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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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영국의 정치인, 외교관, 귀족. 본명보다는 작위인 핼리팩스 경으로 더 유명하다. 1920년대에는 주로 인도 부왕으로 재직했으며, 스탠리 볼드윈과 네빌 체임벌린 시기에 전쟁장관, 외무장관 등을 역임했다.
2. 생애[편집]
1881년 4월 16일 외할아버지인 11대 데본 백작 윌리엄 코트니(William Courtenay, 11th Earl of Devon)의 소유인 데본의 파우더햄 성에서 태어났다. 성장해서는 옥스퍼드 대학교를 다녔고, 1910년에 보수당 소속으로 리펀(Ripon) 선거구의 서민원 의원으로 선출되어 정계에 입문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이후 이미 여왕의 요크셔 용기병대(Queen's Own Yorkshire Dragoons) 소속 대위였던 우드는 1916년에 전선으로 파견되어 참전했다. 전후에는 대독 강경노선에 가담하는 한편, 주택과 농업, 그리고 아일랜드 문제에 집중했다.
1920년 5월에는 남아프리카 총독직을 제안받고 수락했으나 남아프리카 정부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1921년 4월 식민장관 처칠 아래의 식민성 정무차관(Parliamentary Under-Secretaries of State for the Colonies)에 임명되었다. 1922년에는 교육위원회 회장(President of the Board of Education, 현재의 교육부 장관)에 임명되었고, 1924년 11월에는 농어업부장관(Minister of Agriculture and Fisheries)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던 중 인도 제국 부왕으로 내정되면서 1925년 12월에 귀족 작위를 받아 어윈 남작이 되었고, 1926년 3월에 인도로 떠났다. 인도의 부왕으로서 우드는 전임자들에 비해서는 온정적이었고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개헌을 추진하면서 인도인들의 권리를 박탈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등의 행보를 보여 인도 국민회의 등의 격렬한 반발에 직면[2] 하기도 했다. 결국 그의 임기가 종료되기 얼마 전인 1931년 3월 5일 간디-어윈 협정이 체결되어 영국 당국은 일정 부분 양보하게 된다.
귀국 후 우드는 곧바로 내각에 복귀하지는 않았지만 다시 교육위원회 회장에 임명(1932)되고 1933년에는 옥스퍼드 대학교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1934년에 아버지인 2대 핼리팩스 자작이 사망하자 작위를 상속받아 3대 핼리팩스 자작이 되었고, 1935년의 신인도통치법 제정 당시에는 초안 작성에 관여했다. 1935년 6월 스탠리 볼드윈의 세번째 내각이 출범하면서 우드는 전쟁장관으로 임명되었고, 11월 총선 후에는 상원의장(~1938), 국새상서(~1937), 추밀원 의장(1937~1938)을 역임했다.
1938년 2월 우드는 네빌 체임벌린 총리에 의해 앤서니 이든의 후임 외무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우드는 외무장관으로써 체임벌린 내각이 전개한 대독 유화정책의 핵심 인물이었다. 1940년 5월 체임벌린이 사임하면서 후임 총리로 우드를 추천했으나, 우드는 자신이 세습귀족이어서 하원의원이 될 수 없으므로 이 엄중한 시기에 하원에서 발언권 없이 총리직을 맡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이를 사양했다. 결국 윈스턴 처칠이 총리가 된 이후에도 우드는 외무장관으로 재임하였으나, 대독 평화협상을 추진하며 처칠과 격렬한 갈등을 일으켰다. 결국 1940년 12월 우드는 전임자가 사망하여 공석이 된 주미 영국대사로 임명되었고[3] 1946년까지 주미대사로 재임하면서 사실상 국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
주미대사 재임 중인 1944년에 1대 핼리팩스 백작이 되었고, 귀국 후에는 주로 명예직을 역임하며 살다가 1959년 그림즈비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작위는 장남 찰스 우드(1912~1980)가 습작했고, 이어 그 장남 피터 우드(1944~)[4] 가 3대 백작으로 있다.
3. 대중매체에서[편집]
- 만약에 : 2권의 16번째 대체역사인 "헬리팩스 수상(Prime Minister Halifax)" 에서는 처칠 대신 총리가 되어[5] 됭케르크의 영국인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대가로 영독의 평화협정이 맺어지고, 미국도 유럽에 대한 관심을 접고 이후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을 박살내는데 집중한다.
- 내 독일에 나치는 필요없다 : 네빌 체임벌린의 동지이자 외무장관으로 등장. 체임벌린이 임기를 마치고 총리직에서 물러나면서 후임 총리가 되었으나 프랑스의 기습 공격을 허무하게 허용하게 되어 그 책임을 지고 사임한다.
- 대통령 각하 만세 : 헬리펙스라는 이름으로 더 자주 불린다. 처칠에 비해 이성적인 인물로 진보적이고 온건책을 쓰려고하고 처칠보다 훨씬 현실감각있는 인물로 나온다. 매일 대영제국에 집착하여 고집 부리는 처칠과 부딪히는게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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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츠오브아이언 4의 지도자로 나온다. 패치 전에는 그냥 얼굴만 들이 내미는 성격의 지도자 였으나, 패치 이후에는 지도자 중점도 추가되었다. 등장조건이 조금 복잡한데, 민주주의 영국에서 본토방어 중점을 찍고, 체임벌린 사망 이벤트 이후에 선택하면 된다. AI 처칠 인성이 너무 더러워서, 이쪽이 좀 더 유순해 보인다는 평이 자자하다.
[1] 풀네임은 Edward Frederick Lindley Wood, 1st Earl of Halifax, KG, OM, GCSI, GCMG, GCIE, TD, PC이다.[2] 간디가 직접 바다로 행진해 소금을 만들었던 유명한 사건이 이 시기의 일이다.[3] 다만 이게 정쟁 패배로 인한 좌천성 인사는 아니다. 이 자리는 원래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에게 제안하려던 것이었으나 로이드 조지가 너무 노쇠해 그에 버금가는 중진급 인물을 찾는 과정에서 핼리팩스 경이 낙찰된 것이다.[4] 어머니가 아치볼드 프림로즈의 손녀다.[5] 실제로는 세습귀족이었기 때문에 총리가 되어도 하원에서 발언권이 없다는 점을 스스로 부담스러워하여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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