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도로 오비앙 응게마 음바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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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잘리 아소우마니





Teodoro Obiang Nguema Mbasogo
테오도로 오비앙 응게마 음바소고

출생일
1942년 6월 5일 (81세)
출생지
스페인령 기니 아코아칸
국적
파일:적도 기니 국기.svg 적도 기니
학력
Grupo Escolar Cardenal Cisneros
Centro La Salle de Bata (졸업[1]) (-1959년)
사라고사 일반육군사관학교 (학사) (-1965년)
UNED (법학 / 석사)
배우자
콘스탄시아 망구에
슬하: 2남[2]
약력
아프리카 연합 위원장 (2011년 – 2012년)
적도기니 제2대 대통령
임기
1979년 8월 3일현재
정당
''' [[민주당(적도 기니)|

민주당
]]'''

1. 개요
2. 생애
2.1. 집권 전
2.2. 집권 후
3. 독재 행각
3.1. 기록적인 장기집권
3.2. 인권 탄압
3.3. 2010년 망명자 납치 + 사법살인 사건
3.4. 2017년 쿠데타 미수 사건과 이에 대한 무자비한 보복
3.5. 우상화
3.6. 세습 준비 의혹
4. 사치 행각과 부정부패
5. 기타
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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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파일:젊었을 적의 오비앙 응게마.webp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Teodoro_Obiang.png
1982년의 모습[3]
2014년 8월 5일의 모습[4]

"국제김정일상 수상기준은 이렇게 정해야 사실과 맞게 제대로 되는 겁니다. '국제김정일상은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 가장 포악하게, 가장 부패하게 통치한 독재자에게 수여한다'고 말입니다."

자유아시아방송, 2013년에 응게마가 북한으로부터 국제김정일상을 수여받자 남긴 평가.


적도 기니의 제 2대 현직 대통령이자, 독재자.

적도 기니의 초대 대통령이자 독재자였던 삼촌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하다가 삼촌을 배신해 쿠데타를 일으키고 삼촌을 처형하며 권력을 잡았고, 아프리카 대륙은 물론 세계의 현직 독재자 중 가장 오랫동안 집권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리고 응게마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잔혹하고 부패한 독재자 중 하나이자 막대한 수익을 얻고 있으면서도 그 부를 국민들에게 제대로 배분하지 않은 인물로도 손꼽힌다.


2. 생애[편집]



2.1. 집권 전[편집]


1942년 6월 5일에 스페인령 기니의 아코아칸 마을 인근의 몽고모에서 가봉계 혈통의 10형제 중 3남으로 태어났다. 응게마 음바스고의 가족은 인두세를 피하기 위해 가봉으로 이주했으며, 어머니가 사망한 후 아버지는 재혼했다. 응게마는 노동 행정 학위를 딴 후 스페인사라고사에 있는 사관학교에 1963년부터 1965년까지 재학한 후[5] 스페인 국립 원격 교육 대학에서 법학 석사 학위를 따기도 했다.

응게마는 1968년에 적도 기니가 독립하고 삼촌인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가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중위로 승진하고, 그 직후에 콘스탄스 망그(Constancia Mangue, 1951~)와 결혼했다.[6]

이후 응게마는 '아프리카의 폴 포트'로까지 불릴 정도로 극악무도한 독재자였던 삼촌의 집권 기간 동안 출세가도를 달리게 되는데, 1969년 11월 20일에 적도 기니 영토 수비대 중위가 된 것을 시작으로 동년 12월부터는 수도인 말라보 지역의 모든 방위군을 총괄하게 되었으며, 1971년에 쿠데타 시도를 발견한 '애국심'을 인정받아 대위로 진급했고, 1975년에는 대통령령으로 사령관에 진급했으며, 1979년에는 국방부 차관이자 중령에 올랐다. 그 외에도 응게마는 비오코 주지사와[7] 방위군 사령관을 역임했으며, 1974/1975년부터는 말라보에 있는 블랙 비치(Black beach) 교도소의 소장을 지내기도 했다. 응게마는 이 교도소에서 개인적으로 심문과 수감자에 대한 약식 재판을 주관하며 수감자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가진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가혹행위를 개인적으로 감독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당시 마시아스와 오비앙의 관계는 '히틀러와 힘러의 관계와도 같았다'는 말까지 들었을 정도였으며, 마시아스 응게마의 만행들과 블랙 비치 교도소의 참혹한 상황까지 고려하면 오비앙 응게마는 루돌프 회스, 깡 겍 이우와 다를 바 없었다고 봐도 무방한 인물인 셈이었다.

1979년 6월 중순에 국가보안부 소속 장교 6명이 수개월째 입금 체납을 시정할 것을 요구하자 마시아스 응게마는 급료를 요구한 장교들을 모두 총살시켰고, 여기서 더 나아가 그들의 형제와 부모를 처형하라는 지시도 내려 이 한 사건으로 100여명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인한 희생자 중에는 그의 막내동생도 있었기 때문에 오비앙은 삼촌에 대한 충성심을 접고 1979년 8월 3일에 쿠데타를 일으켜 삼촌을 몰아낸 후 자신이 마시아스 응게마와 아무 관련도 없었다는 듯 쿠데타 후 응게마의 동상들을 모조리 파괴하고 모든 정치범들과 망명자들을 사면하고는 8월 18일에 최고군사위원회 위원장에 만장일치로 추대되었다. 그러고는 삼촌을 특별군사재판에 회부한 뒤 9월 29일에 사형 판결 6시간 만에 다른 부하 6명과 함께 총살시키고는[8] 10월 18일에 최고군사위원회 위원장 자리에 취임한다.

참고로 오비앙 응게마는 삼촌의 체포 후 삼촌인 마시아스 응게마를 방문하고는 삼촌을 재판에 송환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사실 이는 혈연의 정 때문이 아니라 삼촌이 본인을 재판에 소환하면 자신이 사형을 선고받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9]. 그리고 오비앙 응게마는 삼촌을 "내가 이제 대통령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라는 말로 위협했으며, 물론 삼촌과의 마지막 약속도 전혀 지키지 않았다.


2.2. 집권 후[편집]


응게마는 '새 출발'을 선언하며 정치범을 사면하고 강제 노동 체제를 없애는 등 유화책을 펼치는 듯했다. 1981년 1월 31일에 대령으로 진급한 응게마는 1982년에 헌법을 개정하고는 동년 8월 15일에 헌법 승인에 대한 국민투표가 95.38%의 찬성률을 기록하고는 7년 임기의 대통령 재임에도 국민들이 찬성표를 던졌고, 1987년 8월에 적도기니 민주당(PDGE)을 세운 후에 나온 1989년에도 결과는 99%의 찬성표가 나왔다.

물론 응게마는 시간이 지날수록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자신이 마시아스 응게마 정권에 부역하던 것을 국민들에게 은폐한 것은 물론 1990년 12월에는 야당의 도입을 촉구하는 활동가 30명을 수감하고는 고문으로 6명의 수감자를 죽게 했으나 이 악행이 국제적인 비난을 받자 굴복하고는 1991년 11월에 개헌 여부를 찬성하는 국민투표가 98.4%의 찬성률로 받아들여진 후 1992년 1월에 새 헌법이 도입되어 야당 설립이 허용되고 집회·시위의 자유가 공식적으로 도입되게 된다. 물론 응게마는 이 헌법에서 대통령 임기 햇수를 7년으로 정하고 임기 횟수의 제한을 아예 없애버리고는 1996년(97.8%)과 2002년(97.1%), 2009년(95.4%), 2016년(93.5%), 2022년(97.1%)에 매 투표마다 항상 93%가 넘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5연승으로 당선에 성공했다. 참고로 2002년 선거에서는 응게마의 득표율이 103%인 선거구도 있었다고 하며, 2009년과 2022년 대선 당시에는 응게마 편을 들어주는 미국마저 부정선거가 의심된다는 논평을 냈다.

