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사르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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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연방 공화국 제31대 대통령
조제 사르네이 지아라우주 코스타
José Sarney de Araújo Costa


파일:Foto_Oficial_Sarney_EBC.jpg

본명
조제 히바마르 페레이라 지아라우주 코스타
(José Ribamar Ferreira de Araújo Costa)
출생
1930년 4월 24일 (94세)[1]
브라질 합중 공화국 마라냥 주 피녜이루
재임기간
<Bgcolor=#f5f5f5,#2D2F34>제31대 대통령
1985년 4월 21일 ~ 1990년 3월 14일
정당
경력
마라냥주 연방 하원의원 ,(1955~1966),
마라냥주 주지사 ,(1966~1970),
마라냥주 연방 상원의원 ,(1971~1985),
브라질 제20대 부통령 ,(1985),
브라질 제31대 대통령 ,(1985~1990),
아마파주 연방 상원의원 ,(1991~2015),
브라질 연방 상원의장 ,(1995~1997, 2003-2005, 2009-2013),

1. 개요
2. 생애
2.1. 어린시절
2.2. 정계입문
2.3. 대통령 취임까지
2.4. 대통령 임기
2.5. 대통령 퇴임 이후
3. 소속 정당
4. 여담



1. 개요[편집]


브라질의 정치인으로 브라질의 제31대 대통령을 지낸 인물이다. 민주화 이후 초대 대통령이라 브라질 내에서는 초대 대통령으로도 부른다.


2. 생애[편집]



2.1. 어린시절[편집]


브라질 마라냥주 피녜이루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José Ribamar Ferreira de Araújo Costa이다. 마라냥주 연방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1965년 현재 이름인 José Sarney de Araújo Costa로 개명했다. Sarney라는 이름의 유래는 지주였던 아버지가 'Sir Ney'로 불렸던것에서 유래했다.


2.2. 정계입문[편집]


중도 우파계열인 국가민주연합(UDN)[2] 소속으로 정계에 입문했으며 1955년 마라냥주 연방 하원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64년 주앙 굴라르 대통령을 실각시킨 쿠데타를 지지했다. 쿠데타 이후 군부가 중심으로 이루어진 국가개조동맹(ARENA) 당에 합류하였고 소속 정당도 같이 합병된다. 이후 1966년 마라냥주 주지사와 당총재로 선출된다.


2.3. 대통령 취임까지[편집]


1979년 국가개조동맹은 민주사회당(PDS)[3]으로 계승되었고 당총재를 연임했다. 1984년 브라질 직선제 개헌 운동인 'Diretas Já'를 펼쳤고 이로 인해 군부의 압력을 받으며 당이 분열된다. 1985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사회당이 파울루 말루프[4]를 후보로 세우자 사르네이는 반발하며 당을 떠나 자유전선당(PFL)[5]를 창당하여 민주운동당과 동맹을 맺었다.

거래의 일환으로 탄크레두 네베스의 러닝메이트로 1985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대통령 취임식 전날 네비스가 병으로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자 3월 15일부터 4월 21일까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 4월 21일 네비스의 사망으로 정식으로 브라질 31대 대통령으로 취임했으며 이는 21년만에 나온 문민정부였다.

하지만 군사정권 아래서 부역하다 막 전향해 온 행적 때문에 정체성에 의심을 받았다. 실제로 군사정권 시절 탄압기구인 국가정보부를 유지하고 예산을 넉넉히 분배해주었지만 후술하듯 브라질의 민주화에 크게 기여했다.


2.4. 대통령 임기[편집]


갑작스런 네비스의 질병으로 인한 부재로 논란이 발생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을 부통령이 맡을지 하원의장이 맡을지에 대해서였다. 당시 하원의장이었던 울리시스 기마랑이스가 탄크레두 네비스와 같은 정당 소속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마랑이스가 양보하면서 사르네이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되었다.

취임 후 아르헨티나 대통령인 라울 알폰신과 양국 간 공동시장 탄생을 위한 합의를 시작했다. 우선 '가우초(Gaucho)'라는 특별 통화를 만들어 무역을 보조하기로 합의했다. 이로 인해 1991년 메르코수르가 결성되었다. 하지만 당시 브라질은 막대한 외채와 높은 인플레이션과 부패, 민주주의로의 전환에서 발생하는 부작용들에 의해 엉망이었다. 사르네이 임기 동안 인플레이션율은 934%에 달했고 노조 파업과 부패 스캔들로 얼룩졌다. 1986년 2월과 11월에 크루자두 계획 1, 2을 발효하며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기존 통화인 크루제이루(Cruseiro)를 1000:1 비율로 신통화인 크루자두(Cruzado)로 대체했고 모든 제품가격, 임금, 임대료를 동결시켰다. 이로 인해 인플레율이 1986년 초 12.7% 에서 / 3월. -0.1%. / 4월. 0.8% / 5월. 1.4%로 효과가 있는 모습을 보였고, 이를 토대로 1986년 총선에서 민주운동당이 상하원 모두 단독 과반을 확보하는 대승을 거두었지만 가격동결정책이 길어지면서 판매자가 손해를 염두에 둬 제품 공급이 이뤄지지 않자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했고 가격이 왜곡되는 등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1987년의 브레세르 계획과 1989년 여름 계획을 펼치며 크루자두 노부(Cruzado Novo)라는 신화폐까지 도입했으나 가격동결정책이라는 큰 틀에선 벗어나지 못했고 1989년 인플레율은 1782%를 기록하며 처참히 실패했다.

