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 공화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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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남아프리카 공화국 국기.svg
남아프리카 공화국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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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 국방군
South African National Defence Force
Suid-Afrikaanse Nasionale Weermag
파일:남아프리카 공화국 국방군 엠블럼.svg
국가
[[남아프리카 공화국|

남아프리카 공화국
display: none; display: 남아프리카 공화국"
행정구
]]

소속
남아프리카 공화국 국방부
상비군
74,508명
예비군
15,107명
병역제도
모병제
육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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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
195대
장갑차
(APCs/IFVs)
1,500대
자주포
49문
다연장로켓
101문
수송 차량
-

해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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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전투함 총합
42척
주력 수상함
호위함
4척
잠수함
SSK
3척

공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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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세대 전투기
26기
항공기 총합
230기


1. 개요
2. 역사
3. 수뇌부
4. 구성
4.1. 육군
4.2. 해군
4.3. 공군
5. 여담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군대. 공식 명칭은 남아프리카 국방군 (South African National Defence Force, SANDF) 이다.


2. 역사[편집]


1910년 영국의 주도하에 설립된 '남아프리카 연방'의 군대였던 연방 방위군(Union Defence Force (South Africa) / UDF), 남아프리카 방위군(South African Defence Force / SADF)이 그 전신이다. 연방 방위군은 1912년에 창군되어 1957년에 남아프리카 방위군으로 개편되었다. 남아프리카 연방이 1960년도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바뀐 후에도 남아프리카 방위군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다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이 폐지된 이후인 1994년에 남아프리카 공화국 방위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아프리카 국가 중에선 가장 경제 사정이 괜찮은 나라라서 노후화된 AK-47이나 H&K G3, FN FAL 같은 구식소총을 사용하는 타 아프리카 국가와는 다르게 군의 현대화가 비교적 잘 되어 있다. 과거에도 한국 전쟁에서 남아프리카 연방 시절에는 미국과 함께 UN군으로 참전하여 남한에 군사를 파견해주었다.미군의 평가에 의하면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여단급 작전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1] 그래서 남아공은 남아공을 제외한 아프리카 군대 연합이 덤벼도 이길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대부분의 무장들은 자체 개발한 국산인 경우가 많운데, 아프리카의 특성상 유럽이나 미국, 아시아와는 다른 교범과 군사 체계가 필요한 것도 이유이지만 진짜 원인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자 외산 물건들을 수입해올 수 없게 되어서 자체적으로 개발해서 쓴 게 많기 때문.

특히 지뢰에 대응하는 여러 가지 수단이 많이 발달해 있는데 게릴라들이 즐겨 쓰는 지뢰에도 버틸 수 있는 라텔 장갑차를 개발하기도 했다. 또한 지뢰에 하도 당하다 보니 라텔 장갑차 같은 주력 기갑 장비 말고도 자국군의 여러 차량들에도 대지뢰 방호력을 포함한 방호력 증대 차량들을 만드는데, 이게 MRAP이고 MRAP의 개념에 대해 큰 관심이 없던 미군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서 IED 때문에 사서 쓸 정도였다.[2]

이것저것 만들어서 수출 시장에도 내놓는 중인데, 성능은 확실하지만 실험 정신이 너무 강한 물건이 대부분이라 큰 재미는 못보고 있다. 별로 유명한 물건들은 아니지만 몇개 소개해 보자면, UZI처럼 그립 부분에 탄창이 들어가는(외형도 UZI를 억지로 길게 늘인 느낌의 물건) 펌프액션 산탄총인 MAG-7, 그립과 방아쇠가 총 측면에 달려있는 20mm 유탄발사기인 PAW-20 NEOPUP[3] 같은 물건들이 제식 화기였다. 스트라이커 샷건은 리볼버샷건이란 컨셉 자체도 독특하고, 성능도 그에 걸맞게 독특한 것으로 유명하다.

돌격소총 또한 특이하게 이스라엘의 영향이 많이 녹아났는데, 주력으로 사용하던 제식 소총인 R4 시리즈 소총들은 전부 다 갈릴의 현지화 버전이다.[4] 물론 갈릴 특유의 빌어먹을 무게 문제는 여전하긴 했지만 국토는 넓고 군인 수는 별로 많지 않아서 기계화가 굉장히 잘 이루어져 있는 관계로 보병이 걸어다닐 일이 별로 많지 않다 보니 큰 문제 삼지는 않았다.[5]

이후 이스라엘이 M16 소총쇼미더머니 파워에 압살당하자 갈릴에 관련된 모든 생산권, 저작권 등을 전부 남아공 측에 팔아넘겼다. 남아공 측에서는 이 갈릴의 설계에 껍질만 전신 플라스틱 재질의 불펍 껍데기를 씌움으로써 '무게 문제가 해결된 갈릴'인 CR-21을 탄생시켰다. 원본 갈릴이 AK 시리즈를 참조한 것을 감안하면 CR-21 역시 안정성은 확실하지만, 확장성이 너무 떨어지는 독특한 디자인 때문에...