1981년, 1983년, 1986년, 2002년, 2004년, 2017년[10]에 있던 일곱 차례의 쿠데타 시도로[11] 정권이 위협을 받기도 했는데, 특히 2002년 3월에는 140명이 넘는 야당 의원들이 쿠데타 모의 혐의로 체포된 후 이들 중 68명이 징역 20년형 이상을 선고받기도 했으며, 2004년 3월 7일에 짐바브웨하라레에서 비행기 1대가 역류되었는데, 이는 마거릿 대처 영국 전 총리의 아들인 마크 대처가 지휘하는 영국인 용병들이 망명한 유명 야당 정치인인 세베로 모토 은사[12]를 대통령에 앉히려는 쿠데타 시도가 실패로 끝나는 순간이었다. 이 사건으로 15명이 구금되었다.

2011년에는 국민투표로 헌법을 개정해 이론상 2030년까지 집권할 수 있도록 했다. 건강만 허락한다면 90세까지 집권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도 그가 집권 44주년이 되는 2023년정도 돼야 권좌에서 내려올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오비앙은 2006년부터 전립선암 합병증으로 종종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는 것으로 전해져서 어찌 될지는 지켜봐야 한다.[13]

2011년 1월 31일부터 2012년 1월 29일까지 아프리카 연합의 의장을 맡았다.

2020년 8월 16일에는 코로나 19로 인해 경제가 악화되자 내각을 교체하였다. #

2022년 9월 19일에 적도 기니의 국영 TV는 응게마 대통령이 사형제를 '완전히 폐지하는' 법안에 서명했다고 보도했다. 기사 [14]

2022년 11월 20일에 열린 대통령 선거의 1차 개표 결과에서 응게마는 20년 전 선거와 비슷한 97.1%라는 지지율이 나오며 또다시 재선에 성공했는데, 이로써 응게마는 신변과 건강에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가정할 시 88세가 되는 2030년까지 장장 51년을 권좌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15] 심지어 1차 개표에서는 99.7%라는 득표율이 나왔는데, 물론 득표율에서 쉽게 짐작할 수 있듯 이 선거는 부정선거라는 의혹이 횡행하고 있다.[16]

2023년 1월 10일에 스페인 당국은 스페인에 망명한 반응게마 운동가 2명에 대한 납치 및 고문 혐의로 해외 정보부 장관[17], 내무부 장관, 대통령 경호국장을 조사하고 있다는 것이 공개되었다. 기사


3. 독재 행각[편집]



3.1. 기록적인 장기집권[편집]


응게마는 1979년에 집권했음에도 집권 44년 차인 2023년 현재까지도 대통령직을 내려놓지 않고 있는데, 이 때문에 응게마는 세계사 속 비군주 통치자 중 가장 오랫동안 집권한 지도자 중 한 명으로도 유명힌다.

실제로 응게마를 제외해도 40년 이상 집권한 독재자는 피델 카스트로, 장제스, 김일성, 무아마르 카다피, 오마르 봉고, 엔베르 호자, 폴 비야 7명밖에 없으며, 이 7명 중 응게마보다 오래 집권한 독재자는 카스트로, 장제스, 김일성[18] 3명밖에 없다.[19] 게다가 상술한 것처럼 응게마는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재선에 성공했으니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장제스와 김일성도 능가하고 피델 카스트로 다음으로 반세기 이상 집권이라는 대기록을 세울 수 있다는 말이 된다.[20] 심지어 그가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집권했는지를 더욱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박정희 사망 약 3개월 전에 집권한 사람이 지금까지도 현역으로 집권하고 있는 셈이다.


3.2. 인권 탄압[편집]


비록 폴 포트와 비견될 정도로 극악무도한 독재자였던 삼촌을 몰아낸 인물이기는 했지만,[21] 정작 후에 집권하고 보니까 이 사람도 삼촌보다 나을 바가 없는 잔혹한 인권 탄압을 자행하는 극악무도한 독재자였다. 실제로 2008년에 미국의 언론인 피터 마스(Peter Maass, 1960~)는 응게마가 '로버트 무가베보다 더 악랄한 독재자다'라고 혹평했으며[22], 2022년 기준으로도 적도 기니의 세계의 자유 지수는 총합 5점을 기록해, 195개국 중 190위를 기록했다.[23] 심지어 2009년에는 그런 응게마의 폭정 속에서 1만 명 가량이 사망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일단 적도 기니는 피의자고문하는 것이 정상적인 수사 수단일 정도라고 하며[24][25], 거기다가 결사 및 집회의 자유는 심각하게 제한받는 데다가, 표현의 자유도 없어서 대통령을 비판하는 만화를 그린 만화가가 구금되기도 했으며, 언론의 자유 역시 없어서 2006년 기준으로도 수도에 서점과 신문이 없을 정도였고, 라디오 방송국만 하나 있는데 이마저 응게마의 아들 소유이다. 실제로 국경 없는 기자회가 평가한 적도 기니의 언론자유지수는 2022년 기준으로 전체 180개국 중 141위에 불과하다.

그리고 응게마는 헌법으로 자신에게 광범위한 권력을 부여하기까지 했으며, 자기에게 반대하는 정치인 대부분을 숙청하여 550여 명에 이르는 반 오비앙 활동가들을 투옥 또는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기다가 사법부의 독립은 존재하지 않으며, 피해자는 사법부에 보호를 요청할 수도 없고, 정적에 대한 납치가 정부의 승인 하에 일어나는 데다가, 2007년 6월에 UN 산하 기구인 자의적 구금에 관한 실무 그룹(WGAD)은 적도 기니에서는 정치범이 민간 법원이 아닌 군사 법원에서 재판을 받는 경우가 있다고 보고했다. 물론 야당 소속의 국회의원들, 인권 운동가들, 반정부 인사들이 날조된 혐의가 적용되어 아무런 기소 절차도 없이 몇 달 동안 구금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게다가 국제앰네스티 적도기니 연구원 마리스 카스트로(Marise Castro)의 말로는 적도 기니에서 신속한 처형이 일반적이라고 하는데, 이런 상황인 만큼 적도 기니의 야당 정치인의 90%가 망명 중일 정도다.

