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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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가 되었다

파일:히틀러가 되었다.jpg

장르
대체역사, 회귀, 빙의
작가
종이호랑이
출판사
영상출판미디어
연재처
문피아
연재 기간
2022. 12. 30. ~ 연재 중

1. 개요
2. 줄거리
3. 연재 현황
4. 등장인물
4.1. 독일
4.1.1. 나치당
4.1.2. 군부
4.1.3. 민간인
4.2. 영국
4.3. 프랑스
4.4. 이탈리아
4.5. 덴마크
4.6. 노르웨이
4.7. 소련
4.8. 미국
4.9. 중국
4.10. 일본
4.11. 한국
4.12. 인도
4.13. 에티오피아
5. 개변된 역사
5.1. 독일
5.2. 영국
5.3. 프랑스
5.4. 북유럽
5.5. 남유럽
5.6. 동유럽
5.7. 소련
5.8. 미국
5.9. 중국
5.10. 일본
6. 평가
7. 기타



1. 개요[편집]


한국의 대체역사 웹소설. 작가는 종이호랑이.

히틀러에 빙의한 현대인을 소재로 삼은 소설이다. 약칭은 히틀러됨 혹은 히틀됨.


2. 줄거리[편집]


하루아침에 히틀러가 되었다. 그저 게임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본래 세계로 돌아가려면 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가능할까?

폰게임이 취미인 백수 한국인 주인공이 강철의 심장이란 폰게임을 발견하고 아돌프 히틀러로 플레이하는 순간, 진짜 히틀러에 빙의했다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처음에는 역사를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해 군대에 말뚝을 박지만 그 결과 독일에서 공산당이 폭동을 일으켜 내전이 터지고 폴란드군이 쳐들어와 싸우다가 사망, 오스트리아로 돌아갔더니 또 공산당 때문에 내전이 터지고 이탈리아의 침공을 받아 사망, 스위스로 이민을 갔더니 트럭에 치여 사망, 간신히 트럭을 피했더니 강도에게 칼을 맞아 사망하는 등 온갖 고생을 하다가 게임 시작 시에 봤던 미션 문구를 떠올리고 회귀에서 탈출하기 위해선 독일 총통이 되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야 된다고 판단, 히틀러의 길을 그대로 따라가 독일의 고토를 대부분 되찾고 평화롭게 지내려 했으나 갑자기 융커들이 왕정복고 쿠데타를 일으켜 감금당하고, 내전이 터지자 주변국들이 끼어들면서 결국 소련군이 베를린에 입성하기 직전 지하실에서 끌려나와 총살당했다.

결국 다섯 번째 회귀에선 히틀러처럼 총통이 되긴 하되 자기가 가지고 있는 미래지식을 이용해 이전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로 하며 본격적으로 독일을 개혁해나가며 승리로 이끌려 한다.

다만 기본적으로 평범한 현대 한국인의 감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원 역사 히틀러와 다른 행보를 보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행보를 보이거나 본래 동맹이었던 이탈리아와 일본은 오히려 멀리 하고 미국과 중국, 소련을 상대로 우호를 유지하려 하는 것 등.


3. 연재 현황[편집]


문피아 연재 이전 대체역사 마이너 갤러리에서 연재되었다.

이후 문피아에서 2022년 12월 30일부터 연재를 시작하였다.

2023년 2월 24일 유료화되었다.


4. 등장인물[편집]



4.1. 독일[편집]



4.1.1. 나치당[편집]


원래는 현대 한국인[1]이었으나 '강철의 심장'이라는 게임을 플레이하려다 히틀러에 빙의하고 만다. 기왕 빙의한 거 원래의 히틀러와 다른 건실한 삶을 살려고 했으나 네 번이나 급작스러운 죽음과 회귀를 반복하게 되자 자신이 총통이 되어 독일을 강대국으로 만드는 미션을 수행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고 총통으로 집권한 뒤 독일 제국의 고토를 대부분 되찾았다. 하지만 융커들이 일으킨 왕정복고 쿠데타로 내전이 발생하고 독일은 약해진 틈을 타 주변국의 침공을 받게 된다. 그리고 주인공은 패망 전 융커들에 의해 살해당하게 되고 결국 복수를 다짐한 채 상병 시절의 히틀러로 다시 회귀하게 된다.
원 역사의 히틀러와 비슷한 길을 걸어가지만 성격은 훨씬 차분하고 주변인을 상대로 설득을 많이 시도한다. 또한 홀로코스트 같은 악행은 시도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맥주홀 연설에서와 같이 인종주의에 반하는 발언과 행동을 당당히 한다. 이런 행보에 최측근들도 일부 감화되어 인종 문제에 대해 원 역사에 비해서는 누그러진 태도를 가지게 된다. 또한 6번이나 히틀러로서의 삶을 살고는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현대 한국인에 가깝다. 때문에 원 역사 히틀러와는 달리 채식주의자가 아니며 꽤나 미식가이며 현대적인 요리를 개발하기도 한다. 그나마 원래 히틀러와 비슷한 점은 지독한 금연주의자인 것이다.[2]
1918년 1차대전에서는 혼자서 람보 수준의 무쌍난무를 펼쳐 탕크게베어 M1918과 수류탄으로 MK 전차 두 대를 격파하고 참호로 돌격해 오는 영국군을 사살하고 노획한 리-엔필드MP18로 60여 명의 적들을 사살하여 참호를 지켜낸 공로로 파울 폰 힌덴부르크로부터 1급 철십자 훈장을 수훈받았고 상병에서 하사로 2계급 진급을 했으며, 종전 이후 이 훈장 덕분에 종전 후 대대적인 군축에서도 하사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전간기에는 맥주홀 폭동을 일으킨 건 똑같으나 원 역사와 달리 나의 투쟁을 비교적 차분한 어조와 시각으로 서술하고 미래에 대한 예측을 넣어 큰 명성을 얻었다.[3] 그리고 집권 후 반유대주의를 독일을 분열시키려는 공산당의 음모로 몰아 반유대주의를 공식적으로 배격하는 연설을 하고[4] 1936 베를린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손기정남승룡, 그리고 제시 오언스를 환대하는 등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행보를 보였다.
그리고 지난 회귀에서 중용하였음에도 자신을 배신한 검은 오케스트라 일원들을 미리 반역죄로 체포한 뒤 고통스럽게 사형시켜 복수를 하였다.
본인이 가진 미래의 지식을 이용해 나치 독일을 개혁함과 동시에 실제 역사보다 이른 시기에 전쟁 중~후반에서야 나온 무기들을 개발, 배치함으로서 독일군의 전투력을 상승시켜 2차대전이 발발하자 훨씬 적은 피해로 폴란드와 베네룩스, 프랑스, 이탈리아를 정복한다. 그렇게 1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에 영국을 제외한 서유럽을 평정함으로써 2차대전 유럽전선을 조기에 종결시키고 내치에 집중하지만, 독일의 급격한 팽창은 역으로 소련을 자극하게 되고 동시에 미국의 어그로까지 끌게 되어 루스벨트가 히틀러가 보내는 러브콜에도 반응하지 않는 원인이 된다.
소련과의 전쟁 위기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선제공격을 주장하는 장군들을 어르고 달래는 한편, 소련의 공격에 대비함과 동시에 소련과의 협상을 이어가지만 결국 스탈린의 선제공격 지시로 독소전쟁이 약 1년 늦게 터지고 만다. 하지만 소련군을 성공적으로 막아내고 그동안 모은 동맹국, 괴뢰국들과 함께 소련을 향해 역공세를 취하였다. 그리고 원 역사의 나치가 저지른 실수를 담습하지 않기 위해 레벤스라움 계획은 폐기하고, 친독 괴뢰국들을 동유럽에 세우기로 방침을 잡는다.[5]
대체역사물을 많이 봤었는지 검은머리 미군 대원수유진 킴을 언급하거나 내 독일에 나치는 필요없다에 나오는 3명이 쏘는 판저파우스트를 언급하기도 했다.

