 것으로, 해당 레스폴의 애칭 겸 피니쉬 이름[17]이기도 하다.
제프 벡의 전성기로 일컬어지는 1970년대 Blow by Blow 앨범을 녹음할 때 사용했던 악기로도 유명하며, 해당 앨범의 표지에 그려진 악기 또한 이 레스폴이다. 추후 깁슨 커스텀 샵에서 해당 악기를 완벽하게 복각한 모델을 소량 생산하기도 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Jeff_Beck_with_Tele-gib.jpg}}} ||
픽업 브랜드 시모어 던컨의 창립자인 시모어 W. 던컨[18]이 제프 벡에게 선물한 텔레캐스터. 당시 영국 런던에 거주하고 있던 던컨이 우연히 제프 벡과 인연을 트게 되면서 그를 위해 제작한 악기이다. 원본이 되는 악기는 1959년에 생산된 버터스카치 색상 텔레캐스터인데, 던컨은 이 텔레캐스터에 원래 장착되어 있던 로즈우드 넥을 제거하고, 다른 곳에서 가져온 메이플 넥을 장착하였고, 픽업을 제거한 뒤 한 때 로니 맥이 소유하고 있던 파손된 1959년식 깁슨 플라잉 V에 장착되어 있던 PAF 험버커 픽업의 보빈을 토대로 직접 픽업을 와운딩, 장착하여 해당 악기를 완성했다.[19] 텔레-깁이라는 명칭은 텔레캐스터를 기반으로 깁슨의 악기들과 비슷한 개조를 했다는 데에서 착안한 이름으로, 해당 악기를 만든 던컨 본인이 작명한 것이다. 완성된 텔레-깁은 벡, 보거트 & 어피스의 두번째 앨범을 녹음 중이던 제프 벡에게 전달되었고, 벡은 이 텔레-깁을 Blow by Blow의 수록곡 Cause We've Ended as Lovers, Freeway Jam의 연주에 사용하였다.
여담으로 이후 벡은 던컨에게 악기를 제작해준 감사의 의미로 본인이 가지고 있는 악기 중 하나를 가져가도록 해주었고, 이 때 던컨이 선택하여 가져간 악기가 상술한 1954년펜더 에스콰이어이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Jeff_Beck_with_Jackson_Soloist_Tina.jpg}}} ||
잭슨 기타에서 제작한 솔로이스트 모델로, Tina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분홍색 피니쉬에 플로이드 로즈 브릿지, 정통 스트랫을 연상시키는 싱글 코일 픽업 세 개가 장착된 구성으로, 1980년대 중반에 자주 사용되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Jeff_Beck_with_CS_OW_Stratocaster.jpg}}} ||
펜더 커스텀 샵의 마스터 빌더 J.W. 블랙이 각각 1993년에 제작한 로즈우드 지판 넥과 2년 뒤인 1995년에 제작한 올림픽 화이트 바디를 결합한 기타이다.
흔히 볼 수 있는 엘더애쉬가 아닌 베이스우드 바디이며, 너트는 아래에 나올 첫 시그니처 모델처럼 너트가 윌킨슨 롤러 너트이지만, 픽업은 일반적인 스트랫용 픽업[20]이 장착되어 있는 등 여러모로 아래에 나올 펜더의 두 시그니처 모델들을 융합해놓은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Jeff_Beck_with_RH_Strat.jpg}}} ||
2016년도 Loud Hailer 투어에서부터 사용되었던 악기로, 지미 헨드릭스 시그니처 스트라토캐스터처럼 리버스 헤드 사양이다.[21] 지판의 22프렛 이후로 살짝 튀어나온 끝부분을 잘 보면 특이하게도 텔레캐스터처럼 모서리가 거의 직각에 가까운 각도로 깎여있는데, 일반 펜더 스트랫들은 여길 둥글게 마감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생각해보면 매우 특이한 부분. 그 외 사양은 2001년도 이전 시그니처 모델, 93/95 커스텀 샵 스트랫과 유사하다.

위 기타들 외에도 깁슨 L-5, 그레치 듀오젯, 펜더 멕시코 텔레캐스터/스트라토캐스터 등을 사용했다.