교도소에서도 온갖 종류의 인권 탄압이 이어지고 있는데, 수도 말라보에 있는 블랙 비치 교도소는 (자신이 소장을 맡았던) 삼촌 시절부터 아프리카에서 가장 열악한 교도소로 악명이 높았다. 물론 아프리카 교도소가 열악한 건 어디나 같지만 여기는 정치범이나 흉악범들 잡아 가두는 곳이라서 아예 사람대접을 안 한다. 가족 면회도 금지되어 수감자의 가족들은 수감자의 생사조차 모를 정도라고 하며, 의사는 고문으로 다친 사람에 대한 치료를 거부하는 데다가, 음식도 제대로 공급하지 않아 수감자의 가족과 동료 수감자들이 제공해야 하는 마당에 굶어 죽는 재감자가 나오고 있으며, 더럽고 습한 감방에는 수면 시설은 커녕 화장실조차 없다. 심지어 독방에 갇힌 정치범들은 발에 족쇄를 찬 채 그 어떤 운동도 허락되지 않으며 길게는 4년 동안 독방에 수감되야만 했으며, 고문도 구타는 기본에 채찍질, 팔다리를 묶고 공중에 매달기, 더러운 물에 머리 담그기, 알몸에 끓는 물 붓기, 성기에 전기고문하기, 담뱃불로 지지기, 윤간, 신체 절단 등 참혹하기 그지없다. 물론 교도소 처우마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 2004년에 마크 대처가 관여한 쿠데타를 저지르다 걸린 영국 출신 용병들은 괜찮은 교도소에서 적당한 대우를 받다가 몇 년 뒤 조용히 영국으로 보내지는 등 나름 힘센 국가의 고위층들은 대우를 받는 편이다.[26] 특히 이 영국 출신 용병들의 지휘관인 마크 대처는 어머니가 영국 전 총리 마거릿 대처였던 데다가 어머니가 보내준 보석금 덕분에 교도소 근처도 가지 않고 집행유예를 받았다.

심지어 응게마는 정적들의 인육을 먹었다는 의혹까지 있다.[27] 2004년 3월 10일에 세베로 모토는 스페인 라디오 방송국과 한 인터뷰에서 "그는 방금 경찰국장을 삼켰습니다. 나는 이 사람이 고환과 뇌 없이 묻혔기 때문에 삼켜졌다고 말합니다. 오비앙은 제 고환을 먹기 위해 제가 적도 기니에 돌아오는 것을 원합니다."고 말하며 응게마가 자신의 힘과 정력을 강화하고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정치적 경쟁자를 체계적으로 잡아먹었다는 주장을 했다. 이 인터뷰에서 모토는 응게마의 식인 주장이 은유가 아니란 것을 분명히 했다. 의미심장하게도(?) 적도 기니 정부는 이 주장을 부인하는 성명을 내놓지 않았다.[28] 다만 2023년 현재까지 이 증언을 뒷받침할만한 추가적인 증언과 신빙성 있는 자료는 나오지 않고 있다.

2008년에 미 국무부가 작성한 적도 기니의 인권보고서 실제로 미 국무부가 작성한 적도 기니의 인권 보고서는 해마다 변하는 것 하나 없는 '가상의 복제본'처럼 읽힌다고 한다.


3.3. 2010년 망명자 납치 + 사법살인 사건[편집]


2010년에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과 완전히 판박이인 사건도 터졌다. 적도 기니 당국은 2010년 1월에 베냉에서 수 년 동안 망명 생활을 하던 4명(전직 장교 3명+민간인 1명)을 납치해 블랙 비치 수용소에다가 비밀리에 구금, 고문했는데, 수감자들이 어느 정도로 비밀리에 구금되었냐면, 수감자들의 가족들조차 이들의 수감 여부를 몰랐을 정도였다고 한다[29].

적도 기니 당국은 고문으로 얻은 자백을 바탕으로 이 4명에게 '국가 원수 및 정부 대표에 대한 공격, 반역 및 테러', 쉽게 말해 2009년 2월 17일에 있던 대통령궁을 습격하여 대통령을 암살하려 했다는 혐의[30]를 뒤집어씌우고는 동년 8월 14~16일에 말라보의 군사법원에서 '즉결적인' 약식 재판을 거치게 한 후[31] 8월 21일에 피고들이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형을 사형으로 확정시키고는 이 4명을 형 확정 1시간 만에 모조리 처형시켰다[32].

물론 이 불합리한 조치에 국제앰네스티[33] 등의 인권단체들과 유엔, 미국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거세게 항의했으나, 적도 기니 정부는 오히려 '4명에 대한 신속한 재판과 처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고, 유엔 주재 적도기니 대표인 아나톨리오 은동 음바(Anatolio Ndong Mba)는 "처형된 사람들이 정부 전복 계획을 가지고 스스로 적도 기니로 돌아갔다" "그들은 체포되어 심판을 받았다" "적도 기니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적도 기니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른다"라고 말했으며, 심지어 오비앙 응게마 대통령은 서면 성명에서 "이 4명이 유죄 판결을 받고 신속히 처형된 것은 나와 나의 가족, 정부에 대한 임박한 위험으로 인해서이다" "적도 기니가 현재 진행 중인 개혁을 이행하기 위해 여전히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미국과 다른 기부자들이 국가 안보와 대통령 개인의 안보에 대한 위험의 심각성을 이해하기를 바란다"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국제망신을 당한 적도 기니는 이 사건 이후로 3년여간 사형 집행을 하지 않았고, 2014년 1월 31일에 살인 용의자 4명을 처형한 것을 마지막으로 9년 가까이 사형 집행을 하지 않았고, 2019년 4월 14일에 응게마는 사형제를 곧 폐지할 것이라고 발표했으며, 2022년 9월 19일, 적도 기니는 아예 사형제를 폐지하기에 이른다.


3.4. 2017년 쿠데타 미수 사건과 이에 대한 무자비한 보복[편집]


2017년 11월 12일에 있던 총선은 온갖 부정선거 의혹 속에서 치러졌고,[34] 선거 참여율이 84%였던 이 선거의 결과 PDGE는 의석 170개(상원 70개+하원 100개) 중 하원 의석 1개를 뺀 모든 의석을 싹슬이하는 압승을 거두었다. 이 결과에 응게마는 '시민들이 민주주의 에세이를 육성하고 있으며, 야당은 폭력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기를 원한다'며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한 반면, 의석을 차지한(하원 1개) 유일한 야당인 '혁신을 위한 시민(CI)[35]'은 선거 결과에 대해 항소할 것이며, 선거를 무효처리하고 재선거를 치르라고 요구했다. 물론 응게마는 12월에 CI의 간부 전체에 대한 수색 및 체포 영장을 발부하는 것으로 응수했다.

12월 27일에 적도 기니 당국은 CI와 반정부 정당들의 연합 단체, 차드의 장군이 결탁하여 응게마 대통령 일가를 암살하기 위해 외국인 용병들을 고용했고, 이를 카메룬 인근 변경에서 준비하고 12월 24일에 시행하려고 했던 쿠데타 시도가 발각되어 쿠데타를 시도하려 한 30명 정도의 무장한 사람들을 체포했다'라고 발표했다.[36] 이 소식이 알려지자 응게마는 정적들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에 나섰다.

해외에서까지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쿠데타에 가담한 것으로 지목되어 연행된 후[37] 재판 없이 구금되어 무자비한 구타와 '마시아스 독재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잔혹한 고문을 당한 데다가 밀집된 방에 구금되어 변호사와 가족과의 면회, 물과 음식 제공, 화장실 이용, 치료가 금지되었으며, 한 환자는 연행된 후 자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에 고문을 당했고, 임산부까지 연행되어 고문후유증으로 유산하거나 경찰서에서 강제로 낙태 수술을 당했으며, 심지어 한 수감자는 2018년 1월 13일에 고문후유증으로 옥사하기도 했다.