또한 제식 대물 저격총 NTW-20의 경우 20mm 탄환을 사용하는 '조준경 달린 핸드캐논' 소리를 들을 정도로 사기적인 위력을 자랑하지만, 위력을 위해 기동성을 과감히 포기해 버리고 나니 더럽게 무겁고 조잡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엔간한 저격수는 들고 다닐 엄두조차 안 나는 물건이란 뜻. 총열 길이만 해도 1,000mm에 달하는 화포급 물건인지라 운반하려면 두 사람이 서로 분해해서 들고 다녀야 한다. 단 이 물건은 설계 자체부터 1인 운반보단 기본적으로 다인 운용 및 차량 등을 이용한 운반을 기본 전제로 깐 물건이고, 실제로도 그렇게 사용을 하고 있기에 딱히 별 말은 없다.

또한 이스라엘에서 전수받은 기술을 기반으로 요르단군의 기갑 전력 현대화 사업에 참가하여 팔콘 무인 포탑 등을 개발하고 있기도 하다. 도전적인 실험정신이 강해서 그렇지 결과물들은 적어도 밥값은 잘 하는 쓸 만한 물건들이다. 상기한대로 미군이 라텔 장갑차를 도입해 써먹은 전력도 있다.

파일:남아공군 m83군장.png

1983년에 채용된 M83 전투조끼는 장거리 이동이 필수적인 남아공군의 전장환경에 맞춰져 탄창, 수류탄, 수통, 그외 각종 군장품들을 다량으로 운반하면서도 무게 배분이 잘 되어 장시간 착용해도 피로감이 덜한 명품 전투조끼로 평가받고 있으며, 독일 연방군테러와의 전쟁 때 아프가니스탄 파병 초기에 중동지역에 적합한 군장이 도입될 때까지 임시로 채택해 사용하기도 했다. 영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주인공 맥스 로카탄스키가 착용하고 나온 것처럼 서바이벌 업계에서는 호평을 받아 지금도 레플리카가 여러 업체에서 생산되고 있다.

3. 수뇌부[편집]


  • 통수권자: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
  • 국방장관: 노시비웨 마피사은카쿨라(Nosiviwe Mapisa-Nqakula)
  • 참모총장: 솔리 쇼케(Solly Shoke)
아파르트헤이트 이전에는 군 최선임을 백인들이 차지했지만 아파르트헤이트가 끝나면서 흑인 장성들이 군 수뇌부를 차지하고 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General_Yam_-_DRC.jpg
육군참모총장인 린들 얌 중장.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Samuel_Hlongwane.jpg
해군참모총장인 새뮤얼 흘로과네(Samuel Hlongwane) 중장.

파일:fabian-msimang-020e4bbd-73d9-4f11-8b89-5ba4a1e34b7-resize-750.jpg
(오른쪽 흑인 장성)
공군참모총장인 파비앙 음시망(Fabian Msimang) 중장. 현재 흑인 장성들은 아파르트헤이트가 실시되던 70년대나 80년대에 입대한 사람들이다.


4. 구성[편집]



4.1. 육군[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육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2. 해군[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해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3. 공군[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공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여담[편집]


의외로 핵무기도 보유한 전적이 있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핵개발 문서 참조. 아파르트헤이트로 국제적으로 완전고립된 상황에 국가의 존립을 보장하고 국력을 과시하기 위해 80년대에 총 6기의 핵탄두를 만들었다. 참고로 비슷한 처지의 이스라엘과 협력을 했는데 이스라엘의 도움을 받은 남아공의 데넬 사는 탄도 미사일인 RSA 시리즈를 개발했다. 이후 넬슨 만델라의 석방과 함께 인종차별정책을 포기하면서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고 안보적 상황이 바뀌자 핵 보유는 무의미했기 때문에 1991년 핵 확산 금지 조약에 가입하고 이 핵무기들을 모두 전량 폐기했다.