원 역사와 달리 맥주홀 폭동에서 고환에 총을 맞지 않게끔 히틀러가 일부러 대열의 후방에 배치, 결과적으로 괴링이 마약에 중독되는 것을 막아 훨씬 뛰어난 판단력을 보이고 있다. 또한 원 역사와 달리 해군과도 제대로 된 협조를 하기도 한다. 실제 역사와 마찬가지로 나치 독일의 2인자 역할을 맡고 있다. 마약 부작용으로 뚱뚱해진 실제 역사와 달리 작중의 괴링은 군살 하나 없는 미중년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공군 기지를 방문해 현역 시절처럼 전투기를 몬다고 한다.

원 역사처럼 연설기계로 활약하고 있으며 히틀러의 의중에 따라 평화를 주장하는 연설을 하기도 하였다. 독소전쟁이 결국 터지자 심혈을 기울인 총력전 연설로 전 독일을 뒤흔든다.

오컬트에 심취한 것과 유대인 혐오는 원 역사와 똑같지만 히틀러의 영향을 받아 폴란드 내 유대인으로 구성된 특수부대 '존더코만도'를 만들어 파르티잔을 소탕할 방안을 구상하는 등 더 실리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오컬트에 심취한 건 힘러와 똑같지만 힘러의 레벤스보른 계획을 정상적으로 다듬어서 독일 전체의 출산율을 끌어올리려는 정책을 제안하는 등 실리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소련에서의 회담에서 도청당할 것을 우려하는 히틀러에게 역으로 역정보를 흘리는 제안을 하였고 이것이 실행된 결과 소련의 유능한 인재들이 대거 숙청되면서 엄청난 공을 세웠다. 이 공로로 금강석백엽검 기사철십자 훈장을 히틀러에게 수여받는다.

나치당의 초대 당수이지만 실권에선 배제된 채 당수직만 맡고 있는 처지였으나 히틀러에 의해 폴란드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또한 히틀러와도 그럭저럭 괜찮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검은 오케스트라 일원들을 감시하다 그들이 반역을 꾸미는 증거를 찾아 그들을 체포하였다. 그리고 아프베어SD에 합병되며 독일 첩보망의 총책임자가 되었다. 특유의 꼼꼼한 성격과 미래를 아는 히틀러의 지식이 더해져 그가 이끄는 SD는 실제 역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공적을 세우고 있지만 정작 하이드리히 본인은 자기도 몰랐던 고급 정보를 히틀러가 알고 있자 의문을 가지고 히틀러 주변인들을 조사한다. 이외에도 역사에서처럼 힘러를 내심 경멸하며 언젠가 그를 제거하고 자신이 슈츠슈타펠의 수장이 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나치 독일의 경제장관. 군비 지출로 독일 경제가 한계에 봉착하자 전쟁을 포기하고 군비 지출을 줄일 것을 청하나 거부당하자 사임 의사를 표했다. 하지만 히틀러의 설득으로 자리를 지키게 되었다.

나치 독일의 외무장관. 히틀러의 명으로 에티오피아로 가 비밀리에 군사동맹을 체결하고, 현실 역사와 동일하게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맺으며 외교 관련 문제에서 다방면에서 활약한다.

히틀러의 보디가드 겸 운전수였던 인물. 원 역사에서는 겔리 라우발에게 관심을 보이다가 히틀러의 불쾌감을 사서 좌천되었지만, 여기서는 겔리 라우발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SA 참모장이자 히틀러의 동료. 실제 역사에서처럼 장검의 밤 때 체포되어 옥에 갇힌 후 테오도어 아이케, 미하엘 리페르트로부터 자결을 권유받지만 이를 거부하고 사살당한다.


4.1.2. 군부[편집]


1차대전 때 전장에서 활약하고 입원한 히틀러에게 직접 훈장을 수여하였다. 원 역사에서는 히틀러의 고향을 착각해 보헤미아 상병이라는 별명을 붙인 장본인이었으나 여기서는 처음 만난 자리에서 오해를 정정받았다. 이때 히틀러에게 아부를 듣고 그를 호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 덕분에 대통령이 된 이후 파펜슐라이허를 건너뛰고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하였다.[6] 이후 원 역사와 같은 날에 사망하였다. 유서에는 빌헬름 2세를 복귀시켜달라고 했으나 주인공은 융커들 때문에 죽었던 회차도 있던데다가 카이저가 나라를 파탄내고 중립국으로 도망간 것밖에 없으면서 자신이 이 자리에 오는 데 무슨 도움을 줬냐며 독일에 필요한 건 자신이라며 냉소적으로 여겼다.[7]

히틀러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거듭 이어진 성공에도 히틀러를 불신하고 제거하려 하나 선수를 친 히틀러에게 반역죄로 체포당하고 고통스럽게 처형되었다.

역사와 다르게 국방군최고사령부가 생기지 않고 국방부가 그대로 유지되어 국방장관의 직위에 올랐다. 계급은 역사와 동일하게 원수. 작중 소련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히틀러에게 동원령 선포를 요청한다.

주중 독일 군사고문단장. 히틀러의 지시로 원 역사와 달리 팔켄하우젠 본인이 명목상 건강 악화로 중국에 더 머무르는 형식으로 군사고문 역할을 지속하게 된다.

크릭스마리네 최고사령관. 현실적인 문제로 Z 계획을 축소하려는 히틀러에게 다소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지만 서부전선에서 승전하고 프랑스, 이탈리아 해군으로부터 뜯어낸 각종 함선들을 크릭스마리네에 편입시켜 Z 계획의 목표치에 사실상 근접하는 업적을 세우자 감격한다. 본인 스스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할 정도.

원 역사처럼 프랑스 침공작전을 성공시켜 승승장구하게 된다. 그리고 소련과의 긴장이 고조되자 히틀러에 의해 동부전선 총사령관으로 파격적인 승진을 하게 된다.

기갑총감으로써 히틀러와 협력하며 뛰어난 성과를 올리게 된다. 원 역사와 달리 원수까지 진급했으며, 히틀러가 효율에만 집중하며 생산 라인을 최대한 단순화시키려 하고 반대로 구데리안이 어느 정도의 다각화를 주장하며 입장이 뒤바뀌게 된다. 그리고 70톤에 육박하는 중량 탓에 신뢰성이 문제가 됐던 티거 2를 50톤대의 크기와 판터급의 기동력을 갖춘 MBT로 만드는 업적을 세웠다.

실제 역사에선 1936년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지만 여기서는 사고 자체가 일어나지 않아 중장에서 그쳤던 역사에 다르게 원수까지 진급했다. 숙원이었던 전략폭격기 개발의 총책임자로 임명되어 전략폭격기를 개발 중.

붉은 남작의 사촌동생이자 루프트바페의 장군. 도시가 불타는 모습을 좋아해 파리를 폭격해 불태워 진정한 빛의 도시로 만들고자 했으나 프랑스가 일찍 항복하는 바람에 실패하자 뭇내 아쉬워했으며, 대신 로마를 폭격해 불태우고 '로마는 불타고 있다.'는 짤막한 보고를 올린다.

폴란드 침공 파트에서 등장. Sd.Kfz. 231을 타고 다녔던 실제 역사와 반대로 38(t)를 타고 등장한다. 프랑스 침공에서는 SS 소위로 진급하여 헤처로 프랑스군 전차들을 격파하고 다닌다.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6호 전차 티거의 전차장으로 소련군의 진격을 저지한다. 그의 포수는 실제 역사에서도 비트만의 포수로 이름을 날린 발타자르 볼.

