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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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조선 후기 왕자들과 왕족이 머물었던 별궁이다.


2. 상세[편집]


경복궁 북동쪽에 있었으며, 후원의 동쪽 출입문인 춘양문과 담장이 연결되었다. 현재의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을 포함한 그 북쪽 일대이다.

19세기까지 이곳에는 특별한 시설이 없었다. 유일하게 18세기의 지도인 호암미술관 소장 《한양도성도(漢陽都城圖)》에 태백성(太白星)을 제사지내는 제성단(祭星壇)이 그려져 있을 뿐이었다. 자세한 시기는 모르나 고종 대에 경복궁 후원을 조성하면서 이 일대에 태화궁을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에 철거되었다. 이 일대는 이후 이완용의 서형(庶兄) 이윤용의 아들과 친일파 송병준의 소유가 되었다. 1961년부터 국무총리 공관이 들어서 현재에 이른다.


3. 여담[편집]


  • 1895년(고종 32년) 을미사변 당시 경복궁을 지키는 금군(禁軍)이 태화궁에 주둔해 있다가 춘생문을 통하여 궐내에 진입하였다. 같은 해 고종을 미국 공사관으로 피신시키려던 춘생문 사건 때에 시종 임최수, 참령 이도철 등이 훈련원에서 군사를 모아 태화궁에 군대를 주둔시켜 놓고 춘생문을 통해 궐내로 진입하려다가 중추원 의관 안경수와 친위대 대대장 이진호의 밀고로 실패하였다.

  • 경역 내에는 수령 300년 가량의 측백나무와 수령 750 ~ 900년의 등나무가 있다. ‘사병(似屛)’, ‘안득불애(安得不愛)’, ‘강청대(康淸臺)’라는 글자가 새겨진 암벽도 있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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