남아공군의 높은 기계화율과 차량 승무원의 생존성을 중시하는 성격 등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과 다른 형태로 연관된다는 해석도 있다. 극심한 흑백차별로 인해 남아공군의 병력은 소수의 백인들만이 구성하게 되었고, 여기에 민간인 거주지에서 싸우다 보니 전투원이 직접적인 위협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아 당연히 전투원의 생존성을 크게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이 또한 이스라엘군의 성격과 유사하다. 그 반대가 대한민국 국군이다.[6]

백인정권 당시 아파르트헤이트에 연루된 직접적인 당사자이다보니 이 당시에 일어난 학살사건이나 인권침해 문제에 당연히 많이 끼어들었고 백인이라 할지라도 동성애자일 경우에는 아예 치료(?)를 해서[7] 이성애자로 만들려고 했고 그래도 동성을 사랑한다 싶으면 아예 이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시켰다. 군에 입대한 게이/레즈비언도 마찬가지로 이렇게 강제적인 성전환 수술을 당했다. 혐오감 프로젝트 문서 참조.

1950년 6.25 전쟁 당시에 참전할 예정이였던 남아공군 600명을 태우고 가던 구축함 SS 맨디가 그만 사고를 당해 영국 해협에서 침몰하는 일이 있었다.

아프리카국가들 중에서는 문민통제가 매우 잘 이루어지는 편이다. 1910년 5월 31일남아프리카 연방으로 독립할 때부터 국가를 주도하던 지배층들이 영국네덜란드등 입헌군주제가 발달한 유럽계 혈통이거나 해당 국가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의원내각제를 도입하여 민주주의 제도를 수립하고 문민통제가 잘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거주하는 백인들이 모든 특권과 자유를 누리고 있었기 때문에 대다수의 흑인들은 완전히 배제된 상태였으며, 국민당(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집권하고 아파르트헤이트가 시행되고 나서는 문민통제는 유지되었으나 국민당의 일당제상태였으며, 냉전시기 수많은 아프리카국가들에서 쿠데타가 발생할 때, 남아프리카 공화국문민통제만 유지되었지 사실상 동시대 다른 폭압적인 아프리카 국가들처럼 독재국가였다. 그러나 이러한 강력한 문민통제1994년아파르트헤이트가 폐지되고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에 취임해서도 정부의 군에 대한 장악력이 확고해서 여러 사회 갈등에도 불구하고 현재도 문민통제가 잘 이루어지는 편이다.

6.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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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론 사하라 이남에서나 좀 친다는 것이지, 아프리카 최강인 이집트군 등을 비교대상으로 끌고 온다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2] 다만 이는 미군이 이라크와 아프간에 파병된 초기인 2004~5년까지의 이야기이고, 2005년도를 기점으로 미국도 자국과 주요 우방국의 차량 회사들과 방산업체들이 만든 MRAP로 전쟁 초기의 남아공산 MRAP들을 대체해 갔다. 미군이 이라크에서 슬슬 발을 빼기 시작하던 2008~9년도쯤 되면 거의 다 자국산 MRAP들을 이용하게 된다.[3] 유탄 자체가 20mm 기관포탄의 길이를 줄인 직사 유탄이다.[4] 또한 R4 이전에 도입했던 R1, R2, R3 시리즈는 FN FAL의 자국군/경용 국산 라이센스 버전들인데, 이스라엘 또한 자국산 FAL인 'IMI ROMAT'을 갈릴로 대체하기 전까지 자국군의 제식소총으로 사용했다는 점을 상기해 보면 꽤나 재미있는 공통점이다. 물론 남아공군 버전의 FAL인 R1 시리즈가 80년대에 자국산 갈릴인 R4에 대체되기 전까지 20여 년 동안 제식소총의 자리를 굳건히 차지한 것과는 다르게 이스라엘 버전의 FAL인 IMI ROMAT은 곧바로 갈릴에게 퇴출되었다가 그 갈릴도 4차 중동전쟁을 기점으로 M16A1에게 퇴출되었다는 차이점이 있지만.[5] 걷기에는 너무 넓고 평지로 이루어져 있으니 반군들조차 테크니컬을 타고 다니는 곳이 중동아프리카다. 중장비가 별로 없어 그렇지 그 외의 분야에서의 기계화는 생각보다 잘 돼 있으며 오히려 아시아 쪽 군대가 행군의 비중이 꽤나 높다.[6] 다만 이건 대한민국 국군이 장병의 목숨을 파리 목숨으로 여긴다거나 하는 소리는 무조건은 아니고, 전면전에서의 화력 우위와 병사들의 생존성을 동시에 모색하는 거라고 보면 된다. 한국군은 탈냉전이 만든 시대에서도 냉전인 동북아 덕이 서방 최대 전력을 자랑하는 포신포병을 구축해 아군 장병들이 직접 맞부딪혀 희생을 내기보다는 장거리에서 적을 일소하는 방침을 채택하고 있다고 주장항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병사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전통이 냉전형 군대라는 한국군이 냉전시기의 나토 가맹국들과 비교하면, 심각하게 화력이 열세이기에 파리 목숨으로 여긴다는 말이 반론하기 어렵다.[7] 말이 치료지 실상은 고문이나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