2차 장검의 밤 사건에서 음모자들과 매우 가까운 사이였고 체포된 동료들을 옹호하여 조사를 받았으나, 히틀러가 단순히 불안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죽일 수 없어 살려줬다. 그러나 빌헬름 2세의 경호원으로 임명된 후 왕정복고를 시도하려 들자 더 이상 봐줄 수 없다고 판단한 히틀러에 의해 암살당한다.

4년 간의 의무복무를 마치고 고향에서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며 회포를 푼다. 민간인이 되었으니 무슨 일을 하며 살지 고민하다가 친구의 권유로 고급 호텔 종업원으로 일하게 되지만, 전쟁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히틀러가 내린 예비군 소집령으로 재입대하게 되어 절망한다....

독소전쟁의 첫날 루마니아 플로이에슈티 유전을 지키기 위해 소련 공군과 접전을 펼친다. Bf 109를 타고 다녔던 실제 역사와 달리 역사의 변동으로 Fw 190을 타고 다니며 전투가 끝난 후 전우인 한스-아놀트 슈탈슈미트에게 '이제야 감을 좀 잡은 것 같다'고 말한다.

히틀러에 의해 고속승진하여 독소전쟁 시점엔 상급대장으로 진급하여 제9군 사령관이 되었다. 특유의 기동방어로 소련군을 학살하며, 소련군의 지휘관들을 12살짜리 애나 다름없다고 평하고 나였으면 저런 돌대가리 밑에서 굴러지느니 자살한다는 농담을 하였다.[8]


4.1.3. 민간인[편집]


초반에 패색이 짙어지자 네덜란드로 망명한다. 이후 왕정복고를 원하면서도 히틀러와 독일인들이 자신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한탄하다, 슈타우펜베르크의 설득을 듣고 고민하지만 슈타우펜베르크가 암살당하고 경호원들이 모두 무장친위대로 교체되면서 사실상 감금 상태에 놓여 왕정복고는 꿈도 꿀 수 없다는 사실만 자각하게 된다.

히틀러가 반유대주의에 반대하는 행보를 보이자 원 역사와 달리 독일에 머무른다. 그리고 우란프로옉트에 참가하여 핵무기 연구를 한다.

난징 대학살을 목도하고 귀국해서 히틀러에게 이를 폭로할 것을 청하였다. 히틀러는 아직 일본과의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판단해 이는 거절하였으나 라베 본인이 중립국에 가서 폭로하는 것은 상관하지 않겠다는 허락을 받고 스위스에서 난징의 참상을 폭로하였다.

  • 겔리 라우발
히틀러의 조카이자 원 역사에서 히틀러가 연인으로 생각하고 집착했던 여인. 하지만 빙의자 히틀러는 근친을 혐오했기에 그녀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고 덕분에 에밀 마우리스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실제 역사와 같이 1차 대전 서부전선에서 부상을 입고 야전 병원에 수용되었는데, 그곳에서 히틀러를 만났다. 히틀러에게 자신의 소시지를 양보한 이후 함께 이야기를 하다가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을 밝혔다. 그 뒤 반나치 발언을 하다가 잡혀 독재자가 된 히틀러와 다시 한 번 만나게 되는데, 히틀러는 그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며 신변에 신경을 써준다. 그 역시 반전주의적 태도를 버리진 못하나 그래도 히틀러와의 옛 전우로서의 추억이 남아있기에 현실 역사와는 다르게 얌전히 물러난다.

원 역사에서는 나치에게 탄압당했지만 본작에서는 히틀러가 그의 능력을 높게 샀기에 포젠 시장 자리를 제안하였고 이를 수락하여 포젠을 제건시켰다고 한다.[9]

노르웨이에서 반나치 활동을 하다 체포된 뒤 사형당하였다.

원 역사처럼 '독일이 부른다(Germany Calling)'라는 선전방송을 하지만, 반유대주의를 배제하고 영국의 식민통치를 비난하고 처칠의 행적을 폭로해 처칠이 열폭을 터뜨리는 원인을 제공한다.

유대인 동료와 함께 독일의 암호체계 에니그마를 개량 중인 것으로 짤막하게 등장한다.


4.2. 영국[편집]


우리 시대의 평화까지는 원 역사의 행보와 같으나 처칠이 노르웨이 침공과 패전의 책임을 자신에게 떠넘기려 하자 격노해 처칠의 행각을 폭로하고 물러났다.

독일이 노르웨이를 침공하지 않으며 본인이 계획한 노르웨이 공격이 먼저 실행되었고 독일에 의해 노르웨이 전역에서 패전하자 책임을 체임벌린에게 떠넘기려 하였다. 그러나 격노한 체임벌린의 폭로로 지지를 받지 못해 총리가 되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후에도 샤를 드골과 접촉하는 등 음모를 꾸미고 있다. 결국 태평양 전쟁 개전 후 자신의 책임인 말레이 해전 참패는 감추고 패전의 책임을 핼리팩스에게 돌려 그를 사임시키고 총리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소련을 경계하고 있음에도 더 큰 적인 독일을 상대하기 위해서 뒤에서 소련과 손을 잡고 독일이 IRA를 지원했다는 누명을 씌워 반독 여론을 고조시킨다. 이후 히틀러에게 자기가 구상한 연설문[10]을 베껴지는 굴욕을 당한다. 그래서 히틀러의 연설을 듣고 저거 내가 구상한 거라고 하지만 증거가 없어서 비서관도 처칠이 한심하다고 여긴다...
결국 불리한 상황에서도 독일의 IRA 지원을 명분으로 행복회로를 돌리며 기어코 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전쟁을 선포하자마자 런던이 V2에 의해 폭격당하며 벙커에 틀어박히는 신세가 되었다. 이러한 미쳐돌아가는 상황에서도 태연하게 포르투갈하고 스페인에게 선전포고를 하자고 했다가 장군들에게 대차게 까이는 추태를 보여준다. 여윽시 미스터 갈리폴리

일명 '핼리팩스 경'으로 불리는 영국의 외무장관. 원 역사와 달리 처칠 대신 본인이 총리가 되고 독일과 강화조약을 맺었다. 일본의 기습으로 태평양 전쟁이 개전된 뒤에도 독일에 더 신경을 쏟는 루스벨트를 한심하게 여기지만, 처칠이 영국의 동방 식민지들이 점령당한 것을 핼리팩스의 탓으로 돌리며 선동하는 바람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게 된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언급된다.

디에프 상륙작전을 적극 주창했다가 실패하고 영국 국민들에게 욕먹으며 조용히 지내다 IRA의 폭탄 테러로 살해당한다.


4.3. 프랑스[편집]


원 역사처럼 스페인에서 프랑스로 귀국하여 새 총리로 선출되고 독일에 항복하게 된다. 다행히 원 역사보다는 프랑스가 받은 처분이 관대하였기에 후대에 받을 원망은 적을 것으로 보인다.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히틀러와의 약속대로 참전을 결심한다.

페탱 밑에서 프랑스의 총리를 맡고 있다.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페탱에게 독일을 감동시켜 프랑스에 대한 양보를 이끌어낼 좋은 기회라 주장하며 페탱에게 적극적으로 참전을 주장한다.

낫질 작전을 시도하는 독일군에게 반격을 시도했으나 패배하고 도주하던 중 폭격을 맞아 생사불명이 되었다. 그러나 생존하여 원 역사처럼 영국에 망명 정부를 세웠다. 하지만 영국이 독일과 강화조약을 맺으며 입장이 난처해지고 푸대접을 받게 된다. 그러나 처칠이 그와 접촉한 후 정권을 잡게 되면서 그에게 지원을 받을 여지가 생기게 되고, 처칠이 불리한 상황에서도 기어코 독일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자 너무 이르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샴페인을 터트린다.


