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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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2~1943의 이탈리아 왕국과 1943~1945의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파일:whattheydo.png 파시즘 여부 논란 있음




1. 개요
2. 역사
2.1. 나치당 초기
2.2. 조직의 확대
3.1. 펠트헤른할레
4. 평가
5. 지도자
5.1. 최상급지도자
5.2. 참모장
6. 기타
6.1. 제복
7. 같이보기


1.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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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
나치 독일준군사조직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당군이다.

약자인 SA(에스아)는 Sturmabteilung(슈투름압타일룽)의 줄임말이다.

2. 역사[편집]



2.1. 나치당 초기[편집]


돌격대는 창설 당시엔 나치당 산하 조직은 아니었다. 히틀러의 개인 사병으로 히틀러의 연설이나 나치당 행사시에 공산당이나 다른 정파조직으로부터 행사를 보호하기 위한 경호조직으로 시작했다. 그러므로 나치당 조직과 통합된 구조도 아니었고 정권 잡기 전부터 나치당 조직과 주도권을 둘러싼 권력투쟁 노선 차이 등이 있었다.

초기 돌격대는 루돌프 헤스가 대학생 100인회를 구성할 정도에 돌격대 지휘부는 제국 시절 군 장교 출신으로 패전 후 자유군단 출신 진짜 군인들이 대다수라 깡패와는 거리가 멀었지만[1], 맥주홀 폭동 이후 히틀러가 출소하고 나치당을 재건할 때 나치당 산하로 들어갔다. 하지만 여전히 독립적으로 운영되었으며 나치당 고위직과 돌격대 직위는 중임할 수 없었다. 돌격대의 주장에 따르면 "자신들 돌격대원은 제3제국의 군인이요 나치당은 민간인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군이 민간보다 우위였던 독일 전통에 따라 명목상으로라도 나치당의 하부조직이 되고 나서도 나치 중앙당의 권위는 무시했다. 돌격대는 깡패들이었기 때문에 나치당에 당비를 낼리가 없고 당 대회나 행사 때 경비를 서며 활동비를 받아먹으며 평소에는 체력단련을 하는 조직이었다.

1930년대 이후 합법노선에 따른 반발로 돌격대 일부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아돌프 히틀러가 직접 지휘권을 인수하면서 히틀러의 나치당 하부조직에서 히틀러의 직속조직으로 편성됐고, 실질적인 지휘자인 참모장으로 에른스트 룀을 임명한다. 그런 이유로 룀은 자신이 히틀러와 동급내지 또는 2인자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정치깡패 노릇을 하면서 나치당의 적[2]들과 거리에서 패싸움을 벌이고, 나치당 집회에서 공산당 정치깡패들을 물리적으로 막아내고 공산당 집회에 가선 방해하는 역할을 했으며 유대인언론이나 유대인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 유대인이나 또는 유대인스럽게 생겨서 의심스러운 사람에 대한 대한 폭행이나 상점 보이콧 운동을 주도했다. 물론 주 임무는 나치당이 합법 노선을 선언하기 전 맥주집 폭동과 같은 바이마르 공화국 체제를 뒤엎을 소위 '사회혁명'을 위한 반란용 병력이었다.

이와 같은 용도 때문에 단순한 정치깡패와는 달리 조직 내에 군대와 비슷한 계급이 있었고 이는 슈츠슈타펠(SS)에게도 계승된다. SS는 SA의 하부조직이었으나 이후 독립하였다.

2.2. 조직의 확대[편집]


철저히 엘리트 조직을 추구한 SS와는 달리 SA는 나치당원이라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대중조직이 되었다. 여기에 사회주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던 룀이 지휘를 맡게되면서 좌파적인 조직이 되었다. 사회 혁명이라는 의미로, 기존 좌파였던 슈트라서는 노동자 계층의 권익을 주장했다는 차이가 있다. 오히려 정치참여 방법론으론 대척점에 서있었다. 하여튼 이를 두고 비프 스테이크와 같다는 말이 나왔는데, 겉은 갈색(나치)인데, 속은 붉은색(공산당)인 레어 스테이크에 빗댄 것이다. 이 때문에 좌파정당의 지지기반을 잠식하였다. 그래서 이들은 노동쟁의에 개입하여 공산당처럼 노동자의 편을 들기도 했고 공산당 정치 깡패들도 흡수하며, 과격한 좌파정당들의 지지기반을 잠식해 결과적으로 히틀러의 집권을 도왔다.

