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메니아군

덤프버전 :


세계의 군대 (지역별 가나다순)
⠀[ 아시아 ]⠀
{{{#!wiki style="display:inline-table; min-width:18%; min-height:2em"
⠀[ 유럽 ]⠀
{{{#!wiki style="display:inline-table; min-width:18%; min-height:2em"
⠀[ 아메리카 ]⠀
{{{#!wiki style="display:inline-table; min-width:18%; min-height:2em"
⠀[ 아프리카 ]⠀
{{{#!wiki style="display:inline-table; min-width:18%; min-height:2em">
⠀[ 오세아니아 ]⠀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 펼치기 · 접기 ]




아르메니아군
Հայաստանի զինված ուժեր
Armed Forces of Armenia

국가
파일:아르메니아 국기.svg 아르메니아
소속
아르메니아 국방부
상비군
52,600명[1]
예비군
210,000명
병역제도
징병제
육군력

[ 펼치기 · 접기 ]

공군력

[ 펼치기 · 접기 ]

예산
7억1100달러

1. 개요
2. 계급
3. 역사
4. 수뇌부
5. 구성
5.1. 육군
5.2. 공군
6. 여담
7. 관련문서
8. 외부링크
9.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아르메니아의 군대이다.


2. 계급[편집]




3. 역사[편집]



3.1. 아르메니아 제1공화국[편집]


러시아 내전 당시 소비에트 러시아의 붉은 군대 제11군은 남캅카스의 3국을 소비에트화를 위해 남하하여 첫타겟으로 1920년 4월 27일 아제르바이잔 민주 공화국을 침공하여 아르메니아의 도움[2]으로 어려움 없이 5월 아제르바이잔 SSR을 수립하였고, 오래 안 가 격렬한 반소비에트 반란에 휘말리게 되었지만 제11군은 남은 아르메니아 제1공화국조지아 민주 공화국을 침공할 태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르메니아와 러시아가 협상하는 짧은 기간동안 제11군은 진격을 보류하며 아르메니아 이제반 지역의 공산주의자를 도왔고, 결국 제11군은 1920년 9월 24일 아르메니아를 침공했다. 아르메니아는 튀르키예한테도 침략당해 양면전쟁을 치루게 되었다. 결국 오래가지 않아 3개월만에 제1공화국은 전복되어 두번째 남캅카스 아르메니아 SSR을 수립하게 되었다.

이후 12월에 체카예레반에 진입하였고, 여러지역에서 탄압이 이루어지자 아르메니아 점령지에서 반란이 일어나 예레반이 반란군에 점령되었지만 다시 진압되고 현재 아르메니아 남부 슈니크주에 산악 아르메니아 공화국이 탄생했지만 대규모 군사작전으로 멸망[3]하여 끝나게 된다. 그러나 튀르키예-러시아 SFSR 간의 갈등이 시작되었고, 제11군이 1921년 2월 조지아를 침략하면서 튀르키예도 조지아가 지배하던 곳을 점령하면서 둘의 관계는 적대적으로 변하게 되었지만 튀르키예와 러시아 SFSR과 캅카스3국이 카르스 조약을 채결함으로써 현재의 남캅카스국가와 튀르키예간의 국경이 생기게되었다. 남캅카스를 정복한 제11군은 1921년 5월 29일 해산 후 재편성되어 캅카스 적기군(Кавказская Краснознамённая армия)이 탄생하였다.


3.2. 소비에트 연방&아르메니아 SSR[편집]


캅카스 적기군이 존속되는 14년 동안 반군진압 및 치안유지를 했으며, 1923년에 적기훈장을 수훈받았다. 이후 1935년 5월 17일 자캅카스 군관구(Краснознамённый Закавказский военный округ)로 재편성되면서 북캅카스가 제외되어 캅카스 3국 지역을 주로 방위하였다. 소비에트 연방 해체 당시 자캅카스 군관구의 전력은 병력 19만여 명, 전차 500여 대, 장갑차 2,500여 대, 야포 1,000문 이상, 항공기 250여 대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중 아르메니아 SSR을 위수지역으로 하던 제7근위군의 경우 전차 256대, 장갑차 641대, 야포 357문, 항공기 92기를 보유했는게, 이 제7근위군을 기반으로 하여 아르메니아군이 창설되었다.


3.3. 아르메니아[편집]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고 아르메니아는 1992년 1월 28일 국방부 설립과 함께 아르메니아군 창설을 공식화하였다. 이날은 아르메니아의 육군의 날의 기념이되고 있다. 이전에 소비에트 연방이 가입한 유럽의 재래식 군대에 관한 최초의 조약(CFE)에 따라 독립했던 아르메니아는 비준으로 간주되어 군사무기에 대해 포괄적으로 제한을 했으며 초과하는 무기를 폐기를 하였으며, 조약을 준수하고 있다고 일관적으로 표명하였고 데이터를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아르메니아가 아르차흐 공화국에 제공하고 있음에 국제규정을 회피하고 있다고 비난을 하였다. 또 1993년 3월에는 화학 무기 금지 조약(CWC)에 가입했고, 7월에는 핵확산방지조약(NPT)에 가입하였다. 아르메니아 또한 소비에트 연방과 다름없이 내무부대를 창설하여 2002년까지 내무부를 유지하다가 이들을 아르메니아 경찰과 국가안보국을 창설하게되었다.

아르메니아 영토에는 러시아군 제102군사기지가 주둔중이며, 대략 3000명 정도 있으며 에레부니 공항에 아르메니아-러시아 공군이 같이 주둔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주둔군의 군인은 주변에 범죄를 여러번 일으켰으며 러시아는 규율을 개선하기 위해 헌병을 파견하였으나 아르메니아는 헌병파견이나 활동하는 정보를 당국에 제공하지 않았기에 우려하였다.