4.4. 이탈리아[편집]


원 역사에서는 그나마 독일의 존재 덕에 2차대전사에 이탈리아가 나름 이름이라도 남길 수 있었지만, 여기서는 히틀러가 이탈리아 편을 안 드는 걸 넘어서서 아예 적으로 돌아서면서 원 역사보다 한층 꼬인 처지가 되고 만다. 그 결과 독일과 손잡는 대신 영국, 프랑스와 손을 잡고 오스트리아 일대를 공격하지만 여기서도 오스트리아 산악 사단에 막히며(...) 졸전 전설을 써내려간 끝에 역공을 당해 밀라노, 제노바, 베네치아 등 북부 도시들이 폭격을 받는 와중에도 매일같이 꼬냑과 브랜디, 모르핀에 빠져 살다 원 역사보다 일찍 총리직에서 잘린다. 이후 이탈리아는 로마를 비롯한 주요 도시들이 폭격을 당한 끝에 항복하게 되고 무솔리니는 자택에 연금된다. 사실 원 역사에서 어떤 꼴로 죽었는지를 생각한다면 이것도 나름 수혜라면 수혜다...

무솔리니에게 묻혀서 그렇지 이쪽도 상당한 암군. 무솔리니를 자른 이후 보여주는 행보에서 여실히 드러나는데 자기들이 먼저 전쟁 벌여놓고 체통을 유지하고 싶었는지 트렌티노알토아디제만 넘겨주는 조건으로 휴전하라고 하여 바돌리오 총리의 뒷목을 잡게 하고 당연히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독일은 로마를 불바다로 만드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이에 분노한 이탈리아 국민들은 왕정 폐지를 부르짖었고 결국 이에 굴복한 비토리오는 그보다 더한 조건을 인정해야 했다.

현실 역사와 비슷하게 무솔리니가 국왕의 명령으로 실각한 후 이탈리아 총리가 되었다. 하지만 되도 않는 억지를 부리며 협상을 방해하는 국왕 때문에 뒷목을 잡는다. 독일이 납득할 리 없는 조건이라고 반발하지만 국왕의 압력으로 어쩔 수 없이 독일과 협상했다가 피해만 커지고, 결국 에마누엘레 3세가 현실에 굴복하자 그제야 독일과의 강화에 돌입한다. 그리고 강화협상 마무리를 위해 만난 히틀러에게 하와이안 피자를 대접받았다....[11]


4.5. 덴마크[편집]


원 역사에서는 나치 독일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었지만 여기서는 독일이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침공하지 않았고 오히려 영국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면서 히틀러와 우호적인 관계가 되었다. 다만 자국이 다 굴릴 수 있을지 모를 양의 무기를 주문하곤 한다.


4.6. 노르웨이[편집]


노르웨이의 파시스트이자 전직 국방장관. 히틀러에게 쿠데타를 일으킬 생각임을 밝히고 지원을 요청하나 현실성 없는 계획이라고 혼난다. 이후 자신의 생각이 짧았음을 인정하고 히틀러에게 영프가 노르웨이를 침공할 것이니 그때까지 조용히 있으면 그 후에 위상이 높아질 것이란 조언을 받는다. 이후 노르웨이의 총리로 선출되었으며 독소전 참전을 망설이는 호콘 7세에게 강력하게 참전을 주장하여 노르웨이의 참전을 이끌어낸다.

영국이 독일과의 교역을 중단하라 협박하자 불쾌하게 생각하여 이를 거절하였다. 때문에 영국이 노르웨이를 침공하자 줄기차게 독일과의 동맹을 주장하던 크비슬링의 말이 결과적으로 맞았음을 인정하고 그가 아니라 자신이 광대였다며 한탄한다.


4.7. 소련[편집]


독일이 프랑스를 패배시키자 큰 두려움에 빠지게 되었다. 이후에도 히틀러가 보내는 우호적인 제스처도 불신하며 독일과 관계가 틀어진 일본과 협력하려고 한다. 그리고 히틀러의 의중을 떠보기 위해 그를 모스크바로 초청하여 회담을 열었다. 그러나 소련 측이 숙소에 도청장치를 깔아둘 것을 예측한 히틀러가 흘린 역정보에 낚여 유능한 인재들을[12] 대거 숙청시켜버렸다. 그리고 독일이 소련을 공격할 것이라는 편집증적인 믿음 때문에 결국 선제공격을 명령한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독일군의 철통수비로 소련군의 진격이 지지부진한데 이어 역으로 본토가 공습까지 당하자 분노하여 책상을 뒤엎는 모습을 보여준다. 전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곤 몰로토프에게 영국의 참전 날짜를 알아내라고 닥달한다. 그러나 영국의 상륙작전이 처참히 실패하자 독일과의 평화협상을 시도한다. 그러나 독일이 당초에 넘겨줄 생각이던 발트 3국,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이상을 요구하자[13] 생각을 바꾼다.[14] 결국 본인의 뻘짓[15]들과 독일군의 미칠듯한 진격이 환장의 콜라보를 이루어내며 독일군이 모스크바 시내에 진입하는 역사적인 장면이 연출되고 본인은 찌질하게 몰락의 스탈린 버전을 찍으면서 모스크바를 탈출하고, 탈출하면서 뒷처리를 주코프에게 맡기면서 끝까지 주코프에게 엿을 먹이고 갔다.

소련을 방문한 히틀러와 독일 사절단을 감청하여 스파이로 판정된 사람들을 체포하고 스탈린에게 보고하나 밝혀진 게 이 정도면 더 있을 거라고 생각한 스탈린에게 무능하다는 낙인이 씌여졌고 질책받게 된다. 종국에는 제대로 빡친 히틀러의 역공으로 자신이 지금까지 숙청했던 이들과 마찬가지로 스탈린에게 내쳐지면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다.

히틀러의 역정보 희생양에 포함되었으나 본인이 아니라 친척에게 독일 스파이가 접촉했다는 내용이었던 점, 그리고 유능함이 증명된 인재라는 점들 덕분에 친족들만 잡혀가고 본인은 감시만 받는 선에서 끝나게 되었다. 하지만 언제라도 친족들과 자신이 숙청당할 수 있는 상황이기에 예스맨이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권한 내에서 최대한 노력하며 전쟁의 방향을 바꿔보려 노력하지만 스탈린의 트롤링과 소련군 자체의 한계로 인해 대부분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에는 모스크바에 남겨져 모스크바를 지키다 전사한다.

소련군의 발전을 방해하는 똥별. 독소전이 1941년에 발발하지 않아 본인이 밀던 A-43가 완성되자[16] T-34는 이제 필요가 없다며 생산중지를 스탈린에게 건의한다. 이외에도 기관단총, 53-K, ZiS-3도 불필요하니 모조리 생산중지하자고 건의해 승낙을 받아내는 등 소련군 역량을 스스로 깎아먹는 짓을 하고 있다.


4.8. 미국[편집]


원 역사처럼 반독 성향을 갖고 있다. 그러나 히틀러가 진주만 공습을 경고하였음에도 무시하였다가 큰코다치고 만다. 하지만 그럼에도 반독 성향을 버리지 못하고 전쟁 중인 일본보다도 독일을 상대로 더 신경을 쏟으며 히틀러가 보내는 러브콜도 무시하고 뒤에서 영국, 소련을 지원한다. 하지만 독일의 뒷공작으로 원 역사의 영미 내의 소련 스파이들이 일찍 적발되면서 기존의 친소 행보로 말미암아 위기에 몰리게 되고 결국 소련 연료 지원안을 철회하며 소련이 독소전에서 궁지에 몰리게 되는 원인을 제공한다.

베를린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고 히틀러에게 환대받는다. 이후 미국으로 귀국하여 자신과 흑인들을 무시하는 백악관을 비판하였다.


