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우핑 모레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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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브라질 제10대 대통령이다.
2. 생애[편집]
1890년 상파울루 대학교 법대를 졸업했다. 1894년부터 1902년까지 미나스제라이스주 주의원으로 활동했다. 1914년부터 1918년까지 미나스제라이스 주 주지사였다.
1918년, 부통령으로 선출된 델핌 모레이라는 호드리기스 아우베스 대통령이 스페인 독감에 걸려 취임을 하지 못하자 대통령직 대리를 맡았다. 이후 알베스가 사망하면서 제10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하지만 모레이라 역시 건강이 좋지 않아 실질적으로 대통령 임기를 보낸건 3개월에 불과했고 마지막 6개월은 교통 공공 사업부 장관인 아프라니우 지 멜루 프랑쿠가 결재권자였다. 따라서 대통령의 2년 임기를 마치기 전에 대통령의 장애에 대비한 새로운 선거 시행를 규정하면서 1919년 조기대선이 열리게 되었다.
당시 브라질은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경제가 어려워져 관세 인상, 채무 증권 발행, 공공 지출 삭감 등을 시행했다. 이로 인해, 노동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어, 취임 3일만에 리우데자네이루와 니테로이[2] 에서 대규모 파업이 발생했다. 11월 22일, 대통령은 리우데자네이루에서의 노동조합 폐쇄를 명령했다. 1919년 6월 21일, 브라질 공산당이 창당되었다. 4달 후, 브라질 정부는 상파울루, 산투스, 리우데자네이루, 니테로이의 노동운동에 참여한 100여명의 노동자들을 추방했다.
1919년 대선에서 에피타시우 페소아가 당선되자 다시 부통령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1920년 7월 1일 사망하면서 부통령 임기도 제대로 채우기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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