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덕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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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궁의 대문. 대문과 비각을 빼면 터만 남아 있다.
1. 개요
2. 역사
3. 여담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敬德宮

경기도 개성시에 있었던 태조 이성계의 두 잠저 중 한 곳.[1] '추궁(楸宮)', '추동궁(楸洞宮)'이라고도 했다.


2. 역사[편집]


조선 건국 이후, 태조는 자신의 을 넓혀 짓고 경덕궁이라 이름을 붙인 뒤 신하들에게서 조회를 받았다. 그리하여 1394년(태조 3년)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기까지 이곳에서 거주하였다. 1398년(태조 7년)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수도를 한때 개성으로 다시 옮겼을 때, 태종(조선) 또한 이 곳에서 거주하였다. 태종이 한양으로 환도한 뒤에도, 이후의 왕들이 개성에 들르거나 근교의 제릉, 후릉을 참배할 때에는 이 곳에서 묵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불타고, 지금은 대문과 경덕궁 터였음을 알려주는 비각만 남아 있다. 조선 숙종이나 영조가 개경을 방문했을 때 경덕궁 터를 들러서 둘러보고 감회에 젖어 시를 짓기도 했다.#

3. 여담[편집]


  • 한 때 한명회가 이곳의 궁지기였던 적이 있다.

  •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경의선[2] 철도가 지나가며, 과거에는 단오가 되면 개성의 부녀자들이 여기서 그네놀이를 했다고 한다.


  • 서울특별시 소재 경희궁의 옛 이름도 경덕궁이나, 서로 한자가 다르므로 사실상 다른 이름이다.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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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른 한 곳은 목청전.[2] 북한에서는 평부선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