4.9. 중국[편집]


중국을 고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나의 투쟁을 중국인들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이라 언급하여 나의 투쟁 유행의 절정을 만들었다고 한다.

원 역사와 달리 중일전쟁 후에도 독일로부터 지원을 받으며 히틀러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 중이다. 그리고 히틀러의 귀뜸을 받아 시안 사건을 피하고 장쉐량을 숙청하였으며 덕분에 중국공산당 역시 박멸하였다.

중일전쟁 중 독일에 파견되어 히틀러에게 지원 약속을 받아내었다.


4.10. 일본[편집]


주독 일본대사. 아내가 유대계 독일인이었기에 원 역사에서는 나치 독일에 부정적이었으나 본작에서는 히틀러가 반유대주의를 배척했기에 그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 우다 신타로
야기-우다 안테나의 개발자. 지도교수인 야기 히데츠구에게 모든 공을 빼앗기고 부려먹히는 처지였으나 그를 눈여겨본 히틀러에 의해 고용되어 독일 레이더 기술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

2차대전의 전개가 달라지며 원 역사와 달리 항공모함의 진가가 크게 드러나지 않는 바람에 상부의 지시로 진주만 공습을 전함까지 투입해 3차까지 진행하였다. 그러나 후소가 해안포에 격침당하며 3차 공습은 실패로 끝났다.


4.11. 한국[편집]


베를린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뒤 히틀러의 초대를 받고 그의 융숭한 대접에 감동한다.

원 역사처럼 독일에서 거주하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 일본이 독일 대사를 추방하면서 벌어진 독일 내의 황인 대상 인종차별로 인해 곤혹을 치렀으나 히틀러의 단호한 대처로 위기에서 벗어난 뒤 인종차별 범죄를 저질렀다 히틀러의 지시로 발가벗겨져 공개 망신을 당한 어린이들의 기사를 보며 히틀러는 독재자가 맞지만 여타의 독재자들과는 확연히 다르다며 그가 플라톤이 말한 철인이 맞는지를 고찰한다.


4.12. 인도[편집]


인도의 독립을 위해 독일과 손을 잡았다가 핼리팩스 경이 집권한 후 영독강화가 이루어지며 한동안 활동을 중단했으나, 처칠 집권 후 독일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다. 그리고 '독일이 부른다(Germany Calling)'라는 선전방송에 출연해 영국을 비난한다.


4.13. 에티오피아[편집]


리벤트로프를 직접 맞이한다.

  • 메코넨 엔델카츄
에티오피아의 총리.


5. 개변된 역사[편집]



5.1. 독일[편집]


폴란드 침공 때까지는 대체로 원 역사와 같은 길(라인란트 재무장, 안슐루스, 뮌헨 협정, 체코 합병)을 걸어갔다. 다만 원 역사와 달리 빙의자 히틀러의 의중에 따라 인종차별을 공식적으로 배격하고 인종보다 독일인이라는 정체성을 우선시한다. 때문에 이 세계에서는 유대인이 나치 독일에 호의적인 아이러니를 보이고 있다.[17] 독일 공군에 유대인 표식인 육망성을 그린 Bf 109가 날아다니고 폴란드에는 폴란드 저항군을 사냥하는 유대인 부대 존더코만도가 편성되어 엄청난 지원자가 모였으며 독일과 영국이 협상하자 영국 유대인 협회가 찬성 선언을 했다. 흑인, 일본 외 동양인들 역시 히틀러와 독일에 호의적이다.

원 역사에서 동맹이었던 이탈리아와 일본은 안슐루스를 위해 에티오피아에 군사고문단 파견과 무기 지원으로 이탈리아군의 전설과 국력 소모를 만들었고, 무솔리니의 공격은 에티오피아 산악사단에 막힙니다 중국에도 군사고문단과 무기를 지원하며 일본에 엿을 먹이며 거리를 두었다. 또한 히틀러의 미래지식을 활용해 3호 전차 계획을 폐기하고 4호 전차비스마르크급 전함, 그라프 체펠린급 항공모함 등의 전쟁병기를 훨씬 효율적이고 우수하게 설계, 생산하였으며 폴란드를 이긴 뒤에도 폴란드인에게 전쟁범죄를 저지르지 않아 독일의 폴란드 통치를 수월하게 만들었다. 폴란드 전역과 프랑스 전역 이후로도 노르웨이 침공은 저지르지 않았고 때문에 영국이 먼저 노르웨이를 공격하게 되면서 발트 지역에서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을 동맹으로 끌어들이게 되었다.[18] 그리고 노르웨이 전역에서 도이칠란트급 장갑함 둘을 잃는 대신 영국 해군에 큰 피해를 입히고[19] 승리하였다.

그리고 프랑스 침공에서 프랑스를 원 역사의 6주보다도 빠른 4주 만에 무너뜨리고 됭케르크 철수작전마저 차단하며 압승을 거두었다. 핼리팩스가 집권한 영국과 강화조약을 맺고 페탱이 집권한 프랑스로부터 알자스-로렌을 할양받고 프랑스 해군 대부분을[20] 뜯어갔으며 에티오피아 지원 때문에 사이가 악화되어 선전포고하였던 이탈리아도 힘으로 털어버리며 안슐루스 이전 오스트리아가 상실했던 영토를 모두 되찾고 이탈리아 해군 일부를[21] 인도받았다. 그리고 이탈리아가 병합한 에티오피아알바니아를 독립시켰다.

이후로는 더 이상의 전쟁을 피하려 했으나 유고슬라비아 왕국그리스 왕국이 해방된 알바니아를 침공하자 독립 보장으로 참전하여 유고슬라비아를 응징한다.[22] 그리고 베오그라드까지 뚫어버리며 유고전에서 가볍게 승전하고 유고를 해체하고 슬로베니아를 할양받는다. 그리고 그리스 역시 알바니아와 불가리아를 지원하여 간접적으로 응징한다.

그러나 그 뒤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미국에게 예고했으나 무시당하고, 영국에서는 처칠이 핼리팩스를 내쫓고 집권하고 독일에게 IRA를 지원했다는 누명을 씌워 반독 여론을 고조시키고, 소련은 일본과 불가침조약을 맺고 국경을 봉쇄하여 독일과 중국 간의 교류를 끊는 것도 모자라 기어코 독일을 선제공격할 계획을 세우는 등, 본래 적대할 생각이 없었던 국가들이 적으로 돌아서는 상황이 된다.

결국 소련의 선제공격을 당하지만, 직전에 탈영병을 통해 공격 시점을 파악하고 동원령 선포 및 대비를 맞춰놓았기에 역공을 가해 소련에 큰 피해를 입히고 종속됐거나 동맹을 맺은 유럽의 수많은 국가들을 독소전에 호출한다. 그리고 신무기와 뛰어난 전술을 바탕으로 소련군을 역으로 밀어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원 역사의 나치가 저지른 실수를 담습하지 않기 위해 레벤스라움 계획은 폐기하고, 친독 괴뢰국들을 동유럽에 세우기로 방침을 잡는다. 다만 영토 확장을 바라는 부하들과 국민들의 눈치를 봐서 벨라루스 서부, 갈리치아까지는 독일의 영토화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 와중에 영국도 선제공격을 하자 그동안 빽빽하게 건설한 대공망과 루프트바페를 이용해 영국 공군을 사냥하고, V2 미사일로 영국을 폭격하고 식민지 각지에서 반군을 지원하고 주요 해역마다 기뢰를 도배하며 영국을 고립시킨다.

이후 영국이 전세를 뒤집기 위한 도박으로 디에프에 상륙하지만 미리 요새화를 시켜 손쉽게 막아냈으며 되려 지진폭탄 레제와 유도폭탄 프리츠 X전함 4척, 항공모함 2척을 격침시켜 영국 해군을 빈사 상태로 만든다.

