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하타 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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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의 정치인, 노동운동가,작가 일본 공산당의 초대 총무주석간사, 즉 초대 당수를 맡았던 인물이다. 본명은 아라하타 카츠조(荒畑 勝三).
2. 생애[편집]
1887년 8월 14일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현재의 코난구에서 보낸다. 학교 졸업 후 일을 하다가 기독교로 개종하고[2] 이후 1904년 평민사(平民社)라는 사회주의 단체에 가입, 1908년의 적기 사건으로 체포된다. 이후 오스기 사카에와 <근대사상>이라는 잡지를 발행하였다. 이때 오스기 사카에의 영향으로 아나르코생디칼리즘으로 전향했다가 이후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어 사카에와 갈등을 겪게 되었고 최종적으로 공산주의자로 전향하였다. 일본 공산당 가입 이후 공산당 초대 중앙위원회의 의원이 되었으며 위원회 내에서는 로노파[3] 에 속해 있었다. 공산당이 강제로 해산된 후 설득에도 불구하고 공산당 재건에는 참여하지 않았으며, 이후 1927년에 잡지 <노농>을 창간하였으며, 비공산당계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로서 활동하였다. 중일전쟁 때 반파시스트 활동을 했던 일본 무산당에도 참여하였다. 그러나 1937년 인민전선 사건[4] 으로 400명과 함께 체포당했고, 전쟁 종전 때까지 감옥에 투옥되었다. 제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일본 사회당으로 당적을 옮겨 1946년부터 1949년까지 활동하였고, 1946년부터 1948년까지는 일본 사회당의 중앙집행위원회에서 활동하였고, 1949년까지는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다가 이후 작가로서 활동하며 정치계에서는 은퇴하였다.
이후 93세의 나이로 도쿄도 세타가야구의 타마가와 병원에서 폐기종으로 인해 사망하였다.
3. 소속 정당[편집]
4.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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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 요코하마시 코난구[2] 가톨릭인지 개신교인지 정교회인지는 알려진 바 없다.[3] Rono Faction[4] 코민테른의 지시를 받아 일본에서 인민전선을 결성하려 했다는 혐의로 1937년 12월 15일부터 1938년 2월 1일까지 일본의 좌익 계열 인물들이 일제히 검거된 사건.[5] 도쿄 4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