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우핑 모레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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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제10대 대통령
데우핑 모레이라 다코스타 히베이루[1]
Delfim Moreira da Costa Ribeiro


파일:Delfim_Moreira.jpg

출생
1868년 11월 7일
브라질 제국 미나스제라이스주 크리스치나
사망
1920년 7월 1일 (51세)
브라질 합중 공화국 미나스제라이스주 산타히타두사푸카이
재임기간
<Bgcolor=#f5f5f5,#2D2F34>제10대 대통령
1918년 11월 15일 ~ 1919년 7월 28일
경력
미나스제라이스주 주지사 ,(1914~1918),
브라질 제8대 부통령 ,(1918~1920),
브라질 제10대 대통령 ,(1918~1919),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브라질 제10대 대통령이다.

2. 생애[편집]


1890년 상파울루 대학교 법대를 졸업했다. 1894년부터 1902년까지 미나스제라이스주 주의원으로 활동했다. 1914년부터 1918년까지 미나스제라이스 주 주지사였다.

1918년, 부통령으로 선출된 델핌 모레이라는 호드리기스 아우베스 대통령이 스페인 독감에 걸려 취임을 하지 못하자 대통령직 대리를 맡았다. 이후 알베스가 사망하면서 제10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하지만 모레이라 역시 건강이 좋지 않아 실질적으로 대통령 임기를 보낸건 3개월에 불과했고 마지막 6개월은 교통 공공 사업부 장관인 아프라니우 지 멜루 프랑쿠가 결재권자였다. 따라서 대통령의 2년 임기를 마치기 전에 대통령의 장애에 대비한 새로운 선거 시행를 규정하면서 1919년 조기대선이 열리게 되었다.

당시 브라질은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경제가 어려워져 관세 인상, 채무 증권 발행, 공공 지출 삭감 등을 시행했다. 이로 인해, 노동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어, 취임 3일만에 리우데자네이루와 니테로이[2]에서 대규모 파업이 발생했다. 11월 22일, 대통령은 리우데자네이루에서의 노동조합 폐쇄를 명령했다. 1919년 6월 21일, 브라질 공산당이 창당되었다. 4달 후, 브라질 정부는 상파울루, 산투스, 리우데자네이루, 니테로이의 노동운동에 참여한 100여명의 노동자들을 추방했다.

1919년 대선에서 에피타시우 페소아가 당선되자 다시 부통령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1920년 7월 1일 사망하면서 부통령 임기도 제대로 채우기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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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 용례상 로망스어권 인명의 전치사 및 관사는 뒤 요소와 붙여 적도록 하고 있다.[2] 리우데자네이루 동쪽에 위치한 위성도시이다. 거대 예수상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에 위치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