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 아르메니아 공화국

덤프버전 :




산악 아르메니아 공화국
Լեռնահայաստանի
Հանրապետութիւն

파일:아르메니아 국기.svg
파일:산악 아르메니아 공화국 국장.svg
국기
국장
1921년 4월 26일 ~ 1921년 7월 13일
수도
고리스
정치체제
공화제
언어
아르메니아어
역사
• 건국: 1921년 4월 26일
• 멸망: 1921년 7월 13일

지도
파일:Mountainous_Armenia_1921.png
산악 아르메니아 공화국 (연두)
파일:산악 아르메니아 공화국 국장.svg

1. 개요
2. 역사
2.1. 아르메니아 제1공화국의 멸망
2.2. 2월 봉기의 실패
2.3. 멸망
2.4. 의의


1. 개요[편집]


아르메니아 제1공화국의 잔여세력과 아르메니아 혁명연맹 등이 1921년 2월 13일 조직한 반볼셰비키 반란이 1921년 4월 2일 실패로 돌아감에 말미암아 예레반에서 축출, 이후 슈니크~바요르 조르 일대로 거점을 옮겨 건국을 선언하고 3개월간 존속했던 공화국이다.


2. 역사[편집]



2.1. 아르메니아 제1공화국의 멸망[편집]


터키 독립전쟁적백내전의 결과로 멘셰비키계열 정치인들이 포진한 아르메니아 제1공화국은 소련에 항복하고 목숨을 건지는 대가로 정치적 입지를 상실한다.

볼셰비키는 제1공화국 인사들과 반볼셰비키 정치인 다수를 구금하였고, 무스타파 케말의 터키 독립군의 예레반 진공만을 멈췄을 뿐 그 이상 터키와 대립하려 하지 않았다. 이는 카르스 등의 실지 탈환을 노렸던 구세력의 계산과 달랐기에 큰 불만거리가 되었다.


2.2. 2월 봉기의 실패[편집]


1921년 2월 13일 개시된 반소 봉기로 볼셰비키 인사들은 일시적으로 예레반에서 물러나고 아르메니아 혁명연맹의 민병대와 비볼셰비키 정치인들이 예레반을 장악한다. 하지만 붉은 군대의 증원에 이 임시정부는 와해되고 4월 2일 최종적으로 볼셰비키가 예레반에 재입성한다.

잔존세력은 인구희박지대인 슈니크(서부 장게주르)로 피난해 고리스를 수도로 삼아 4월 26일 산악 아르메니아 공화국을 선포하고, 6월 1일 아르메니아 공화국으로 개칭한다.


2.3. 멸망[편집]


소캅카스 산맥을 낀 3개월의 농성 끝에 이들은 7월 13일 멸망, 해산 및 국외추방 처분을 받는다.


2.4. 의의[편집]


이 지역은 오늘날의 슈니크 주로, 1919년 ARF 수장 중 하나인 안드라닉 오자냔이 예레반과 별개로 행동하며 거점으로 삼았던 준무주지이다. 아제르바이잔과 영국군이 산악 게릴라를 완전히 소탕하는 데 실패하고 파리 강화회의와 볼셰비키의 진주로 이어질 때까지 이 지역은 미약하나마 아르메니아계 반군의 장악지역으로 남았고, 소련은 이 땅을 아르메니아에 귀속시킨다는 확약을 하고서야 지역의 반볼셰비키 반군을 해산시킬 수 있었다. 이 땅은 오늘날까지 아르메니아의 영토로 남았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2 12:53:24에 나무위키 산악 아르메니아 공화국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