2018년 2월에 진행된 재판에서는 146명이 회부된 후 36명에게 징역 26년형이 선고되고, 이와 동시에 CI의 불법화도 선고되었다. 이에 대해 국내외에서 항의가 빗발치고 7월 3일에 연행된 사람 중 1명이 고문후유증으로 옥사하자 바로 다음날에 응게마는 모든 정치범에 대한 사면을 선포했고, 실제로 독립 50주년 전야인 10월 11일에 CI와 관련된 수감자 전원이 석방되었다.

다만 CI와 관련 없는 다른 수감자 40여명[38]은 여전히 감옥에서 무자비한 고문을 당했고, 2019년 3월 22일부터 5월 24일까지 두 명의 군 검사와 두 명의 군 치안 판사가 투입된 군사재판에서 180명 이상의 피고들이 재판을 받았고, 재판 결과 130명(이들 중 55명이 궐석재판 상태)의 피고인에게 무자비하다 못해 황당하기 그지없는 형량이 선고되었다.

스페인에 망명하며 반응게마 운동을 하던 3명은 쿠데타를 주도한 혐의로 징역 96년형을 선고받았고,[39] 피고인 중 25명이 징역 70년형 이상을 선고받았으며, 세베로 모토는 징역 59년형을 선고받았고, 유럽에 있는 야당 의원들도 형을 선고받았다. 뿐만 아니라 차드, 카메룬,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국적을 가진 외국인 24명도 납치된 후 '쿠데타를 수행하기 위해 탄약을 들고 적도 기니로 국경을 넘으려 한 용병'으로 몰려 형을 선고받았다.

심지어는 단지 토고에서 일자리를 찾으려 했다가 갑자기 납치되어 적도 기니로 강제로 이송된 후 쿠데타 미수 혐의로 징역 6년형을 선고받은 사람까지 있었으며, 야당과 밀접한 관련을 맺었다며 59년형을 선고받은 1명을 포함한 프랑스인 5명도 형을 선고받은 데다가 적도 기니 출신 이탈리아인 엔지니어마저 쿠데타 가담 혐의로 징역 58년형이 선고되어 유럽 내에서 큰 논란이 일었다. 다만 이렇게 형을 선고받은 사람들 중 21명은 무죄 판결을 받고 석방됐다.

재판 과정도 굉장히 불공정했다. 피고인들에게는 재판이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이미 선고가 내려진 상태였고, 고문을 통한 자백 외에는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전혀 제시되지 않았으며, 재판관들은 변호인이 법정에서 고문 혐의를 제기하는 것을 금지했고, 의뢰인을 변호하지 못하도록 가혹한 제재를 가한 데다가 피고인을 심문하는 동안 변호인단이 매우 제한된 방식으로 몇 분 동안만 발언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심지어는 변호사가 이의를 제기하거나 검찰 측의 증인에 대한 반대 심문을 하는 것조차 금지됐다.

설령 이것이 진짜 쿠데타 미수 사건이라 치더라도 이에 대한 보복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무자비했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 쿠데타가 사실은 응게마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친위 쿠데타가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올 정도다.


3.5. 우상화[편집]


응게마는 삼촌을 따라 자신의 우상화에도 열중했다. 2003년 7월에 적도 기니의 국영 라디오로 송출된 대통령 보좌관이 주관하는 'Bidze-Nduan(Bury the fire)'에서는 응게마가 '인간과 사물에 대한 모든 권세를 가진 하늘에 계신 하느님과 같다'고 선언했으며, 여기서 더 나아가 '하느님께서는 응게마 대통령과 영구적으로 접촉하시고 그에게 힘을 주시고 있으며, 따라서 응게마 대통령께서는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으면서 지옥에 가지 않고도 살인을 결정할 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또 응게마는 공개 연설을 할 때 연설의 마지막을 국가 전체가 아닌 자신의 쾌유를 위한 말로 종결했고, 마시아스에 대한 오비앙의 쿠데타를 기념한 거리들이 세워졌으며, 응게마의 얼굴이 새겨진 옷들이 판매되었다. 응게마에게 온갖 호칭들이 새로 붙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참고로 응게마는 자신을 'El Jefe(보스)'라 칭했다.


3.6. 세습 준비 의혹[편집]


파일:external/img.khan.co.kr/l_2012062101002688400199171.jpg

테오도로 응게마 오비앙 망구에(Teodoro Nguema Obiang Mangue, 1968.6.25~)

아들인 응게마 오비앙 망구에 적도 기니 부통령에게 권좌를 물려주려 한다는 의심이 솔솔 나오고 있다.

아버지 못지 않게 오비앙 망구에는 엄청나게 사치스러운 생활로 악명이 높은데, 미국 워싱턴 포스트가 밝힌 바에 따르면 걸프스트림 제트기(3,800만 달러), 미국 캘리포니아주 말리부의 호화 저택(3,500만달러), 드가·르누아르·마티스 등의 회화작품(3,400만 달러), 롤스로이스 자동차 5대(250만 달러). 여기에 다이아몬드가 박힌 피아제 시계 4개(400만 달러), 17세기 프랑스 고가구(340만달러), 마이클 잭슨이 '배드' 앨범 투어 때 착용한 흰색 크리스탈 장갑(27만 5,000 달러)이 알려진 재산 중의 일부라고 한다. 기사.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부자만 산다는 말리부 해안가에 현금 3,000만 달러(약 330억 원)를 주고 산 저택에 사는데, 미국의 유명한 영화배우인 멜 깁슨과 팝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이웃이라고 한다. 또한 벌목 허가를 받으려는 해외 기업에서 받는 혁명세 수입이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이러한 금액들을 사실상 그가 갈취하고 있다고 한다. 수출되는 목재당 27달러씩이 오비앙에게 바쳐지는 세금 명목으로 부과되었는데, 만약 이러한 요구를 거부하면 적도 기니에서 쫓겨났다고 한다. 또한 그가 미국에 유령회사를 만들어 돈 세탁을 해 적도 기니에 들여온 돈이 2010년 한 해에만 1억 달러(약 1,100억 원)였다고 한다. 또한 그는 미국의 유명 팝가수 이브(Eve)를 비롯해 성인 잡지 플레이보이 표지 모델 같은 숱한 여성들과 세계 유명 휴양지에서 데이트를 즐긴다고 전해지며[40],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인 폴 앨런에게서 길이 100m짜리 요트를 하루 70만 달러에 빌려서 그 요트를 타며 휴가를 즐기기도 했다. 또한 그와 데이트를 한 여성들은 구찌, 베르사체 등의 명품들을 명품 매장에서 한 번에 8만 달러 어치를 사기도 했다.

이러한 부패 혐의가 프랑스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 기사


4. 사치 행각과 부정부패[편집]


적도 기니천연가스석유가 풍부한 자원부국으로,[41] 넘쳐나는 석유, 천연가스, 목재 등을 팔아 한때에는 1인당 GDP가 한국보다 높았던 적도 있었다.[42] 비록 적도 기니의 1인당 GDP는 2013년부터 계속(2017~2018년, 2021년은 제외) 꾸준히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여 2021년에는 8,462달러로 떨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적도 기니의 1인당 GDP는 2021년 기준으로 세이셸(13307달러)와 모리셔스(8812달러)를 제외하면 아프리카 내에서 최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응게마는 이렇게 나라에 부를 가져다준 자국의 석유에 대해 '하늘에서 온 만나'라고 극찬했다.