그리고 모스크바까지 함락시키며 소련을 상대로 사실상 승리를 거두었다.


5.2. 영국[편집]


우리 시대의 평화까지는 원 역사와 같았으나 처칠이 노르웨이 침공의 실패로 실각하고 이후 집권한 핼리팩스 경에 의해 독일과 강화조약을 맺었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 개전 후 처칠이 핼리팩스 경에게 책임을 돌려 실각시키고 총리 자리에 올라 뒤에서 소련과 손을 잡고 독일이 IRA를 지원했다는 누명을 씌워 반독 여론을 고조시킨다.

그러나 일본이 영국령 식민지를 침공해 일본과 전쟁 중이고 말레이 해전에서 죽을 쒀버린 상황에서 일본과 적대하고 암묵적인 공동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독일을 굳이 공격할 명분이 없고, 인도 독립 세력은 물론 처칠이 누명을 씌운 것에 열받은 IRA까지 정말로 독일에 붙어버린데다, 소련의 선빵으로 독소전쟁이 개전된 후 소련이 독일의 거센 반격에 일방적으로 털리게 되면서 함부로 독일을 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그럼에도 소련을 지원하려 했지만 소련의 스파이였던 케임브리지 5인조가 적발되며 명분을 잃어버린다.

그러나 처칠이 독일의 IRA 지원을 명분으로 삼아 기어코 독일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고 프랑스, 벨기에, 덴마크에 폭격을 퍼부으나 빽빽하게 건설된 독일의 대공망과 분노에 미쳐서 추격해오는 루프트바페에게 사냥당함은 물론, 국토 전체가 V2 미사일의 사정권인지라 매일 폭격을 맞게 생겼다.[23] 그리고 북아일랜드, 이라크, 팔레스타인, 이집트, 인도 등 각지에서 독일의 지원을 받은 반군이 들고 일어났으며 바브엘만데브 해협, 지브롤터 해협, 수에즈 운하가 기뢰로 도배당하며 전쟁 수행에 엄청난 차질이 생겼다. 그리고 디에프 상륙작전도 실패하고 독일의 공격으로 전함 4척, 항공모함 2척이 격침되며 해군이 빈사 상태가 된다.


5.3. 프랑스[편집]


프랑스 침공에서 독일의 맹공으로 원 역사의 6주보다도 빠른 4주 만에 무너진다. 이후 필리프 페탱이 집권해 알자스-로렌을 할양하고 프랑스 해군 대부분을[24] 독일에 넘겨주는 대신 조건 없이 포로 석방, 프랑스 군정청 계획 취소 및 식민지 유지, 재무장 허용을 조건으로 강화조약을 맺었다. 이후 히틀러가 파리를 방문했을 때 미리 엘리베이터를 지키도록 지시해서 원 역사와 달리 에펠 탑 꼭대기까지 올라갔으며, 앵발리드 참배 후에는 르 트랑 블루에서 여유롭게 식사까지 하고 떠났다. 한편 샤를 드골이 영국으로 망명해 프랑스 망명 정부를 세웠지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독소전쟁이 개전된 후 소련에 선전포고를 날린다. 그리고 영국이 독일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면서 영국군에게 폭격을 맞는다.


5.4. 북유럽[편집]


기존의 역사에서는 노르웨이가 베저위붕 작전으로 적국이 되었지만, 소설 속 세계관에서는 처칠이 월프레드 작전으로 노르웨이, 덴마크를 공격하고 스칸디나비아 3국의 국민들에 피해를 입혀 북유럽을 적으로 돌리는 바람에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삼국이 동맹국이 되었다.[25] 종전 이후로도 독일의 주요 우방국으로 대우받아 무기를 수입하고 있다.

한편 핀란드는 겨울전쟁에서 중과부적으로 패한 뒤 독일의 지원을 받아 재건되며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다.

이후 독소전쟁이 터지자 친독 성향의 국가들이 일제히 소련에 선전포고를 날린다. 핀란드는 소련과 또 전쟁을 할 생각은 없었기에 소련군기가 독일을 폭격하려다 밀려나서 핀란드 영공을 침입한 것을 격추하자 얼른 생존자를 반환하였지만 의심병에 걸린 스탈린이 핀란드 재침공을 지시하며 계속전쟁이 시작되었다. 북유럽 국가들의 참전병력들은 핀란드 전선에서 소련과 싸우고 있다.


5.5. 남유럽[편집]


이탈리아는 독일의 에티오피아 지원 때문에 독일과의 관계가 틀어졌고 때문에 2차대전에서 연합국 편으로 참전하였다. 하지만 독일에게 이탈리아 북부가 점령당하고 주요 도시들이 폭격당해 결국 항복하고 트렌티노알토아디제, 이스트리아 반도를 할양하고 알바니아, 에티오피아를 독립시켰다.

이것으로 평화가 찾아오는 줄 알았으나 독립한 알바니아를 유고슬라비아와 그리스가 침공하였고 독일의 중재 시도가 무시당하고 베오그라드에서 독일 대사관이 습격까지 당하며 결국 독일은 알바니아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하게 된다. 유고슬라비아는 철저히 유린당하고 항복하였고 결국 해체당하게 된다.[26] 그리스는 독일이 불가리아와 알바니아를 지원하며 간접적으로 응징하였고 결국 둘에게 배상으로 영토를 넘기고[27] 종전하게 된다.

이후 독소전쟁이 터지자 친독 성향의 국가들이 일제히 소련에 선전포고를 날린다.


5.6. 동유럽[편집]


폴란드는 원 역사처럼 전쟁에서 패해 병합된다. 그러나 히틀러가 폴란드인 탄압을 금지하면서 비교적 안정적인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폴란드 제2공화국 치하에서 탄압받은 유대인들로 구성된 '존더코만도' 부대를 통해 파르티잔을 제압하고 있다.

발트 3국과 벨라루스, 우크라이나는 독소전쟁에서 독일이 해당 국가들을 점령하고 현지인들과 협력 체제를 갖추기로 하면서 이들은 독립한다. 발트 3국은 스웨덴으로 망명했던 정부가 다시 복귀했다. 벨라루스의 경우 새로운 임시정부가 구성되었다. 우크라이나는 강경파 OUN-B 소속인 스테판 반데라와 야로슬라우 스테츠코가 각각 대통령, 총리로 취임하고 온건파인 멜닉이 대통령 상임고문 겸 민족위원회 최고의장으로 취임하며 견제 체제가 갖추어진 정부가 수립되었다.[28]


5.7. 소련[편집]


원 역사처럼 독일과 불가침조약을 맺지만, 독일이 프랑스를 패배시키자 두려움을 느끼고 경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 뜻이 맞던 일본과 불가침조약을 맺고 남사할린을 다시 할양받는 대가로 자작극을 일으켜 중국-소련 국경을 봉쇄한다. 그러나 히틀러가 흘린 역정보에 낚여 유능한 인재들을 대거 숙청시켜버린다.

그리고 독일을 선제공격하지만 오히려 역공을 당하며 큰 피해를 입는다. 그리고 소련군의 공습을 함께 당한 루마니아, 헝가리, 독일에 우호적이거나 종속된 국가들인 슬로바키아,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알바니아, 에티오피아,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스페인,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수많은 국가들의 선전포고 스팸을 맞게 된다.[29] 그리고 바쿠 유전이 독일군의 지진폭탄 폭격으로 인해 약 6개월 이상 가동 중지되는 치명타를 입었다. 그 와중에 당장 참전할 생각은 없던 핀란드까지 의심하며 핀란드를 침공해 스칸디나비아 극단부터 흑해까지 전선을 지나치게 늘리는 악수를 두었다.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루마니아에게 헝가리, 불가리아에게 빼앗긴 영토를 되찾게 해줄 테니 편을 바꾸라는 제안을 하나 거부당하고 이것이 독일을 거쳐 불가리아에게 흘러가 불가리아가 단교를 선언하고 독일 편으로 참전하며 그나마 남아있던 우호국마저 잃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영국과 미국에 스파이를 심어놨다는 사실까지 히틀러에 의해서 뽀록나면서 미국에게서 오던 랜드리스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면서 기름이 부족해져서 풍전등화인 상황이다.