일개 개인 또는 정당의 사병집단인 돌격대의 규모는 점점 불어나 바이마르 시기 후반의 독일군 숫자인 10만을 훨씬 뛰어넘는 숫자를 자랑했고, 정권을 잡기 직전엔 40만에 달했다. 나치당이 권력을 잡고서는 완장 차고 싶은 떨거지들이 날파리떼처럼 달라붙어서 1년여 만에 200만 명으로 불어났다. 신규 가입자 대부분은 다른 정파에서 정치 깡패 노릇하던 붉은전사동맹(공산당), 철모단(우익), 제국국기단(사회민주당) 등이다. 나치가 정권을 잡자 권력을 맛보려는 기회주의자들도 다수 가입하게 된 것이었다.

이렇게 구성된 SA는 반 공산당, 반 바이마르 공화국적인 좌파 성향을 띄게 되었다. 그러나 SA와 공산당이 서로 죽일듯이 싸우는 관계여도 모두 같은 시대와 같은 나라를 살아가는 노동자 기반의 좌파 세력이었기 때문에, SA 역시 독일의 변화는 노동자가 자본가들을 몰아내는 계급투쟁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에 속으로는 동의하고 있었다. 문제는 지속적으로 표출되는 SA의 계급투쟁적 사고방식이 나치당의 수장인 아돌프 히틀러의 생각과 충돌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비록 히틀러가 이념따위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정치인이긴 했지만, 히틀러는 마르크스적인[3] 계급투쟁이 아닌 인종투쟁을 위해 노동자와 자본가의 구분 없이 모든 독일 국민들이 민족의 이름 하에 결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히틀러는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도 경제성장과 전쟁 준비를 위해서는 자본가들과 군부, 즉 우파들과 어느 정도 손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SA는 히틀러에게 광적으로 충성하는 대규모 폭력조직이었지만, 정작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는 서로 딴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점점 꺾여가는 계급투쟁 혁명의 가능성, 히틀러의 친 우파적 정치행보 때문에 SA 내부의 불만은 쌓여만 갔으며 대원들의 불만이 나치당에 대한 항명부터 폭력행위까지의 형태로 분출되기 시작했다. 히틀러가 SA에게 불리한 결정을 내리거나 친 우파적 성향을 내비칠 때 마다 SA는 난리를 쳤고, 이럴 때 마다 나치당 내 좌파를 담당하던 요제프 괴벨스가 SA의 지도층들을 어르고 달래거나 "사실 이게 다 우파들을 골탕먹이기 위한 총통 각하의 천재적인 계략"이랍시고 궤변까지 써가며 히틀러를 실드쳐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A의 근본적인 좌파적 성향으로 말미암은 불만을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었다. SA는 히틀러를 떠받드는 충성스런 무력조직이었으나 이제는 심심하면 반기를 드는 위험 변수가 되었으며, 이젠 손을 써야할 때가 왔음을 안 히틀러가 SA 숙청이라는 선택을 할 날만이 다가오고 있었다.

히틀러가 집권한 후, 1933년 2월말 국회의사당 방화사건을 계기로 당시 프로이센주 내무장관이던 괴링도 개입해 SA는 법적으로 프로이센주 경찰 보조조직으로 승격되었다. 룀은 SA가 기존의 독일군을 대체하고 진정한 국군으로 개편되기를 원했으나 융커 계층 출신이 많아 귀족적이었던 독일 군부는 SA에 대한 반감이 상당했고, 히틀러는 군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SA를 해체하고 룀을 처단하기를 바랬다. 먼저 히틀러는 룀을 안심시키고자 룀을 무임소장관으로 임명하여 돌격대를 안심시켰지만, 재무장과 정권안정을 위해 돌격대를 꺾을 필요가 있었으며, 힌덴부르크 사후에 권력을 굳히기 위해 더 이상 국군과의 마찰은 어렵다고 생각하고 돌격대와 룀을 토사구팽하기로 결심했다.

