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번뇌(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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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현역 108번뇌 역대 명단
4. 총평 및 결론
5. 여담


1. 개요[편집]


제17대 국회 당시 열린우리당의 초선의원 108명을 비꼬아 일컫던 말. 유래는 108번뇌.


2. 역사[편집]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에 힘입어 대승하며 152명의 당선자를 낸 거대여당이 되었다.[1] 그런데 그중에서 초선 의원이 무려 108명에 달했고, 이들 중엔 386세대 운동권 출신이거나 노동계 출신들이 많았다.

이들은 당선 이후 초선답게 기존의 의원들과는 달리 튀는 행보를 이어갔다. 당론과 배치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하는가 하면, 토론에서 자기 의견만 내세우다 날밤 새우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이들의 안티 측에선 이들을 가리켜서 열린우리당의 골칫거리라는 의미에서 108번뇌라는 멸칭을 붙였다. 그리고 이런 비아냥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게, 당시 국회선진화법도 없어서 과반수의 머릿수로 법안을 밀어붙여도 다 됐을 여당임에도 의원들이 개인 플레이를 벌이며 제멋대로 놀아나느라 121석밖에 없던 한나라당에게 끌려다니며 법안 하나도 제대로 통과시키지 못하며 국정 동력을 상실해버렸기 때문이다. 자기들 입장에서는 진영 논리에 휩쓸리지 않는, 참신하고 양심적인 행보를 보인다고 자평했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악수가 되었다.

결국 이 108번뇌 중 상당수가 차기 18대 총선에서 낙선했고, 재선에 성공한 의원들은 자기들이 비판하던 선배 의원들이 하던 방식대로 지역구를 관리해서 재선하기도 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들을 부르던 또 다른 별칭으로 탄핵 역풍의 수혜자란 의미에서 탄돌이라는 표현도 있었다.


3. 현역 108번뇌 역대 명단[편집]



3.1. 제17대 국회 당시[편집]


2004년 12월 10일 당선 무효.
2005년 8월 19일 의원직 상실.
2006년 11월 10일 의원직 상실.
2005년 3월 25일 의원직 상실.
2005년 3월 25일 의원직 상실.
2006년 11월 5일 별세.
2005년 1월 27일 의원직 상실.
2005년 3월 10일 의원직 상실.
탈당으로 인한 의원직 상실.
2007년 2월 1일 의원직 사퇴.
2005년 1월 6일 입각으로 인한 의원직 사퇴.

이상 108명의 의원들이 소위 말하는 108번뇌였는데, 지역구 의원 85명, 비례대표 의원 23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비례대표 김혁규 의원은 임기 중 탈당하여 의원직을 상실, 정덕구 의원은 의원직 자진사퇴, 박홍수 의원 역시 입각으로 인해 의원직을 사퇴했으나 그 자리를 서혜석, 신명, 김영대가 승계하여 108명의 숫자가 그대로 유지되었다.


3.2. 제18대 국회 당시[편집]


그러나 17대 대선 전에 열린우리당이 여러 차례 이합집산을 거치며 대통합민주신당이 된 후 역대급으로 대참패를 당하면서 정권을 빼앗겼고, 또한 그 직후에 통합민주당으로 재편해 치른 18대 총선마저도 대참패를 기록했다. 이 때 이 108번뇌 중에서 무려 73명이 낙선하거나 아예 공천에서 탈락하는 고배를 마시게 된다. 18대 총선에서 살아남은 108번뇌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2010년 12월 9일 의원직 상실.
통합민주당 공천에서 낙천된 뒤 자유선진당 당적으로 당선.
2009년 9월 24일 의원직 상실.

이중에 강길부2007년에 열린우리당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탈당하여 한나라당으로 이적해 버렸고, 권선택이상민 또한 자유선진당으로 이적해 버렸다. 그리하여 108번뇌 중에서 단 33명 만이 18대 국회에 살아남았고, 이 중 민주당 잔류자는 30명에 불과했다.