4.1.1. 시그니처 모델[편집]


  • Fender Jeff Beck Signature Stratocaster (1991-2001)
1991년펜더에서 제작해준 첫 번째 시그니처 스트라토캐스터. 당시 생산되던 스트랫 플러스 모델을 기반으로 제작되었으며, 그렇기에 많은 부분에서 사양이 겹친다. 사진에 나온 보라색 피니쉬 모델을 포함하여 서프 그린, 올림픽 화이트 색상까지 총 세 가지 피니쉬가 제공되었다. 1991년 처음 발매 당시에는 같은 시기 펜더 멕시코 스탠다드에서 사용되던 도안과 유사한 데칼이 부착되었으나, 대략 1995년부터 50년대 스타일 스파게티 로고로 바뀌었고, 지판에도 초창기에는 일부 개체에 한해 포 페로가 사용되었으나, 곧 로즈우드로 단일화되었다.
일반형 스트랫 플러스와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은 브릿지 픽업으로 듀얼 골드 레이스 센서 픽업을 채용했다는 부분인데, 별도의 푸쉬풀 회로가 내장되어 톤 노브를 뽑으면 코일 스플릿 기능이 동작되어 싱글 코일 픽업에 가까운 소리를 낼 수 있었다.
2001년까지 생산되다가 아래의 두 번째 시그니처 겸 개선판이 나오면서 단종되었는데, 제프 벡은 추후 이 모델과 비슷한 사양이면서 동시에 픽업은 일반적인 스트랫 픽업이 장착된 펜더 커스텀 샵 제작 모델을 무대에서 자주 사용하였다.

  • Fender Jeff Beck Signature Stratocaster (2001-)
파일:Fender_Jeff_Beck_Signature_Stratocaster_SG.jpg
2001년펜더에서 제작해준 두 번째 시그니처 스트라토캐스터이다. 위 모델을 기반으로 여러 군데 개선이 이루어진 것이 특징인데, 너트가 기존 윌킨슨제 롤러 너트에서 펜더에서 개발한 LSR 롤러 너트로 교체되었고, 넥 힐에는 쉬운 하이프렛 접근성을 위해 가벼운 힐 컷이 되어있으며, 결정적으로 기존에 사용하던 레이스 센서 픽업 세트가 펜더의 핫 노이즈리스 싱글 코일 픽업 세트로 교체되었다. 그래서 픽업 구성적으로만 보면 더욱 정통 스트랫 사양에 가깝게 개선되었다.
그 외에는 구형 시그니처 모델에서 제공되던 퍼플 피니쉬가 사라졌고, 오직 올림픽 화이트와 서프 그린 색상만이 제공된다.


4.2. 앰프[편집]


마샬의 가장 명성 높은 앰프 중 하나.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사랑한 앰프인 만큼 제프 벡 또한 이 앰프를 즐겨 사용했다.

피트 타운젠드마샬에게 더 큰 와트 수의 앰프를 요청해 만들어진 앰프. 제프 벡의 대규모 라이브 영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두 번째로 잘 알려진 제프 벡의 앰프이다. 1990년대부터 사용하였고, 제프 벡은 이 앰프를 클론 센타우르와 조합해 즐겨 사용했다.

2013년에 공개된 마샬의 보급형 100와트 진공관 앰프 헤드. 베트남에서 생산된 제품이며, 가격 또한 저렴한 편이기에 여러 고가의 악기들을 사용하던 제프 벡 같은 사람이 썼다하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 횟수는 적더라도 실제로 사용했다.

파일:Fender_Blackface_Twin_Reverb_Amp_Front_1965-1967.jpg
Fender의 가장 명성 높은 앰프 중 하나. 라이브 영상들을 찾아보면 무대 뒷편에 여러 대가 세워져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다.

  • Magnatone Super Fifty-Nine MKII "BECKTONE"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Magnatone_Super_Fifty-Nine_MKII_BECKTONE_Amp.jpg}}} ||
마그나톤 앰프에서 제작한 앰프로, 제프 벡을 위해 특별히 제작되어 전면부 브랜드 로고 자리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MAGNATONE 대신 BECKTONE이라 적힌 것이 특징이다. 커리어 말기인 2010년대에 사용되었다.