3. 장검의 밤 이후[편집]


1934년 6월 30일, SS를 맡고 있던 힘러와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는 히틀러의 명령을 받아 받아 에른스트 룀을 비롯한 SA 지도부 수백 명을 처단하고 SA를 무력화시켰다. 이를 장검의 밤이라고 한다. 돌격대의 숙청 구실은 반란죄와 부패와 동성애 등이 꼽히는데 반란죄와 부패는 나치당이나 돌격대나 그 밥에 그 나물이었기 때문에 구실에 불과했지만 돌격대 고위직의 동성애 성향은 사실이었다. 1930년에 히틀러는 룀의 동성애 성향에 대한 비판에 대해 "돌격대는 군인이지 도덕집단이 아니다.", "개인의 사생활에 관심 없다."라는 시대를 앞서간 동성애 옹호 발언을 해야 했을 정도였으며 룀이 동성애자로 자신의 남성 애인인 에드문트 하이네스(Edmund Heines)를 돌격대 고위직에 올려놓고 젊고 아름다운 돌격대 미소년들을 상납했다고 한다. 이러한 조직이니 돌격대 숙청 소식이 퍼졌을 때, 그 방법에 대해선 아무리 정치깡패 집단이라 해도 국가권력이 절차를 무시하고 수백 명을 짐승 잡듯이 도륙한 것에 대한 비판은 있었지만 돌격대 지휘부가 숙청된 것은 나치를 비롯해 모두가 다행으로(?) 여겼다. 독일 공법학회의 권위 있는 학자들도 '총통은 최고의 인민재판관으로 실정법에 구애받지 않는다'라는 쉴드와 당시 노환으로 죽음을 앞에 둔 대통령 힌덴부르크도 '단호한 행동과 용감한 개인적 개입으로 반역의 싹을 미연에 제거하고 독일 국민을 커다란 위험으로부터 구하였다'라며 칭찬했다.

장검의 밤 사건으로 SA는 해체되지 않았으나 정치적 영향력이 떨어졌다. 다만 400만명에 달하는 조직을 갑자기 해체하기도 어렵고 이용하지 않는 것도 아까웠기 때문에 계속 유지되었다. 나치당 집권후 당원 숫자를 급속히 늘리지 않고 엘리트나 사회 핵심계층만 골라 받았다. 나치당에 입당하지 못한 기회주의자들이 대거 가입하면서 조직은 개나 소나 가입하는 보편적인 나치당 조직이 되었으며 나치당 입당 전에 가입해서 공을 인정받아야 입당하는 테크로 활용되고 히틀러유겐트 등 교육훈련 같은 분야만 맡고 있었고 또한 2차대전을 맞으면서 천천히 국방군이나 무장 친위대로 스며들어갔다.


3.1. 펠트헤른할레[편집]


한편 숙청된 룀을 대신해 돌격대 참모장에 빅토어 루체[4]가 부임하게 되었다. 루체는 돌격대를 정치깡패에서 나치 친위대와 같은 준군사조직으로 전환시키려했다. 예전과는 달리 SA 부대원들에게 고급 교육을 받게 했으며 특히 군사활동도 할 수 있는 돌격대만의 엘리트 부대인 '펠트헤른할레 (SA-Standarte Feldherrnhalle)'를 창설했다.

펠트헤른할레[5]는 바이에른 뮌헨에 위치한 기념관으로 바이에른 국왕 루트비히 1세바이에른 왕국군 장병들의 전공을 기리고자 1841년에 건립하였다. 맥주홀 폭동 당시에는 바이에른주 경찰과 히틀러의 지지자들간에 총격전이 벌어진 장소이기도 했다. 집권 이후 히틀러는 펠트헤른할레를 맥주홀 폭동에서 사살당한 동지들을 추모하는 용도로 사용하며 체제 선전에 써먹었다.

