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제이 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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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다다쿵의 캐릭터에 대한 내용은 두다다쿵 문서 참고하십시오.1. 개요[편집]
폴란드의 정치인. 1972년 출생하여 2015년 폴란드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어 폴란드 제3공화국의 6번째 대통령이 되었고, 2020년 폴란드 대통령 선거에서도 당선되어 재선 임기를 수행 중이다.
2. 생애[편집]
1972년 폴란드 인민 공화국 크라쿠프에서 출생하였다. 안제이 두다의 할아버지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폴란드 제2공화국이 독립한 직후 벌어진 소비에트-폴란드 전쟁에서 폴란드군으로 참전했고, 제2차 세계 대전에도 폴란드군으로 나치 독일군에 맞서 싸웠다고 한다.
1989년 폴란드가 동유럽 혁명으로 사회주의 체제가 전복되고 민주화되던 시점에 두다는 고등학생이었고, 1991년 야기에우워 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하였다. 2001년 법과 정의에 입당하고, 2005년 야기에우워 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법과 정의 활동 경력 때문에 법학교수로 임용되지는 못하고 정치인이 된다.[1]
2005년 폴란드 법무부 차관으로 임용되었고, 2008년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 올라가면서 급격히 세를 불렸다. 2010년 폴란드 공군 Tu-154 추락사고로 카친스키 대통령이 사망하자 안제이 두다는 대통령을 잘 모시지 못한 책임을 지고 비서실장직에서 사퇴하였다. 이후 크라쿠프 시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시민 연단 후보에 밀려서 낙선했다. 2011년 폴란드 세임(하원) 총선에서 처음 당선됐다.
2015년 폴란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브로니스와프 코모로프스키 대통령(시민 연단)을 접전 끝에 결선 투표에서 약 50만 표차(3%p)로 누르고 당선됐다.
대통령으로의 행적에 대해서는 꽤 긍정적이라 2017년 한 때 두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71%까지 올라갔다. 레흐 바웬사 대통령 초기 지지율 76% 이후 최고의 지지율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2018년 이후 폴란드의 경제가 영 좋지 못한 상황이라 지지율이 많이 내려갔다.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응 문제로도 지지율이 급변동을 하였다.
2020년 폴란드 대통령 선거에서는 시민 연단이 브로니스와프 코모로프스키 전 대통령에서 라파우 트샤스코프스키 바르샤바 시장으로 후보를 교체하는 승부수까지 띄웠다. 안제이 두다 현 대통령과 트샤스코프스키 바르샤바 시장은 5년 전 대선보다 더 박빙의 대결을 벌이고 있다. 두 후보 간 여론조사 중 가장 큰 차이가 0.9%p 차이다. 출구조사 결과 그것보다 0.1%p 줄어든 0.8%p의 득표율 차이로 대통령 재선에 성공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개표도 역시나 접전끝에 51.21%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당선됐다.# 최종 개표결과는 안제이 두다 51.03% vs 라파우 트샤스코프스키 48.97%로 2%p 차의 박빙 승부였다. 폴란드 동부 농민층의 지지로 재선에 성공했지만 원래 맞수로 여겨지던 도날드 투스크 전 총리가 불출마했음에도 불구하고, 간신히 승리해 목표했던 압승에는 실패하면서 향후 정국 운영에 빨간 불이 켜졌다.
이유를 알아야 하는데, 폴란드 의회는 법과 정의이 2019년 폴란드 총선거 결과 세임(하원)에서 과반수를 장악하여, 안제이 두다 대통령과 세임에서 뽑은 총리직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2019년 같이 총선을 시행한 세나트(상원)은 법과 정의가 48석으로, 야권연대가 52석을 차지하여 상원에서 법과 정의가 소수당인 것이다. 때문에 폴란드 상원은 2020년 들어서자 법과 정의당에서 추천하는 모든 인사에 대한 인준 동의를 부결시키면서[2] 법과 정의 내각은 2020년 현재 마비 상태에 빠져있다.
