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호(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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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국회휘장.svg 대한민국 국회의원 (경기 양주시)
선거구 개편
정성호[A]

제20-21대
정성호


현직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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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국회휘장.svg 대한민국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장
위원회 개시

제20대 전반기
정성호


제20대 후반기
박영선
파일:국회휘장.svg 대한민국 국회 기획재정위원장
제20대 전반기
조경태

제20대 후반기
정성호


제20대 후반기
이춘석



파일:국회휘장(9대-19대).svg 대한민국 국회의원 (경기 양주시·동두천시)
선거구 개편
목요상[1]

제17대
정성호


제18대
김성수
제18대
김성수

제19대
정성호


선거구 개편
정성호[A]
김성원[2]



대한민국 제17·19~21대 국회의원
정성호
鄭成湖 | Jung Sungho

파일:정성호.jpg
출생
1961년 10월 19일[1] (62세)
강원도 양구군 동면
(現 강원특별자치도 양구군 동면)
거주지
경기도 양주시 고암동 덕정중흥S클래스
본관
진주 정씨
현직
제21대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양주시 지역위원장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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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배우자, 슬하 1남 2녀
학력
연천상리국민학교 (졸업)
연천중학교 (전학)
단국중학교 (졸업)
대신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사법학 / 학사)
대진대학교 법무행정대학원 (법학 / 석사)
병역
대한민국 육군 중위 만기전역
종교
개신교 (예장통합)[1]
신체
170cm, AB형
소속 정당

지역구
경기 양주시
의원 선수
4
의원 대수
17, 19, 20, 21
소속 위원회
국방위원회
경력
제28회 사법시험 합격
제18기 사법연수원 수료
육군 3사단 법무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원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
의정부 YMCA 이사
경기북부 환경운동 연합 공동대표
대한변호사협회 윤리위원
경기도 연천군청 고문변호사
열린우리당 수도권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
제17대 국회의원 (초선 / 경기 양주시·동두천시 / 열린우리당)
열린우리당 원내부대표
대통합민주신당 원내부대표
대통합민주신당 최고위원
통합민주당 원내부대표
경기도 동두천시청 고문변호사
경기도교육청 고문변호사
경기도 의정부시청 고문변호사
경기교육장학재단 감사
민주통합당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
제19대 국회의원 (재선 / 경기 양주시·동두천시 / 민주통합당)
대한민국 · 러시아 의원친선협회 간사
민주당 수석대변인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제19대 국회 전반기 국회운영위원회 간사
제19대 국회 후반기 국토교통위원회 간사
교통법안심사소위원회 위원장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
더불어민주당 예결위원장 직무대행
제20대 국회의원 (3선 / 경기 양주시 / 더불어민주당)
제20대 국회 전반기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
제20대 국회 후반기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장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더불어민주당 경기 북부 선거대책위원장
제21대 국회의원 (4선 / 경기 양주시 / 더불어민주당)
제21대 국회 전반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

1. 개요
2. 생애
2.1. 정치 활동
3. 여담
4. 소속 정당
5. 선거 이력
6.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법조인 출신 정치인. 현 경기도 양주시 국회의원으로 양주시 최초의 4선 의원이다.[2]

정치 입문 전에는 변호사였다.[3] 이후 제17대, 제19대 양주시·동두천시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활동하였다.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양주시 단독으로 선거구가 획정되어 양주시 지역구에 공천되었다. 20대에 이어 21대 총선에서 양주시(선거구)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민주당 계파에서는 이재명계의 좌장으로 분류된다. 정성호 본인은 당내 보수파로 분류되는 인사라 의아하게 생각될 수 있는데, 이재명 의원과 사법연수원 동기라는 점, 즉 개인적인 친분이 작용한 듯하다. 애초에 이재명 의원을 민주당에 추천해 준 것도 정성호 의원이다.