하지만 민주화에서는 큰 족적을 남겼는데 1969년 헌법에 남아있는 권위주의의 잔재를 없애기 위한 개헌을 단행했다. 그 결과로 1960년 이후 대통령 직선제가 처음 도입되었고 1989년 대선에서 처음 적용[6]되었다. 또한 자신이 그 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시켰다.


2.5. 대통령 퇴임 이후[편집]


퇴임 후인 1991년 2월 1일부터 아마파주 상원의원으로 2015년 2월까지 활동했다. 1994년과 1998년 대통령 후보로 페르난두 카르도주를, 2002년에는 룰라 다 시우바를 지지했다. 1995년부터 1997년까지, 2003년부터 2005년까지, 2009년부터 2011년까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총 세차례에 걸쳐 연방 상원의장을 역임했다. 2015년 공식적으로 정계에서 은퇴했다.

2022년에도 룰라 다 시우바를 지지했다.# 또한 92세로 생존한 전직 대통령 중 최고령이지만 아직 정정하다. 심지어 공직자들 취임식도 쫓아다니는 등 정말 잘 돌아다닌다. 동년배인 이타마르 프랑쿠는 80대 초반에 사망하고, 페르난두 카르도주도 예전만큼 대외활동이 활발하지 못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2023년 1월 브라질리아 폭동 당시 의회 건물 내부에 걸려 있던 그의 초상화에 칼자국이 났다.
파일:ed929236-f58a-4c49-8520-854d2f0f7b3a.jpg
그런데 훼손된 다른 초상화들에 비하면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하지만 팔라시우 두 플라나우투도 습격을 당하면서 거기에 걸린 사진도 박살이 났다.

2023년 4월 93세 생일을 맞았다. 이때 제라우두 아우키민 부통령과 미셰우 테메르 전 대통령, 노동자당 전국회장[7], 법무부 장관 등 거물급 정치인들이 모였다.#


3. 소속 정당[편집]


소속
기간
비고
국가민주연합
1955 - 1965
정계 입문

국가개조동맹

1965 - 1979
입당

[[무소속|
무소속
]]

1979
해산

민주사회당

1979 - 1985
창당

1985
입당

1985 - 현재
입당
정계 은퇴


4. 여담[편집]


  •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다. 큰딸 호지아나는 마라냥주 상원의원과 주지사를, 둘째 페르난두는 FIFA 평의회 위원을[8], 막내 조제 사르네이 필류는 변호사이자 정치인으로 환경부 장관을 역임했다.

  • 시인이자 소설가이기도 하다. 대표작으로 《불의 말벌》이라는 시집이 있으며, 대통령이 되기 전인 1980년 브라질 문학 아카데미의 회장직을 맡기도 했다.

  • 브라질의 대표적인 족벌 정치인 중 하나로, 현재도 고향인 마라냥주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신문과 방송사를 소유하고 있다. 대통령직 이후 상원의원에 출마할 때 자기 소유의 언론을 통해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조사를 조작해 배포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가 상원의장이 되자 이코노미스트에서 봉건주의의 승리라며 까기도 했다.

  • 2014년 브라질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지우마 호세프를 지지한다는 스티커를 옷에 붙여놓고 상대 후보이자 자신이 모셨던 탄크레두 네베스의 손자 아에시우 네베스에게 투표하는 모습이 찍혀 동영상으로 돌아다녔다.[9] 본인은 가짜 동영상이라며 부인했지만 탄크레두 네베스에 대한 감사 표시였다고 사실상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정치 분석가들은 마라냥 주지사 선거를 노동자당이 제대로 도와주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이라고 분석했다.
[1] 현재 생존 중인 브라질 대통령 중 최고령.[2] 1965년 해체[3] 1993년 해체[4] 상파울루주의 주지사와 시장, 주 하원의원 역임[5] 2007년 민주당으로 개명했으며 2022년 2월 브라질 연합에 합병되었다.[6] 사르네이가 출마했던 1985년 대선은 간선제였다.[7] 당 대표에 해당되는 직책[8] 2015년부터 현역으로 재직 중[9] 브라질 선거는 후보의 기호를 기계에 입력해서 투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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