그래서 법과 정의와 두다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서 큰 승리를 통해 정권의 정당성을 얻고 싶었다. 그러나 대선 2개월 앞두고 대선에 뛰어든 시민 연단의 라파우 트샤스코프스키 바르샤바 시장한테 턱밑까지 추격을 허용하면서, 두다 대통령과 법과 정의당의 권력 장악 계획에는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어느덧 1년 이상 지나고 폴란드는 러시아는 가히 직면한 적에 가까운 분위기인지라 두다 정권에서는 내부의 적에 가까운 친러주의자가 공직을 차지하면 위험하다 여겼는지 여당과 함께 친러 성향이면 재판없이 공직을 박탈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일부 시민들은 민주주의 탄압이라며 바르샤바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해당 법안이 도날트 투스크 전 EU 상임의장이 2025년 대선을 출마하지 못하게 만드는 점을 노린 것이라는 점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그가 집권한 후 폴란드의 민주주의는 전반적으로 후퇴했다고 평가받는다. 미국의 인권단체 프리덤 하우스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의 자유 지수에서 폴란드는 두다가 집권한 직후인 2015년 기준으로 정치적 권리(PR) 38점, 시민의 자유(CL) 55점, 총 93점을 기록하며 세계 최상위권 수준으로 민주적인 국가로 분류되었는데, 그가 연임하고 있는 2023년 기준으로 폴란드는 PR 34점, CL 47점, 총 81점을 기록하며 8년 만에 12점이 추락했다. 이는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고 비판받는 다른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들인 박근혜, 자이르 보우소나루, 도널드 트럼프도 달성하지 못한 기록이다. 그러나 세계의 자유 지수를 25점이나 추락시킨[3] 헝가리의 오르반 빅토르보다는 낫긴 하며, 이 때문인지 현 폴란드가 과거에 비해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비판하는 여론은 많아도 폴란드가 독재국가가 되었다는 여론은 없다.
3. 선거 이력[편집]
4. 기타[편집]
-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독일의 올라프 숄츠 총리가 국방비 증액을 선언하자, 제2차 세계대전의 폴란드 침공 관련 밈으로 고통받고 있다. 주로 실레시아, 그단스크를 내놓으라는 요구를 받는 모습으로 나온다. 그러다 2022년 대한민국-폴란드 방산계약 이후로는 막강한 군사력을 손에 넣고 오히려 허약한 군사력의 독일을 탐내고 모스크바로 진격할 각을 노리는 이미지로 반전되었다. [4]
- 2022년 11월 23일 어느 러시아인 유튜버들이 에마뉘엘 마크롱으로 위장하고 안제이 두다에게 장난전화를 걸었는데 안제이 두다가 낚였다. 그리고 해당 통화에서 "엠마누엘(마크롱의 애칭), 저를 믿으세요. 저는 매우 신중합니다. 저는 러시아인들을 탓하지 않습니다. 제가 러시아랑 전쟁하고 싶어하는 걸로 보이세요? 절 믿으세요, 아닙니다. 저는 그걸 원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이는 굉장히 심각한 상황인데 폴란드의 보안 상태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외국의 민간인이 대통령에게 전화하는 것을 허용해 버린 것이다.#
5.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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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때문에 잠시 대학 강사로 활동했다.[2] 폴란드 상원은 정부 추천 인사들에 대한 인준 동의권을 독점하고 있다. 즉, 상원에서 인준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면 내각 장관, 차관부터 폴란드 중앙은행 총재, 폴란드 국영방송 사장 등등 모든 인사 임명이 불가능하다.[3] 91점(2010) -> 66점(2023)[4] 또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중국 주석 시진핑과 회담을 가지자 이에 대해 "중국이 대만을 공격 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비판을 하기도 했는데 이는 아시아 국가들의 소극적인 지원의 이유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는 것인데 특히나 한국의 소극적인 지원은 러시아와의 군사적인 관계도 있었지만 양안전쟁으로 인해 제3차 세계대전까지 번질 것을 우려했던 것이 컸는데, 안제이 두다는 이에 대해 파악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