본인은 언론과 인터뷰를 할 때마다 이재명계의 좌장이 아니라고 부인하지만 이재명 당대표가 사석에서 이라 부를 정도로 막역한 사이라는 점과 2022년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와 김동연 후보의 단일화를 성사시키고 김동연 후보의 민주당 입당과 경기도지사 출마까지 막후에서 이끌어내면서 경기도 뿐만 아니라 중앙정치에서도 영향력이 큰 인물로 평가받는다.


2. 생애[편집]


1961년 10월 19일, 강원도 양구군 동면에서 태어났다.[4] 이후 연천상리초등학교, 단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 서울대신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제28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을 18기로 수료하였다.[5] 이후 변호사로 활동하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 등을 역임하는 등 소외된 계층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였다.

2.1. 정치 활동[편집]


경기북부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로 활동하던 2000년 새천년민주당 동두천·양주지구당위원장을 맡으며 정치에 입문했다.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양주시·동두천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한나라당 목요상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양주시·동두천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하여 한나라당 목요상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6] 17대 열린우리당 초선이기 때문에 소위 '탄돌이'로 분류되기도 한다.[7] 당 내부에서의 존재감은 크지 않았으나 17대 대선 패배 후 당 쇄신 세미나를 주최한 적이 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 같은 지역구에서 재선에 도전했으나 한나라당 김성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낙선한 뒤에도 당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 등을 맡으며 재기를 노렸다.

2012년 19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후에는 민주통합당 수석대변인,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간사를 지냈으며,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박기춘 의원이 정치자금법위반으로 구속되면서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장 대리를 맡기도 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선거구 획정 과정에서 양주와 동두천이 나누어지면서 양주시 지역구에 더불어민주당의 단수공천을 받아 출마하였다. 수도권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 중 가장 높은 61.39%의 득표율로 당선되면서 3선에 성공했다. 이로써 양주시 최초의 3선 의원이 되었다.

20대 국회의원 당선과 동시에 당의 2기 비상대책위원으로 선임되었다. 20대 국회에서는 전반기에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으로, 후반기에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초선 의원 시절 수도권 전철 1호선소요산역 연장 및 조기 개통에 힘썼다.[8] 재선·3선 의원 시절에는 서울 지하철 7호선을 유치했다. GTX-C 덕정역 확정에도 힘을 보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내 정치적 성향은 반문, 비노로 알려져 있다. 본인은 이에 대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고 하여 특정 계파에 속하지 않는다고 하며[9], 국민의당 대표로 있었던 김한길 前 의원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었음에도 "김한길 전 대표를 도운 것은 단순히 나에게 요청이 들어왔기 때문이지 계파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국민의당 분당 직전 문재인 당대표 사퇴 요구, 혁신안 반대 등 분당 쪽과 행보를 함께하기도 했으며, 당내 대선 후보자 경선 당시에는 '문재인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된다면 비선실세의 활개로 최순실 비선실세와 달라질 게 뭐가 있겠느냐'란 언급을 하기도 하는 등 반문의 기수 중 하나로 활동한 전력이 있다.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재명 캠프에 합류, 이후 유승희 의원과 함께 이재명계의 좌장으로 불리고 있다. 친이재명 자체가 이재명의 독자적인 행보가 두드러지면서 정작 이재명 외에 주목을 받는 정치인이 없다보니, 그나마 다선의원이라 이재명 다음으로 주목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았다.

2019년엔 종교인 과세 완화에 앞장섰다. #

2019년 9월 3일에는 교외선 운행재개+전철화를 포함한 업무 협약식에 참석했다. 교외선 운행재개는 양주시의 숙원사업 중 하나인데, 본인도 상당한 관심을 두고 있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단수공천을 받으면서 4선에 도전하여 득표율 62.6%을 기록하며 당선되었다. 20대 총선 보다 1.25%p가 더 오른 득표율이다.