3.3. 제19대 국회 당시[편집]


18대 국회를 거치면서 108번뇌들은 사실상 거의 대부분이 정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일부는 아예 지자체장으로 전향한 경우도 있다. 그리고 19대 총선에서 일부가 다시 등장하게 된다. 19대 국회에 남은 108번뇌들은 다음과 같다.

2015년 11월 12일 의원직 상실.

이렇게 18대 총선 때 떨어졌던 사람들이 컴백해서 총 47명이 19대 국회에 입성하는데 성공했다. 이 19대 국회에 살아남은 108번뇌 중에서 강길부는 이미 지난 국회부터 한나라당으로 전향한 지 오래였고, 2015년 연말에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으로 갈라지면서 문병호, 김동철, 주승용 등은 국민의당으로 가버렸고, 조경태 또한 보수정당인 새누리당으로 이적해 버렸다.

그런데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김종인이 컷오프 칼바람을 일으키는 바람에 이 47명의 잔류파들이 대거 낙천되는 사태를 낳았다.


3.4. 제20대 국회~제21대 국회 당시[편집]


그 결과 20대 국회에서 살아남은 108번뇌들은 민병두, 유승희, 우원식, 우상호, 노웅래, 이인영, 박영선, 김영주, 김진표, 김태년, 김현미, 윤호중, 안민석, 조정식, 정성호, 오제세, 변재일, 이상민, 양승조, 김동철, 주승용, 조경태, 강길부, 강창일, 최재성[2]까지 단 24명 뿐이다.

그리고 이 25명 중에서 열린우리당의 후신인 더불어민주당에 잔류해 있는 인원은 단 21명 뿐이다.

이 중 21대 총선에서 살아남은 인물들은 20대에서도 살아남았던 14명에 21대 국회를 통하여 컴백한 5명을 합쳐 총 19명이다.

20대 총선에서는 김종인(...)에 의해 컷오프되고, 21대 총선에서 다시 공천을 받아 국회에 복귀.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 김성식 의원에 밀려 낙선했지만 21대 총선에서 설욕하며 국회 복귀.
17대 당시의 지역구 이름은 서구·강화군 갑. 18대부터 20대까지 이학재 의원에게 3연패를 당했으나 21대 총선에서 드디어 설욕하고 12년 만에 국회 복귀.
내리 5선이다. 다만 19대 임기 도중 의원직을 사퇴하고 6회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선거에 나가 남경필과 겨루었던 적이 있다. 이 선거에서 낙선하며 20대 총선 전까지 2년 남짓 동안은 사실상 백수였고, 20대부터는 본인의 원래 지역구인 수원시 정(영통구)를 떠나 권선구영통구가 반반 섞인 신설 지역구 수원시 무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역시 내리 5선이다.
역시 내리 5선이다.
17, 19대 지역구는 양주시·동두천시였으나 20대부터 양주 단독 선거구로 분리.
18대에서도 살아남았지만 도중에 의원직을 던지고 5회 지방선거에 나가 강원도지사에 당선. 이후 박연차 게이트 건으로 당선 무효되고 피선거권이 상실되었으나 2019년 12월 특별사면 됨에 따라 공민권을 회복하고 21대 총선에 나와 10년 만에 국회 복귀. 17-18대 당시 지역구는 고향인 평창군을 포함하는 태백시·영월군·평창군·정선군 복합선거구였다.
역시 내리 5선이다. 19대까지는 구 청원군이 지역구였다.
역시 내리 5선이다. 19대까지는 유성구 전체가 지역구였으나 20대부터는 분구된 유성 을로 출마. 특이사항으로는 18대에는 보수정당인 자유선진당 당적으로 당선된 뒤 19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계 정당이자 원래 전신인 민주통합당에 복당해 공천을 받고 당선되었다는 것이다.
17대 당시 지역구는 익산시 갑. 18대 및 20대에서는 이춘석 의원에게 경선에서 밀려 낙천되었고, 20대부터 익산시 을로 지역구를 옮겨 재수 끝에 21대에서 당선되며 12년 만에 국회 복귀.
역시 내리 5선이다. 다만 알다시피 20대 총선 직전에 새누리당으로 이적함에 따라 지금은 보수정당(국민의힘) 소속.