펠트헤른할레는 첫 활동으로 1938년 오스트리아 합병 당시 오스트리아 영내로의 진군에 참여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이후에는 국방군 입대 전에 돌격대에서 기초 군사교육을 받는 용도로 활용되기도 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아예 국방군 소속의 단위부대로 편성되어 전투를 치르기도 했다. 전쟁초기 주요부대로는 공군 소속의 제7비행사단[6] 산하의 연대, 육군에서는 제60보병사단의 제120연대, 제93보병사단의 제271연대가 펠트헤른할레라는 명칭을 수여 받았다. 이외에도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돌격대 인원들을 중심으로 편성된 몇몇 전술 부대들이 펠트헤른할레라는 명칭을 수여 받게된다.

이 중에서 제60보병사단은 하필이면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전멸해버리고 만다. 히틀러는 사기진작을 위해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전멸한 사단들을 전부 재건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제60사단의 경우에는 재건하는 김에 아예 사단 자체를 '펠트헤른할레 기갑척탄병사단'으로 재건했다. 제60기갑척탄병사단 '펠트헤른할레'는 1943년 6월 20일 프랑스 남부에서 편성되었다. 여기저기에 흩어져있는 여러 펠트헤른할레와 돌격대 출신 인원들이 사단에 편입된다. 또한 93보병사단으로부터는 또 다른 '펠트헤른할레' 연대인 제271연대를 넘겨 받았다.

이리하여 장검의 밤 이전의 지위를 되찾고자하는 루체의 오랜 숙원이 드디어 첫발을 내딛는 듯 했다. 하지만 정작 루체 본인은 1943년에 휴가 도중 아우토반에서 교통사고로 비명횡사해버리면서 사단 창설을 보지 못했다(...) 루체의 죽음으로 돌격대는 도로 위축되어 국방군이나 친위대를 지원하는 뒷바라지 역할이나 나치당 행사의 예식용 부대 정도로 전락해버렸다. 같은 기간에 라이벌(?)인 친위대가 히틀러의 총애를 받으며 덩치를 불려나갔고 수십만 대군을 거느린 제4의 군종으로 자리매김한 것과는 대조되는 것이었다. 비록 친위대의 위상에 비할 바가 아니긴 했으나 이미 편성된 펠트헤른할레 사단 자체는 종전까지 전장에서 열심히 구르게 된다. 여러 격전지에 투입되며 군단급으로까지 확대되었고 이 와중에 두 차례나 전멸을 당했다가 재건되기도 했다.이건 이것대로 안습.

펠트헤른할레 사단이 창설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황은 급격히 악화되었다. 동부전선에서는 쿠르스크 전투가 실패로 끝났고 연이어 연합군의 시칠리아 침공으로 이탈리아 왕국이 추축국에서 이탈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시기에 사단은 이탈리아군을 무장해제하는 임무에 참여한다. 이후 1943년 12월 부터 동부전선으로 보내졌고 나르바 전투바그라티온 작전 등의 격전지에 투입되었다. 바그라티온 작전 당시에 펠트헤른할레 사단은 중부집단군의 예비로 대기하다가 독일 제4군 지역의 돌파구에 보내졌다. 하지만 곧 압도적인 소련군의 공세에 휘말려 다른 부대들과 함께 포위되었고 전멸하였다.

1944년 여름기간에 동서 양쪽에서 대참패를 당한 나치 독일은 응급조치로 13개의 잉여[7]기갑여단과 국민척탄병을 새로이 편성했다. 이 기갑여단들 중 제106기갑여단[8]과 제110기갑여단이 돌격대 인원을 중심으로 편성되었고 '펠트헤른할레'라는 부대명이 수여되었다. 110기갑여단은 재편 중이던 육군의 제13기갑사단에 배속되었다. 13기갑사단은 이전부터 이미 펠트헤른할레 연대를 편제로 두고 있었다.(제1030척탄병연대) 기갑여단까지 편입되면서 사단명에 '펠트헤른할레'라는 칭호가 부여되었다. 이 밖에도 앞서 전멸한 펠트헤른할레 사단도 제109기갑여단을 배속받아 다시 재건되었다.

