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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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카자흐스탄의 외교관, 정치인, 제2대 대통령이다.
2. 약력[편집]
- 카자흐스탄 외무부 장관 (1994 ~ 1999)
- 카자흐스탄 부총리 (1999)
- 카자흐스탄 총리 (1999 ~ 2002)
- 카자흐스탄 국무부 장관 (2002 ~ 2003)
- 카자흐스탄 외무부 장관 (2002 ~ 2007)
- 카자흐스탄 상원의장 (2007 ~ 2011)
- 유엔 제네바 사무국 카자흐스탄 대사 (2011 ~ 2013)
- 카자흐스탄 상원의장 (2013 ~ 2019)
- 카자흐스탄 제2대 대통령 (2019 ~)
- 카자흐스탄 안전보장회의 의장 (2022 ~)
3. 생애[편집]
1953년 5월 17일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수도 알마티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케멜 토카예프는 독소전쟁 참전용사였으며, 추리 소설로 소련과 카자흐스탄에서 유명한 작가였고, 어머니 투라르 샤바르바예바는 외국어 교육 강사였다고 한다.
1975년 소련 외무부에 들어가 전문 외교관의 길을 걸었으며 싱가포르, 중국 주재 소련 대사관에서 근무했다. 소련 붕괴 이후 카자흐스탄 외무차관, 제1 외무차관을 거쳤으며 1994년부터 1999년까지 카자흐스탄 외무장관으로 재임했다.
이후로는 카자흐스탄 총리(2001년 ~ 2002년), 외무장관(2002년 ~ 2007년), 상원의장(2007년 ~ 2011년, 2013년 ~ 2019년 3월) 등을 역임했다.
3.1. 취임 후[편집]
2019년 3월 전임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가 사임할 때 권한대행을 지냈다. 2019년 카자흐스탄 조기 대선에서 70.96%로 당선되었다.
1991년 카자흐스탄 독립 이후 최초의 평화적인 집권자 교체였지만, 토카예프는 야당이 아닌 여당 누르 오탄 소속인데다가, 나자르바예프가 카자흐 민족 지도자(...)라는 직책으로 상왕 노릇을 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사실상 나자르바예프의 정치적 허수아비로 보였다.
그런데 2022년 카자흐스탄 시위로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가 안전보장위원회 의장직에서 물러남에 따라 정치적 허수아비에서 벗어날 가능성도 생겼다.
2019년 한국을 방문했다.
2021년 4월 6일에 카자흐스탄 측은 토카예프 대통령이 스푸트니크 V를 접종받았다고 밝혔다.#
2021년 8월 16일 코로나 19 이후 최초로 대한민국을 국빈 방문했다. 이번 방한과 함께 카자흐스탄에 묻혀 있던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고국으로 봉환되었다.
3.2. 2022년 카자흐스탄 시위와 개혁 추진[편집]
2022년 카자흐스탄 시위에서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내각을 총사퇴시켰다. 그러나 토카예프는 물러나지 않았으며, 집단안보 조약기구 회원국인 러시아에 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카자흐스탄 최대 도시인 알마티의 시위대를 무력진압하여 카자흐스탄 민간인 209명[2] 이 사망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1월 11일 이후 카자흐스탄 시위가 진압되면서 집권 이후 최대위기는 넘기게 되었다.
이번 사건은 그에게 있어 오히려 위기가 아닌 기회로서 작용했다고 평가받는다. 토카예프는 과거 나자르바예프의 측근이었던 인사들을 대거 체포했으며 누르술탄의 후광에 가려진 허수아비 대통령이었던 토카예프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권력을 강화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2022년 1월 28일 실시된 전당대회로 토카예프는 나자르바예프가 가지고 있던 당대표직에 선출됐고, 누르 오탄이라는 당명도 아마나트로 개칭하는 등 빠르게 당권을 장악했다. 또한 대대적인 당내 개혁을 주문하기도 했다.
현지 시각으로 3월 16일, 대통령 권한 축소, 헌법재판소 신설, 전현직 대통령의 집권여당 직위 겸직 금지, 하원 권한 확대 및 상원 권한 축소, 정당 설립 요건 완화[3] 등 파격적인 개헌안을 제시했다. # 지방과의 소통 강화를 위해 통폐합했던 주 행정구역도 복구시키겠다고 했다. # 뿐만 아니라 국가인권위원회 신설, 선거 제도 개혁 및 외국 참관 허용, 사형 폐지, 공정한 언론 보도, 인터넷 검열 철폐 등의 정치적 자유권 보장까지 제시했고, 간접적으로 그동안 러시아의 개입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 따라서 카자흐스탄 제2공화국이라고 내부적으로 정하고 있다. ## 그 뒤로 제2공화국 헌법 초안에도 참여하고 있다. # 또한, 4월 26일에는 탈당하여 무소속이 되었다.
9월 초에는 대통령의 임기를 현행 5년 중임제에서 7년 단임제로 변경하고,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는 파격적인 정치 개혁안을 발표했다. 이와 더불어 정계 개편을 위해 각각 2024년과 2025년으로 예정된 대선과 총선을 앞당겨 조기에 치르는 것을 제안했다. 또한 반정부 시위로 법적 책임을 지게된 이들도 모두 사면한다는 뜻을 밝혔다. #
2022년 9월 11월 조기 대선 실시를 발표하였으며#, 원내 3당의 지지로 후보로 추대되었다. 다만 지나치게 갑작스런 조기 대선 실시는 장기간의 독재로 야권 세력이 미미한 카자흐스탄에서 야권이 조직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우려를 받기도 했다. # 우려대로 조기대선에서 등록한 후보 중 토카예프를 제외한 후보들은 정치적 무명인사였다. #
카자흐스탄 대선후보 조건 때문에 후보 등록에 실패한 하이룰라 갑잘릴로프[4]#는 토카예프는 깨끗하지도 않고 부패도 많으며[5] , 대선후보 출마와 관련된 법을 어겼음에도 출마를 했다면서 강하게 비판하였다.
11월 20일에 치러진 2022년 카자흐스탄 대통령 선거에서 81.3%라는 높은 득표율로 당선되었고, 2029년까지 재집권하게 되었다. #
4. 기타[편집]
- 공개석상에서 푸틴으로부터 노골적인 멸시와 모욕을 한두 번 당한 게 아니다. 심지어 푸틴이 토카예프의 이름을 틀리게 부른 적도 있는데 러시아 네티즌들은 '왕은 신하의 이름을 외울 필요가 없다'며 푸틴의 외교적 결례를 옹호하기도 했다.
5.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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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러시아어식 표기로 '카심조마르트 케멜레비치 토카예프'라고 읽으며, 한국어로 옮길 땐 보통 해당 표기가 많이 사용된다.[2] 경찰, 카자흐스탄 보안군 사망자까지 포함하면 225명이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12920418.[3] 창당에 20,000명 필요하던 것을 5,000명으로 완화하겠다고 한다.[4] 출생 당시 카자흐스탄 본토 출신이 아닌 점이랑 공무원 경력이 없어서 떨어졌다고 한다. 파티마 비자코바 역시 공무원 경력이 없는 이유로 탈락했으며, 탈가트 예르갈리예프는 공직 경력이 있지만 5년을 채우지 못했기 때문에 탈락했다고 한다.[5] 전임 독재자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의 측근으로 활동했으며, 2022년 카자흐 민주화 시위에서 강경진압을 한 것도 토카예프다. 다만 이 당시는 전임 대통령이 상왕으로 집권 중이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