하지만 1인당 GDP가 약 21,641달러였던 2011년에 적도 기니는 아동의 26%가 영양실조에 걸린 데다가 빈곤선 밑에서 사는 국민들이 44%였고, 2020년 기준으로도 5세 미만 영유아 사망률이 193개국 183위인 1000명당 58.28명에 이르며 평균수명은 194개국 중 185위인 59,8세(여성 61.1세+남성 58.8세)로 나타났다. 그리고 적도 기니의 지니 계수는 비공식적으로는 0.650로 집계된 적도 있었다고 하는데, 이렇게 빈부격차가 심한 이유는 응게마 일족의 부정부패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적도 기니의 부정부패는 2021년자 부패인식지수에서 100점 만점에 17점을 기록해 리비아와 함께 180개국 중 공동 172위를 기록되었을 정도로 심각하다.[43] 물론 응게마 본인은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서 가장 부유한 10인 중 한 명으로 여겨지고 있다.

응게마는 삼촌의 집권기부터 마약 밀매에 가담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1997년에는 전직 정보부 장관과 응게마의 친척이 마약 밀매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참고자료 1 참고자료 2

2003년에 응게마는 '공무원들이 부패한 관행에 가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국고를 개인적으로 완전히 장악해야 한다'고 시민들에게 말했는데, 그 후 응게마는 워싱턴 D.C.에 있는 릭스 뱅크(Riggs Bank)에 있는 자신과 가족이 관리하는 60개 이상의 계좌에 5억~10억 달러 정도를 예치했다. 이에 미국 연방 법원은 릭스 뱅크에 160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2006년에 포브스는 응게마와 그의 친척들이 가지고 있는 사업체의 가치를 환산하면 약 80억 달러로 추산된다고 보고했는데, 같은 해에 적도 기니의 GDP는 약 101억 달러였다. 참고자료

2011년에 프랑스의 비정부 기구가 응게마와 측근들의 부정부패에 대해 다룬 보고서를 작성하자 응게마는 이 행동이 자신의 이미지를 훼손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프랑스 법원에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기까지 했다. 물론 프랑스 법원은 이 황당한 요구를 기각했다.

응게마 가족은 엄청나게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리고 있다. 적도 기니의 수도인 말라보에 있는 대통령 관저 외에도 테오도로 오비응 응게마는 1999년 미국 메릴랜드 주에 현금 260만 달러를 주고 저택을 마련한 데 이어 이듬해 또 다른 메릴랜드 주택을 115만 달러에 샀으며,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에 여름 궁전을 갖고 있으며, 미국 매릴랜드에도 두 채의 별장을 갖고 있다. 특히 그는 전용기 6대로 이들 거처를 호화스럽게 여행한다고 한다. 또한 샹젤리제 인근의 호텔 플라자-아테네에서 하룻밤에 2천 파운드(343만원) 가격의 스위트룸을 즐겨 찾는 것으로 전해진다. 기사. AP통신 등 외신들은 "적도 기니의 연안에 수십억 달러 상당의 원유가 매장돼 있다", "독재와 인권 탄압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그가 국제사회에서 비난을 덜 받고 있는 것은 원유 공급을 둘러싼 서방과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원유를 이용해서 입을 막고 있으며,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적도 기니의 대통령인 그의 재산은 10억 달러(약 1조 1,000억원)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응게마의 큰 아들인 테오도로 오비앙 은게마 망구에는 적도 기니의 부통령 겸 안보 담당 장관이며, 또 다른 아들인 가브리엘 음바가는 석유장관직을, 처남은 국영 석유 회사의 수장을 맡고 있는 등 사실상 적도 기니의 중요 요직을 오비앙 가문이 다 차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서방 외교관들은 오비앙 가문이 적도 기니의 모든 것을 주무르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물론 응게마의 아들도 그를 닮아서 여러 대의 람보르기니와 같은 초고가 스포츠카나 벤틀리 같은 럭셔리카를 잔뜩 가지고 있으며, 스페인카나리아 제도에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 2016년에는 스위스에서 테오도린 오비앙 소유의 고급차 11대를 그의 부패 혐의와 관련해 압류했다. 기사. 2019년에 경매로 나왔다. #

응게마의 아들인 테오도린 오비앙은 마이클 잭슨의 크리스탈 장갑과 마이클 조던의 서명 농구공을 포함한 기념품을 사기 위해 300만 달러(34억 원)를 사용하는 등 총 7,000만달러(792억원)를 사치하는 데 썼다고 한다. 그는 말리부 해변에 고급스럽게 지어진 3,000만 달러짜리 저택과 3,850만 달러짜리 전용 제트기를 소유하고 있으며, 람보르기니 베네노 로드스터[44]와 페라리 등 초고가 스포츠카를 수십 대나 갖고 있다. 문제는 그가 맡고 있는 농림장관의 월급이 고작 6,800달러에 불과한데 대체 그 돈을 어떻게 모았느냐는 점이다. 기사.

한편 카니발 축제 팬인 응게마는 부통령직을 맡고 있는 응게마의 아들과 함께 리우데자네이루를 방문해 카니발 VIP석을 12만 레알(약 4,500만원)로 구입해 축제를 즐겼다고 하며, 가족과 친인척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대량의 고급 샴페인을 마시면서 돈을 썼다고 한다. 기사.

2017년에는 아들과 함께 1억 1000만 유로를 횡령한 혐의로 프랑스 검찰에 기소됐다. 기사

게다가 적도 기니의 석유 매장량은 2012년부터 감소하는 추새라 새로운 매장량이 발견되지 않으면 2035년에 완전히 고갈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5. 기타[편집]


  • 개인적으로는 훌륭한 테니스 선수이며, 겸손하고 호감이 가는 사람이라고 한다.

  • 김일성과 친하게 지내고 축출 직전에 자식 3명[45]만경대혁명학원에 유학을 보낸 삼촌처럼 북한과 어느 정도 인연이 있다. 실제로 북한은 2012년에 김정일의 군 최고사령관 추대 21주년을 기념하여 국제김정일상을 만들고는 2013년에 이 상의 첫 수상자로 바로 오비앙 응게마를 선정했는데, 이 상을 수여받을 당시 응게마는 적도 기니를 방문한 김기남 노동당 비서로부터 이 상을 받으면서 과거에 김일성을 면담한 것을 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

  • 적도 기니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연간 6만 달러의 돈을 들여 글로벌 마케팅 및 홍보 회사인 레이스포인트를 고용하기도 했다.