이렇게 편성된 두 개의 펠트헤른할레 사단은 아직 편성이 완료되기도 전에 전황이 급박한 동부전선으로 보내졌다. 두 사단은 헝가리를 가로질러 거침없이 진격해오는 소련군에 맞섰다. 헝가리에서는 강력한 신형 쾨니히스 티거를 장비한 제503중전차대대를 배속 받았고, 이후에는 아예 '펠트헤른할레 중전차대대'로 명칭을 변경한다. 하지만 압도적인 소련군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1944년 11월 말에 다른 친위대 및 헝가리군과 함께 부다페스트에서 포위당하고 만다. 1945년 2월, 치열한 공방전 끝에 도시는 결국 함락되었고 수백명의 패잔병만이 도시에서 탈출했다.

이렇게 부다페스트에서 전멸한 펠트헤른할레 사단은 안식을 취하지 못하고 얼마 안되는 생존자들과 돌격대 출신들을 중심으로 다시 한번 재건되어 전장에 또 불려나간다. 1945년 2월 경 2개의 펠트헤른할레 기갑사단과 503중전차대대 잔존인원으로 편성된 펠트헤른할레 중전차대대가 재건되었고 이를 지휘할 펠트헤른할레 기갑군단이 편성되었다. 제1 펠트헤른할레 기갑사단이 이전의 기갑척탄병사단 펠트헤른할레를, 제2 펠트헤른할레 기갑사단은 이전의 제13기갑사단을 계승했다.

군단은 이제는 헝가리를 짓밟고 오스트리아와 슬로바키아로 진군해오는 소련군에 맞서 다시 동부전선에 투입된다. 물론 아르덴 공세도 실패로 끝나고 독일 본토가 함락되어가는 상황이다보니 기갑군단이라는 거창한 전력은 서류상으로나 존재했다. 하지만 상대는 나치 독일이 지금까지 저질러온 만행에 분노로 눈이 뒤집어진 소련군이다 보니 펠트헤른할레 사단 장병들은 전쟁 끝날 때까지 처절한 전투를 이어가야 했다. 마침내 1945년 5월 9일 유럽에서 전쟁이 종결되면서 생존 장병들은 미군 측으로 넘어가 항복하면서 최후를 맞았다.

4. 평가[편집]


1920년에서 1932년까지는 혼란시기의 정치깡패였기에 파울 폰 힌덴부르크는 돌격대를 "군복 코스프레 주정뱅이 난봉꾼 집단" 이라 평가했고 후겐베르거는 "무솔리니 흉내나 내는 똘마니들" 로 취급했다.

이후 나치 집권 후 완장을 차고 폭력과 유대인 탄압에 동원되었고 나치의 독재에 하수인으로 활약한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슈츠슈타펠(나치 친위대)과 마찬가지로 전범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장검의 밤으로 인해 위상변화를 겪으면서 가입했던 인원이 다수 탈퇴하는 등의 변화가 있었고, 나치 친위대가 워낙 악명높은 범죄행각과 만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반대급부로 죄악이 가려지는 현상이 일어났다. 그래서 처벌수위가 상대적으로 낮다.

친위대처럼 돌격대도 마찬가지로 군인으로 인정받지 못하여 국제법상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단, 전쟁에 참여했던 돌격대는 친위대와는 달리 타군 소속으로 완전히 전환된 관계로, 수훈기록이 싸그리 말소된 무장 친위대와 달리 기록 자체는 인정받는다. 물론 그렇다고 전후의 독일 정부가 해당 인물들을 전쟁영웅으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건 국방군도 마찬가지기는 하지만.

5. 지도자[편집]



5.1. 최상급지도자[편집]


공석 (1923년~1925년)
  • 4대: 프란츠 페퍼 폰 잘로몬 (1926년~1930년)
  • 5대: 아돌프 히틀러 (1930년~1945년)


5.2. 참모장[편집]


  • 1대: 오토 바그너 (1929년~1931년)
  • 2대: 에른스트 룀 (1931년~1934년)
  • 3대: 빅토어 루체 (1934년~1943년)
  • 4대: 빌헬름 셰프만 (1943년~1945년)

6. 기타[편집]



6.1. 제복[편집]


파일:external/3.bp.blogspot.com/Goering_Hitler_Himmler.jpg
히틀러 집권 초기의 사진, 히틀러괴링이 입고있는게 돌격대(SA) 제복이다. 나치당 초기 SA의 영향력을 볼 수 있는 사진이다.[9]