어쩔 수 없이 더 이상의 공세를 포기하고 방어 태세로 전환하였지만, 스탈린선을 믿고 남부의 루마니아, 헝가리 방면에 군사를 집중시켰다가 독일이 열차포와 지진폭탄으로 정면돌파를 선택하며 통수를 맞고 밀리게 되었다. 그 상황에서도 스탈린이 후퇴 금지령을 내린 것 때문에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었다. 그리고 발트 3국과 벨라루스, 우크라이나가 독립해 독일에 붙어버렸고 평화협상도 무산된다.

결국 독일군에게 모스크바가 함락되고 스탈린은 도망친다.


5.8. 미국[편집]


원 역사처럼 중립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히틀러가 제시 오언스를 환대한 것이 나비 효과가 되어 유럽에서 일어나는 전쟁에 대해 독일계와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은 물론 파시스트, 흑인, 유대인 단체와 미국 공산당까지 반전파를 지지하고 특히 인종차별에 시달리던 흑인들의 여론이 불타오르자 되려 KKK단이 적극적으로 참전을 주장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그리고 일본에게 진주만 공습을 당하며 태평양 전쟁이 터지게 된다. 독일에 대해서는 여전히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으나, 루스벨트가 전쟁 중인 일본보다도 독일을 더 경계하고 있어 독일에게 가장 큰 불안 요소로 남아있는 상태. 그러나 독일의 공작에 의해 미국 정부 내부에 소련 스파이가 있던 사실이 드러나 랜드리스를 중단하게 되었다.

작가가 미리 밝힌 바에 따르면 결국 독일과 전쟁을 한다고 한다. 사실상 최종 보스. #[30]


5.9. 중국[편집]


히틀러 집권 이전 중국의 성장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서술한 나의 투쟁이 유통되자 그를 우호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대폭 늘어났으며, 이후 독일에게 군사고문단을 지원받는다. 또한 빙의된 히틀러의 도움으로 장쉐량을 사전에 처단하고 초공작전을 수행, 중국공산당을 완전히 격퇴하는데 성공하였다. 또한 알렉산더 폰 팔켄하우젠주중 독일 군사고문단이 현실과는 다르게 잔류하여 중국을 돕고 있다. 이후 장제스가 독일에 대한 신뢰를 갖게 되었으며 장제스의 심복인 다이리가 직접 독일로 파견되어 무기 거래를 맡는 등 독일은 중국을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거의 유일한 우방 열강이 되었다.

하지만 소련이 일본과 불가침조약을 맺고 자작극을 일으켜 중국 국경을 봉쇄하고 양국 간에 육로를 통한 교류가 끊기게 되고, 국경 봉쇄가 해제된 뒤에도 독소전쟁으로 인해 독일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 태평양 전쟁 개전 후 미국이 소련을 통해 소량의 지원을 해주고는 있으나, 일본의 침략에 고전하고 있다.


5.10. 일본[편집]


독일이 성장하는 동안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며 독일에 항공모함 설계도 및 각종 건함 기술을 알려주는 조건으로 독일에서 개발 중지된 3호 전차의 설계도를 받아오는 등 군사적으로 협력했지만, 독일이 예상과 달리 중국의 손을 잡고 중국에 군사고문단과 무기를 지원하는 등 서서히 거리를 두자 이에 맞서기 위해 소련과 손을 잡기로 한다. 이후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맺고 남사할린을 다시 할양하는 대가로 중국-소련 국경을 봉쇄하여 독일의 지원을 차단시킨다.

이후 기어코 진주만 공습을 일으키며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고, 중국과 동남아도 연이어 침공하면서 미국만이 아니라 영국을 비롯한 유럽도 적으로 돌리게 된다.


6. 평가[편집]







히틀러에 빙의했다는 흥미로운 소재로 인기를 끌고 있으나, 일부 전개에 대해서는 비판받고 있다.

대표적인 예시가 중화민국 사절단과 함께 독일에 방문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도자들을 히틀러가 환대하는 에피소드였는데, 독자들은 국뽕도 국뽕이지만 독소전도 안 벌어졌는데 한국을 지원하는 건 너무 빠르다며 비판했고 결국 작가가 사과문을 올리고 전개를 대폭 수정했다. # 다만 작가 역시 마뜩찮았지만 출판사의 권유로 어쩔 수 없이 한국 파트를 넣었다고 하며, 본인도 한국 관련 부분이 나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만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한국 관련 부분이 나오기는 할 예정이라고.[31]

전투 과정에서 등장하는 병사 시점에 대해서도 매번 똑같은 방식(간략한 상황 묘사-전투 개시-전사 혹은 후퇴)으로 진행되어 지루하다는 의견이 있다. 작가도 해당 비판을 인지하여 병사 시점을 줄이고 전개 방식을 다양화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이후에도 병사 시점이 많다는 의견이 간간히 보인다.

영국의 참전 과정도 억지라는 말이 많다. 전황만 봐도 영국이 엄청나게 불리하고, 소련 스파이 건으로 개전 명분도 없어지다시피 한 상황에서 독일의 지원을 받는 IRA의 과격파가 폭탄 테러를 계획 중에 미수에 그친 사건으로 여론이 반독으로 뒤집혀 참전하는 전개가 나왔기 때문. 이에 대해 그 처칠이니 아예 말이 안 되는 가정은 아니다, 예전에도 영국이 참전할 예정이라고 언급했었고 고구마 전개라 욕하는 독자들 때문에 급전개를 한 것이라는 의견과 그걸 감안해도 전개가 너무 빠르다, 전개를 천천히 하더라도 밑밥을 더 깔아 독자들에게 충분히 납득을 시켰어야 한다는 의견이 난무하고 있다. 독자들의 반응은 대체로 후자에 조금 더 가까운 편. 이 때문에 작가가 미국의 참전을 예고했을 때도 과연 납득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 그리고 미국 참전 과정도 우려대로 되어가고 있는데 주인공은 철저하게 미국 건드리지 말라고 했지만 일개 유보트 함장이 그 명령을 씹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독자들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7. 기타[편집]


  • 대체역사 마이너 갤러리에서 연재하다가 문피아로 넘어간 케이스로 대역갤에선 히틀러됨 혹은 히틀됨이라는 호칭으로 통한다. 작가가 가끔 대역갤에 공지를 하거나, 추후 전개 방향이나 고증 등에 관한 질문을 하기도 한다.

  • 아무래도 소재가 소재인 탓에 타 플랫폼 런칭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한다. # #

  • 해외에도 알려졌다. 외국인들의 반응은 대체로 경악인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외국 특히 북미와 유럽권에서 히틀러와 나치의 이미지는 홀로코스트 등 각종 만행 때문에 알카에다, 탈레반, IS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으로 좋지 않다. # # 하지만 대부분 '히틀러에 빙의했다'는 소재 때문에 놀라는 반응 위주고 작중 내용은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기에 구체적인 비판은 없다고 보면 된다.


  • 히틀러로 빙의한 소설들 중 첫 문피아 런칭의 벽을 뚫은 작품이다. 그 전에도 문피아에 연재한 히틀러 빙의 소설은 있었으나 모두 무료 소설이었고, 슈타인호프내가 히틀러라니!마저 실패하고 카카오페이지로 갔다. 게다가 런칭 예정인 emcum의 18년도 소설도 있었지만 불명의 이유로 런칭이 취소된 듯하다.