6. 관련 문서[편집]




7. 둘러보기[편집]





[ 아시아 ]
* 의원내각제 하의 대통령
** 아랍에미리트의 대통령은 아부다비의 아미르가 겸직하여 사실상 군주에 가깝다.
*** 이란의 국가원수는 라흐바르이며, 대통령이 아니다.
**** 현직 장성급 장교들이 국회의원을 겸직하는 정당이라 사실상 미얀마군 소속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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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원내각제 하의 대통령
** 산마리노의 국가원수는 대통령이 아닌 두 명의 집정관이다.
*** 오스트리아와 포르투갈은 헌법상 이원집정부제이나 사실상 의원내각제 국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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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도미니카 연방 국기.svg 도미니카 연방*
파일:멕시코 국기.svg 멕시코
[[현대혁명당|

현대혁명당
]]
[[무소속|

무소속
]]
[[국가재건운동|

국가재건운동
]]
루이스 아비나데르 (초선)
실바니 버튼 (초선)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파일:바베이도스 국기.svg 바베이도스*
파일:베네수엘라 국기.svg 베네수엘라
[[민주당(미국)|

민주당
]]
[[무소속|

무소속
]]
[[베네수엘라 연합사회당|

베네수엘라 연합사회당
]]
조 바이든 (초선)
샌드라 메이슨 (초선)
니콜라스 마두로 (재선)
파일:볼리비아 국기.svg 볼리비아
파일:브라질 국기.svg 브라질
파일:수리남 국기.svg 수리남
[[사회주의 운동|

사회주의 운동
]]
[[노동자당|

노동자당
]]
[[진보개혁당|

진보개혁당
]]
루이스 아르세 (초선)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3선)
찬 산토키 (초선)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아르헨티나
파일:아이티 국기.svg 아이티
파일:에콰도르 국기.svg 에콰도르
[[자유당(아르헨티나)|

자유당
]]
[[무소속|

무소속
]]
[[국민민주행동|

국민민주행동
]]
하비에르 밀레이 (초선)
아리엘 앙리 (권한대행)
다니엘 노보아 (초선)
파일:엘살바도르 국기.svg 엘살바도르
파일:온두라스 국기.svg 온두라스
파일:우루과이 국기.svg 우루과이
[[무소속|

무소속
]]
[[해방재건당|

해방재건당
]]
[[국민당(우루과이)|

국민당
]]
클라우디아 로드리게스 데 게바라 (대행)
시오마라 카스트로 (초선)
루이스 라카예 포우 (초선)
파일:칠레 국기.svg 칠레
파일:코스타리카 국기.svg 코스타리카
파일:콜롬비아 국기.svg 콜롬비아
[[사회융합당|

사회융합당
]]
[[사회민주진보당(코스타리카)|

사회민주진보당
]]
[[인간적인 콜롬비아|

인간적인 콜롬비아
]]
가브리엘 보리치 (초선)
로드리고 차베스 로블레스 (초선)
구스타보 페트로
파일:트리니다드 토바고 국기.svg 트리니다드 토바고*
파일:파나마 국기.svg 파나마
파일:파라과이 국기.svg 파라과이
[[무소속|

무소속
]]
[[민주혁명당(파나마)|

민주혁명당
]]
[[콜로라도당|

콜로라도당
]]
크리스틴 캉갈루 (초선)
라우렌티노 코르티소 (초선)
산티아고 페냐
파일:페루 국기.svg 페루


[[무소속|

무소속
]]


{{{#!wiki style="display:inline-block; min-width:16%""
[ 아프리카 ]
* 의원내각제 하의 대통령
** 현재 군사정권이거나 혹은 사실상 해당 국가의 군 소속
파일:가나 국기.svg 가나
파일:가봉 국기.svg 가봉**
파일:감비아 국기.svg 감비아
[[신애국당|

신애국당
]]
[[가봉군|

가봉군
]]
[[국가인민당(감비아)|

국가인민당
]]
나나 아쿠포아도 (재선)
브리스 클로테르 올리기 응게마(권한대행)
아다마 배로 (재선)
파일:기니 국기.svg 기니**
파일:기니비사우 국기.svg 기니비사우
파일:나미비아 국기.svg 나미비아
[[기니군|

기니군
]]
[[마뎀 G15|

마뎀 G15
]]
[[남서아프리카 인민기구|

남서아프리카 인민기구
]]
마마디 둠부야 (권한대행)
우마루 시소쿠 엠바루
하게 게인고브 (재선)
파일:나이지리아 국기.svg 나이지리아
파일:남수단 국기.svg 남수단
파일:남아프리카 공화국 국기.svg 남아프리카 공화국
[[전진보회의|

전진보회의
]]
[[수단 인민해방군|

수단 인민해방운동
]]
[[아프리카 국민회의|

아프리카 국민회의
]]
볼라 티누부 (초선)
살바 키르 마야르디트 (초선)
시릴 라마포사 (초선)
파일:니제르 국기.svg 니제르**
파일:라이베리아 국기.svg 라이베리아
파일:르완다 국기.svg 르완다
[[니제르군|

니제르군
]]
[[민주변혁회의|

민주변혁회의
]]
[[르완다 애국 전선|

르완다 애국 전선
]]
압두라하마네 치아니 (권한대행)
조지 웨아 (초선)
폴 카가메 (3선)
파일:리비아 국기.svg 리비아
파일:마다가스카르 국기.svg 마다가스카르
파일:말라위 국기.svg 말라위
[[무소속|

무소속
]]
[[젊은 말라가시 청년들|

젊은 말라가시 청년들
]]
[[말라위 의회당|

말라위 의회당
]]
모하메드 알 멘피 (대통령위원회 의장)
안드리 라조엘리나 (3선)
라자루스 차퀘라 (초선)
파일:말리 국기.svg 말리**
파일:모리셔스 국기.svg 모리셔스*
파일:모리타니 국기.svg 모리타니
[[말리군|

말리군
]]
[[투쟁 사회주의운동|

투쟁 사회주의운동
]]
[[공정당|

공정당
]]
아시미 고이타 (권한대행)
프리티비라즈싱 루푼 (초선)
모하메드 울드 가주아니 (초선)
파일:모잠비크 국기.svg 모잠비크
파일:베냉 국기.svg 베냉
파일:보츠와나 국기.svg 보츠와나
[[모잠비크 해방전선|

모잠비크 해방전선
]]
[[무소속|

무소속
]]
[[보츠와나 민주당|

보츠와나 민주당
]]
필리프 뉴시 (재선)
파트리스 탈롱 (재선)
모크위치 마시시 (초선)
파일:부룬디 국기.svg 부룬디
파일:부르키나파소 국기.svg 부르키나파소**
파일:사하라 아랍 민주 공화국 국기.svg 사하라 아랍 민주 공화국
[[민주방위국민회의 - 민주방위세력|

민주방위국민회의 - 민주방위세력
]]
[[부르키나파소군|

부르키나파소군
]]
[[폴리사리오 전선|

폴리사리오 전선
]]
에바리스트 은다이시미예 (초선)
이브라힘 트라오레 (권한대행)
브라힘 갈리
파일:상투메 프린시페 국기.svg 상투메 프린시페
파일:세네갈 국기.svg 세네갈
파일:세이셸 국기.svg 세이셸
[[독립민주행동당|

독립민주행동당
]]
[[공화국 동맹|

공화국 동맹
]]
[[세이셸민주동맹|

세이셸민주동맹
]]
카를루스 빌라 노바 (초선)
마키 살 (재선)
와벨 람칼라완 (초선)
파일:소말리아 국기.svg 소말리아
파일:소말릴란드 국기.svg 소말릴란드
파일:수단 공화국 국기.svg 수단**
[[평화개발연합당|

평화개발연합당
]]
[[쿨미예 평화통일개발당|

쿨미예 평화통일개발당
]]
[[수단군|

수단군
]]
하산 셰흐 마하무드 (재선)
무세 비히 압디 (초선)
압델파타흐 알부르한 (주권위원회 의장)
파일:시에라리온 국기.svg 시에라리온
파일:알제리 국기.svg 알제리
파일:앙골라 국기.svg 앙골라
[[시에라리온 인민당|