파일:SA정복.jpg

돌격대는 케피 형태의 모자와 갈색 셔츠 형태의 재킷[10], 몸을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숄더 벨트(샘 브라운 벨트)와 상징문양이 새겨진 버클이 달린 벨트, 나치당 완장을 패용하는 형태의 제복을 착용하였다. 이것은 집권전 히틀러의 우상이자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무솔리니과 당의 정치깡패 조직인 "전투파쇼"의 검은 셔츠단 복장을 모방한 것[11]이라고 한다. 참고로 무솔리니의 검은 셔츠당 제복은 1차대전 당시 이탈리아군의 돌격대 제복을 본뜬 것이다.

돌격대는 사실 완전한 정규 조직이라기보다는 의용병에 가까운 구성이었기에 일부 지역이나 집단 단위로 약간씩 다른 형태의 복장을 착용하기도 하는 등[12] 세부적인 형태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었다. 특히 복장의 유래도 제1차 세계 대전 패전 이후 독일이 해외 식민지들을 모두 상실하면서 수요가 없어진 식민지 주둔군용 황갈색 군복과 원단을 땡처리로 구입하여 제복으로 삼았다고 한다. 물론 땡처리한 물건들을 제복으로 삼았다고 자랑할 수 없어서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군의 색상을 채용했다고 변명하였다. 그마저도 당의 자금줄이 빈약하던 시절에는 대원들이 자비로 맞춰야 했었다.

집권 이전 나치당 활동 시기에는 히틀러뿐만 아니라 힘러괴링, 괴벨스 등 훗날 제3제국 정치계의 거물들이 되는 인물들도 돌격대 제복일 뿐만 아니라 사실상 나치당의 당복이던 돌격대 복장으로 자주 대중집회에 나왔다.[13]

7. 같이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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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부분은 나치당 인적 구성 문서 참조.[2] 주로 공산주의자들과 독일 사민당 등의 좌익 세력.[3] 나치당이 자주 비방했던 유대-볼셰비즘이란 개념은 구체적으로는 카를 마르크스와 그의 공산주의 사상을 지칭한다.[4] 생몰년 1890-1943. 괴벨스는 루체를 "구제불능의 돌대가리"라고 평가했다.[5] 직역하면 대략 장군의 전당이라는 뜻 정도가 된다.[6] 7th Flieger Division, 이후에 제1 강하엽병사단이 된다.[7] 장비는 판터를 비롯한 신품이었지만 인원들이 새로 징집되어 숙련도가 낮았고 독자적인 작전능력이 부족했다. 전장에 투입시킬 준비가 안 되어 있음에도 마구잡이로 전장에 밀어 넣어졌다가 패튼의 숙련된 셔먼 전차 승무원들과 연합군 공군에게 탈탈 털리고만다(...) 영 시원찮은 전과를 올린 기갑여단 대부분은 다른 기갑사단의 전력을 보충하기 위해 배속되어져서 흡수된다.[8] 전쟁 막바지인 1945년 3월에 미군의 신형전차 M26 퍼싱과 쾰른 대성당에서 유명한 전투를 치르기도 한 부대이다.[9] 힘러가 입고 있는 제복은 친위대(SS) 제복이다.[10] Men At Arms라는 책에 따르면, 얼핏 셔츠처럼 보이지만 밑단이 짧은 재킷으로, 단추를 채운 뒤 그 위에 넥타이와 벨트를 매서 (밑단을 바지 속에 넣은) 셔츠처럼 보이게 한 옷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밑단이 매우 짧은 재킷. 2차 세계대전 시기 영국군의 배틀드레스나 미군의 아이크 자켓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당시 진품들(밑단이 짧고, 벨트를 받치기 위한 고리들이 아랫쪽에 달려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11] 통일된 제복의 사용을 따른 것이다.[12] 단, 가능한 한 색상만은 통일하였다.[13] 히틀러가 이런 황색에 가까운 복장이 나온 동영상이나 사진은 모두 30년대라고 봐도 무방하다. 집권 이후, 특히 1940년 이후부터는 회색의 제복을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