2020년 민주당 원내대표로 출마하였으나, 전체 163표 중 1위 김태년(82표)은 고사하고 2위인 전해철(72표)에도 한참 못 미치는 9표밖에 얻지 못했다.[10]

제21대 국회 전반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제20대 국회에서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장이 된 데 다시 상임위원장에 선출된 것으로, 2번이나 상임위원장이 된 건 이례적인 케이스이다. 과거에 기재위원장을 1년만 맡아 배려해 준 것이라는 말도 있다. #

2020년 11월 12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꾸짖었다가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뭇매를 맞았다. 박형수 의원이 추 장관에게 "법무부가 특수활동비를 직원 격려금으로 일괄 지급한 적 있느냐"고 질의하는 도중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의 돈봉투 사건 이후 그렇게 지급되는 것은 한 푼도 없다"며 추미애가 질의를 끊자 정성호가 추미애에게 "다른 것은 말씀하지 말고 질문을 듣고 답변해달라"면서 "정도껏 하세요, 좀"이라고 호통을 쳤다. 이에 추미애가 "그렇게 하겠지만 질문 자체가 모욕적이거나 하면 위원장이 제재해달라"고 하자 "그런 질문은 없었다. 협조 좀 해달라"고 했다. # 이에 대해서 "가만히 있지는 못할 망정 등에 칼을 꽂냐"는 지지자들의 문자 항의가 빗발치자, 정성호 본인은 "원활한 의사진행을 위해 딱 한 마디 했더니 하루종일 피곤하다", "정책 질의는 없었고 껍데기만 남았다"고 하였다.

2021년 들어 대선 정국이 펼쳐지자 이재명의 측근으로 활약하고 있다. 2022년 1월 24일, 이재명의 지지율이 답보 상태에 머무르자 다른 이재명 측근들과 함께 임명직을 맡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다. #

3. 여담[편집]


  • 성품이 원만하며 비정파적인 정치성향 때문에 적이 별로 없는 정치인이다. 비문 성향 때문에 노웅래, 이종걸 등의 이재명계 비문 의원들과 함께 친문 성향 당원들[11]에게는 비토를 크게 받지만, 현역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그러지 않는 모양이다.

  • 병역 면에서 흠잡을 곳이 없을 정도로 깔끔한 내력을 자랑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가 부사관[12]으로 복무한 데다 6.25 전쟁에도 참전한 국가유공자이다. 또 본인은 공보정훈장교 출신이며[13], 자녀는 병사로 입대해서[14] 군복무를 마쳤기에 일명 '병역 명문가'로 통한다.

  • 검수완박 이후 설치된 사개특위 위원장을 역임하였으나 여야의 극한 대치로 사개특위는 출범 6개월이 넘도록 전체회의를 한 번 열었을 뿐 활동이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러자 정 의원은 "일을 안 했는데 세비를 받을 수 없다”며 6개월간 위원장 앞으로 나온 4000여만원의 세비를 모두 반납하거나 기부하겠다고 밝혀 호평을 받았다.#

  • 서울대 법대 재학 시절 역도부 주장을 했다고 하며, 지금도 꾸준한 운동으로 체력을 단련한다고 한다. 때문에 별명인 '무적(無敵)'은 본래는 원만한 성품으로 적이 없다는 뜻이지만, '힘이 세서 무적'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

  • 선대 국회의원인 목요상이 시작했지만 마무리가 계속 미뤄져 조기에 개통하지 못할 뻔한[15] 수도권 전철 1호선 의정부-소요산[16] 구간의 조기개통 (2006년 12월 15일) 바람을 일으켰던 장본인이기도 하며 서울 지하철 7호선 도봉산포천선 양주 구간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국회는 물론 국토교통부와 지자체를 수없이 압박하는 등 삼고초려 끝에 성공시킨 것도 이 사람. 도봉산포천선 양주 구간 유치 및 광역철도 지정 고시도 모자라 39번 국지도의 광적-장흥 구간의 예타 통과로 인하여 시작도 마무리도 괜히 그가 해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또한 교외선의 재운행을 바라면서, 경기도와 협업하기도 한다.