시에라리온 인민당
]]
[[민족해방전선(알제리)|

민족해방전선
]]
[[앙골라 인민해방운동|

앙골라 인민해방운동
]]
줄리어스 마다 바이오 (3선)
압델마지드 테분 (초선)
주앙 로렌수 (재선)
파일:에리트레아 국기.svg 에리트레아
파일:에티오피아 국기.svg 에티오피아*
파일:우간다 국기.svg 우간다
[[민주정의인민전선|

민주정의인민전선
]]
[[무소속|

무소속
]]
[[민족저항운동|

민족저항운동
]]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 (초선)
살러워르크 저우데 (초선)
요웨리 무세베니 (6선)
파일:이집트 국기.svg 이집트**
파일:잠비아 국기.svg 잠비아
파일:적도 기니 국기.svg 적도 기니
[[무소속|

무소속
]]
[[국가개발통일당|

국가개발통일당
]]
[[민주당(적도 기니)|

민주당
]]
압델 파타 엘 시시 (재선)
해케인드 히칠리마 (초선)
테오도로 오비앙 응게마 음바소고 (7선)
파일:중앙아프리카공화국 국기.svg 중앙아프리카공화국
파일:지부티 국기.svg 지부티
파일:짐바브웨 국기.svg 짐바브웨
[[연합마음운동|

연합마음운동
]]
[[진보인민연합|

진보인민연합
]]
[[짐바브웨 아프리카 국민연합 - 애국전선|

짐바브웨 아프리카 국민연합 - 애국전선
]]
포스탱아르샹주 투아데라 (재선)
이스마일 오마르 겔레 (5선)
에머슨 음낭가과 (재선)
파일:차드 국기.svg 차드**
파일:카메룬 국기.svg 카메룬
파일:카보베르데 국기.svg 카보베르데
[[차드군|

차드군
]]
[[카메룬 인민민주운동|

카메룬 인민민주운동
]]
[[카보베르데 독립아프리카당|

카보베르데 독립아프리카당
]]
마하마트 데비 이트노 (권한대행)
폴 비야 (7선)
조제 마리아 네베스 (초선)
파일:케냐 국기.svg 케냐
파일:코모로 국기.svg 코모로
파일:코트디부아르 국기.svg 코트디부아르
[[통합민주연대|

통합민주연대
]]
[[코모로의 부흥을 위한 대회|

코모로의 부흥을 위한 대회
]]
[[공화주의자의 집회|

공화주의자의 집회
]]
윌리엄 루토 (초선)
아잘리 아소우마니 (4선)
알라산 와타라 (3선)
파일:콩고 공화국 국기.svg 콩고 공화국
파일:콩고민주공화국 국기.svg 콩고민주공화국
파일:탄자니아 국기.svg 탄자니아
[[콩고 노동당|

콩고 노동당
]]
[[민주사회진보연합|

민주사회진보연합
]]
[[탄자니아 혁명당|

탄자니아 혁명당
]]
드니 사수 응게소 (7선)
펠릭스 치세케디 (초선)
사미아 술루후 하산 (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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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튀니지 국기.svg 튀니지

[[공화국을 위한 연합|

공화국을 위한 연합
]]
[[무소속|{{{#!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808080; font-size: .8em"
무소속]]

포르 냐싱베 (4선) || 카이스 사이에드 (초선) || ||}}}
{{{#!wiki style="display:inline-block; min-width:16%"">
[ 오세아니아 ]
* 의원내각제 하의 대통령
** 2027년 독립 예정
*** 대통령이 아닌 군주로 보는 의견도 있다
파일:나우루 국기.svg 나우루
파일:마셜 제도 국기.svg 마셜 제도
파일:미크로네시아 연방 국기.svg 미크로네시아 연방
[[무소속|

무소속
]]
[[무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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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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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비드 아데앙 (초선)
데이비드 카부아 (초선)
웨슬리 시미나 (초선)
파일:바누아투 국기.svg 바누아투*
파일:부건빌 주기.svg 부건빌**
파일:사모아 국기.svg 사모아***
[[무소속|

무소속
]]
[[부건빌 인민동맹당|

부건빌 인민동맹당
]]
[[무소속|

무소속
]]
니케니케 부로바라부 (초선)
이스마엘 토로아마 (초선)
바알레토아 수알루비 2세 (재선)
파일:키리바시 국기.svg 키리바시
파일:팔라우 국기.svg 팔라우
파일:피지 국기.svg 피지*
[[키리바시 포용당|