4.3. 이펙터[편집]



제프 벡의 2022년도 페달보드


제프 벡의 2018년도 페달보드


제프 벡의 2013년도 페달보드[22]

  • Klon Centaur
  • ProCo Turbo Rat
  • J. Rockett Audio Design Archer[23]
  • MXR Super Badass Variac Fuzz
  • MXR Power Flanger
  • MXR Carbon Copy Analog Delay
  • MXR MC404 CAE Wah
  • MXR Talk Box
  • EBS Octa Bass
  • Empress Tremolo 2
  • Strymon Bluesky
  • Digitech GSP-21 Legend
  • Snarling Dogs Whine-O-Wah
  • Dunlop Crybaby
  • Dunlop Way Huge Aqua-Puss
  • Dunlop Echoplex Delay
  • BOSS CE-5[24]
  • BOSS OC-3
  • BOSS BF-2
  • Radial JDI Passive Direct Box
  • Radial Shotgun 4 Channel Amp Driver
  • Mu-Tron Octave Divider
  • Kustom Bag Talkbox
  • Maestro Ring Modulator
  • Colorsound Overdriver
  • Neo Instruments Ventilator II
  • Hughes & Kettner Tube Rotosphere MkII


5. 디스코그래피[편집]


  • Truth (1968)
  • Beck-Ola (1969) – by the Jeff Beck Group
  • Rough and Ready (1971) – by the Jeff Beck Group
  • Jeff Beck Group (1972) – by the Jeff Beck Group
  • Beck, Bogart & Appice (1973) – by Beck, Bogart & Appice
  • Blow by Blow (1975)
  • Wired (1976)
  • There & Back (1980)
  • Flash (1985)
  • Jeff Beck's Guitar Shop (1989)
  • Who Else! (1999)
  • You Had It Coming (2000)
  • Jeff (2003)
  • Emotion & Commotion (2010)
  • Loud Hailer (2016)

콜라보 앨범

  • Frankie's House (1992) – with Jed Leiber
  • Crazy Legs (1993) – with the Big Town Playboys
  • 18 (2022) – with Johnny Depp

6. 그에 대한 말[편집]


외계에서 온 듯한 연주자

로드 스튜어트


기타 연주의 정점과도 같은 인물

브라이언 메이


항상 끊임없이 발전하면서 시대를 초월하였다

로버트 플랜트


제프의 연주는 하늘로 치솟아 마법을 그려내었다. 그가 연주한 음들은 완벽 그 자체였다. 모든 것이 충격적일 정도였다.

리치 블랙모어



7. 그 외[편집]



  •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영화 욕망에 지미 페이지를 포함한 야드버즈 멤버들과 함께 특별 출연한 적이 있는데, 영화를 위해 Train Kept A-Rollin'의 가사를 개사한 곡인 Stroll On을 연주하던 중 앰프가 맛이 가서 기타로 앰프를 몇방 때리다 피트 타운젠드마냥 기타를 부숴버리는 퍼포먼스를 선보인 적이 있다. 실제론 제프 벡은 무대에서 이런 과격한 퍼포먼스는 하지 않았다. [25] 관련 영상

  • 생각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긴 하나, 벡은 1969년부터 채식주의의 삶을 선택했다고 한다. 또한 동시에 동물 보호 운동에도 열심히 참여하였다.[26]

  • 실력이 워낙 출중했던지라 딥 퍼플핑크 플로이드에서 그를 기타리스트로 영입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 한국 남성 락 리스너들 사이에선 세션 베이시스트로 있었던 탈 윌켄펠드가 유명한데, 1986년생인 어린 여성 뮤지션인데다 억압받지 않고 연주에 집중하는 의미에서 노브라로 공연을 하기 때문이었다. 인터뷰에 의하면 본인 스스로 제프 벡의 음악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즉 덕업일치.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세션 멤버로 함께했다.



  • 믹 테일러가 탈퇴한 후 열렸던 세기의 롤링 스톤즈 리드 기타 오디션에 참가했었다. 1000:1의 경쟁을 뚫고 당첨됐던건 제프 벡의 옛 동료 로니 우드였다. 굉장히 독창적인 스타일의 연주자였으니 믹 재거키스 리처즈에겐 다소 부담스럽게 다가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후에 협연도 여러번 하였으며, 멤버들이 벡의 추모글을 써주는 등 상당히 긍정적인 사이였던 것으로 보인다.



  • 내한 공연을 3번이나 했다. 모두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했으며 매번 모든 공연이 매진되었다. 2번째 공연에서는 세월호 참사 이후였던터라 옷에 노란 리본을 달고 연주했다. 추모의 의미로 당시 셋리스트에 들어있지 않았던 People Get Ready를 연주했다. 첫번째 공연때는 베이스, 드럼외에 키보디스트를 대동해 재즈 스타일의 곡들을 들려줬었고, 두번째 공연때는 키보디스트대신 리듬기타를 대동하여 조금 더 하드한 음악을 들려줬었다. 많은 연예인들이 그의 공연을 보러 찾아왔다. 첫 공연때는 공연 전 앞쪽에 앉아있는 배철수에게 싸인 받으러 줄 서있는 사람들을 볼 수도 있었다.