3.3.1. 평화유지작전[편집]


아르메니아는 평화유지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있다. 코소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레바논, 말리, 카자흐스탄까지 아르메니아군인 300여명을 파견하였었다.


3.3.2. 국제협력[편집]


러시아 아르메니아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이며, 소비에트 연방당시 제 127자동화소총사단이 주둔하던 곳을 현재 러시아군이 주둔하고 있으며, 특히 양국의 군사동맹과 더불어 아르메니아에 러시아군이 주둔하는 것또한 아르메니아의 독립이후에 하나의 중요한 국가안보교리이다. 제 102군사기지에는 3000명이 주둔하고있으며, 러시아-아르메니아 관계가 국제적으로 협력범위가 광범위해지고 있으며 상당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있다. 특히 러시아-조지아 관계가 악화와 철수합의가 이루어지면서 러시아는 조지아에 주둔하던 러시아군과 군사무기를 아르메니아의 군사기지로 이관하였다. 2004년에 들어서 러시아는 아르메니아등 집단 안보 조약 기구의 가입국에 군사무기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팔고있으며, 개인화기, 항공기, 전차등도 양도해주고있다. 또한 군사학교가 존재하지만 아르메니아 장교는 러시아 군사학교에서 교육을 받는다.

집단 안보 조약 기구 2002년 10월 7일 아르메니아는 러시아가 주도하는 집단안보조약기구에 창립국으로 본 조약기구에 가입함으로써 다른 군사동맹에 가입하지 못하며 집단안보조약기구의 구성국중 한국가가 침공당할시 가입국모두를 침공을 간주하고있다. 그렇기에 가입국가간에 군사훈련을 매년하고있으며 최대규모로 아르메니아에서 훈련하였다. 최근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관계[4]가 본래부터 좋지 않았고 전쟁까지 치루었기에 아르메니아 국방부는 다시 아제르바이잔과 전쟁이 일어날경우 집단안보조약기구의 지원을 기대하고있다고 재차발표하였고 사무총장또한 이러한 관계는 서로 신뢰할수있는 관계라고 하였기에 회원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있다.

미국 아르메니아의 중요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있으며 미국이 중동과 캅카스3국에 꾸준히 군사적영향을 강화하면서 정식적인 미국-아르메니아 관계는 2003년부터 협력이 시작하였고, 미국은 아르메니아에 군사원조, 군사기술협력관계를 유지하고있다. 이라크 전쟁당시 아르메니아군도 미국을 지원하였다. 특히 아르메니아군은 미국의 켄지스방위군과 우호관계및 상호방문을 자주하고있다.

북대서양 조약기구 아르메니아의 독립한 이후부터 북대서양 조약기구회원국과 대서양주의 국가와 긴밀한관계로 발전하였고 북대서양 조약기구의 평화를 위한 동반자 관계(PfP)에 가입하였고, 이후에도 아르메니아는 북대서양 조약기구와의 관계를 증진시키기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 개별 파트너십(IPAP)에 가입하였고, 국방협력을 높이고있다. 그러나 아르메니아가 북대서양 조약기구에 빠른시일이내 가입하거나 의사를 발표할 가능성은 낮고 집단안보조약기구의 가입국이자 창립국이기때문이다. 그렇기에 내부에선 집단안보조약기구를 탈퇴하여 북대서양 조약기구에 가입하거나 아예 비 NATO동맹국이 되는 것 언급하기도 한다.


4. 수뇌부[편집]


파일:아르메니아 국장.svg
통수권자
국방장관
총참모장
파일:Pashinyan-on-karabakh.jpg
파일:빈 정사각형 이미지.svg
파일:빈 정사각형 이미지.svg
니콜 파시냔 총리
수렌 파피캰 장관
에드바르드 아스리안 육군중장
육군참모총장
공군참모총장
국경수비대장
파일:빈 정사각형 이미지.svg
파일:빈 정사각형 이미지.svg
파일:빈 정사각형 이미지.svg
카모 코춘트 중장
아베티크 무라디얀 소장
아르만 마랄치얀 대령


5. 구성[편집]



5.1. 육군[편집]


아르메니아 육군은 T-80U 156대를 보유중이다.

5.2. 공군[편집]


아르메니아군의 공군기
이름
제조국
제조국
운용 수량
작전기
Su-25K
소련
공격기
10기
Su-30SM
러시아
다목적 전투기
4기
수송기
Il-76K
소련
수송기
2기
헬리콥터
Mi-17/8/171
소련
다목적 헬기
11기
Mi-241
소련
공격헬기
15기
훈련기
L-39
체코슬로바키아
제트 훈련기
6기
Mi-2
폴란드
헬기 훈련/다목적기
3기
Su-25
소련
제트 훈련기
1기


6. 여담[편집]



  • 아르메니아는 아르차흐 공화국에 군사무기를 조금 양도해주고 있으며, 전쟁까지 겪은 상태이기에 정확한 보유량을 알 수 없거나 불명인 상태이다.

7. 관련문서[편집]



8. 외부링크[편집]




9. 둘러보기[편집]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 펼치기 · 접기 ]




[1] 준군사조직(5,000명)과 아르차흐 방위군(20,000명)까지 포함하면 대략 77,600명이다.[2] 당시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 중이었기에 아르메니아는 러시아 SFSR을 도와주었다. 그러나 끝내 두 국가 모두 멸망하여 소비에트국가가 수립되었다. [3] 이때 아르메니아의 엘리트층은 이란으로 피신하였다. [4] 서로 1921년부터 공식적인 관계를 유지하지 않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