키리바시 포용당
]]
[[무소속|

무소속
]]
[[피지퍼스트|

피지퍼스트
]]
타네티 마마우 (재선)
수랑겔 휩스 주니어 (초선)
윌리암 카토니베레 (초선)
재위 중인 군주 · 집권 중인 공산국가 지도부
재임 중인 총리 및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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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achillerato laboral administrativo.[2] 아들 중 한 명이 부통령이고, 권력을 세습하려 한다는 의혹이 있다.[3] 스페인에 국빈 방문할 당시에 촬영되었다. 원본[4] 백악관에서 촬영되었다. 원본[5] 이 시절에 응게마는 마약을 복용했다고 한다.[6] 참고로 응게마는 망그 외에도 4명의 아내가 더 있다고 한다.[7] 적도 기니의 수도인 말라보가 이 섬의 북쪽 연안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한국으로 치면 경기도지사와 비슷한 위치의 직위이다.[8] 이때 응게마 음바스고는 삼촌에게 '심판에 가기 전에 정신과 센터를 거쳐야 했다'라고 했는데, 막말이 아니었던 게 사실 응게마는 심각한 정신병 환자였다고 한다.[9] 실제로 마시아스 응게마가 처형된 재판에서는 자신의 후임 블랙비치 교도소 소장이던 살바도르 온도 엘라(Salvador Ondo Ela, ?~1979)도 처형당했다.[10] 다만 적어도 2017년의 쿠데타는 후술하듯 자작극이라는 설도 있다.[11] 1983년에는 5월과 11월에 쿠데타 시도가 두 차례나 있었다.[12] Severo Moto Nsá, 1943~. 1983년에 스페인에 망명하던 상황에서 적도기니진보당(PPGE)을 창당한 후 2020년까지 대표를 역임했으며, 2003년 8월 29일에는 마드리드에 적도 기니 망명정부를 세우기도 했다. 1997년 8월에 다른 11명과 함께 반역 혐의로 기소되어 궐석재판에서 무려 징역 101년형을 선고받은 적도 있다.[13] 실제로 짐바브웨로버트 무가베2008년에 전립선암 선고를 받아 '3~5년 내에 죽을 것'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절제된 식습관 덕분에 11년 후인 2019년까지 살 수 있었다. 다만 무가베는 전립선암을 선고받을 당시 84세의 고령이었으나 응게마는 전립선암을 앓기 시작했을 때에는 비교적 젊은(?) 64세였다.[14] 참고로 적도 기니에서는 2014년을 마지막으로 사형이 집행되지 않았다.[15] 이렇게 되면 인류 역사상 응게마보다 더 오래 집권한 비군주 독재자는 피델 카스트로 단 1명밖에 없게 된다.[16] 많은 유권자들은 위협을 받으며 여당 후보를 뽑도록 강요받았고, 야당 참관인들은 선거에 참여할 수 없었으며, 군인의 아내들이 응게마에 대한 대규모 투표에 동원되었고, 공무원들이 부재한 가족 대신 투표하는 일이 많았으며, 심지어는 투표용지(후술하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쓰는 투표용지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을 쓴다.)를 2개 이상 받은 사람도 있었다.[17] 응게마의 아들이라고 한다.[18] 하지만 카스트로의 경우 독재자 중에서는 악명 낮은 편이었고, 장제스의 경우는 공과가 갈리는 만큼 김일성하고는 비교할 인물이 아니다.[19] 참고로 실권을 잡기 전의 직책까지 소급적용하면 폴 비야도 이에 해당한다. 비야의 대통령 집권은 응게마보다 3년 늦은 1982년에 이루어졌지만, 사실은 이미 1975년부터 카메룬의 총리를 맡고 있었다.[20] 다만 상술한 것처럼 응게마는 2006년부터 전립선암 합병증에 시달리는 중이라는 것은 유념해야 할 것이다.[21] 물론 삼촌을 몰아낸 이유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때문이 아니라 상술한 것처럼 막내동생이 처형당한 것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서였다.[22] 참고로 당시 무가베는 기록적인 초인플레이션,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자행된 부정행위와 폭력 사태로 이전보다도 더 악명이 높아졌던 상황이였고, 이 여파로 그 다음해인 2009년에는 워싱턴 포스트의 주말판 매거진 '퍼레이드'에서 선정한 세계 최악의 독재자 순위에서 김정일(3위)까지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23] 적도 기니보다 순위가 낮은 나라는 북한&에리트레아(3점), 투르크메니스탄(2점), 시리아&남수단(1점) 이렇게 단 5개국밖에 없다.[24] 다만 적도기니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개도국 경찰은 과학수사라는 걸 할 여력 자체가 없어서 수사관의 경험과 추측으로 사건을 풀어가는 게 보통이다. 제대로 풀리면 좋겠지만 중간에 막히면 피의자를 고문해서라도 답을 얻어내려 하게 된다.[25] 정작 적도 기니는 공식적으로는 2006년 11월부터 고문 금지법을 시행한 상황이다.[26] 물론 이게 가능했던 건 언제까지나 용병들의 배후였던 마크 대처가 마거릿 대처 영국 전 총리의 아들이었기 때문이지, 일반 영국인 용병이 이런 짓 하다가 잡혔다면 사람취급도 받지 못했으리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27] 사실 1970년대의 아프리카에서는 폭정이 극심했던 독재자들 사이에서 식인 루머가 도는 경우가 많았는데, 실제로 마시아스 응게마 외에도 이디 아민, 장 베델 보카사가 식인설로 악명이 높았고, 응게마의 후배인 찰스 테일러도 식인설이 돌았다. 다만 적어도 아민과 보카사의 식인은 무혐의로 결론났다.[28] 비슷한 시기에 짐바브웨로버트 무가베 정권이 소년병을 양성한다는 내용을 담은 BBC의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자 짐바브웨 정부가 이 다큐멘터리의 내용이 '근거 없는 쓰레기 같은 소리'라고 전면 부인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다만 후에 이 의혹은 사실로 드러났다.[29] 결국 이들이 수감되었다는 사실은 이들이 모두 처형된 후에야 공개되었다.[30] 정작 적도 기니 당국은 전술한 대통령궁 습격이 일어날 당시에는 이 습격이 니제르델타 해방을 위한 나이지리아 무장단체 운동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31] 피고들의 변호사라며 법률 교육도 안 받은 군 장교 2명을 데려왔다고 하고, 검찰이 대통령 암살 미수의 증거라고 제시한 것도 오래된 소총 하나에 불과했다.[32] 참고로 처형당한 피고 중 1명이 마지막이라도 가족 면회를 해달라 해서 군 관계자가 그의 아들 중 1명과 아내를 데리고 왔지만, 데리고 오는 사이에 처형이 끝나서 블랙 비치 수용소에 온 유가족들은 너무 늦었다는 통보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33] 실제로 마리스 카스트로는 신속한 처형이 일반적인 적도 기니에서도 이 사건처럼 재판이 끝난 직후에 수감자를 사형에 처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34] 시·의회·상원의원 선거에서 정당당 한 장의 투표용지가 인쇄돼 유권자들이 각 기관마다 다른 투표용지를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야당의 투표용지가 없는 투표소가 허다했고, 투표가 시작되기로 예정된 시간으로부터 몇 시간 전에 투표가 시작된 데다가, 많은 투표소가 사전에 공지된 장소가 아닌 다른 장소에 있어 야당 참관인이 올 수 없었으며, 여당은 많은 사람들에게 여당을 찍을 것을 강요한 데다가, 이 투표에 반항하던 사람들은 군인들에게 구타를 당하고 구금되었다. 거기다가 일부 야당 후보는 갑자기 당선이 무효 처리되었으며, 의미심장하게도 선거 당일에는 적도 기니의 인터넷 신호가 끊겼다고 한다.[35] 2005년에 설립된 반응게마 야당이다.[36] 참고로 이드리스 데비 차드 대통령은 적도 기니의 쿠데타에 차드의 장군이 개입했다는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37] 이들 중에는 60세를 넘은 할머니도 있었다.[38] 이들 중 대부분이 여당인 PDGE와 관련된 인사였다.[39] 이들 중 2명은 15년 이상 스페인에 합법적으로 거주하던 사람들이었지만, 2019년 11월 12일에 스페인 시민권을 가진 다른 2명과 함께 남수단에 갔다가 3일 뒤에 적도 기니 당국에 납치되어 수감되었다.[40] 참고로 미국의 가십 사이트에 따르면, 이브는 데이트를 하던 오비앙 망구에의 아버지가 식인을 했다는 소문을 듣고는 그를 버렸다고 한다.[41] 사실 1996년에 석유가 발견되기 이전까지 적도 기니는 1인당 GDP가 1991년 기준으로 약 256달러(2022년 기준으로는 약 556달러)인 최빈국이었는데, 실제로 이 당시 말라보의 전화번호부는 이름만 나열한 두 페이지로만 구성되어 있었고, 도시의 유일한 호텔에는 수도와 전기, 부엌이 없었으며, 심지어는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조차 없었다고 한다. 참고로 적도 기니에는 2023년 기준으로도 철도가 없다.[42] 정확히는 2008년에 적도기니의 1인당 GDP는 약 22,943달러였고, 한국의 1인당 GDP는 약 21,350달러였다.[43] 게다가 적도 기니보다 부패인식지수가 낮은 나라는 아프가니스탄&북한&예멘(공동 174위), 베네수엘라(177위), 소말리아&시리아(공동 178위), 남수단(180위) 7개국밖에 없다. 이 7개국이 모두 대표적인 파탄국가로 악명이 높은 것을 감안하고 보면 적도 기니의 부정부패가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 짐작할 수 있다.[44] 최근 압류되었다. SNS에 가끔 나도는 그 새하얀 베네노 로드스터 맞다.[45] 이 3명 중 막내딸인 모니카(Monica, 1972~)는 이후 해외를 전전하고 2007년대한민국에 이주했으며, 2013년에 '나는 평양의 모니카입니다'라는 회고록을 출판하여 국내에서는 대통령을 역임한 아버지와 종형제 이상으로 인지도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