20대 총선에서 살아남은 108번뇌 중 21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108번뇌들의 행방은 다음과 같다.

  • 민병두 - 컷오프
  • 유승희 - 경선 패배
  • 박영선 - 중소벤처기업부장관으로 입각[3]에 따라 불출마
만일 21대에도 나와서 당선되었다면 내리 5선이었을 것이다.
  • 최재성 - 미래통합당 배현진 의원에 의해 낙선
  • 김현미 - 국토교통부장관을 내려놓지 않음[4]에 따라 불출마.
  • 오제세 - 컷오프
  • 양승조 - 20대 임기 도중에 의원직을 사퇴하고 7회 지방선거에 나가 충청남도지사에 당선.
  • 김동철 - 민주당 이용빈 의원에게 밀려 낙선.
  • 주승용 - 불출마
  • 강길부 - 불출마
  • 강창일 - 불출마


3.5.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기준[편집]


21대 이후 22대 총선에서 살아남은 인물들은 21대에서도 살아남았던 10명에 22대 국회를 통하여 컴백한 1명을 합쳐 총 11명이다.

우상호, 김진표는 불출마 선언[5], 노웅래, 유기홍, 안민석, 변재일은 공천 탈락, 김영주이상민은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으로 전향해 22대 총선에 출마했으나 각각 채현일 前 영등포구청장과 황정아 후보에게 크게 밀려 낙선, 이광재는 21대 총선 도중 강원도지사에 출마했다 김진태에게 크게 밀려 낙선하고 선거구를 경기 성남시 분당구 갑으로 변경해 출마했으나 출구조사 1위와 달리 안철수에게 밀리며 낙선했기 때문에 여기에 설명한 인물 9명은 22대 국회에서 볼 수가 없다.


4. 총평 및 결론[편집]


결론적으로 그 당시 108번뇌들 중 단 1번의 낙선 없이 22대 국회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조정식, 조경태 단 둘 뿐이고 22대 국회에서 이 둘이 최다선 중진급 의원 4인에 포함되어 있다.[6][7]

조경태는 알다시피 현재 국민의힘 소속이고, 조정식만 계속 민주당계 정당으로 내리 6선하여 현재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며 22대 총선에 더불어민주당이 다수당이 됨에 따라 각주에 말한 추미애와 같이 국회의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5. 여담[편집]



[1] 하지만 당시 여론을 생각하면 대승이라고 여기기도 어렵다. 당시 추측엔 155석에서 180석, 최대 200석까지도 전망하고 있었으며, 한나라당은 50~120석으로 예상했는데, # ## 정동영의 60대 이상은 투표를 안 해도 된다는 망언과 수도권 및 강성 지역에서 세력이 공고했던 한나라당의 수성, 거대 여당 집권에 대한 반발이 있었기에 열린우리당은 예상보다 못한 승리를, 한나라당은 예상 외 선전을 거뒀다.[2] 20대 총선에는 불출마했고, 2018년 재보궐선거에서 지역구를 옮겨 송파구 을에 출마해 국회에 복귀했다.[3] 입각 당시부터 불출마를 결단하고 입각.[4] 21대 총선도 출마 의지가 강했지만, 부정적인 지역구 여론도 그렇고 본인의 후임 장관도 빨리 찾지 못함에 따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불출마. 첨부터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채 장관에 입각한 박영선과는 케이스가 미묘하게 다르다.[5] 김진표는 국회의장을 역임해서 다음 총선인 22대 총선에서 관례에 따라 불출마[6] 나머지 둘은 추미애(경기 하남시 갑/6선)와 주호영(대구 수성구 갑/6선, 주호영 역시 이 둘과 같이 17대 총선에서 첫 당선)[7] 감이 안온다면 이 둘이 초선인 17대 국회에서 최다선이 6선인 김원기 의원(전북 정읍시), 차다선이 5선 김덕규(서울 중랑구 을), 강재섭(대구 서구), 정몽준(울산 동구), 이상득(경북 포항시 남구·울릉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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