[1] 작중 언급에 따르면 원래 이름은 이규태. 부산 출신이며 병역은 현역 육군 병장 만기 제대인 듯하다.[2] 실제로도 히틀러는 지독한 금연주의자였으며, 본인 주변에서 담배를 못 피우게 하거나 대중교통에서 담배를 금지한 것도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작중에서는 아예 흡연자인 군인에게 포상금과 휴가를 미끼로 금연서약서까지 받아내는 걸 보면 현대 한국인이었을 때도 담배를 매우 싫어한 듯하다.[3] 특히 1929년의 대공황, 일본의 침략 행보와 중국의 비상을 예측하였기 때문에 중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대공황 발생 이후 세계 곳곳에서 불티나게 팔렸다. 다만 인공지능과 인터넷, 화성 탐사에 대해서는 터무니없다고 여겨질 거라며 뺐다.[4] 원래는 뒤에서 암암리에 배격하려 했으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편지를 받은 이후 일부러 독일의 여러 주 출신 인물들을 맨 앞 방청객으로 앉힌 후 자신도 오스트리아 출신이고 앞에 앉은 이들도 전부 다른 곳에서 다른 삶을 살았지만 우린 모두 독일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며 인종이 아닌 독일인이라는 정체성으로 뭉치자고 연설하여 공식적으로 반유대주의를 배격하였다.[5] 다만 영토 확장을 바라는 부하들과 국민들의 눈치를 봐서 벨라루스 서부, 갈리치아까지는 독일의 영토화하기로 했다.[6] 이는 히틀러가 원 역사와 달리 대선에 출마하지 않아서 악감정이 생기지 않은 것 덕분이기도 하다.[7] 21세기면 군주제가 관광상품으로는 쓸모가 있겠지만 지금 시대에는 무슨 소용이 있냐고 했다.[8] 정작 원 역사에서는 본인이 돌대가리 밑에서 굴려지다가 자살한 게 개그 포인트다.[9] 원 역사와 달리 홀로코스트도 없고 공산당과 사민당 외의 정당 해산도 없었기에 비교적 고분고분한 태도로 바뀌었다고.[10] 처칠의 연설 중 가장 유명한 "우리는 해변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인 연설이다.[11] 이탈리아인들은 자신들의 음식에 마개조를 가하는 걸 싫어하니 이탈리아 정부수반에게 하와이안 피자를 대접하는 건 외교상 결례다. 사실상 능욕.[12] 니콜라이 쿠즈네초프, 알렉산드르 노비코프, 콘스탄틴 로코솝스키, 키릴 메레츠코프 등의 장성들과 세르게이 코롤료프, 발렌틴 글루시코, 미하일 얀겔 등의 과학자들.[13] 히틀러도 원래는 이 정도만 요구할 생각이었으나 측근들이 이 영토들은 이미 손에 넣은 것들이니 더 요구할 필요가 있다는 점, 약한 태도를 보였다가는 소련이 전황을 유리하게 해석할 우려가 있다는 점, 그리고 소련의 전쟁 수행능력을 더 깎아야 한다는 점들을 들어 반대하자 생각을 바꿨다.[14] 다만 초반 밀릴 때의 전문을 보면 남러시아 전체를 넘겨줘야 할 거라 생각하긴 했다.[15] 후퇴 금지, 작전 회의에 자기 멋대로 참여하기, 히틀러 벤치마킹한다고 대역을 썼다가 대역이 사망함 등등 세기도 어려울 정도다.[16] 화력은 T-34와 동급, 기동성은 살짝 우세, 방호력 우세로 전차 자체의 성능은 T-34의 상위 호환이지만 생산성에서는 T-34를 따라오지 못한다는 평을 받는다. 차체 중심이 전면에 쏠려있어 신뢰성도 T-34보다 떨어지는 것은 덤. 거기다 화력도 작중 88mm를 도입하고 있는 독일에 밀린다. 참고로 제식명은 T-43으로 변경되었다.[17] 초반에 아인슈타인이 주인공에게 우호적인 편지를 보냈다.[18] 스웨덴은 영국의 노르웨이 폭격에서 자국민이 사망하여 참전, 덴마크는 독일군의 자국령 통과를 허락했다가 영국에게 폭격당해 참전하였다.[19] 전함 3척(리나운, 워스파이트, 후드) 격침, 항공모함 3척(글로리어스, 커레이저스, 퓨리어스), 중순양함 2척(1척은 노르웨이군이 격침), 구축함 7척 이상 격침.[20] 구축함 16척, 순양함 7척, 전함 3척(리슐리외급 전함 리슐리외, 됭케르크급 전함 됭케르크, 스트라스부르), 항공모함 1척(조프리급 항공모함 조프리).[21] 리토리오급 전함 리토리오와 비토리오 베네토, 콘도티에리급 경순양함 4척, 구축함 일부.[22] 이때 처음부터 힘으로 밀어붙인 건 당연히 아니고 두 차례에 걸친 경고부터 했다. 1차 경고는 당연하게도 씹혔고 2차 경고에서는 유고 정부 측도 독일이 진심이라는 걸 뒤늦게나마 눈치까고 경고를 수용하려 했으나 이전까지 유고의 거짓 선전에 홀린 유고 국민들이 잘 되가던 전쟁이 독일 때문에 망하게 생겼다며 분노해 독일 대사관을 습격해 그 직원들을 죽이거나 강간해버리는 사고를 치고 만다. 유고 정부는 당연히 경악하면서 이번 일은 유고 정부와 무관하며 범인들을 수사 중이라고 독일에 해명했지만 이미 독일의 분노는 임계점을 넘어버렸고 결국 대규모 침공이라는 결과로 돌아온다.[23] 이때 영국을 조질 생각에 신난 육군 병사들의 묘사가 압권이다.[24] 구축함 16척, 순양함 7척, 전함 3척(리슐리외급 전함 리슐리외, 됭케르크급 전함 됭케르크, 스트라스부르), 항공모함 1척(조프리급 항공모함 조프리).[25] 스웨덴은 영국의 노르웨이 폭격에서 자국민이 사망해 참전.[26] 슬로베니아는 독일에 할양, 크로아티아 독립, 메지무레와 바라냐는 헝가리에 할양, 마케도니아는 불가리아에 할양, 몬테네그로 독립, 코소보는 알바니아에 할양.[27] 불가리아에게는 서부 트리키아 할양.[28] 실제 역사에서 OUN-B는 나치도 곤란해할 정도로 제노사이드에 협력하다 못해 폭주했기에 이를 막기 위함이다.[29] 직접 선전포고한 국가들 외에도 불가리아, 터키, 그리스, 포르투갈 등의 남유럽 국가들이 독일군의 자국 내 군사기지 이용을 허락하는 등 유럽 내에서 소련에 우호적인 국가는 영국을 빼면 씨가 말랐다. 그 영국도 소련이 된통 당하는 걸 보고 바로 참전하지 않고 간을 보고 있는 중이다.[30] 사실 미국의 참전은 어느 정도 예상되고 있었는데 최종 보스를 맡아줄 것으로 예상된 소련이 너무나도 압도적으로 처발렸기 때문(...). 그렇기에 밸런스 패치를 위해서라도 소설상의 미국의 대독전 참전은 필요한 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었다. 마침 작가가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추정되는 게임 하츠 오브 아이언 4에서도 루스벨트의 특성이 독일 혐오자라 나오기에 이것도 복선 아니었냐는 이야기도 있다. 민주독일 루트를 갈 경우 민주국가끼리 전쟁이 안 되기에 남미 건드리는 게 아닌 이상 미국이 독일 때릴 일은 없다.[31] 사실 일본을 적대하기로 한 순간 그 일본의 날개를 꺾을 수 있는 수단 중 하나인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언젠가 지원해야 할 대상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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