  • 2008년 18대 국회의원이었던 김성수에게 패했을 때에는 다시 본업인 변호사로 돌아가 전열을 가다듬기도 했다.[17] 그러다가 2012년 19대 선거에서 다시 탈환한 이후에는 민주당 수석대변인을 지내다가, 상술한 국토교통위원회 간사를 하면서 정말 동두천시양주시에 필요한 수많은 현안들을 해결했다. 이러한 점들이 보수 성향이 상대적으로 강하다고 평가받는 경기동북부 지역에 위치한 양주시민의 마음을 돌리는 데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 2018년,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당시 후보자)에 대해서 "(문 대통령이) 말 잘 듣는 (관리형) 인사를 뽑은 듯하다.”, 내공이 얼마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라고 말해 논란이 있었다.[18]

4. 소속 정당[편집]


소속
기간
비고

[[새천년민주당|
파일:새천년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00 - 2003
정계 입문

[[무소속|
무소속
]]

2003
탈당[19]

[[열린우리당|
파일:열린우리당 로고타입.svg
]]

2003 - 2007
창당

[[대통합민주신당|
파일:대통합민주신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07 - 2008
합당[20]

[[통합민주당(2008년)|
파일:통합민주당(2008년) 흰색 로고타입.svg
]]

2008
합당[21]

[[민주당(2008년)|
파일:민주당(2008년) 흰색 로고타입.svg
]]

2008 - 2011
당명 변경

[[민주통합당|
파일:민주통합당 연두 로고타입.svg
]]

2011 - 2013
합당[22]

[[민주당(2013년)|
파일:민주당(2013년) 흰색 로고타입.svg
]]

2013 - 2014
당명 변경

[[새정치민주연합|
파일:새정치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svg
]]

2014 - 2015
합당[23]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2015 - 현재
당명 변경


5.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양주·동두천

[[새천년민주당|
파일:새천년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

33,249 (44.38%)
낙선 (2위)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열린우리당|
파일:열린우리당 로고타입.svg
]]

45,082 (49.34%)
당선 (1위)
초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통합민주당(2008년)|
파일:통합민주당(2008년) 흰색 로고타입.svg
]]

41,822 (48.02%)
낙선 (2위)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민주통합당|
파일:민주통합당 연두 로고타입.svg
]]

60,016 (53.74%)
당선 (1위)
재선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양주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54,441 (61.39%)
3선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69,905 (62.64%)
4선

역대 선거 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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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성호 16총.jpg


파일:정성호 17총.jpg

16대 총선 (경기 동두천시·양주군)
17대 총선 (경기 양주시·동두천시)

파일:정성호 18총.jpg


파일:정성호 19총.jpg

18대 총선 (경기 양주시·동두천시)
19대 총선 (경기 양주시·동두천시)

파일:정성호 20총.jpg


파일:정성호 21총.jpg

20대 총선 (경기 양주시)
21대 총선 (경기 양주시)



6. 둘러보기[편집]