  • 케이온!아키야마 미오가 말한 ジ자로 시작하는 기타리스트들 중 한 명으로[27] 언급되었으며, 기타리스트의 역사는 제프 벡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고 평한 바 있다. 물론 이건 일본 쪽 이야기고, 쿡TV의 국내 방영판 자막에서는 '지'자로 시작하는 기타리스트라 하여 어쩔 수 없이 프 벡으로 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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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 이름은 윔블던 미술학교[2] 이 외에도 헤비메탈, 하드록 등 다양한 장르들을 시도하였지만, 주로 시도한 장르만 기술하였다.[3] 사별[4] 이 3대 기타리스트라는 건 1970년대에 어느 한 일본 음악기자가 그의 개인적 취향에 따라 주장한 3대 기타리스트라는 표현이 한국에 들어와서 마치 확고한 정설인 것처럼 정착된 건데, 오직 한국과 일본에서만 유행하던 표현이고, 저 두 나라 이외의 다른 나라들에선 일반적으로 통용되지 않는다.[5] 믹 웰러 전에 앤슬리 던바(Aynsley Dunbar)가 드러머로 있었지만 금방 나갔다.[6] 2집 발표 후 벡은 우드스탁 페스티벌을 준비하기도 했는데, 도중에 멤버간의 마찰이 커져 로드 스튜어트로니 우드가 탈퇴하게 되고, 거기에 자동차 사고까지 겹쳐져 벡은 69년도 12월까지 활동을 중단해야 했다.[7] 하지만 제프 벡의 가창력은 좋지 않다..[8] 레드 제플린지미 페이지가 제프 벡의 스튜디오의 방문했을 때 이 아이디어를 훔쳐 레드 제플린의 데뷔 앨범에 싣기도 하였다.[9] 볼레로 리듬에 맞추어 연주되다가 나중에 폭발하는 키스 문의 활화산같은 드럼이 압권이다.[10] 이 곡은 지미 헨드릭스가 커버 하기도 했다.#[11] 그 후 상심한 제프 벡에게 스티비 원더가 다시 곡을 써줬는데, 그게 바로 제프 벡의 최대 히트 곡인 Cause We've Ended as Lovers.[12] 재즈 음악가 델로니어스 몽크를 의미한다.[13] 카를로스 산타나, 스티브 루카서가 함께한 라이브이다.[14] 조니 뎁과 함께한 라이브로 사망하기 3개월 전에 진행했던 라이브이다.[15] 해당 앨범은 미발표로 그쳤다.[16] 아래에 나오는 텔레-깁 텔레캐스터이다.[17] 추후 깁슨에서도 이 레스폴의 색상과 동일한 피니쉬를 팩토리 모델들에서도 제공하기 시작했는데, 여기서의 명칭도 옥스블러드이다.[18] 당시는 아직 시모어 던컨을 창업하지 않았었다.[19] 이때 던컨이 와인딩하여 텔레-깁에 장착한 픽업이 시모어 던컨 불후의 역작인 Jazz Model(넥 픽업), JB Model(브릿지 픽업)의 시초가 된다.[20] 펜더에서 제작한 픽업은 아니고 에서 커스텀으로 제작해준 제품이다.[21] 다만 지미 헨드릭스 시그니처 스트랫들은 브릿지 픽업의 각도까지 반전되어 있지만 이 모델은 그렇지가 않다.[22] 브라이언 윌슨과의 투어 당시에 사용한 보드이다.[23] 제프 벡은 이를 따로 모디파이 하여 사용했는데, 이를 참조하여 만든 Jeff Archer 라는 제품이 출시 및 판매되고 있다.[24] 제프 벡은 이를 EBS사의 Octa Bass와 조합해 즐겨 사용했다.[25] 원래 이런 퍼포먼스를 즐겨 하던 더 후가 예정되어 있었다 야드버즈가 대타로 들어와서 벌어진 일이다.[26] 위키피디아에 링크된 그의 과거 블로그 글에서도 동물병원을 신설하려는 동물보호단체를 돕자는 운동을 독려하는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27] 일본어 표기가 ェフ•ベック. 나머지 인물들은 지미 헨드릭스, 지미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