파일:경기도 휘장(2005-2021)_White.svg 경기도 제20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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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양주시·동두천시 선거구 제19대 국회의원양주시 선거구 제20대 국회의원[1] 음력으로는 1961년 9월 10일생이다.[2] 대체로 경기북부 지역은 보수성향이 강하다는 점에서 봤을 때 민주당계 정당 출신으로 4선을 유지하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서울 지하철 7호선 유치 공약이 가장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유치에도 성공했다. 참고로 지하철을 기가 막히게 잘 뚫는다는 조경태도 이래서 5선에 성공했다.[3] 변호사 사무소는 의정부지방법원 근처에 있었다. 물론 국회의원을 하면서부터 잠정 휴식에 들어갔는데 18대에서 낙선했을 때 다시 복귀하기도 했다.[4] 6.25 전쟁에 참전했던 부친이 휴전 후 중사로 진급하면서 해당 지역에 정착했다고 한다.[5] 사법연수원 동기로는 문병호 前 국회의원, 최원식 前 국회의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이 있다.[6] 양주시와 동두천시는 경기 북부라는 지역 특성상 전통적으로 보수가 우세한 곳이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해당 지역구에서 최초로 민주당계 후보가 당선된 것.[7] 그러나 탄핵 역풍만으로 얼떨결에 당선된 것은 아니다. 16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4년 동안 꾸준히 지역구를 관리하며 17대 총선의 기반을 쌓았다.[8] 원래 계획은 2008년동두천역까지 개통하는 것이 목표로 되어 있었으나, 소요산역까지 연장에 성공함과 동시에 2006년 12월 15일로 조기 개통을 해내는 업적을 세웠다. 이러한 업적 덕분에 연천군민, 노인, 군인, 등산객들이 소요산역을 통해 전철을 쉽게 탈 수 있게 되었고,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동두천 시민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9] 이에 대해 "나를 비노라고 하는 사람들이 정작 특정인에 줄을 서고 있다."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노무현 정신은 기득권에 줄을 서지 않고 반칙과 특권을 용납하지 않은 채 소신껏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다."라고 하기도 했다. 실제로 노무현은 국회의원 시절부터 소신을 가장 적극적으로 밝히는 정치인 중 한 명이었다.[10] 한 표는 분명 자기 표일테니 실제 지지한 의원은 고작 8명이란 이야기. 친이재명으로 분류되는 21대 국회 당선인이 8 ~ 10명 정도이므로 딱 범이재명계 의원들만 찍어준 수준인데, 실제로 본인도 경선 당일에 "사법연수원 동기인 이재명 지사를 도왔다가 지금까지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다"고 얘기했다. 이재명계에 속하는 김병욱, 이규민, 김경협, 그리고 비문계 리더인 노웅래와 나머지 비문 4명정도로 추정되는 중. 김영진은 이재명계임에도 김태년을 지지했다고 한다.[11] 심지어 친명 성향도 같이 띠며 처럼회 의원들에게 무한한 지지를 보내는 클리앙 40대 남성들도 반개혁적이라는 딱지를 붙이기 일쑤다.[12] 당시 육군 상사.[13] 육군 중위로, 당시 강원도에서 복무를 했다고 한다.[14] 2016년 5월 초에 육군 병장으로 전역했다. 군복무 당시에 말년휴가를 나와서 아버지와 함께 선거운동을 했다. 직계비속이나 배우자의 선거운동은 공무원이더라도 문제가 없다.[15] 특히 경원선 복선전철 공사 당시 덕정역의 토사화 (기차역처럼 지상화)냐 고가화냐 이런 문제가 굉장히 심각한 상태였다. 물론 정성호 당선 후 덕정역은 토사화를 뿌리치고 전부 고가화되었다. 다만 덕계-마전 구간은 2선 토사 구간이다.[16] 목요상 시절의 목표 구간은 원래 의정부-동두천이었다. 한마디로 소요산은 꿈도 꾸지 못했단 얘기. 정성호 의원이었기에 소요산 연장이 가능했지 그렇지 않으면 경원선 전철 연장도 아예 먼 미래의 이야기가 될 수 있었다.[17] 당시 소재지가 의정부지방법원 건너편에 있는 공동 변호사 사무실이었다.[18] 인터넷에서 검색되는 정 의원의 여러 반문 행적과 맞물리며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이 실패하길 내심 바라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다만 코로나 정국에서 홍남기의 딴지가 부각되면서 이 발언은 나름 재평가되고 있다.[19] 열린우리당 창당을 위한 탈당.[20] 대통합민주신당에 흡수 합당.[21] 민주당과 신설 합당.[22] 시민통합당과 신설 합당.[23]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